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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403 연대연합 강의 제1강자유게시판-

201403 연대연합 강의 제1강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403 중국강의 제1강

(강의:이근호 목사)

[피]라는 책의 중요한 내용들을 보면서 핵심은 성경 전체 해석을 어떻게 일관되게 해석해야 되는가? 제가 강조하는 것은 일관되게. 어떤 특정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대목을 설교해도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 방법에 대해서 그동안 한국교회나 세계, 개신교 말고 천주교를 포함해서 교회사 말고 신학사라고 합니다.

신학사가 뭐냐 하면, 작년에 제가 대전에서 50시간을 강의했는데, 기독교 들어오고 이후부터 신학이 어떻게 발달했느냐는 정도가 아니고 그 전에 헬라의 탈레스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왜 그들을 거론해야 되느냐 하면, 이미 그들이 신에 대해서 언급을 했거든요. 그래서 단출하게 이야기해서 교회의 신학은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의 결합이다.

그러면 단출한 것만 외울 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란 말이죠. 그들도 지식인들은 성경을 알고 있거든요. 사도의 편지도 알고 있고. 구약성경은 옛날부터 신성시해서 알고 있고. 특히 유대교는 교육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백성이라는 것은 구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요. 인간이 만든 헌법이고 이런 것은 뒷전이고 중요한 것은 성경 법이란 말이죠.

그래서 유대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는 구약성경입니다. 그걸 통할해서 율법이라 하고 나누면 지혜와 율법 또는 더 보태면 선지서 등 나오지만 어쨌든 전체를 합해서 법, 그리고 전통적으로 법을 해석한 추가된 주석, 신앙 있는 선배들이 자기 나름대로 말씀을 연구해서 토를 달아놓고 거기에 대해서 해석을 가미한 그것도 일절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까지 합류해야 된다. 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유대교 신학자들의 특징이 이거 하나거든요. ‘역사성’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지식은 누적 될수록 진리에 접근한다. 이겁니다. 인간의 지식은 역사 흐르면 흐를수록 진리에 접근하게 돼있다고 그들은 믿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무엇인가는 시간이 흘러가면 인간의 지혜가 더 발달할 것이고 잘못된 것은 소거해버리고 진리에 부합된 엑기스만 모으는 겁니다.

모은 것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요. 물려주면 그 다음 차례의 신학자들이 더욱 더, 지식이란 언어지식을 포함해서 어법, 문법, 역사적 상황들을 고려해서 “이것은 우리 선배들이 오해했네. 그것은 이 시대와 안 맞아.” 지금보다 지식이 발달하지 못해서 오해한 부분은 제거하고 충실하게 진리에 가까운 것만 따로 모으고 추가해서 그들은 역사적 해석법을 구축해서 이것을 전승이란 이름으로서 가르쳤습니다.

이 전승에 대해서 시비 거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신학적인 작업을 거치고 난 뒤에 비로소 가타부타 이야기하라.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성경해석 틀렸다고 일방적 주장을 할 수 없고 이 말씀이 옳다는 것은 그저 이 시대에 사는 신학자들의 권위가 아니고 아브라함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권위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감히 아마추어가 프로한데 시비 걸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해석법은 일단 역사적 해석법이 구축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뭘 하느냐 하면, 양육, 훈육이고 교육입니다. 전반적인 교육이지요. 잠언서에 보면 어린아이들을 가르쳐야 되니까. 아비는 가정의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부모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계시전달 노선에서 이탈 돼요. 이것은 아버지의 권위 정도가 아니고 대대로 아버지에게 부여된 가정의 영혼을 책임져야 될 가정의 목회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일년에 세 차례씩 세미나에 가야 됩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제사장들이 있어서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하는 일은 방금 이야기한 역사적 권위가 어떻게 구축 돼왔는가? 그 신학역사를 공부하는 거예요. 지금 신학교에서는 신학역사 공부를 못해요. 왜냐하면 시간도 없고 급조해서 목회자를 양성해야 되기 때문에. 헬라철학부터 시작해서 터툴리안, 천주교 신학까지 섭렵해서, 개신교란 다른 게 아니거든요. 천주교에 반발해서 나왔잖아요. 반발했다면 반발한 정답만 쥐고 있으면 그 정답이 의미가 없어요. 어떻게 해서 반발했는지 그쪽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돼요.

그리고 1517년 루터만 개신교라고 하는데 그전에 천주교에 대해서 반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수많은 신비주의자들의 등장했고 많은 이단들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조치에 의해서 한 우산 속에 포용시킨 거예요. 정치적으로 안 되니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신학이 갈라지지 않습니까. 나중에는 서로 다른 삼위일체가 등장하고요.

그런 과정들을 놓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우리는 개신교라고 한 우산을 썼는데 그 개신교에 대한 반발의 요소가 이미 개신교 이전에 천주교에서 나온 반발의 요소를 반복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했다가 정치적으로 자기편이라고 한 그러한 정치적 조치를 개신교가 똑같이 하는 거예요. 안 맞는다고 했는데 갑자가 교세가 커지고 그 교회가 숫자가 많으니까 역시 하나님이 저렇게도 역사하네 하고 수용이 된다고. 순복음교회가 대표적인 경우잖아요. 교인이 수십 만 되니까 무시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의 교회는 진리다. 왜 진리가 한결 같지 않지요. 진리라고 해놓고 왜 양적 부흥에 쉽게 굴복하는지. 진리라고 했으면 끝까지 진리여야 되지, 무엇이 무섭고 무엇이 실용적이고 무엇이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겠어요? 안 되지요.

그래서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성경적 해석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까 이야기한 신학사, 신학에 관한 역사입니다. 여기에다 권위를 부여해요. 제가 방금 이야기했습니다. 신학 자체에 권위를 부여했지요. 그럼 물어봅시다. 신학 자체에 권위에 있습니까? 그 신학을 다루는 사람에게 권위가 있겠습니까? 전자는 분명히 신학 자체에 권위가 있겠지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도 만약에 자기가 옳다고 했는데 위반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권위를 박달하든지 존중할 필요가 없겠지요.

로마서 2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너희들이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너희가 왜 지키지 못하느냐?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단 말이지요. 사도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육신의 할례는 했는데 마음에 할례는 안 했다. 따라서 너희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다. 진짜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행해야 이스라엘이라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로마서 2장의 이 문제는 로마서 10장과 외형적으로 충돌해요.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 거냐? 아니면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 거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냐, 아니면 둘 다 해야 되느냐? 아니면 하나를 했으면 하나는 없어도 괜찮으냐는 새로운 문제가 부각이 된단 말이지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쉽게 이야기하지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면 성경에서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들은 안 해도 구원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마음에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 이름을 부르면 그것으로는 모자라고 플러스 마음속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의 완성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건 또 문제가 있어요. 육신의 할례 같으면 문신 같이 한 번 해놓으면 지워지지 않아요. 마음은 심리거든요. 심리는 시간의 흐름에 저촉을 받게 돼있어요. 오전 10시에 믿음이 있다고 여기다가 오후 2시에 갑자기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날 때 천사가 와서 마이크 대면서 “당신, 믿습니까?” 물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의 할례를 유지하려면 새벽 3시든, 오전 11시든 언제 들이대도 항상 마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해야 되느냐는 문제가 발생되겠지요. 누가 와서 약을 올려도 온유하고 약을 안 올려도 온유해야 되는데 마침 주께서 내가 짜증낼 때 재림해버리면 마음을 찍은 엑스레이 시커멓게 될 수도 있는 문제가 발생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로마서 10장에서 이야기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주의 이름을 얼마마다 불러야 합니까?

그러면 나중에 치매 걸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할머니,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몰라.” “할머니, 사도신경은?” “나 그런 것 다 잊었어.” “할머니, 찬송가?” “나훈아 노래 틀어줘. 찬송가는 질색이야.” 이럴 때 그 사람이 50년 섬겼던 권사라면 구원받겠어요? 이것이 목사님들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일반 신도들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신 있을 때 마일리지 바짝 쌓아야 되겠어요? “정신없을 때는 내가 정신 있을 때 고백 많이 했으니까 그걸로 때웁시다.” 이렇게 거래, 흥정에 나서야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유대교는 아주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습니다. 권위가 역사적이에요. 역사가 진리입니다. 역사가 계시에요. 논리적으로 이렇게 돼요. 그들에게 구약성경이 있잖아요. 백이면 백 해석이 다 달라요. 다 다르니까 권위가 없어서 역사에서 믿음이 정말 좋은 출중한 사람의 깨끗한 이성과 깨끗한 오성, 그리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깊이 평생을 성경을 연구해서 얻어낸 놀라운 신앙적인 경건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누가 봐도 감동할만한 희생적이고 봉사적인 은사처럼 보이는 해석을 끄집어내요. 거기다 역사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이 문제가 뭐냐? 옛날에 유명했던 랍비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다시피 성경을 해석했던 놀라운 지혜거든요. 문제는 그걸 가르치는 사람, 본인은 금식을 별로 안 했단 말이지요. 금식도 안 한 상태에서 금식한 사람들의 놀라운 지혜를 속마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에요.

이걸 일반인들이 의심하는 거예요. 쉽게 이야기해서 한경직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이 훌륭했다. 교인들이 너는? 그분들은 모든 것을 초월해서 살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정치적이고 돈 좋아하고 그러느냐. 목사들이 그걸 대비한 멘트들, 여러 버전이 있어요. 교황도 마찬가지고. 나에게 주신 것은 나의 개인적인 권위가 아니고 주께 주신 권위입니다. 이게 천주교 주교와 교황의 멘트에요.

혹시 교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거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나의 권위는 나의 개인적인 성실도와 신앙도에서 나온 권위가 아니고 주께서 주신 권위입니다. 그걸 성령으로 기름 부은 권위라고 하는 거예요.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지도 않은 사찰이 성만찬 만지고 떼고 하면 안 되고, 천주교 같으면 평신도가 복장 갖추고 향 뿌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적어도 인간 속은 더럽지만 깨끗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졌기에 할 수밖에 없는 권위라고 해서 테두리를 쳐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누가 지적질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하지 감히 네가 지적질하고 그래. 주의 종은 주께서 다루시고, 너는 섬기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1517년 루터가 외쳤던 만인제사장 이론은 어떻게 됩니까? 그거는 그런 뜻이 아니고. 아마추어가 프로의 깊이도 모르면서 들은풍월로 아는 척해. 루터가 그런 이야기했지만 천주교를 의식한 것이고 그 뒤에 갈빈 대에 들어가면 분명히 만인제사장이라 했고 성령 받은 사람은 모두 성도라고 했지만 교회 내에 딱 계급이 져버리지요. 3대 계급으로 정해버렸어요.

설교하는 권위는 신이 주신 권위인데 함부로 나대지 마라. 성만찬도 마찬가지고. 특히 성만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리권. 그것이 만약에 구비되지 않으면 교회의 고상한, 거룩한 질서 자체가 무너진다. 그렇게 해서 목사와 장로직이 있는 것은 구약 때부터 내려오는 장로라는 특별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에 의거한 합당한 권위 있는 질서가 된다고 칼빈은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당신이 정말 교회에서 뭔가 일이 있으면 당신도 우리가 받은 교육 받고 특히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서 하라고 나오지요.

현대에 칸트 이후에 리츨, 신학사에 보면, 개신교가 시작한지 미처 100년도 안 되서 개신교 스콜라 신학이 됩니다. 스콜라 신학이란 학자적인, 이론적인 것으로 개신교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풍토를 말하는 거예요. 마치 천주교가 생기를 잃어버리고 교리가 이론으로 치우친 것처럼 개신교도 안착이 되면서, 개신교가 안착된 것은 국가 권력과 함께 한 거예요. 네덜란드 같은 경우 개신교 국가거든요. 루터가 개신교로 성공한 것은 국가가 영주가 보호해서 그래요. 그전에 루터 이상으로 외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다 실패했어요. 동조자가 없었고 특히 경제적인 후원자가 없었습니다. 루터는 타이밍이 맞아서 성공한 거고.

루터 성공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 칼빈입니다. 프랑스 사람인데 스위스로 도망가서 했고, 스위스는 정치적 독립을 바라면서 종교를 이용한 거예요. 나중에 칼빈 죽고 난 뒤에 스위스는 중립적인, 어정쩡한 위치에 처하지만. 그 당시 교회 역사를 보면 종교는 교회를 이용했고 교회는 종교를 이용한 겁니다. 왜냐하면 유럽의 국가개념은 19세기 들어오면서고. 그 당시에는 영주 개념이 있었어요. 영주 개념은 땅에서 나는 생산물을 다 차지하겠다는 경제적인 욕구가 우선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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