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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70이레 논문(반복)131219-32강b-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예레미야

가락-70이레 논문(반복)131219-32강b-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70이레 논문(반복)131219-32강b-이 근호 목사

지난 시간에 정말 중요한 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평소에 우리가 우리자신을 보던 그 안목 가지고 예수님을 이해하는 자체가 그게 예수님한테는 안 받아들여집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하나이다.’ 우리 같으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쉽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쪽에서 오버하셔요. “바요나 시몬아 네게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다.”라는 그 말을 베드로가 이해 못한 거예요. 그 말을. 자기는 쉽게 했는데 조금 있다가 ‘주여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사단이 왜 나옵니까? 사단은 묵시적이거든요. 사단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디 있는 게 아니고 전부 다 사단은 해석 문제에요. 해석을 내가 알고 있는 관점 말고, 시선 말고, 다른 관점, 낯선 관점이 왔을 때 이게 사단도 보이고 인자도 보인다 말이죠. 우리는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못 가졌다 말이죠.

못 가진 이유가 뭐냐, 말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말씀을 백날 줘도 내 스스로는 내가 누군지 볼 줄 모르거든요. 내가 누군지를. 내 쪽에서 묵시를 만들고 내 쪽에서 천국을 만들고 현재 이 세상 말고 딴 세상을 만들어 놓으니까 그 만들은 세상은 이 공간의 연장에 불과하지, 그건 완전히 엉터리거든요. 하나의 환상이고 망상에 불과한 거예요.

그 망상을 뒤엎고 진짜로 천국이 올 때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모습으로 온 거예요. 진짜 no body, no body,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분이예요. 누가 믿었으리요. 제자들도 도망가 버렸는데, 베드로도 3번 부인했는데,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복음전하면서 기쁜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었음에도 이걸 믿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건 소름끼칠 일 이예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믿느냐 이 말이죠. 막 때려주고 싶어요. 그걸 왜 믿어요?

우리가 ‘죄’에 대해서 봅시다. 죄는 우리가 나쁜 짓하는 게 죄잖아요. 이게 바로 마귀들 생각이라니까. 나쁜 짓하는 게 죄라는 이건 아직도 우리 몸이 선악과를 기억해요. 우리 몸이 선악과를 기억하니까 자꾸 나쁜 짓하는 걸 죄라 하는데, 죄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죄를 몰라요. 모르고 인자 되시는 분이 십자가 피를 흘릴 때 그 피를 볼 때 아! 뭔가 피를 흘리는 걸 보니까 그 피를 보고 있는 앞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피를 보거든요.

도마에게 뭘 보여줬습니까? 창자국과 못 자국을 보여줬잖아요. 창자국과 못 자국을 봤을 때 우리 같으면 ‘아이쿠, 예수님 창 찌를 때 아팠겠죠?’ 이렇게 이야기할 텐데 그게 아니고 ‘주여,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 적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당사자 맞습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피를 보면서 그 피가 피라고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이유도 모르고 무조건 죄인 돼야 돼요. 우리가 죄인 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가 묵시 층에 같이 소속돼 버려요.

그렇다면 예수의 피를 이해 못하는 모든 자가 이미 악마의 종이 되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걸 보니까 옛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수모 당하던 수모를 우리가 같이 공감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분명히 옳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봐야 알아듣는 사람 아무도 없죠. 그 이유가 뭐냐, 그들 나름대로 시간과 공간개념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은 인류가 이렇지만 나중에 몇 년 뒤에는 잘 될 것이라든지, 지금은 이렇지만 ‘5년 뒤에는 예수 믿을게, 라든지 자기 나름대로 시간이 있고 내가 지금 여기 집에 있지만 교회 가면 은혜 받는다든지 어떤 공간에 가면 은혜 받고 은혜가 떨어지고 자꾸 공간과 시간에 의해서 도움을 받아서 어떤 영적 세계 시도하는 그 시도 때문에 예수님 돌아가셨거든요. 그 백날 해야 헛짓이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헛짓이라도 헛짓이라고도 남아야 약간의 종교적인 위안이 되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안 하려고 하니까 섭섭하니까 뭔가 빌고 ‘주여’ 그냥 빌려니까 미안하니까 무릎 꿇고 그냥하면 미안하니까 손가락 구부리고, 그러다 찬송하니까 미안하니까 해병대 박수치면서 찬송하고 박수를 위에서 치면서 지어내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것이 무슨 짓입니까? 그거 아무 소용없는 짓이거든요. 회개해도 소용없는 짓이고, 회개 안 해도 소용없는 짓이고 헌금해도 십일조해도 소용없는 짓이고 헌금 안 해도 소용없는 짓 이예요. 주께서 그냥 죄 지으라고 사용할 뿐 이예요.

어제 수요일 날 설교 들었습니까? 거기 보면 신랑이 신부보고 죄지으라고 하죠? 네가 음녀가 돼 줘야 내가 신랑다운 거예요. 자기가 알고 있던 음녀 말고 신랑이 나타난 상태에서 음녀는 질이 다릅니다. 그건 뭐냐, 신랑이 없는 상태에서 음녀라 하는 것은 간통하고 바람피우는 걸 간음이라고 보지만 신랑이 있는 상태에서 음녀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모든 것이 음란한 겁니다. 왜냐 하면 주변의 이웃나라에 있는 모든 이방종교가 공통점이 모두 자기를 위해서 신이 있기 때문에.

이 육신이 있는 한 자기를 위해서 안 살 수 없죠. 아무리 성령 받고 은혜를 받아도 자기를 위해서 살게 돼 있어요. 한번 돌을 던져볼까요? 던지면 피하죠. 돌이 날라 올 때 본능적으로 피하듯이 뭔가 왔을 때 본능적으로 자기부터 보호하는 이것이 우리 육신의 본능인데 자기를 위해서 안 살라니, 이게 말도 되지도 않는 이야기잖아요. 따라서 우리는 돌이 날라 올 때 맞지 말고 피하세요. 그리고 뭐 할 때 자기를 위해서 사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뭐냐, ‘주여, 내가 음녀 맞습니다.’라고 하면 돼요. 참, 쉽죠?

내 본성에 의도적으로 이탈하지 마세요. 본능에 충실하세요. 본능에 충실하시면 그것이 바로 간음이란 사실을 새롭게 느껴지는 겁니다. 목이 마른데 ‘물 줘라.’ 하면 ‘저 먼저 먹고 가실게요.’하고 먼저 챙깁니다. 이거는 자식이 달라 해도 엄마가 물주는 법이 없고 엄마가 먼저 먹어요. 왜, 한번 주면 자식도 재미 삼아서 달래서 안 돼요. 버릇이 더럽게 들면 안 되거든요.

모든 것은 자식이고 뭐고 내 중심이다 말이죠. 그것을 돌이 날라 오면 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모든 것은 항상 전쟁이 일어나면 보따리부터 싸는 거예요.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그것이 죄인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우리는 피를 만나죠. ‘주여, 내가 묵시적인 기능인이군요.’ 묵시적인 기능인! 어떤 기능? 죄를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신랑 되신 예수님이 이 죄를 용서해줬다는 겁니다.

아까 어떤 분을 만나면서 이런 대화했어요. 저주가 있다는데 어떤 사람이 자꾸 저주가 있어서 저주를 풀어내라 하는데 ‘저주가 과연 아직도 있는 겁니까?’ 라고 질문을 하길래, 죄가 하나님의 원칙을 보세요. 사람이 뭐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원칙이 뭐냐, 죄가 있는 곳에 반드시 저주가 오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떤 죄도 예수 믿든 안 믿든 어떤 죄도 죽을 때까지 죄 안 지을 수가 없어요. 반드시 저주는 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성도한테, 자기 백성한테는 뭐가 오느냐 하면, 죄 안 짓는 게 오는 것이 아니고 용서가 와요. 용서가 오게 되면 저주에서 자유케 되는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는 것처럼 저주가 자유케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없이 하지 않고 용서를 주는 이유가 용서가 계속 주어져야 모든 것이 내 구원중심으로 원하는 세상이 아니고 예수님이 용서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데 우리는 거기에 긍정적으로 거기에 연관이 돼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어요. 우리 할 일이 뭐냐? 밥이나 먹고 떡이나 먹고 하는 게 할 일이 아니고, 주님이 용서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될 업무(할 일)가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죄를 계속해서 죄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죄를 계속 개발해야 돼요.

어제 수요 설교 들어보셨죠? 보니까 결혼하지 않은 7살 먹은 어린애가 무슨 간음죄를 짓느냐고 제가 물을 적 있죠? 간음죄라 하는 것이 보편타당성의 죄가 되려면 갓 태어난 애도 간음죄로 죽어야 돼요. 그것은 바로 갓 태어난 애도 육신에서 나왔기 때문에 오직 자기를 위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소식을 오직 자기 택한 새색시한테만 알려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쉿! 비밀로 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그래서 첫째 시간에 중요한 점은 뭐냐 하면 어디든지 시간과 공간 관계없이 어디든지 주께서 원하시면 어디든지 천국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어느 곳입니까?’라는 것은 역사적 질문이고, ‘언제입니까?’ 역사적 질문 이예요. 주님의 뜻은 어디든지 너희 안에 있느니라. 어디든지 천국 되게 하시는 겁니다. 언제 오실지도 주님 맘대로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함이 이때이니까?” 라고 사도행전 1장에서 묻잖아요. 그런 것은 너희들이 “알 바 아니요.” 너희들의 시간 개념 가지고는 절대로 그런 것과 연결이 안 돼요. 연결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우리의 시간 개념과 묵시적 세계가 연결이 안 돼요.

248 페이지, 밑에서 두 번째 줄에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게 신학적으로 한 수 배운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육이요, 악이 창궐하는 몸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몸은 주체나 자아가 손을 쓸 수가 없다.』요거 중요해요. 몸은 주체나 자아가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지난주일 낮에 그런 설교 했잖아요. 짜증난다. ‘짜증난다.’ 가 바로 나이지, 내가 앞에다 짜증난다고 붙이면 안 된다 말이죠. 차라리 이렇게 붙이세요. 주께서 짜증나게 하신다. 누굴 향하여? 나를 향하여. 사랑할 때도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되고, 주께서 저 사람을 사랑하게끔 하셨다. 이렇게 하면 되죠. 왜냐 하면 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주께서 사용하시는,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내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남의 물건 훔쳐 와도 도둑놈인데 주님 물건 내 맘대로 사용하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주께서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주께서 화를 내시죠. 왜 남이 물건에 손대느냐. 말이죠. 안 되죠.

철도공사가 누구 것입니까? 철도공사 것이잖아요. 그런데 파업을 저희들이 왜 파업을 해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자기들은 시키는 대로 월급 받고 일하면 돼요. 철도공사 무너지면 저희들이 책임질 겁니까? 책임은 안지면서 파업은 왜 해요? 임자가 따로 있는데.

우리 몸의 책임자는 누구냐 하면 주님이잖아요. 주님이 죽이든 살리든 주님이 알아서 하는데 왜 우리가 화를 냅니까? 이게 굉장히 수상한 거예요. 뭔가 이질적인 요소가 스며들어온 겁니다.

주의 몸을 내 몸이라고 우기도록 뒤에서 부추기는 그 세력, 아주 못된 세력, 우리는 그동안 정이 흠뻑 들어서 마치 그쪽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거예요. 특히 여자들 우는 것, 운다는 말은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어요. 누구하고? 이 몸의 주체는 주님인데 우리는 이 몸을 내가 주체라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주체라고 생각하니까 주체 뜻대로 안 되니까 우리는 눈물 흘리면서 그 헤어짐에 아쉬워하죠.

그동안 남의 몸을 이 몸이 자기 몸이라고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헤어지려하니까 헤어짐이 아쉬워서 엉엉 우는 거예요. ‘주여, 어쩌란 말입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보고 하고 싶은 말이다. 내가 어쩌란 말이냐?’ 남의 몸을 자기 맘대로 사용해 놓고 이제 가져가려 하니까 ‘어쩌란 말입니까?’

249 페이지 『자아나 주체는 그저 자아의 주체성 조절만 수시로 해나갈 뿐이지 결코 죽고 썩을 몸을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몸 자체가 주저앉는데 아무리 고상한 자아, 경건한 자아, 순수한 자아,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영혼하니까 그 친구 분 생각이 나에요. 그 친구 분 머리카락 안 희어집니까? 보세요.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해도 머리카락 희어지죠. 아마 조금 있으면 기억력 감퇴 오고 이빨도 안 좋아질 것이고, 왜 자기 맘대로 자기 몸 다루지, 이빨 안 좋아져도 안 되죠. 머리카락 안 희어지게 만들지, 기껏해야 염색밖에 더하겠어요? 염색하면 머리카락 소생합니까? 자기 몸 같으면 자기 뜻대로 왜 안 되는데? 솔직하게 내 주인 누군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이렇게 나오면 내가 약간 이쁜 맛은 있지. 뭐가 외계인이 어떻고….

분명히 우리 몸은 이 자아 것이 아닙니다. 이 자아는 추후 적으로 갖다 붙인 이미지에 불과하고 죄악 된 이미지가 자아고 실제로 이 몸은 주님의 것입니다. 정말 아담이 정말 주님을 주인이라고 여겼다면 ‘선악과 따먹지 마라.’ 했을 때 그걸 따먹을까 말까, 따먹을까 말까 갈등조차도 일어날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여기서 어떤 신학자들은 그걸 포인트로 잡았는데 이런 책이나 책상의 물건 같으면, 병 같으면 여기 있다가 굴리면 굴러 가잖아요. 이걸 ‘선악과 따먹지 마.’ 하면 안 가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거든요. 따먹었잖아요. 그게 바로 어떤 신학자는 그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돌멩이나 병 같은 경우는 자유가 없어 시키는 대로 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따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한 거예요. 그걸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면서.

그게 일리 있는 이야깁니다. 이런 이야긴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키는 대로 따먹었다고 했을 때에 그것조차도 주님께서 의도했다는 생각까지 한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해서 그걸 자유의지라고 하면 그건 범위가 너무 좁아요. 넓게 보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게 없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 팔아먹는 것도 이미 예수님이 알고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어차피 자유의지를 발휘했다 하면 곤란하죠. 그리고 심지어 가룟유다가 자살하는 것까지, 땅 사는 돈까지 이미 예언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가룟유다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자기 인생이 성경에 예언돼 있으니 보통 영광이 아니죠.

묵시적 사건을 보는데 249 페이지 위에서 여덟 번째 줄에 『요한계시록의 7인, 7나팔, 7대접』이 나오죠. 7인, 7나팔, 7대접 나오니까 사람이 그렇게 숫자에 또 흔들리네. 숫자로 장난치고.

제가 우리교회에 설교 평해달라는 것 읽어보셨습니까? 삭개오 설교 가지고 평해놓은 거, 4자 가지고 설교시간에 장난치는 거 보세요. 그 사람들 자랑하려고 그걸 녹취해서 올려놨는데.

7인, 7나팔, 7대접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이걸 무엇입니까? 7인, 7나팔, 7대접을 할 때 사도요한이나 사도바울 같으면 ‘이것이 무엇입니까?’를 묻지를 않아요. ‘이것이 무엇입니까?’를 묻는 게 아니고 ‘이 일을 누가 하십니까?’‘를 묻죠. 이 인을 누가 떼십니까? 라고 물었죠. 참 중요한 질문 이예요.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알려만 주시면 우리가 떼겠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지만.

‘누가 이 일을 일으킵니까?’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냥 덮쳐질 뿐입니다.’라고 수용하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주인 자리에서 물러가 있어야 돼요. 뭐든지 주인 자리에서 물러가 있고 주인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 있을 수 없고 주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잖아요. 그럼 세상 모든 것이 예수님이 알아서 움직이는 겁니다. 움직인다면 7인, 7나팔, 7대접이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 이 지상에 약속대로 벌어지면서 7인, 7나팔, 7대접, 7 숫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것은 바로 주님이 완벽하게 천지 창조할 그 능력으로 완벽하게 빈틈없이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빈틈없이 흩트림 없이 천지 창조 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7일 만에 창조했는데 모자랐습니까? 아주 만족했죠. 만족스러운 정도로 이렇게 한 거예요.

7이라는 것은 창조를 생각하세요. 7일 만에 완성한 것, 그 창조의 능력으로 다 하는 겁니다. 7인, 7나팔, 7대접, 7인이라 하는 것은 인은 도장이죠. 나팔은 빰빠라바빰~ 대접은 위에서 대접을 죽 붓는 것, 요 3가지는 전부 다 구약에 다 나오는 겁니다. 이건 다 전쟁용이라 보면 돼요. 찜이라는 것은 찜했다. 너는 표적이다. 너는 공격 표적이 되는 거예요. 너는 빼도 박도 못해. 나팔은 한창 전쟁이 치열하게 되는 거예요. 마지막 대접은 마무리, 심판의 철저함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7인이라 하는 것은 포장된 것에, 7인까지는 안 되지만 하나 인은 알 수 있어요. 청첩장 보내는데 봉투를 봉할 때 초를 녹여서 도장을 찍으면 딱 떼는 재미가 있잖아요. 그때 그게 인 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인은 몇 개입니까? 1개떼고, 2개떼고, 3개떼고, 4개떼고…뗀다 말이죠. 이미 표적은 딱 고 안에 담겨 있어요. 누가 적이고 누가 공격의 대상인지 그 안에 담겨있어요. 사도요한이 뭐라고 웁니까? ‘누가 이 인을 뗍니까?’라고 돼 있죠.

지금 인을 하면서 이레라는 것은 시간 개념이죠.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시간(이레) 개념에서 어디까지 확대되느냐 하면 전 역역에 있어서의 이게 심판으로 확산됩니다. 7이레에 대한 천지창조에 속해 있는 그 안에 시간으로 모든 것이 시간화 되어있어요.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 이 말이죠.

나 같으면 1부터 떼질 않아요. 7부터 떼요. 7, 6, 5, 4, 3, 2, 1, 더 멋있잖아요. 창조는 1, 2, 3, 4, 5, 6, 7, 그런데 나 같으면 7, 6, 5, 4, 3, 2, 1, 이렇게 하겠는데 왜 주님께서는 1, 2, 3, 4, 5, 6, 7, 이렇게 떼느냐 하면 구약에 이스라엘 역사의 안식일이 1, 2, 3, 4, 5, 6, 7, 1, 2, 3, 4, 5, 6, 7, 해서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증거를 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안식일 지키는 우리 집단 보세요. 우리 집단을 통해서 우리 집단이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이스라엘 통해서 계속 역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빼놓고 많은 지역이 넓어도 진짜 창조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독점해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뭘 건드린 거냐? 이건 엔진 부분을 건드리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거예요. 운명은 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결정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안식을 갖고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드린다면, 이스라엘이 만약 말씀을 위반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스라엘이 제대로 못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이스라엘 내부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자생하도록 만들면서 이제는 이스라엘이 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고 내부에서 올라온 진짜 이스라엘과 가짜 이스라엘 싸움이 되겠죠. 고것이 구약입니다. 고 구약을 고대로 진짜 이스라엘과 가짜 이스라엘이 싸우는 그 작은 부분을 들고 고걸 그대로 신약에 와서 나머지 나라에 갖다 퍼부어버리면 그 퍼 불 때 나오는 모든 용어들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내부, 또는 이스라엘과 주변에 있던 나라에 있었던 용어들이 이 세상 넓게 다 동시에 덮어버리면 구약 때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심판했던 그 원리 그대로가 신약 시대에는 다른 이방민족에게 그대로 다 적용이 돼 버려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필리핀, 노르웨이는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는 게 돼요. ‘왜 때리십니까?’ ‘이스라엘을 봐라.’ ‘이스라엘하고 우리가 무슨 관계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엔진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모델케이스에요. 이스라엘을 때릴 때 언약 적으로 치거든요. 모든 저주와 심판은 어디에 기준이냐 하면 이스라엘에게 내려준 언약에 기준해서 축복도 주고 저주를 하는데 그게 먼저 맛본 나라가 이스라엘, 그 맛봤던 그걸 그대로 그 다음에는 외부에 확산시켜 버리고 모든 자에게 다 적용시켜 버리는 겁니다.

2학년 1반부터 6반까지 있다면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그렇고 제가 교사할 때도 그랬는데 2학년 1반에는 첫째 시간이 영어고 그 다음 시간에는 2학년 2반이 영어고 그 다음에는 3반이 영어인데 2학년 1반에 제가 숙제검사를 하면 벌써 애들이 ‘오늘 영어시간에 숙제검사한다.’고 소문이 쫙 나요. 그러면 2학년 2반 숙제 검사 안 해 버려요. 그러면 2학년 3반부터 숙제검사 안 한다 하거든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숙제검사 해버려요.

이스라엘에 일어났던 그 일을 그들은 하나님이 무서움과 심판을 그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 그들은 교훈을 받았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의 일로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방나라 칠 때 이스라엘을 쳤던 구약의 특수한 용어들이 있어요. 인, 나팔, 대접, 그건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와 전쟁하면서 나팔 불고 했거든요. 그걸 그대로 여기다 이방나라에 적용시키면서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요걸 써버리니까 요한계시록 요거 해석은 반드시 구약으로 돌아가서 해야 되는데, 이 신천지는 그걸 그대로 사용하니까 풀릴 리가 있나?

구약으로 돌아가려면 구약 언약으로 돌아가야 돼요. 그 사람들은 언약을 모르거든요.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몰라요. 언약을 모르니까 성경을 자기가 알고 있는 용어하고 직접 들이대니까 여기서부터 장난치는 거예요. 숫자 가지고 장난치고 용어 가지고 장난치고, 세상에 이런 것을 가르치는 목자가 왔는데 우리가 그 목자를 버린 수가 있나? 해서 이만희를 숭배하고, 이런 것을 알려주는 목자는 (보혜사)성령이 아니고는 그런 목자 얻을 수 없단다. 그들이 오히려 원하고 있어요. 세상 어느 목사가 안 가르쳐주는 이 비밀을, 이런 비밀을 몰라서 우리는 지옥 갈 뻔 했는데 얼마나 고마우냐 이 말이거든요. 맞죠?

그저 한 단어, 단어, 이상하게 풀어 보이면 거기 완전히 빠져서, 빠지는 게 정상 이예요. 안 빠진 게 이상해. 빠져 나온 게 더 이상하고. 거기서 빠져나와서 기존교회에 가면 더 나빠요. 더 무시하니까. 그쪽은 말씀이고 언약이고 없어요. 오직 교회 부흥밖에 없어요. 오직 교회밖에 없는데 신천지는 교회보다도 말씀 이야기해주니까 야! 이거 기존교회서 안 가르쳐주는 말씀 이야기해주니까 진짜 목사다 해서 다 간 거예요.

언약입니다. 언약! 모든 게 언약 이예요. 언약의 우선 순번은 죄송합니다. 이스라엘 이예요. 우리나라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매를 먼저 맞고 그걸 보고 ‘야! 되게 무섭다.’ 해서 정신 차려서 우리가 그 빈자리 끼어들어가는 거예요.

그 뒤에 이스라엘 마지막 대목에 70이레가 등장한 겁니다. 계속 봅시다. 그래서 『7인, 7나팔, 7대접도 역시 역사 전체를 덮는 시간이 된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역사적 시간으로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사건들이 가득 담겨있어서』결국 어떤 사건은 아까 잊어버렸지만 다시 하겠습니다. 묵시적 사건은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이라 했습니까? 다른 말로 했는데? 반복!! 반복입니다. 1회성 사건의 반복! 늘 반복, 7인이 일어나고 7나팔이나 7대접이나 이런 거는 늘 반복하는 거예요. 왜냐,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이 하루 같으니까.

또 일어나는 또 하나, 그러지 마세요. 그건 우리 역사적 시간 개념 속에서 해석하려니까 그런 오류를 범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 이 세상은 독 안에 든 쥐에요. 독 안에 들었기 때문에 냄비나 막걸리 통을 흔들면 막걸 리가 가라앉으면 자꾸 흔들잖아요. 그러면 막걸리 알맹이가 하는 말이 ‘아까도 흔들었는데 또 흔듭니까?’ 하거든요. 병 안에 들었으면 매일 늘 흔들어요. 아까 5년 전에 666이 네로로 끝났는데 네로를 풀이하면 666인데 네로 끝나고 666이 또 있어요. 막걸리거든요. 막걸리. 또 나와. 적그리스도 매일 나와요. 왜, 어느 때 어느 시점이 아니고, 그건 역사적 시점이고 사건은 반복된 사건입니다. 성경은 죽을 때까지 계속 영원할 때까지 성경은 계속 같이 가요. 나중에 새 하늘 새 땅 되면서 성경은 날라 가 버리지만. 이제는 이해되시죠?

7인, 7나팔, 7대접, 1이레는 묵시적 언어기 때문에 이거는 사건이 반복된다. 7이레, 성전 지었죠? 이게 역사적 해석을 해보면 우리는 7이레 관계없어요. 이미 성전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러나 이게 묵시적으로 되면 매일같이 성전 짓고 매일같이 허물어지고 매일같이 십자가는 오고 그러죠.

매일같이 성전 짓는다는 게 뭘까요? 성전 짓는데 누구 도움으로 짓는다? ①번, 이웃나라에서 성전 지었다. ②번, 짐승의 나라에서 성전 지었다. 몇 번입니까? ②번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이웃나라에서 지어준 거죠. 고레스 왕이 바벨론 이후에 메대 바사 나라에서 돈 다 대주고 에스라 느헤미야 다 도와줬잖아요. 다 도와줘도 그 다음 나라 헬라에서 다 뭉개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지어준 것도 짐승이고 부수는 것도 짐승이고.

그런데 이미 묵시적 안목을 안 본다 하면 이웃나라에서 지어졌고 이웃나라가 치고 이렇게 본 것은 이스라엘 본인 자체도 자기가 묵시적 존재를 파악 못하는 그런 안목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전 짓는 게 뭐냐? 누가 지었다고요? 이웃나라에서 지어준 거죠. 여러분들이 세상 살 때 여러분들 옷 누가 만들었습니까? 기독교 신자가 만들었어요?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거 물을 필요 없죠. 그건 짐승의 나라에서 만든 거예요. 짐승의 나라가 얼마나 옷도 잘 만들고 짐승의 나라가 노래 너무 잘해요. 짐승의 나라에서 K팝도 나오고 그래요. 짐승의 나라가 세금공제도 해준다? 짐승의 나라에서! 세상에 짐승의 나라 도움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짐승의 나라가 복을 갖다 주지, 딸까지 낳아줬지, 짐승의 나라 여호와증인 아줌마가 머리를 해줬는데 얼마나 이쁘게 해줬는지 기독교 신자는 개판으로 잘라놨는데 짐승의 나라에서는 왜 그렇게 이쁘게 해주는지, 우리는 한시라고 짐승의 나라에 속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살 수가 없습니다. 다 도움 받는 사람 이예요.

그런데 결국 상처받는 건 누가 상처받습니까? ‘역시 당신이 예수 십자가 왜 믿느냐? 그딴 걸 왜 믿느냐?’ 짐승의 나라에서 상처를 주네. 그리고 위로받는 것은 바로 짐승의 나라한테 피 흘림을 당한, 짐승의 나라한테 쫓김을 당한 우리 예수님이 마지막 우리의 소망되시고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지금 우리는 이걸 매일같이 반복되죠. 이걸 묵시적 시간개념으로 봐야 돼요.

5년 전에 믿었으니까 지금 잘 믿었다. 5년 전의 그런 거 생각하지 마세요. 창세전부터 우리는 택함 받은 겁니다. 5년 전부터라 하면 5년 전까지는 약 올린 것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 진작 믿게 하지, 이렇게 된다 말이죠. 창세전부터 안 믿는 짐승의 나라부터 양육 받아서, 애굽에서부터 양육 받아서, 애굽의 압박, 애굽의 엄마, 애굽의 아빠, 그리고 애굽의 할아버지, 지금도 제사 드리는 할아버지한테 가서 아빠, 엄마 제사 드리고 어릴 때는 같이 제사 드렸다가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안 드리고, 하지만 그 제사 음식이 그렇게 맛있어요. 고사리, 비빔밥, 짐승의 제사 음식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이 몸이 제사를 기억해요. 우리는 짐승의 나라밖에 기억을 안 해요.

제가 언제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오후 예배드리는데 세상에 야구 올림픽 대회 결승전 하는 거예요. 우리교회는 참 편리한 점이 유아 실에 TV가 있어서 생중계가 다 돼요. 다 저쪽 보고 있어요. 야구 보면서. 우리는 아무리 예수 좋지만 더 우리에게 짐승이 각인 시킨 게 오게 되면 후딱 거기에 말려들어서 울다가 그것 때문에 웃다가 어떤 때는 울다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70이레 이해됐죠? 반복입니다. 오늘 강의 제목을 반복으로 할까? 반복! 묵시는 무조건 반복 이예요. 늘 반복하니까 언제 오십니까? 어디가 하늘나라입니까? 묻지 마세요. 반복되는 현장이 곧 하늘나라입니다. 반복되면. 그걸 느껴지면 우리는 확인되는 거예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영혼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안 밖이라는 것은 우리가 셈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돼요.

오늘 유튜브 동영상 한 거 이야기해봅시다. 세상이 뭐냐 하면 세상이 악하죠. 악한 세상인데 야고보서 4장에 보면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 말씀 할 때 세상이 있고 세상이 우리 원수 되지 말고 친하지 말자, 이렇게 나오는데 이건 잘못된 해석이고요, 우리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옷 다 벗어주고 가야 되는데 안 되거든요.

세상이라는 것은 일부러 주께서 만드십니다. 내가 수요일 날 설교할 때 간음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한다 했습니까? 간음죄는 누가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만들죠. 우리가 짓는 간음죄는 간음죄로 통하지도 않아요. 주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처럼.

세상은 하나님께 원수 되는 원리원칙이 적용되는 그걸 세상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나님과 복음에 위반되면 교회가 뭡니까? 세상이고, 그 교회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짓이 되는 거예요.

안 믿는 자와 함께 있으니까 세상이다. 아닙니다. 안 믿는 자가 같이 있는데 놀러 갔는데 그들이 어떤 복음을 잘 들으면 그건 세상이 아니고 주의 천국이죠. 그러니까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됐다 하지 마시고 그거는 십자가 이전이고, 유대교라는 제한된 공간이고, 이미 세상이 전 세계로 퍼졌으면 이제는 달리 세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세상 되게끔 사건을 일으키게 되면 일으킨 그걸 통해서 세상과 그리고 천국이 그 순간에 표가 나요.

이제 요한계시록 보세요. 요한계시록의 밧모 섬이 세상입니까? 천국입니까? 분명히 밧모 섬은 세상이잖아요. 섬이니까. 그런데 계시가 떨어지니까 144,000을 지금 사도요한이 바라보고 있으니까 천국이죠. 이미 예루살렘을 보고 있으니까 천국이잖아요. 지금 우리 모습이 그 모습 이예요. 반복! 늘 잊지 마세요. 반복! 반복한다 해서 반복을 일부러 조장하지 마시고 그거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249 페이지 밑에서 세 번째 줄에 70이레 마지막입니다. 7이레는 창조의 능력으로 성전을 지었다. 성전 이야기는 전번에 많이 했고 62이레는 1이레와 62이레 사이에서 깨진 성전이 짐승에 의해서 도로 짐승의 도움으로 성전이 세워졌다가 짐승에 의해서 다시 깨집니다. 이웃나라에서 깨면 안 돼요. 바다에서 온 짐승에 의해서 깨지는 겁니다. 바다라는 의미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뭐냐, 인자를 도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쪽은 바다라는 명칭을 갖고 들고 나오면 여기는 예수그리스도 인자가 되어서 들고 나오는 겁니다. 인자와 누구의 싸움? 인자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싸움에서 너희들은(우리) 좀 빠져줘. 우리가 싸워서 구원 못 받습니다. 우리는 빠져주고 우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짐승의 나라를 이길 때는 우리는 더불어 구원받는 거예요.

이긴 게 뭐예요? 십자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게 이긴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죽으나 사나 뭐만 믿습니까? 십자가만 믿는 거예요. 책을 갖고 신방을 갔더니만 저보고 욕하기를 목사님은 항상 십자가밖에 이야기 안 합니다. 이게 칭찬하고 있는지…아무리 들어봐도 칭찬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십자가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묵시적으로 영적으로 세상을 볼 때 십자가만이 승리의 증표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콘스탄티누스 대제 그 사람은 십자가를 잘못 해석했어요. 십자가 깃발보고 누가 이겼다? 자기 로마가 이겼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로마가 바다의 짐승을 이겨야지, 로마를 이기면 안 되잖아요. 그렇잖습니까? 우리가 이기는 것은 승진하게 되고 월급 많이 타는 게 이기는 게 아니고 짐승을 이긴 거예요. 짐승을.

짐승을 이긴다 하는 것은 결국 짐승 중에 내가 포함되죠. 내가 세상 것에 모두 주눅 들 때 십자가가 주눅 들은 나를 이긴 거예요. 그래서 주일 낮에 설교했잖아요. 나와 나의 차이를 알아야 되겠죠. 세상에 속한 나와 주께 속한 나의 차이를 늘 발견해야 돼요. 그거는 반복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그 차이를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승리는 뭐밖에 없다 했습니까? 오직 십자가밖에 없다.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는 이겼느니라. 요한복음에 나오죠.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였노라”

이거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이겼는데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뭐죠? 예수님이 이겼는데, 예수님이 이겼으면 예수님만 기분 좋지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까? 우리는 풀 죽어서 있을 뿐인데, ‘예수님 좋겠다. 혼자 이겨서. 우리는 놔두고 예수님 혼자 잘 났대. 이렇게 될 수도 있잖아요. 요한복음에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두려워 말라.” 주님이 이긴 거하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거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우리는 두려운데. 그 해답은 제자들보고 지금 지시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내가 그렇게 해줘도 잊어버리는데, 성경말씀은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왜 주체가 누군데요? 주체가 주님인데 우리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아예 돌아서지 말까? 돌아서면 주체가 또 ‘그럼 내가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까?’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주께서 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말씀대로 하게 되면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벌벌 떨기는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게 돼요.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벌벌 떠는 게 두려움이라 하지 말고 주께서 다 승리하게 되면 우리는 벌벌 떨더라도 그걸 두려워한다는 것으로 해석하지 말라 말이죠. 만약 그걸 두려워 떠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면 주님이 주체가 안 되고 그 순간 내가 두려워 떠는 게 돼요.

주께서 함께 하시게 되면 우리는 두려워도 그게 두려움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벌벌 떨더라도 ‘이건 두려움이 아니야.‘라고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이건 두려움이 아니야. 이건 두려움 아닌 거야. 아이쿠, 놀래라. 아니야, 이건 놀라는 게 아니야. 내가 놀란 게 아니야. 쉭, 이 소리는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야. 이건 내가 놀라는 게 아니야.‘ 맞아요. 내 말이 정답입니다. 내가 놀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말씀대로 두려워 않게 됩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십자가가 왜 중요한지 아시겠죠?

그 다음에 1이레 봅시다. 1이레를 반으로 나눴습니다. 7을 반으로 나누면 뭐가 되죠? 3.5가 되죠. 3.5가 되면 이게 어떻게 돼요? 하루, 이틀, 사흘, 이게 3.5 아니에요. 그냥 하루, 이틀, 사흘이지, 3.5가 아니잖아요. 한 때, 두 때, 사흘의 반 때가 되면 그냥 반 때지, 왜, 시간이라 하는 것은 흘러가는 겁니다. 그런데 묵시 적이 되면 이게 플러스(+)가 가능해요. 하루(1) + 2 +1/2=3.5, 이게 된다고요. 3.5 이것이 나중에 뭐로 바뀌느냐 42달, 1290일, 이게 다니엘에 막 나오거든요. 왜 숫자 가지고 장난치느냐는 느낌이 들죠? 이게 스톱이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몸은 흘러가면 사라지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흔적 그 자체가 중요해요. 한 때, 두 때, 물론 한 때 두 때 세 때로 보지 않고 서수로 보죠. 첫째, 둘째, 셋째로 보잖아요. 그런데 서수가 주님께서 그 기수가 치면 1, 2, 두 개 반 개 이렇다 말이죠.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우리의 계산법을 묵시 적에서 의도적으로 그걸 차용하면서 우리의 해석을 차단시켜 버립니다. 우리의 해석은 다 엉터리기 때문에. 죄인이 육신에 속한 인간이 마귀에게 속한, 짐승에게 속한 인간이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우리는 짐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666을 아무리 해도 144.000을 아무리 오묘하게 해도 그것으로 구원 못 받고 십자가로 승리했다. 십자가 승리의 효과로 구원받습니다.

원어 해석, 숫자 해석 여러분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점쟁이들이 전문 이예요. 뭐 타로 점, 그리고 사주팔자 보는 것, 그 얼마나 악마적입니까? 우리는 그걸 악마로 안 보잖아요. 그런데 십자가로 딱 승리한 채로 보세요. 아! 참 도처에 마귀! 도처에 모두다 마귀, 모두다 요물,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 모든 게 요물, 요물 아닌 게 없어요.

우리는 매우 익숙하지만 우리는 십자가 알고 난 뒤에 그걸 낯설게, 익숙한 그것이 낯설게 느껴져야 돼요. 낯선 순간에 다시 익숙해져 돌아가겠죠. 시집가는데 한번 봅시다. 점 맞는지 궁합 한번 보고 장난인데 뭐. 장난인데 왜 봅니까? 그게 마음이 불안하다 이 말이거든요. 십자가로 승리했잖아요. 십자가로 승리하는데 시집가는데 궁합은 왜 봅니까? 지금 십자가 승리하고 궁합보는 거하고 연결이 안 돼서 그래요. 연결 안 되거든요.

그럼 왜 연결 안 될까요? 십자가 승리했다는 말은 내가 승리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는 뜻이거든요. 내가 알아서 노력해봤자 악마가 놔주질 안 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피 흘림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아버지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풀어놨잖아요. 그렇다면. 딸이 결혼한다. 결혼하는데 결혼하는 주체가 누가 주체가 결혼시켜 줍니까? 주님께서 결혼케 하시기 때문에 결혼하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누가 빠져야 돼요? 혼주는 빠져야지. 혼주는 빠져야 된다고요. 안 빠지잖아요. 그동안 키운 게 있는데.

소급해서 봅시다. 부모가 키웠습니까? 주님께서 키우게 하셨습니까? 주께서 키우게 했죠. 고 3인데 수학이 뒤떨어져서 수학 학원에 보냈다. 그거 누가 보내게 하셨습니까? 십자가 달린 주께서 학원 보내게 하신 거예요. 애가 또 그 순간에 순종케 해서 한 달 다니다 말았지만 다닐 때는 순종했고 소급해서 보면 모든 것이 발걸음 머리카락까지 전부 다 모든 게 전부 다 주께서 알아서 빠지게 하셨다. 어떤 사람은 확 빠지게 했지만, 우면 산 산사태 나듯이 그렇게 빠지게 했지만. 다 그렇게 하신 거예요. 소급해서 보면.

묵시적 관점으로 볼 생각 안 하고 십자가로 구원받았으니까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아휴, 찝찝하다. 그래도 한번 봤으면’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보세요. 보고 난 뒤에 ‘내가 간음한 여인이다.’ 라고 고백하세요. 그러면 돼요. 일단 보고, 보는데 ‘딸 좋습니다. 예, 잘 만났습니다.’ 해서 기분 좋아라 하는 그걸 보고 슬퍼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슬퍼할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분 좋을 때, 내가 원하는 팀이 이길 때, 홍명보 일본 이길 때. 이기고 난 뒤에 슬퍼해야 돼요. ‘기껏 이것 때문에 기도했나? 아이쿠, 참말 기도 할 거 없어서 이거 기도했나?’ 하죠.

애 대학 되거든 슬퍼하세요. ‘아이, 이거 합격해서 기분 좋아서 요 기쁨 얻으려고 주님 이용했구나.’ 하고 슬퍼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슬퍼하기 전에 왠지 기도하고 싶어지는 걸 어이합니까? ‘주여 여기 떨어지면 그 애 방황합니다. 이러면 나 감당 못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싶어요.

그러니 도대체 우리 인간은 그야말로 주님께서 들었다 놨다 마귀로부터 맘대로 다루고 굴려줘야 그 틈 사이에 나와 나 사이에서 주님의 이레 효과가 우리에게 등장하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7이레, 1이레, 예수님 십자가 증거 하라고 우리를 요리 메치고 요리 메치고 우리는 인형으로 만든 기다란 키다리 아저씨인형처럼 이렇게 해서 메쳐서 울고 이쪽으로 메쳐서 울고 또 때기 쳐서 울고 또 엎어져서 울고 가만히 서있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천으로 만든 인형은 중심이 없기 때문에 항상 완전히 … 같아, 수리수리 마수리 해서 항상 건들거리다가 또 어느 점쟁이한테 가서 빌지 몰라요. 우리가 평생 우리가 그렇게 삽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요.

다니엘도 그랬듯이 다윗도 그랬듯이 우리도 마찬가지 베드로도 마찬가지, 세로로 메치듯이 주께서 이렇게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메침을 당할 때 십자가로 우리는 ‘주여 이 힘없는 심지도 없고 아무 줏대도 없는 이것을 십자가로 맘껏 사용해 주옵소서. ’ 하는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어야 되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스케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닌데 세상을 볼 때 짐승이 보이고 우리 주님이 구원자로 느껴지고 이 웬 이적이, 큰 기적이 있었습니까? 이제 멸망 받을 세상에서 십자가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가락-70이레 논문(반복)131219-32강b-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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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