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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4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창세기강해1(강의정리)-재정리자유게시판창세기

14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창세기강해1(강의정리)-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2014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1강 - 첫날 저녁1
(강의 : 이근호 목사) (정리 : 한윤범 목사)

◈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감히 주님의 말씀을 대합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는데, 창조함을 받은 우리가 도로 그 말씀을 파악하고자 할 때, 비록 우리의 능력은 미미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가 성령 안에서 주님의 본 뜻을 깨닫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창세기 1장이 성경에 나오지요. 창세기 1장이 시작일 수도 있고 마지막 결론일 수가 있어요. 이것이 성경책인데, 책을 세워놓겠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여기 있다면, 그 이전까지는 이 성경책에 대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묻고 필요한 정보를 가져와서 자기를 키우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성경책을 하나의 대상으로 본 겁니다. 즉 "나는 여기 있고 필요한 것들을 퍼 담아갈 수 있다" 라는, 그러한 하나의 대상으로 봤는데, 그런데 신약성경에 와서 하나님의 새 언약에 의하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간에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 우리 자체가 곧 해답 !!

그래서 우리를 어디다 집어넣느냐 하면, 우리를 점선으로 표현해봅시다. 점선이란 항상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인데 말이죠. 끌로 성경책을 파면, 그렇게 빈 공간을 만들어서 집어넣으면, 그러면 해답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체가 해답이 돼요.

다시 말해서, 성경 속에 우리가 있으면, 성경 전체가 해답이라면 거기에 포함된 우리도 해답이 되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해답을 알 필요도 없이 우리가 바깥에 나가게 되면, 질질 해답을 끌고 나온 셈이 되지요. 우리가 나오면 덩달아 말씀이 끌려나오고, 그러면 모든 것이 해답이 되는 겁니다.

이것을 해답의 자기 전개, 자기 펼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즉 "내가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해답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해답이 어떤 내용인지 말로 하라고 하면, 그것은 말로 하면 안 돼요. 말하기 이전에 이미 해답인데, 그것을 말로 하면, 이 말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말은 사라져 가는 이쪽의 소통이 원칙이거든요. 여기에서 통용되는 것이란 말이죠.

무슨 뜻인고 하니, 말을 하려면 이쪽에 사라지는 것을 거쳐서 다시 말하려면, 이렇게 말이 가고 오고 가는데서 이미 해답성을 상실해버려요. 그러니 아무리 해답을 말로 설명해도, 여기에서 통용되는 말 자체, 언어의 한계가 있어요. 한 번 거쳐 왔다하면 진짜 진리성은 다 빠지고 그냥 형식만 남아요.

예를 들어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진리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신다면, "내가 여기 있잖아.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 라는 것이 해답이거든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그 구원자가 여기에 있단 말이죠. 그러면 다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말로서 설명을 하려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면서 다시 돌아오면, 그렇게 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즉 그것을 외운다고 해서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행동이 해답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새삼스럽게 해답을 제시해달라고 하면, 사실은 해답을 제시하는 방법은 없는 거예요. 창세기 1장에 들어갈 때부터 앞으로 이 방법을 앞으로 계속해서 적용할 겁니다.

◈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하게 되면 이런 답이 나올까요?

왜 유럽의 성당을 보면, 건축물 지을 때 밑 구덩이에 동굴처럼 파서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안치해놓고 열주, 즉 기둥들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이라고 해서, 그렇게 건축해놓은 게 나와있을 거예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옴폭 파여 있는데 말이죠,

그것처럼 여기에서 우리가 해답을 아는 것이 아니고, 해답 자체로서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나갈 때 "무엇이 진리입니까?" 라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하게 되면 이런 답이 될까요?" 라고 해야 되겠지요. 답은 이미 챙겼으니까, "이 답변에 해당되는 어떤 질문들을 하게 되면, 여기 있는 이런 답변이 나오게 됩니까? "라는 질문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 왜 나는 이런 식으로 남자가 되었을까?

그러니까 답변을 새삼스럽게 구하는 게 아니고, 이 답변이 답변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남은 여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거예요. 새삼스럽게 진리를 끌어 모아서 "나는 진리를 알았다" 라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답변이기 때문에 "왜 나는 이런 식으로 남자가 되었을까?" 라고, 자기가 남자가 되는 것이 정답이어야만 하는 질문을 찾아가는 거예요. 즉 질문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어느 것이 수월합니까? 이미 구원을 받아놓고서 "저 같은 죄인을 왜 구원하셨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 수월합니까? "제가 어느 정도 착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라고 하는 게 수월합니까? 어느 쪽이 여러분이 힘들고 애써야 됩니까? 두 번째가 더 힘들지요.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 붙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야만 상글리아(이상사회), 즉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가 있는지, 자꾸 헤매는 거예요.

오늘 오늘 낮 시간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제가 아는 선교사님이 태국에 갔어요. 수도인 방콕은 도저히 더러워서 가지를 못하고,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미 삯꾼 선교사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자기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밀림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접시도 없어요. 나무잎사귀를 접시로 삼아서 밥을 싸먹는 거예요. 일년 내내 쌈 밥을 먹는 겁니다.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 들어가서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말하는데, "사실 내가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게 해답인지 싶어서 시도해본 겁니다" 라고 말이죠.

◈ 자기 몸이 해답이 아닌 이상, 어딜 가도 해답은 없어 !!

그러니 자기 몸이 해답이 아닌 이상 어딜 가도 해답이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 몸이 이미 해답이라면, 그 어딜 가도 자기는 해답이 되는 거예요. 뭔가 성경 속에서 발을 떼어서 세상으로 나간다면, 뒤에 해답이 줄줄 따라 나와서, 마치 실타래처럼 성경 속에 있던 진리들이 엉덩이에 붙어서 잡아당겨져서, 자기가 살아간다는 자체가 해답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누구인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와 사도들이 이렇게 살아갔어요. 스데반 집사가 신학을 연구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나 기드온이 신학을 했던 사람이 아니었죠. 기드온은 방앗간 주인이었어요. 방앗간 주인이 신학을 하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냥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그 자체로 해답이 된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답에서 나올 때 "존재로 나오느냐? 아니면 사건으로 나오느냐?" 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만약에 존재로 나온다면 자기 뒤에 있는 사슬처럼 줄줄이 따라오는 것들이 다 존재가 돼요. 그러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이어진 게 갑자기 끊어지면 자기는 해답이 안 되는 수가 생겨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다" 라는 존재로서, 그렇게 진리를 존재로 끌고 오면 항상 뒤돌아서 점검을 해야 돼요. "잘 있냐? 하나님과 관계는 좋지? 벌써 기도를 안 한지 사흘이나 되어서 관계가 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것은 살아가는 것처럼,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수고 이상으로 여전히 불안해요. 안정감이 없고 초조합니다.

◈ 성경말씀이 바깥으로 나올 때는, 존재가 아닌 사건으로 !!

그래서 성경말씀이 바깥으로 나올 때는 존재가 아닌 사건으로 나와요. 아담이란 사람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담은 자기가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심지어 선악과 따먹을 때도 있다고 생각했고, 선악과나무도 있고, 생명나무도 있고, 그렇게 존재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분명히 여기에 있으니 말이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선악과 사건이 일어났고, 생명나무가 그 값을 하고, 자기는 아담으로서 아담에 합당한 사건이 일어나서, 아담이 흙인데, 그렇게 흙이 되가는 사건화 속에 사건들이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말씀이 바깥에 나올 때는 존재로 나오는 게 아니고 사건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의 사건이 되려면, 사건은 시공간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여기 있다가 갑자기 저기에 있고 말이죠. 그렇게 퉁퉁퉁 마구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만 사건화가 돼버리면, 이 사건 저 사건으로 여기 저기서 마구 터지는 겁니다.

이런 사건에 있어서 제일 좋은 예는 이런 거예요. 갑자기 파리가 날아왔을 때 그 파리를 치는 거예요. 어디 이것을 예상했습니까? "파리가 아마 2초 뒤에 올 거야" 라고 말이죠. 이것은 파리를 자기가 쳐야 된다는, 그런 자기가 미리 예상치 못한 자기의 돌발적인 행동과 파리가 나타나는 행동이 모여서, 거기에서 파리를 치기라는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그렇지요?

◈ 별에서 온 그대 !!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지금 2초만 지나면 절벽으로 떨어져요. 그런데 누군가가 날아와서 차를 막으니까 자기는 손이 다 베여서 붕대를 감고, 차는 벌떡 섰다가 퉁하고 내려앉고 말이죠. 그래서 보니까 별에서 온 김수현인데, 착한 전지현은 벌벌 떨면서 보고 있고, 뒤에 있는 범인들은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라고 하면서 도망치고, 이게 사건이란 겁니다(ㅋㅋ).

그러니 말씀이, 즉 우리가 정답입니다. 우리가 정답을 알려면 우리가 존재로 자기를 규정할 수는 없고, 말씀에 대한 해답으로서 자기도 모르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되는 거예요. 그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어난 A 사건에 대해서, 그동안 잠잠하던 자들이 갑자기 관련성이 있는 사슬로서 사건화가 되어서 붕 뜨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 구원을 받으려면 교회에 나오세요 ??

예를 들면, 기존교회에서는 "구원을 받으려면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목사가 사람들에게 존재를 명령합니다. "집에 있지 말고 당신 존재를 이 시간에, 주일 낮에 교회에 와야 됩니다. 내가 확인할 거예요. 출석을 점검할 겁니다. 반드시 나오세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집에 있다가 교회에 나옴으로 말미암아서 거기 다른 집사, 목사, 장로들과 서로 얽히게 되어있어요. 즉 새로운 사건에 얽히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자기한테 존재를 요구했지만, 막상 자기는 거기에 가서 사건의 유발자로 행세하게 된다는 것이죠.

자꾸만 제가 '사건', '사건' 이라고 하니까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어떤 물체를 'A' 라고 하면 3초 뒤에 그것이 'B'로 바뀔 때 우리는 이 물체가 'B'로 바뀌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무엇을 놓치느냐 하면, 우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 생성에 대해서는 몰라요. 그냥 바뀌기 전과 바뀐 후를 파악할 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자체가 자기를 존재로 보기 때문에, 존재에서는 존재만 보이지 사건은 안 보이거든요.

◈ 내가 10등을 한 사건 !!

예를 들어서, 어떤 학생이 반에서 15등을 하다가 10등이 되었다고 하면, "이전에는 15등을 하는 학생에서 이제는 10등을 하는 학생으로, 이전에는 15등을 하는 존재에서 10등을 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앞으로 네가 5등까지 하는 존재, 그런 인간이 되어라" 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15등에서 10등까지 됐는지는 모른단 말이죠.

물론 학원을 다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학원을 다녀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어떻게 15등에서 10등 됐는가를, 그것을 따지고 보면 항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와 존재는 전혀 연결이 안 돼요. 끊어져 있는데, 그러니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10등 되는 사건에 휘말리게 해버렸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 휘말린 사건 속에서 자기가 우연히 영어학원을 알게 되었고, 물론 그 영어학원도 자기가 10등이 되는 사건에 휘말렸고, 거기에서 유명한 학원강사를 만나서 기초를 알았는데, 마침 시험문제에 기초에 관한 것이 나와서 풀다보니까 15등에서 10등까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자기도 미처 모르는 어떤 사건에 그만 휘말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면 '내가 10등을 한 사건', 혹은 '내가 10등을 해야될 사건' 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 구원에 대한 모든 과정은 하나님만이 !!

그렇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모든 과정은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는 하나님만 아시는 그 구원작업에 어쩔 수가 없이 말려든 거예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아버지 뜻을 행하려 함이라" 라고 하셨는데, 그 아버지의 뜻은 뭐냐 하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내가 마지막 날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라고, 그게 성경 안에 있잖아요.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러니 성경 안이 예수에게서 나올 때는 존재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건으로 나오지요. 그 사건에 휘말리면 구원받은 거예요. 그리고 그 사건에 진짜 휘말렸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면,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께서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는 것이 믿어져버리면, 그것은 자기가 나쁜 짓을 한 것과 구원이 안 되는 것과는 전혀 별개 문제라는 겁니다.

◈ 구원이 안 되는 사건이 따로 있어 !!

그러면 구원이 안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구원이 안 되는 사건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 그 사람은 본인이 지옥에 가고 싶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이 안 되는 작업 속에, 그쪽 노선의 사건에 그만 휘말리다보니까 지옥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본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구원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회개해서 자살까지 해도 구원이 안 돼요. 아무리 해도 구원이 안 생겨요. 가룟 유다가 스승을 팔아먹었다고 해서 자살할 정도로 착해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15년 동안(?) 해도 구원이 안 생겨요. 그렇게 구원이 안 생기니까 자기 존재가 항상 불안정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억지를 부리는데, 즉 "나는 구원받은 존재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떤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즉 주께서 일으킨 사건에 휘말려서 구원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어느 교회에 가서 뭘 배웠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받은 존재이고, 구원받은 사람이 맞다" 라고 우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구원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됩니까?" 라고 말이죠. 하지만 질문 자체가 사건에서 해답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고, 자기가 용쓰고 애를 쓰는 가운데 무엇을 무엇을 또 추가해야 구원에 도달이 되겠느냐는 겁니다.

그러한 존재에 관한 질문밖에 없는데, 즉 "나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성경말씀을 어떻게 공부하면 구원이 되겠습니까? 어떤 정보를 확보하면,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되겠습니까?" 라고, 그렇게 자꾸만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해대는 겁니다.

◈ 성경에는 바른 교회라는 게 없어 !!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2014년도 우리 교회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미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옆의 교회는 300명이 목표인데, 우리는 500명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500명을 채우고 저쪽은 한 100명으로 갈 때,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겼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라고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에선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산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교회는 성경에는 없는 교회예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밖에 없어요. 그런데 교회가 벌써 두 개가 돼버렸어요. 그러니 다 가짜예요. 그렇게 바른 교회를 하겠다는 자체가 가짜 교회라는 말이죠. 성경에는 바른 교회라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교회 자체가 미흡함이 없기 때문에 말이죠.

◈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의 힘은 그 어디에서?

마태복음에 16장에 보면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데, 즉 죽음의 권세, 지옥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교회에서 나오잖아요. 제가 어느 강의에서인가 했지 싶은데, 대구강의인가요? 교회의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입구에 문을 열면 힘이 나옵니까? 문을 열면 거기에서 에어컨이나 히터 바람만 나오는데 말이죠. 그러면 강대상에 기어올라가면 지옥의 권세를 이기는 힘이 나옵니까?

그리고 제도적으로 봐서, 평신도가 되면 기를 적게 받고, 집사가 되면 기를 더 받는 거예요? 그러면 목사가 되면 기를 더 많이 받아서 뒤로 나자빠집니까? 도대체 그 권세가 어떤 행정조직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느 시간대에서 오느냐는 말입니다. 그게 설명이 안 되지요.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까 파리가 날아온 게 사건이지요. 파리가 언제 날아올지 압니까? 사건은, 파리가 날아가는 것처럼 본인도 모르게 그 사건 때문에, 본인도 존재에서 갑자기 사건화가 되어버려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교회라면, 교회 자체가 성경의 내용이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사건화로 된 교회로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사건화가 된 교회는 설명이 안 되는데, 즉 A에서 B로 변할 때 설명이 안 돼요.

◈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 !!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오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만 죽었습니다. 헌금을 반이나 감췄다가 걸려서, 즉 "네가 나를 속임이 아니고 성령을 속임이다" 라고 해서 성령이 죽이셨는데, 그러면 성령이 탁 쳐서 죽였습니까? 질질 끌면서 죽였습니까? 성령이 죽이실 때 심장부터 멈추게 했습니까? 두뇌부터 멈추게 했어요? 어떻게 했어요?

그게 안 되지요. 그냥 죽였다는 사건에 같이 말려있는 것이지, 성령께서 탁 치니까 그때 숨을 거두었는지, 그게 아니면 치고 난 뒤에 2.5초 뒤에 숨을 거뒀는지, 물론 그런 것은 우리가 알 필요도 없고, 다만 거기서 우리는 "성령이 계시는구나. 성령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죽이시는구나" 라는 것만 알면 된다는 겁니다. 진짜 교회는 성령에 의해서 죽어 나가봐야, 그게 교회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어느 교회가 예배당을 지었는데 몇 사람이 그만 죽어 나가면 황무지가 돼요. 죽으려고 교회에 옵니까? 그게 아닌데, 그러니 겁나서 모두 다 도망을 가지요. 그래서 진짜 교회는 어느 공간이나 어느 장소를 독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성경 속의 내용은 전부가 사건화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그러면 '사건'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사건이라 할 때, 그 사건의 중심은 무엇인고 하면, 사건의 중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신약 쪽에서 창세기를 봐야 돼요. 사건의 중심은 구약에서 어린양입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도 어린양의 보좌에서 모든 사건의 중심이 내려오고 말입니다.

생명나무가 나무로서 그냥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생명나무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사건화가 된 힘이 나올 줄 아담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그 독성 때문에 죽는 줄로만 알았지, 선악과를 따먹은 그것이 저주의 영역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그런 죽음을 표현할 줄은 아담은 상상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건화가 될 때, 그러면 창세기 1장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이야기에서 어떻게 사건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건을 끄집어낼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의 원천이 아니고 사건의 원천을 경유해야 됩니다. 사건의 원천은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을 경유해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경유하기 이전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면, 그러면 예수님을 경유하고 난 뒤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라고 하면, 이것은 대번에 틀린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을 경유하기 이전에 알았던 그 모든 용어들은 존재에서 나왔거든요.

무슨 말인고 하니까, "내가 여기 있는데, 신께서 나를 만들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경유해버리면, "나는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을 믿습니다" 라고 하는, 그 '나' 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린 이후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경유하게 되면 말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경유하기 이전에는 "내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도 아마 동의하실 거야" 라고, 즉 "천지를 누가 만들었다고? -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 참으로 기특하기도 해라. 사탕을 줄게" 라고, 그렇게 칭찬을 받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경유를 하고 보니, 착하다고 사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사탄이 등장해요. 사탕이 아니라 사탄이 말이죠(ㅋㅋ).

그렇게 예수님을 경유하게 되면,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안개가 되어서 날아가 버리고, 있으나마나한 존재로서 진짜 한바탕 붙을 대상인 예수님의 적수가 나와요. 하나님의 원수가 말이죠. 고래끼리 싸우는데 굳이 새우가 왜 끼어 듭니까? 당연히 빠져야지요.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투장, 거기에 어디 감히 사람이 껴드느냐는 말입니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맞지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그래서 어떤 분이 "목사님, 제가 진실을 이야기할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맞지요?" 라고 하신다면, 저는 "틀렸습니다. 왜 틀렸는고 하니, 그것은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말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성경을 그대로 읽어도 틀려요. "그러면 목사님은 안 틀리게 읽어보세요?" 라고 하신다면, 안 틀리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전혀 개입할 입장이 못 되기 때문에 말이죠.

성경에서 자기를 앞장세울 때는, 즉 자기가 사건화가 되게 되면, 그 속에서 우리는 뭘 만나느냐 하면, 자기의 원수가 아니고 천지를 만드신 예수님의 원수를 우리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어있고, 그 처리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보내시고 사건화를 시켰던 예수님께서 마귀를 처단시키고, 좇아내고, 마귀를 굴복시키는데, 우리는 그 현장에 단순히 목격자로서만 사건에 말려들게 하신다는 말이죠.

◈ 마귀와 함께 놀아나는 사명을 !!

다시 말해서, "나는 이렇게 못났는데, 나를 구원했습니다. - 왜 못났는데? -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이 마귀의 유혹에 의해서 살아온 나입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께서 하나님의 원수를 발등상에 함께 하시고 주가 되사, 그 주된 값을 마음껏 발휘하신다고 우리로 하여금 마귀와 놀고 있다고 지적질을 해주시는 거예요. 주님이 주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마귀와 같이 살고 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서 사건화가 되게 되면,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흠뻑 젖어드는 위대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이 놀랍고 고귀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만 돼요. 그러니 신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에요. 우리 몸이 죄를 기억해요. 이제는 마음껏 누리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 어떤 인간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어요? 전혀 할 수가 없어요. 두뇌에 뇌간이라는 게 있어서 왼쪽과 오른쪽 정보가 교류되는데, 그러면 오른손이 일을 하면 왼손이 모르도록 수술을 해서 뇌간을 자르고, 그야말로 너무너무 바빠요.

그리고 한 쪽 손이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는다고 하면, 그러면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또 몰라야 돼요. 도대체 팔이 몇 개나 되어야 합니까? 또 오십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제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도 못해요. 하려고 해도 제대로 팔이 올라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 예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처음부터 다시 해볼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내용이 성경책에 있더라" 라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있어요?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점선이 아니고 실선이죠. 신약에 와서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는데, 그러면 갑자기 자기는 예수 안에 있어요. 창조주 안에 있단 말이죠.

우리의 본래 모습은 진리 안에 있어요. 그렇게 진리 안에 있으면서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면, 자기가 했던 행세를, 자기의 모형, 즉 자기 존재를 긍정하고 자기 의를 챙기기 위해서 착한 척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계속 보는 거예요. 그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기의 모습을 볼 때, 여기에서는 자기가 여기에 있고 단지 책이었는데,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기는 여기 이 안에 있고 바깥의 모든 것은 묵시적 존재, 즉 자기가 여기에 버티고 있는 존재로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진짜 실체, 그게 뭐냐 하면, 악마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우리 자신을 가지고 계속 앞장세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비로소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전에 "창세기 1장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것은 맞는 말이죠?" 라고 자기가 외쳤던 것이, 그것이 곧 배후에서 악마가 사주한 것임이 벌써 들통이 난 거예요. 마귀가 "네가 그것을 알면 구원받아. 그것을 알면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거야" 라고 우리한테 사기를 쳤다는 말이죠. 이미 선악과 따먹은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도 죄가 되거든요. 즉 "사기를 쳐서 네 자신이 대견하고 훌륭하고 믿음이 좋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과시하라" 라는 말이거든요.

◈ 사탄은 서서히 등장하는데 !!

사탄이라는 것이 서서히 등장해요. 이런 것을 공부하려면 참 어려운데, 사탄이 등장하는 것이, 뱀으로 되어 있다가 서서히 등장합니다. 나중에 할 것인데 지금 조금만 미리 해보면, 이게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일 오실 분들을 위해서 내일 다시 반복해드리겠습니다.

성경책이 이렇게 있는데, 이 성경책이 우리를 파견하거든요. 우리가 곧 사건화가 되어서 파견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 때 파견된 사람이 아담이고, 7, 8, 9장 때는 노아이고 말이죠. 노아니까 그 당시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게 대조되면서 보이는 거예요. 그 다음 모세 시대에는 모세 당시에 대조되는 새로운 모세 상이 있을 것이고, 또 엘리야 당시에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세, 엘리야 등등, 이런 사람들의 뒤 배경은 전부가 말씀에서 이미 존재 자체가 답이에요. 답으로서 나와서,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만들어서 답을 주신 주님께 도로 질문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셔야만 됩니까?" 라는 질문을 말이죠.

이미 답은 나와있어요. "천지를 창조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남은 것은 "왜 세상은 스스로 진화가 되지 않고, 왜 하나님이 7일 만에 창조해야 됩니까?" 라는 것인데, 8일도 아니고 10일도 아니고, 45억년도 아니고 말이죠. 진화론에서 지구가 45억이고 우주는 137억년이거든요. 어지간히 길게도 잡았어요. 시간을 길게 늘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왜 45억 동안 세대별로 쥬라기공원도 나오고,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왜 7일 만이냐는 겁니다.

◈ 사건에 무슨 존재적 논리가 개입되는가?

그러니 "우리가 알기에는 45억년이 적당한데 왜 7일입니까?" 라고 물으면, 정답은 45억년이란 대답은 그게 존재에서 나왔으니까, 존재에서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7' 이라는 것은 사건화가 되거든요. 사건에 무슨 존재적 논리가 개입됩니까? 말이 안 되요.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차를 몰고 가는데 김수현이 차를 막는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유비쿼터스 식으로 막무가내로 등장하는데, 그게 어떻게 설명이 되느냐는 겁니다.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불수레를 존재론적으로 따지면, 불수레가 과연 중력을 이깁니까? 가스는 만유인력에 의해서 온도가 높을 경우에 올라가는 거예요. 나중에는 결국 중력에 의해서 떨어지지만 말이죠. 그처럼 과학적으로 설명이 됩니까? 별 크기가 얼마나 작아야 "바로 이 집에 태어났습니다" 라고 하면서 사라집니까? 별이 얼마나 큰데 말이죠. 그게 설명이 되겠어요? 홍해가 갑자기 벽이 되고, 저쪽도 빠져야 되는데 왜 벽이 돼요?

그러니 사건을 이미 자기를 존재로, 즉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을 통해서 파악해나가려고 하면, 그러면 사건은 도망쳐요. 해명이 안 되는 쪽으로 도망쳐버리죠. 즉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쪽으로 도망을 쳐요. 그러니 사건은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건 속에 있는 존재는, 사건이 더욱 더 크기 때문에 그 존재는 사건에 대해서 무화(無化), 즉 존재는 사건의 일부로서 날아가 버리는 것이지, 거기에서 따로 안 깨지고 남아있는 존재덩어리는, 그런 것은 사건 속에서는 전혀 용납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초보 앵커가 와서는 "여기는 화재현장입니다. 화재사건입니다" 라고 하는데, "김 기자,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보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고시공부를 하다 촛불을 넘어져서 불이 났습니다" 라고 하니, "그러면 그 초가 얼마입니까?" 라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불이 났다는 사건이지, 그 초가 중국산인지, 얼마인지는 묻는 게 아니죠. 단독적으로 묻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 그러니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사세요 !!

사건을 중간에서 끄집어내면 여러 개의 존재로 변해버리지, 그것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연결고리는 다 깨져버린 겁니다. 그러니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사세요. 이 말이 더 쉬운데, 지금까지 설명한 것보다 말이죠.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사시는데, 하지만 이것은 잊지 마세요. 그 사건의 원천은 오직 예수님에게서 나온다는 겁니다. 사랑을 받을 자는 사랑을 받고, 또한 미워할 자는 미움을 받고, 그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서 나온 거예요.

◈ 악마, 이리 나와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하는 창세기 1장 1절, 이것을 하고 끝났어요? 이게 시작이에요. 천지를 창조한 사건 속에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는 겁니다. 천지를 창조한 것이 원천이 아니고, 십자가가 원천이었고, 그 십자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깔아놓는 환경으로 조성해나가는데 있어서 화단공사를 한 겁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거실을 안 지었어요.

먼저 집을 짓기 위해서 도로를 닦는 것, 그게 천지를 창조한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다 집을 짓고 보니까 우리 눈에 띠지 않았던 악마가 드디어 나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즉 창세기 1장부터 뭘 겨냥했다는 말입니까? "악마, 이리 나와. 너, 숨지 마!" 라는 겁니다.

◈ 악마는, 인간의 존재로서는 파악되지 않아 !!

악마는 인간의 존재로서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파악되지는 않지만 아담 당시에 사건화가 되면서 악마 대신 뱀이라는 피조물이 나왔어요. 피조물이 아담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 시대에 맞는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 동물원에 가서 뱀과 이야기해봐야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 시대의 사건에 부합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노아 당시에는 방주라는 배를 만들고 들어가기만 하면 심판에서 면제가 됐습니다. 요즘은 그런 배를 만들어봐야 그냥 박물관 전시용으로, 입장료 5000원을 받고 사진 몇 장을 찍고 할뿐이에요. "이것이 방주란다. 아이고, 크기도 해라. 겨우 여덟 명밖에 구원을 못 받았다면서? 글쎄 말이야. 우리 같으면 많이 오겠는데, 노아가 지을 때 애썼을 많이 텐데" 라고, 그렇게 될 뿐이죠.

그렇게 노아 방주가 사건이 아니고 존재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들어가는 자기 자신이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나를 존재이다" 라고 인정하게 되면 남는 문제는, "하나님이여, 이 존재 어떻게 구원시킵니까?" 라고, 존재를 구원해달라는 거예요. 하지만 존재 구원은 없어요. 모든 것이 예수님 사건에 휘말린 판에, 무슨 새삼스럽게 존재를 이야기합니까?

그게 안 되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 라는 존재는 여기 있고, 그 다음에 '나'를 구원할 하나님의 존재가 저기 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있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야고보서 2장을 보면,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귀신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말이죠.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 마귀노자 -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

그러니 귀신이 지금 겁내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아니고, 십자가 사건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말기, 바로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존재는 없고 모든 것이 사건뿐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마!" 라고, 마귀는 그 짓을 하는 거예요.

지금도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을 때, 마귀의 전략은 하나밖에 없어요. "너라는 존재를 네가 지켜야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스피노자가 한 말이에요. 즉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만든다는 겁니다. 물론 스피노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데, 즉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라는 말입니다.

그게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와서 유혹하잖아요. "돌이 떡 되게 해라. 그러면 네가 잘 돼. 네가 뛰어내려라. 네가 안 다칠 거야. 나한테 절해라. 그러면 부귀영화는 예수, 너한테 다 줄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의 시험은 하나밖에 없어요. "네가 잘 돼. 네가 잘 되는 거야. 인생, 너한테 달린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네가 잘 되는 거야. 기도하면 잘 되고, 금식하면 잘 되고, 십일조를 하면 잘 되고. 네가 잘된단 말이야"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이게 바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라고 존재로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에요. 유대인들은 성경에 달달 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악마인 줄을 본인들이 정말 몰랐어요. 예수님이 알려줘도 몰랐어요. 예수님께서 "너희 아비는 악마이다" 라고 하니까, 그들이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너는 뭐냐?" 라고 나오거든요. 그들의 질문을 보세요. "나는 이건데, 너는 뭐냐?" 라고 존재로 질문을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태에 말려들었는가?" 라고 질문하지 않고, "너는 뭐냐?"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요 8:52)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요 8: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본디오 빌라도가 "진리가 뭔데?" 라고 하니, 예수님이 답변을 안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너는 진리의 원천 속에 말려들었어. 너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사형하도록 언도를 내려야 돼. 너는 빼도 박도 못해"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사건화가 된 빌라도의 모습이기 때문에 말이죠. 마귀는 그것을 존재로 급작스럽게 바뀌게 만들어요. 즉 "저는 구원을 받겠습니까?" 라고 묻는 거예요.

◈ 아들로서의 자리 !!

한 가지만 더 하고 쉬겠습니다. 출애굽기 4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했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 50만명 가운데 아들이 몇 명입니까? 이게 참으로 난처한 질문인데, '아들들' 이라고 해야 맞는데, 그런데 분명히 '아들' 이라고 했어요.

(출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그런데 성경책 안에서는 예수님의 존재를 말하고, 바깥으로 나가면 예수님이 사건화가 되어서 나가거든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아들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이 되게 하는 것이, '아들로서의 자리' 라는 말입니다. 그 아들로서의 자리가 신약에 오게 되면, 유일하게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사되는 자리가 곧 이스라엘 자리예요.

그러니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자리를 구원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들이 누구냐 하면, 그 아들은 한 분밖에 없어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하는, 그 아들뿐이라는 겁니다.

◈ 몸이 애굽을 기억해 !!

아들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50만명의 사람이 나와야 되고, 결국에는 50만명 중에 아들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애굽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아니에요. 애굽인이라는 겁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리, 이스라엘의 자리와 같이 사건에 휘말린 애굽이란 점에서 그들은 혜택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몸이 애굽을 기억하는데, 모든 것이 애굽적인 사고방식인데, 그래서 광야에서 열 번이나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했죠. 칼로 도려내도 애굽이 다 떨어져 나가지를 않아요. 계속 도려내고 잘라도, 그렇게 자른 하나하나가 애굽으로 살아있다는 겁니다.

◈ 결혼을 할까요? 말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굉장한 게 뭐냐하면, "네 오른팔이 범죄를 하거든 그 팔을 잘라버려라" 라고 했지요. 그러면 팔을 자를 사람이 있습니다. 팔 하나로 살 수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오른 눈을 빼버리라고 했는데, 그것도 멀쩡한 눈을 말이죠.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났다" 라는 말이 나와요. 그 말이,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습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존재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결혼을 못하게 된 사건에 휘말리게 되거든, 그것을 주께서 일으키신 줄로 알고 믿으면, 그것이 바로 사건에 휘말려서 구원받는 구원의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그런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하옵소서. 피해가게 하옵소서" 라는, 그런 존재적 질문자체가 우리한테 해당이 안 되고, 다만 우리는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 되는 겁니다. 즉 결혼을 하더라도 주님과 결혼한 상태면 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지만, 올해에 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또 새로운 사건에 대비될 수 있는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할 때, "결혼을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 깨우치면 돼요. 이것은 자기의 결혼, 그러한 것과는 관계없이 사탄으로 지배받는 이 세계에서 결혼을 하든 말든 간에 어린양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이 사탄의 세계에서는 분명히 부각되면, 사건화가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을 할까요" 말까요?" 라고 하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그것은 5분 후에 살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5분 후에 멋지게 살아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시켜서 "내년에 결혼할까요? 말까요?" 라고 묻는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다시 조용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냥 흐르는 데로 사세요. 사시면서 사건에 말려들면 되는 거예요.

◈ 그런데, 망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

아들이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이란 것은 원래 아들의 자리, 즉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건방지게 자기들이 아들이라고 하니까, 아들인 줄로 알았던 거예요. 그게 바로 존재로 이해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 존재를 어떻게 지키고 사수하면서, "어떻게 천국에 보내볼까?" 라고, 그렇게 애쓰는 그 자체가 이스라엘을 멸망한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데, 구태여 집단화된 이스라엘을 건지려고, 구원을 받으려고 시도한 자체가, 그들은 옆 나라와 타협할 수밖에는 없었고, 그렇게 구원은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고 했건만, 애굽의 힘을 빌려왔고 또 바벨론에 의지하다가 그들과 함께 다같이 망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망하는 그 자체가, 곧 망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그동안 숨겨진 구원의 자리가 된 거예요. 누구 하나 망해서 재가 될 때, 그 재에서 생명나무가 재를 뚫고 나옴으로 말미암아서, 죄보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망하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한테 증명해 보이는 겁니다.

10분만 쉽시다.

20141.21 재정리 - 녹취 '구'

첨부파일 : 14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창세기강해(1,12~14)(1~9강)(강의정리)--재정리.zip (600.3K), Dow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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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