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강-YouTube강의(속이지 않기)1401027-이 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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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62강-YouTube강의(속이지 않기)1401027-이 근호 목사
사도행전에 보면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많은 충돌이 일어나고, 핍박도 일어나고, 회개하는 것도 일어나는데, 충돌의 그 기준이 어디 있느냐 하면, 성령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10절에 보면,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 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에게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좋게 하는 것을 같이 병행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주장을 하면서 사도행전에 있는 사도들은 많은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교회의 이야기들은 만약에 사람을 좋게 하지 않을 경우에 교회가 이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많이 나타나겠는가? 그리고 그 교회가 주장하는 신학이 정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신학인지, 기쁘게 하지 않는 신학인지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됩니다.
만약에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환영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에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면 본인들이 망가집니다. 본인들의 인생이 나락에 빠집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예수님 하지만 사람들이 제일 질겁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자기가 무너지는 겁니다.
자기가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거예요.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물론 생계도 보장되지 못하고, 하나의 존재로서 나와서 인간답게 살아야 되는데, 이 사람, 저사람 모든 사람에게 밀침을 당해버리면 이 세상 어디 가서 발붙입니까?
그래서 어떻게 사람을 기쁘게 하느냐, 아니면 그 사람들 미움 받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선 본인부터 자기 자리를 마련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맞추어 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이예요. 그 외에 다른 방식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그 외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거예요.
그 특징이 뭐냐, 성령을 받게 되게 되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서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을때 누가 반박하느냐.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 당시 종교인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같이 더불어 산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들에 의해서 상당히 그들은 어떤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을 속이고 헌금하는 대목이 나오죠. 그것도 역시 속이는 자예요. 그 속이는 자가 하루에 두 부부가 다 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8장에 보면, 시몬이란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사도들이 성령을 받으니까 자기도 성령을 받고 싶어 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주변사람들이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아 넘어가 주더란 말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나를 대단한 존재로 간주해 주는 겁니다. 제 말은 주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들리는 소리가 ‘너는 너 자신을 속여서라도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다오.’ 라는 요청인들이 주변에 깔려있다 이래 보시면 되는 겁니다. 누가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자신을 속여서라도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해 줄 경우에만 내가 살 수가 있는 겁니다.
시몬이란 사람이 성령 받기를 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돈을 줄테니까 내게 성령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거예요. 남들에게 인정받을 경우에만 내가 사는 이유가 생긴다는 겁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교회의 신학을 간단하게 말하면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거예요. 개혁주의 신학은 딱 하나만 알면, 개혁주의 정체가 드러나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너의 역사가 너를 말해 준다는 겁니다.
역사를 통해서 내가 과연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 받겠다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이예요. 근데 역사를 쪼개보면, 역사라 하는 것은 본인의 역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건전한 역사라고 인정해 줄 경우에만 그걸 옳은 역사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겁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믿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인정하는 역사에 내가 같이 속해 버리면 더불어, 함께 그들에게 인정받으면서 나도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개혁주의 신학이고, 그 개혁주의 신학을 교회에서 설교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걸 듣는 교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빙자해서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그 나만의 역사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는 거래와 흥정에 의해서 그들은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신학,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남들이 진리라고 인정해 줄때만 진리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자기 마음에 맞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을 속이는 거예요. 하나님을 속이는 겁니다. 사도행전에 사도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진 이예요. 이 말은 다른 말로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너를 속여서라도 우리가 기뻐하는 것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 받은 사도들은 절대로 너희들을 속이지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못살죠. 그래서 순교의 열전이죠. 죽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데 그들을 그들의 공동체 사회에 그들을 수용해 주겠습니까? 안하죠? 배척하죠. 사도행전은 이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배척받는데 그 배척받는 것의 반복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성령 받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리를 전파했는가, 그것을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그리고 성도들의 성령 받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되풀이 해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내가 온 것은 너희와 타협하러 온 것이 아니고, 너희들과 전쟁을 치르러 왔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옳은지, 너희가 옳은지 너희가 마귀한테 속고 있는지 아니면, 나 예수가 너희를 속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오히려 거짓말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거 했습니다 그 제거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일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를 속이는 자로 간주했던 그들의 판단이 맞는지 반대로 그들의 정당한 판단이라고 여겼던 그 판단에 의해서 죽어버린 예수님이 정말 그동안 사람들을 속이지 않은 분이였는지.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갈라디아서1장10절에 있는 말씀처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에 먼저 사람들이 뭘 좋아 하는지를 간파를 해야 돼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피해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란, 제발 우리들을 속여서라도 우리의 원하는 바를 해다오. 우리에게 축복해다오. 그들은 간절히 요청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 옵니다.
절대로 그들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 원하는 바를 이야기 했습니까, 예수님은 진리를 이야기 했습니까? 주님은 진리요, 길이고 생명입니다. 바로 그들의 원하는 것을 책망함으로서, 책망 그 자체가 진리가 되는 말씀,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사도들 입에 담아 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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