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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6강자유게시판[신학]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6강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6강

(강의:이근호 목사)

뱀 이야기, 마귀 이야기지요. 마귀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쌍으로 나와야 될 게 뭐냐 하면, 제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옥이 무엇인지와 더불어 천국이 나타나야 되는데 사람은 지옥은 치우고 나는 천국 가고 싶으니까 천국에 관심 있으니까 천국만 이야기해 달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장갑이나 양말을 한쪽만 사지 않듯이 짝을 이뤄요. 한쪽을 물리치면 설명이 안 되거든요. 악마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하나님이 구상한 하나님나라가 동반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 때 신성종 교수가 하나님나라를 가르쳤습니다. 그 교수가 하나님나라는 원어상 하나님 통치를 말한다. 그래서 제가 질문했어요. “교수님,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는데 하나님 통치를 거기다 집어넣으면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 되지요? 그러면 구약에는 통치 안 했습니까?” 왜 새삼스럽게 예수님이 와서 하나님나라고 그전에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냐 이 말이거든요. 교수가 답변을 못해요.

그러면 궁색하게 답변을 하면, 과거에는 하나님나라의 그림자였다. 모형이었다. [계약신학과 그리스도]라는 책에 보면, 그 사람도 하나님나라 중심으로 언약을 보는데 에덴동산은 천국의 모형이었다고 해요. 문제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에덴동산과 하나님의 통치라고 한다면, 지금 신약의 예수님의 통치방식과 모형이 되고 그리자 되려면 좀 비슷해야 되지 않습니까. 설계사무소에 아파트 모형과 실제 아파트와 닮았지요. 작게 축소한 거잖아요. 모든 형태가 비율상 닮은 거예요. 반대가 된 건 아니란 말이죠. 설계사무소 모형과 실제 아파트가 아래 위가 뒤집히고 바뀐 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너희들이 알고 있는 회개의 관념을 완전히 반대로 뒤집어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를 알라. 알기 싫어? 알기 싫으면 말고.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나라가 성립이 안 돼요. 하나님나라를 안다는 사람을 붙잡고 그들의 손에 주님이 살해를 당해야 돼요. 십자가 죽임을 당하면서 하나님나라가 이뤄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나라 문제가 인간이 있음으로 복잡해지는 거예요. 우리 인간 생각은 이래요. 우리가 무식해서 모르니까 그냥 내놓으시면 믿겠습니다.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데 그런 우리를 붙들고 하늘나라를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한 하늘나라와 정반대의 개념을 하나님은 하늘나라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십자가로 인한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지요. 장소와 시간이죠. 인간의 시간이니까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서 천국은 나중에 오게 된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할 때 그 가까이가 왜 그렇게 깁니까? 아직 재림 안 했으니까? 벌써 2000년이나 지났는데. 가까이 왔다는 뜻은 여기 왔다는 거예요. 가까이는 빼세요. 그냥 왔다가 정답이에요. 천국이 나타났느니라. 간단한 문제에요. 그래서 회개하라. 심판은 시작됐느니라. 세례 요한의 하나님나라는 심판과 동반해서 이뤄집니다. 심판 없는 하늘나라 없습니다. 심판하는 그 행위가 하늘나라 오심의 행위가 되는 거예요.

보통 옛날 양반집에 손님이 오게 되면 그냥 맞는 게 아니고 갑자기 하인들에게 마당 청소하라고 하지요. 손님 오기 때문에. 손님이 오기 때문에 마당에 있는 낙엽들과 종이들은 애매하게 아픔을 겪어야 됩니다. 평소에는 손님이 오지 않으면 그냥 곱게 낙엽이 떨어져 있는 것은 손님이 온다는 것 때문에 치워버려야 되겠지요. “회개하라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면 쓰레기와 오실 손님과는 매치가 안 되는 거예요. 낙엽과 쓰레기 역할을 누가 하느냐 하면, 세례 요한이 외치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이 왔지요. 오, 독사의 새끼들 잘 왔다. 누가 너희들 같은 인간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으라고 헛소문을 퍼뜨렸느냐? 너희들이 아브라함 자손이라면 돌멩이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놀라운 사실은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에 자기는 분명히 큰소리쳤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거예요. 유황불 떨어지고 타작마당이 돼야 되는데 잠잠하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 전갈 보내서 물었어요. “예수님이 진짜 오실 메시아 맞습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이 엉뚱한 소리를 해요.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 그러면 하늘나라가 눈에 보이려면 뭐가 전제로 깔려야 돼요? 그 당시 하늘나라 개념으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확정된 비리비리한 존재들, 절름발이, 소경, 저주받아 죽은 자들은 그 당시 유대인의 사고에 의하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저주를 받겠어요. 저주받아 지지리도 못난 인간들이에요. 그런 인간들이 하늘나라 이미 여기 왔음을 증거물로 활용될 줄이야 세례 요한조차도 몰랐어요.

그들은 복 받은 사람과 저주받은 사람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그들의 분류는 신명기 28장에 근거한 거예요. 잘 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만약에 못 되면 꼬리가 될지언정 머리가 안 되고. 그런데 주님이 하나님나라 이뤄짐을 보여주는 현상은 꼬리부분 속에 제일 비리비리한 어느 누구도 축복과 행운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거지 나사로 같은 존재를 활용하신 거예요.

만약에 소경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이 금식기도 몇 번했습니까? 없지요. 절름발이가 얼마나 연습해야 낫겠습니까? 없지요. 그러면 소경과 절름발이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문둥병은 순전히 하늘나라가 왔음을 보여주는 거죠. 하늘나라 왔음의 흔적이 바로 하늘나라를 기다렸던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예상 못한 방법으로 하늘나라가 온 거예요. 그러면 강의 처음에 하늘나라는 반드시 마귀의 나라, 사탄과 짝을 이룬다고 했지요. 그게 마태복음 12장 28절에 나와요. 하늘나라를 설명해줄게. 몰래 도둑이 담을 넘어와서 집주인을 꽁꽁 묶고 세간을 들고 나가면 그게 곧 하늘나라라고 했지요. 기억나십니까?

하늘나라를 빈터에 건물 짓듯이 만들면 되는데 왜 하늘나라의 작업이 묶는다는 것, 담 타넘고 온다는 것, 그리고 하늘나라에 포함되는 인간은 스스로 힘으로 주인에게서 탈출할 수 없습니까? 하늘나라 활동할 구성요소를 찾는데 왜 그런 자들이 필요하냐 이 말입니다. 그냥 빈터 하늘나라 왔다고 하면 끝날 문제를 왜 묶인다, 담 타넘고 온다, 잡혔는데 늑탈하듯이 가져간다는 부정적 단어가 동원되느냐 이 말입니다.

또 예를 들면,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놀고 있는 사람인데 갑자기 포도원 주인이 와서 아침 10시, 12시, 오후 3시, 그리고 퇴근시간이 6시인데 5시에도 일꾼을 불렀지요. 그 뒤의 말을 모른다고 칩시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설명하는데 포도원과 주인과 일꾼을 구성요소로 잡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다음 이야기를 메우라고 해보세요. 인간인 이상 이렇게 합니다. 열심히 일 한 사람은, 이스라엘은 포도원이니까 일꾼으로 부른 사람은 다 구원받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함께 같이 출근하지 않고 왜 10시, 12시, 3시, 5시 이렇게 떼어놓는가? 이것은 하늘나라에도 등급이 있고 계급이 있는데 먼저 와서 충성한 사람은 상급을 많이 받고 구원받는 것은 기본급이고 봉사한 것은 성과급이에요. 경영학에서 포드시스템으로 처음 도입한 것이 성과급이었습니다.

10시, 12시, 3시, 5시. 구원받았다고 까불지 말고 은혜에 부합되도록 충성을 해야지 했더니만 먼저 봉사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더라는 걸로 소설을 마감하고 싶지? 하고 예수님께서 묻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뒤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을 붙이니까. 그걸 바리새인에게 한 이야기거든요. 너희들 바리새인들 이야기는 다 안다.

그래놓고 주인이 품삯을 줄 때 제일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지요. 그 이유가 먼저 온 사람이 보라는 거예요. 일한 것도 남보다 많이 했으니까 많이 쳐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 품삯을 줄 때 제일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주는 순간 제일 먼저 온 사람은 그걸 보면서 뭘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까? 한 시간에 한 데나리온? 8데나리온을 기대한 거예요. 그런데 계속해서 1데나리온씩 주는 거예요. “설마 섭섭하지 않게 쳐주겠지.” 했지만 결국 한 데나리온을 줬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불평을 하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하지요. 천국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이게 뒤집기. 천국과 지옥은 같이 나타난다고 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입장은 생각 못하고 나는 얼른 천국 가고 싶다고 천국을 선택한다고. 천국을 선택한 순간 이게 뒤집어져요. 천국 선택한 놈은 지옥이 되고 지옥을 선택한 사람은 천국이 되는데 죄송하지만 지옥을 선택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저주받은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아버지는 새로 시작하자.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구원받을 만해서 받은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 새로 시작함이 기존에 천국을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을 도입해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님 천국이 된 사건의 반복이 돼버리면 장소와 시간과 관계없이 여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바로 이겁니다.

무슨 글자입니까? 우발성. 비슷한 말로 우연성이지요. 우연성의 반대는 필연성인데 필연성은 원인과 결과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발성과 우연성은 결과가 곧 원인이 되는 거예요. 원인 없는 결과가 되는 거예요. 이걸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 인생에 적용시켰습니다. 아기가 먼저 있을 것이라고 했고 행여나 사라가 회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까 싶어서 주께서 아예 원인을 잘라버리지요.

사라가 임신 못하게 할 목적으로 임신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전에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지요. 아브라함의 생식기능이 정지가 돼버려요. 완전히 절단이 돼버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온 자식은 기차노선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노선에서 절단됩니다. 할례의 의미가 아내의 임신을 통해서 구체화된 것이 불임여성이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아내도 불임여성이고, 이삭의 아내도 불임여성이고, 야곱의 아내도 불임여성이죠.

자식이 등장 될 때는 반드시 원인 없는 결과만 나오는 우연성과 우발성을 통해서 자식이 나오게 되면 그 언약은 역사 속에 고정돼있고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늘나라로 통하는 새로운 역사를 계속 반복적으로 똑같은 성질을 되풀이하게 돼있어요. 십자가 한 번으로 끝났습니까? 십자가는 계속해서 성령 안에서 반복되듯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언약은 반복적 기능을 하게 돼있어요. 그러려면 인간의 시간과 공간, 과거-현재-미래라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앞에 작살나야 돼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 집어넣으면 말이 안 돼요. 생각해봅시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됐지요. 그러면 나중 된 자가 누굽니까? 먼저 된 자지요. 제일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됐잖아요. 그러면 먼저 된 자가 현재 누구에요? 나중에 온 사람이지요. 그럼 누가 나중 된 사람입니까? 먼저 됐다고 까불다가 주님한테 혼나서 말석으로 내려간 사람이 나중 된 사람이지요. 나중 됐기 때문에 먼저 돼야지요. 이게 뭐예요?

둘이 붙들고 우리 중에 누가 먼저 되고, 나중 됐느냐? 주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된다고 했다. 그럼 나중 된 자를 내가 할게. 아니야. 내가 할게. 이런 식으로 싸움이 일어나요. 노림수가 먼저 되기 위한 원인으로써 자기가 나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천국 말씀은 원인이 없어야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게 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인간이 사라지다니? 아담의 이름이 흙이지요. 창조의 질서입니다. 인간이 사라지게 되면 원인도 사라져야 되지요. 원인이 사라지면 자기가 행위의 원인이 되어서 나온 결과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것은 하나님나라와 상관없는 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죽어가면서도 어떤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로 성장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인간을 죽이는 작업에 같이 동참해서 뛰어든 인간과 함께 역사를 일궈나가는 미지의 X, 그분의 원인으로써 구원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게 출애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걸 신학교 때 물어보질 못했어요. 교수들 짜증을 낼까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다릅니까?” 또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이 겸해서 나오거든요. 이게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에요. 시편,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줄줄이 나와요. 전부 다 입을 다물고 있어요. 성경 백독했다면 도대체 성경 어딜 봤어요? 사적지에 놀러가면서 볼 것만 봤어요? 정작 중요한 노선을 빠지고 성급하게 지 천국 가는 방법만 찾는 그런 노선으로 코스를 골라서 성경을 백독, 천독을 한 거예요. 성경 보는 내가 주체기 때문에. 주체는 내가 살아야 말이 되기 때문에. 남 천국 가고 난 지옥 가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고맙게도 한신대 김이곤 교수는 그걸 눈여겨봤어요. 저는 신학교 다니면서 그것 하나 때문에 김이곤 교수를 그때만 좋게 봤어요. [신의 약속은 파괴될 수 없다]는 그 책을 필독서에 집어넣었습니다. 꼭 보시라고. 남이 그냥 넘어간 것을 그 사람은 봤어요.

창세기 4장 26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여호와의 이름이 출애굽기에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고 물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면서 이름이라는 것을,

모세는 자기가 자아, 주체거든요. 내가 누구에게 물을 때 예를 들어서 “목사님, 교인수가 몇 명이에요?” 이렇게 묻는 전제가 뭐냐 하면, 나는 몇 명인데 저 사람은 몇 명일까? 항상 뭔가 질문을 할 때 그 질문이 그냥 나온 게 아니고 존재의 발산으로 나온 거예요. “하늘색 예쁘지?” 이 말은 뭔 뜻이에요? 내가 예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동감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 책에도 나옵니다만 사람이 누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그 사람한테 지시하는 것이라 했어요. 하라고 명령 안 해도 “오늘 날씨 좋지요?” 내가 좋다는데 동의해야 돼. 동의 안 하면 이야기 안할 거야. 이런 것이 들어있는 거예요.

김이곤 교수는 놀라운 것을 찾아냅니다. 여호와 이름을 불렀던 것은 그 힌트가 뭐냐?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신을 주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여호와 이름의 솜씨로써 지상에 구체화된다고 본 겁니다. 그러니까 김이곤 교수는 말하기를 가인이 아담의 아들 맞지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 노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죽은 아벨로부터 새로운 신을 주신 거예요. 아벨은 죽었으니까 씨가 없지요. 이것이 바로 로마서 4장에 이삭을 주면서 하나님은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데서 살린단 말이죠.

그것으로 창세기 1장을 설명해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제는 그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게 아니고 우리는, 천지만물은 신이 만들었다고 주체 자리에 우리가 와버렸지요. 그 다음부터는 누가 원인이 됩니까? 이왕 만들어놓은 것 하나님 잘해봅시다. 이미 원인이 나왔으니까. 만든 것을 자를 생각은 우리는 감히 상상 못하잖아요.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같이 많다고 했으면 아브라함의 몸, 원인제공자가 있잖아요. 이미 사라도 있지요. 거기서 새끼 까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그 약속 주면서 원인을 자르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고 거기서 나온 이삭은 미지의 X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누구 자녀는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은 아니에요.

그것을 베드로전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이미 구약의 선지자에게 예수의 영이 갔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신약 사도의 논리와 해석은 유대인들한테 맞아 죽었을 거예요. 왜? 역사적 해석법에 어긋나요. 우리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흘러가는데 사도의 해석은 시간의 역전이니까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서 과거로 오는 것처럼 보이지요. 사실은 현재의 영원한 반복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고.

엘리야에 시대에 죽으나 엘리야가 죽어도 천국이고, 그 전에 모세가 죽어도 천국이고, 오늘날 우리가 죽어도 천국인 이유는 하늘나라에서는 계급이나 선후배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남자, 여자도 따지지 않기 때문에. 남자, 여자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아담에게서 나왔지요. 그러나 하늘에 속한 형상은 예수님이 모델 되지요. 예수님의 존재의 모델이라 하면 틀린 겁니다. 예수님의 기능의 모델이지요. 예수님의 기능이 뭐했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했지요. 살아날 때 창 자국, 못 자국이라는 기능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 바로 창세전에 있었던 언약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한 반복이 되는 거예요.

우리 눈에는 모세는 과거 인물이고 우리 눈에는 아브라함이 옛날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만약에 천국 가보세요. 그 안에는 옛날이라는 게 없어요. 그리고 더 이상 남편, 아내 없어요. 바리새인들이 오해해서 꽃다발 들고 여자를 맞이했을 때 일곱 명 중에서 누구의 장미꽃을 받겠느냐? 예수님께 농담 삼아 시비 걸었잖아요. 예수님께서는 천사가 결혼하느냐? 너희는 살았다는 의미를 모른다. 네가 이 땅에 산 것은 산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현상의 일부지.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르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말은 마르다, 마리아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나사로 입장에서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마르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한 것으로 알고, “내가 믿나이다.” 하고 나섰어요. 예수님은 울었습니다. 믿을 것 같으면 오빠를 보여줄 필요가 없어요. 믿나이다가 안 믿는다는 이야기에요. 오빠를 보여줬습니다. 오빠가 살았나, 죽었나? 아직까지 여동생 둘은 이해를 못해요. 죽은 지 나흘 됐다고 다른 유대인이 이야기했지요.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했어요. 나사로는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이미 함께 있었어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말은, “죽음이란 건 묻지 마.”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 땅에서 뇌사상태에 빠지고 심장 멈추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지 주 안에는 잠자는 것이지 죽음이 없는데 왜 자꾸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으로 천국까지 집어넣는 반칙을 범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을 못하는 거예요.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이미 죽은 자에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 내가 사는 것은 아니고 주님이 내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미 그 말씀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육신 다음에 이미 죽어가는 현상이에요. 미끄럼틀 내려가고 있는 현상이에요. 미끄럼틀 하니까 얼마 전에 대전강의가 기억나는데

미끄럼틀 보면 뒷부분에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있잖아요. 계단으로 올라가서 미끄러져야 해요. 이게 노아언약이고, 이게 모세언약이고, 다윗언약이고 그 다음에 예수 십자가 언약이잖아요. 나머지는 뭡니까? 언약의 완성이니까 남는 것은 미끄러지기만 하면 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제는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기어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왜 기어 올라가요. 높은 데서 누리면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마지막 때에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걸 없는 걸 족한 줄 알라. 그 말씀을 누리면 돼요. 그 말씀에 해당되는 바다에 우리가 풍덩 빠진 거예요. 있는 걸 없는 걸 족한 줄 알라는 말씀을 우리 육신으로는 못 지키니까 구원받은 거예요. 못 지키니까 그리스도가 보이는 거예요. 그걸 지키면 그리스도가 안 보이지요. 내가 올라갈 수 있으면 계단의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 이뤘거든요. 하나님나라니까 시간을 초월해서. 그 다음부터는 성령을 통해서 바람 맞으면서 신나게 내려오면 되는 거예요. 이것도 못해요? 중력의 법칙인데. 가만있어보니까 이게 안 되는 모양이지?

내려가면 이게 죽는 자리에요. 늙어 죽은 자리, 치매 걸린 자리. 성경은 이걸 쉰다고 하지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휴가 안 가실랍니까? 안 쉴래요? 맨날 목회만 하고 고생만 하렵니까? 목회 안 되면 쉬면 돼요. 완전히 똥배짱이 됐어요. 한 번 물어봅시다. 군대 생활 계속 할 거예요? 제대하는 게 나아요? 군대 생활하는 게 좋아요? 쉬는 것도 못해요?

그게 왜 안 되느냐? 외부의 시스템 때문에 그래요. 주의 종이라는 꼬라지하고는. 보니까 주의 능력 하나도 없으면서 혼자 주의 종이라. 그럴까봐 내가 싫어. 그런 자괴감, 모멸감, 모욕, 그게 싫어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쓴잔? 나만 마시는 게 아니다. 세상 권세보다 누가 높으냐는 시합, 경쟁자거든요. 너는 내 잔을 마시라 해놓고 그 다음에 아마 마시게 될 거야.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게 돼있어. 너는 장기판에 졸이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길이 말로만 아니라 바로 푹 젖게 만드는 그런 육체로 다뤄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십자가 지기 위해서 재산을 교회에다 얼마나 내야 되고 얼마나 금식 기도해야 되는지 물으신다면, 그냥 사세요. 15만 평 땅 가지고, 아파트 세 채 가지고 그냥 사세요. 그것도 고난입니다. 괜히 고난을 흉내 내지 마세요. 집에 대형 티비가 세 대 있더라도 주께서 세 대 보면서 죽으라고 하는구나. 맨날 골프 치고 맨날 돈 따고 주여, 언제 쉽니까? 왜 저로 하여금 골프 치는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맨날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옷 사주고 때에 따라 차 바꿔주고. 제가 이런 고난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됩니까? 마치겠네. 가만있어도 한 주에 교인들 200명씩 등록하고. 그런 경우가 없어서 못 믿으시는데. 인기가 좋아 미치겠어, 정말. 이놈의 인기 언제 없어지려나.

반대로 가세요. 항상 내가 생각한 반대로. 주께로 아무렇지도 않는데 내가 나한테 벌 세워요. 손들어. 오늘도 기도 30분해야 되는데 20분밖에 안 했어. 내가 나한테 율법적이라. 내가 나한테 너무 가혹해. 로마서 8장에 어긋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너를 고소하리요. 이미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이제 뱀 이야기하겠습니다. 뱀이 틈새시장을 노려요. 뱀이 없는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뱀은 사탄의 나라지요. 왕인데 창세전에 이미 뱀이, 악마가 있어야 되고,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하늘나라 전쟁이 있었지요. 미가엘이 등장했고 그 전쟁의 후속편이 바로 지상의 선악과 사건이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단정 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요. 뱀과 천사, 뱀과 예수님 가운데서 뱀을 선택하지 않고 예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뱀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 해요.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북한의 기록영화 비슷한 순교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고문하는 거운데 나는 사탄을 보았다.” 누가? 자아가 보았지요. 육체가 본 게 아니에요. 육체가 보았다면 사탄을 보았다는 말을 안 해요. 나는 그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되는 거예요. 인간의 육체는 언약 안에서 다룰 때 육체가 되는 거예요. 언약 안은 에베소서에서는 예수 안이라 하고, 갈라디아서 6장에서는 내가 십자가 안에 있으니 내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밖에 없다고 했지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세상 보기에 나는 이미 죽은 자가 된다고 했지요. 그 십자가 장치를 목수 불러다 하려면 돈이 들어요. 십자가를 나무로 만들면 안 되고 투명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살아야 돼요.

제가 설교할 때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미국의 어떤 목사가 마가복음에 나오는 독을 마실지라도 죽지 아니하고 해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독사 세 마리와 같이 살았어요. 주의 말씀은 빈틈없이 확실하니까 제발 세상 따라가지 말고 주의 말씀대로 살아서 영생 얻으리라고 그렇게 시범조로 보여준 겁니다. 주의 말씀이 실제로 이뤄진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면서 확신케 하기 위해서. 목사가 물려 죽었어요. 죽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물려서 퉁퉁 부어올라서 911 전화해서 응급차가 오는데 목사 자존심이, 그동안 자기를 주시하는 교인들에 의해서 믿음 좋은 목사라고 칭송을 받았기 때문에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구급차를 돌려보냈어요. 한 시간 만에 죽었어요. 장렬한 죽음입니다. 일종의 소극적 자살입니다.

구급차 부르면 믿음이 떠납니까? 믿음 아닌 게 돼요? 남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그런데 복음 아는 목사라면 자아가 없잖아요. 자기 육신밖에 없잖아요. 자기 육신을 다루는 주체는 주님이 언약 안에서 자기를 다루잖아요. 그러면 죽은 인간들이 나 보고 뭐라 그래도 신경 쓸 필요 있어요, 없어요? 저 목사 믿음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 백날 퍼부으라고 하세요.

시므이가 다윗에게 저주했지요. 한칼에 베겠다고 하니까 다윗이 하는 말이,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그 저주가 복으로 변한다. 지금 내가 복 받으려고 하는데 니가 훼방할 일 있느냐.” 언약 안에서 저주가 와서 복이 와요. 그러니까 복으로 오는 것은 오히려 저주가 바뀌지요. 사람에게 높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 받는다고 누가복음 16장에 나오지요. 그 말이 왜 있겠어요?

그리심 산, 에발 산이 있어요. 언약궤는 하나입니다. 둘 중에 어느 산에 놓았을까요? 에발 산은 저주 산이고 그리심 산은 축복 산이에요. 언약궤는 두 개가 아니고 하나에요. 하나의 언약궤를 어느 산에 놓느냐 하는 거예요. 우리 같으면 축복 산에 놓겠는데 성경에서는 저주 산에 놓습니다. 왜 그러냐? 맞은편에서 축복이 오게 돼있어요. 정실부인 계통의 지파들은 축복을 외치게 돼있고 종의 계통의 지파들은 저주를 외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저주 산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저주 산에 언약궤, 하나님의 이름이 함께 있다는 것. 이것이 상당히 언약의 반복성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이 찾지 못하는 노선을 계속 발굴해내요. 앞장서서 땅굴파시는 분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여호와 이름입니다.

여호와 이름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는가? 창세기 3장 15절을 이루기 위해서. 3장 15절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이야기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제가 이야기했지요. 여자의 후손은 여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후손이 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후손 창세기 3장 15절을 본 사람이 수십 억 명이 넘어요. 보는 사람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전부 다 입을 근질근질해요. 목사님들한테 묻고 싶은데 답변 못할까봐 묻질 못했어요. “여자의 후손이 누굽니까?” 묻고 싶어요. 천주교에서는 이미 해답 나왔습니다. 마리아에요. 개신교에서도 나름대로 해답을 내놨어요. 마리아라고 하면 천주교 똘마니라고 욕할까 싶어서 다른 걸 내놨어요. 교회.

개신교는 참 편리해요. 교회를 둘로 나눴어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 유리한 대로 가는 거예요. 실체론적 교회론을 말하다가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무형교회로 가버려요. “여자의 후손에서 여자가 누굽니까?” 일단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럼 교회에서 사탄질하는 저 인간은 여자의 후손입니까?” “아니.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야. 교회는 무형교회가 있는 거야.”

그러면 집합론을 해봅시다. A라는 집합과 B라는 집합이 있어요. 여기는 C라는 부분이에요. 아니면 무형교회 속에 유형교회가 따로 있는 겁니까. 이건 뭐가 문제냐 하면 유형교회를 통과하지 않더라도 세례, 학습 안 받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 논리가 돼버려요. 이러면 또 안 되지요.

교도소에서 전도연이 아들 유괴해서 죽인 살인범과 만납니다. [밀양]이란 영화의 내용입니다. 전도연이 살인범이 누군지 모르고 복음을 전합니다. “당신도 예수 믿으면 죄를 용서 받습니다.” 복음 들은 사람이, “저는 사람을 죽였는데 이미 용서 받았습니다.” 그 순간 누가 삐졌습니까?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이런 예수라면 안 믿겠다고 발악을 해요. 그게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의 테마입니다. 종교가 인간에게 기껏 해주는 것이 타인에 의해서 의식된, 조성된 내 자아의 자존심과 명예를 정당화시키는 그 짓밖에 못하는 게 종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를 합치면 어떻게 되느냐? 합치면 나눈다는 의미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그려야 되겠어요? 유형교회에다 배꼽을 그려 점을 찍어놔요. 평면으로는 이런데 이걸 옆면으로 보면 부엌의 싱크대, 앞에 동그라미, 뒤에 뾰족한 게 있는데 구멍이 너무 좁아요. 이래 왔다가 차여서 요리로 갔는데 이게 진짜 구원받은 거다. 그래서 교회를 거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말이 맞잖아요. 교회를 거쳐서 교회 아니라고 하면서 모인 사람들이 진짜 성도가 되는 겁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바로 십자가 언약에서 하나 되는 겁니다. 설교 하다가 장로들한테 쫓겨나갈 때 이 목사는 싱크대 아래로 빠지는 거예요. 이상하다 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주님이 이 코스를 밟았거든요. 인간이 만든 하늘나라를 거부해서 왔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너는 귀신나라의 대장이라 했어요. 바알세블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도둑이야기를 한 겁니다. 하늘나라라는 것은 몰래 들어와서 임금을 묶어놓고 한 거예요. 그렇다면 창세기 3장 15절에 뱀의 등장은 결국 인간과 뱀은 한 통속이 될 경우에만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여자의 후손이 되신다는 그것을 미리 앞에서 담아낸 거예요.

여자의 후손에서 여자가 누구십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여자가 누구라고 지목하고 지적해주실 거예요. 그게 누구라고 묻는 것은 잠언이 되는데 왜냐하면 성경을 물을 때는 존재를 물으면 안 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고 물어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이 착하고 안 착하고 관계없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건이 일어나요. 그 사건을 본인이 말하기를 그것은 원인이 없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예수님 부르기 위해서 사전에 준비한 것 없이 “내가 왜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사도행전 16장 31절. “내가 간수인데 죄수를 놓치지? 선생이여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할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지진 사건을 그 간수가 일부러 일으켰습니까? 그냥 당했지요.

그래서 이번 시간의 결론은 뭐냐? 당해서 구원받는 거예요. 당해버렸어요. 이것은 아벨도 마찬가지고 사가랴도 마찬가지고 예레미야도 마찬가지고. 모든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그냥 어떤 사건이 파도가 밀려와서 당해버렸어요. 이걸 요한복음 3장에서는 뭐냐? 바람을 맞았다. 임의로 바람이 불되 바람을 내가 소유할 수는 없잖아요. 바람이 왔는데 빨래감을 날려버리고 옷을 휘날리게 만들고 잠간 거기 계시라고 했는데 바람은 그야말로 바람같이 스쳐지나가 버렸지요. 그러면 나는 바람한테 당하고 바람에 강간당한 사람이에요. 그걸 거듭남이라 합니다.

내가 성령을 삼위일체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삼위일체가 원인이라면 나는 그분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어디 가도 항상 내가 원인이라는 소리를 못하고 나는 하나님의 결과물입니다. 그걸 디모데후서에서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10분 쉬시고 오늘 강의 마지막 해봅시다.

첨부파일 :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6강.hwp (31.0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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