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
다니엘 11장은 45절까지 길어요. 내용이 상당히 무미건조합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것들을 이렇게 보여주는 건데요. 녹취하기는 쉬울 거예요. 죽 읽어가면서 그 왕 이야기만 딱딱 하면 되니까 성경 그대로 옮겨놓고.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메대 사람이라는 것은 바사, 메대 요렇게 연합돼 있거든요. 바사니까 흔히 아는 나라가 페르시아. 페르시아 하면 현재 어디냐 하면 이란을 옛날에는 페르시아라. 우리나라 노래에도 페르시아의 왕자인가… 그런 노래 가사가 있죠. 페르시아 하면 이란, 양탄자 타고 다닌다는 그 나라.
그 나라, 원년도 계시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2절에 보면 바사, 페르시아에 다리오 말고 또 세 왕인데 고레스, 또 다리오스 2세, 크세르크세스 왕, 이렇게 세 왕 그 다음에 네 번째는 다리오스 3세가 네 번째 왕인데, 2절에 네 번째는 강하고 부요하다 하는 다리오스 3세고요. “격동시켜서 헬라 국을 칠 것이며.” 헬라국은 어디냐 하면 헬라 국이 이 당시에 BC 330년경쯤 되는데 지도를 잠간 그릴게요.
지중해가 있고 여기가 이집트 시나이 반도, 진천의 중앙교회가 테러 당한 데가 여기입니다. 이쪽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있고 터키 다음에 건너가면 그리스, 그리스 북쪽이 바로 헬라 국입니다. 거기(헬라 국) 빌립 2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헬라 국이고 그 아들이 알렉산더란 유명한 사람 이예요. 20살 때 나라를 잡았고 전쟁했는데, 먼저 다리우스 3세가 헬라 국을 치게 됐는데 거기에 대해 나오는 영화가 ‘300’이란 영화가 있죠.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이게 누구냐 하면 376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납니다.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이 사람이 나이 서른 세 살 때 죽어요. 전쟁에 다 승리해 놓고 알렉산더가 온 제국을 다 차지해 놓고 독살당하고 나라가 네 개로 쪼개면서 그게 4절 이야기에요. 5절에 보면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갑자기 남방이 왜 나오느냐? 알렉산더 제국이 헬라인데 전에 페르시아 지역하고 전쟁해서 이겨서 땅을 다 점령하겠죠. 그러니까 전체가 원래는 헬라, 페르시아 따로 있는데 그 전체가 헬라 나라가 된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에서 이런 역사적 상황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이것이 짐승이라는 거예요. 다니엘에서 첫째 짐승, 둘째 짐승, 셋째 짐승, 넷째 짐승, 그렇게 돼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바벨론, 둘째 짐승은 메대 바사, 세 번째 짐승은 방금 이야기한 바사를 쳤던 헬라, 네 번째 짐승이 마지막 짐승 이예요. 그 이후에는 짐승이 없습니다. 네 번째 짐승이 인류 역사 끝날 때까지 계속 죽 가는 나라, 로마 제국이 네 번째 짐승입니다.
나라를 짐승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좋게 보는 게 아니죠. 사람들은 행동을 엉망으로 하면 뭐라 합니까? ‘이 짐승만도 못한 존재다.’ 그러면 짐승이 아닌 나라가 뭡니까? 여기서 짐승이 아닌 나라, 현재 이스라엘이 있어요? 없어요? 이스라엘은 사라졌어요. 어디 소속돼 있느냐 하면 바벨론 첫째 짐승 안에 포함이 돼 있고 그런데 첫째 짐승 날라 가고 두 번째 짐승 되면 두 번째 짐승 안에 이스라엘이 포함돼 있고, 세 번째 짐승 헬라가 되면 헬라 네 번째 짐승 안에 또 이스라엘이 포함돼 있고, 네 번째 로마가 되면 그 짐승 안에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 바벨론, 바사, 그 다음에 헬라, 로마, 이 전체가 짐승이란 말은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데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짐승이란 말입니까? 그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들어있죠. 그때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해도 되는데요.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에 이 이스라엘과 구분하기 위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이스라엘! 그냥 이스라엘 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이스라엘!
그러나 약속하신 이스라엘이 들어있다는 건 알지만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구체화 돼야 되는데, 영토도 없어요. 주권도 없어요. 백성도 누가 누군지 몰라요. 모호해요. 그러면 이 나라는 세상 적으로 봐서 있는 나라입니까? 없는 나라입니까? 나라 없습니다. 나라가 없다는 말은 뭐만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짐승만 있는 거예요. 전부 다 이 세상은 곧 짐승이고 거기에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짐승에 복종해서 사는 것이고 짐승에 굴복해서 사는 짐승의 일부라고 보면 됩니다. 모든 인간이. 누구 보시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니 짐승의 일부기 때문에 거기에 속한 백성은 짐승의 힘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까 제가 뭐라 했습니까? 그 안에 포함되는 걸 뭐라 했죠? 언약 공동체, 또는 참 이스라엘, 약속의 이스라엘이라 했죠.
이걸 신약 성경에서는 뭐라 하느냐 하면 이걸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럼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짐승 안에 있죠. 하늘나라가 짐승 안에 있는 거예요.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고 바로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짐승 같은 너희 안에 하늘나라가 있다 이 말이죠. 주께서 만드실 거예요. 짐승 안에서. 완전히 만들어 내십니다. 뭐로 만들어 내시느냐 하면 하늘나라 주인 되시는 분이 이미 다녀왔고, 보통 어디 다녀갈 때는 견적 보잖아요. 견적 봐서 설교 도면대로 뭔가 여기서 만들 거예요.
간수라 합니까? 콩 갈아서 두부 만들 때 간수를 넣게 되면 조금 있으면 뭔가 엉기잖아요. 분명히 처음 넣을 때는 엉김이 없었고 그냥 맹물인데 물이면 물, 액체인데 간수를 넣으면 뭔가 엉기죠. 천국은 이렇게 분명히 없는데서 뭔가 생기는 거예요. 생길 때 그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뭐냐 언약,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 십자가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이렇게 점점 더 천국이 가시화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짐승 나라는 짐승 나라 값을 제대로 해줘야 돼요. 그 짐승 나라가 해야 될 건 뭐냐 하면 이겁니다. 이 세상 나라 같은 나라가 천국이라고 주장들을 해줘야 돼요. 이 세상과 전혀 다른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보다 더 행복하고 잘 사는 나라가 아마 천국일 거야, 라는 이런 거짓말을 짐승 나라에서 계속해서 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다니엘 11장의 내용이 지루하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11장 내용은 전부 다 짐승 나라입니다. 짐승 나라가 짐승 나라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고 하는 그 이야깁니다. 그러면 짐승 나라가 왜 성경에 기록됐는가? 짐승 나라인지 아닌지를 짐승 나라 하는 행세, 그 움직임, 활동을 보면서 파악을 하시라는 거예요.
그거 파악해서 뭐 할 건데? 장차 오실 주님의 나라는 11장에 나오는 짐승 나라 행동하는 것과 너무나 판이하다는 사실을 감 잡으란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감 잡는가? 예수님께서 속한 나라가 무슨 나라냐? 하면 유대나라죠. 그 유대나라 움직임이 여기 11장에 나오는 짐승의 나라를 그대로 흉내 내고 모방한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스라엘은, 짐승 나라는 어디냐? 오늘날 교회가 이 11장에 나오는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 있느냐? 교회 안에 있죠. 그러면 교회는 뭐냐? 교회 안에 있으니까 참 좋은 교회네요? 아니에요. 교회가 짐승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짐승 나라에 천국이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 보면 천국은 어디 있다고요? 짐승 나라 안에 있고 천국이 오기 전에 먼저 짐승나라라고 규정받아야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 활동을 짐승의 나라라고 이렇게 확정지고 규정이 되는 절차를 통해서 그 속에서 천국은 비로소 비칩니다. 내가 짐승의 나라에서 빼도 박도 못하고 속해 있다는 것을 자기가 스스로 자인할 때 그 사람에게 비로소 천국이 보이는 겁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11장 28절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너희(바리새인)가 짐승인데,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은 이 세상의 속성을 보여준다는 뜻이고요. 29절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이렇게 돼 있죠? 세간이 셉니까? 그 세간을 잡고 있는 집 주인이 셉니까? 누가 강한 자에요? 집 주인이 강한 자죠. 그러면 천국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이 집 주인이 말한 게 아니고 집주인한테 묶여 있는 세간에 있다가 이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주님에 의해서 이제 천국의 백성이 되죠.
그러면 묻습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 나라보다 강합니까? 약합니까? 약하죠. 약하면 스스로 탈출이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출애굽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아까 쉬는 시간에 김 중우 집사님이 얘기했지만 집사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돈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벗어납니다. ‘응엥’ 하고 태어날 때부터 돈의 그물망에 매여 있고 이 그물망을 돈 벌기 싫다고 벗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돼요. 지리산 가도 거기도 전기세 내야 되고 전기 없으면 양초 값 하나에 천원 잡아도 양초 하루에 밝게 하려면 양초 몇 개 해야 됩니까? 그리고 그쪽 지리산 물가가 알 올라요. 그런데 지리산 밖에 장터에 가면 이미 물가가 올라져 있어요. 내 허락도 없이 올라 있어요. 전에 쌀 한 말 샀던 것이 같은 돈 가지고 못 살아요. 약초 캐도 전에 약초 캐서 쌀 한 말 샀는데 약초 캐도 이제는 쌀 반 말 밖에 못 사요. 왜, 이거는 바깥의 짐승이 물가를 올렸기 때문에.
결국은 지리산 들어간다는 것은 그냥 양식도 없이 그냥 굶어죽으라는 거죠. 죽어야 탈출이 가능한 세상! 심지어 죽어도 안 돼요. 죽어도 탈출 못하는 이 세상. 죽으면 이 세상에서 죽어서 지옥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도 탈출이 안 돼요. 짐승의 나라에서 죽고 짐승의 나라에서 다시 산다면 그건 탈출이라고 할 수 없죠.
누가 와야 됩니까? 주님이 와야 돼요. 그래서 주님의 성령 오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나야 천국의 백성입니다. 하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님의 모든 작업은 빈 공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이 세상을 짐승의 나라로 바꾸는 열심 있는 하나님의 착실한 작업이 선행되는 겁니다. 그 착실한 작업을 선행하면서 우리가 지금 다니엘 11장을 보려고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는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니까 다시 합니다. 11장의 내용이 나온 이유는 서로 서로가 싸우면서 그 싸우는 과정에서 짐승의 속성이 뭔가 그걸 보여주고자 11장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성은 장차 올 인자의 나라의 속성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 이예요. 너무나 다른 세상 이예요.
그럼 5절 계속 봅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남방의 왕은 톨레미입니다. 톨레미 2세를 말하죠. 프톨레미 또는 톨레미를 말하는데 전에 나눠드린 프린트 꺼내세요. 뒤에 보면 5절부터 마지막 끝 절까지 해석이 다 돼 있어요.
5절에 보면 프톨레미로 돼 있죠. 외우기 귀찮거든 앞에 떼고 톨레미라 해도 됩니다. 강자가 남방 쪽이 뭐냐 하면 이집트를 장악했어요. 그래서 이걸 톨레미가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헬라 제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이 이집트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굴 지배했느냐 하면 팔레스타인, 다시 말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예루살렘도 있겠죠.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은 뭐하고 있었느냐, 오니아 사제가 있었어요. 사제는 제사장을 말합니다. 586년에 포로 잡히고 난 뒤에 520년경에 스룹바벨하고 여호수아가 포로 4만 5천 명 데리고 본국으로 옵니다. 그때가 고레스 왕의 명에 의해서 성전 짓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보면 고레스를 메시야라 하거든요.
분명히 짐승의 나라에서 못 빠져나오죠? 그렇다면 고레스가 바사니까, 그들이 바사 나라에서 거기서 다시 귀환해서 예루살렘에 오게 되면 그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빠져 나온 거예요? 빠져 나온 게 아니에요? 그냥 어떤 배려를 해준 거죠. 짐승의 나라에서 성전 지으라고 배려를 해준 것이지, 그게 거기서 성전 지으면 천국이겠습니까? 하늘나라 아닙니다. 하늘나라 아니지만 하늘나라 준비 단계로 그들이 왔었어요.
그들이 오고 난 뒤에 한 5년 간 성전을 못 지었습니다. 못 지었는데 스룹바벨이 포고령을 그때 다리우스 왕 이전에 캄파세르 2세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고레스 다음 왕인데 이집트를 치고 올라가다가 독살 당했어요. 올라 간 이유가 뭐냐 하면 그때는 헬라 아니고 바사나라입니다. 바사나라 이라크, 요즘은 이란, 페르시아 자기 형제 둘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 치다가 도중에 올라가다가 독살 당했어요. 암살당하고 난 뒤에 귀족 여섯 명이 같이 가다가 죽어버렸으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차기 왕을 뽑는데 캄파세스 왕이 죽어버려서 이렇게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말이 제일 먼저 우는 사람의 말 주인을 다음 차기 왕으로 뽑겠다고 이런 엉뚱한 제안을 했거든요. 그런데 누구의 말이 울었느냐 하면 다리우스라는 사람의 말이 제일 먼저 울었습니다.
어쨌든 다리우스 왕의 말이 울어서 왕이 되어 4년 동안 모든 걸 평정했습니다. 평정하고 그 사이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지으려 하는데 산발랏이라는 사마리아에 자치 총독이 있었어요. 예루살렘 북쪽 200킬로 위에 사마리아에 산발랏이라는 자치 총독이 ‘너희들 거짓말 아니야? 그런 일 없어.’ 하고 자꾸 방해를 하는 거예요. 방해 정도가 아니고 그 사람들을 죽여 버리려고 해요. 왜냐 하면 토박이잖아요. 텃세를 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포로 잡혔다가 왔으니까. 그래서 결국 못 짓고 있다가 포고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포고령을 보니까 “나 고레스 왕은 성전 지으면서 모든 비용도 이미 허락을 했노라. 누구든지 이 성전을 짓는 걸 방해하면 즉결 처분한다.” 이랬다 말이죠.
그리고 난 뒤에 515년에 거세한 수소 100마리하고 양 400마리하고 12지파에 하나씩 속죄하는 의미에서 수 염소 12마리 잡아서 거대한 성전 봉헌식을 하는데 옛날 솔로몬 성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성전의 규모가 너무나 초라해서 울고 새로 지은 사람은 좋다고 웃고, 어쨌든 간에 그런 식으로 해서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완공되고 난 뒤에 500년 후에 다리오 왕의 술시중 드는 느헤미야란 사람이 다시 오게 되는데 와서 여기서 메시야 왕국을 만들려고 했어요. 첫째는 혈통이 깨끗해야 되고 율법대로 하려면 이방여자하고 혼인하지 말아야 되고, 메시야 오려면 전에 제사장 나라가 돼야 되거든요. 그러면 제사장에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십일조가 필요해요. 그 십일조를 거둬야 땅 없는 제사장에게 봉급을 주고 생활비를 주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일종의 유사 메시야 왕국, 모형적인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려고 느헤미야 때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죽고 난 뒤에 얼마 가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난 뒤에 다리오 3세 왕이 까불다가 알렉산더에게 깨져서 알렉산더 대왕의 전적을 다 차지했죠.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전쟁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요청해야죠. 예루살렘 귀족들은 아주 반겼습니다. 야! 우리를 해방할 분이라고 반겼지만 알렉산더는 다 작살내버렸습니다. ‘나 안식일을 지키고 싶다.’ 해놓고는 들어와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다 폐지시키고 수모를 당했어요.
그러니까 바사, 페르시아 짐승의 나라에서 지어진 성전을 그 뒤에 헬라 짐승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모독을 받고 훼방을 받는 겁니다. 그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네 명으로 쪼개지다가 나중에 다시 두 명으로 분리가 돼요. 북쪽은 셀류쿠스, 남쪽은 톨레미가 잡는데 톨레미가 예루살렘 이걸 점령을 하게 돼요.
지금 초점이 뭐냐 하면 항상 주변 역사를 이야기해도 항상 뭣에 초점이 있느냐 하면 예루살렘에 초점을 모아야 돼요. 왜냐 하면 결국 메시야가 어디 옵니까? 예루살렘에 오기 때문에. 메시야 오기 전에 예루살렘, 제가 한 취지는 뭐냐 예루살렘이 어떻게 짐승의 나라가 되었느냐 그걸 지금 보자는 겁니다.
예루살렘 거기에 왔을 때 그때 예루살렘은 톨레미로부터 오니아 가문이라는 게 있어요. 오니아 가문이 사독 가문이거든요. 사독 가문이 뭐냐 하면 다윗의 친척 이예요. 다윗 언약에 의하면 왕도 유다지파이어야 되고 제사장도 유다지파라야 돼요. 다윗 언약 이전에 모세 언약 때는 제사장이 제일 높았어요. 그런데 제사장이 엘리 제사장으로 망해버렸어요. 제사장으로서 제사 드린다고 해서 나라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다 드러나고 난 뒤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왕을 통해서 통치를 하는데, 왕 통치가 뭐냐 하면 왕 하나만 제대로 말씀대로 살면 다른 백성들은 덤으로 구원을 받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면 복 받습니까? 복 안 받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 받아요? 안 받아요? 나쁘게 살면 저주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이 시대는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모세 언약 시대 때 이야기지만 이 시대는 모세 언약 이외 다윗 언약 시대고 새 언약 시대기 때문에 개인이 착하고 악하고 관계없이 개인의 운명은 누구의 왕, 우리를 대신하는 왕에 따라서 복을 받고, 아무리 착해도 왕에게 소속되지 않으면 저주받게 돼 있어요.
요번에 중국에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하나님이 솔로몬을 두 조각낸다 했죠? 솔로몬을 두 조각내니까 솔로몬이 율법과 지혜로 두 조각나잖아요. 두 조각났을 때 지혜 문서 중에 하나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 9장 2절을 이번 주일날 설교에 했는데 뭐라고 돼 있던가요? 제사를 드린 자나 안 드린 자나 착한 자나 안 착한 자나 관계없이 인간 돌아가는 것은 아무 영향 안 받는다. 이게 지혜에요.
당장 지금 착하게 살면 복 받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 받지.’ 나쁘게 살면? ‘벌 받지.’ 이러잖아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벌 받는 사람은 운 없는 사람이 벌 받고, 운 좋은 사람은 백날 사람 죽여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히려 권력을 쥐면 사람 수천 명, 수만 명 죽여도 왕으로 살다가 왕궁에서 살게 돼 있어요. 북한의 김정은, 김일성 같이.
그래서 시대를 알아야 돼요. 이 시대는 이미 모든 법으로 해서 혜택주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법을 지키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못 지키면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받고, 그런 시대가 아니고 전부 다 저주받는 시대에요. 자기가 살사나, 못 사나 저주받는 시대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디나라에 속한다 했습니까? 짐승의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짐승 자체가 저주거든요. 그럼 저주받는 그 왕에게 소속됐으면 그 밑에도 자동적으로 저주가 임하게 돼 있습니다. 저주에서 못 벗어나요. 죽음에서 못 벗어나는데 여기 인자의 나라, 다니엘에 예언된 인자의 나라에 와 버리면 도저히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그 가운데서도 생겨요. 천국 백성이 생겨요. 강도가 되어서 자기가 지은 죄로 벌 받는 그 현장에서도 오늘밤에 낙원 가는 일이 생겨요. 옆에 있는 강도는 안 생기는데 이쪽 강도는 천국 가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세상을 계시로 봐야 돼요. 계시란 개인적인 계시는 없어요. 전체 질서를 다 보여주는 계시뿐입니다. 네가 어디 소속돼 있는가, 보여줘야 계시지, 너는 괜찮은 인간이라는 계시는 없어요. 전체를 보여주고 거기 네가 속했다는 쪽으로 계시를 보여주는 겁니다. 성령의 계시가 원래 그런 거예요.
예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이 세상은 이런 세상인데 이런 세상 여기에 침투했다. 그리고 이 악한 세상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응어리지고 있다. 한 알의 밀알 같으면 속상할 텐데 그것이 자라나면 큰 나무가 되듯이 뭔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가 이미 개시되어서 꿈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 꿈틀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성경에 보면 내게 속한 소자, 내 형제, 소자한테 한 것이 누구한테 한 것이다? 이 나, 예수한테 한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이야기했거든요. 십자가 중심으로 모인 그들이 바로 천국 백성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력으로 짐승을 못 이겨요. 사단을 못 이깁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뭐냐 하면, 이기는 생활이 아니고 다르다는 거예요. 다르다는 것을 알 때 이게 이긴 겁니다. 심지어 그들은 죽어요. 짐승의 세력에 매어서 순교 당하고 죽습니다. 죽어도 그들은 안 죽어요. 요한계시록 12장, 그들은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는 것을 포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이란 것은 안 죽어야 생명이거든요. 안 죽어야 생명이잖아요. 그들은 이미 마귀가 그들을 죽이기 이전에 먼저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을 죽여 버렸어요. 그래서 이미 그들은 안 죽는 이유가 그들이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으니“ 죽었는데 누가 죽이느냐 하면 주님이 우리 성도를 죽여 버려요. 십자가에 ”너 죽어. 죽어.‘ 하고 죽여 버렸어요. 주님이 죽였으니까 마귀가 와서 새삼 그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니까. 이미 죽은 놈을 어떻게 또 죽입니까? 죽어버렸는데. 살았다 할 때 죽는다는 게 위협이 되고 겁이 나는데 이미 주님이 와서 죽은 자 만들어 버렸는데 죽음이라는 게 의미가 없잖아요?
전체를 봐야 돼요. 개인을 보지 말고, 개인에서 출발해서 전체를 보면 이건 절대로 마귀를 못 벗어나요. 다니엘이 본 것이 뭐냐 다니엘 개인의 운명을 본 게 아닙니다. ‘내가 몇 살 살다 죽지?’ 그걸 본 게 아니고 전체를 봤어요. 큰 체육관에 가서 지붕을 본 거예요. ‘내 의자는 가열에 몇 번인가?’ 이걸 본 게 아니고 거대한 돔 구장 체육관에 들어서면서 ‘내 번호는 몇 번이지?’ 이걸 찾는 게 아니고 착 보니까 뭐가 보여요? 거대한 지붕 구조가 다 보인 거예요. ‘나는 은혜 안에 들어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세상은 짐승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짐승의 나라 맘껏 짐승 하라 하세요. 왜, 우리는 이래도 안 죽고 저래도 안 죽는 이유가 이미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히브리인들이 출애굽 나올 때 그 사람들이 산 사람이라고 여겼잖아요? 어린양 때문에 살았다고 여겼잖아요. 사실은 어린양 때문에 산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어린양과 함께 죽었고 어린양이 살아서 하니까 어린양 가는 곳에 가니까 어린양이 가는 곳이 뭐냐 하면 예수님 계신 곳이거든요. 어린양과 예수님의 만남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어린양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사람이 돼 버린 거예요. 신기하죠? 정말 신기하죠. 이게 언약 계통의 어린양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된 거예요. 어린양이 가니까 간 것이지, 그들이 가는 곳에 어린양이 간 게 아니에요. 어린양이 가기 때문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지, 자기들의 길 어둡다고 길 밝힌다고 조명발 세워놓고 불기둥 세운 게 아닙니다. 조명만 있으면 뭐합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조명이 백 개가 있어도 갈 바를 알지 못한다면 어느 길을 갈지 모르잖아요.
어린양이 가기 때문에 가는데 어린양이 가는 곳은 물이 없는 곳이고 양식이 없는 곳이고 아말렉 원수가 기다리는 곳이고 장대 같은 사람들이 자기 땅이라고 버티고 있는 그곳에 어린양이 가니까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 힘으로는 못 들어가지만 어린양 가신다면 주의 사자가 저곳에 가라 하면 우리는 가뿐하게 갈 수 있습니다. 쳐들어갑시다.’ 했던 사람이 갈렙과 여호수아고, 딱 보고 난 뒤에 자력으로 들어가려 한 사람들은 울어버리죠. ‘어쩌려고 우리로 하여금 이곳에 왔는가. 공동묘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느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이해 못하는 것은 항상 아침에 눈만 뜨면 나, 사적인, 개인적인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까 오늘도 내가 복 받을 좌석 번호표만 찾고 있지, 이 거대한 체육관 질서, 지붕, 모든 게 하늘나라를 위해서 세상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자기 생각만 하다 보면 마귀가 와서 항상 우리에게 기죽이고 주눅 들게 만들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우리는 맨날 혼자서 울고불고 혼자서 노래하고 춤추고 혼자 외롭다고 술친구 찾고 …맨날 그런 거예요.
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 가 봅시다. 서로 싸웁니다. 여기 봅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그게 뭐냐 셀류쿠스입니다. 남방의 왕이 처음에는 전체를 잡았는데 그중에 북쪽 왕 셀류쿠스가 남방의 왕으로부터 독립해서 셀류쿠스가 북쪽의 시리아를 장악했어요. 그리고 둘이는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톨레미 2세)의 딸(베르니스)이 북방 왕(셀류쿠스)에게 나아가서 화친을 했는데 그 공주가 완전히 죽임을 당해요. 이용을 당합니다. 이용을 당하고 난 뒤에 왕은 서지도 못하고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가 데리고 온 자들도 모든 자들도 버림을 당합니다. 이게 톨레미 2세가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톨레미 1세 시대 때 예루살렘은 톨레미 1세 소속 됐을 때 오니아 사독 계열의 제사장만이 제사장으로 메시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 480 몇 년, 하여튼 그 당시에 느헤미야가 50년 후에 다시 왔다 했죠. 그래서 작은 메시야 나라를 구성하려고 메시야 나라 독립 국가 해보려고 애를 썼다 했죠? 그때부터 오직 다윗언약에 속했기 때문에 다윗 계열에 속한 제사장만이 진짜 제사장이라는 그 전통이 발생됐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톨레미 시대 때 예루살렘 시대에 이미 사독 계통의 제사장만 세운다 해서 오니아 가문이 거기 등장하는데 그때 톨레미 1세가 예루살렘 유대에 대해서 굉장히 자유를 주고 존중을 했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을 포로 잡아 와 놓고 포로 잡아온 유대인들이 이집트 북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있는데, 알렉산더를 기념해서 알렉산드리아라 한 거예요. 톨레미 1세가 알렉산더를 얼마나 존중했는지 알렉산더 시체가 자기 헬라로 가는 도중에 쳐들어가서 시체를 훔쳐서 시체를 모셔왔어요. 우리가 정통적인 알렉산더 계열을 잇는다. 이렇게 해서. 그 정도로 알렉산더를 존중했어요. 준중해주면서 도시 이름도 알렉산드리아라 지었습니다. 도서관도 짓고 했는데 그 학문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지으면서 4천명을 데려와서 유대인을 대우해서 유대인들이 거기서 많은 자유를 느끼고 유대의 모든 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한 업적이 뭐냐 하면 70명의 언어학자를 불러다가 각각 딴 방에다 구약 성경을 번역하게 했거든요. 다 따로 번역 했는데 나중에 70명이 번역한 것을 나중에 대조해 보니까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는 거예요. 그게 나온 것이 70인경입니다. 70인경은 히브리 아람어로 돼 있는 것을 헬라말로 고친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전체로 퍼져서 지금 예루살렘에 힘들게 살고 있는 그 유대 신앙을 하도록 도움을 줬죠.
그런데 여기에 그 오니아 가문의 조카 되는 요셉이라는 인간이 있는데 그 요셉이란 인간이 돈밖에 모르고 출세만 노리는 그런 인간이 있었어요. 그 인간이 톨레미에게 세금을 더 바치겠다, 해서 자기가 대장질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이 인간이 유대하고는 관계없이 아주 개판으로 사는 거예요. 헬라의 이방 풍습을 수입해서 엉망진창으로 된 거예요. 이 내용은 여기에 안 나오죠.
어쨌든 간에 톨레미 2세가 패배하고 7절에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서 하나(톨레미 3세)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북방(셀류쿠스 2세)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 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그 다음에 “그 아들들(셀류쿠스 3세)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남방(톨레미4세)는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BC217년)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붙인바 되리라 그(안티오쿠스 3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이 인간이 나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개판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 전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시몬이란 사람은 북쪽 셀류쿠스 가문에 속한 게 아니고 톨레미 보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체 모든 유대 예루살렘의 법을 유대교 법으로 다 바꾼 사람 이예요. 안식일도 다 지키고, 만약에 안식일을 안 지키면 다 죽여 버렸어요. 그 정도로 율법을 가르치고, 그야말로 메시야 나라, 이상적인 메시아 나라, 느헤미야가 추구하던 그 나라를 이 시몬이란 이 제사장이 그대로 다 실행에 옮겼는데 그렇게 했는데 그때는 톨레미 남쪽 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북쪽의 셀류쿠스(안디오쿠스 3세)가 와서 이걸 완전히 박살을 내놨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뭡니까? 짐승에게 속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역사 속의 예루살렘은 북쪽에서 내려오면서 힘들게 박살나고 또 북쪽에서 내려왔다 올라가면서 화난다고 또 싹쓸이하고 거기 맞추어서 예루살렘 내에 간신배들이 돈을 주고 지도자로서 섬기고, 결국 예루살렘 자체가 점점 더 무슨 나라로 바뀝니까? 짐승의 나라로 전체로 서서히 변해가는 거예요.
70이레 할 때 했죠? 7+62+1, 7이레가 성전 짓는 것이고, 62가 뭐라 했습니까? 지어진 성전이 이런 전쟁 통에 완전히 박살나고 완전히 웃음거리가 돼 버린 거예요. 짐승의 힘으로 지었던 그 성전이 짐승의 힘에 의해서 완전히 작살나면서 이제는 성전마저 짐승이 앞잡이가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그들이 짐승의 집약 체, 짐승의 실체가 뭔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아셔야 돼요. 짐승의 모습, 짐승의 얼굴, 짐승의 실체, 짐승의 진짜 본모습이 보고 싶습니까? 그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만나면서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요. 만약에 우리가 십자가에 관심 돌려버리면 이 세상 나라가 짐승의 나라인 것을 도저히 감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외롭고 뭘 생각합니까? 조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 연화 금메달 빼앗길 때 한국 사람치고 다 격분 안 한 사람 없죠. 다 격분했잖아요. 앞으로 월드컵이라든지 뭔가 할 때 또는 미국에서 프로야구 할 때 한국의 투수들이 던지고 치고 할 때 젊은 애들은 굉장히 뿌듯하잖아요. 여러분 일본하고 축구할 때 일본 이기라고 하는 한국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잖아요. 그럴 때 태극기 휘날릴 때 우리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 눈물이 짐승의 눈물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뭐라 하셨느냐 하면 “처나 자식이나 아비나 남편이나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신으로서 처나 자식이나 이걸 미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하지 못하죠. 오히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우리자신을 미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죄에서부터 자력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걸 분명히 하고 꾸준히 분명히 해주실 때 그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게 뭐냐 성령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는 차이가 뭐냐 하면 착한 게 아니고 다르다는 거예요. 성령이 없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이 긍정이 되지만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이따위밖에 안 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파악하는 겁니다.
내가 이 짐승의 나라에서 하루라도 살려고 애쓰는 자체가 짐승하고 맞장구치는 짓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며칠만 굶어도 난리 납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 굶었어요. 맞죠? 주께서 난리 났습니까? ‘40일 굶겨놓고 일은 시키고 아버지 이럴 거예요?’ 이랬습니까? 40일 굶는 게 일이었어요. 40일 굶겨놓고 그 다음에 ‘떡 먹을래? 주의 말씀 지킬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주님께서 구주되는 게 쉽게 막 먹은 게 아니에요. 고생 꾀나 하셨어요. 세상에 견딜 수 없는 고생들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웠으면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 했습니다. 그걸 마셨어요. 그리고 주님만 마신 게 아니고 제자들도 마시고 지금 우리들도 마시고 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나를 내가 미워해야만 된다는 사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지만 이게 미워져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언제 미워집니까? 자기가 원치 않는 죄를 지을 때, 우리는 한없이 밉고, 그리고 돈 몇 푼 때문에 치사하게 놀 때 ‘내가 정말 이렇게 치사했었나.’ 할 정도로, ‘내가 이렇게 치사한 놈이었었나.’ 그걸 절감할 때 어떻습니까? 죽고 싶죠. 딸 대학에 넣어놨는데 4년 장학금커녕 떨어졌을 때, 딸 붙들고 ‘너하고 나하고 같이 약 먹고 죽자.’라는 생각 안 들겠어요? 들죠.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으니 안 드는데, 만약에 귀하게 키운 딸이 엉뚱한 남자 데려올 때 머리채 쥐 뜯으면서 ‘고만 너 이 에미하고 죽자.’ 이렇게 나올 수 있죠.
실망스러울 때, 내가 실망스러울 때, 그게 주의 뜻입니다. 너도 짐승이었다는 거예요. 너도 짐승이었다. 그래서 지혜서에 보면 전도서에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게 말씀 지키는 것이 아니고 헛되다는 말씀이 나를 통해서 말씀이 그대로 실현될 때 우리가 걸어 다니는 계시가 됩니다. 내가 말씀 덩어리가 돼요. 앞에는 뭐가 붙어있고? 전도서 1장 1절이 있고. 나는 안개다. 나는 헛되다. 나는 하는 것 모든 것이 죄인 중에 괴수다. 나를 말씀 덩어리로 만드는 이 놀라운 작업, 이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야 성사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 척 보니까 예루살렘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오지도 않죠. 나중에 나와요. 계속 해봅시다. 13절 “북방 왕(안디오쿠스 3세)이 돌아가서…” 14절에 “스스로 높아져서” 스스로 높아진 거예요. 제가 아까 짐승의 나라의 특징이 뭐라 했습니까? 스스로 높아지는 거예요. 바벨론도 높아졌고 두로도 높아졌고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 예루살렘을 건드려서 약탈해 간 모든 나라, 암몬, 11장 41절을 미리 봅시다.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이게 뭐냐 안티오쿠스 4세 이야깁니다.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에돔과 모압과 암몬, 이게 이스라엘이라면 에돔과 모압과 암몬이 이 동네거든요. 그 위에 아람이 있고 이쪽에 블레셋이 있고 여기가 앗수르가 있고, 바벨론이 있고 이렇게 되거든요.
이 모든 나라가 셀류쿠스 가문에 있는 안티오쿠스 4세와 한패가 돼서 누구를 괴롭히느냐 하면 바로 예루살렘을 괴롭히는데 일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이라 하는 것은, 한번 정리하면 짐승의 나라는 원리가 뭐냐, 뭘 가졌다? 힘을 가졌고 힘은 그 사람들을 우쭐되게 만드는 그런 속성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게 교회든 그게 무슨 신의 공동체라고 우기든 그것은 짐승입니다. 짐승의 나라입니다. 심지어 우리 가정이든. ‘내가 힘 있다. 내가 잘났다.’ 해도 그게 우쭐 거리거든 그게 바로 지금 짐승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사도바울은 사단의 가시가 들어와서 뭐라 했습니까? “내가 약한 가운데 강함이라.” 나는 내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데 주께 기도하니까 주께서 “네게 족하다.”는 거예요. ‘아하, 그렇구나. 내가 약해져야 되는구나.’ 백두산 노래 부른 사람은 여자야 약해지지 말라 했는데 내가 약할 때 그게 내가 은혜가 보이고 비로소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 어떻게 강합니까? 내가 강할 때는 안 죽어야 된다는 게 같이 강해져요. 돈이 있을 때는 있는 돈 유지해야 된다는 같이 돈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내가 모든 게 없고 약할 때는 누구만 바라봅니까? ‘주여 내 영혼을 그냥 거두어 주옵소서.’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hwp (67.5K), Down: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