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보다 귀한 것
Re..마 16:26-28 (온 천하보다 귀한 것)
이름 : 이근호(IP:)
온 천하보다 귀한 것
2004년 7월 11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6:26-28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33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들의 평소의 생활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잘못되게 살아가고 있느냐를 절실하게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부터 관심 두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성품을 지닌 인간이 지신의 힘으로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리는 만무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구원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이 좋으냐 싫으냐를 묻는 문제가 아니라 천국을 설사 원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들은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 한결 같습니다. "제가 여기 들어오게 된 것은 오직 예수라는 분의 공로 덕분이지 제 힘씀이 아니올시다"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이 아무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르짖고 달음박질하여도 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성경은 그 전반에 걸쳐 '인간은 자력으로 구원될 수 없다'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대로 된 천국을 천국답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행함이 가미될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사야 6:9-10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인간들이 보는 것으로 깨닫고, 듣는 것으로 알아채서 구원되는 경우를 철저하게 봉쇄하십니다. 인간들이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자력으로 구원되지 못함을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말씀은 곧 평소에 인간들이 온 천하를 얻는 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을 배경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즉 인간들은 기껏 자기 목숨을 부지한다는 방식이 온 천하를 긁어모으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인해 '그 나라 의를 먼저 구하라'는 언명은 온데 간데 없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가에 의하면 '온 천하를 얻어서 지탱하는 목숨은 사실은 목숨이 아니라는 겁니다.
목숨은 그런 식으로 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꾸 자기가 자기를 살리는 목숨을 목숨이라고 우기지 말라는 겁니다. 목숨이나 아니냐 하는 판정은 우리 인간 본인들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목숨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정 관은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로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바가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서 감당치 못할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의 주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인간의 자아의 허상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의 자아는 유령과 같아서 자신을 허풍선이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그 자아를 신봉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아라는 사실은 과거의 흔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즉 과거의 잔상이 지금의 자아하는 허상을 유발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지금의 나쁜 짓은 아닌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라는 말과 함께 현재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지금 있는 우리는 그저 현재 있게 된 몸이지 결코 과거의 그 몸이 아닙니다. 즉 꽃다운 나이 16세 때 토실토실한 피부를 기진 윤기 있는 그 육체는 지금 50세를 훌쩍 넘긴 아줌마에게는 없어져 버려서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지금의 50세 나이의 자기 자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과거의 자신을 재료로 삼아 현재의 자아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과거에 매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과거의 잘 한 일에 매이는 것은 지금 신으로부터 행운이나 복을 따 낼 자격이라고 있는 것처럼 교만하기 쉬우니까 불행한 일이요. 과거의 잘못한 일에 매이는 것은, 지금의 고통을 지나간 과거 행위의 징벌이라고 간주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사람의 존재라는 것은 매일 이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나를 있게 하는 원리와 원칙은 따로 있습니다. 그 방식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나옵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성도는 매일자아가 만들어지고 매일같이 허물이집니다.
결코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야 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지시하시는 그 분의 원리 원칙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여기 현재 존재해 있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나를 나로 여기 있게 한 그 원리와 원칙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27절에 보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 한대로 갚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함에 대해서 주도권을 쥐고 심판을 행사하는 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어떤 식으로 주도권을 발휘하느냐 하는 것은 28절에 나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왕권'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서 무한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누가 말입니까? 예수님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왕권을 적용할까요?
로마서 5:20-21에 보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왕권 행사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들이 구원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작용되어야 할 권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죽은 시체를 놔두고 아무리 꼬집고 두들기고, 전기 자극을 주어도 죽은 자를 돌이키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죽은 친척을 되살릴 수 없는 것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본인도 본인의 힘으로 되돌릴 수가 없습니디. 인간은 결코 그 나라 의를 먼저 구하지 않게 되어 있고, 인간은 결코 온 천하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할 마음이 없습니다.
온 천하를 얻는 식으로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 구원이 성사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왕권이 있다는 겁니다. 이 왕권을 자기 백성을 향하여 날아갑니다.
그냥 가만 두고 있는 왕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보고 "나에게는 왕권이 있다. 인자가 천사들과 함께 구름 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다"고 꼭 언급을 해주시는 이유는, 자신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본인이 가지신 왕권을 유감 없이 발휘하실 양으로 그런 언급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권 발휘는, 죄에 대한 은혜의 정복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된 자는 모든 죄를 사함 받습니다. 그 어떤 한계나 한도도 두지 않고 말입니다. 무한대로 용서받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본인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바로 이점을 알리고 실제로 적용하기 위한 차원에서 은혜가 터져서 실시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나이대 별로 지은 죄들이 많습니다.
9 살 때 지은 죄, 28살 때 지은 죄, 45살 때 지은 죄, 92살 때 지은 죄, 각종 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죄로 인해 시체가 된 사람을 보고서, 아무리 두들겨 가며 깨우면서 하는 말이, "너는 그 나이 대 빼놓고서는 비교적 죄를 덜 지었으니 그 의의 능력으로 제발 살아나 다오"라고 부탁해도 그 시체는 다시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천사를 대동하고 나타나실 때는 단단한 돌무덤조차 깨어지듯이 열린다는 겁니다. "아무개야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영생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능가하는 은혜의 위력입니다.
흔히들 죄, 죄 하지만 진짜 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익숙해져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즉 선과 악이라는 두 개념을 가지고 살면서, 과거에 선한 일로 현재 보상을 받고, 과거의 악한 일로 현재 내가 징벌 받는다는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앞에서 그것은 몽땅 엉터리 인생관을 철저하게 인식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죄의식과 선한 의식을 자기고 자아를 재조립하라가 아니라 죄인의식과 의인의식을 가지라는 겁니다.
즉 죄인이었던 우리가 오로지 예수님의 은혜로만 이제 의인이 되었다는 의식 말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시험이나 악마나 유혹이나 고난도 예수님의 은혜를 무효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하지 마세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눈만 뜨면 이 세상 것만 추구하는 저의 마음에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이 가득 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