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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20131226b-마15장1절(율법 해석)47강-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20131226b-마15장1절(율법 해석)47강-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75.116.146.206)

대전20131226b-마15장1절(율법 해석)47강-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에는 마태복음15장 1절하겠습니다. 마태복음15장부터가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항상 마태복음 이렇게 하고 사도바울의 편지를 하면서 설교를 이렇게 하면서 제가 여러 번 그런 이야기했는데, 일반 평교인들은 그 느낌이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요. 뭐냐 하면, 다시 한 번 원점을 이야기할게요.

사도바울의 편지를 할 때는 반드시 마태복음, 마가복음, 공관복음을 거쳐서 오세요. 그리고 마태 할 때는 반드시 사도바울 편지를 거쳐서 오시기 바랍니다. 말을 제가 수시로 자주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중간에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십자가사건이 있잖아요. 자,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마태복음 할 때 마태복음하고 달랑 가버리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예요? 십자가를 놓쳐버린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를 병 고치니까 믿는 자 외에는 이런 능력이 없다. ‘아우, 믿음이 있어야 병 고치는구나!’ 그렇게 되면 ‘나도 병 낫는데 믿음만 있으면 고칠 수 있구나.’ 이렇게 돼버리는 거예요. 뭘 놓친 거예요? 십자가를 놓치고 온 거예요.

그리고 로마서10장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아~ 로마서10장에 보니까 예수 이름 부르면 구원받는구나. 예수 이름 부르지.‘ 야! 예수 이름 불렀다. 구원받았다. 손들고 나와 가지고 이것도 이리 나오는 거예요. 이건 또 뭘 놓쳤어요? 또 십자가를 놓친 거예요.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워낙 기독교문화가 되다보니까 전부 다 급해요. 자기 집구석 문제가 더 급해요. 성경말씀 보다도 자기 집안 문제 딸 챙기는 게 더 급해요. 여기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어요.

여기 내 문제가 있는데, 내 문제 들고 와서는 이 문제와 같은 게 공관복음에 있으니까 아! 이 문제 기도하면 낫겠구나. 하고 와버리고. 다 마찬가지에요. 십자가 근처 통과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설교자가 문제가 돼요. 설교자가 설교할 때 이미 사람들이 그걸 은근히 노리고 와요. 전부 다.

자기 집안이 중요하지 말씀은 하나도 안 중요해. 그럴 때 마태복음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는 거예요. 통과해 버리면 바로 그렇게 기도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묻는 자체가 십자가 이후에 사도바울이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가 하면, ‘육신’이라 하는 거예요. “주여, 내가 기도하는 것마저 죄 있는 육신인 것을 기도하는 내가 먼저 알게 하옵소서.” 그럼 육신이 되어버리면 육신에서 나온 것은 다 육이기 때문에 죄이기 때문에 안돼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성령의 뜻으로 기도하면 되지요. 그러면 십자가를 경유하게 되면 주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그러니까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의 의를 더욱 더 깊이 알게 해 달라. 이렇게 기도하게 되면 그러면 다시 나한테 오게 되면 우리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것은 그것은 바로 내가 육신인 증거고 평소에 내가 주님은 관심 없고 그저 내 집안 내가 간수하려하니까 일곱 귀신 들어와 가지고 북새통을 떠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거기에 말려들어가서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거예요.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뭐가 잘못됐는데 이렇게 어려움을 주십니까?”라고 따지려고 왔다가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주신 공기와 햇빛과 단비만 해도 따질 자격도 못되고 특히 그리스도의 의를 이야기해버리면 우리는 그 앞에서 그저 부끄러울 뿐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살려고 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 그것이 저주받을 짓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지요.

모든 일은 십자가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모든 일어난 일들은 다 십자가에 집중하라고 발생시킨 일들이에요. 바다가 있는데, 우리는 바다의 물결에 불과한 거예요. 바다 전체는 그리스도 의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 마태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십자가인데, 그럼 십자가 사건의 시발점이 뭐냐, 바로 15장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서서히 갈구기 시작하는 겁니다. 갈구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하면 어렵기 때문에 쉽게, 쉽게 해서 마태복음 20장 볼까요.

마태복음20장보면, 잘 아는 비유기 때문에 언급합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되어 있거든요. 요 해석에 16절에 보게 되면,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는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 이거 누구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결국 바리새인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서서히 주님께서 갈구지요. 주님이 십자가에 죽었던 이유가 먼저 시비 걸어서 그래요.

그러니 주님이 상당히 부정적 안목을 가지고 있어요. 세상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알아요. 참 노력하거든요. 그 마음을 좀 긍정적으로 순수하게 바라보면 되는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너희 애비는 마귀라 했다 말이죠. 한 경직목사, 손 장호목사에게 누가 마귀의 자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예수님은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이 템플턴상을 받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신 그 분, 손 장호 목사 사랑의 무슨 폭탄? 사랑의 원자탄. 사랑의 핵폭탄. 그런데 그들이 마귀 자식이라고 하면 믿어지겠습니까?

그 사람이 마귀 자식이라면 그럼 다른 사람은 마귀, 마귀, 마귀 자식 중에 마귀 자식이 되겠지요. 그렇지요? 십자가가 그거에요. 모든 인간은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거 보세요. 마태복음20장 이야기해놓고 로마서 3장 10절에 보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이제 뚫리지요. 십자가를 통과해야 뚫려요.

교인들은 그냥 십자가 빼버리고 사도바울이 쓴 편지 중에서 자기 필요한 것만 찾는데, 예를 들어서 집사 된 사람은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하는데 그리하면 안돼요. 집사는 무조건 복음 알아야 되지요. 세상에 술에 인 안 박힌 사람 많아요. 집사 주면 안 됩니다. 집사는 복음에 든 사람이 집사 되어야 되지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목사는 구타하지 아니하고, 목사 중에서 지 마누라 패는 사람이 한 둘입니까.

항상 십자가를 경과해야 되는데, 마태복음 해석은 어떻게 십자가로 갈 수 있느냐, 마태복음 20장 보면 포도원 비유에 아침에 일찍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아침 일찍 온 사람이 바로 먼저 된 자, 바리새인들이죠.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남보다 먼저 됐다고 그들이 우겨요. 자기들이 우겨요. 본인들이 그렇게 우긴다니까요.

본인들이 7계급을 만들었어요. 성전과 멀면 멀수록 더러운 사람들이고 가까이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해줘야 나라가 돼요. 나라 질서가 잡힌다니까요. 성만찬 할 때에 목사만 떡을 떼야지 중구난방으로 다 떼면 아수라장되지요. 교회가. 교회가 말이 안 되지요. 아무나 와가지고 “잠시만요, 떡 떼고 갈게요.” 지가 해가지고 지가 다 먹어버리면 안되잖아요.

성당에 신부들이 성만찬 하는데 복장 있잖아요. 구약에 나오는 복장해가지고 심지어 그 관까지 쓰고요, 난리도 아니에요. 특별한 행사 때는 관까지 쓰고 향 뿌려가면서 떡 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뒤에 있던 허름한 사람이 와가지고 내가 할게요. 하고 나오면 성당 말이 안 되지요. 질서가 엉망 됩니다.

마찬가지로 유대 나라가 국가적 종교입니다. 제가 강의에서 종교국가와 국가종교를 제가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국가라 하는 것은 바티칸 정도. 교회 내가 국가 행세 되는 것이 바티칸. 국가종교라 하는 것은 국교에요. 국교. 모든 백성들은 다 무조건 그 종교에 전부 다 예속되는 거예요. 유대교는 국가종교에요. 국가종교기 때문에 경찰도 종교법에 귀속되고, 종교법이라는 게 지금도 이슬람교에 있지만. 종교법에 의해서 전부 다 경찰들이 조종하는 거예요. 바로 이 국가종교를 가지고 하나님은 ‘짐승의 본모습’이라 하는 겁니다.

제가 가락강의에서 했는데, 강의내용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라 할 때, 이 바다는 어디 있느냐 라고 언급했어요. 바다는 지중해도 아니고 바다는 없어요. 바다가 없다는 말은 짐승도 없다는 말이에요. 이 짐승은 혼합체라. 소면 소고 독수리는 독수리여야 되는데 소도 아닌 것이 독수리도 아닌 것이 곰도 아닌 것이 그런 짐승이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방금 이 지구상에 없다고 했지요. 그럼 우리가 보는 이 지구상이 없다는 것은 이 지구가 현실이 아니다 라는 거예요. 현실이 다 가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을 언급할 때 우리가 미처 모르는 현실을 전제로 하고 하신 말씀이 이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볼 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하고 자꾸 이 성경을 보거든요.

그렇게 되면 천국도 천국이 아니고 지옥도 지옥이 아니에요. 이것은 기존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살기 괴로우니까 “아이고 뭐, 후딱 죽어서 천국 갈란다.” 할 때 그 천국은 결국은 자기 편하기 위한 천국이지, 그건 천국 아닙니다. 그건 하나의 인간의 상상력의 환상이죠. 환상. 망상이라는 게 적당해요. 그냥 망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천국은 어디 있는가 하면, 천국은 이 땅에 어디 가면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바로 너희 안에 있다 했어요. 너희 안에 있다 하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그러니까 없다는 말이에요. 왜 없는 게 되느냐, 쉽게 하려다 어렵게 됐는데, 현재 내가 여기 있잖아요. 여기 내가 있으니까 천국은 나한테 없는 게 돼요.

그런데 말을 바꿔서 내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있는 곳이 천국이에요. 천국은 나를 있어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바꾸게 하는 그 능력이 천국의 능력입니다. 나라고 하는 나는 없고 그리스도의 것으로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음은 누구한테 쓰는가, 바로 예수님에게만 있음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있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여기 사는 겁니다. 그럼 내 이름은? 내가 있어야 이름인데 내가 없는데 내 이름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속된 육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걸 ‘지체’라고 해요.

손가락 한 번 보세요. “손가락아, 니 이름이 뭐니?”그러면 손가락이 뭐라고 합니까? “제 이름은 용철 이예요.” 말하면 안돼요. 이름이 없어야 돼요. “저 이름 없어요.” 이리 돼야 돼요. “그럼 니가 단독적으로 어디 있지?” “단독적으로 있는 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단독적으로 있다는 말도 나한테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럼 너는 누구한테 붙어있지?” “저는 주인님한테 붙어 있잖아요.” 그래야 말이 되는 거예요. 성경이 참 어렵지요. 성경을 나한테서 출발하니까, 내가 단독자로 출발하니까 성경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바리새인이 왜 주를 죽게 했는지 알아요? 바리새인이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말로 시작해요. 그러면 하나님도 있고 누구도 있어요? 자기도 있어요. 자기가 단독 자 예요. 그러니까 그 중간에 율법이 있으니까, 율법은 누구 지키라고? 단독자인 내가 지키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율법 지키면 나만 구원받고 못 지킨 놈들은 탈락하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은 그게 아닙니다. 지킨 놈이 없어. 주의 말씀을 지킨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지킨 분은 대신 죽으신 예수님밖에 지킬 수가 없어요. 예수님만이 있음이 되고 우리는 그분의 지킴에 지체가 되니까 덩달아서 그분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의인이 되어 버렸어요.

너무나 엄청난 말이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말을 저지를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믿고 안 믿고는 제가 설득할 문제가 아니고. 학원 강사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대 가는 것은. 서울대 가는 것은 지 실력이지 학원 강사 문제가 아니잖아요. 강의해도 소용없는 거예요.

정리해 봅시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어떻게 봤다? 신이 저기 계시고 나 여기 있고 중간에 율법 주신 순서니까 쉐마, 이스라엘아 들어라, 그리고 지켜라, 들어라 지켜라하기 때문에 이것은 듣고 지키면 지킬 수 있는 걸로 그렇게 오해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따지는 거예요. 예수님은 내용을 아는 거예요. 못 지키는데. 지킨다고 우기니까 슬슬 시비 거는 거예요. 너희들이 율법을 지켜? 개가 웃겠다. 예수님은 개가 웃겠다보다 더 심한 말을 했어요. 개는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니 들이 구원받으면 돌도 구원받겠다. 돌도 하나님의 뜻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겠다. 이 말은 너희들은 돌보다 더 못해. 돌은 반항은 안하지. 돌은 마귀새끼는 아니잖아요. 바리새인들은 마귀새끼입니다. 돌보다 더 못해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래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율법을 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백성이 되는데, 백성 되는데 필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율법이 있어야, 지켜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매개’라고 해요. 쉬운 말로 하면 ‘중매’에요. 중매하고 매개하고 좀 달라요. 중매쟁이는 맺어주고 빠지는데 매개는 항상 같이 있어요.

철 구조물이 있지요. 저는 어릴 때 한 때 오해했어요. 철 구조물은 건물지어 놓고 다시 다 빼는 줄 알았는데 철 구조물은 건물과 함께 같이 영원히 함께 있어요. 이게 바로 매개에요. 아시겠지요? 예수 십자가 믿고 이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떠나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이걸 신학자들이 몰라요. 웃기지요. 목사들은 더구나 모르고. “이제는 십자가 잊으세요. 구원받았으니까. 여러분들이 이제는 말씀 지키면 됩니다.” 이리 나온다고요. 그러니 얼마나 바리새인들의 후손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바리새인의 후손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가 하면, 모든 인간도 어느 인간도 다 하나님의 의의 체계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마귀가 있어야 되고, 짐승이 있어야 되고, 악마가 있어야 우리가 구원을 받아요. 왜? 우리 생애에서 십자가가 반복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리새인역할을 누가 해야 돼요. 누군가 해줘야 됩니다. 특히 가까운 집안 식구들이 하나님의 너희의 원수가 되어야 돼요. 집안 식구들이.

왜냐 하면, 집안 식구라 하는 것은 우리를 가장 가까이 우리 육체의 몸을 지켜주는 식구 없이는 못 살거든요.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다른 건 다 버려도 집안 식구는 육으로 맺어진 사이는 호적 뺀다고 빼질 관계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뭐다? 하나님의 원수, 우리 자신의 웬수가 되는 거예요.

내가 온 것은 집안 식구끼리 불화하게 함이라. 가정 파탄되게 만들었어요.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싸우고 아버지가 아들과 싸우고 온 천지가 다 조각, 조각 마치 강한 유리 깨지면 와장창 깨지는 것처럼 산산조각 나게 만들어요. 화평? 화평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온 것은 불 지르러 왔다. 주님께서는 오른손에 신나, 왼손에는 횃불 들고 신나 뿌리고 불 지르러 왔어요. 이 땅에. 도대체 목사들이 왜 그런 대목을 설교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본문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로한테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해서 쫓겨나기 싫어서 그런 거 안 하지요.

목사는 그리스도의 의만 전해야지 목회 교회 이런 거, 전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만 전하면 그게 교회에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가 망해야 비로소 교회가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 같은 경우는 이미 망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어요.

여기에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였나이다. “예수님이여, 당신 제자들 좀 간수 잘하소.” “왜?” 하니 “우리의 장로들의 유전을 범했는데 왜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습니까?” 라고 나온 거예요. 자, 여기 유전이 전통이거든요. 전통이란 말은 단순히 우리가 하는 전통이 아니고 전례 되는 해석법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왜 전통이고 이게 왜 법이냐, 이게 영국에 보면 무슨 법이냐 하면 관습법이 있습니다. 영국에는 관습법이 더 많아요. 이게 뭐냐 하면, 영국에는 법원이 재판할 때 관습법이 법입니다. 관습법이 왜 존중받느냐 하면, 관습법이 이미 시행착오를 겪어봤거든요. 겪어봤기 때문에 오류가 적어요. 그냥 법은 정권 유지 체계에 따라서 법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들은 이런 법들은 지금 말고 옛날의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국가 보안법 같은 경우는 영장 없이도 체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도 변호인 영화 보고 알았어요. 최근에 개봉한 변호인이라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법은 정권 잡은 자가 법을 지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약점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전통은 뭡니까? 몸에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대대로 가정에 다 품고 있는 거예요. 가정이 모여서 국가 되잖아요. 가정이 모여서 국가가 되니까 가정에서 납득이 될 때 그 국가는 안정성을 얻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왕이 안정해서 안정한 것이 아니고 그 구성원들이 공감을 하게 되면 이게 기초가 단단해가지고 잘 무너지지 않아요. 이스라엘에서 관습법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훌륭한 선배들이 성경을 해석해 놓으면 성경해석은 신과 인간을 뭐로 만든다? 매개로 만든다. 그 매개가 뭐라 했습니까? 율법이잖아요. 율법은 온 몸에 스며들어요. 스폰지처럼 우리 몸에 스며들어올 때 우리의 몸 자체에 속속들이 율법들이 스며들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게 된다고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바리새인들이 IQ가 낮은 게 아니고 천재들이라 보면 돼요. 그 천재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누구도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까? 한 줄기이니까. 신이 계시다. 율법을 줬다. 왜 줬겠습니까? 몸에 속속들이 새기고 그걸 왜 새기는가? 출애굽기나 사사기에 보면, 너희들 후손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런 거 유월절 경험 안했습니다. 선악과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잘못했다고 하지 마세요. 라고 나올 것을 대비해서 유월절 그 모든 법이 법제화되어서 관습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유월절날 바다를 건너오지 않더라도 그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대대로 이어오게 되면 그 때 그 말씀이 지금의 그 말씀이라는 것이 신명기에 보면 나와요. 그 때 시내산에서 새긴 그 말씀은 비록 시내산에서 떠나서 있다 할지라도 그 언약이 이 언약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계속 전해져 오는 그 계명도 처음 계명만큼 유효하다는 뜻이에요. 권위가 있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말씀을 보고 잊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저희들의 관습이 곧 신의 계시고 율법이 되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님이나 누가와도 그들은 할 말이 있는 겁니다. 관습이 이런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관습을 따르지 않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정해 준 그 전통 말고 이질적인 요소로서 따로 어떤 사적 신흥종교 같은 냄새가 풍긴다는 쪽이 바리새인의 해석인 거예요.

그래서 너희들 집단이 율법을 모르는 이 집단은, 요한복음7장 49절 잠시 읽어볼게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우리는 저주소리 많이 들어야 됩니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 아니면 저주받는다는 소리를 들어야 돼요.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은 오직 하나입니다. 참된 진리는 역사를 통해서 주어진다. 개혁주의 신학이 그거에요. 역사를 통해서. 칼빈, 루터 옛날 사람이에요. 하지만 칼빈, 루터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단들이라는 거예요. 그게 개혁주의에요. 그게 바로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성결교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들이 뭘 신봉하겠습니까? 예수를 안 믿고 뭐만 반복하면 돼요? 사도신경, 사도 신앙 고백서잖아요. 그걸 만들어서 계속 그걸 교육하고 월급만 받으면 그 목사할 일 다 했다고 보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신앙생활 자체가 안 된다니까요. 목사들이 신앙생활 안 되는 이유가 자기는 지금 신앙생활 비슷한 걸 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 안 되는 거예요.

지금 바리새인들이 신앙생활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가르칠 게 너무 많아요. 왜? 관습과 관행, 율법 그 거 가르친다고 본인이 신앙생활 못한다니까요. 쉽게 말해서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모범이 되어야 되니까 모범택시 운전이 운전을 잘 못해요. 왜? 모범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모범적으로.

마태복음6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기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꼭 모델이 되어야 돼요. 기도하면서. 금식할 때도 모델을 해야 되고, 기도할 때도 구제할 때도 도무지 신앙생활을 못해요. 남들이 신앙생활이라고 여길만한 모범적인 시범조교가 되어야 되지 본인이 신앙생활 못하는 거예요.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성전에 나올 때 바리새인이 뭐라 합니까? 제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 한다 했지요. 성전 앞에서도 모범적으로 해야 돼요.

그런데 신앙생활 정영 누가 했습니까? 세리가 했어요. “주여, 제가 어쩔 수 없이 돈만 챙기고 돈만 버는 이 짓밖에 못합니다.” 할 때 주님께서 이미 판정을 내렸지요. 왜?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 계신 곳이 바로 재판 날짜에요. 예수님 모신 곳이 재판 날짜고 예수님 계신 곳이 바로 대법원이에요. 하늘나라가 대법원이에요.

내가 너를 죄 없다 하리니. 그러면 이미 끝났습니다. 심판이요? 나를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미 심판은 다른 말로 하면, 재판은, 재판은 안 받아요. 재판이 안 생겨요. 재판이 없어요. 우리한테는. 심판이 없다니까요. 그런데 뭘 새삼스럽게 666 안 맞으면 구원받고, 신천지에서 왜 그런 짓해요? 요한계시록에서 144,000이 왜 그런 짓해요? 아, 재판은 누가합니까? 신천지에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이 만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재판은 십자가가 해요. 십자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나 같은 인간이 구원됐다니? 도대체 이런 일이. 오! 십자가 피네.” 그것만 증거 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돈 냈습니까? 십일조 했습니까? 그걸 목사 니가 그걸 왜 물어? 교회 안 나오시면 징계 받습니다. 그걸 지가 왜 하느냐 이 말이지요. 왜? 헌금내고, 뽑기하고, 연말 몇일 안 남았어요. 봉투 받고, 뽑기하고, 성경구절하나 죽 적어 넣어서 하나 뽑아서 아주 좋은 거 있잖아요.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전부 듣기 좋은 거 그런 거요. 주께서 친히 이루시리라. 그런 거요. 마태복음을 하나 사도바울의 편지를 하나 십자가를 빼놓고 다 해석해 버리고. 장로들의 유지가 그만큼 중요한 것을 알지요.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매개다. 매개는 중매가 아니다. 매개라 하는 것은 온 몸에 젖어야 하고 아예 나라 자체가 관습과 관행으로 그러니까 율법해석으로 온 나라가 온 유대나라가 온 몸에 젖어야 돼요. 젖게 되면 율법을 많이 알고 시범보이는 사람은 존경스러워요. 아~ 어떻게 저런 사리새인님들은 서기관과 사두개인님들은 어떻게 저렇게 거룩한 말씀을 이 힘든 말씀을 어떻게 잘 지키고 우리는 그저 백정같이 살다보니까 밥 먹고 살다보니까 못 지키고 그러니까 우리는 존경할 것은 오직 목사님들, 아주 훌륭한 목사님만 존경해야 돼. 그저 한 경직, 손 양호 어떻게 저렇게 거룩하나. 자식 아들 낳아놓고 살인자 자식 대신 양자로 키우고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레위기에 보면 자식 낳는 것도 죄에요. 여자가 자식을 낳았다고 정결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어디서 육신이 육신을 알아! 이름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이름 따라 팔자가 정해지거든요. 우리의 모든 이름은 육신입니다. 이 육신, 김 육신. 사 육신. 우리의 이름은 정해졌습니다. 육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름이 필요치 않아요. 왜냐 하면, 우리 운명은 주의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 육신을 가지고 육신이란 이름을 주신 분이 바로 주의 이름이 육신을 붙였기 때문에 주의 이름이 육신대로서 구원을 받습니다. 육신으로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성경말씀을 주신 것은 못 지킨다고 분명히 하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달이 뜨는 것은 달을 아무리 해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달을 주셨고, 해를 주신 것은 아무리 해도 해를 우리가 요리할 수 없어요. 해를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달력 만들고 달뜨면 어부들이 고기 잡을 준비를 하지만, 달 자체, 해 자체는 주님 손에 있습니다.

율법은 예수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면 제발 율법 그걸로 다 이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 안에는 대신 죽는 게 포함되어 있어요.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이사야에 나오잖아요. 대신 죽는 게 있어요. 어린양 자체가 대신 죽음의 죽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는 백날 죽어도 대신 죽음 아닙니다. 지 죄 값으로 죽는 것이지. 파가지고 묻혀먹을 수도 있고 국 끓여먹을 수도 있듯이 우리의 육신은 이리 사나 저리 사나 데쳐먹고 지저 먹고 하지만, 그냥 파인 것처럼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그냥 죄인 되면 되는 거예요.

율법 앞에서 죄인이었다. 그러면 우리 할 일 다 한 거예요. 다한 겁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끌려왔다. 그러면 그 할 일 다 한 거예요. 이제. 그 다음에 용서하는 몫은 그건 재판장의 몫이고. 우리는 매일 재판 앞에서 주님이 의인이라고 판정받으면 그걸로 우리는 땡잡은 겁니다. 더 이상 세상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바로 이런 바리새인 같은 인간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 하나님에 의해서 지금 포진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말씀 들을 때, 그들의 눈에 맞도록 그렇게 우리가 비실비실 그들에게 아부하듯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 말입니다. 전통과 거기에 맞추려고 애 쓸 필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니까 그들이 왜 손을 안 씻는가 할 때에, 마태복음 15장 3~6절에 보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이 말씀은 수백 번 봐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분명히 예수님 말씀인데. 이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이 말이죠.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법을 대하면 자기가 지킬 수 있는 한도 내 까지만 법을 해석하는 거예요. 그 오류를 주께서 지적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말씀이 들어올 때는 그 말씀을 지키기는 지켜야 되니까 지가 지킬 수 있는 한도까지만 지키기 위해서 그 법의 내용에 임의로 수정해 버렸다. 그 이야기를 지금 주님이 지적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수정된 법 내용은 모든 가정과 사람들이 납득이 되고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왜? 사람은 법이 다가왔을 때 내가 지킬 때 자존심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래요.

법 앞에서 내가 저주받을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게 아니고 나도 봐! 나도 지켰잖아. 라는 것을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법을 임의로 왜곡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이미 우리 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법이 올 때는 우리는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하게 돼 있어요. 법이 올 때.

평소에 쫀쫀한 남자가 도둑놈이 오게 되면 무조건 몽둥이로 때려잡아서 잡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하면 잡아간다. 큰소리치다가 그 남자의 허상이 언제에 드러나느냐 하면, 진짜 도둑놈이 나타났을 때 바들, 바들 떨면서 뭘 내어드릴까요. 다 가져가세요. 신고 안하겠습니다. 그리된다 말이지요. 거짓말하는 늑대소년 있잖아요. 그 거짓말하는 늑대 소년이 평소에 본인은 몰랐어요. 그런데 언제 알았습니까? 진짜 늑대를 만났을 때, 아! 본인도 본인의 거짓말이라 하는 것이 어떤 효과로서 퍼져있는가를 아는 거예요.

성령이 진짜 왔다는 것은 십자가 올 때 진짜 성령 받고 하나님 뜻을 진짜 받은 거예요. 십자가 꽂힐 때, 내가 입을 열어서 무슨 군소리할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을 십자가피 앞에서 알아챌 때 모든 걸 알게 된 사람입니다. 그 말은 십자가를 모른다는 것은 모든 어떤 전공분야든 완전히 무지몽매한 자라는 거예요.

의사가 수술 잘한다고 의사 아닙니다. 목사가 설교한다고 목사 아닙니다. 도무지 신앙생활이 안돼요. 의사가 의사직업이 신앙생활 방해하고 목사 직업이 신앙생활 방해합니다. 왜? 그것들이 평소에 자기 정당성, 자기 의로움을 유지하고 지켜내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어제 수요설교가 그렇게 제가 외쳐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어렵다고. 참, 이 강의 들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숙임으로서 자기가 익은 벼라고 티를 내려고 하는데, 그 티를 안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내가 설교에서 한 거예요. 참 어렵지요. 말장난 같지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할 때 제가 믿음이 뭔 줄 몰라요. 내가 믿는 사람 되기 위해서 “예수 믿습니다.” 라고 말 할 때, “이 말 자체가 잘못된 말이야. 이 말은 하지 않아야 돼!” 라고 하면서 “그 믿음을 가져가 주세요.” 라고 요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에요. 문장은 긴 문장인데 제가 어떻게 제 실력으로 축소할 실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제 본뜻을 전달하는데 이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나쁜 놈이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걷어내고 싶은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요. “저, 나쁜 놈입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나는 나쁜 놈입니다. 내 마음을 가져가라고 해주면 구원받게 되지요?” 요런 통 밥을 굴리는 인간들 밖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문장들이 어려운 거예요. “목사님이 시킨 대로 했는데 뭐가 나쁩니까?” 매일 자기 정당성, 잘 나가다가 끝은 뭐냐 하면, ‘자기 정당성’이에요.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믿으라 해서 믿었고, 소망해라해서 소망하고 살았습니다. 자, 뭘 더 할까요?” 이게 바리새인이에요. 이게 사두개인이고,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그 내용을 인간이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시켰다. 그게 문제다. 그러니까 정작 율법을 제정하신 분은 누굽니까? 지금 당사자가 왔잖아요. 출제위원이 왔다고요. 수능 출제위원이 와있는데 문제를 못 푸니까 못 푸는 인간들이 출제문제 자체를 바꿔버렸어요. 기어이 바꿔서 기어이 자기들이 지켰다고 선을 보고 합작을 한 거예요. 거기에 주께서 오신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쉬운데 뭐냐 하면, 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시편에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예배당을 지었어요. 지어놓고 하는 말이 간판을 걸은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라고 지은 거예요. 요한복음2장에서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집은 기도하는 그 집의 그 취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시편에서. 누가? 내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겁니다. 내가. 왜냐 하면, 중요한 거 이야기합니다. 잘 들어보세요.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인데 요한복음2장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이라 했거든요. 아버지 집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 거예요. 요 차이점이에요. 다시 한 번 할게요. 하나님 저기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잖아요. 인간의 매개가 뭐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율법이고, 율법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고 내 아버지라니까요. 내 아버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말이죠. 이 바리새인들은 뭐냐 하면, 구약에 보니까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했거든요. 그러니 자기가 아들이니까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너희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내가 이야기해줄게. 마귀가 너희들 아버지다. 마귀가 아버지다. 이러니 이야기가 통할 수 있나. 라고 인터넷 이 근호 목사 딱 쳐보면, 제일 먼저 뜨는 게 뭐냐 하면, 다움에서 ‘이러니 말이 안 통하지.’ 하는 제목의 양 무리 마을에서 공개한다. 이러니 말이 안 통하는 거예요. 이러니.

지금 바리새인을 전도하는 게 아니에요. 바리새인에게 시비 거는 거예요. 말씀 못 지키라고 준 거예요. 율법이 매개라는 말은 맞아요. 우리는 율법에 푹 젖어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오해하기를 율법에 젖었기 때문에 우리는 백성이라고 우기고, 주님이 율법에 젖게 한 것은 “푹 젖어보니 어떠노? 니가 죄인 맞지?” 죄를 더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왜 이 이야기를 로마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목사들은 이 이야기를 안 하는 이유가 뭡니까? 도대체. “여러분, 교회에 청소해 주세요.” “왜?” “청소해야 여러분 죄인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안 하고 “청소해야 복을 받습니다.” 왜 바꾸어서 이야기를 하느냐 말입니다. 우리교회 지금 10년째 한 사람 합니다. 그 혼자서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만 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하니까 다른 사람은 나쁘다. 라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하신 줄 모르겠어요. 하여튼.

마태복음부터 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어떤 말씀도 우리가 못 지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말씀 보는 게 편한 줄 모르겠어요. ‘나는 못 지켰는데 주께서 지키셨구나!’ 보시게 되면 십자가 안에서 성경을 보시는 분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성경을 그렇게 봐야 돼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예수님이 지금 판정하는 겁니다. 니가 니 부모를 공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희들은 어디 간다? 지옥 간다. 간단한 판정을 내리신 거예요. “너희들, 말씀 보니까 못 지키지. 그러면 너희들 지옥 가 줘. 너희들 할 말 없지. 그치?“ 우리 재판 철수. 끝난 거예요.

그들은 뭐라 핑계 되느냐 하면, 이런 핑계대요. 하나님께 드리면 부모한테 안 해도 된다. 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내가 드려서 유익하게 할 것이면,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기만 하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구나.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하는 말을 잘 들으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으로는 내게서 떠났도다. 이사야 29장 23절 말씀을 했거든요.

이 말씀을 바리새인들이 봤을까요? 안 봤을까요? 고수들은 달달 외웠지요. 외워서 그들이 모범 사례로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보였지요. 이 설교 이 이야기를 그들이 백성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니까요. 오늘날 목사들처럼. “여러분, 입술로 지킬 게 아니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라고 했던, 그 지적질했던 그 인간을 향하여 누가 지적합니까? 주님이 지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설교자는 목사는 목회가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본인이 신앙 생활해야 돼요. 본인이 신앙을 어떻게 합니까? ‘나는 설교하는 게 왜 죄가 됩니까?’ 알아야 되지요. 이걸 내가 압축해서 말하기를 ‘목사가 설교하는 것도 죄다.’ 하니까 이러니 말이 안 통하지. 하면서 반발하는 거예요. 이런 내용이 다 담겨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이 다 담겨 있어요. 헌금하는 것도 죄라고 하니까 저 쪽에서 하는 말이 “성령에 의해서 헌금하는데 그게 왜 죄냐?” 이리 나와요. 그 사람은 십자가가 좋은 게 아니고 십자가 믿는 내가 헌금하는 그것을 찰칵! 주께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거예요. 나 이렇게 예수님 믿고 제대로 인간되었다. 라는 것을 자랑질하고 싶은 거예요. 이런 걸 좀 하나님께서 인정해 달라는 거예요. 그게 신앙생활입니까? 그게 문화지요. 그게 바로 문화인 거예요. 그 안에는 자기는 더 살아야겠다는 더 정당해야 된다는 그 욕망이 잠겨있습니다.

11절에 봅시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먼저 질문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까? 안 합니까? 인간은요,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다 더러워요. 더럽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하시느냐, 지금 바리새인들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안해야 사람이 깨끗해진다고 바리새인들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십자가 이전에는 예수님께서 항상 전제를 바리새인을 전제로 바리새인의 신학체제를 전제로 해서 이야기를 해줘야 십자가 사건이 발생됩니다. 마태복음 공관복음은 그렇게 해석해야 됩니다. 항상 전제가 있어요. 마귀가 전제에요. 마귀를 빼놓고 하면 안돼요.

마귀는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 사람이 자기 행동에 따라서 인간이 더러울 수도 있고 안 더러울 수도 있다. 행동 똑바로 해! 그러면 “바리새인님, 어떻게 행동해야 됩니까?” 형식으로 하지 말고 입술로 하지 말고 마음으로 존경하면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다. 라는 말을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은 서기관들이 이미 많이 해왔던 겁니다. 그들이 하는 모범이 뭐냐, 말씀대로 손을 씻고. 왜? 손 씻는 것은 더러운 것이 입에 안 들어가기 위해서 하니까 주께서는 그것을 전제로 하시면서 하는 말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요, 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한 거예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합니까? 라고 질문한 거예요. 이게 뭐냐, 십자가를 거치고 보게 되는 겁니다. 밥 안 먹어도 더러워요. 애들도 더러워요. 태미도 더럽고, 후도 더럽고, 추사랑도 더럽고. 다 더러워요. 귀여운 건 맞는데 더럽기 때문에 귀여운 거죠. 더러운데 귀여워, 그런 정도지요. 추사랑은 추성훈의 딸이고.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라고 할 때, 그러면 질문을 또 하겠습니다. 요 질문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는지 확인할 수가 있어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제가 이야기한 것으로 말한다면, 틀린 말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했는데, 틀린 말이에요.

왜냐 하면, 뭐가 빠졌어요? 십자가가 빠졌어요. 내가 이 말을 인용하는 것도 죄고, 이 말을 듣는 여러분들도 죄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 죄인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도 죄인 줄 이제 알았지요? 하는 저도 죄고, 죄인입니다. 죄 있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공부를 이렇게 주께서 은혜로 지금도 오늘 하게 된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데 무슨 그렇게 고민거리와 근심거리가 많은지, 다 지 잘난 맛에 자기 자존심 챙기기 위해서 남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더 오래 살려고 하는 수작에 불과한 것을 저희들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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