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b-이 근호 목사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b-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아까 시몬이란 사람이 톨레미 보아에서 마치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을 회복하고 메시아왕국처럼 있었던 적이 있다 했지요. 시몬이라 하는데 그 사람은 유대 안식일을 준수하고 그걸 신정체제, 하나의 신을 모시는 정치체제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안식일마다 나팔을 불었고요, 불면 모든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희생 제사를 드렸고 그러니까 구약에서 율법대로 하란 대로 그대로 한 거예요. 시몬이란 사람 주도하에. 그리고 절기에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쏟아졌고 그리고 옛날에는 톨레미 당시에는 예루살렘 보호받을 때는 바깥에 나간 유대인들이 다 십일조를 했어요.
그 십일조 가지고 예루살렘을 먹여 살리니까 예루살렘이 늘 풍족했어요. 예루살렘이 풍족하니까 귀금속이 많으니까 셀류쿠스가 로마하고 전쟁해서 전리품을 보면 심심하면 예루살렘 내려와서 뜯어가는 거예요. 금 귀한 거 다 가져가고. 예루살렘이 잘 돼도 문제에요. 잘되면 뜯기고 못되면 힘없이 무너지고. 못되면 그 자체가 또 유대풍습이 사라지고 헬라풍습으로 매일 놀고 전차경기에다가 하여튼 세속적인 경기 있잖아요. 목욕탕 이런 시설, 하여튼 세속적이고 타락적인 것. 그런 것이 들끓고. 그래서 예루살렘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도자들은 시몬이후에 지도자들은 토비아 가문으로 바뀌어요. 셀류쿠스가 안티오쿠스3세가 셀류쿠스 속했다 했지요. 이쪽시대가 오게 되면,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돈을 많이 주는 쪽에서 지도자를 세워버립니다. 그러면 지도자 된 사람은 돈을 많이 줬기 때문에 자기는 어떻게 벌어야 됩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을 양아치처럼 뜯어가지고 자기도 많이 먹고 또 세금을 드리고 일종의 하청업자 된 거예요.
그리고 자진해서 유대교를 없애버리고 자진해서 자체적으로 헬라인 되겠다고 자처해서 나온 겁니다. 특히 11장36절부터 보면, 드디어 앞에 전쟁 이야기하다가 안티오쿠스4세, 안티오쿠스를 에피파네스라고 합니다. 에피파네스라 하는 것은 신이 등장했다. 자칭 신이에요. 여기 30절에 보면, “이는 깃딤(로마의 배)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며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 임의로 행하며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길 것이며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악행은 무슨 악행입니까? 안티오쿠스3세 이후에 이미 위에 셀류쿠스 가문에 속했다하면 이제 예루살렘은 망해도 보통 망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참고로 안티오쿠스4세가 나쁜 짓을 제가 죽 나열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나쁜 짓을 했는지. 나쁜 짓이라 하는 것은 유대인 입장에서 나쁜 짓이에요. 우선 안티오쿠스4세는 로마에 칼리쿨루라는 황제가 있지요. 아주 못되고 타락한 황제인데요, 그만큼 나빴어요. 성격이 사이코패스 비슷한 게 불안정한 소셜패스, 정신이상자 비슷한데 화려한 궁중의식을 즐겼고 모든 죄악에 대해서는 지루하게 느껴졌고 중앙광장에 안티옥, 지금의 안디옥이에요. 지금의 시리아에 안디옥 있지요. 안디옥의 중앙광장에 술에 취한 채 목욕을 했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값비싼 연고로 마사지하고 목욕탕에서 시종들과 함께 어울렸고 그런데 구경꾼이 그걸 낭비한다고 비난하자 이 안티오쿠스4세는 항아리로 그 사람 머리를 내어 치라 해서 내쳤고 군중들이 모여들어서 향유를 구하려니까 비웃었고 안티오쿠스는 고급망토를 걸치고 장미의 왕관을 쓰고 모든 사치는 다했어요.
백성이 쳐다보면 돌 던지다가 쳐다보는 인간도 돌 던졌고 밤이면 변장해서 사창가에 들락 했고 낯선 사람과 만나면 뜬금없이 폭행을 저질렀고 스스로 자기가 신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그래서 자기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신의 현현)로 불러달라고 이야기했고 또 백성들도 그렇게 칭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유대인 보수주의 자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을 싫어했고 벌거벗은 운동선수를 일부러 장려했고 일부러 경기를 시켰고 또 이런 사람과 들러붙는 간신배가 있어요. 그게 야손 이예요. 야손이란 사람이 “ 임금님, 제가 헬라로 시키는 것에 대해서 유대교 전통을 없애는데 제가 알아서 잘해드리겠습니다.” 아부를 하면서 야손에게 돈을 더 주고 이권을 얻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시몬이 만들었던 시몬이 했던 토라, 말씀들을 다 격하시켰고 젊은이들을 할례 시켜 놓은 것을 다시 원상복귀를 시켜놨어요. 하여튼 원상 복귀시킨 것을 보면 수술도 대단해.
포피를 복귀시켜놓고 이것을 자랑해라 했고 그리고 그의 신복 멜라니오스를 보내서 자기 부하이기도 하고 친구라고도 하는데, 지금 안티오쿠스4세는 어디가 있는가 하면, 북쪽에 가있어요. 예루살렘은 남쪽이고 북쪽에 가있다고요. 예루살렘에서 멜라니오스가 하청 받은 거예요. 예루살렘은 내가 알아서 관리할 테니까 가끔 위에 올라가서 세금 드릴 테니까 정권을 저한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조로 한 거예요. 그걸 처음에는 야손이 했는데 야손보다 멜라니오스라는 사람이 돈을 더 준거예요. 돈을 더 줘가지고 권리금을 자기가 갖고 이제는 전에 보다 더 심하게 유대교를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세율법을 원하니까 사제를 세웠는데 이 멜리니오스는 사독 계통이 아니에요. 사독계통이 아니고 엉뚱한 혈통인데 유대인혈통이 아니고 혼혈아에요. 이 사람이 사제가 된 겁니다. 사제가 되어가지고 통치가 되었고 그리고 이 안티오쿠스는 신복 멜리니오스를 대동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가지고 지성소에서 신성 모독했고 금촛대, 금제단, 제단에 올린 빵, 모든 귀한 물 다 가지고 갔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희생 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게 다니엘 11장에 나와요. 11장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아까 봤던 30절 있잖아요. 거룩한 언약을 배반했다 이 말이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메시아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자기한테 희생 제사를 바치라고 섬기라고 유대인들에게 했어요.
그 다음에 성전에 금을 상자에 가득 채운 채 이집트로 가서 모든 저항을 짓밟았고 안티오쿠스가 이집트로 가서 전쟁을 했어요. 그 다음에 안티오쿠스는 로마의 흉내를 즐겼고 그 당시에 이미 로마는요, 160 몇 년경에 점차 로마가 커지기 시작해서 고린도지역은 이미 160년경에 이미 멸망합니다. 그리이스와 그 옆의 이태리가 그리이스와 전쟁을 해가지고 로마가 이겨요. 이기고 그리이스는 강력히 저항했지만 저항을 로마에게 당해내지를 못합니다. 하여튼 로마가 그 시대입니다.
기원전 167년경에 안티오쿠스는 안식일에 계략을 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천 명을 죽이고 요새 아크라를 세웠습니다. 안식일의 계략이 뭐냐 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살기 때문에 안식일에 전쟁을 합니까? 안 합니까? 전쟁을 안했어요. 그래서 다른 날은 가만히 있다가 안식일 날 전쟁 안하는 걸 알고 안식일 날 쳐들어가 다 죽였어요. 그러니까 전쟁이 되겠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안식일 날 피해서 다른 날에 공격해서 전쟁했어요.
안티오쿠스는 성전 안의 모든 희생 제사와 예배를 금지했고 안식일, 율법, 할례를 금지하고 이걸 어길 시에는 사형으로 처벌했어요. 또 돼지고기를 성전에 덧입혀 놨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67년 11월 6일 성전은 그리스의 국가 신인 올림피아 제우스 황제를 그 성전에다가 제우스신을 섬기는 신전으로 봉헌해 버렸어요. 그러니 철저하게 성전에서 창녀와 놀아났고 거룩한 성전에서 아예 놀이터로 만들었어요.
멜리니오스는 그것을 묵인했고 사람들은 성전을 향하여 행진을 했고 성전에 못 오도록 했고 그리고 사제들조차 강제로 벌거벗고 운동하는 올림픽 경기 보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안식일 지낸 자는 산채로 화형당하고 그리스에서 수입한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를 안 먹고 굶어죽었어요. 아이들은 할례 시킨 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절벽으로 던져가지고 갈기, 갈기 찢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 있잖아요. 토라는 보는데서 다 찢어서 불태워버리고 사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걸리면 사형 당했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4세가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런 짓을 했잖아요. 돌아가고 난 뒤에도 그 일이 멜라니오스에 의해서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형님, 제가 알아서 그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보내 놓고 지가 그 짓 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안티옥(안디옥)가가지고 무슨 짓을 했는가 하면, 인형놀이를 했는데 갑자기 축제를 벌여놓고 인형 10명을 바닥에 내려놓고 난 뒤에 인형 속에서 자기가 튀어나와 가지고 짠하고 나타나서 춤추고 완전히 미쳐도 이런 미친 사람 없지요. 그런데 지금 이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헬라제국에 속하지요.
헬라제국이 둘로 나눠져서 위쪽에는 셀류쿠스, 아래쪽에는 톨레미, 그나마 톨레미가 지배하고 있을 때는 유대인들이 자기 맘껏 유대전통을 지킬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누가 이겨요? 놀랍게도 톨레미가 지고 셀류쿠스가 이겨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짐승은 가장 짐승다운 것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이 짐승의 나라입니다. 거기서 하나님 은혜로 다시 은혜로 일어서고 이런 게 안돼요. 짐승의 나라는 철저하게 짐승의 나라여야 돼요. 왜? 어두움이 짙어야 새벽이 그만큼 빨리 오기 때문에 그렇지요.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두움이 짙잖아요. 여명이 트기 전에 가장 어둡듯이 극한적인 어두운 시대에 요것이 바로 다니엘에서 말하는 62이레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말의 현상으로 어떻게 되느냐,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에 일어나는 환경으로 그대로 주어지지요.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이런 거 해봤지요. 신문이나 잡지에 있는 그림을 오려가지고 도화지에 딱 딱 붙여놓으면 나름대로의 색다른 멋있는 그림이되지요. 그 그림의 원본은 어떤 잡지 속에 신문 속에 일부였는데 그걸 가위로 오려가지고 새롭게 하얀 도화지에 놓게 되면 그 나름대로의 낯선 새로운 의미가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다니엘을 가위로 오리겠다는 거예요. 다니엘을 가위로 오려가지고 예수님 이후에 새 언약 시대에 모든 시대에 그 다니엘이 일어난 이 과정을 그대로 딱 놓아버리면 그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 됩니다. 다니엘 이래에 공포정치의 반복이 되는 거예요. 다니엘 공포정치의 반복!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부가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지요. 그렇죠? 그건 왜냐 하면 우리는 다 같이 짐승이기 때문에. 같은 짐승은 관대해요. 나는 관대하다. 다리오3세가 그거 하다가 삼백 명에게 잡혀 죽었지만. 이 세상은 무엇으로나 다 관대해요. 제가 주일 낮 설교에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서 설교했잖아요. 성경에는 분명히 원수를 갚지 마라, 내가 갚는다 하고 나오잖아요. 성경에 원수가 나오지만 우리 일상에서 원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협상과 타협만 있을 뿐이고 친구나 덜한 친구 이것뿐이지 원수 만들면 누가 피곤해요? 우리가 피곤하고 우리가 스트레스 받아요. 원수 만들면 스트레스 받는다고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예요. 서로 맘에 안 들면 너는 너 갈 길 가고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지, 원수라는 게 성립이 안 된다니까요.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는 원수가 있잖아요. 성경의 원수에 그 원수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백성이 아닌 게 돼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주의 원수에 대해서 우리는 엮어져야 되고 그런 운명에 도달되어야 되는데 우리 힘으로는 안 되고 바로 주님께서 이 짐승의 역사를 반복시키는 겁니다. 가위로 오리는 거예요. 다니엘을 가위로 오립니다.
다니엘 다시 한 번 봅시다. 예루살렘이 잠시 빛 봤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요때 아주 뭔가 “야, 메시아 나라가 이런 거구나!” 그리고 느헤미야가 와가지고 십일조하게 하고 일체 이혼 당하게 만들고 진짜 유다혈통만 남아야 되니까 혼혈 잡혈은 되지 않도록 다하게 되고 율법제사 드리고 성경공부 할 때는 진짜 메시아가 이 기분이구나! 느낀다 말이죠. 마치 처음 복음으로 개척 교회할 때 처음에 몇 명 모여가지고 성경 공부할 때 재미나지요. 1년 지나면 그 중에 반은 나가버리고 반은 나가서 울타리 밖에서 망보고 있고. 반은 모이다가 그것도 1년 지나면 그만 합시다. 하고 다 가버리지요.
그 시기라니까요. 에스라, 느헤미야가 분명히 하나님 뜻 맞습니다. 학개, 스가랴 예언대로 에스라, 느헤미야가 와가지고 분명히 그런 이상적인 나라 만들었는데 그게 몇 년 갔습니까? 몇 년 가지도 않았어요. 그것은 그만큼 누구의 위력이 세다는 말입니까? 짐승의 위력에는 어떤 인간의 노력이라도 성경공부도 짐승을 벗어나거나 탈피할 수 없어요. 짐승이 핀셋 가지고 거기서 하나, 하나 다 끄집어냅니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십자가 보이다가 나중에 끄집어내면 뭐만 보입니까? 자기 자신의 존재가 제일 중요해요. 십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라는 이 존재, 존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번에 중국 갔을 때, 존재냐, 기능이냐, 그거 아닙니까. 존재로 보면 성경에서는 엉터리고 기능으로 봐야 되는데 내가 주님의 속성을 보여주는 기능인인데 그걸 보지 않고 나는, 나는 구원받을까? 나는 천국 갈까? 맨날 출발점 자체가 이미 존재에요. 그 존재로 있는 이상은 그 존재는 짐승의 핀셋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니엘 다 끝나가니까 다니엘 다시 한 번 봅시다. 이스라엘이 있었는데 누가 덮쳤다? 바벨론이 덮쳤지요. 바벨론은 짐승이지요. 짐승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멸망케 했던 겁니다. 그럼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지요. 그러면 요 이스라엘 위에 바벨론 큰 원이 있고 큰 원 바깥에 누가 있다? 하나님이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벨론에 잡히게 하면서 여기다가 다니엘과 세친구중에서 뭘 비밀로 입수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장래 계시를 입수했지요. 요 계시가 무슨 계시인가 하면, 이게 바로 종말의 시나리오 아닙니까. 종말의 시나리오지요.
그러면 종말은 어디서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짐승이 짐승답게 될 때 그 안에서 태동, 회임하듯이 여자가 임신하듯이 거기서 싹이 돋듯이 그런 식으로만 천국이 비쳐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짐승 앞에서 다니엘 세 친구는 칭찬을 받았습니까? 수모를 당했습니까? 수모인데 그 수모가 맨날 죽으면 죽으리 아닙니까. 니가 나한테 절하지 아니하면 니가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 우리가 다음 내용을 아니까 편하게 읽지만, 막상 본인이 다니엘 세 친구라면 “참, 내 팔자가 더러운 팔자다. 씨!~ 그냥 곱게 늙어죽지도 않고 암에 걸리지도 않고 내가 삼겹살도 아니고 돼지갈비도 아니고 온 몸이 전부 다 불에 타서 죽는 역이에요. 또 다니엘 같으면 내가 알아서 자살해도 될 문제인데 그게 아니고 그 사자들에게 으스러지게 죽을 생각하면 주님의 시나리오가 이런 식으로 전부 다 진행됩니까? 드라마 작가 불러야 돼요. 오로라 공주 썼던 작가 부르던지 해서 드라마 좀 제대로 써야지, 너무 처참하잖아요. 비참하고 처참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계시 덩어리인 걸 어떡합니까.
다니엘 세 친구가 갔던 불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자와 만나면서 사자 입을 봉하게 했던 주님과 함께 있어, 하나님과 함께 있어 봉했던 그러한 종말의 살 수 있는 인간은 이런 것을 경험하고 이런 것을 극복한 자만이 비로소 종말의 최후의 종말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사자굴이 없어요. 물론 지금은 유황불이고 풀무불은 없습니다만, 그걸 가위로 오린다니까요. 오려가지고 이 시대에 그걸 그대로 반복을 해버려요.
그러면 사자 굴보다 더 셀 수도 있고 뱀 굴이라든지 독사의 굴이라든지 이제는 완전히 진짜 굶어죽는 일이 있을 거고 앞으로 어떤 전제국가가 나타날 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어쨌든 간에 우리가 공통점은 뭐냐 하면, 내 힘으로 대책이 없다 말이에요. 신앙생활 좀 잘해보려 했는데 신앙생활 잘해보도록 놔두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주님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아요. 주님이.
다니엘과 세 친구가 나름대로 신앙생활 했지요. 채소는 먹지만 고기는 안 먹겠다 이거 아닙니까. 사실은 채소도요, 채소도 어느 땅의 채소입니까? 수입했어요? 채소도 바벨론 채소지만, 자기 딴에는 신앙생활 남보다 성의는 보여준 편이 되잖아요. 그러나 백날 성의 보여주면 뭐합니까. 그런 식으로 해방이 안 되고 그런 식으로 구원이 안 되는데. 착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니까요. 착한 나름대로 신앙인이니까 뭔가 성의를 보여준다는 거예요.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있으니까 이제는 착하게 살란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성의 표시지만 이게 내 구원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예수님의 피지.
이제는 내가 타락안한 목사 된다고 해서 구원받습니까? 타락 안하면 타락 아니에요? 타락 안한다고 애쓰는 그것이 선악과 쪽으로 보면 그것이 타락이라니까요. “아이고, 나는 이제부터 어떤 누구보다도 착하게 삽니다.” 그게 타락이라니까요. 그게 짐승의 나라에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까 시몬이야기 봤지요. 안식일 지키고 안식일 지키라고 그렇게 광고해도 그 다음에 더 난폭한 안티오쿠스 4세 딱 오니까 톨레미시대 때는 괜찮았어요. 뭔가 생각처럼 잘한 것 같지만 더 큰 힘, 같은 헬라 짐승 내에서 전쟁이 다니엘 11장이잖아요. 다니엘 11장 전체가 헬라라는 짐승입니다. 짐승 내부에서 지금 뭐가 관여한다? 예루살렘을 관여해서 지금 짐승의 본 속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돈이 모이니까, 십일조가 모이니까, 그걸 박탈해가고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누구를 건드린 거예요? 주님을 건드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건드린 거예요. 그렇게 건드려 주면서 정작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런 대책은 없는 거예요. 이게 종말의 특징이에요. 안개로 그냥 주의 뜻이면 이것, 저것 하리니, 그냥 죽을 때 죽는 방법밖에 없어요. 짐승의 나라에서 우리가 빠져나오는 방법은 우리가 힘을 기르는 게 아닙니다.
기존교회에서의 교회라는 것은 결국 무엇의 덩어리입니까? 힘의 덩어리. 교인 수가 많다는 것은 힘이 많다는 것이고 그 교회의 유력한 인사, 청와대 인사, 판사 몇 명, 의사 몇 명,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만큼 우리 교회는 자체적인 힘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거든요. 그게 짐승한테 통합니까? 짐승이 그걸 보고 어머 놀래라, 어머 무서워라, 놀래요? 우리교회는 선교사 몇 명 보냅니다. 이러면 짐승이 아이고하며 벌벌 떱니까? 한 경직 목사가 당회장하면 그 짐승 안 오는 거예요? 본인이 짐승인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락교회? 영락교회는 영원히 천국 가는 교회입니까? 교회 이름? 하여튼 전도서 말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을 아예 수긍해 버립시다. 아예 그게 속 편해요.
착하게 살아도 소용없구나! 전도서 9장2절 다시 한 번 추임새 넣고 해 봅시다. 이 말씀 정말 좋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똑같다)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똑같다)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똑같다)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똑같은)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부 다 똑같다.
종말 프로그램이에요. 종말은 누가 승리한다? 마지막은 누가 승리한다? 짐승의 팔이 올라가게 돼 있어요. 짐승 팔을. 괜히 그걸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마세요. 기도하면 복 준다고? 안 줘요. 안 생겨요. 16년 동안 기도해도 안 생겨요. 40 넘은 딸, 16년 기도해도 신랑 결혼감 안 생겨요. 그냥 나이트 가서 춤추다가 생겨요. 이미 결혼 안한 사람은 결혼하겠다가 이미 마귀의 유혹입니다. 짐승 안에서 노는 거거든요. 자기를 사랑하잖아요. 짐승 세계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체가 이 자체가 이미 마귀가 박수치는 좋은 생각을 지금 갖고 있는 거예요. 마귀가 좋은 생각 앞을 자르고 그냥 good, 좋은 생각하지만 마귀가 좋은 생각.
제가 어느 강의에서 중국 가서 했거든요. 여러분, 마귀가 보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곧 마귀의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곧 마귀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내가 사랑한다면 주께서 내 원하는 것을 채워준다고 우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미 십자가는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 마귀가 와요. 그걸 중국강의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공식화시켰습니다. ‘나는 무엇이다.’ 이것은 마귀 적이죠. 앞에 있는 ‘나’를 뒤에 넣어보세요. “주님은 무엇이 되라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한다면 나는 어디입니까? 주어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뭐만 보인다? 십자가 보이는 주님만 내세운다면 이게 성령의 일이라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이 공식을 만들었어요.
나는 이라고 출발하게 되면 무조건 이것은 마귀 일이고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조건 성령께서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앞에 것은 미흡함이고 불만적이고 짜증이고 뒤에 것은 반대가 되지요. 범사에 감사하는 거죠. 내가 주님의 십자가 보이는 자리에 저는 저 끝에 가 있을래요. “전에 있던 내 자리는 항상 주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자리이기를 원합니다.” 바로 요 공식을 짐승의 나라에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끄트머리에 있으니까 짐승은 주님의 자리에서 설치니까 우리의 성도는 항상 무시당하고 모독당하고 어떻게 됩니까? 인정받지 못하지요.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지금 이 세상 중심에 마귀가 뛰도록 누가 했다? 지금 바벨론이란 짐승이 뛰도록 바깥에 누가 계시다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짐승이 마음껏 승리하고 활개 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자리를 하나님께서는 바로 언약의 백성으로서 헬라 짐승을 통해서 그 자리를 구축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12장 2절 봅시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는 이미 죽은 자지요. 죽은 자가 어떻게 된다고요? 죽은 자가 뭘 얻는다? 잠에 깨어 영생을 얻지요. 그러면 결국은 짐승이 있다는 말은 우리를 아예 죽이겠다고 하나님께서 작심을 하신 거예요. 죽일 때, 네가 병들어 죽는다. 늙어 죽는다. 사고 나서 죽는다. 하지 말고 짐승이 널 죽였다고 하고 그 짐승은 누가 작용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작용했던 그 짐승에 의해서 네가 이 땅에서 힘없는 자로서 맥없이 그냥 패배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고 망한 자가 되어라. 이게 네가 이 드라마에서 네 역할이다. 성도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그 드라마를 누가 해야 됩니까? 그 드라마 제가 할게요. 그 손을 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빌립보서 2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걸 포기하지요. 포기하고 어디로 갑니까? 그냥 공동묘지에 안가지요. 자살해서 공동묘지 가지 않고 어떤 사건을 유발시켜서 죽지요.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지요. 왜? 십자가는 어떤 인간의 힘으로 십자가를 유발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가 없으면 우리는 구원 못 받아요. 그런데 십자가 자리가 나타났다는 말은 곧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종말 때에 자기백성을 데려갈 천국 갈 출입구가 마련됐다 이 말이거든요.
제가 어제 수요설교 때 한 걸 다시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유리로 만들었는데 중간에 뽀족한 게 있어요. 거기다가 레몬이나 오렌지를 넣어가지고 손으로 갈아버리면 여기서 즙이 생기지요. 요게 뭐냐 하면, 십자가에요. 밑에 하나님의 언약세계에서 뾰족하게 삐져나오면 요 위에 뭐가 덮이느냐 이불이 덮여요. 이불이 역사에요. 역사 속에서 누가 왕초고 누가 대장입니까? 역사가 뭡니까? 짐승의 교체가 같은 짐승이 교체 되는 거예요. 심지어 헬라라는 짐승 안에서도 끊임없이 남쪽 북쪽, 북쪽 남쪽, 역사가 계속 바뀌지요. 심지어 예루살렘이 16번이나 바뀐다는 거예요. 예루살렘의 주인이 16번이나 바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죽을 맛이지요. 예루살렘은.
그런데 그 예루살렘의 주인은 전부 누구다? 전부 다 뇌물주고 돈 주고 그 짐승의 새끼짐승, 형님 짐승에 아우짐승, 나중에 그것을 맛디다스가 맛디아 혁명을 일으키는데 혁명 일으킨 유대 그것도 또 새끼짐승, 결국은 새끼짐승, 새끼짐승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이라는 새끼짐승,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 2살밑의 베들레헴 애들 다 죽이잖아요. 그것은 속성입니다. 짐승은 그리스도를 노려요. 세상 힘을 갖고 노립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한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 세상은 누가 장악했습니까? 이미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마가 장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의 권세들과 싸움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이미 그건 들통 났고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 밑에는 천국 있고 영생 있고요, 십자가로 하게 되면 이불이 찢어지지요. 찢어지면 강도도 세리도 창기도 이를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그 길을 마련한 겁니다.
다니엘 11장에서 예루살렘이 예수님이 당할 수모를 미리 당합니다. 수모를 실컷 당하고 예루살렘을 못살게 굴고 그렇게 괴롭히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그 놈이 바로 결국 무슨 스위치를 건드리는가 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스위치를 건드리죠. 결국은 극도의 정신병자가 되어서 언약의 스위치를 건드렸습니다. 가룟유다가 사탄이죠. 사탄의 종이지요. 사탄의 지시를 받아 뭘 건드립니까?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팔아먹는 작업을 하지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호위무사는 다 어디 갔습니까? 호위무사는 다 도망갔어요. 왕에게 충성하는 것은 기왕후가 하는 짓이지 예수님한테는 기왕후도 없고 호위무사도 없고 예수님 빼놓고 전부 다 도망쳐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많은 기적을 해도 베드로는 누굴 못 이겼다? 그 당시의 힘을 이겨내질 못하고 나, 저 분과 상관없는 분이고 나는 저분을 저주하며 나 저분하고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아가씨보고 그런 이야기했다니까요. “아저씨! 아저씨도 한패지요?” “어딜,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나, 저 분 모른다. 저 사람 저주한다.” 그 아가씨가 권력 있습니까? 아니지요. 아가씨와 대화할 때 주시하는 기존의 권력들 있잖아요. 죽 모인사람이 있다 말이죠. 이장도 있고 작목반도 있을 거고, 통장도 있을 거고. 권세에 속한 사람 다 있어요. 짐승의 녹을 먹는 사람 다 있다니까요.
그런데 유독 바보같이 짐승의 권력을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권력에 순종한 물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닭, 그 닭은 AI에 걸리지 않았어요.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은 닭이 있었어요. 그 닭이 몇 번 웁니까? 세 번 울지요. 닭보다 더 못한 인간. 그게 주님의 질서고 베드로는 세상 어두움의 짐승의 질서였습니다. 누가 탈출이 가능합니까? 탈출 못합니다. 누가 이겨요? 3년 동안 배우면 5년 동안 배우면 되는가, 아무도 탈출 못합니다.
탈출할 구멍은 하나밖에 없어요. 미리 성령에 의해서 피 받고 죽는 겁니다. 피 적시고 죽는 거예요. 강아지한테 죽는 시늉하라 하면 강아지 ‘엎드려’ 하면 죽는 시늉하잖아요. 주님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주체에서 벗어나서 저 서술부 끝으로 밀어내고 그 주체는 예수님을 다시 한 번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거예요. 마귀는 반대로 저기 있던 우리가 다시 아침 눈만 뜨면 나를 나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삼는 일을 마귀가 그렇게 해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혼란한 사이에 성령이 밟았다가 마귀가 밟았다가 완전히 예루살렘 같아요. 완전히 걸레조각, 이런 걸레조각 없습니다. 그러다가 죽어요. 죽으니까 12장 2절에 보니까 그 때 무릇 땅의 티끌가운데서 구원받는데 이 사람들은 1절 끝에 보면 누굽니까? 아무나 이렇게 부활됩니까? 12장 1절에 누가 부활됩니까? 책에 기록된 사람이 구원돼요. 책은 언급이 없었는데 왜 책이 등장하지요? 그 때 내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되어 있어요. 책에 기록된 자.
그러면 분명히 책에 있다는 말이고 이 말은 다니엘 7장 23절에 보면,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천하를 삼킨다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다니엘에서 짐승나라지요. 27절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이 영원한 나라가 묵시나라입니다. 묵시나라에서는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는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책에 기록됐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책에 한 번 기록되면 시간이 지나면, 기록이라는 말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고정돼 있다. 이 말이거든요. 고정성은 시간성을 초월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하나님의 책이라는 말은 결국은 그의 나라는 그의 나라를 도드라지기 위해서 그동안 많은 시간의 흐름들이 있었지만 그게 이제 털털 털려버리면, 떡에 콩고물을 털털 털어버리면 떡의 몸체가 드러나는 것처럼 그냥 쓸데없는 세상 짐승 털고 나면 그 중에 있던 진짜가 오는 거예요. 그 진짜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지요. 고생을 성도만 한 게 아니고 누구도 했습니까? 사실은 주님이 고생 제일 많이 했지요. 주님이 고생한 그 고생에 함께 동참한 자만이 결국은 주님과 더불어서 부활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2장 11절 어려운 거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일 어려운 대목이니까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오시면서 꽉 쬐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말씀이 와서 꽉 쬐지요. 제가 어느 설교에서 예를 들었지요. 최 두식 성도님 집에 갔다가 잠 잘 잤다고 이야기했지요. 그 때 메모리폼이라는 게 있어서 자고 일어나니까 복원력이 있어가지고 다시 원상태로 가는데, 꽉 조여 주는 느낌, 잠 잘 잤어요. 그런데서 처음 자 봤거든요. 예수님 오실 때 감은 게 말씀이 꽉 쬐어줍니다. 꽉 쬐는 말씀가운데 다니엘이 들어있다고 보면 이해돼요. 꽉 쬐어져서 다니엘이 들어있으면 주님께서는 본인자체가 인자가 되거든요.
인자가 된다면 인자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그 주변에 자기를 꽉 쬐는 모든 세력이 짐승세력임을 그리고 다니엘에서 예언된 그 짐승세력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 구원은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도 인간은 탈출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딱 오니까 광야도 그렇고 모든 곳에 오니까 “탈출 안 돼!” 하고 짐승이 달려들지요. 과연 짐승의 힘이 세요. 예수님을 창을 찔러 죽여 버렸으니까. 결국은 누가 승리합니까? 짐승이 승리하지요.
예수님께서 그냥 짐승을 칼로 칠 수 있는데 예수님이 다니엘 자리에 가요. 다니엘 자리까지 내려가니까 다니엘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느브갓네살이 힘이 있지요. 그러니까 다니엘 자리에서 다니엘이 받았던 모든 계시를 예수님 홀로 다 받는 거예요. 다 받으면, 그 다음에는 어려워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이 성령이 찾아왔다는 말은 결국 이 사람에게 뭐가 터졌다는 말입니까? 다니엘이 과거 이야기가 아니고 그 사람한테는 뭐냐, 현재 벌어지는 상황이 되겠지요.
그러면 다니엘11장, 12장, 10장, 9장, 8장, 다니엘 1장, 2장 전부 가 그 사람한테는 뭐냐, 지금 실제상황인 거예요. 그 사람이 다니엘 되는 거예요. 그럼 다니엘 되니까 굴 파고 포항제철에 가서 용광로 속에 들어갈까요? 그럼 사자굴해서 동물에 들어가서 한 번 이렇게 들어가야 됩니까? 다니엘 반복이라는데. 그게 어려운 거예요.
다니엘 반복이라는 게 뭔 뜻이냐 하면, 일단 다니엘 반복이 아니고 그 중간에 누가 끼어들었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끼어들었지요. 그러면 다니엘 반복은 예수님의 반복이 되고 예수님의 반복이 우리에게 반복되지요. 갈라디아서3장 1절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지요? 십자가가 눈에 보이지요. 그러니까 캡슐 알약 하나, 십자가라는 알약 하나가 우리에게 삼켜버리면 우리 인생은 무슨 인생이 되느냐 하면, 내가 십자가 안에 있는 인생이 되고 십자가 안에 있으면 세상은 나에게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지요. 건드리지 마라, 나는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 사도바울이 왜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사도바울이 왜 다니엘, 다니엘, 다니엘 이야기하지 않고 왜 자꾸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이야기합니까? 고 십자가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다니엘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제 어려워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니엘 속에 들어올 때는 안 들어오면 다니엘은 역사는 흘러갑니다. 다니엘 끝에 보면 1335일하고 앞에 11절에 보면 1290일도 있지요. 시간은 자꾸 흘러가잖아요. 62이레 흘러가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들어갔단 말이에요. 예수님은 책을 갖고 들어갔고 예수님은 묵시지요. 역사가 아니고. 시간이 흘러요? 안 흘러요? 안 흐르지요. 안 흐르는 분이 역사 속에 들어와 버리면 여기서 동결, 울산강의에서 했어요. 흐르는 역사가 얼음이 돼요. 얼음.
예수님이 와버리면 스톱, 창세기 스톱, 스톱돼 버려요. 그 중간에 누가 있고? 예수님 계시고. 아브라함이 뭘 보기를 원했다? 예수님이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일으킨 사건 속에 주님이 장차 함께 하게 되면 자기는 같이 동결되고 그러면 아브라함은 죽은 자가 아니고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 이삭과 야곱, 다 살아있는 하나님이에요. 예수님이 살아있기에 모든 게 살아있는 하나님이에요. 엘리야도 살아있고, 모세도 살아있고, 변화 산에 같이 등장했고. 이것도 천국에서는 동결된 상태에요. 동태 됐지요. 다니엘은 동결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뭐가 동결되느냐 하면, 사자 굴도 동결되고 용광로 불도 동결되지요. 별로 안 뜨겁지요. 레잇고 레잇고, 손만 대면 다 동결돼요. 겨울왕국.
주님이 가신 곳이 전부다 스톱이 돼버리죠. 스톱이 되면 여기 다니엘 9장의 말씀처럼 내 백성도 고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내 백성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 동결된 주님께서 다니엘의 그 짐승, 그걸 보셔야 되는데. 이게 한 번 스톱되면 그 사람은 움직이고 다른 사람은 스톱되는 게 있지요. 예수님만 빼고 다 스톱이 되어 버려요. 스톱이 되면 그걸 그대로 우리에게 가져오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스톱이 되고 바깥에서 보면 지금도 뭔가 역사 속에 시간 속에 같이 늙어가고 있고. 그런데 실제 우리의 본 모습은 십자가만 바라보면 스톱되어 버리고. 안 보면 움직이고.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고 이미 우리의 명단은 책에 있고, 다니엘에 있던 모든 혜택은 이미 주어졌고 그런데 요 생각이 2초 내지 3초 딱 지나면 다시 아우, 버려야 될 건데. 몸은 아파서 언제 병원은 가야 될 텐데. 주사 맞아야 돼! 아이고, 오른 쪽이 또 낫긴 나았는데 언제 한번 안양에 가야 돼. 계속 시간은 흘러가는데 십자가보면 딱 죽어있고. 죽었다고 보니까 옆에 누가 있고. 엘리야 있고 모세 있고, 아브라함 있고, 주님 계시고. 지금 미친 소리하고 있는 거지 지금. 안 믿는 사람에게는 이게 미친 소리에요.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를 꼬시더냐, 누가 너를 꾀더냐, 이 세상이 짐승이기 때문에 “니는 잘 되어야 돼!" "발전해야 돼. 돈 더 벌어야 돼” “네가 가장인데 오래 살아야 돼” 온갖 꼬시는데 십자가 보는 순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고, 살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은 나는 바짝 얼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리니. 주의 뜻이지 내 뜻이 아니다 말이죠.
그런데 고개만 돌려버리면 모든 게 내 뜻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앞으로 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요. 성경이 정말 영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에요. 성경은 영의세계와 접촉하는 것은 십자가밖에 없어요. 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니엘에서 모든 묵시가 종결되어서 얼었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구체화 시켜버리면 그게 1290일, 아직도 종말은 시간은 남아있어요. 짐승은 활개를 쳐야 되고 우리는 핍박을 받아야 되고 하지만 믿는 자는 알아요. 핍박을 받던, 폭풍이 오든 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살았다는 사실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서는 우리보고 이미 살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살고자 합니다.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고, 날마다 십자가 생각하고 주님 생각할 때마다 그 차이는 바로 세상과 그리고 주님 안에서의 차이인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재미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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