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66강, 67강) 자기것 챙기기, 절대 기준강의예레미야

유튜브(66강, 67강) 자기것 챙기기, 절대 기준

이름 : 이근호(IP:119.18.90.53)

66강

67강

이한례(IP:203.♡.42.222)

14-03-25 10:08

66강-YouTube강의(자기 것 챙기기)140320-이 근호 목사

66강 제목은 ‘자기 것 챙기기’ 입니다. 사람은 자기 것 챙긴다는 것을 그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든 우리의 살아가는 존재와 의미와 가치가 내 것 든든하면 이 세상에 아무 손해가 안 돼요. 내 것이 만약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그때는 난리 납니다. 신이 벌 줬다느니, 신에게 징계 됐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거예요. 왜 처음부터 네 것 챙기기부터 출발하느냐? 그걸 문제 삼는 거예요. 내 것 챙기기가 일상에서는 아무 문제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에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보는데 있어서는 이거보다 더 큰 장애라는 게 없습니다.

과연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내 것 챙기기 위해서 어떻게 질책하는지를 성경 한 대목 찾아보면서 제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5장 30절 31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라고 했거든요. 예레미야가 지금 이 말씀 하신 겁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 31절에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 “

자, 여기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는데 선지자들이 왜 거짓을 예언할까요?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는 이유는 선지자가 자기 것을 챙기기 때문에 ‘나는 예언하는 전문 직업을 통해서 결국은 내 것 한번 챙겨보자. 나만 살면 된다.’는 거예요. 내 것 챙기기에 아무 탈이 없으면 신은 나에게 축복하고 있는 중이고 내 것 챙기기에 차질이 일어나면 신은 나에게 저주하는 중이라고 보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신약의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 어떤 길을 갔는지를 염두에 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가 예레미야 선지자 이야기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기를 거짓 선지자는 거짓을 예언한다는 거예요. 이 거짓을 예언하는 이유가 그들이 자기 것을 포기하면서 쉽게 말해서 ‘그래, 내 한 몸 죽고 양들은 살아야지.’ 그런 마음에서 거짓을 예언할 수 있겠어요? ‘그래, 나는 지질이 궁상이고 못 살아도 돼. 하지만 내 희생으로 다른 사람은 다 살아야 돼.’ 그런 마음 때문에 거짓으로 예언할까요? 예레미야 당시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도 자기 전문 직업이기 때문에 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될 입장에서 어떻게 예언을 하면 나한테 내 것 챙기기가 늘어나고 내 것 챙기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가. 그걸 항상 염두에 두고 설교하게 마련입니다. 그와 똑같은 말이 뒤에 나와요.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무슨 권력으로?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 거예요. 자기 권력. 주님의 권위가 아니고 자기 권력이라니까요. 자기 것 챙기는 거예요. 감히 제사장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내 백성들은”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그걸 좋게 여긴다는 거예요. 좋게 여길 수밖에 없죠. 각각 자기 챙기는 것이 일상화 된 사회에서 오히려 자기 것 챙기지 않는 사람 있으면 그게 거북스러워요. 너무 희생적으로 사는 것이 자기 죄를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게 거북스럽다니까요. 각각 자기 욕심 챙기는 것이 오히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 있어서 과연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거는 자기 것 챙기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변조되는가? 예레미야 5장 12절에 그 말씀 나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벌써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가 계시냐. 안 계시냐를 측정하는 도구가 뭐냐 하면 현재 자기 것이 그냥 그대로 잘 유지되면, 자기는 지금 복 받고 있는 중이고, 자기 것의 손실이 주어지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는 걸로, 하나님이 화를 내는 걸로 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 없다.’를 일상적으로 평소에도 내 것 챙기는 중에 있기 때문에 내 것 챙기는 것에 대해서 그러한 변동 사항이나 변화나 차질, 그런 것 가지고 하나님의 계신지, 안 계신지를 측정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어디 남의 이야깁니까?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모습이 이미 예레미야 당시 그 사람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그전에 먼저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사야 54장 9절에 보면 노아 홍수 이야기가 언급돼 있는데 그 노아 홍수 이야기 들을 때 항상 이걸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노아 당시에 홍수가 나기 전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그냥 살았어요. 노아 홍수 임한다고 산위에 가서 노아 홍수 오는 걸 구경하고 관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들이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 일상이 뭐냐 하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니에요? 농사짓고 농사짓다가 쉬고 그런 모든 일들이 결국 어디로 모아지느냐? 자기 것 챙기기로 이게 결론지어지고 모아지는 거예요.

“신이시여, 내 것 홀라당 다 가져가시옵소서.” 절대로 그런 생각으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시집 간 내 딸래미 빨리 죽게 하시고 장가 간 내 아들 망하게 하옵소서.” 절대로 그런 식으로. “지금이라고 물 심판 나타나서 어제 장가 간 내 아들 물에 흠뻑 젖어서 죽게 하옵소서.” 그러든지 아니면 “내 아들 장가가더라도 장가 간 의미 없게 하옵소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전부 다 장가가도 내 자식 장가가고 내 자식 시집가도 내 자식 시집가는 거예요. 전부 다 내 것 챙기기입니다.

내 것 챙기기에 몰두하고 열중하다 보니까 노아 홍수라는 그것이 왜 있어야 하며 왜 이 멀쩡하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물 심판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들은 그들의 자기 것 챙기기 속에는 그런 노아의 소식이 스며들 여지가 전혀 없는 거예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이 노아 홍수 언급할 때 이 말씀 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 홍수 나서 너희들이 한꺼번에 멸망당한 걸 왜 잊어버렸느냐? 이렇게 나와요. 이사야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 팔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여기에 24시간 정신을 팔고 있으니 홍수가 난 그 연유나 이유를 자기 것 챙기기 속에서는 그 이유를 발견해 낼 재간이 없고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 내가 내 것 챙기며 살다 보니까 그래 나는 물 심판 받고 심판 받아 마땅하지.’라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성령 받은 사람에게만 그것도 가끔 솟구쳐 나오는 생각입니다. “주여 이래 산다는 자체가 마치 노아 홍수 직전에 사람들이 자기 것만 챙기면서 이게 정상이다. 이게 아주 정상적인 삶을 사는 거야.‘라고 안심 푹 놓을 때 그때 안일했던 삶과 동일한 삶입니다. ’주여 제가 이렇게 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께서 놀랍게 기적적으로 임해야 비로소 가능한 이야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했습니다. 이것은 노아 홍수 때 노아가 외친 소리를 그 당시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거와 동일합니다. 왜 그러냐?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것 챙기는데 24시간을 몽땅 다 거기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장 30절에서 그게 기괴하다고, 그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천상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이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끼리는 자기 것 챙기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고 그리고 같은 사람들끼리는 백성들도 그런 삶을 아주 좋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눈에는 그 허점이 발각 당했습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여러분, 선지자들이, 설교자들이 거짓 예언을 할 때 그걸 심각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자기 것 안 빼앗기면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죠. 하지만 그러한 일상적인 태도가 노아 홍수의 임박함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불 심판이 임박해 있습니다. 자기 것 챙기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내가 자기 것 챙기고 사는 것이 이게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임을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주님 희생 앞에서, 다시 한 번 늘 확인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한례(IP:203.♡.42.222)

14-03-25 10:10

67강-YouTube강의(절대기준)140320-이 근호 목사

제 67강 제목은 ‘절대기준’입니다. 절대기준이란 거, 상당히 학문의 세계에서는 아주 해서는 안 되는 도발적인 발언 이예요. 네가 뭔데 절대기준을 네가 주장하느냐? ‘혹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해야지, 절대기준입니다. 그러면 절대기준이 내일되면 또 바뀌고 네가 알았던 그전 사람들은 네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기준에 못 미쳐서 그들은 다 지옥 가고 너 혼자 구원받네? 이런 식으로 비난할 수 있는 그러한 위험한 발언처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이 ‘절대기준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도 생각해 보시고 저런 것도 생각해 보세요.’라고 사도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던가요?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셨던가요?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겸손하게 ‘저는 절대기준은 아니고 제 뜻은 이렇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게 서로서로 미덕이 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상태가 돼 버리면 자기가 남한테 독선이란 욕을 얻어먹더라도 절대기준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것이 사도의 권위고 사도의 권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지금 현장에 살아 계시다는 그런 증거가 되는 겁니다. 사도라고 해서 독선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사도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겸손의 티를 얼마든지 해낼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이거는 역사를 초월한 절대기준이고 이거는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이미 제시를 했습니다. 그것이 뭐냐,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이 말은 본인 자신이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라는 것에 몽땅 모든 걸 걸은 사람, ‘십자가가 절대기준 맞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은 마지막에 십자가만을 증거 하게 돼 있고 자랑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주저주저하면서 또는 머뭇머뭇하면서 십자가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필요하고, 이런 식으로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은 한 번도 십자가 영을 받아본 적도 없고 십자가를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지 그 사람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정도로 융통성이 있으며 이렇게 교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자기 겸손의 티를, 자기 의를 이루기 위해서 겸손을 가지고 긁어모은 그런 하나의 술책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절대기준이라는 것을 우리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에게 가능 하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가신 그 길에 이미 참여된 사람에게만 그것이 성립됩니다.

자,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수님 저기 가 계시고 자기는 따로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든지, 예수님을 흉내 내려 하는 사람한테는 여전히 따라가 봤자 그건 자기 길을 그냥 견제하고 유지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해버리면 자기 자리가 없고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만들어 준 예수님의 자기 노선에다 이미 합류가 돼 버린 사람입니다. 합류가 됐다면 더 이상 자기주장을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자기의 모든 주장은 죄악 되고 거짓됐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논리적인 모순이 있죠. 내가 하는 말이 절대기준이라 해놓고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하는 주장이라고 해도 이거는 절대기준에 평가를 받아야 되고 비판받아야 된다면 방금 제가 앞, 뒤가 안 맞는 모순되게 이야기를 한 셈이 되죠.

그런 이야기가 갈라디아서 1장 7절~8절에 보면 나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방금 읽었던 본문을 제가 잠시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그러나’는 그냥 두고요. 그 다음 말을 빼겠습니다. 진짜 성경에 나온 내용은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돼 있는데 제가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 차이가 어디 있죠? 뭔가 하나 빼버렸죠? 빼고 가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방금 “우리냐”를 빼고 안 빼고 차이점을 제가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라고 할지라도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지금 사도가 한 말 이예요. 지금 갈라디아서 1장 8절만 놓고 봐도 지금 단박에 모순된 말이 들어있죠? 앞에 “우리”하고 “그러나 우리나” 할 때 “우리”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우리”하고 이게 동일하다면 “우리”라는 말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어야 되고 차이가 난다면 뒤의 “우리”는 이거는 비판받을 “우리”가 돼 버리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또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런 겁니다. 지금 복음을 전한 나라 할지라도. 이건 이런 뜻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절대기준을 제시한다. 그런 뭐냐, 십자가다. 이 십자가가 절대기준이기 때문에 이건 몇 천 년이 흐르든 그 전 사람이든 구약 사람이든 창세기 있는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십자가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라고 내가 너희에게 전했는데 그런 나라고 할지라도 이 십자가외 다른 소리 하면 나는 저주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의 말로는 설명이 안 되죠. 설명이 안 되지만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자체로서는 말이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단번에 풀려요.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 구원이 우선이 아니고, 십자가가 우선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자가가 먼저고 그 다음에 십자가 증거 하라고 우리가 있는 것이지, 내가 먼저 있고 ‘참, 내가 구원받으려면, 내가 천국 가려면 내가 무슨 진리를 알아야 되고 무슨 절대기준을 알면 되지? 옳지, 십자가구나. 그래, 십자가 믿어야지.’ 이런 뜻으로 십자가가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우리 있기 전에 십자가가 먼저 있는 거예요. 구약 적으로 설명하게 되면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말씀이 먼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가 있다는 것을 먼저 해버리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하나님이여, 제가 구원받고 싶습니다. 자, 구원받고 싶은데 뭘 봐야 됩니까? 성경을 보고 그걸 실천에 옮기면 구원받는 겁니까?’라고 성경을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구원이 우선이고 성경 존재는 나보다는 뒤처진 두 번째 사항이 돼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종교가 돼 버리고 이건 하나의 정보 취득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십자가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분명히 홀로 지신 십자가지만 그 십자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설명을 가하기를 네가 이미 십자가 죽었던 그 죽게 만드는 그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진짜 찾아오게 되면 구원받으려는 나 자신의 여망이나 욕망도 일단 십자가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야 돼요. 쉽게 말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이것 자체가 죄가 돼야 됩니다. ‘주여 구원받고 싶습니다. 죽고 난 뒤에 천국 가고 싶습니다.’ 이런 발상이 바로 내가 미처 그동안 몰랐던 죄가 되는 겁니다. ‘내가 절에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교회 가서 말씀 다 들어서 구원받아야지.’라고 할 때부터 이미 죄 지은 상태에서 교회 오신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집에 가면? 집에 가도 죄 진 게 돼요. 사람 살아있다는 자체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반대하라고, 방해하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십자가에 대해서 좋게, 좋은 관계를 제시할 그런 자격과 권리가 없어요.

하지만 십자가가 먼저 있고 우리가 있으면 십자가는 그런 죄인인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걸 다 간파하고 계세요. 그래서 십자가는 뭐냐, 그런 못된 십자가를 믿지 않을, 십자가를 왜곡시키는 그런 죄마저 용서하는 용서의 능력이 십자가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십자가 영, 성령이 찾아온 사람에게만 그것이 구원의 혜택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구원의 혜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그건 십자가 지신 예수님 맘 대로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아버지가 자기를 구원해서 선택한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구원할 사람을 선택한다고 언급을 해놨거든요.

십자가 지신 분이기에, 그래서 우리보다 예수님이 먼저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먼저이기에, 그 다음에 십자가만을 증거 해야 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천국보내기 위해서 찾아오게 되면 사도바울 같은 그런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라 할지라도 절대기준인 이 십자가를 기준해서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미 사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라 할지라도 십자가 복음에 눈 돌리면 그것이 바로 다른데 눈 돌리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1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3,417 자유게시판 67강-YouTube강의(절대기준)140320-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4-03-25
13,416 자유게시판 66강-YouTube강의(자기 것 챙기기)140320-이 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4-03-25
13,415 자유게시판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b-이 근호 목사 다니엘 최고관리자 14-03-25
13,414 자유게시판 77강-롬 13장 8-10(율법의 완성)140323-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3-24
13,413 자유게시판 31강 슥12장 4-9(성전의 가치)140323-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3-24
13,412 우리교회 [일반] 영화 [노아 ] 평 아가서 최고관리자 14-03-24
13,411 묻고답하기 영화 [노아 ] 평 아가서 최고관리자 14-03-24
13,410 자유게시판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 다니엘 최고관리자 14-03-24
13,409 우리교회 성전의 가치 140323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3-23
13,408 우리교회 천사의 활동 140323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4-03-23
13,407 설교 율법의 완성(로마서 13:8-10)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3-23
13,406 우리교회 율법의 완성 140323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3-23
13,405 묻고답하기 시기 (時機 )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4-03-23
13,404 자유게시판 안양20140314b-히7장18절(멜기세덱과 율법)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4-03-22
13,403 강의 복음의 시작 140321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4-03-22
13,402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10강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4-03-21
13,401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9강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4-03-21
13,400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8강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4-03-21
13,399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7강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4-03-21
13,398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6강 [신학] 최고관리자 14-03-21
13,397 강의 한 때 두 때 반 때 140320 다니엘 최고관리자 14-03-21
열람 ➜ 강의 유튜브(66강, 67강) 자기것 챙기기, 절대 기준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4-03-21
13,395 자유게시판 82강-에스겔 30장 1절-3절(망하는 애굽)140319-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3-20
13,394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 강의 제19강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3-20
13,393 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강의 제18강 잠언 최고관리자 14-03-2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