66강-YouTube강의(자기 것 챙기기)140320-이 근호 목사
66강-YouTube강의(자기 것 챙기기)140320-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66강-YouTube강의(자기 것 챙기기)140320-이 근호 목사
66강 제목은 ‘자기 것 챙기기’ 입니다. 사람은 자기 것 챙긴다는 것을 그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든 우리의 살아가는 존재와 의미와 가치가 내 것 든든하면 이 세상에 아무 손해가 안 돼요. 내 것이 만약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그때는 난리 납니다. 신이 벌 줬다느니, 신에게 징계 됐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거예요. 왜 처음부터 네 것 챙기기부터 출발하느냐? 그걸 문제 삼는 거예요. 내 것 챙기기가 일상에서는 아무 문제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에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보는데 있어서는 이거보다 더 큰 장애라는 게 없습니다.
과연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내 것 챙기기 위해서 어떻게 질책하는지를 성경 한 대목 찾아보면서 제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5장 30절 31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라고 했거든요. 예레미야가 지금 이 말씀 하신 겁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 31절에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 “
자, 여기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는데 선지자들이 왜 거짓을 예언할까요?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는 이유는 선지자가 자기 것을 챙기기 때문에 ‘나는 예언하는 전문 직업을 통해서 결국은 내 것 한번 챙겨보자. 나만 살면 된다.’는 거예요. 내 것 챙기기에 아무 탈이 없으면 신은 나에게 축복하고 있는 중이고 내 것 챙기기에 차질이 일어나면 신은 나에게 저주하는 중이라고 보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신약의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 어떤 길을 갔는지를 염두에 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가 예레미야 선지자 이야기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기를 거짓 선지자는 거짓을 예언한다는 거예요. 이 거짓을 예언하는 이유가 그들이 자기 것을 포기하면서 쉽게 말해서 ‘그래, 내 한 몸 죽고 양들은 살아야지.’ 그런 마음에서 거짓을 예언할 수 있겠어요? ‘그래, 나는 지질이 궁상이고 못 살아도 돼. 하지만 내 희생으로 다른 사람은 다 살아야 돼.’ 그런 마음 때문에 거짓으로 예언할까요? 예레미야 당시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도 자기 전문 직업이기 때문에 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될 입장에서 어떻게 예언을 하면 나한테 내 것 챙기기가 늘어나고 내 것 챙기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가. 그걸 항상 염두에 두고 설교하게 마련입니다. 그와 똑같은 말이 뒤에 나와요.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무슨 권력으로?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 거예요. 자기 권력. 주님의 권위가 아니고 자기 권력이라니까요. 자기 것 챙기는 거예요. 감히 제사장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내 백성들은”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그걸 좋게 여긴다는 거예요. 좋게 여길 수밖에 없죠. 각각 자기 챙기는 것이 일상화 된 사회에서 오히려 자기 것 챙기지 않는 사람 있으면 그게 거북스러워요. 너무 희생적으로 사는 것이 자기 죄를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게 거북스럽다니까요. 각각 자기 욕심 챙기는 것이 오히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 있어서 과연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거는 자기 것 챙기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변조되는가? 예레미야 5장 12절에 그 말씀 나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벌써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가 계시냐. 안 계시냐를 측정하는 도구가 뭐냐 하면 현재 자기 것이 그냥 그대로 잘 유지되면, 자기는 지금 복 받고 있는 중이고, 자기 것의 손실이 주어지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는 걸로, 하나님이 화를 내는 걸로 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 없다.’를 일상적으로 평소에도 내 것 챙기는 중에 있기 때문에 내 것 챙기는 것에 대해서 그러한 변동 사항이나 변화나 차질, 그런 것 가지고 하나님의 계신지, 안 계신지를 측정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어디 남의 이야깁니까?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모습이 이미 예레미야 당시 그 사람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그전에 먼저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사야 54장 9절에 보면 노아 홍수 이야기가 언급돼 있는데 그 노아 홍수 이야기 들을 때 항상 이걸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노아 당시에 홍수가 나기 전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그냥 살았어요. 노아 홍수 임한다고 산위에 가서 노아 홍수 오는 걸 구경하고 관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들이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 일상이 뭐냐 하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니에요? 농사짓고 농사짓다가 쉬고 그런 모든 일들이 결국 어디로 모아지느냐? 자기 것 챙기기로 이게 결론지어지고 모아지는 거예요.
“신이시여, 내 것 홀라당 다 가져가시옵소서.” 절대로 그런 생각으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시집 간 내 딸래미 빨리 죽게 하시고 장가 간 내 아들 망하게 하옵소서.” 절대로 그런 식으로. “지금이라고 물 심판 나타나서 어제 장가 간 내 아들 물에 흠뻑 젖어서 죽게 하옵소서.” 그러든지 아니면 “내 아들 장가가더라도 장가 간 의미 없게 하옵소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전부 다 장가가도 내 자식 장가가고 내 자식 시집가도 내 자식 시집가는 거예요. 전부 다 내 것 챙기기입니다.
내 것 챙기기에 몰두하고 열중하다 보니까 노아 홍수라는 그것이 왜 있어야 하며 왜 이 멀쩡하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물 심판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들은 그들의 자기 것 챙기기 속에는 그런 노아의 소식이 스며들 여지가 전혀 없는 거예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이 노아 홍수 언급할 때 이 말씀 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 홍수 나서 너희들이 한꺼번에 멸망당한 걸 왜 잊어버렸느냐? 이렇게 나와요. 이사야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 팔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여기에 24시간 정신을 팔고 있으니 홍수가 난 그 연유나 이유를 자기 것 챙기기 속에서는 그 이유를 발견해 낼 재간이 없고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 내가 내 것 챙기며 살다 보니까 그래 나는 물 심판 받고 심판 받아 마땅하지.’라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성령 받은 사람에게만 그것도 가끔 솟구쳐 나오는 생각입니다. “주여 이래 산다는 자체가 마치 노아 홍수 직전에 사람들이 자기 것만 챙기면서 이게 정상이다. 이게 아주 정상적인 삶을 사는 거야.‘라고 안심 푹 놓을 때 그때 안일했던 삶과 동일한 삶입니다. ’주여 제가 이렇게 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께서 놀랍게 기적적으로 임해야 비로소 가능한 이야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했습니다. 이것은 노아 홍수 때 노아가 외친 소리를 그 당시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거와 동일합니다. 왜 그러냐?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것 챙기는데 24시간을 몽땅 다 거기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장 30절에서 그게 기괴하다고, 그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천상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이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끼리는 자기 것 챙기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고 그리고 같은 사람들끼리는 백성들도 그런 삶을 아주 좋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눈에는 그 허점이 발각 당했습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여러분, 선지자들이, 설교자들이 거짓 예언을 할 때 그걸 심각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자기 것 안 빼앗기면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죠. 하지만 그러한 일상적인 태도가 노아 홍수의 임박함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불 심판이 임박해 있습니다. 자기 것 챙기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내가 자기 것 챙기고 사는 것이 이게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임을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주님 희생 앞에서, 다시 한 번 늘 확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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