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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다니엘 10장(포함과 종속)140127-34강a-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다니엘

가락-다니엘 10장(포함과 종속)140127-34강a-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다니엘 10장(포함과 종속)140127-34강a-이 근호 목사

다니엘 10장 할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다니엘 70이레에 대해서 언급을 했죠. 70이레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하니까 제가 걱정이 되네요. 왜냐 하면 언급을 했는데 돌아서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할까봐 약간 걱정이 되죠. 70이레라 하는 것은 전체 인간 역사에 두 개 사건이 개입해서 그 사건으로 끊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건 속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한 일을 그 사건 속에 집어넣은 거예요.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살아나시고, 성전으로서 오셨다가 성전으로 깨지고 성전으로 다시 사시는 그래서 성전 있을 때 이스라엘 됩니다.

이스라엘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접점 지점이 유일하게 있는 민족이 이스라엘 이예요. 다른 민족은 접점 지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전에서만 만나요. 그런데 이스라엘 성전 깨졌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성전 깨졌으니까 이스라엘하고는 안 만나죠. 이스라엘하고 안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을 했다 이 말이죠.

약속은 있는데 약속된 민족이라고 우겼던 자들은 공중분해해서 날라 가 버렸으니까 그 나라를 대신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산될 필요가 있겠죠. 그런데 그 생산되는 그 자리가 뭐냐 하면 그 깨어진 것들을 주워서 거기에 새로운 성전을 만들어서 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담보로 해서 고 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따라서 70이레라는 것은 이스라엘 깨어진 자들을 다시 모아서 성전 짓게 하고 그렇게 지었던 성전 다시 깨지게 만들고 깨어지게 만들어 놓고 깨어진 현장에 다시 “너희가 46년 간 지은 성전 치워라, 내가 삼일 만에 짓겠다.” 해서 주님이 성전 되시고 주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다시 이스라엘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방해 공작에도 구애치 않고 완성됐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시간적 스케줄로 보여주는 것이 70이레입니다.

너무 길었습니까? 그럼 더 간단하게 하죠. 시간에 두 개의 관절이 있었다. 관절 하나, 하나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고 왜 죽으셨고 왜 부활된 것을 미리 담아주셨다. 됐죠?

그런데 그렇게 70이레라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무엇이 다시 중요하냐 하면 ‘아! 묵시 앞에 역사가 소용없는 게 아니었군요.‘ 하는 사실이 이해돼야 돼요. 왜냐 하면 성전을 지어야 되고 파괴되고 다시 예수님 오셔서 성전 짓겠다는 인간한테 맞아죽는 그런 실제 역사 있잖아요. 역사가 어떻게 돼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져야 되겠죠? 거기에 동원되는 조연급들이 뭐냐 이스라엘, 짐승 요거는 악한 쪽이고 좋은 편에는 다니엘 선지자 또 세례요한, 성도 다 뭐냐 하면 하나의 하나님의 드라마의 조연급들입니다. 주인공이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이죠.

그러니까 이 말은 역사라 하는 상식적으로 뭐냐 하면 한 인간의 노동의 산물 이예요. 이걸 civilization, 문명이라 하는데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걸 문명이라 합니다. 문화하고 약간 차이가 나는데 그런 건 따질 필요 없고요.

그래서 인간의 최초의 문명은 도시입니다. 도시! 도시의 창안자가 누구입니까? 아벨이 아니고 가인입니다. 인간의 모든 게 도시 중심으로, 도시가 있어야 왕이 생겨요. 왕이 커줘야 짐승이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큰 성 뭡니까? 큰 성 바벨론이죠. 그 바벨론을 뭐라 하느냐 하면 바벨론의 역할이 요한계시록에 나와요. 조소, 조롱, 또는 무시, 깔봄, 이런 게 그들의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벨론 전체가 음녀니까 전체가 조소, 조롱한다는 말은 이미 바벨론은 의견일치가 끝났다? 토론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의견이 끝나버렸어요. 마감됐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 인간의 문화, 문명이 아닌 것은 어떻게 하기? 조롱하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것은 전부 다 조롱하기, 깔보기, 무시하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우리 몸들이, 우리의 이 모든 환경들이 이미 굳어졌어요.

‘당신은 어떻게 해서 복 받았습니까? 요거는 우리는 존경하되 ‘아무것도 아닌데 복 받았어요.‘ 요거는 무시하기. 무슨 말인지 이해되죠?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이렇게 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이거는 존중해 주기. 그러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구원받기.’ 요거는 짓밟고 조롱하고 조소하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의 정체입니다.

구원은 어린양 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양이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가운데는 어떤 수를 해도 구원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구원 되고 안 되고의 요구는 우리 쪽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곁에 있다가 떠나버린 그분에 의해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모독하기. 조롱하기, 침 뱉기, 죽여 버리기, 그런 속성이 바로 역사입니다.

또 역사란 뭐냐 하면 핍박받는 역사, 또는 깨어지는 역사, 또는 낮아지는 역사, 약해지는 역사, 약해지는 역사 이런 예는 고린도후서 13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고백하기를 “내가 약할 때에 강함이라” 왜냐 하면 내가 약함으로써 내가 비로소 가려버리고 놓쳐버렸던 주의 은혜가 이만큼 크구나. 를 아는 거예요. 이런 사도바울의 말씀을 누가 모독하겠어요?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힘이 모여지고 그 모아진 것을 찬양해야 되기 때문에 강한 것이 축복이고 강한 것이 행복이고 강한 것이 진리라 하는 이쪽에서는 약한 것은 어떻게 돼요? 무시하고 모독할 만하죠.

왜 거지 나사로가 구원된 줄 알아요? 거지 나사로 앞집에 누가 있기 때문에? 부자가 있잖아요. 부자가 거지 나사로, 왜 예수님이 그런 비유를 듭니까? 거지 나사로의 표징이 뭐냐, 상징하는 것은 아무도 거기에 관심 두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심지어 개도 무시할 정도가 됐으니까. 그런데 부자는 날마다 뭘 했어요? 파티, 날마다 파티 했다고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약한데서 오히려 온전하여진다는 이스라엘 온전 개념은 숫자 개념이 아니고 견딤의 개념이라고 주일 낮에 했죠. 나는 백두산 노래가 기억나요.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그러니 얼마나 바벨론 적입니까?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그 소리 들으면 박 집사님한테 얼마나 용기가 납니까? ‘그래, 쓰러지면 안 돼. 내가 일어서야 돼. 내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서야지. 약해지면 안 돼.’ 그런데 성경은 뭐라 합니까? ‘약해져.’ 약해지라는 거예요.

70이레라는 것이 분명히 역사입니다. 역사인데 시루떡 이예요. 시루떡이 위에서 보면 그냥 빨갛게 돼 있지만 옆에서 보면 뭐로 돼 있어요? 층으로 돼 있죠. 흰 떡 위에 팥고물, 역사는 우리는 강자의 역사만 보입니다. 항상 기록도 그렇게 돼 있고, 역사에 의해서 핍박받는 사람 많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약자입니까? 강자에요? 강자입니다. 왜냐 하면 ‘나도 언제 힘 생기면 두고 봐라.’ 힘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기가 패배당해도 강자고 지배해도 강자고 그래요.

장 성택이 약자에요? 강자에요? 강자죠. 잠시 약자 됐을 뿐인데 장 성택 사돈의 팔촌이 와서 뒤집을 수가 있어요. 모든 게 반란이고 혁명이고 하니까,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고 이런 힘 중심의 역사가 아니고 지금 핍박받은 예수님 중심으로 ‘일부러 너희들이 나쁜 역할 한다고 힘이 있는 거야.‘라고 하는 자들의 역사, 이건 힘을 추구한 게 아니잖아요. 오로지 힘 쥔 자들이 활개 칠 때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역사야.‘ 이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나쁜 놈들이 활개 치는 역사이어야 해.‘ 라고 펭귄박수 치는 거예요. ’그렇지, 그렇지. 그래 이겨야 돼.‘ 마치 거지 나사로 앞에 부자가 날로 부자 되는 거 보고 거지 나사로가 펭귄 박수치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조금 더 부자 돼. 자칫하면 천국에 오면 안 되지, 부자 돼야 돼. 옳지, 부자 되는구나.‘ 그게 뭐냐 주께서 이루어나가는 역사의 진면목이라는 겁니다. 연변 말로 ’돌았니? 신입이 그래서 밥 빌어먹고 살겠니?‘ 이러면 그런 소리 듣겠죠.

목사는 교인 수가 많아야 되고, 어디 직장에 가면 승진해야 되고 사업하면 돈 많이 벌어야 되고 그게 찬란한 너 자신들의 각자 역사 아닙니까? 머리만 희어지면 역사라 할 수 있습니까? 찬란한 역사, 뭔가 여전히 꿈 없으면 일부러 꿈이라도 만들어내잖아요.

그런데 바로 이런 힘 중심의 역사가 있어줘야 그 다음에 그 힘에 대해서 무시당하면서 주의 약속은 바로 요런 식으로만 주의 약속이 된다고 그것을 확정짓는 사람의 이어짐, 그것이 바로 역사의 본류입니다. 원래 핵심.

그러면 그게 9장까지면 10장 11장의 그 내용을 여러분들이 10장, 11장은 비어있다고 보고 괄호, 텅텅 비었다고 보고 여러분들이 10장, 11장을 채운다면 어떻게 채우겠습니까? 힌트 드릴게요. 12장에는 종말이다. 자, 9장 그렇게 계획 세웠습니다. 10장, 11장 빠졌습니다. 빈칸 채우게 하는 겁니다. 주관식입니다. 12장은 드디어 마지막 인류는 끝났다. 1290일로 끝났다. 그러면 고 10장, 11장은 구분하세요. 10장 내용 따로이고 11장 내용 따로인데 그 내용에 어떤 내용을 채우게 되면 12장에 종말이 오겠습니까?

우선 머리 좋은 사람부터. 어떤 내용을 채워야 되겠습니까? 이 70이레 역사를 이루려면 다니엘이 등장해야 되겠죠. 지금 70이레는 묵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뭐라 했습니까? 묵시라 하는 것은 반드시 역사로 증명된다 했죠? 하여튼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 묵시라는 것이 비구체화가 아닙니다. 실체가 없는 게 아니에요. 묵시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요. 70이레를 설명해 드렸잖아요. 70이레가 역사로 구체화되려면 뭐가 있어야 돼요? 70이레 계시를 누가 받았습니까? 다니엘이 받았죠. 그럼 다니엘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다니엘이 뭔가 받아야 되겠죠? 10장에서는. 제가 9장 해놓고 10장, 11장 비워놓으라 했잖아요. 그 다음에 12장은 마지막 종말이다 말이죠.

그러면 10장에서는 뭐냐 하면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았다. 요게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다니엘은 힘 있는 역사를 믿는 게 아니고 반드시 이 말씀대로 고난 받는 자가 있어야 된다고 그걸 하겠죠. 11장에는 뭐냐, 고난 받는 자를 고난 받게 하려면 힘자랑하는 자들이 있어야 되겠죠. 그 내용이 11장이예요. 그리고 난 뒤에 12장 되면 게임 오버. 끝나버리는 거예요. 주께서 나타나서 힘자랑하는 자들을 모조리 전부 다 싹 쓸어버림으로써 드디어 세상 역사는 70이레대로 끝,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야기 들어보니 다니엘 쉽네요.

10장 한번 봅시다. 10장 5절에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을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요게 인간의 육신적인 그러한 연결이나 인간의 노동에서 이런 인종은 어떤 인종, 이런 인종 봤습니까? 안 봤습니까? 이거는 인간이 아니고 기괴함. 언캐니라고 기괴함. 아주 흉물스러운. 사람이 아름답다 하는 경우는 대칭구조가 돼야 됩니다.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보면 항상 완벽한 아름다움은 이게 비율이 있어요. 이걸 황금 율이라 하는데 좌우가 대칭이 되는 이유가 인간 본인이 아침마다 거울을 보기 때문에 그래요. 내 몸을 기준으로 해서 내 몸은 무조건 아름다워요. 그래서 아름다움의 출발은 이미 자기 몸이 개시가 되었어요. 내 몸이 아름답게 보는 그 기준에 부합될 때만 아름다워요.

영화배우들이 아름답다. 영화배우는 아름다운데 나는 아름답지 못하면 뭘 해야 따라 붙이죠? 성형해야 되죠. 결국 그 영화배우는 내가 되고 싶은 아름다움의 모델의표준이 돼 버리는 거예요.

그처럼 이 세상은 모든 게 인간의 몸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역사란 뭐라 했죠? 역사란 인간의 몸에 의한 자기적인 것. 인간의 인공적인 것, 그걸 문명이라 했죠. 그 조상이 누구라 했습니까? 가인이죠. 그럼 아벨은? 아벨의 역사는 없어요. 아벨의 역사는 없고 가인의 역사에 파묻혀 가죠. 좀 흉측한 예가 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큰 트럭이 가는데 어린애가 멋도 모르고 기어가다가 트럭 바퀴에 끼었어요. 그런데 트럭 운전사는 그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그 바퀴가 돌아가게 되면 누가 끼어서 울고 있어요? 어린애가 끼어서 울죠. 그 끼어서 피 흘리고 우는 게 아벨 이예요. 아벨 역사 따로 없다니까요. 따로 없고 아벨 역사 만들려면 가인 역사가 강해야 되고 커져야 되고 힘세야 돼요. 그래야 순교의 피가 생생하게 된다고요. 우리끼리 없어요. 있는 사람끼리 안 돼요.

세상 큰 바퀴 축에 끼어야 돼요. 끼어서 욕을 덤터기로 얻어먹어야 돼요. 그렇게 해 야 된다니까요. 그것이 바로 지극히 작은 형제한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 되지, 만약에 예수 믿는 사람끼리 와버리면 전부 다 저희들끼리라면 저희들이 강자가 돼 버려요. 그래서는 안 돼요. 그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가 안 되고 큰 자가 다 돼 있는데요, 뭐.

예수님의 12제자가 그거 실패 했잖아요. 자기들끼리 있으니까 자기들끼리 또 베틀(경쟁)에 나서는 거예요. 누가 높으냐고. 준결승, 결승 뽑고. 항상 인간은 그래요. 세 사람만 있으면 시합을 하는 모양이라. 가위 바위 보를 하든지.

천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다니엘의 형편이 나아집니까? 오히려 천사 보여줬으니까 ‘이제 너는 망가져도 괜찮아.‘ 망가져도 괜찮아요. 왜? 본 게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누굴 봤어요? 예수님 봤죠. 이제는 주님께서 가물치처럼 이리 팽개치고 저리 팽개쳐도 사도바울은 감사해야 돼요.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필요 없어요. 이미 자기는 구원받았기에 주께서 간 십자가를 되풀이한다면 ’더 이상 영광은 없소이다.’ 이렇게 돼야 된다고요.

그런데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시몬이란 사람이 있어요. 빌립이 성령 받아서 기적도 행하고 복음 전하니까 그게 좋았던 모양이죠. 사람들에게 인기 있으니까. 그래서 시몬이 뭐라 합니까? ‘성령 얼마면 돼?’ 이러거든요. 지금 관심사가 어디 있습니까?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느냐에 관심이 있죠. 왜, 그게 역사가 가르쳐 준 우리의 교훈이기 때문에.

역사란 남이 원하는 존재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추방당합니다. 못 살아요. 그래서 제가 아까 유튜브 동영상 할 때 그런 이야기했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자신에게 요구하는 게 있어요. ‘제발 나한테 거짓말을 해 달라.’ 거짓말이라고 좋으니까 ‘믿음 좋습니다. 아유, 왜 이리 착합니까?’ 거짓말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이 임한 사람은 누구만 쳐다보고 오냐 하면, 성령이 임한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이거 오해하시면 안 돼요. 이런 게 어려워요. 성령이 임한 사람이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아니고 주께서 ‘거짓말 하라.’ 시키면 거짓말해야 되고, ‘거짓말 하지 마라.’ 하면 거짓말 하지 말아야 되고. 내 선에서 거짓말 하냐. 안 하냐를 내가 결정할 권한이 없는 게 성령 받은 사람 특징입니다. 맨날 쳐다보고 있어요. ‘거짓말 할까요? 말까요?’ ‘해라.’ 하면 ‘예, 하겠습니다.’

자기의 착함이나 거짓말 안 하는 착함 이런 게 성령 받은 사람은 해당이 안 됩니다. 죄 안 짓는 사람 되기, 이런 것도 없어요. 나는 이미 이리 치고 저리 치면 거짓말 하게 되면 거짓말 할 때는 거짓말해야 되고 어떤 짓도 해야 되고,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왜, 시킨 대로 해야 되니까.

거기에 비해서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누구 안면을 계속 생각해요? 누굴 의식합니까?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가 날 어떻게 평가해 줄 것인가? 그걸 생각해요.

여기서 다니엘 6절에서 모습이 나오는데 이 모습은 가만히 보니 안면이 있죠. 이 모습이 어디 나옵니까? 요한계시록 1장에 보니까 누가 누굴 볼 때 이 모습 나왔죠? 사도요한이 자기에게 등장한 예수님의 모습이 나왔죠. 그러면 다니엘 10장에 나오는 분이 예수님이십니까? 천사에요? 예수님 이예요? 이게 천사에요.

아브라함 찾아온 사람이 천사입니까? 삼위일체입니까? 천사 세 명이죠. 그런데 믿음이 아주 좋다 여기는 사람들이 삼위일체라 여기거든요. 그게 성경 해석에 오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너무 충성심이 많아서. 삼위일체 다 집어넣으면 다 되는 줄 아는 게 어거스틴의 주장이고요.

사람은 존재거든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존재로 보기 때문에 누굴 파악할 때는 그 사람의 사건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A라는 어떤 지점에 있다가 총을 빵! 쐈어요. 그런데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고 사라져 버렸어요. 그리고 2초 뒤에 자기 뒤에 B라는 지점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총 쏜 사람이 어디에 굴복해야 되느냐 하면 A도 아니고 B란 존재도 아니고 A에서 B에서의 과정, 요 사건, 과정, 여기에 굴복해야 되는데 인간은 자기를 존재와 공구리, 콘크리트에 물 넣어서 딱딱하게 하는 것, 자기를 딱딱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보는 방식으로 남을 봐요.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 있다가 언제 거기 갔어?’라고 하거든요. 그럼 뭘 놓친 게 돼요? 어떻게 생성된 자체를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생성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변화는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말하기를 그 오신 분은 ‘누구십니까?’ 라고 해요. 또 사도바울이 예수님 보고 뭐랍니까? ‘누구십니까?’라고 하죠. 주님은 뭐라고 답변합니까? 그냥 ‘나는 예수다.’ 하지 않고 앞에 사건을 붙이죠.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니라.“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세 명의 천사는 그게 예수님이냐, 천사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세 명의 천사가 장차 예수님과 연결이 돼요. 연결과정을 주목하라는 겁니다. 그 연결과정의 첫 그림이 뭐냐 하면 ‘네 아내가 임신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내년 이맘 때 쯤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삭이 예수님입니까? 아니죠. 그러면 사람들이 뭡니까? ‘야, 이삭 믿으면 구원받겠다.’ 이삭 믿으면 구원받습니까? 또 이삭을 뭐로 봅니까?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뭐로 봐요? 또 존재로 보는 거예요. 왜, 본인이 평소에 본인이란 존재만 어떻게 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의 사건인 걸 모르고 내가 예수님한테 뭘 갖다 바치면 복을 받느냐 생각하는 겁니다.

마르다가 예수님한테 잡채 해주고 뭐 해주고 하는데 자꾸 뭔가 잘해주고 잘 해드리면 다시 받는 것처럼, 평소에 우리가 인간 대 인간에서 남이 나에게 잘해주면 그 사람에게 간 쓸개 다 빼주지는 않죠. 그냥 고맙다 하죠. 왜냐 하면 아무리 잘해줘도 그 사람 존재가 되고 싶지 않잖아요.

그런데 구원은 그게 아니고 내가 내 존재를 포기하고 주님의 몸에 붙어있는 주님의 존재가 되는 게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내 존재를 생각해버리면 예수님 믿으면 믿을수록 누가 훌륭해져버려요? 예수까지 믿는 내가 더 훌륭해져버려요. 내 존재가 너무 잘 믿기 때문에 내 존재가 너무 아까워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원대로 복이 안 온 것은 아마 다음에 큰 복을 주시려고 미리 작은 복은 빼려고 안 주시나, 이렇게 혼자서 자꾸 생각한다니까요. 존재를 존재로 생각하는 그 버릇 때문에 중간의 그 변화 과정을 다 놓쳐버리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찾아온 것은 그냥 천사에요. 천사지만 그냥 천사라 하면 안 되고 예수님과 연관된 천사, 오실 예수님이 하실 기능을 보여줄 천사, 그렇다면 다니엘 10장에 나오는 이 모습은 천사인데 그냥 천사가 아니고 장차 요한계시록에 나타날 그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천사, 해결됐죠?

인간은 자기를 단단한 존재를 대상으로 자기를 분석하려하는데 주께서 보낸 것은 어떤 기능, 어떤 역할, 어떤 액션을 보라. 그렇다면 그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불 같고 눈은 횃불 같고 팔은 빛난 놋 같고 말소리는 무리 소리 같고, 놀라겠죠. 놀라면 패션쇼 합니다. ‘어때? 내 스타일 어때? 찰칵, 찰칵.’ 이렇게 폼 재는 겁니까? 요게 기능이 되면서 그 다음에 바사나라, 그리고 헬라나라 작살내는 21절에 미가엘의 기능, 전쟁하는 천사, 그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언약이 하나님, 미가엘의 전쟁은 언약에서 도출된 것이고 언약에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근거해서 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묵시라 하는 것은 묵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뭐로 구체화된다 했죠? 역사로 구체화된다. 역사 필요 없는 거 아니죠. 그런데 역사가 둘로 돼 있다 했죠? 자꾸 모른다 하니까 되풀이하는 겁니다. 역사가 시루떡처럼 둘로 돼 있죠. 우리가 아는 역사는 뭐냐 하면 역사는 누가 꾸려나간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꾸려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택한 백성은 따로 있습니까? 그 안에 끼어있습니까? 끼어있는 거예요. 힘을 부리는 그 힘 때문에 숨도 못 쉬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모독당하고 참람한 욕설을 당하는 모습, 그런 모습으로 같은 바벨론 성에서 같이 사는 거예요. 짐승의 인 맞은 사람이나 그리스도 인 맞은 사람이나 다 같이 어디 살고 있습니까? 다 같이 바벨론에 살고 있잖아요. 한쪽은 바벨론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한쪽은 바벨론에서 순교당하고 모욕 받으면서 살고 사는 주소지는 맨 바벨론, 팔공 길, 맨 주소는 바벨론 주소라니까요. 우리가 어딜 가요? 기도원에 갑니까? 어딜 갑니까? 따로 뭐하겠다고. 이 세상에서 섞여서 살아야죠.

섞여서 사는데 어떤 땐 기분 나쁘죠. 화나죠. 화내지 마세요. 이미 봤잖아요. 십자가를 봤잖아요. 눈앞에 십자가가 보이잖아요. 이미 다니엘은 뭘 봤다? 다니엘은 이미 이상하게 생긴 천사를 봤잖아요. 기괴한 천사. 사람은 아닌데 찾아온 어느 분, 그러면 사람 속에 속하지 않죠.

그러면 사람 속에 속하지 않은 천사를 만났다는 것은 다니엘은 비록 사람의 모양새, 사람 육체를 갖고 있어도 소속은 기괴한 쪽에 속하죠. 내 모습이 이렇게 됩니까? 네 모습 걱정하지 마라. 다니엘 자체도 하나의 사건이니까. 다니엘이 인간의 몸으로 이런 계시 받고 이렇게 전도하는 그것도 다니엘 내가 한다고 하면 안 돼요. 너한테 찾아온 기괴한 천사나 다니엘이나 다 같은 입장 이예요. 전부 다 주님 앞에서는 한 사건일 뿐 이예요.

천사가 그리스도 사건을 증거 하듯이 다니엘은 인생 살아가면서 풀어 나오는 것은 다니엘 자기 사건이 아니고 자기를 구원해 준 주님의 사건이 날마다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세상 역사 보고 놀라고 이런 거 없죠. 다만 천사 보고 기절하고 혼절이 나는 겁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사람도 다 있다니. 평소에 안 보던 인상이다 말이죠.

그래서 7절에 봅시다.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분명히 역사적 사건인데 이게 기존에 있는 인간의 노동의 결과로서의 역사는 아니고 그 역사에게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그 역사에 포함되는 역사, 내가 말을 하면서도 어렵게 이야기하네요. 종속되지는 않아도 포함된 역사.

인간은 유한하죠. 인간의 역사도 유한하죠. 그런데 여기 예수님 오셔버리면 예수님은 무한입니까? 유한입니까? 무한이죠. 하나님이니까 무한한 분이죠. 유한에 종속되지 않아도 포함돼 있는 분, 이해하시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이게 회색인데 제가 회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제가 회색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이 세상의 모든 회색을 내가 다 갖고 있지는 않죠. 일부를 내가 입고 있죠. 그러니까 나는 회색에 포함돼 있지만 회색에 종속되지는 않습니다. 왜, 안에 까만 거 나오니까.

우리 성도는 포함돼 있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 종속되지 않아요. 그럼 종속됐나. 포함됐나를 알려면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위 단계로 올라가야 되겠죠. 위 단계 올라가서 이야기하신 분이 예수님이고 신약성경입니다. ‘너는 마귀에 속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다.’ “아버지께서 보낸 자는 다 내게로 온다.” 분명히 하나님께 속했죠. 저쪽은 어디 속했습니까? “그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사단에 속했죠.

이걸 논리에서 메타라 하는데 우리는 아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메타에서 보면 종속관계가 확실한데 메타가 안 보이니까 이건 종속된 끼리 비교하니까 서로, 서로가 잘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는 말이 “네가 본다고 하니까 소경이고 못 본다고 하니 소경이 아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메타 말고 인간의 밑에 있는 대상 선에서 이야기해버리는데 사실 이 말은 뭐냐 하면 메타, 위쪽에서 이야기하는 걸 아래쪽에서 못 알아듣는 거예요.

제가 어제 말고 지난주일 설교에 홀로그램 이야기한 거 기억납니까? 입체사진, 입체사진 보면 아무형상 안 보이죠. 그런데 이걸 백색광에 보이면 입체가 나오죠. 왜냐 하면 직접적인 대상 체, 사과나 꽃을 통과한 레이저 광선의 필름과 직접 그냥 쏘였던 레이저 광선 두 개를 놓으니까 이게 한번 거치고 온 게 불순물 이예요. 그걸 파동에서의 간섭효과라 해요. 간섭효과 때문에 얼룩이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는 얼룩인데 모든 인간도 얼룩이지만 어떤 얼룩이냐 하면 분명히 인간은 인간인데 자꾸 복음을 이야기하니까 이게 얼룩인 거예요. 인간은 인간인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거예요. 사도행전 1장 8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뭐가 되리라? 사람이 되리라? 네가 네 자신의 증인이 되리라? 아니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있으면 자기 증인이 최종적 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나의 증인이 최종적이 아니고 이게 얼룩이기 때문에 뭘 보여줍니까? 입체를 보니까 그게 사과가 나오네. 우리 보기에는 어설픈 내가 보이는데 우리를 주의 성령의 빛으로 보니까 뭐가 보여요? 우리 안에 누가 계시는 걸로 보여요? 예수님이 계시는 걸로 보이는 거예요. 이게 쉬운 얘기에요? ‘내 안에 누구 있다?.’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내 안에 누가 있다? 내 안에 또 내가 있다? 내 안에 누가 있다 이 말이죠.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들어온 누가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내 안에 마귀 있다.’라는 말을 하란 말이죠. 그런데 그런 소리 사람들이 안 하죠. 그때는 복음을 전하면 그 소리 고백 안 해도 ‘어, 네 안에 마귀 들었구나.’ 알아채는 그런 즐거움이 있습니다. 집에 가서 아내한테 물어보세요. 아내한테 마귀들은 즐거움을 누려~

사람이 뭔가 노동을 해서 그 대가로 천국을 가든지, 지옥을 가든지, 뭔가 그게 역사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신들린 것처럼 찾아와서 구원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이 계룡산에서 내려온 인간아. 하는 것처럼, 다니엘 10장 6절에 보면 다니엘이 계룡산에서 내려왔는지 자기가 봤다는데, 참 미치겠어. 정말.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그의 신학이 바뀌었다 할 때에 성경에 있는 말이니까 일단 인정해주지만 사실 말이 안 되는 게 그렇게 되면 신학의 보편성이 떨어져 버려요. 뭐냐 하면 사도바울이야 좋겠죠. 자기가 예수님 만나서 신학이 바뀐 건 좋은데 안 만난 사람은 어쩌자는 겁니까? 안 만난 사람은 척! 하는 수밖에 없죠. 예수님 믿는 척! 만난 척하는 수밖에 없죠. 그렇잖아요. 사도바울 자체를 흉내 낸다고 구원받습니까? 사도바울을 흉내 낸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여기 디모데전서 1장을 의존교회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깜짝 놀랐어요. 뭐냐 하면 1장 20절에 보면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갑자가 사단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그러니까 지금 사도바울이 하는 일은 사단과 관련성이 있는 일이다? 아니다? 사단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과 관련돼 있죠. 그러면 더 나아가서 그걸 줄여서 사도바울이 하는 일은 사단에 속한 자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이다? 맞죠.

우리는 단순히 사도바울이 하는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알았잖아요. 그런데 그걸 더 들어가 보니까 사도바울이 하는 일은 복음만 전하는 일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뭐하는 일이다? 사단에 속한 자를 ‘속했다.’고 분류하는 일도 사도바울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놀란 거죠.

보험회사 영업사원 같으면 대번 쫓겨날 일입니다. 그냥 ‘한 구찌 드세요.’ 하면 될 일인데 ‘당신 한 구찌 안 들면 지옥 간다.’ 이런 소리 하면 안 되죠. 기분 나빠서 들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보험 든 사람이 아니에요. 꼬시는 사람이 아니에요. 있는 걸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뿐 이예요. 왜, 주님을 봤기 때문에. 만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살고 죽는 것도 자기 맘대로 못하고 로마 가는 것도 놀러 가는 게 아닙니다. 놀러 가는 거면 그렇게 잡혀서 가는 이게 연출도 아니고 뭡니까? 주님께서 십자가 가는 길을 주께서 연출했죠. 믿는 사람이 이렇게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주께서 연출하는데 세상에 연기하는 사도바울 옆에 주께서 딱 들어붙어서 연기지도를 하네요. 환장할 지경 이예요.

자, 풍랑이 인다. ‘주여 어찌합니까?’ ‘짐 다 버리고 배를 포기해라.’ ‘그럼 안 되는데…’ 연기, 연출은 내가 연출한다니까. 너는 내 곁에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 너는 반드시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게 돼 있어. 그러니까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음향효과와 더불어서 실제로 파도를 거세게 흔드시네요. 배는 다 부서지고 멜리데 섬에 가서 추장 아들 만나서 병 낫게 하고 그전에 이벤트로 놀라게 하는 뱀이 와서, 무슨 전도하는데 ’여러분, 애들은 가라, 자, 뱀이다 뱀, 물어도 안 죽습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이런 걸 상상도 못 했습니다. 뱀이 와서 물었고 하나의 사건이고 ’이건 뭐야, 파리야 뭐야? 뱀이야?‘ 하니까 그것도 독사한테 물렸는데 독사 발이 안 듣는 모양이라. 다니엘 같아.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는데 사자가 먹고 싶은데 입에 지퍼를 채워놓으니까 사자 입이 안 벌어지네요. 사자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음, 음, 음, 말은 못하고 입이 벌어지지 않는 거예요. 다니엘이 가고 난 뒤에 입이 벌어지네. 와, 그 다음부터는 그동안 굶었던 식욕을 채우는데 완전히 사람을 뜯어먹는데 뼈까지 다 뜯어먹었어요.

역사입니다. 분명히 다 역사인데 사자 굴 들어가고 다 역사인데 역사가 이상해. 남한테는 이상하지 않은데 성도한테는 역사가 이상해. 뭔가 역사가 정돈이 안 돼요. 정돈이 안 된다는 말은 내가 원인이 되어서 딱 거기에 예상된 결과가 나와야 되는데 이게 안 돼요. 그건 왜냐, 이 역사 밑에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이미 시간의 정돈은 주님의 70이레에 대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몸에서 나온 시간은 이건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자, 그 다음에 봅시다. 그래서 봤기 때문에 신이 났는데 그 다음부터 일이 복잡하게 되었어요. 역사가 복잡합니다. 그런데 13절에 “그런데 바사 국군이…” 한글로 돼 있어서 모르죠. 제 책을 한 자로 돼 있는데 “바사 國(나라)君(임금) 나라의 임금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라고 돼 있어요. 그러면 바사나라의 임금이 고레스인데 고레스가 왜 막아요? 이건 뭐냐 하면 바사나라 임금 역할 할 천사가 나를 이십일일 동안 막은 거예요. 그러니까 바사나라든 헬라나라든 여기 뒤에 보면 20절에 “바사군과 헬라군이 싸우려니와” 하는 것은 각 나라마다 담당하는 천사들이 있어요.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담당 짐승, 담당 마귀.

그러니까 인간이라 하는 것은 이건 껍데기에 불과하다니까요. 모든 민족의 흥망성쇠는 그건 주님의 스케줄대로 될 뿐 이예요. 이사야에 보면 나오는데 앗수르 군대가 185.000명이잖아요.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몇 명이 살아 돌아갔습니까? 다 죽었는데 그 앗수르 군대를 누가 죽였습니까? 천사가 죽였죠. 앗수르 군대가 올 때 천사하고 싸우려고 왔습니까? 유다 히스기아 왕하고 싸우려고 왔습니까? 유다하고 싸우려고 왔지, 천사와 싸우려고 온 게 아니잖아요. 천사하고 싸우려고 왔다가 죽은 건 할 말 없죠. 저쪽은 신이고 이쪽은 인간이니까 안 되는 건 아는데. 유다하고 싸우려고 왔잖아요. 그러면 누가 죽였습니까? 유다를 지키는 신이 누굴 죽인 거예요? 지금 앗수르 군대를 지킨다는 그 우상을 완전히 작살낸 거예요.

어렵게 하지 말고 쉽게 합시다. 애굽에 신이 있죠? 애굽의 신을 누가 심판하고 멸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으로 했죠. 그래서 출애굽 할 때 뭐냐 “애굽의 신들을 멸하려 함이라.” 그게 출애굽에 보면 여러 번 나와요. 그러니까 도대체 이 성경 자체가 분명히 우리는 내가 있는 곳이 역사인데, 우리가 만드는 게 역사인데 주께서는 우리가 만드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네가 너의 뜻에 따라서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널 종속시키는, 다른 세력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되는 겁니다.

아까 종속, 포함 이야기했죠? 우리는 포함될 뿐이지 종속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죠. 첫째 시간하면서 어려운 거 해봅시다. 하나님이 인간이 만든 신에게 종속됩니까? 포함됩니까? 둘 다 아닙니다. 자, 이런 거예요. 아까 질문하고 비슷한데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잖아요. 만들어진 인간은 묻습니다. 실례지만 하나님,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요?’라고 했을 때 그 하나님은 종속된 하나님입니까? 인간에게 포함된 하나님입니까? 인간에게 포함된 하나님인데 인간은 그걸 종속된 하나님, 자기 밑의 수하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말 상대되는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질문이 나온 거예요.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자, 선악과는 인간에게 종속됩니까? 포함됩니까? 마귀는 선악과가 종속되었다고 했어요. ’네가 따먹으면 따먹힐 것이다.‘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과는 인간에게 따먹혀 버렸어요. 따 먹혀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을 더욱 더 선악과에 종속시키게 되는 거예요.

더 알게 쉬운 게 뭐냐 하면 내가 지나가는데 누가 도박하고 화투치고 있어요. 그럼 내가 거기다가 판돈을 걸었습니다. ‘자, 컵 세 개 중에 어느 쪽에 있습니까? 내가 거기 돈을 한 것은 내가 선택한 거예요? 거기에 포함된 겁니까? 종속된 겁니까? 내가 참여한 것은 잠시만 참여하고 돈만 따면 튀려고 했는데 나는 포함으로 그냥 ’참여해볼까. 포함으로 봤는데 그쪽에서는 뭡니까? 요거는 완전히 밥이 된 거예요. 종속시킨 거예요.

인간이 악마한테 꼬임에 빠져서 선악과 따먹을 때 선악과가 보통 나무 열매인 줄 알았어요. 따먹으면 따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도리어 인간이 따먹혔다고 보면 돼요. 선악과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은 선악과 노예로서 종속돼 버린 거예요. 같이 마귀와 더불어서 같이. 그 선악과에 종속된 순간 선악과의 정체는 뭐냐 하면 생명나무와 연계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악과 따먹히는 동시에 생명나무 길은 차단됐으니까 사실 인간은 그 연줄을 못 봤지, 볼 수가 없는데 배후에 삐삐선, 케이블로 연결돼 있어서 저쪽 따먹으면 이쪽 못 따먹게 돼 있어요.

결국은 이게 뭐냐, 하나님의 엄위와 자비의 속성 이예요. 인간은 말려든 거예요. 그렇게 성경해석 해야 됩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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