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0"9-16(배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행 10:9-16(배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이름 : 이근호(IP:)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2004년 7월 14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0:9-16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0: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하나님, 정말 생각만해도 너무나 광대하시기에 단지 두려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비를 내리는 이유를 모르듯이 우리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광대한 뜻을 알아 차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스스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사실 이 광할한 우주를 보면서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가능하기에 만약 확실한 하나님 뜻을 알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횡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횡재를 한 분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분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인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특별히 사도인 베드로에게 전달해 주니 오늘 우리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런 기회를 우리는 가볍게 여기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자기 멋대로 하나님의 뜻을 규정하면 안됩니다.
오직 사도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 뜻이 참으로 진실된 뜻으로 받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신기한 기적이나 꿈을 꿀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가 직접 받은 계시 앞에 모두 다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받은 하나님의 확실한 뜻이 무엇일까요?
어느날 베드로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 간에 하늘에 뭐가 내려옵니다. 허기진 베드로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환상이었습니다. "잡아 먹어라"는 명령과 함께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베드로는 얼른 먹을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주춤하면서 물러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 이 속에 우리가 무슨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거부성을 충분히 납득하면서 주어집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그 능력의 한계를 항상 고려해서 인간이 자기 상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거부하는 양상으로 제시된다는 말입니다. 이로서 구원받는데 있어 인간의 자기 계시 능력이 개입되지 되지 못하게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선 "잡아 먹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베드로가 거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이 베드로와 같은 관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먹어라 고 하신 사물이 하필이면 구약 율법에서 먹어서는 안 된다고 분류시킨 그 항목에 해당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육의 허기를 채우는 식으로 살아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째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걸까요? 이 점은 직접 우리가 그 해당되는 본문을 보면 누가 보아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레위기 11:2-8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부정하다'는 하나님의 선언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거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려고 애썼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방문하셔서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이 유일하게 찾아오셔서 함께 하신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생활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거룩과 더러움을 구분케 하므로서 자신들이 실제로 거룩한 백성되었음을 항시 깨닫게 하시고자 합니다.
즉 무엇을 행하게 되면 더러움이 되고 무엇을 행하게 되면 거룩함이 되느냐 하는 점을 평소의 생활화되도록 조치하시는 겁니다. 이로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는 이스라엘도 거룩하다"는 원칙을 고수하시려고 합니다.
만약에 인간의 힘으로 거룩하지도 않는 이방민족이 유대인처럼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 레위기에 나오는 말씀들을 준수하려고 한다면 짜증부터 날 것입니다. 음식도 함부로 먹지도 못하게 하고, 매사에 죽음의 흔적과는 멀리해야 하고, 문둥병이나 유출병이나 심지어 여인이 아기를 낳아도 더러워진다고 하니 그런 더러움을 일일이 다 피하면서 산다는 것이 매우 번거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민족인 이스라엘 당시자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그저 황공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살아계시고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실제 그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다 제쳐두고 유독 이스라엘만 사랑하셔서 이렇듯 귀한 율법들을 주시니 얼마나 자신들의 신분이 고귀하게 느껴지겠습니까!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고 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룩한 백성인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망쳐버릴 속된 음식을 먹어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대단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두 번째 명령하실 때 같이 나옵니다.
15절에 보면,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안에 있는 사물이 속되다 하는 것은 하나님도 아시고 어느 인간도 다 알고 있고 베드로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무엇을 모르는가 하면, '속된 것을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후속 조치입니다. 하나님의 그 다음 작용까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즉 베드로의 사명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나오는 조항들을 보다 많이 지켜서 점차 거룩한 사람이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속되고 속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도 깨끗하게 전환시키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증거하라고 사도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베드로에게 속됨과 거룩함을 새롭게 구분 짓게 하신다는 점을 감잡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참으로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으로 봐서는 여전히 거룩이 되지 못하고 더러움을 분류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고넬료가 개인적으로 나쁜 짓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밖에 존재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하나님은 언약으로 구원하시는데 그 언약 밖에 있는 누구라도 속된 존재일 따름입니다. 이러한 속됨에 대해서 하나님은 깨끗게 하시는 작업을 행사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2:11-16에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특히 15절에 나오는 '원수 된 것'에 유념해 봐야 합니다. 왜 이방인들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알려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 그 율법으로 인해 그들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원수 편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로 인하여 폐지시켜 버렸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느냐 하면, "오, 율법은 폐지되었다!"라는 외침이 담겨 있는 겁니다. 바로 이것을 베드로는 사도의 입장에서 고넬료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넬료는 비로소 자신이 구원이 되는 근거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확실한 조치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 안에서는 십일조도 폐지되었고 십계명도 폐지되었고 안식일도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라고는 십자가로 다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 뿐입니다. 용서와 자비뿐입니다.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거룩 뿐입니다.
이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가 여기 있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먼 먼저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확실한 이 구원의 계시를 가지십시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우리 행위로 거룩을 유지하려는 잘못된 노력을 버리게 하시고 속된 것을 거룩으로 돌리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