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구강의 20] - [피 106] - 네 가지 유형
[13 대구강의 20] - [피 106] - 네 가지 유형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20] - [피 106] - 네 가지 유형
13,12,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하나님 나라, 언약, 예수님, 구원 !!
오늘은 어제 설교시간에 이야기했던 것으로서, 성경전체를 4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 즉 "하나님 나라 중심인가? 언약 중심인가? 예수님 중심인가? 구원 중심인가?" 라는 것이다. 이렇게 4가지로 보았을 때, 먼저 성경전체를 하나님 나라중심으로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맞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언약중심으로, 그 다음에는 예수님 중심으로, 그 다음에는 구원 중심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 언약, 예수님, 구원" 이라는 4가지를 가지고서 성경전체를 살펴보았을 때, 과연 어느 것이 성경내용에 합당한지를 보자는 말이다. 물론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아, 이것이다" 라고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 먼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
그러면 먼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을 훑어보겠는데, 이것은 개혁주의 성경신학에 있어서 대세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헤르만 리델보스' 라는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성경신학자인데 말이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 나라중심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가 성경구절 가운데 어느 대목과 어느 대목을 잡았는고 하니, 먼저 창세기 2장에 있는 에덴동산을 잡았고,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 임마누엘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 라는 의미인데 말이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낙원을 만드시고, 인간을 거기에 담아두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두 개를 한번 연결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는데, 너무나 사랑하셔서 천국과 같은 에덴동산을 만들었다. 그래서 거기에 살게 하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취지이다" 라고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중간에 마귀가 들어와서 그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맙게도 신약인 마태복음에 들어오면 '임마누엘' 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 라는 것을 중심으로 붙잡아서, 구약의 에덴동산으로 다시 거꾸로 올라가게 되면 성경해석은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고 하는, 그것이 리델보스라는 신학자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사야 7장은 경우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많이 등장하는 구절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라는 것이다. 그러면 처녀가 아기를 왜 낳는가? 그것을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인데, 그러면 그 아기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렇게 하나님이 아기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고 하니, 그것이 곧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떨어져서 살던 인간이,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이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정답이라고 여겨서, 그래서 개혁주의에 속한 교단들이 여기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사실 천주교를 제외한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말이다.
여기에 이의를 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추방해놓고는, 그것이 너무나 섭섭해서, 다시 예수님을 보내셔서 천국을 만드시는데, 그것은 에덴동산을 모델로 해서 그것보다 더 좋은 낙원을 만드시는데, 거기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 넘치고 넘치는 하나님의 마지막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 에덴동산부터 임마누엘까지 !!
이게 중심모토가 되는데,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이 옳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에덴동산부터 임마누엘까지' 라는, 그 주제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인간이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을 잃어버렸는데, 그래서 그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하나님이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언약을, 즉 약속을 보내셨다는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나라가 이 세상인데, 그러면 이 세상에 축복의 장소를 따로 만다는 것이다. 에덴동산과 유사한 장소를 따로 말이다.
그 첫 번째가 방주를 만들어서 물로 심판하시고, 무지개가 피었다는 것이다. 이 무지개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나라에 바로 이 무지개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날 때도 이 무지개가 같이 나타나는데, 그러니 노아홍수 이후에 무지개가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넣어줄게" 라고 하는 정보를 계속해서 흘렸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에덴동산은 이렇게 만들어주시고, 그러면 임마누엘은 어떻게 오는고 하니, 임마누엘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보내고, 이삭을 보내고, 선지자를 보내게 되면, 그런 선지자가 왔으면 축복을 받게 되어있고, 축복을 받으면 에덴동산의 조짐이 보인다고, 그렇게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 미워한 에서, 사랑한 야곱 !!
예를 들어서, 이삭의 아들이 두 명인데, 즉 에서와 야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야곱은 받은 축복과 에서가 받은 축복의 내용을 살펴보니, 야곱은 받은 축복은 무엇이든지 하는 것마다 잘되는데, 농사도 풍년이 들고 말이다. 그런데 에서는 하는 것마다 저주를 받고, 심지어 남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에서는 저주를 받고, 야곱은 축복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야곱이 이렇게 하는 것마다 축복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곧 임마누엘인데, 즉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야곱의 인생 가운데서 에덴동산을 맛보게 하는 쪽으로 하나님이 이끄신다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야곱 이후에 나오는 나라가 곧 이스라엘인데, 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모세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모세는 바로 임마누엘의 의미에서 하나님이 보내셨는데, 이 모세가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어서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가? 그 땅을 무슨 땅이라고 하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그러면 그것은 인간의 노동과 상관없이 젖과 꿀이 흐르니, 이것은 에덴동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데, 인간이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을, 즉 죄는 우리 인간이 짓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다시 에덴동산에 합류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라는 것인데, 그게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많이 듣던 이야기이지 싶은데, 그리고 질문은 제가 조금 있다가 여러분에게 할 것인데, 이러한 주장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한지 말이다.
◈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
여기서 이사야서에 보면, 그 끝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고 하니, 아이가 이리의 굴에 손을 넣고, 사자와 같이 뒹굴어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거기는 노인네도 없고 그야말로 생명이 넘치는, 그야말로 푸른 초원 위에 멋진 집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그 집이 황금보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것을 '이사야' 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선지자를 보내서, 임마누엘을 미리 앞당겨 보내서, 아기가 이리와 같이 하고, 모든 무기는 녹여서 농사를 짓는 도구로 만들고, 그렇게 평화가 넘치는데, 그것을 볼 때, 이것은 에덴동산을 예상해서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게 되면 천년왕국이 이뤄지고, 그야말로 황금집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도 없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해와 같이 빛난다는 말이다. 그런 빛의 세상으로 들어가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이다.
◈ 산상설교는 우리의 마음가짐 ??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는 것인데, 그러면 여기서 우리 인간이 해야될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산상설교인데, 즉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준비해야될 일종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생활태도와 같은 말이다.
산상설교에 보면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내놓아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해라. 누가 너에게 고생한다고 하면서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이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다" 라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희는 천국백성이니, 천국백성답게 살아라" 라는 것이다.
특히 목사들이 좋아하는 구절이 무엇인고 하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런 설교를 목사가 하게 되면 듣는 교인들이 그만 가슴이 철렁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예배당을 증축하려고 하나? 아니면 주차장을 넓히려고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그러면 목사는 작심을 하고, 1대지가 어떻고 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아무튼 이런 것도 산상설교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러므로 "이렇게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오시고, 그리고 천국까지 준비했다고 하면, 적어도 여러분이 양심이 있다면 그래도 뭔가를 내비치는, 즉 행동의 변화나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어야 천국백성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것도 전혀 없으면 천국백성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 일반 교인들이 이러한 설교를 듣고 과연 반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모두가 성경에 있는 내용이니 반박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그래도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니 말씀대로 다 맞네. 이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정통 개혁주의 교회이고,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그야말로 복음적인 교회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이근호 목사는 참 별나" 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가요?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문제가 없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했을 때 !!
계속해서 물으면 여러분이 곤란하지 싶어서 제가 문제점을 설명해드리겠는데 말이다(ㅋㅋ). 첫째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했을 때,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디서 나온 것인고 하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들과 인간들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나온 개념을 여기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사랑을 언제 느끼는가? 자기편을 들어줄 때, 자기가 아쉽고 고통스럽고 힘들 때, 그렇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누군가가 유독 관심을 가져주고 위로해준다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아하,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결혼을 했으면 남편이 아내를 지켜줘야 하는데, 편할 때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말이다. 그럴 때 남편이 자기편이 되어주면 여자는 비로소 결혼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혼을 참 잘했구나"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힘들 때 남편이 지켜주지 않으면 결혼에 대해서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다.
◈ 이 땅의 사랑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 !!
그러니 이 땅의 사랑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인데, 그러면 "나는 사랑을 원하고 있다. 누가 나의 사랑을 채워주지?" 라고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채워주실 거야. 그러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주어+술어' 라는 구조로, 즉 "무엇 무엇은 무엇 무엇이다" 라고, 그렇게 안에 있는 내용인 술어로서 주어인 하나님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보니,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켰지만, 너무 사랑이 많아서 천국으로 보내주기 위해서 회복시킨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 '회복' 이란 말은 사실은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는 표현인데, 그들은 이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말이다. 9회 말에 역전시키는 것, 일종의 반전인데 말이다. 즉 "지금은 힘들지만 희망을 갖자" 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복과 같은 개념은 성경에 없는 것이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사랑개념도 성경에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 라고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그렇게 그들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가?
이게 무슨 문제인고 하니, '하나님' 이라는 주어에다가 그 뒤에 자기들이 원하는 욕망을 연결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놓친 것이 되는가? 진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러면 에덴동산에 아예 선악과나무를 심어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집안에 군데군데 독약과 가시나무에다 철조망까지 쳐놓고 있는, 그런 부모가 있는가? 오히려 얼른 치워버린다는 말이다. 어떻게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 독약과 폭탄과 같은 것을 둘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면 무엇이 해결되지 않는고 하니까, "왜 구태여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가 있는가?" 라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은 왜 그것을 심어놓고는 따먹도록 허용을 했는가?" 라고 하는, 거기에 대한 답변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선악과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거기로 접근을 하면 "어이, 오지마!" 라고 하면서 쫓아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예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빙 둘러서 치던지 말이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선악과나무를 심지 않아서, 인간이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없애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뱀에게 마귀가 접근을 했는데, 차라리 뱀을 만들지 말든지 말이다. 뱀을 만들더라도 마귀가 찾아오지 못하게 방지할 책무가 하나님에게 있는데, 왜 뱀에게 마귀가 들어와서, 그 뱀이 아담을 꼬드기게 해서, 이렇게 인간을 힘들게 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힘들게 한 이유가 이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는, 그런 사랑으로는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 수상한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 아이쿠,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커피가 맛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죠. 그동안 잘 계셨죠? (녹취 '구' - 아니, 목사님도 커피를 좋아하세요? (ㅋㅋ))
◈ 앞으로, 조심해 !!
이렇게 선악과를 왜 심었는지가 첫 번째 문제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했다고 하면, 우리 인간은 연약한데, 그런 연약한 인간에게, 이왕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렇게 다 생각이 있어서 만든 인간에게 "앞으로 그렇게 하지마" 라고 하면서 한번 실수한 것을 용서해주던지, 그렇게 하면 인간도 말귀를 알아듣는데, 인간도 선악과를 따먹고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인간이 아니라 생명나무를 보호하시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사랑하는가? 어느 것이 귀하다고 보느냐는 말이다. "너희는 없어도 되지만, 이것은 없으면 안 돼" 라고 하면서 생명나무를 보호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나무는 어디까지나 나무인데, 그러니 에덴동산에 사람도 있고 나무도 있다고 하면, 그러면 누가 더 귀하냐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 말이다. 나무가 어떻게 더 귀하냐는 것이다. 사람이 더 귀하지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귀하게 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누가 누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인가? 여기서 인간이 착각한 게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여기에 대해서 눈치를 채게 된다는 말이다. "에이, 도대체 이게 뭐야?" 라는 식으로 말이다.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만약에 자식이 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그 컵을 깼다고 하면, 그러면 부모는 "어디 다치지 않았니?" 라고 해야되는데, 그런데 "내 컵을 누가 깼어?" 라고 나온다면, 그것은 부모로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어디 감히 내 컵을 깨고 있어. 이제 너는 집을 나가. 너는 안 돼. 집을 나가서 마귀하고 놀던지 알아서 해" 라고 한다면, 그리고 컵이 하나 더 있어서, 그 컵마저 깨면 안 되니, 그것을 보호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식에게는 뭐라고 하는가? "너는 앞으로 나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너는 내 자식이 아냐" 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면, 그것이 이해가 되겠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내어쫓는다' 라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처음 문제는 "선악과를 왜 심었는가?" 라는 것이고, 두 번째가 "뱀은 왜 접근하도록 허락했는가?" 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인간이 나무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라는 것이다. 즉 에덴동산에서 왜 추방하느냐는 말이다.
◈ 그러면 '지옥'은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네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말이다. 여호와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인데, 지옥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옥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정말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지옥에 악마만 들어있으면 우리가 이해가 되는데, 악마는 인간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도 누가 꼬드겼는가? 악마라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은 악마를 쳐야하는데, 그런데 철없는 인간이 무엇을 안다고, 무슨 경험이 있는가? 아무런 경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에 누가 있는가? 악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들어가는가? 짐승에게 인을 맞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악마가 들어가는 지옥에 합류해서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들도 분명히 인간인데, 이 인간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으로 인간을 만들어놓고, 그런데 지옥에 보낸다고 하면, 지옥에 잠시 복무하다가 제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원토록 나오지 못하고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사로 앞집의 부자가 지옥에 갔는데, 한번 혼나고 나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지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렇게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의 그 심정을, 성경을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보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에 어떻게 담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고 하는 것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유주의 신학사상이라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꼭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인간이라고 하면,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이상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데, 그러니 절이나 천주교에 가도, 생명이 있으니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라고 하는 자유주의의 사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원인 제공을 이 하나님 나라를 중심이 했다는 것이다.
◈ 모르는 것은 입을 다물자 ??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산다는 것인데, 그러면 지옥은 무엇인가? 그들은 여기에 대한 답변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옥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지옥에 가서 고생하는 생명도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인데, 그래서 그들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까지만 말하고, 그 이상은 입을 다무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을 다물게 따로 있지, 성경에 저주가 한두 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안셀무스' 라는 교회사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마귀에게 빚을 진 것을 마귀에게 갚아주어서, 즉 예수님이 값을 대신 치러서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 것인데, 이것을 '보상 속죄설'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뒤에 '아벨라르두스' 라는 자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하나님은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값을 치러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치루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 라고 우리에게 모범을 보인 것이라고, 즉 "착하고 바르게 살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말이다.
◈ 정작 성경에서 중요한 것은 다 빠지고 없어 !!
그러니 문제가 뭔고 하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다시 옛날처럼 같이 살고 싶어서 임마누엘을 보내셔서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일을 하셨다" 라고 보게 되면, 정작 성경에서 중요한 것은 다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가 "선악과를 왜 심었는가?" 라는 것이고, 두 번째가 "뱀은 왜 접근하도록 허락했는가?" 라는 것이고, 그리고 세 번째는 "인간이 나무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이유가 생명나무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 나라 중심에는 그러한 이유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네 번째는, 지옥을 만든, 지옥에서 영원히 고생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는, 결국 예수님은 하나의 모범적인 인물로서, 즉 '모범설' 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범적인 존재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서 천국에 가자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아까 산상설교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비폭력적으로, 비저항적으로, 인도의 간디처럼 말이다. 때리면 얻어맞고 침묵으로 대항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간디가 영국유학시절에 기독교를 접하면서 알았던, 그것을 힌두교와 접목시켜서 행동강령으로 옮겼던 것이란 말이다. 즉 "산상설교처럼 살자. 예수처럼 살자. 말씀은 헛된 게 아니라 지키라고 준 것이니, 그것을 지키면 천국백성이다. 그게 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왜 '하나님 나라 중심'이 요즘 대세인가?
이런 하나님 나라 중심이 기독교의 대세인데, 개신교뿐만이 아니라 천주교도 사실 그러한데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게 목회자의 경우에 교인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 교인들이 납득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 와서 인간이 한번 되어보려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 있는데, 목사가 그런 자기가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니, 서로 소통이 되고 교류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래, 바르게 산다는 것은 교인의 기본이지. 그것을 거부한다면 말도 안 돼" 라고 하는, 그렇게 기본적으로 그 가르침에 대해서 납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상설교와 같은 교훈을 가르치면서 "주의 백성답게 삽시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려울 때 사랑의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지금은 고생을 하더라도 나중에 회복된 나라인 천국에 가게 되면, 다 보상을 받게 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가 되는데, 물론 앞서 언급한 4가지의 문제점은 무시가 되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책제목을 '지옥의 하나님' 이라고 낸 적이 있었는데, 물론 거의 팔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ㅋㅋ). 그 좋은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의 하나님이냐는 것이다. 천국의 하나님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님 나라 중심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 두 번째로, '구원중심'부터 살펴보면 !!
그리고 이제 두 번째가 무엇인고 하니, 언약 중심이고, 세 번째가 예수님 중심이고, 그리고 네 번째가 구원 중심인데 말이다. 이 순서는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 김 집사님이 정했는데, 일단 여기서는 먼저 구원 중심부터 살펴보자는 것이다. 즉 성경을 구원중심으로 본다는 말이다.
이것을 불교적인 의식에서 나온 것인데, 불교의 출발점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은 고해, 고통, 번민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구원이라는 것은, 이런 고해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이것을 구원개념으로 본다는 말이다. 이것을 자기 개인이 고통하고 번민하는 것인데, 그러니 이런 구원관의 특징은 철저히 '개인주의' 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전체를 역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한 하나님 나라 중심은 성경전체를 흐름으로 보았는데 말이다. 즉 언약으로 온 것은 임마누엘로 온 것이고, 그 목적은 에덴동산을 회복해서 천국으로 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건전하다고 자처하는, 대세이고, 보수적이고, 정통적이고, 그리고 점잖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원중심은 무엇인고 하니, 하루 속히 빨리 구원을, 즉 개척교회가 하루라도 빨리 자립하고 부흥하고 싶어서 내세우는 것이란 말이다. 일반 민중들의 고해와 고통과 번민에서, 자기 개인이 그런 것에 빨리 벗어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 족집게 성경구절 !!
그래서 여기에서는 성경해석을 역사적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주제별로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아플 때, 자식이 군에 갔을 때, 남편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등등, 그러한 경우를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거기에 맞추어서 성경구절을 뽑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어떤 경우에 바로 해결해줄 수 있는지, 그렇게 하면 자기 마음에 위로가 되고, 그게 진짜 하나님의 도움이 된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는 보는데, 물론 말은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역사적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마치 복(福) 주머니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뽑기를 하면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사업이 힘들면, 욥기 8장 7절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고 하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하게 되면, 그야말로 마음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여기서 성경을 한 군데 찾아보면, 이런 경우에는 보통 잠언이 많이 동원되는데, 여기서는 일단 시편을 보겠는데, 시편 55편 22절인데 말이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여기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라고 하는데, 지금 하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것을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컬컬하다' 라고 하는데, 즉 "뭔가 심령이 답답하고 컬컬할 때, 그야말로 생수처럼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말씀이 없을까?" 라고 할 때, 이런 시편의 말씀을 들이대면, 그야말로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더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자일리톨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래, 맞아. 주께 맡기자. 그러면 뭔가 수가 나겠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성경구절에는 밑줄이 많이 긋는데, 그러면서 옆에서 "이것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를 받는 말씀이다" 라고 적어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부지런한 사람만 말이다(ㅋㅋ).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되어있는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고 했는데, 그 좋은 것이 무엇인가?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지만 그 좋은 것은 밑줄을 치지 않았기에 관심이 없고, 그게 성령인데 말이다. 그러니 성령은 관심이 없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하면, 술어를 괄호로 친다는 것이다. '(사랑이시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 뒷부분은 자기가 집어넣는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내 뜻을 이뤄주신다. 하나님은 내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 번민에서 벗어나고 파 !!
그런데 그냥 넣는 것이 아니라 성경구절을 가지고 집어넣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뤄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 주머니이기 때문에 말이다. 복 주머니에 있는 세배 돈처럼 말씀이 들어있기에, 그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에는 시간적 흐름이 있는가? 없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성경을 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현재의 이런 고해와 고통과 번민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힘으로 벗어나서, 보다 더 풍족하고 편안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이런 구원중심의 생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원중심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여기에서는 무엇만 하면 되는가? 이것은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개인주의는 행함인데 말이다. 첫 번째인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는 인간의 행함이 들어가는가? 물론 들어가기는 하는데, 일단 구원을 챙기고 나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는 목적으로 하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회복될 에덴동산, 즉 낙원에 관심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 오우, 신선해요 !!
그러니 건전하고 고상하고 점잖고, 누가 봐도 "여기는 하나님 나라만을 생각하는 진짜 교회가 맞다" 라고 할 정도로 납득이 되는 말이다. 그런 쪽에서 전부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기복신앙을 떨쳐버리고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굉장히 괜찮고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절에 바치세요. 우리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라고 하면, "우리는 산상설교를 지킴으로서, 말씀을 실천에 옮김으로 그렇게 합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말씀도 필요하고 하나님도 기쁘게 함으로서, 그런 가운데 있는 '나' 라는 존재는 성도답다고, 그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는 아주 수준이 높은 것이고, 반면에 수준이 낮은 쪽에서는 어떠한가? 성경말씀도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코앞에 있는 고통에서, 그렇게 얽히고 얽혀있는 번민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자기에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잘 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그게 아니면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이런 구원중심에서는 시간적인 흐름은 없고, 개인적으로 해야될 행함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그 다음에 뭘 해야합니까? 내 짐을 맡기기 위해서 뭘 해야합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여기서 '40일연속새벽기도회' 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그냥 맡기면 안 되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뜨거워야 하는데, 난로를 피우든지 어떻게 해서든 말이다. 개인주의이니 말이다.
◈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
하지만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는 개인주의가 아니고, 이스라엘 중심인데, 그리고 신약에서는 교회중심이고 말이다. 그래서 고신측에서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으로는 뭔가 미진하다고 여겼는지 몰라도, 성경 중심을 붙이고, 그리고 교회 중심도 같이 붙어놓았다는 것이다. 성도라면 교회를 중심으로 해야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교회 밖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세 가지가 갖추어지게 되면, 이것이 삼위일체와 관련이 되면서, 이것이 진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고신측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한국교회가 모두 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교회에 충성하면, 사업도 잘 됩니다 !!
이렇게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는 교회 중심인데, 이에 반해서 구원 중심에서는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개인주의에서 교회 중심으로 옮기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미끼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뭔가 충성을 해야하는데,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가정파탄에서, 사업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교회에 봉사하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이상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채워집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이것도 역시 납득이 되는데, 우리도 이런 과정을 모두 밟았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그러니 구원 중심의 해석에서는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간증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도 있고 말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 나라 중심은 상당히 건전한데 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건전한 것은 좋은데 빠른 시간에 부흥이 안 된다는 것이다.
◈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접목시키면 !!
그래서 어떻게 하는고 하니,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접목시킨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 중심의 교회는 너무 점잖고 건전한데, 이렇게 되면 친목단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에서 기복신앙을 찾다가는 몰매를 맞는데, 즉 "어디에서 그런 순복음 같은, 조용기 같은 이단 소리를 하는가? 우리는 건전하고 정통적인 개혁주의 교회야. 복이 어떻고, 방언이 어떻고 하는, 그런 날라리 소리는 앞으로 하지마"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봐서, 아주 지적이고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교회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교회는 친목단체의 성격이 강하니까, 교회가 부흥하기는커녕 유지하기조차도 힘들다는 것이다. 점점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않고, 반면에 나이가 든 사람들은 이별을 고하니 말이다.
그래서 무엇을 접목시키는고 하니, 셀 목회를 하든지 해서, 구원중심의 개인주의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즉 말씀은 이렇게 건전하게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해석하고, 그리고 목회는 개인중심으로 하게 되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여기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만을 살펴봐도 요즘 한국교회가 어떻게 놀아나고 있는지, 그 사태가 파악이 되는데 말이다.
◈ 이게, 당신이 잘 되라는 소리야 !!
실제로 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면, 목사가 결혼이 무엇인지 먼저 설명하게 되는데, 즉 "결혼은 신비로서,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만남입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고, 막상 주례사에서는 무엇을 강조하는가?
두 번째인데, 즉 "고생이 많은 이 세상에서 결혼을 하려고 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이 잘 됩니다" 라고, 항상 마지막은 각 개인이 잘된다고 하니까, 그것을 반대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회에 충성하면 당신이 잘 됩니다" 라는 것인데, 즉 "교회가 잘 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잘 되라고 축복을 해주는데, 그것을 마다할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기본적인 모토로 삼고 있는데, 그러니 "집단인 교회가 잘 되고,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은 명목상으로 하는 말이고, 결국에는 "각 개인이 잘 되는데 있어서, 교회는 무엇을 드릴까요?" 라고 하는, 그렇게 구원 중심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인 구원 중심을 다시 정리하면, 성경을 볼 때 구속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 주머니가 있어서 그냥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필요한 것들을 말이다. 즉 몸이 아플 때는 이 성경구절, 그리고 사업이 힘들 때는 이 성경구절, 마음이 지쳐있을 때는 이 성경구절 등등,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이러한 경우에는 잠언의 말씀이 많이 동원되는데, 그래서 개업을 한 가게에 가면 잠언 16장이 많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기도에 관한 구절도 많이 있고, 달란트 비유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구원 중심으로 말이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세 번째, '언약'을 중심으로 !!
그렇다면 이제 세 번째로 언약을 중심으로 하는 성경해석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 그리고 네 번째인 예수님 중심은 너무 어려운데, 그래도 끝 부분에서 하고 마치겠는데 말이다. 언약을 중심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이것이 난해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괄호를 쳐놓고, 아까 "하나님은 ( )" 라고 누가 그렇게 했는가? 인간이 그렇게 해놓고 메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 중심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 )은 언약을 주셨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나님은 여기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 없는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세계에는 언약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에 말이다.
◈ 하지만, 언약은 너무나 낯설어 !!
그러니 언약은 낯선데,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이 흔한 일인가? 낯선 일인가? 너무나 낯설다는 것이다. 지금 비는 고사하고 구름도 한 점 없는데, 방주를 만들고 있는 이 행위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데, 그런데 그게 노아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자체가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 없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갑자기 자기가 살던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그것도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별이 떴다고 해서 그 별을 따라오는 자들, 그러니 전부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서 "주여, 뉘시오니이까?" 라고 하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라는 것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언약은 인간에게 없는 것인데, 그만 출몰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복이시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에, 거기는 반드시 언약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데, 왜냐하면 언약의 하나님이기에 말이다. 그게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 들어가면 안 돼 !!
그런데 아까 살펴본 첫 번째인 하나님 나라 중심의 경우에는 들어가는데, 그러니 그것은 반칙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그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지, 진짜 하나님에 대해서, 즉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를 만들어놓은 이유,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이유, 또한 지옥을 만든 이유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질문할 권리도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렇게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를 심어놓은 이유,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고 생명나무만 보호하는 이유는, 그게 전부다 언약을 위해서, 그게 초반부에서는 약속인데, 그렇게 약속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자기에게로 잡아당겼다는 것이다.
◈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창세 전에 이미 약속되어있는 게 언약 !!
그 언약 안에 계신 분이 바로 독생자인데, 즉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마지막에 누가 나타났다는 것인가? 아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로 그 아들에 의하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는 이미 창세 전에 약속이 되어있는데, 그게 언약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우리 인간은 철저히 배제되는데,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에서는 애초부터 미워하고, 야곱은 애초부터 사랑했다" 라고 하는, 사랑이 바로 거기에 나온다는 것이다. 야곱이 손을 들고 "하나님, 저를 사랑해주세요" 라고 해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손조차도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야곱은 사랑을 받기로 말이다. 그러니 사랑은 주님의 위한 사랑이지, 우리 인간을 위한 사랑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중심에 있어서, 또 하나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 아까는 미처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것이 곧 '예정론' 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원론적 예정론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유대교 예정론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정하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칼바르트 - 오직 그리스도만을 예정 !!
이것을 칼바르트는 반대했는데, 즉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정론은 애초부터 없다" 라는 것이다. 예정한 것은 그리스도를 예정한 것이지, 인간을 예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시간이 되면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말이다.
예수님을 두고서 요단강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선택한 모든 개념, 즉 율법 개념, 하나님 나라 개념, 천국 개념, 기도 개념, 금식 개념 등, 여기에 대해서 인간은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하다고 할 때도 인간은 빠져야 한다는 말이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러니 진짜 선한 분은 예수님인데, 즉 약속도 예수님, 율법도 예수님, 하나님 나라도 예수님, 기도도 예수님, 모든 것이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에게로 완성이 되는 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폐쇄구조라는 것이다. 즉 언약이란 말이다. 왜 폐쇄인가? "인간은 들어오지마!" 라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에 생명나무 근처에는 오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추방을 시킨다는 말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인간은 생산되어야 !!
그렇다면 인간을 위한 몫은 없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있는가? 인간의 몫도 없는데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인간은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말이다. 물론 그것도 그냥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질을 가지고 생산이 되는데, 지옥에 갈 인간들도 생산이 되어야하고, 천국에 갈 인간들도 생산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인은 지옥에 갈 인간으로 생산된 것이고, 아벨은 천국에 갈 인간으로 생산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벨과 사가랴의 노선을 따라서 오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약속을 따라서 난 자녀이다" 라고 하고, 반면에 육으로 난 자녀들은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아브라함의 아내가 두 명인데, 사라가 있고 하갈이 있다는 것이다. 왜 아내가 두 명인가? 아브라함을 여자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라의 자식들은 천국에 가고, 하갈의 자식들은 지옥에 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아브라함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존재의미라는 것은, 인간은 언약을 담기 위한 존재이지, 그 이외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전혀 말이다.
◈ 하나님의 형상 ??
그런데 하나님 나라 중심에 있어서는, 구속사로 해석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연결을 했는데, 즉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지만, 예수님께서 회복하셨기 때문에, 신약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모든 권면과 명령은 성령을 받은 자들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라고, 그런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언약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서 다루어지질 뿐이지, 자체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담의 형상인데, 그게 신약에 오면 '죄 있는 육신'이 된다는 것이다. 즉 육이 된다는 것이다. 형상은 예수님의 형상인데, 그러니 예수님의 육신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합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적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아까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보는 것에서 발생된 모든 문제점들이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나무를 만들었는가?" 라고 하면, 그것은 당연히 '언약을 위해서' 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뱀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왜 악마로 하여금 에덴동산에 침투하게 했는가?" 라고 하면,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해서 뱀의 정체를 드러내시는데, 그러면 뱀의 정체를 왜 드러내시는가? 뱀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데, 하나님의 품에 있는 독생자를 드러내기 위해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전쟁을 벌리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되어야만 했었고, 그리고 생명나무는 보호해야하는데, 그 생명나무가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인데, 즉 예수님이 바로 생명나무로서 오신 분이란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대한 모든 해석은, 결국 "뱀의 편에 서는가? 예수님의 편에 서는가?" 라는 전쟁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곧 성경해석이란 말이다.
◈ 노아는 언약에 부름을 받았을 뿐 !!
물론 우리 인간은 들러리인데, 결코 스스로 언약에 개입하거니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아도 언약에 참여할 수 없는데, 노아는 언약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아는 언약 속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결국은, 언약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라, 자기로 인해서 잡혀서 제물로 바쳐지는, 그 제물의 모습을 통해서, 즉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러면 노아가 예수님을 알았는가? 물론 알았다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으니 말이다. 베드로전서 1장 11절에 보면,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서, 구약 시대에 이미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보기를 기다렸다가 결국은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일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노아의 일이고 아브라함의 일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 지옥은 왜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풀리지 않았던, "지옥은 왜 있는가?" 라는 문제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속성 가운데서 '공의'의 속성이 있는데, 즉 죄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는 속성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은 왜 있는가? 예수님의 속성 가운데 그 사랑이 무한함을, 즉 예수님의 용서가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국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에는 용서를 받은 사람만 간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것을 아시죠? 천국에는 잘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세리나 창기도 갈 수 있는데, 그들이 세리이고 창기라서 가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간다는 것이다.
그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라면 조건인데, 그러니 탕자가 얼마나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아버지의 재산을 날렸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서, 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용서해주는 사랑으로 말이다.
◈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상이다 !!
그러니 성경해석의 중심이 언약이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까,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상이다" 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언약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을 빠트리면 안 되는데, "하나님마저도 언약중심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인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여기에서의 신학이란 것은,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만 남는다고 주장을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 주권사상이 최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게 믿음이 엄청나게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높인다는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이 무엇인고 하니, "아들이 나라를 만들고 그 나라를 아버지에게 바칠 때라" 라고 해서, 결국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일임하고 아들마저도 은퇴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즉 아들은 아버지를 앞세우고 자기는 뒤로 빠진다는 말이다. 그게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데 말이다.
(고전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언약 중심에서는 하나님마저도 예수님의 주되심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만물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도록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언약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주로 높임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모든 할 일은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는 아들이 주가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가 자체가 더 좋습니다" 라고 아부를 떨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어디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억지를 부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을 통과해서 보면,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곧 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가 되시면, 그것이 곧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약만 높아지고, 즉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관계, 모든 피조물은 이런 관계를 바라보면서 찬양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게 쉽게 믿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여러분은 이것이 믿어지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믿어지십니까?
◈ 네 번째, '예수님 중심'으로 !!
이제 마지막으로 네 번째를 시작하겠는데, 이것이 상당히 난해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예수님 중심으로 보자는 것인데,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말이다. 즉 모든 성경말씀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라고 했는데요?
어떤 모임에서 계명대 교수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는데, 우리도 아는 양반이인데 말이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신과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 10: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거기에 대한 답변을 은퇴한 신학대학원 원장이 했는데, 즉 "여기서 말하는 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두고서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뒤에 덧붙이면 "영으로 살기 때문에 신이라고 한다. 그것도 몰라, 이 멍충아!" 라는 분위기로 말이다.
그러자 역사를 전공한 그 계명대 교수가 한다는 말이, "그렇게 멍청하다고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성경본문을 가지고, 성경의 문맥을 통해서, 앞뒤의 성경구절을 가지고 서로 납득이 되도록 설명을 해주시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질문자체의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그렇게 신이라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도 신인데, 그러면 내가 나보고 신이라고 하면 되는가? 그러면 나도 예수님을 믿으니, 앞으로 여러분도 나보고 신이라고 하라고 하면 되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이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야기해달라" 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은퇴한 신학 대학원장은 어떻게 나오는고 하니, 더 이상 답변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것도 알아듣지를 못한다고 하면, 더 이상은 들을 자격도 없지 않는가?" 라는 식으로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첫째, 둘째, 셋째가 다 나왔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중심, 구원 중심, 언약 중심이 다 나왔다는 것이다. 마지막인 예수님 중심은 빼고 말이다. 만약에 하나님 나라 중심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신으로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저 놈들을 신으로, 천사로 만들지? 그래, 말씀을 안다면 신으로 해주자. 그래, 이제 너희들은 나와 같은 동급이야" 라는 식으로, 그렇게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신학 대학원장의 답변이고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한 교수는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나를 보고 신이라고 해도 되겠네. 하나님과 먹어도 되겠네" 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