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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4 대구강의 2] - [피 109] - 통보강의[피]

[14 대구강의 2] - [피 109] - 통보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4 대구강의 2] - [피 109] - 통보

14,01,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순교의 즐거움 !!

오늘은 교재 313페이지의 '순교의 즐거움' 이라는 부분을 하겠는데, 이제 거의 끝 부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두 장만 더하면 '마침내' 라고 해서 마치게되는데, 물론 이것만 가지고도 몇 달은 더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먼저 요한일서 2장 15절을 보자.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 세상을 사랑하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성경이 우리 인간에게 해로운 것인가? 아니면 이로운 것인가? "차라리 우리가 성경을 몰랐다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교회근처에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새벽기도회의 종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경자체가 우리 인간에게 무척 해로운데, 특히 요한일서 2장 15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것은 것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이것을 구약적으로 표현하면 "애굽에서 나오너라" 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애굽이 특정 지역을 의미하지만, 신약에서는 애굽이 확대가 되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이 다 애굽이니까, "애굽에서 나오너라.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은, 종교가 없고 교회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요한일서 4장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나오는데, 뭐라고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화목제물 - 평가 '끝' !!

여기서 '화목제물'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대전 수련회에서 그런 말을 했는데, 이미 우리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평가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너는 이런 인간이야" 라는 평가가 말이다. 이미 종식이 되었는데, 그러니 주님 앞에서 자기의 새로운 행함으로 평가를 받으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님의 화목제물이 되심 자체에 대해서 모욕하고 모독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살면 자유롭게 되는데, 아직도 주님 앞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이미 평가가 끝났는데 말이다. 시험감독관이 시험을 다 끝내고 벌써 자기 집에 가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시험감독관을 붙들고 있다고 하면, "제 점수는 얼마입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 믿음은, 이미 끝난 작업에 대한 '통보' !!

이런 점에서 성경이 어려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한쪽은 끝나버렸는데, 그런데 다른 한쪽도 끝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도 무슨 짓을 해도 지옥에 가도록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새삼스럽게 믿는 것이 아니고, 이미 끝난 작업에 대한 '통보' 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통지서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게 선물인데 말이다.

"당신은 끝났습니다", 혹은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통지서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에, 마치 19살 때 병무청에서 군입대 통지서가 날아오듯이 말이다. "언제까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세요" 라고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사님은 언제까지 천국에 입소하세요" 라고 말이다(ㅋㅋ).

그렇게 통지서가 날아오는데, 왜 그런가? 그것이 화목제물인데, 즉 "당신은 화목하기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화목대상입니다" 라고 통보가 왔다는 말이다. 그러니 불교처럼 절에 가서 빌고 말고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의' 라는 것이고, 성도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 이 세상에는 통보할 바탕이 전혀 없어 !!

그런데 이 세상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앞에서 살펴본 요한일서 2장 15절에선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 라고 하는데, 이것을 지금까지 강의한 것과 연결해서 넣어보면, "이 세상에는 '너는 천국에 이미 합격이다' 라고 통지할 그 어떤 자도 없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는 "너는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받았어" 라고 이야기해줄, 그 어떤 근거도 없고, 바탕도 없고, 원천도 없고, 그것을 제공해줄 그 어떤 자도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전혀 없는데, 그런데 왜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통보해줄 그 어떤 것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무엇인고 하니까, 이 세상은 지옥에 갈 사람들을 위해서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옥에 갈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사도요한이나 사도바울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그런 사랑을 전하니 사람들이 외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보다도 이 세상을 껴않고 살아가고 싶어. 이 세상이 폭파가 되던 말든 나는 이 좋단 말이야. 나는 하나님이 주신 그런 사랑, 그런 화목제물은 싫어" 라고 하는, 그런 자기 자신의 숨겨진 본성이 이런 말씀과 마주치면서 감추지를 못하고 들키고 폭로가 된다는 말이다.

◈ 주님의 '자기 백성 찾기' !!

그러니 말씀을 왜 전하게 하시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자기 백성을 찾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아이쿠, 여기에 있었네. 저기에 있었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당신은 여기 지옥에 가는 줄에 서면 안 돼. 저기 천국에 가는 줄에 서" 라고, 그렇게 찾아내는 작업이란 것이다.

그런데 "누구 있어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화목제물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하면서 찾아낸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에 관심이 있어요?" 라고 외칠 때, 천국백성만 그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되어있고, 나머지는 "그것은 하나의 기독교 교리에 불과해" 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간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봉투를 돌려가면서 교회에 오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서 라면을 한 박스 사들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당신의 생활을 돌봐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짓을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하면, 그들은 그것을 얻어 챙기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서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목표가 다르다 !!

방금 이야기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가 있는데, "목표가 다르다" 라고 말이다. 교회라는 것은 "저 사람이 과연 천국백성인가?" 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저 사람을 이용해서 어떻게 교회가 부흥할 것인가?" 라는 것을 목표를 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천국백성인가?" 라고 하면, 오직 말씀만 전하게 되지만, 하지만 "교회부흥인가?" 라고 나오면, 그렇게 교회가 부흥이 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어주십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부흥을 목표로 하면 무엇에 대한 도전인가? 천국백성을 가로막기 위해서, 마귀가 그러한 교회부흥을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부흥은 단순히 교회부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나 헌금이나 전도에 있어서, 그런 모든 부분에 교회부흥이 다 들어간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를 하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잘 되면, 그것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시면 교회도 잘 됩니다. 전도를 하세요. 교회가 부흥이 되어야 하늘나라가 확장이 됩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님은 하늘나라의 확장이 전혀 목표가 아닌데, "천국백성이 누구인가?" 라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다. 도대체 하늘나라를 확장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인구의 몇 퍼센트가 천국백성인지, 그것은 전혀 주님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아방주를 지어서 자기 식구인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을 그 지역에서 퍼센트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는가? 대략 8천명만 잡아도, 8명이면 0.1프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주는 방주값을 해야하는데, 아무나 다 들어오면 방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공공 놀이터이지, 그게 무슨 방주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 순교의 즐거움은, 곧 '싸움의 즐거움' !!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순교의 즐거움' 이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싸움의 즐거움' 이라는 것이다. "아, 그것은 아닌데!" 라고 하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십자가의 피, 즉 화목제물 이외에 다른 것을 증거할 때, "그것은 아니야. 엉터리야" 라고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싸움은 다른 곳에서의 싸움도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복음을 전하는 본인과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교인들이 나갈텐데, 그렇지 않아도 예산이 부족한데, 교인들이 나가면 교회문을 닫아야 하나?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번만 어떻게 좀 봐주세요. 다음에 2차로 어떻게 복음을 잘하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하는, 그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하지만 이런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민거리이고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교는 즐거움인데, "이런 것은 모르지롱?"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복음의 맛을 알어? 우리끼리 먹지롱!" 라고 말이다. 사도바울의 소원이 무엇인고 하니, 빨리 죽은 것인데, 즉 "힘들어서 이런 짓을 못해먹겠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라는 것이다(ㅋㅋ).

그러니 사도바울에게는 그런 것이 없는데, "어떻게 요리해서 개척교회에 성공을 해볼까?" 라는 것이 말이다. 찾아오는 놈도 귀찮은데, 그러니 "알렉산더와 같은 놈들은 다 마귀에게 가라" 라고 해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기에, 자기가 걱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마귀는 강도의 위협과 도적의 위협과 같은 것으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사도의 입을 반창고로 틀어막는 작업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도 사실 힘이 들어서 입을 다물고 싶은데, 그런데 주의 천사가 틈만 나면 등장해서 들쑤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만약에 죽은 사람을 손수건을 가지고 낫게 한다면, 그것이 반가운 일이겠는가? 귀찮은 일이겠는가? 귀찮은 일인데, 왜냐하면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귀찮다는 것이다. 자기는 죽으려고 하는데, 괜히 손수건을 얹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미처 살아날 줄을 몰랐지 싶은데, 왜냐하면 자기가 살리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이 성경자체가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책이라는 것이다.

이제 교재 313페이지를 보자.

** (자, 순교의 즐거움) 순교란,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고 훌쩍 자신이 가야하는 쪽으로 가버리는 경향성을 말한다.

◈ 나도 훌쩍 떠나야지 !!

그러니 순교라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의 관심사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도가 순교의 길을 가면서 성경책을 적었다고 한다면, 성경을 보는 사람도 역시 "나도 훌쩍 떠나야지" 라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면 이 성경책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이 무지무지하게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까, "성경은 해롭다. 그러니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도 가지 말고, 성경공부도 하지 말고, 그냥 내 편한 대로 살자"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너는 모르지? 성경이 해로운 것이 아니라, 니가 너에게 해로워"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내가 나에게 해롭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사도바울이 알고 로마서 10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내 속에 다른 법이 있는데, 그런데 이놈의 힘이 나보다 더욱 세기 때문에, 내가 도저히 끄집어낼 수가 없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내 인생은 고장이 났습니다 !!

그러면 그렇게 끄집어낼 수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예를 들어서, 집에서 고장난 가전제품을 자기가 고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서비스센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주님이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같이 활동하고 계시니, 그분에게 맡기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고장난 인생이니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은 고장이 났습니다" 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성령이 오셔서 지적질을 해주실 때 깨닫게 되는데, 그런 고장난 것은 우리가 알아서 고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존 교회에서는 고장난 것을 자기가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물론 근본적인 고장은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어지간한 것만 그렇게 하는데, 즉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한 것만 골라서 "주여,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합니다" 라고 해놓고는, 자기가 수리해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죄는 윤리나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를 증거해야만 근본적인 죄가 나오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즉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을 전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믿었으니 이제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지요, 여러분이 힘들이 사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똑바로 사세요. 그러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무슨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도 아니고, 보상은 무슨 보상을 해주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아는 죄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나는 법을 원하지만, 내가 손댈 수 없는 죄가 있다. 그러니 이 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겨서, 주님의 피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것이 곧 교회인데, 그러니 교회는 자기가 자기에게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술과 담배와 여자를 끊는 것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갈 것 같으면, 천국은 너무 비좁아서 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술과 담배를 여자를 끊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죽기 직전까지 술과 담배와 여자를 마음껏 즐기다가 죽을 그때에 끊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내가 죽은 것이 낫다" 라고 하는 생각은 성령이 아니면 도저히 생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닌 늘어난 애굽 !!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안다고 여기고, 이제부터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는 것이다. 애굽이 세상으로 확장이 되었는데, 그런데 그냥 확장되었다고 하면 안 되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굽이 세상으로 확장된 것은,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이, 물론 그들은 자기들이 진짜 이스라엘이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애굽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즉 애굽을 잡아당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퍼진 모든 것이 사실은 나중에 보면, 이방나라를 따지면 안 되고,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거기에는 언약이 함께 품어져있다는 것이다. 혹시 마르지도 않은 아스팔트길을 가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도 없어요? 성질이 급한 저만 가보았는지 모르겠는데(ㅋㅋ), 그렇게 되면 신발에 붙은 그것이 이제는 가는 곳마다 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맨 땅에 시커멓게 발자국을 말이다.

이와 같이 애굽이 멸망할 즈음에,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스가랴 등등, 모든 선지자들이 동일하게 외치는 것이 무엇이고 하니, 이방나라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을 한다는 것이다. 암몬, 모압, 불레셋, 두로, 앗수르, 바벨론 등등, 모든 나라의 멸망을 말이다. 특히 바벨론과 같은 경우에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짐승으로 나누어서 멸망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그들이 이스라엘을 건드리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과 더불어서 그 안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건드린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특징은 언약의 하나님인데, 즉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건드린 셈이 되니, 이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나라로서 애굽으로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세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세상을 뿌려놓았는데, 즉 애굽이 퍼져있다는 말이다.

◈ 지금도 역시 어린양의 피로서만 !!

그러면 이렇게 온 천지에 애굽에 퍼져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으로 다루었던 그 원칙을 다른 모든 나라에도 다 적용을 시키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을 때 어떻게 받았는가? 어린양의 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도 역시 어린양의 피로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아르헨티나 10년이나 나가서 사는 친척이 있는데, 그렇게 외국이 나가있으면 고국에 무척이나 오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든 아프리카든 아메리카든, 고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오직 어린양의 피로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한국에서 보낸 선교사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전혀 없는데, 한국은 고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어린양의 보좌에서 보낸 선교사만이 있다는 말이다. 어린양만 증거하라고 보낸 선교사만이 말이다.

◈ 서경수 선교사님을 모시고 주례사를 !!

그러니 결혼식 때 주례를 하면서 십자가 복음만 전하면, 이번에 삼일교회라는 애굽에서 무엇을 전했는가? 복음을 전했으니 선교사라는 말이다. 한번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선교사가 되는가? 선교사는 성령이 늘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5년 동안 당회장으로 있었다고 선교사가 아니라, 5년이든 5일이든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음 주일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르니, 그래서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자기 속에 또 다른 법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싫어하니, 오늘은 대충해 전해라"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늘 함께 하셔야 순교할 수 있기 때문에, 진짜 선교사는 누구인고 하니,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 진짜 선교사는 주님밖에 없어 !!

우리는 거기에 똘마니로 다루어질 뿐이지, 진짜 선교사는 주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고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선교에 훼방꾼이 바로 우리인데, 우리는 살고자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주님이 성령을 보내주시면 "복음을 전하다가 죽으면 되지 뭐" 라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데, 그 모든 공로는 바로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전도를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시도 때도 없이 사건이 개입하게 되는데, 그게 어떤 사건인고 하니, "죽는 것이 소원이다" 라고, 그렇게 진리로 인해서 자유케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내가 더 살아야지. 저 사람으로 하여금 힘들게 하면 돼" 라고 하는, 그렇게 자기 더 살고자 하는 것이 복음에 대한 훼방인데, 우리는 그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진리로 인해서 자유를 맛보게 되는데, 즉 "내 몸이 얽매이는 것은 싫어. 죽는 게 제일 좋아" 라고 말이다. 그런 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거기에서 복음이 툭 튀어나올 수가 있다는 말이다. 주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살리면, 그것은 손수건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과 동일한 권능이 임한 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순교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걱정이 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순교를 하면 구원이 되는 줄 알고 순교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올까 싶어서 말이다. 그것은 오히려 순교를 방해하는 것인데, 그냥 밥이나 먹고 푹 쉬면서 재미나는 일들을 다 즐기면서 드라마도 보고 싶은 것을 다 보면서 가면, 그게 곧 순교자라는 것이다.

◈ 개콘을 보면서 순교를 !!

제가 너무 쉽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놀고 싶으면 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하다가 죽으면, 그게 곧 순교라는 말이다. 그게 아니고 자기가 순교를 하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시험거리가 되고 마는데, 하지만 순교를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순교를 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목제물을 모르는 자들은 순교를 해도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주님께서는 이미 일을 하고 계시니, 우리는 그분의 똘마니로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도 없는 이 세상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많이 얻어맞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기를 당한다든지, 실망을 한다든지,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자식에게 이용을 당하고 말이다. 시집을 보내놓았는데, 자식을 3명이나 데리고 와서 죽치고 있으면서 살림을 말아먹는다든지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라는 것은, 이 세상으로 하여금 실망을 경험하게 해서, 남들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방해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주님에게 해로운 자라는 것을, 즉 "나에게 가장 해로운 자가 나 자신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말이다. 애굽이 그렇게 해서 번진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314페이지를 보자.

** 이런 사도의 바람을 발목 잡는 이들이 있다.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주님의 형제들이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여기에 빌립보서 1장 23절과 24절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슨 내용인가? "지금 내가 살지 말지, 그 둘 사이에 끼었는데, 내 마음 같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더 기분이 좋은 일인데, 그런데 지금 내가 너희들과 같은 육신을 입고 죽지 않고 있는 것은, 너희들을 위해서 유익하다" 라고 것이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한 400년을 살았는가? 100년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너희에게 유익하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몇 백년 이상을 살지 않고, A.D. 64년경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고 말았느냐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오래 살면 살수록 유익할 텐데 말이다.

그것은 곧 바울이 유익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가 유익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바울은 지금 사도직을 감당하고 있는데, 사도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종으로 다루어질 때 사도바울로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에게 사도의 직무가 끝났다 싶으면, 즉 주님께서 사도직을 거두어 가면 더 이상 노인네가 거기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데리고 가신다는 말이다.

◈ 복음에 유익할 경우에만 !!

제가 "사람은 늙으면 죽는 것이 좋다" 라는 소리를 종종 하는데, 바로 이런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유익을 위함인데, 그런데 유익하지도 못하면서, 그것도 복음에 유익이 되지도 못하면서, 즉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것을 증거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데, 그러니 굳이 살아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살아있다고 하면 "여러분,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마세요" 라고 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툭 치면 "이 세상은 별 게 아니거든. 그냥 떠나는 것이 제일 좋아" 라는 말이 튀어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냥 떠나면 안 되고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온 천지가 언약의 판으로 퍼져있기 때문에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사도는 이기주의자도 아니요, 또 개인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그에게는 이 세상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만나보고 싶은 분이 있을 뿐이다. 이 마음이 성령의 마음이요, 곧 예수의 마음이다. 예수님도 자기 사람을 속히 보고싶어 하신다. 자신의 피까지 주시면서 사랑하신 그 사랑은 악마라도 훼방할 수 없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죽음보다 강한 사랑 !!

주일 오후시간에 아가서를 설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가서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사랑은 죽음보다도 세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 여자는 가만히 있는데, 남자가 자꾸만 질퍽거리는데, 즉 자꾸만 추근거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남자의 직업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의 왕이었는데 말이다.

명색이 왕이 되어서 여자 하나를 찾아와서 자꾸만 "나와 결혼해줄래?" 라고 하는데, 하지만 여자는 그것이 짜증이 나서 오빠에게 이르기도 하고, 문을 콱 닫아서 그 문에 손가락이 끼었는데, 그래도 남자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너는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고 치료하기 위해서 몰약을 여기에 두었다. 나의 얼굴을 꼴보기 싫을지 몰라도, 약만큼은 필요하니 사용해라" 라고 하는 장면도 나오고 말이고 말이다.

(아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아 5: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아 5: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 아가서가 바로 지혜이고, 그 지혜의 절정이 곧 '십자가' !!

이것을 드라마로 만들게 되면 그야말로 미친 사랑인데, 즉 '크레이지 러브' 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찐득이가 없는데 말이다. 요즘은 그러한 놈을 '스토커' 라고 하는데, 완전히 신고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기어이 사랑해서 하는 말이, "내 사랑은 죽은 너희도 살려내는 사랑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 아가서가 바로 지혜이고, 그 지혜의 절정이 곧 십자가라는 말이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말로서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몸을 죽여가면서, "이것이 곧 화목제물이고 사랑이다" 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고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가? 그런 사랑이 눈앞에 보이는데 왜 자꾸만 마귀에게 넘어가냐고 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런 사랑을 몸소 체험했는데 말이다. 자기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죽였는데, 그런 자기에게까지 찾아오니까, "도대체 이것은 제가 의도한 사랑이 아닌데, 왜 찾아오십니까?" 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에베소서 1장에 뭐라고 되어있는가? "창세 전에 이미 택하사" 라고, 즉 "그런 택한 자에게는 반드시 이런 사랑이 오게 되어있다" 라는 것이다. 자기 사랑을 찾는 작업이니 말이다. 만약 어떤 회사가 합격자를 정해놓았다면, 그것을 찾아가는 작업에는 양보가 없듯이 말이다. 외딴 섬에서 혼자 도를 닦고 있는데 "당신은 삼성그룹에 합격이야. 빨리 옷을 챙겨 입고 출근해" 라고, 그런 무인도에게까지 찾아가서 끄집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출애굽의 반복이고 재현 !!

그렇게 주님은 자기 자기 백성을 하나라도 일어버리지 않고 마지막에 다 살리신다는 것이다. 기어이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는데, 한 마리의 잃은 양도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양이 아닌 것이 들어가는 것을 단 한 마리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감히 들어와. 어서 꺼져" 라고 한다는 말이다.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게 기어이 자기 양은 찾아내고, 또 자기 양이 아닌 것은 반드시 쫓아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께서 찾아내서 해서 모인 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고 하니,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는, 즉 출애굽의 반복이고 재현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자유, 믿음, 소망, 이 모든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으로서의 믿음이요, 사랑으로서의 소망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지만, 그 중에서 근원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에 끌려가는 즐거움, 이것이 곧 순교자의 환희이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여기에 보면 "그 중에서 근원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믿음과 소망이란 것은 이 사랑에서 파생된 것이고, 그러면 최종 사랑은 무엇인가? 말로만 가지고서 사랑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은 십자가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근원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317페이지를 보겠는데, 마침내 '마침내' 라는 것이다.

** 죽음이 없는 하나님의 일은 없다. 모든 일을 반드시 죽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것은 하나님마저 죽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마저 죽은 그 현실 바탕 위에서 당연히 인간도 죽음 안에서 논의된다.

◈ 사사 '입다'의 경우에 !!

이렇게 하다가는 오늘 교재를 다 마칠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갈 때까지 한 번 가보자는 것이다. 어제 설교시간에 사사기에 나오는 '입다'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사사기 11장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어제 설교를 하면서 빨리 지나가서 다시 설명을 해드리겠는데 말이다.

약속의 땅에서의 승리는 사람의 승리로 이끌어지면 안 되는데, 약속의 땅에서의 승리는 누구의 승리여야 하겠는가? 약속의 땅의 원리원칙을 그대로 고수하시는 하나님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솜씨, 자기 힘, 자기 용기 등등, 그런 자기 승리로 생각해서, 그렇게 자기가 승리하니 기마이(?)를 쓴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일본말을 사용해서 죄송한데, 아무튼 입다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을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다가 제시하는 그런 기마이(선심?)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입다는 아람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여기는데, 하지만 아무리 아람 나라를 이겨봐야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겨야 !!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이겨야만 한다는 말인가?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겨야 하는데,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뱀의 후손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자기는 멀쩡하다고 여기는데, 그런데 여자의 후손은 모든 성경에서 '죽음' 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일으킨 일에 대해서 희생된 분이 곧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제가 강의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이해가 좀 되던가요?"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라는 하는데, 그런 소리를 제가 계속해서 듣기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반복할 참인데 말이죠(ㅋㅋ).

◈ 시간의 역전 !!

아무튼 '여자의 후손'에 있어서, 여자가 후손을 낳고 해서 후손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후손이 여자를 새삼스럽게 소급해서 규정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그 여자를 말이다. 그것을 두고 '시간의 역전' 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지난 대전에서 했던 겨울수련회에서 말이다.

어느 인간이라도 여자의 후손(여자?)이 되고 싶은데,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후손과 같은 요소가 있으면 여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여자?)이 아닌데, 그것은 천주교에서 하는 말이고, 후손이 되려고 하면 뱀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 구약에서 뱀의 후손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

그런데 구약에서 뱀의 후손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짐승의 정체는 반드시 십자가 사건이 터져야 비로소 드러내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요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제가 딸 결혼식 때는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웃을 수가 있는데(ㅋㅋ, ??), 그 12명 가운데서 하나는 사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탄이란 것은 귀신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 봐야만 알 수가 있는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들도 병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했던 그 인간들이 사탄인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그들이 사탄일 줄 말이다. 그러니 "사탄인가? 아닌가?" 라는 것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고 하니, 예수님의 다 이루심, 즉 화목제물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화목제물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거기에 인간의 행함을 섞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이란 말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 딸이 아버지를 구원해 !!

입다의 경우에도, 그 전쟁에서 승리하면 자기가 출세를 하게 되니, 그것을 자기의 전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쟁은 무엇인고 하니, 약속의 땅에서의 모든 전쟁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인데, 그런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길 경우에는 반드시 죽은 자가, 즉 죽음이라는 희생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입다의 무남독녀, 그만 그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당연히 저주인데, 즉 입다는 이미 자기가 뱀의 후손이고 저주에 속해있음이 발각되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그러니 암몬과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바로 딸을 죽게 한 장본인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입다는 하나님의 전쟁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깨달으면서 입다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입다의 기마이로 인해서 죽는 그 딸이 오히려 아버지를 구원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딸이 아버지를 보고 뭐라고 하는가? "아버지, 그런 것은 신경을 쓰지 마세요. 제가 죽으면 되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삿 11: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삿 11: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삿 11: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그의 무남독녀라
(삿 11: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삿 11: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 집사님, 제가 대신해서 죽으면 되잖아요 ??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집사님의 가정이 무척이나 힘든다고 할 때, 장로님이 "집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천 만원을 기꺼이 빌려드리겠습니다" 라는 것은 쉽게(?) 되는데, 그런데 "집사님의 가정이 어려우면 제가 대신해서 죽으면 되잖아요" 라고 하는, 그런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목사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의 주인은 장로도 목사도 아닌데, 대신해서 죽으신 분은 오직 누구인가? 예수님뿐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성도는 무엇인고 하니,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다" 라는 사실을, 그러한 예수님의 죽음과 자기 자신을 연계시키게 될 때, 그런 사람이 곧 신자이고 구원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가 설교나 강의를 하면서 "내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라고 해도, 그것을 아무리 반복해서 이야기를 해도 새겨서 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하는가? "아니, 목사님은 내 때문에 왜 예수님이 죽었다고 이야기하지?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말이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 니가 바로 나의 적이다 !!

왜 그렇게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전쟁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 때문에 애매하게 죽었던, 그러한 죽음 사건의 현장에 자기가 원인 제공자로서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즉 자기는 괜찮은 존재이고 양식이 있고 철이 든, 그런 제법 규모가 있는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도바울도 이전에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즉 자기 스스로 율법에 흠이 없던 자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기가 곧 예수님의 어린 소자를 죽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입다의 전쟁은 주님의 전쟁이었고, 결국 주님의 전쟁은 입다의 딸이 죽음으로서, 입다가 속해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한번 건져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암몬 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암몬이 적이라고 여겼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니가 바로 나의 적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곧 이스라엘의 적이라는 말이다.

◈ 모든 일을 반드시 죽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

그리고 여기 교재에 "모든 일을 반드시 죽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이 '통해서' 라는 것을 좀 설명해야되겠는데 말이다. '통한다' 라는 것을 다른 말로 '경유한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유한다' 라는 것은 제가 강의하면서 여러 번 사용했는데 말이다.

여기에 십자가가 있고 또 우리가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을 있을 때 반드시 이 십자가를 경유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되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 '주 안에서' 하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반드시 십자가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경유하게 되면, "내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니구나" 라고 말이다. 자기 자식은 없어지고 주님의 자식이 되고 마는데,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계하신다는 것이다.

◈ 잠언서의 경우에 !!

구약의 잠언서를 보게 되면, 예루살렘의 왕인 다윗이 교훈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서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녀들아, 아비의 말을 멸시치 말라. 만약에 멸시하면 생명나무에서 니가 잘리고, 애굽의 음녀를 따라가게 되어있다" 라고 말이다.

(잠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 1: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잠 1: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잠 1: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없는 자를 까닭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잠 1:12) 음부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 잠언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잠언서를 보면서, "잠언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데, 과연 그런가? 그러면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고, 즉 "부하게 되고 오래 살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라고 잠언서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심방을 하면서 이런 잠언서의 구절을 가지고 한 바퀴 돌게 되면 대심방은 화기애애하게(?) 다 끝난다는 말이다. 그러면 동일한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즉 "예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라고 말이다. 사실 예수님이라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여러분이 원하는 복도 받고 오래 삽니다" 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된 채로 오래 동안 장수합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정말 그것이 축복인가?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라는 말이다. 그렇게 목사들이 심방을 다니면서 교인들에게 저주를 마구 남발한다는 것이다.

◈ 부모 - '이것까지도 죄다' !!

잠언서에 있어서 반드시 경유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예루살렘의 왕' 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이란 말이다. 그러니 부모라고 하는 것은, 자식을 낳거든 그냥 육신의 부모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고, 부모가 하나님의 언약을 거쳐서 가게 되면, 부모가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가 죄인인데, 부모는 그런 죄인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고 하니, 죄의 깊이와 넓이를, 즉 "이것까지도 죄다" 라고, 그렇게 자식들에 미리 예언자로서, 설교자로서 통보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 깐죽거리지 말라 !!

그러니 잠언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무엇인고 하니, "까불지 말라!" 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지혜인가?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라" 라는 것이 곧 지혜라는 말이다. 더욱 생생하고 리얼하게 이야기하자면 "깐죽거리지 말라!" 라는 것이다. 즉 "까불지 말고, 깐죽거리리 말고, 마음을 낮추어라"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자기가 조금만 잘 되면 어떻게 나오는가? 물론 나이가 들어도 그런 인간이 있지만 말이다. 기마이를 쓴다고 하면서 돈을 마구 펑펑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제대로 안 되면 수면제를 가져다 놓고 폼을 잡고 말이다. "내가 이 회사가 아니면 다닐 때가 없는 줄 아나?" 라고 하면서, 순간적인 자기 감정으로 사직서를 책상에 던진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나와서는 빌빌거리고 말이다.

그러니 "깐죽거리지 말고 까불지 말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지금 너희 부모의 자리는 죄인의 자리인데, 하나님의 다윗언약에 의해서 의인이 되었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자기가 의인이라는 게 아니라, 자기를 죄인이 되게 만든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위치, 입장, 자리,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미 이스라엘은 언약의 자리, 즉 생명의 자리에 의해서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죄인이 되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 자리 자체가 이미 생명이 보장되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는 말이다. 일본말로 '다다미' 라고 하는데, 즉 '돗자리' 라는 것이다.

◈ 이 아빠가 옛날에 까불었는데 !!

그러니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훈계할 때는 그냥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앉아서 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앉아서 자기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와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이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내가 옛날에 까불었는데, 그러나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다. 그렇게 까불고 깐죽거린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인데,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싶은 깐죽거림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이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마음껏 자유하라 !!

그러니 이것도 역시 전도서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왕인 솔로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라는 것인데, 아가서나 잠언이나 시편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것을 지혜문서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깐죽거리리 말고, 마음을 낮추어라" 라는 것이다. 그렇게 낮추고 난 다음에 "마음껏 자유하라" 라는 말이다.

왜 자유할 수 있는고 하니, 이 자리는 자기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자리는 언약에서 공짜로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착하다고 착한 자리가 되고, 나쁘다고 나쁜 자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변경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런 영생을 허락하니 고마울 뿐입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고마우니 매사에 사람들이 시선이 전혀 겁나지 않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욕하고 저주를 한다고 해서 이 자리가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목사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데, 목사가 뭐라고 하든 말이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제 딸 결혼식에서 상견례를 하는데 사돈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교회를 목사에게 맡겼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목사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목사를 준 것은, 또 하나의 죄인을 준 것인데, 즉 "예수님이냐? 목사냐? 너 속에서 경쟁해서 목사가 아니고 예수님이다" 라고 해보라고,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일을 벌이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잠언서에서 언약이라는 것은 이미 자리를 마련해준 것인데,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죽지 않아서 죽음을 모르는데, 하지만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곧 우리의 죽음이라는 말이다. 지옥에 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면 큰일 날 소리이고, 진짜로 구원받은 자의 죽음은 십자가가 자기의 자리라는 것이다. 즉 십자가라는 자리가 중요하지, 자기 자신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십자가에서 올라오는 온기, 그 따스함, 그것이 육신이 원하는 욕망보다 더 따뜻할 때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애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자리인데, 그러니 그 자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 부부사이도 역시 마찬가지 !!

이것은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인데, 남편이 된 자는 주 안에서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가 된 자는 주 안에서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주님께서 마련해준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주님의 피가 있고, 그 피로서 이미 용서함을 받은 따스함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편과 아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새롭게 발생된다는 말이다.

부부생활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상대방이 늘 새롭게 느껴질 때, 그럴 때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 몰랐었어!" 라고, 그렇게 늘 새로움을 느낄 때가 말이다. 아마 지금 여러분이 저를 속으로 비웃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소리를 한다고 말이다(ㅋㅋ).

그렇게 늘 새로운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당신에게 이런 면이 있네" 라고 해서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말을 해도 전혀 새로운 것이 생기지 않는데, 그러니 그런 말을 해서 억지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마음을 낮추고 십자가를 알게 되면, 자기의 눈이 바뀌어서 구닥다리 자기 남편도 멋있게 보일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왠지 멋있어!" 라고 하면 되는데, 상대방이 멋있는 행동을 해서 멋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누가 문제인가? 상대방이 아닌 자기가 문제인데, 자기가 마음을 촐랑거리면서 낮추지를 못하니, 모든 원망을 남편이나 아내에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야, 정말로 큰일날 뻔했구나 !!

하지만 십자가의 따스함을 느끼게 되면, "저 남편이 아니면 큰일이 날 뻔했다. 저런 아내를 만나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라고, 그렇게 순간적으로 든다는 것이다. 그게 0.02초 정도를 가지 싶은데 말이다(ㅋㅋ). 그때는 고마운 마음이 서로 드는데, 물론 갱상도 사람들은 고맙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흠, 에흠!" 이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십자가를 경유하게 되면, "정말이지 저 사람은 나에게는 너무나 분에 넘치는 존재다. 만약에 내가 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 그야말로 큰일날 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말이다. 그때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죽음의 자리, 우리는 만들 수 없지만 주님이 만들어주신 그 자리라는 것이다. 저도 3주 이후에 결혼식 주례를 해야하는데, 그래서 미리 해봤는데 말이다(ㅋㅋ).

그래도 서 목사님은 예배당에서 분위기 있게 주례사를 했는데, 저는 예식장에서 해야한다는 것이다. 서 목사님은 여유를 가지고 "여러분, 앉아서 들으세요" 라고 했지만, 예식장은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도 전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주례사보다도 먹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죽어야 될 이유, 죽어야 될 목적, 죽는 방법, 죽는 환경,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죽음' 이라는 근거 위에서 밝혀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은 없다.

그러니 '나'를 위한 환경은 없는데, 되 먹지 못한 '나'를 위한 환경은 말이다. 주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말썽꾸러기인 '나' 라는 존재도, 그런 것도 전부가 예수님의 죽음과 연계되어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아하, 내가 이렇게 존재함으로서 예수님이 죽었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게 죽어야 될 이유, 죽어야 될 목적, 죽는 방법, 죽는 환경, 그 모든 것이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오셨다는 것이다.

◈ 죄의 덩어리를 잡아당기게 되면 !!

어제 주일 낮에 설교한 것 중에서 어려운 게 무엇인고 하니, 주님께서는 아담에서 이렇게 길게 끌고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죄의 덩어리를 길게 잡아당기게 되면, 선악과 덩어리를, 이러한 죄 덩어리를 끌고 오게 되면 엿가락처럼 늘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예수님에게 오는 모든 노선이 죄를 늘어뜨리는 것이 되는데 말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늘어뜨려서 거기에 십자가 사건을 집어넣게 되는데, 그러면 '인자+엄위', 즉 용서하심과 진노하심이 마치 섬유처럼 짜여져서. 우리가 하나의 원단이 된다는 것이다. 하루만에 벌써 다 잊어버렸지 싶은데. 우리는 존재가 아니라 원단이라는 것이다. 즉 사건과 사건의 다발로서 짜여져 있다는 말이다.

◈ 인자하심과 진노하심 !!

그것을 조사해보니 두 가지밖에 없는데, 즉 인자하심과 진노하심, 그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심지어 악인들에게도 햇빛을 주시고 단비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그것을 '자비' 라고 한다는 말이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사건의 짜여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독자로 여겨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이시여, 복을 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면, 자기는 그만 단단한 돌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짜여진 사건으로 직조된 것이 아니고 말이다.

사실 '자아' 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마귀가 그렇게 시킨 것인데, 그래서 어제 설교를 하면서 "인자와 자비로 수놓아진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 라고 했는데, 그래서 엄위를 알고 자비로 간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자비를 받았음에도 화를 돋우는 인간은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 에서와 야곱은 '남남' !!

에서와 야곱은 우리도 알다시피 형제간인데, 즉 쌍둥이인데 말이다. 하지만 전혀 남남이라는 것이다. 즉 가장 가까운 자가 남남이라는 말이다. 한 쪽은 천국에 가고 한 쪽은 지옥으로 가는데, 그런 자들을 한 집에서, 아니 한 배에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게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 잘났다" 라고 하는 인간은 지옥으로 보내고, "나도 너와 똑같은 인간인데, 그런데 이것이 웬 은혜인지 몰라" 라고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자는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지만, 반면에 에서가 증거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죄를 지은 놈은 벌을 받아도 마땅해" 라는 것인데, 바로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이렇게 지옥에 가는 자들을 붙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이라는 말이다.

◈ 죽음이 빠져버린 신을 원하는 인간들 !!

계속해서 교재를 보면, 오늘 교재를 다 하도록 하겠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인고 하니까, 죽음을 피한, 즉 죽음이 빠져버린 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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