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활동과 하나님의 뜻
문화활동과 하나님의 뜻
이름 : 장세원(IP:96.21.128.176)
어쩌다가 십자가마을을 알게되어 요즘 이목사님의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갈2:20 등에 근거하여 목사님의 논조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의 오래된 질문은, 인간의 문화활동에 대한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문화론에 대해 짧게 논하신 글을 읽어 봤는데, 좀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나 글, 강의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기타 어떤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런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는 IT 비즈니스계열에 있고요, 주로 세계관운동적인 측면에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동조하진 않고 여전히 탐구적,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창1:28에 근거한 문화명령, 그리고 계시록 등에 근거한 문화활동의 연속성(가령, 천국에서도 바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새하늘새땅에서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문화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등에 대한 의문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관점은, 지금까지 제 판단으로는, 완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아래 제 질문입니다.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드리는 질문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경(하나님)으로부터"라는 관점을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숙제를 잔뜩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한데, 조금이나마 힌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에덴에서의 타락이 없었다면, 현재의 문명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무엇은 같을 것이고 무엇은 달라졌을까? 타락이 문화에 관련한 하나님의 뜻에 변형을 일어켰는가? 즉, 창1:28은 그대로 유효한가? 애초에 하나님의 문화에 대한 뜻은 무엇이었을까?
2. 타락 이후에 문화활동이 하나님께 의미가 있는가?
특히, 고도화(전문/분업화)되어가고 있는 현대기술문명의 발전이 하나님께 무슨 티끌만큼이나마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는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일단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문화활동의 세세한 부분들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때론 개입(가령, 지혜를 주시는 쪽)하시는가? (구약에, 노아의 방주, 성막과 성전 설계에 대한 하나님의 세세한 가르치심... 등은 일반적인 문화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의미/뜻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하나요?) 아니면, 이 땅위의 문명 자체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관련없는 반역한 인간의 자체 배설물로만 여겨야 하는지요? 성경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요?
3. 주님의 재림이후, 이러한 문화적 요소의 연속/불연속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어떤 이들은 천국의 사람들이 이생에서의 사람들과 문화를 안다는 측면에서 연속적인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이땅에서의 문화활동은 의미가 있고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몰고가곤 합니다.
4. 실생활에서, 우리가, 특히 신자가 문화활동을 "열심내어"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근거가 성경에서 찾아지는가?
특히, 한국의 기업문화를 보시면, 회사들은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헌신"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서 "필" 받은 성도들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곤 합니다 - 하고 있는 일 "내용 자체"에선 의미를 찾진 못한 채로 - 가령, 목사님께서도 쓰시는지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을 인간이 개발했어야 했을런지,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가는데 우리의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는것이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어서 하는 것인지, 이웃사랑/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뜻, 그냥 생계를 위해 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인지. 이미 맹렬한 속도로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 틀 속에서 문화에 대한 욕심/본능, 회사에의 충성에 대한 댓가,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 그 속에 기독교적인 이상과의 갈등...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 아마 많은 교인들로부터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5. 아니면, 이런 생각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자체를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불손한 생각인가? 이 일은 그냥 내가 하는 일일 뿐이고 하나님은 전혀 무관심하신 것인가? 요즘 야고보서 4:13-17을 상고해 보고 있는데, 일 자체를 주님께로 가져가는 시도 vs. 주님의로부터 나오는 뜻 사이에서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근호(IP:119.♡.90.53)
14-02-26 22:39
1번 답
에덴에서의 타락이 없었다면, 현재의 문명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무엇은 같을 것이고 무엇은 달라졌을까? 타락이 문화에 관련한 하나님의 뜻에 변형을 일어켰는가? 즉, 창1:28은 그대로 유효한가? 애초에 하나님의 문화에 대한 뜻은 무엇이었을까?
타락이란 개념에 시간 요소가 가미되면 ‘타락’이란 ‘타락 안 된 상태’와 짝을 이루는 개념이 될 수 없습니다. 일단 타락된 시점에서는 ‘타락 안된 상태’라고 생각한 모든 것도 ‘타락의 증거’ 중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사흘을 굶고 난 사람보고, “짜장면이 맛있겠니 짬뽕이 맛있겠니?”라는 묻는 물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 맛있겠지요. 마찬가지로 타락이 아닌 상태를 아무리 상상해봤자 그 상상한 세상마저 타락의 능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태가 됩니다.
창세기 1:28은 사람이 완성하는 바가 아니라 예수님이 완성하실 내용입니다. 곧 천국상태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창세기 1:28 말씀을 가지고 자기 문화 활동 정당성을 추구하는 식으로 죄를 짓는 근거로 작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문화’라는 것은 악마에 의해서 등장되는 용어입니다.
2,3,4 번 답
인간의 모든 문화적 활동은 하나님을 더욱 더 욕되게 하는 요소로서 번져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부지런히 악마의 사주를 받아가면서 문화활동에 거룩하고 경건한 의미를 퍼부으면서 의미를 두는 식으로 활동을 해야만 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곧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까발릴 수 있는 증거물이 됩니다. IT 산업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 경제, 사회 활동마저도 십자가 복음을 깔보고 무시하는 인간 나름대로의 지혜 덩어리로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로마 군인은 말합니다. “우리들 중 누가 너희 뺨을 때리는지 알아 맞추어보라” (눅 22:64) 군인들의 이런 주장 배후에는 그들이 자랑하고 싶은 문명, 즉 수학과 기술과 행정적이고 법적인 제도와 체제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과 성전의 모든 거룩한 시설물과 기구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심판의 불에 다 타버리게 됩니다. 물론 오늘날의 예배당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버틸만한 물건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지구 자체가 불에 녹아지는 형편입니다.(벧후 3장)
5 번 답.
세상은 자신의 그 악마적 속성을 숨기지 못하고 성령이 하시는 일과 차별되는 일을 벌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힘’입니다.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적 본성으로 인해 자꾸만 힘을 자기 쪽으로 집결시키는 식으로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이 세상에서 약하게 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금식 가운데서 악마의 실체를 접하도록 성령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힘과 사명자로서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적과 더불어 주어지는 인기의 힘과 최고가 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는 유혹을 악마로부터 받았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 유혹의 힘에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계에서 말하는 ‘문화활동’이 바로 이런 악마의 제안서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힘이 곧 하나님이 기적이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달리 말합니다. ‘십자가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유일한 구원의 능력이다’고 말입니다.
장세원(IP:96.♡.128.176)
14-02-27 21:44
답변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선 거의 공감하며, 조금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인간문명이 초래해온 결과론적 차원에서 주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고, 동감합니다. 이와 함께, 문화활동 그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알고 싶습니다. 이미 성경은, 인간자체가 죄인이며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죄일 뿐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답이 되는 것인가요? 성령을 받은 자의 생각이나 삶에서 나오는,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것은 제외되는 것일까요?
2. 결국, 제 질문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새하늘/새땅으로 연속되는 것이 있을 것인가..로 귀납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사라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즉, 자동차는 불에 타 없어지겠지만 자동차를 설계하는 지식은 남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런지요.
가령, 새하늘과 새땅에 관련된 구절들을 다시 살펴보았는데 (전후 맥락은 읽어보았고 해당 구절만 따옴을 이해 바람) 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사65장에서 기억되지 않는 부분도 물질적인 이전 창조쪽으로 볼 수 있고요.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이와 더불어, 성경이 신자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과 상급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을 보면, 인간이 행한 모든 활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은데 (고전), 이것은 단지 선행이나 믿음 등과 같은 영적인/신앙적인 부분에 국한한다고 보아야 하는 건지 의문이 남습니다. 가령, 수학자/과학자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연구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깊이를 알고 찬양을 드리는 행위는 (마치 시편 기자처럼) 이와 상관없는 것일런지요. 벧후3장에서도 옛것이 모두 불에 타버리지만,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고 하신 것으로 보아선, 무엇인가는 없어지지만 무엇인가는 기억되고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단지 심판을 위한 목적일 뿐이고 그 이후에는 또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새창조의 세계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근호(IP:119.♡.90.53)
14-02-27 22:56
기억이란 시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소용돌이 물결 같은 겁니다. 지상의 기억이 천국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천국은 예수님의 솜씨로 꽉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나이테로 채워지듯이 전에는 '나의 솜씨'로 충만했던 나의 기억이 천국에서는 모두 예수님의 솜씨로 제 모습을 구현됩니다. 그것은 성도는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모형은 모든 것을 실체의 몫으로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