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언약의 피 140126우리교회스가랴

언약의 피 140126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언약의 피(스가랴 9:11-13)

이근호

14-01-26 15:54

언약의 피

2014년 1월 26일 본문 말씀: 스가랴 9:11-13

(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9: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9:13)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언약에서 피’가 나오면 내가 너희들을 힘들게 한 원수들을 향하여 배가 보복하도록 조치해주겠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나 그 이후의 사람들은, 말씀의 구체화를 ‘헬라 제국의 후손들에 대한’ 전쟁을 통한 승리에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즉 말씀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상황이 맞다면, 그리고 오늘 본문이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실제 예언이라면, 그리고 세계의 모든 역사라는 것이 예언된 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맞다면, 이스라엘은 참으로 최종 승리를 낚아채는 유일한 민족이 된다는 점을 받아들일 마음 준비를 갖출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믿음에 속한 자인 바를 티를 내려면, 이스라엘 국가가 연합해서 군사력으로 헬라 제국에 뿌리를 둔 현 모든 제국들에 대한 군사적 보복하는 장면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 말씀은 빈 말일 수가 없음을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자신은 덩달아 신앙인의 반열에 소속되어 있음도 확인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놓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에서 피가 나와야 될 이유를 인간들은 하등 갖지를 못하게 됩니다. 언약은 율법입니다. 율법이란 법입니다. 법의 실효성 있는 실제성이란 피로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 있는 인간 존재’의 실제성에서 검증된다고 알고들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어긴 자를 돌로 치라”고 했을 때, 참으로 법이 법대로 이스라엘에서 성취되는 순간은, 이 법령을 외워서가 아니라 안식일을 어긴 자가 발생되어야 하고, 그 발생된 자에 대해서 돌이란 딱딱한 물체를 통해 숨을 끊어놓는 태형이 벌어져야만 하는 겁니다.

아무리 안식일 금령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 일가친척이 안식일을 범했을 때, 돌을 들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모면시키느냐를 걱정한다면 이 사람은 안식일이라는 율법은 어긴 사람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언약의 완성에서는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다 지킨 사람이나 사람들의 출현을 두고 말한다고 믿게 됩니다.

물론 율법 제사법에서 제물의 피가 흐르게 되지만 이는 전체 율법의 일부에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보는 겁니다. 제물의 피가 흐르더라도 그것만으로 ‘언약 전체를 대변한 그 피’라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까먹지 않고 꼬박꼬박 성전에서 양의 피로서 제사드리는 그 행위를 하는 자들의 존재와 행함이 진정한 언약의 완성의 일부를 점하고 있다고 믿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언약의 피’는, 전체 언약을 전체 다 준수해야만 자부하는 자들에 의해서 무시당하고 배척당한 식으로 ‘언약의 전체성’이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겁니다. 이는 언약이란, 인간들에 의해서만 지켜져야 하는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제정자가 법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크나큰 오해를 유발하는 여부를 보이는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 스가랴 말씀을 주던 그 시기가 이미 이스라엘이 멸망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본질이 무참하고 모욕받는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다시 통합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제국들에 대한 보복 전쟁이 벌어지고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한다는 스토리가 성립됩니다.

즉 어린양이라는 제물의 피가 전체 언약 완성을 대변하는 피인 것을 밝혀지려면 율법이라는 언약이 어떤 전개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율법대로 제사드림으로 모든 법의 완성이 종결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먹고 싶으면 운다. 울면 젖을 준다는 규칙을 엄마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간이 지나고부터 아이가 울어도 엄마는 젖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웁니다. 아이가 더 크게 우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 확정적으로 결론 내린 바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울면 젖 준다’ 원리입니다. 아이는 이 원리를 절대로 깨뜨리고 싶지 않고 그것을 깨뜨리고 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알 길이 없고, 이 법을 대신할 방식도 미리 알지 못합니다. 그 주도권은 엄마가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기껏 할 수 있는 바는 더 크게 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고 더 화를 내는 엄마는 그 아이로 하여금 본인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그 원칙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언제까지 젖이나 먹고 살 겁니까? 밥을 먹을 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화내는 것을 통해 결국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역설을 통해 배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역설과 모순이야말로 진리의 나타남입니다.

율법의 경우, 애를 때리고 화를 내는 식이 같이 도리어 아이에게 엄마가 죽어버리는 일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겁니다. 즉 율법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지뢰 밟은 것처럼 무너져내려버립니다. 즉, 양을 매일 잡아 언약의 피를 내는 그 작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이 살해당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쳤습니다. 이 “다 이루심”을 정답해서 모든 율법 준수의 상황을 소급시켜서 점검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온통 지뢰밭이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게 만들기 위해 촘촘히 놓여있는 지뢰밭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0:9에서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 것의 폐함이 없다면 율법 완성을 언급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율법 안에서 하나님도 죽고 모든 인간도 다 죽었기에 결코 인간의 몸에 의한 ‘율법 완성’은 더 이상 없는 겁니다.

율법 완성은 오직 ‘언약의 피’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헬라자식들에 대한 보복전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약성경에 와서는 ‘언약의 피‘를 받아드리지 못한 자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복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브리서 10:28-29)

『하나님 아버지, 말씀 안에서 우리가 날마다 무너지고, 그 완성의 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4-01-29 13:26

23강-슥9장11-13(언약의 피)14012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스가랴 9장 11절부터 1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321페이지입니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스가랴에게 주신 이 말씀 가운데 오늘 내용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언약의 피가 나타나게 되면 그동안 네가 당했던 배나 갚아줄게.‘ 그런 내용 이예요. 그런데 그냥 언약만 나타나서는 안 되죠. 여기 11절에 보면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왜 언약이란 말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그 뒤에 피가 왜 이렇게 달려져 있는가 하면 그전에 언약이 없었던 게 아니고 있었어요. 그걸 여러 가지 모세 언약, 아브라함 언약을 알 수 있습니다마는 한 마디로 말해서 율법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 율법에서 마지막 최종 빠져나오게 되면 피로서 나오는 거예요. 가자미 회 이렇게 짜면 물기 나오고 회가 바짝 되잖아요. 뭔가 한약도 짜면 한약 탕이 되죠. 율법이라는 것을 짜면 뭐가 나오느냐, 피가 나온다는 겁니다. 어떤 분의 죽음이 나온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율법은, 율법 빼버리면 법이죠. 법이 만약에 주어지면 우리 같으면 피가 나오는 게 아니고 법을 지키는 잘난 존재, 내가 다시 확인 되게 돼 있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니, 나에게 돈을 꿔 달라 하는 사람 같으면 전에는 안 꿔졌는데 꿔주고 안 갚아도 돼요. 오! 놀라워라 내가 감히 내가 돈을 꿔주고도 안 갚아도 된다는 되지도 않은 발언을 내 입에서 나오다니 놀라워라.’

또는 성경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 ‘아이쿠,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 그런데 나에게 해코지 한 사람이 ‘형님 잘못했습니다.’ 할 때 ‘그래, 용서할게.’ ‘오! 내가 나밖에 챙기지 않는 내가 용서가 나오다니. 내가 원수를 사랑하다니. 야, 나도 이제 괜찮은 존재가 되었구나.’ 라는 게 나와요. 절대로 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 죽어야 마땅해.’ 이게 나오는 게 아니고, 야, 나도 사람 됐구나. 교회 나와서 사람 됐구나. 술도 끊고 담배 끊고 야,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게 나와요.

그런데 그 율법을 신약에서 사도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뭐라 했느냐 하면 그걸 쉬운 말로 하겠습니다. 지뢰, 밟으면 터지는 겁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는 그 탈북자가 지뢰밭을 알아서 오라 하면 도저히 겁나서 못 오죠. 밤중에 오다 보니까 안 터졌는데 사실은 촘촘하게 지뢰를 묻었더라면 절대로 그 사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지를 못합니다. 어느 지뢰든 하나를 밟게 돼 있고 어느 지뢰든 밟으면 온 지뢰가 터진 게 돼요. 여러분 지뢰를 두 개 밟아야 죽습니까? 한 개 밟아야 죽습니까? 4647개 밟아야 죽습니까? 사람이 온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하나의 지뢰를 터진 것이기 때문에 그게 저주 받게 돼 있습니다.

주께서 지뢰를 깔아놓은 줄 몰랐던 거예요. 유대인이나 오늘날 교회나 이 사람들이. 지뢰를 피한다? 여러분들이 007 영화나 첩보영화에 보면 마지막 보물을 지켜놓은 데는 적외선이 쫙 비취게 돼 있어서 육안으로 보면 안 보이지만 특수 안경으로 보면 붉은 선이 있어서 거기에 닿으면 경보음이 울리게 돼 있다고요. 여기서 온갖 에어로빅, 요가 하는 사람, 특수한 요원들이 이리 타넘고 저리 기어서 드디어 도착하고 도착해서 보복을 드는 순간 물이 차 있기 때문에 갑자기 거기서 왱왱 울리고 하는 그런 거, 미션 임파시블, 빰빠빰빠 밤빠 하면 그만 그게 나와요.

지뢰밭, 율법이라는 그 경보망을 통과해서 드디어 영생이라는 그 생명나무 따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아무도 없죠. 아무도 없다는 것이 교회에서는 이것이 상품으로 내놓을 수 없어요. 아무도 없다는 거.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요걸 가짜들이 바꿔요. ‘열심히 기도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로 바꿔놓은 거예요. 그거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율법이 주어진 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막고 저주 아래 있게 하려 하심이라.“ 만약에 정말 율법을 벗어난 사람이라면 더 이상 안식이라든지 구약이나 신약의 어떤 계명도 그것에서부터 자유하리라. 그러면 자유 하는데 아직도 구약 있고 신약을 봐야 되는가? 이미 자유 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말씀이 있는 겁니다.

아무리 촘촘한 지뢰밭이지만 귀신이 돼서 한바탕 자기가 지나온 자리를 한번 돌아보게 되면 기관단총도 무섭지 않습니다. 쏴도 안 죽어요. 앞에서 분명히 총으로 쐈는데 이게 맞고 그 자리에 사라져 버리고 뒤에 와서 떡 서있는 거예요. 김 수현이가. 분명히 쐈는데. 이게 안 죽어요. 율법으로 쐈는데, 너 안식일 안 지켜? 주일 성수 왜 안 해? 십일조 왜 안 해? 전도 왜 안 해? 예배 참석 왜 안 해? 분명히 율법으로 쐈는데 돈은 일만 악의 뿌리며 있는 걸로 족한 줄 알라. 이런 말씀으로. 분명히 쐈는데 이게 안 죽고 천국 가네. 너무나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 성경에 있는 이 해괴한 일을 주께서는 앞당겨서 미리 스가랴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한 겁니다. 언약이라는 지뢰에다 뒤에 뭘 더하느냐 하면 ‘언약의 피‘라고 한 거예요. 이 말씀은 뭐냐 하면 그때 율법 줄 때 너희들 눈에는 법만 내 앞에 왔다고 생각하지? 그거 아니거든, 그 법속에 법을 만드신 분이, 제작하신 분이 그 법속에 함께 들어가 있었던 거예요. 그 율법을 탕 짜듯이 짜니까 거기서 쏟아진 게 뭐냐 하면 예수님의 피, 곧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피가 쏟아진 겁니다. 캡슐을 깨면 그 안에서 약이 효과를 보듯이 율법은 깨어져야 그 안에 ’다 이루었다‘가 비로소 효력을 나타내는 겁니다.

율법이 망치가 돼서 율법대로 못 사는 인간은 ‘저주받으라.’고 탁 치는 순간에 우리는 율법에 있었던 피와 합류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이 언약이거든요. 언약이 있고 그 다음에 언약의 피라고 한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피 흘림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줬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히브리서 내용에는 그게 죽 돼 있는데 지금 그 다음의 말씀입니다. 언약에다 뒤에 피가 나온다는 것은 이 말은 또 달리 이야기해서 언약이 깨어져서 피가 나왔다면, 그래서 피가 나오면 언약은 폐기처분됩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 함이라.” 했거든요. 언약이라는 캡슐이 깨어지는 그것도 폐지되는 거죠. 히브리서 10장 이야깁니다. 폐지되면서 나온 피가 율법을 다 이룬 게 되는 거예요.

요 이야기는 율법 자체 안에서 움직이는 내용이지, 그걸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가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말이죠. 우리가 따질 문제가 아니에요. ‘어! 율법이 깨졌어. 그럼 율법 지킬 일 없네, 나 집에 갈래. 돌아설래. 오! 율법에 피가 나오네. 저 피를 믿을까? 그럼 율법을 지킨 게 돼.’라고 우리가 어느 걸 선택해? 율법을 선택해? 율법을 다 지킨 십자가를 선택해? 아이, 십자가를 선택해야지.‘ 이럴 문제도 아니고, 율법을 우리가 못 지키는데 예수님이 다 지켰기 때문에 이제는 그 예수님이 우리한테 오게 되면 다시 돌아가서 그동안 못 지켰던 것을 전부 다 이제부터 성령 안에서 다 지키는 그쪽을 선택해야지. 라고 할 문제도 아닌 거예요.

문제집에 보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못된 문제집이 있고 착한 문제집이 있거든요. 착한 문제집이 뭐냐 하면 문제 바로 옆에 해답이 나와 있는 게 착한 문제집 이예요. 해답을 뒤쪽에 붙여놓은 것은 못된 문제집 이예요. 아, 짜증나요.

우리는 율법을 가지고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참고서로 해서 착한 문제집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율법 보고 해답보고 율법 보고 해답보고, 그래서 시험 치면 합격하고, 그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언약의 피라는 것은 우리보고 골라잡아라. 선택하는 그 사항이 아니고 이미 율법 안에 있는 자만이 율법의 완성이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율법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율법을 못 지킨다는 쪽으로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약간의 자존심이란 게 있어요. 내가 못한다는 걸 듣기만 해도 우리는 짜증나요. 우리는 율법의 못하는 어려운 문제는 빼놓고 쉬운 문제 해서 결국은 어려운 문제까지 다 풀어낼 때 내 존재의 의미를 비로소 거기서 발견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 안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하면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 율법 안에 들어있는데 그 율법 지어진 분에 대해서 공격을 해대는 그런 속성을 우리가 발휘하게 돼요. 쉽게 하면 ‘저 선생님’ ‘왜’ ‘문제 너무 어렵습니다.’ 요게 뭐냐 하면 대드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하라” ‘문제 너무 어렵습니다.’ 따라서 문제를 일방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일부 고쳐서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원수였다는 식으로 제가 해석해도 괜찮죠? 어떤 식으로도 지켜야 되니까.‘라고 실제로 문제 낸 문제와 다른 문제를 내가 출제하고 내가 풀어서 나는 드디어 율법을 이루었다.’라고 스스로 자기 자긍심을 갖는 거예요. 누가? 교인들이. 어떤 핑계로? ‘이제는 성령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는 그걸 근거로 해서 이제 모든 율법을 온전히 이룬다는 그걸 근거로 해서 이루어나가는 것을 스스로 그걸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그러한 자료를 모으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어디까지 대단하게 율법을 지켜 나가고 따라서 성령 받은 사람 맞고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가운데 지킬 만한 것을 골라서 쉬운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까지 계속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극단적인 어려운 문제 나오면 그야말로 남을 위해서 희생까지 하는 그러한 객기를 부리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도 그렇고 여기 말씀도 이제 말씀 드리겠습니다마는 이미 정답을 말씀드리면 율법 안에서 율법을 제작하신 분이 자기가 택한 백성을 위해서 같이 율법에 무너져요. 같이 무너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같이 살아나는 겁니다. 율법 안에서. 그게 바로 매일같이 죽는 어린양이 모세 율법에서 제사법에, 양은 매일같이 죽고 다음에 또 양만 들어가고 또 양만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과 함께 있는 분이 늘 무너지고 늘 살아나는 거예요. 따라서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은 말씀 안에서 늘 말씀에 의해서 무너지고 무너졌기에 살려냄은 아버지께 늘 맡기면 되는 거예요. 어떤 말씀도 우리가 지키는 쪽으로 문제 자체를 수정하지 말고 늘 이렇게 무너지면 되는 거예요. 늘 무너지고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하고 이러한 전사가 되는 것은 이것은 우리의 적에 대한 복수가 아니고 주님의 적에 대한 복수가 되는 겁니다.

갑자기 해답을 먼저 이야기해서 상당히 어렵게 됐는데 내가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우니까 엄마가 젖을 줍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생각만 해요. 내가 울면 엄마는 젖을 준다. 그래서 한번 울어봤다. 젖을 주네요. 아! 이게 율법이구나. ‘내가 울면 엄마는 젖 주게 돼 있어. 이거는 엄마와 나의 상호간에 맺은 언약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아이가 우는데 엄마가 젖을 안 줘요. 그러니까 젖 달라고 더 우니까 엄마가 화를 냅니다. 그럼 법을 누가 위반했느냐 하면 어린아이 입장에서 누가 위반했느냐 하면 엄마 쪽에서 법을 위반한 거예요. ‘왜 우는데 젖을 안 줍니까? 왜 도리어 화를 냅니까?’ ‘그걸 통해서 네가 언제까지나 젖을 먹을래? 이 어린아이야. 이제는 밥으로 바꿔야지.’ 그래서 화를 낸 거예요.

어린아이가 ‘나는 법을 지켰습니다.’ 하는 이것이 성도가, 교인이 법을 지켰다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화를 낼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성도는 내가 법 지켰던 것보다 놀라운 사랑, 그냥 불쌍히 여겨주시는 차원에 드디어 접촉이 된 거예요.

그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네가 구원받는 것은 네 행함과 전혀 상관없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전에 울 때 왜 젖을 줬습니까? 네가 지금 한 본색이 어느 정도 어린애냐 하면 네 것 밖에 생각 못하는 전혀 하나님을 생각 못하고 그냥 자기 인간 위주, 내 좋은 것만 생각하는 그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 속에 집어넣은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뭐냐 할 때 내가 생각한 하나님, 그 하나님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집어넣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을 지켰습니다. 특히 여기 오늘 본문 스가랴 9장 같은 것은 이미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이 본문을 다 알아요. 다 알고 그들은 이 말씀대로 실제로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이고 유다는 남쪽이고. 남쪽과 북쪽이 연합군을 맞이해서 헬라 자식들, 그러니까 헬라 자식들이니까 헬라 마케도니아 BC 313년에 알렉산더 대왕, 그의 자식이니까 그 다음 왕조니까 로마겠죠. 로마제국, 그들이 이 세상 모든 것을 꺾어버릴 날이 온다 하니까 이걸 보고 지금도 이스라엘 그들은 어떻게 하든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힘을 합쳐서 이 세상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백성에 복수를 그렇게 감행하려고 하는 겁니다.

헬라지역에 있으면 이란이고 현재 시리아고 레바논이고 사우디아라비아고 이라크고 이집트잖아요. 그들이 시비 걸기만 바랍니다. 시비 걸면 핵폭탄 날려버려요. 왜 말씀대로 성취를 해야 되니까.

그렇다면 앞에 있는 12절 언약의 피는 어디 있느냐? 언약의 피는 그들이 제사지낼 때 양 잡잖아요. 그들이 하는 유월절 날 양 잡으니까 언약의 피는 양 잡으니까 피 나오잖아요. 그것이 언약의 율법에 의한 피고, 그러니까 율법의 피로 제사가 이루어지니까, 성전이 있고, 성전에서 제사 드린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보장받았다는 뜻이고 보장 받은 이스라엘에 의한 그러한 보복 침략도 주께서 이미 합당하게 인정한 조치라고 본 거예요.

그거 이상 더 완벽하게 스가랴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도 방금 이야기한 지금도 이 해석을 미국에서 한국에서 많은 나라에서 이런 해석을 해요. 이스라엘은 회복된다. 회복되면 우리는 이스라엘로 등기이전해서 이사 가야 된다. 왜 그쪽에 메시야가 그쪽에 오기 때문에. 오게 되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모든 사람은 다 이 본문 말씀대로 죽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날짜만 바라보면서 모든 세상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이 스가랴 이런 예언서를 정밀하게 해석해서 몇 년도 몇 월 몇 일 날 메시야가 오는가? 그거만 연구하고 있어요. 그걸 잘 해주면 이거는 놀라운 새로운 신흥 종교가 탄생하는 겁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잘 해주면.

그런데 이 언약의 피라 하는 것에서 뭐를 놓쳤느냐 하면 언약의 피가 다 이루었다는 사실, 그걸 놓쳐버렸어요. 언약의 피가 다 이루었다는 것은 뭐냐 하면 복수를 해도 누가 복수하느냐? 예수님, 언약의 피를 다 이룬 그분만의 복수가 돼요.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자가 보복을 받고 예수님에 의해서 보복을 받는 겁니다. 그게 요한계시록 이예요.

요한계시록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굉장히 쉬워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저주받는다. 이것보다 어떻게 더 설명을 합니까? 구체적으로 로마제국이 뭡니까? 헬라가 뭡니까? 그거는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래요. 뭐냐 하면 젖먹이 애들이 모여서 ‘야, 네가 우니까 엄마가 젖 주대?’ ‘젖 줘.’ ‘얼마 주는데?’ ‘50ml 그램 줬어.’ ‘우리는 약속했어. 100ml 그램 준대.’ 그러니까 인간들이 기껏 모여서 성경 해석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울면 젖 몇 ml 그램 준다는 그 해석인 거예요.

사실은 젖을 안 줘요. 패버립니다. ‘이게 지금 어느 시대인데 젖을 줘?’ 그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차원이 뭐냐 하면 울면 젖 준다는 법을 원해요. 그 법이 기존교회서는 뭐냐 하면 기도, 금식 몇 일하면 이번에 네가 아들 낳는대, 며칠 금식기도 하면 네가 좋은 대학에 가느냐. 우리는 40일 했더니만 서울대학에 갔다. 그래? 우리는 45일까지 버텨봐야 되겠다. 그러면 미국에 유명한 10대 대학교, 하버드대(메사추세츠) 스탠퍼드대(캘리포니아) MIT(메사추세츠) 칼텍(캘리포니아) UC버클리(캘리포니아) 프린스턴대(뉴저지) 예일대(코네티컷) 듀크대(노스캐롤라이나) 코넬대(뉴욕) 시카고대(미시간). 그런데 죽죽 갈 수 있는 금식을 얼마나 해야 갑니까? MIT 들어나 봤습니까? 그런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차원이 뭐냐 하면 울면 젖을 몇 그램 더 주느냐? ‘너 요번에 벌 받았지? 봐라 50ml 그램 주다가 10 ml 그램 주니까 하나님께서 벌 내린다.’ 맨날 교회서 하는 것이 축복의 양 측정입니다. 그거는 목사가 그렇게 한 것도 있지만 교인들이 그걸 원해요. 땅 값 오르는 것, 주식 값 오르는 것, 교회 인원수 많아지는 것, 헌금 나오는 것.

다 이루었습니다. 다 이룬 거예요. 언약의 피로 다 이룬 거예요. 요 이야기가 히브리서 13장에 나옵니다. 더 이상 너희 죄를 위해서 씻을 제사는 남아있지 않다. 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럼 다 이룬 게 어떤 겁니까? 함께 말씀에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것. 같이 죽고 사는 사는 거예요. 같이 일어나는 거예요. 늘 같이.

크레용 팝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오기 통 춤을 추잖아요. 레디.. 헬멧 쓰고 춤을 추죠. 그걸 보면서 제가 느낀 거예요. 바로 저거다. 저게 다 이루었기 때문에 저렇게 늘 일어나고 일어나는 거예요. 잘났다고 생각하면 말씀 보면 아! 지뢰밭에 터지고, 그런데 같이 터졌기에 주께서 이런 무서운 지뢰밭, 젖 달라고 하는 이런 얕은 차원에서 사랑으로서 용서를 해주니까 다시 나는 율법에서부터 자유다, 하는 걸 느끼죠. 자유란 말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저한테 했어요. 결혼은 자유다. 또 결혼해야 돼. 해서 또 매이고 또 매였다가 또 자유다. 율법에 매였다가 또 다시 자유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봐야 되고 성경을 늘 보시면서 어디서부터 다 이루었던가? 어디서부터 용서를 받았던가? 오직 언약의 피가 이미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언약의 피로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늘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 이루었는데, 아직 남아있는 게 없는데, 이미 용서했다는데 왜 자꾸 우리가 믿음이 없는지, 주여 다시 율법 속에서 자기 잘난 체 하다가 그게 무너지되 주와 함께 무너지고 주와 함께 살아나는 그런 경험을 매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1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3,267 자유게시판 62강-YouTube강의(속이지 않기)1401027-이 근호 목사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4-02-01
13,266 우리교회 [일반] 우리 안에 내가 없다-박윤진성도님의 글l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4-01-31
13,265 묻고답하기 우리 안에는 내가 없다.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4-01-30
13,264 자유게시판 76강-에스겔 26장 1-6(두로에 대한 저주)140129-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1-29
13,263 우리교회 두로에 대한 저주 140129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1-29
13,262 자유게시판 23강-슥9장11-13(언약의 피)140126-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1-29
13,261 강의 포함과 종속 140127 다니엘 최고관리자 14-01-28
13,260 강의 유튜브(62강, 63강) 속이지 않기, 인간의 조건 140127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4-01-28
13,259 자유게시판 69강-롬 11장 25-27(온 이스라엘)140119-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1-27
13,258 자유게시판 가락-70이레 논문(선악겹치기)140102-33강a-이 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14-01-27
열람 ➜ 우리교회 언약의 피 140126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1-26
13,256 묻고답하기 순종치 않음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1-26
13,255 설교 온 이스라엘(로마서 11:25-27) 로마서 최고관리자 14-01-26
13,254 우리교회 온 이스라엘 140126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4-01-26
13,253 자유게시판 대전20131226b-마15장1절(율법 해석)47강-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4-01-25
13,252 자유게시판 혼인예식 안내입니다~~~ 안내 최고관리자 14-01-25
13,251 강의 성전의 물 140124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4-01-25
13,250 강의 사도행전57강 ( 예루살렘의 율법), 마태복음 48강 (마음속) 140123 에레미야 최고관리자 14-01-23
13,249 자유게시판 75강-에스겔 25장 12-14(에돔에 대한 저주)140122-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1-23
13,248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3. 12. 27) 2강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1-23
13,247 묻고답하기 별에서 온 신부-이상규집사님 글 - 최고관리자 14-01-23
13,246 자유게시판 22강-슥9장9-10(겸손하신 예수님)140119-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4-01-23
13,245 우리교회 에돔에 대한 저주 140122 에스겔 최고관리자 14-01-22
13,244 우리교회 [일반] 감사-정석훈 목사님의 글 [일반] 최고관리자 14-01-21
13,243 묻고답하기 감사-정석훈 목사님의 글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4-01-2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