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2: 1-12 (동방 박사와 헤롯)
Re..마 2: 1-12 (동방 박사와 헤롯)
이름 : 이근호(IP:)
동방박사와 헤롯
2002년 9월 15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1-12
2: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말하되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2: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2: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2: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2: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마 2: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위험한 사태가 다가오고 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서는 안되는 길이 분명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방박사들보고 헤롯을 만나지 않도록 조치하십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사태가 그쪽에서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동방박사를 망치게 할 수 있는 어떤 나쁜 세력이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잘 안 믿으려고 합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친하게 지내고 평화롭게 지내면 그만 아니냐 하는 식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도 하나님 보시기에 헤롯으로 대변되는 악의 세력이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보고 '헤롯을 만나지 말라'는 말씀은 헤롯이 대표로 보여주는 세계가 곧 이 세상의 실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는 이 세상에 외부에서 갑자기 출몰해 들어오게 된 사람들입니다. 조용한 이 세계에 갑자기 대립되는 두 세계가 서로의 실체를 보이면서 충돌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을 볼 때, 평화로움을 가지고 측정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조용하면 좋은 세상이요 어떻게든 다투고 대결하게 되면 나쁜 세상이라고 간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평화로움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좀 힘들어도 "내 하나만 조용하면 다 편안하지"하는 식으로 현실에 순응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세상에서 자기 몸을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것을 소망으로 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처럼 동방박사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예루살렘 전체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맙니다. 과연 이러한 번잡함을 동방박사들이 은근히 기대했을까요 아니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겁니까?
동방박사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누구냐?"하는 것 뿐입니다. 동방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조용스럽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동방박사는 떠밀려 왔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떠밀어 내었습니까? 그들은 남의 동네 사람들입니다. 이쪽 유대땅에 살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유대 땅에 나타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언된 별 때문에 그러합니다.
사람이란 혼자서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습니까? 공부를 해봤자 그 분량이 얼마이며 경험을 해봤자 그 경우가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세계를 온전히 알아서 그래서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잘 처신시켜 자기를 구원할 수 있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헛점을 미쳐 알아채지 못해서 자신의 전 인생을 망쳐버릴 수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나름대로 자기만의 세상을 잘 갖추었다고 자부해도 헤롯의 막강한 힘에 의해서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이나 자연 재난에 의해서 소중한 재산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건강까지 잃어버리고 가족마저 해체될 가능성은 항상 다분히 존재합니다. 늘 아슬아슬한 가운데 세상사람들의 눈치 코치를 보면서 겨우 겨우 살아가는 신세라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고 이런 상태를 '구원받았음' 혹은 '행복함'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도대체 동방박사들을 이끌고 온 것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예언하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인도해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외부의 힘은 오로지 예언한 바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별의 등장이 곧 예언은 결코 무산되지 않음을 보이는 증표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별의 출현을 어떤 예언과 결부시켰는가요?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과 별을 서로 연관시킨 예언에 염두를 두었습니다. 그것이 민수기 24:17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야곱, 즉 이스라엘 민족에서 나오는 왕을 별로 표현해서 예언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23:20-21에 보면, 이 왕은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용서하시는 그런 하나님으로서의 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유대나라의 왕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과연 누가 이 왕을 당할 것입니까. 어느 민족이 그분 앞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만약 과연 이 예언된대로 유대 땅에 이 왕이 태어나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비록 유대나라 사람도 아니지만 온 우주의 왕이 되시는 분 앞에 나와가 미리 경배해서 용서를 구하려는 겁니다.
유대나라의 전설은 어디까지 그 나라에게만 관심있는 전설이 아닙니까? 동방박사들은 놀랍게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유대나라의 이야기는 실제적으로 온 우주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겸손입니까.
남의 나라 예언을 참된 예언으로 받아들이고, 남의 나라 왕을 진정한 우주의 왕이요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그 겸손함 말입니다. 더군다는 이 동방박사에게 신기한 별이 나타나니 그 별과 민수기의 별을 바로 결부시킬 줄도 알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언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언이 앞서 있어야 합니다. 별처럼 인도해 줄 예언 말입니다. 이 별의 예언을 베드로후서 1:18-20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즉 우리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예언이 떠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에 인도를 받아야 성도라는 겁니다. 이 말씀은 곧 자신이 자신을 인도할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를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곧바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동안 잘 인도하던 별이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내려놓고서는 잠시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할 수 없이 예루살렘의 권세자들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었고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서 통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시야로 태어날 장소가 어디냐? 그의 별을 보고 따라 왔다" 겁니다. 이로서 헤롯 세계에서 좋든 싫든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서 동방박사에게 뭔가 답변을 해야했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답변은 무엇입니까? 바로 미가 5:2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여기서 동방박사는 이 예언의 말씀을 곧바로 듣고 베들레헴 쪽으로 행선지를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잠시 보이지 않던 인도하는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에 머물렸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에서 그 정보를 얻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는 악의 세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계를 악한 것으로 폭로시키면서 진행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즉 아기 예수의 의미가 단순히 예수님을 만나서 믿는 자만 구원하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 세계에서의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주는 메시야로서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겁니다.
평소에 아무리 예언과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에 푹 젖어 산다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아기 예수와 무관하고 그 대신 그 성경 지식과 신학이 얼마든지 세상 권세와 결탁될 수가 있는 겁니다. '예언의 세력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를 아무리 들먹이고 찾아도 그 하나님이나 예수로서 자기의 세력을 곤고히 한다든지 확장한다든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데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곧 이 세상에 상주하는 악마의 얼굴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언을 가지고 '자기 세계'를 설립하고자 하는 것을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바로 교회라는 데서 벌어지는 일이요 기독교 이념을 걸고 설립되는 회사나, 자선 사업소나 학교나 국가나 병원 같은 데일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마주치게 될 진정한 위험은 이런 데서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은 단순무식하게도 오로지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 가지고 사업할 사람도 아니요 개척교회할 분들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예언하신 말씀대로 놀랍게 성취되었음에 놀라고 감사하고 그 오신 분에게 경배하려는 분입니다.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결코 신학지식으로 자기 만의 세계를 가지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의 의의는 이처럼 악한 환경 안에서 그분이 태어난다는데 있습니다. 이 악한 환경을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들에게 경험시키고 깨우치게하려고 일부러 예루살렘에서 별이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란 악은 악으로 드러내게 하고 예언대로 오실 분은 그 악으로 인해 위태로운 처지에서 놓여 있음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도 예언의 힘에 의해 인도받는다면 이제부터 무엇이 악인지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자... 오늘날 예루살렘, 별이 사라진 그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 마음 속입니다. 그 안에는 자아만이 절대자요 신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든 예수든 무엇이든 다 절대적 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나 자신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작용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악마와 함께 있는 자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절대적 신으로 신봉하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본능이 되다보니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된 마음인 줄 조차 모릅니다. 그저 온갖 말씀과 교훈을 통해서 자아의 절대적 신임을 합리화하고 고수하는데 진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별이 떠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기 예수로 인도하는 별이 우리 마음에 뜨게 되면 비로소 우리 자신이 악마의 하수인 노릇 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유없이 단지 살아 남아야 성공한 인생이라는 본능에 따라 그동안 살아온 겁니다.
별 따라 산 것도 아니요 예수님 바라보면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나는 살고 싶다. 죽기 싫다. 실패했다는 소리 듣기 싫다"는 악마의 강력한 요구에 편승해서 한 패가 되어 살아온 겁니다. 여러분 우리 동방박사들처럼 단순 무식합시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우리네 인생을 마감합시다. 그리고 우리 내부의 헤롯과 만나지 맙시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들이 구원받는 것에만 관심두지 말고 예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식으로 수모를 당하고 있는지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