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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31213b-히6장9절(구원의 요건)-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히브리서

안양20131213b-히6장9절(구원의 요건)- 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179)

안양20131213b-히6장9절(구원의 요건)-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2절에 보면,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 12절에 보면 중요한 단어 나오지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을 본받는 자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해서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성도라 하는 것은 본인이 구원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도 자체가 새로운 존재로서 구원의 요건이 되게 하신다 말이지요.

구원의 요건이 되게 하시니까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되느냐에 대해서 예수님이 안 보이잖아요. 실제로 예수님이 보인다 해도 문제가 돼요. 예수님이 보여 봤자 유대인들이 본 예수님을 오해한 것처럼 오해하기 마련이에요.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려면 옛 하늘과 옛 땅에 대해서는 안 맞고 어디에 맞느냐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야 딱 맞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 맞는 사람들을 자력으로서는 그렇게 못 만들고 무엇이 그렇게 만들어내느냐 하면, 12절의 말씀처럼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다. 기업이라 하는 것은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을 불러놓고 “얘야, 2층 건물은 큰 아들이 하고, 촌에 있는 땅떼기는 둘째 아들이 하고 셋째 아들은 내 빚이나 갚고.” 하면 서럽겠지요. 약속은 상속입니다. 기업이란 말이 어렵기 때문에. 기업하면 현대그룹 이런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상속이라 보면 돼요. 약속을 상속한다. 이리 되는 겁니다.

약속을 상속하게 되면, 약속을 소유할 수 없어요. 다른 것은 소유가 대상이 되지만, 소유하려면 내 것을 모아놓는 창고 같은 내 터가 따로 있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약속은 소유가 안 되는 이유가 약속이 들어오게 되면 현재 내 것이라는 것이 폭파되어 버립니다. 일종의 인화물질 또는 폭약 물 같은 위험한 거예요. 휘발유 이런 거. 집안에 휘발유 갔다가놓고 잠 잘 오겠다. 가스만 터져도 폭발하는데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 같은 것을 품게 될 때, 이것은 아까 말한 주인과 종의 관계가 내가 더 이상 선악과 따먹은 주인이 될 수 없고 나는 그 분의 약속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 분이 내 전에 있던 주인의 자리에 그 분이 독차지하게 되는 입장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선악과 따먹은 것이 손해다. 에이~ 괜히 따먹었네. 실수였다. 할 필요 없어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옛날 아담을 삭제할 수가 있습니다. 방금 제가 어려운 말을 했어요. 선악과를 안 따먹은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따먹어버리면 그 생명나무 따먹은 것이 본인 게 돼요. “나, 따먹었지롱~” 하고 주장할 수 있는 주체 자가 내가 될 수 있어요.

선악과 따먹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와버리면 이게 폭파당해가지고 주님의 소유가 돼버리고 내거라고 따로 챙길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럼 정리해 봅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누가 간다? 내 것이 없는 사람. 내 것이 없는데도 내가 있다는 것은 그러면 내가 누구 것이냐, 약속의 것이 되는 겁니다.

약속, 구원의 요건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다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제일 적당하지요. 하나님이 이 땅에 약속이 이런 것이고 구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다루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다루어진 사람들은 그 약속 때문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거기에 10절 끝에 보면,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 그러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또는 예수님의 뜻을 위하여 사랑이니까 이건 양보, 배려 그런 종류겠지요.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너는 죽었어! 예수님 때문에 내가 참는다. 참아.“ 이런 거. 그런 경우에 고린도전서 보면 차라리 니가 사기 당하거든 차라리 속는 것이 더 낫다. 내가 예수만 아니면 니 내가 총 구해서 너는 죽었어!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주님 때문에 자기의 행동하는 것이, 나의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사랑이 아닙니다.

아, 내가 이건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했는데. 이미 나의 것이 있으면 나의 것에서 나온 어떤 것이라도 사랑이 될 수가 없어요. 왜냐 하면, 나의 것은 그냥 외부에 주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뒤에 고무줄이 달려가지고 줬는데 결국은 그것이 나의 의미와 가치로 되돌아오게 돼있어요. “내가 너한테 돈 빌려줬지? 그러니까 똑바로 하란 말이야! 앞으로 내가 부탁할 때 니가 잘 들어줘. 알았어? 돈 줬어.” 나의 것이 있으면 이것이 이웃이 되던 남이 되던 심지어 하나님이 돼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예수님 믿어줬잖아요. 안 믿는 사람 많은데 나만 믿었다고요. 그러니까 주님이 나 섭섭하게 하면 안돼요. 알았지요?”이리 된다고요. 완전히 조폭도 아니고 깡패해가지고. 애들 유자식이 상팔자라는 그 프로에 보면 애들보고 나중에 자식을 낳겠느냐, 안 낳겠느냐 질문해보니까 자기는 자식을 낳는 게 낫다는 겁니다. 자식이 있다는 게 낫다는 거예요. 왜냐고 하니까 나중에 나이 많을 때 손 벌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식 없으면 지가 나이 많을 때 손 벌일 수 없잖아, 이리 되는 거고.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 애의 주장은 뭐냐, 내가 돈 벌었는데 내가 내 돈 벌어가지고 마음껏 여행 다녀야 되는데 애하나 키우는데 3억이 든다는데 내가 돈벌어가지고 자식한테 주는 것이 아까워서 못 주겠다. 그래서 자식 없는 게 낫다, 이리 나와요.

그러니까 뭡니까? 나의 것이 있는 한 절대로 사랑은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했어요? 남편이 사랑 받을 짓을 하나 관계없이 이게 내 남편이라고 여긴다면 사랑은 끝났습니다. 내 남편 아닙니다. 어떤 어슴아지, 내 남편 아닙니다. 어떤 머슴아가 아직까지 붙어있지요. 물에 젖은 낙엽이라고 보면 되지요. 문데도 잘 안 떨어져요. 가라해도 가지도 않아요. 바짝 보도블록에 붙어가지고. 물에 젖어서 떼도 안 떨어져요. 자꾸 기어 붙어 와요. 나의 것이 있는 이상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의 은사라 하는 것은 고린도전서13장 유명한 가사 있지요. 김 세환이 부른 유명한 노래있지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 사랑하는 사람 나오라고 해요. 없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손해 볼 짓을 미쳤다고 합니까? 자기 유익을.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하게 되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선물이지요. 은사지요. 은사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선물입니다. 사랑해서 고구마라도 얻는 게 은사가 아니고 사랑하는 그 자체가 선물이에요.

그러면 헌금해서 복을 받는 게 아니고 헌금하는 그 자체가 복이다 말이지요. 예수 믿어서 어떤 걸 얻는 게 아니고 예수를 안 믿어도 되는데 믿어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는 그 자체가 주님의 사랑이죠. 예수님 믿는 그 자체가.

나의 것이 있는 이유가 도로 나의 것으로 다시 회귀하기 때문에 그래요. 부메랑 있잖아요. 던지면 휙 돌아서 자기한테로 다시 오잖아요. 절대로 나에게 나왔는데 도로 나에게 안 돌아와요. 그게 은사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뭐냐 하면, 내 뜻대로 안되는 게 하나님의 일이에요. 기억하세요. 내 뜻대로 안될 때. 분명히 일은 터졌어요. 일은 터졌는데 고구마 터지듯이 터졌는데 분명히 아깝지가 않아요. 왜? 내가 산 고구마가 아니라서. 별로 우리는 아깝지가 않아요. 이게 사랑이 주의 일이니까.

제가 주일날 이런 예를 들었잖아요. 아파트가 폭삭 가라앉았는데 그것이 재미 나. 왜냐 하면, 뭔가 신나는 일이 벌어져야 재미있거든요. 자기 것은 손곱만치도 다치지 않았는데 남은 망할 때. 어떤 아저씨가 공개총살 당할 때 장 성택이 아저씨, 신나는 거예요. 왜, 우리 삼촌, 우리 이모부 아니거든요. 그게 주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진짜 주의 일이라 하는 것은 주께서 내거 건드릴 때 내가 화나고 일주일동안 왈칵 악성이 터져 나올 때 ‘야, 내가 주의 일을 했다는 게 아니었구나! 내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들통 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밖에 모르는 걸 들통 내는 그것이 주의 일입니다. 이게 주의 일이에요.

“내가 다시 내 것 주장하면 개다.” 이런 욕이 막 저절로 자기 자신이 미워질 때 그게 바로 주의 일입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은 지금 사랑을 솔솔 받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같이 공유하고 누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누가 있느냐고 하겠지요.

사도께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사도가 친절한 게 아니고 주님이 친절하시 게도 거기에 해당하는 예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누구냐 하면,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야, 아브라함 이야기하려하면 이야기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몇 시간 수 시간 이야기해야 할 건데. 아브라함 이 이야기는 요번 대전수련회에서 창세기할 때 반드시 거쳐야 되겠지요.

아브라함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은 누구하고 싸우는가 하면, 바로 아브람하고 싸워요.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싸움. 아브람은 옛 하늘과 옛 땅에 속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옛 하늘과 옛 땅의 존재가 새 하늘 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예수님이 구름타고 올라갈 때, 구름을 얼른 집어 밑바닥을 자근, 자근 밟고 주님과 함께 같이 구름 타는 그 정도의 능력이 돼야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되는 겁니다.

구름이 어디 헬리콥터입니까? 잡고 올라타게. 불가능하지요? 불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 그것은 십자가지신 분의 특혜거든요. 십자가지시고 아버지께서 인정해 주신 유일한 아들로서의 주신 특징이고 특혜고 능력이다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아담에 속해서 죄인인 주제에 어디 감히 사흘 만에 부활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우리는 죽어도 사흘 만에 부활 안 됩니다. 그건 예수님 혼자의 몫이지 예수님 빼놓고는 아무도 그렇게 못해요. 아담이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까? 창세기5장보세요. 아담죽고 난 뒤에는 그 아들 셋만 낳았지 아담 당사자가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까?

아브라함 죽고 난 뒤에 이삭이 가만히 기다려보니까 아브라함이 죽고 난 뒤에 무덤이 빈 무덤이 됐어요? 안 되잖아요. 이 땅에 무덤 없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더 있어요? 에녹하고 엘리야하고. 모세는 무덤을 가져갔겠지요. 누군가. 마귀가 가져갔던지 천사가 들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은 예수님이 아닌 이상은 누구나 죽어서 부활되지를 못합니다. 살 수 없어요.

그러면 죽어서 부활되지 못하면 어디 떨어져요? 옛 하늘과 옛 땅에 그대로 돌아가지요. 흙에서 왔으니 그냥 흙으로. 이 땅과 이 하늘이라는 그 범주 내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뭐했습니까? 약속을 했어요.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할 때에,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졌어요. 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아브람을 아브람 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으로 바꾸었는가 하면, 아브라함 되게 만들었어요. 그러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 왔는데 아브람을 뭐로 변질시켰어요? 아브라함으로 만들었지요.

디즈니랜드에서 만든 만화가 있는데요. 과장되게 한 게 참 많잖아요. 약한 마우스 쥐가 고양이가 쫓아오면 약한 쥐는 잡힐 듯 잡힐 듯하지만, 고양이를 약 올리면서 결국 살아남고 나중에 헤헤거리며 승리자로 남는 거 있잖아요. 고양이가 왔을 때 솥뚜껑으로 막으니까 고양이가 솥뚜껑인 줄 만져보니까 벌건 솥뚜껑 돼가지고 손이 탔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이 아브람에게 왔을 때 아브람이 시커멓게 타가지고 아브라함 됐다 이리보시면 돼요. 아브람이란 솥뚜껑이 벌건 아브라함된 거예요. 자기는 계속 아브람 쪽으로 약속을 자기가 간직하고 싶은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관하거나 저장하거나 할 수 있는 그러한 자기만의 터, 터전, 자리, 그건 일체 용납이 안 됩니다. 이것은 찢어져야 되고 폭파되어야 돼요.

그러면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가 곧 뭐가 된다? 찾아왔던 약속이라 보면 되겠지요. 그러면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가 뭐냐 하면, 그것이 제물입니다. 창세기15장8~9절에 보면,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유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게 뭐냐 하면, 제사할 때 필요한 제물이죠. 요즘 같으면 문어하고 대추하고 문어를 그냥하지 않고 문어를 오려서 모양내서 하고 전 구워놓고 이런 거 시키는 거죠. 홍동백서 해가지고 소주 바쳐서 하고요. 여자들은 뒤에 서서 앞치마 두루고 보고 있고 남자들은 손자나와해서 남자만 하고 밤 12시에 그 짓하고 있고.

제가 아까 보통 세상의 신화라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매개로 뭐를 뿌린다 했지요? 신이 들어오지요. 인간은 대자연을 정복하고 싶어요. 정복해서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인간이 오야봉 되고 자기 이름을 내고 싶은 거예요. 이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물이야기는 좀 이따 하고요.

자, 종이를 구겨놓아 봅시다. 종이에 이 땅과 하늘, 바다 다 포함되고 여기에 아브라함이 있다 봅시다. 그럼 아브라함은 옛 하늘과 옛 땅에 소속돼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둘둘 감아서 병행해서 주신다고 아까 언급했잖아요.

그러면 아브라함 때도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왜, 선지자이기 때문에. 요한복음 8장56절에 보면,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 했지요. 자,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떤 식으로 주느냐 이 말입니다. 전부 옛 하늘과 옛 땅밖에 없는데. 이거 풀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찾아오시면 주님만 달랑 오는 게 아니고 분명히 새 하늘과 새 땅과 다른 요소가 들어와야 된다 말이지요. 아브라함이 여기서 양을 잡고 제사를 드립니다. 하늘을 향하여 손을 벌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요 제물이 아브라함이 드린 제물이, 아브라함이 제사 드림과 동시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이 숱한 자손을 낳더라도 그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 요 약속의 능력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 때문에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으리라, 약속했거든요. 창세기15장5절에 나옵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이 제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문제입니다. 이 제물을. 처음에 삼년 된 소부터 해서 그냥 소도 아니고 암소,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수양, 이렇게 계급의 단계가 소가 제일 높아요. 그 다음 높은 게 염소고, 그 다음 낮은 게 양 이거든요. 양인데 제일 높은 첫 번째, 두 번째는 수컷이 아니고 암소, 암염소였다가 세 번째 와서 수양이 되는 겁니다. 이런 제물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바쳐라 되어있는데 물론 이 제물을 쪼개는 거예요. 지금 이걸 설명하려고 하는 겁니다.

상당히 설명할 때 컴컴해 보이는데, 아까 말한 ‘구원의 요건’ 기억하십니까? 구원의 요건. 구원의 요건 할 때 고구마 찌는 거 생각했지요. 고구마를 솥에다가 집어넣고 그 다음에 압력가하고 부르짖고 할 때 주인이 종 되고, 종이 됐는데 그게 주인인 줄 모르고 학대하니까 학대했다는 그것을 근거로 삼아서 소위 종이 주인 노릇하는 그 인간을 죄앙을 내리고 거기에 있던 진짜 주인 되신 어린양을 주인으로 제대로 보여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 했지요.

아브람은 아담에 속했습니다. 죄인이죠. 죄인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임해요. 그러면 아브람은 옛 하늘과 옛 땅 속에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에 아브람은 뭘 기대하는가 하면, 아브람은 그대로 종속된 채 내가 어떻게 잘 될 가를 생각해요. “야, 내 자식이 많아지고 야, 내 나라가 잘 될 거야.” 항상 나, 그렇다면 제물을 받아도 이 제물은 현재에 있는 나가 잘되기 위해서 동원된 축복의 제물일거야. 라고 하는데 오해입니다. 그건 오해에요.

자기가 제물을 간직할 수 있는 자리나 터는 없어요. 제물에 의해서 아브람의 세계는 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죽어야 돼요. 같이 죽어야 돼요. 제물이 불에 탈 때 같이 아브람도 사라지고 그 탄 제물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브람의 이름이 아니고 오실 메시아의 이름이죠. 오실 메시아의 이름이에요. 이름이라는 것은 기능으로 생각한다면 제일 알기 쉬워요. 아브라함처럼 기능하시는 분이 장차 오실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바뀌지요. 이스라엘로 바뀌었는데.

야곱의 이름은 사기꾼, 뺏는 자, 그래서 형도 동생이 자기를 속일 때, “아버지, 보세요. 동생이 동생 이름값 하잖아요. 저번에도 뺏더니 요번에도 뺏었습니다. 억울합니다. 내 것을 동생이 뺏었는데 아버지 뭐하십니까? 이게 아버지의 정의로움 입니까? 이게 하나님께 속한 아버지라 할 수 있어요?”따질만하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그리하는 인간들이 도둑놈들입니까? 원주민이 도둑놈입니까? 누가 도둑놈입니까? 들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둑놈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 편이 됩니까? 도둑놈편입니다.

아니, 살고 있는 주인에게 나오라 하면 나쁜 사람이죠. 죽자고 싸울 수밖에 없지요. 당연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원래 집주인을 추방해버리고 엉뚱한 사람으로 메우잖아요.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게 바로 구원 요건의 약속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장차 오실 예수님은 마치 도둑으로 와가지고 집주인을 묶어놓고 세간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그냥가지고 와서 아주 질 나쁜 도둑놈같이 그렇게 하는 거죠. 왜냐 하면 그 이야기할 때 바리새인들이 니가 마귀의 고수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래, 나 질 나빠. 질 나쁜 내가 한 번 이야기해 볼까?” 해가지고 담 넘어 들어가서 묶어놓고 도둑질하는데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누가 나빠요? 누가 정의롭습니까? 예수는 안 믿고 복음도 모르고 예수도 안 믿지만, 가만히 보게 되면 시장 통에 가게 되면 참 어질게 생긴 우리 박 집사님처럼 어질게 생기고 참 곱게 생긴 분이 호호 불어가면서 나물 하나 더 팔겠다고 해보면 ‘아이고, 저 사람 지옥가면 참 얼마나 억울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분이 뭐가 잘못됐어요? 그래서 돈 벌어오면 술 먹는 남편이 돈 줘 소리를 버럭 지르고 소주한 병 먹고 마누라나 때리고 분명히 그럴 건데. 그러면서도 자식 3명 내가 키울 거야. 이렇고 있는데 그게 인간시대에 나올만한 착한 사람이 뭐가 잘못돼서 지옥 갑니까? 지옥은요, 나빠서 가는 데가 아니고 다 가요. 다 가.

다 가는데, 안 간 게 이상해. 이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안 간 게 이상하다니까요. 내보고 누가 지옥가라고 하면, OK. 그러려무나. 그랬어? 응 알았어. 이런 식으로. 그렇게 넘겨야 돼요. 바른 소리하기 때문에. “지옥 갈 이단아!” 하면 “응, 옛날부터 이단이었어. 아담부터 이단이었어.”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칩니다. 바치게 되면 여기서 아브라함과 제물은 하나가 되면서 이게 죽어요. 죽고 이 제물을 하나님께서 관통해 버립니다. 관통해 버리면 이 제물에 실체, 찐빵 같으면 앙꼬 같은 것. 밀가루 껍데기 먹는다고 찐빵을 먹는 게 아니지요. 앙꼬를 먹어야 제 맛이 나거든요. 제물의 중앙을 보여주기 위해서 둘 다 쪼개서 서로 마주보게 했어요. 밤이 되었습니다. 왠 횃불이 나타나서 그 가운데를 지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제물에 실체가 된 동시에 이 제물에 담긴 실체가 곧 앞으로 새로운 아브라함의 이어진 역사로서 전개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약속한테 납치당한 셈이 되는 거예요. 인질로 팔린 겁니다. 빼도 박도 못해요. 하나님은 자기 자손을 만들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아브라함 몸을 통해서 자기 자손들을 배태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이 공수부대에 비행기 있잖아요. 공수부대에서 낙하산을 떨어뜨릴 때 밑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꼭 거북이 알 낳는 것 같지요. 하나씩 뚜두둑 떨어지잖아요. 아브라함역사가 죽~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교회로 바뀌면서 뭔가 계속 떨어지는 게 있어요. 그게 아브라함의 백성들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도 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도 되고 하나님의 제사 제물이 떨어진다고 봐도 되고 그 제물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전부 다 3년 된 암소, 3년 된 암염소, 3년 된 수양의 본질을 품고 낙하산 하나, 가슴에 품고 캥거루 엄마가 캥거루 하나씩 품었듯이 진짜 주의 약속을 품고 낙하 강하! 해서 이 땅에서 떨어진 거예요.

다시 한 번 해 봅시다. 주께서 이렇게 옥토에 씨앗 뿌리듯이 뿌리는 거예요. 뿌리게 되면 거기에 줄음 지어 접혔던 약속이 스스로 전부 다 성도로서 약속받은 아브라함의 부분들, 아브라함의 모자이크 된 타일조각들이 하나씩 펼쳐지는 겁니다.

미국영화의 터미네이터 보면, 처음에 외계에서 온 사람들이 옷도 안 입고 턱 앉아 있지요. 처음 장면에. 어느 술집에 가가지고 기계니까 죽~ 보니까 저, 치수는 내 치수와 맞다 하면 패서 옷 다 벗기고 안경도 쓰고 철커덕 철커덕 돌아다니잖아요. 처음부터 외계인이 와서 한국 사람들 옷을 입듯이 주께서 말씀이 어떻게 된다? 말씀이 육신을 입듯이 성도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는 것과 똑같이 성도도 아담의 껍데기를 입고 안에는 약속이 차지하고 약속된 그 모양새로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 그게 바로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뒤에 봅시다. 히브리서6장 13~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미 약속 속에 아브라함이 포함이 돼버렸어요.

아브라함이란 존재 자체가 이미 약속이 내장돼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가 이 아브라함 약속과 관련된 사람이 아브라함으로 이게 모델이 됐다면 오늘날 성도는 어떻습니까? 성도도 이 아브라함과 똑같은 팔자와 운명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한 것은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다 했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그 분은 우리보다도 더 크신 분이에요. 갓난애가 엄마 품속에 있잖아요. 엄마 품속에 몇 년 동안 있어요? 한 10년 있습니까? 한 2~3년 있다가 나오잖아요. 이제는 엄마 품에 있지 않지요. 왜 나옵니까? 현실은 그보다 크니까.

그래서 우리 성도된 사람은 옛 하늘과 옛 땅에만 이게 전부인 줄 알고 여기서 복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가 어느 날 옛 하늘과 옛 땅보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게 되는가, 그렇게 될 때 그건 약속이 그만큼 키워 준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하나님의 맹세대로 할 겁니다.

항상 우리가 생각한 이상대로 큰 분이 계시고 그 큰 분이 내가 생각하는 작은 내 인생을 관리하고 그렇게 조립하고 구성한 거예요. 남편이 죽고 울고불고 해도 큰 분이 있어 보게 되면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미 들어앉아가지고 이렇게 보시게 되면, 그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집사님이 구원받는 거예요.

하나님은 구원받기 적합하도록 내일의 습도 날씨까지 딱 적합하게 항상 모든 것이 구원받기에 약속 증거 하는데 합당하게 그렇게 돼야만 우리가 더 이상 옛 하늘과 옛 땅에 마음 붙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집에 가서 남편 잘해주세요. 고맙다고 하세요. 당신 아니었으면 내가 구원 못 받았다고 이렇게 해주면 갑자기 왠 아부를. 아부가 아니고 진실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은 어렵다고 보지 말고 큰 분에서 보게 되면 딱 맞춤이라. 세상에 그렇게 맞추는 집 없어요. 딱 그래야 우리가 십자가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만약에 그런 일이 없었으면 우리는 십자가 말고 세상 영광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푹 빠져가지고 페로가모나 구찌나 돌아다니면서 그걸 부러워서 그런데 백화점에 사치하는 아줌마도 고민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신상품이 나오고 분명히 내가 산 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 때 자기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뭘 팔아가지고 저걸 살까? TV에 나오는 쇼핑에 중독된 아줌마 있잖아요. 집에 풀지도 않은 것이 있는데 또 들여다보고 있어요. 5분 만에 완판! 하면 또 사려고 하지요.

이 말은 맹세가 큽니까? 우리가 큽니까? 우리보다 뭐가 더 큽니까? 맹세가 더 커요. 우리가 중요해요? 맹세가 중요해요? 맹세가 중요한 겁니다. 18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맹세는 거짓말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거짓말할 수 없는 두 가지라 했는데, 여기에 두 가지가 뭡니까? 약속과 반드시 지킨다는 그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는 약속을 줬다는 사실과 지킨다는 사실, “약속? 나 안 봤는데. 약속 몇 시에 던졌는데? 남산 위에? 나는 약속 못 봤어. 나보고 약속 하지 마. 나는 약속 못 봤어.” 라고 나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는데 약속 못 받았다고 하게 되면 어떻게 해요? “니가 얼마 전에 나한테 제사 드렸잖아.” “아! 제사, 제물.” 그게 장차 예수님이거든요. 높은, 높은 분 그러니까 암소, 암염소, 수양, 높은 자리에서 이게 뭐냐, 수소, 수 염소, 수양이 아니고 암이지요. 암컷. 암컷이 뭔가 누락된 거예요. 빠져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암소, 암염소, 수양 이것이 바로 아브람을 대신하는 아브라함이 되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되고. 빠져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되고.

그게 암소, 암 염소 있다가 구체화 된 것이 수양이니까 수양은 바로 예수님의 어린양이 아들이니까, 예수님이 아들이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창세기에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되어있지만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여자가 낳은 아들, 아들을 강조하며 써놨어요. 이게 수양이니까 이런 역사가 있기 위해서 묵시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게 되는 겁니다. 어쨌든 이게 약속이에요.

그럼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뭘 생각합니까? 약속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오늘날 우리에게 증거가 뭐냐, 갈라디아서 3장1절에 사도바울이 하는 것처럼 십자가가 니 눈앞에 보이는데 무슨 또 언제 약속을 받았느냐, 나는 본 적 없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서 부자 됐다는 약속이 있는데 나는 집에 돈 한 푼도 없는데 무슨 내가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확정하느냐하는데 사도바울 같으면 뭐라고 했습니까?

“이 바보야. 십자가를 봐라. 십자가를. 십자가가 코앞에 있는데 누가 돈 현찰이 약속이다. 애가 잘되는 게 축복이다. 누가 그렇게 사기를 치더냐.” 그런데 약속은요, 반드시 약속을 주게 되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지 그런 돈이나 공부 잘하고 고부간에 갈등해소하고 병이 낫고 이런 거 줘버리면 자기는 잘난 사람이 돼버려요. 자기가 죄인이 안 된다니까요.

자기가 죄인이 안 되면 자기 자신에게 십자가가 증거 되겠어요? 잘남이 증거 되겠습니까? 자기 잘남이 증거 되겠지요. 그것은 약속 아닙니다. 세상 교회에서 축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왜 엉터리냐 하면, 그게 기복신앙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십자가를 가리기 때문에 십자가를 대체하기 때문에 그게 문제에요. 그게 마귀들이 하는 짓이라니까요. 십자가를 대체해요.

그런 목사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아니 십자가 이야기로 어느 놈이 교회 오느냐 이 말이지요. 그럼 저는 그러지요. 교회 안와야 그게 교회가 된다는 거예요. 왜, 성경에 교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성경에 교회라는 말이 있는데 그 성경에 말이 있다면 뭐든지 성경 말씀대로 되지요.

여기 거짓말 안한다는 게 뭐예요? 약속을 줘놓고 줬다는 게 거짓말 안하는 것이고 약속대로 반드시 변치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이 또 하나의 거짓말 안 할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경말씀에 교회 나왔잖아요. 일단 교회 있는 거 맞고 교회는 교회답게 나타나지요. 주님이 그렇게 하시잖아요. 그럼 교회 있잖아요. 뭐 교회 안 되기는 무슨? 그럼 지금 무슨 교회를 생각하고 있는데? 무슨 교회를 생각해서 교회가 안 된데요.

십자가를 증거 해서 사람 안 오면 그것은 안 와야 될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옛 하늘과 옛 땅에서 사는 사람이겠지만, 새 하늘 새 땅에는 못 들어갈 사람이에요. 그럼 못 들어갈 사람은 안 들어와야 되지 못 들어갈 사람이 안 온다고 걱정하는 그 마음은 무슨 심보예요.

일류호텔에서 파티해 보세요. 들러리해서 근처에 가면 “뭔데요?” 하면 “파티에 가려고요.” “초청장 봅시다.” “없는데요.” “저리 가!” 십자가 초청장 없으면 참석을 못한다니까요. 주께서 주신 증거가 뭐냐, 십자가에요.

부자가 아니고 부자는 지옥가지요. 부자가 지옥 간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부자가 천당 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속에 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은 어쨌든 못 들어간다는 뜻이거든요. 주의 뜻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은 뭐든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없어야 돼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뭐만 쳐다보겠어요? “아이고, 약속만 쳐다봐야지.” 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우리 뜻대로 안될 때 “아이고, 이거 해도 안 되고 저거 해도 안 되고 에이 씨~ 십자가만 봐야지.” “고래. 맞다. 그거야.” 고거예요. 고거.

그래서 하늘나라 천사가 보이스피싱 이라면 “고객님, 십자가 믿었습니까?” 이래 가지고 믿겠다하면 그것은 쏙! 빼는 거예요. 다른 거 안 해요. 십자가 믿으십니까? 그거만 한다고요. 십자가 믿으십니까? 그러면 교회가 그거만 증거 해야지요. 처음부터 새 하늘 새 땅에 못 들어갈 사람이라면 슬슬 빠지겠지요. 빠지면서 그냥 안 빠지겠지요. “목사, 니가 나가라.” 해서 목사 지가 나가겠지요. 나갈 때 한 푼도 못 받고 나가겠지요.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로 자기 뜻대로 안됩니다. 왜냐 하면, 나의 맹세보다도 누구 맹세가 더 세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의 맹세가 더 세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한테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목사한테는 복음 모르는 사모를 붙여놨어요. 복음 모르는 사모가 이해하는 복음은 반드시 돈이 될 때, 복음 지나고 돈이 들어올 때, 비로소 ‘아! 복음이 좋구나.‘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집사님이 웃으시는데 만약에 남편이 지금에 와서 정신이 돌아와 가지고 신학 한다 해가지고 복음만 전해보세요. 환장합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이제 나는 죽었다. 돈을 벌어줘야 내가 복음을 아는데, 돈 안 되는 복음을 전해버리면 그러면 나는 애 새끼 둘하고 우이 살꼬. 동네 통장해서 삽니까? 알아서 다 해주신다고요? 그 이야기를 복음 아는 사모들에게 해보세요. 욕 얻어먹습니다. 그럴 줄 알고 10년 기다리고 20년 기다렸더니만 결국은 낭패. 결국은 나중에 안 되지요.

제가 어느 강의에서 그런 강의했잖아요. 아, 시민대학에서 했어요. 하나님께서 참새를 친히 기르시잖아요. 하나님께서 친히 들풀을 기르시잖아요. 들풀이 갖고 있는 종교가 뭐죠? 참새가 무슨 종교 믿었습니까? 신천지 믿었습니까? 친히 길러준다면 뭐가 필요 없어요? 종교가 필요 있어요? 없어요? 종교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왜 기독교가 필요해요. 이것은 뭔가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습니다, 하는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그냥 참새는 늘 길러주는 그 분을 감사하면 됐지, 왜 종교를 가지고 종교가 매개가 돼가지고 하나님을 거기다가 섬기고 만나고 왜 그래야 되느냐 이 말이죠. 그게 뭐냐 하면, 참새로 만족치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다른 사람은 참새가 아니거든요.

참새같이 빌어먹고 사는 그것은 너무 처참하고 이제는 번뜩 솔로몬처럼 살고 싶은데 주께서는 솔로몬이 입은 옷이 백합보다 못하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솔로몬 부인이 갖고 있던 페로가모 그 가방이 백합의 줄기보다 못하다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백합줄기 뜯어가지고 들고 다니면 이건 바보고.

그러니까 제가 다시 이야기할게요. 아브라함이 받았던 맹세가 우리가 성경 보면 ‘아브라함 좋겠다. 좋겠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니가 한 번 맹세 받아봐. 니 인생 조졌어. 이제는.” “아이고, 목사님 사모님은 좋겠다. 매일 복음 듣고.” “니가 한 번 사모해봐. 돈도 되지 않는 거 가지고.” 피아노 레슨해서 애 키웠는데. 어디 복음 전해서 키운 줄 아나. 피아노 레슨해서 시집보내고 곱빼기 고생가지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요.

그러니까 그 뒤에 다음시간에 할 거 그 만큼 신앙의 선배들이 이건 고생했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요, 생각도 못할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봤지요. 고생한다 하면 미리 고생이 예상되잖아요. 이리 빌어먹고 저리 빌어먹고 이게 아니고 도저히 하루, 하루가 상상이 안 돼. 하루가. 내일 또 무슨 폭탄이 터질지 몰라요. 하루, 하루가 상상이 안돼요. 그냥 그 말대로 오늘 치만 기르시나니로 적합해요. 기르시나니. 어떤 사람이 들풀을 베어가지고 내일 아궁이에 넣을 때 “내가 어떻게 키운 들풀인데 이걸 아궁이에 집어넣어!” 하고 하나님이 말리십니까? 안 말리시지요. “보내. 보내. 불 속에 집어넣어.” 하는 것처럼.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오늘 주께서 기르시나니, 지금 예수님이 진심으로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예수님 말씀은 다 진심이지만. 하물며 너희들도 그렇게 키운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시는 것을 염려하는 그것은 은혜 받아 놓고 모르는 배은망덕한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고 너희들은 그 나라 의를 구하라. 도대체 내가 이렇게 살았는데, 누구 덕분에 무엇을 매개로 해서 살았느냐, 그게 바로 제물입니다. 하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17절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하지요. 참, 이것은 일주일동안 통곡해도 울어도 시원찮을 정도로 우리로서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우리한테 주신 주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말은 결국 뭡니까? 앞으로 니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내가 다 분질러 놓을 거야. 왜, 이 아담이 육신에서 나온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잖아요.

다른 사람은 그런 걸 잘해도 놔두지만, 맹세가 있는 사람은 전부다 그걸 분질러 놔요. 지금 저도 어깨 분질러졌어요. 지금 3주째 해도 치료가 안돼요. 아파요. 뭐든지 뜻대로 안돼요. 안 돼! 15년 동안 안 생겨요. 내 뜻대로 안돼요. 개콘을 봐야 알지. 15년 동안 여자 친구가 안 생긴다는 거와 마찬가지에요. 내 뜻대로 되는 법이 없어요. 뭐든지.

둘이 알콩달콩 살면, 그래 알콩달콩 살아야지 하는데 또 전화와가지고 싸웠다. 해가지고 시집가도 걱정 끝났습니까? 아니지요. 또 싸워 삐져가지고 있으면 뭐든지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안돼요. 혹시 되거든요, 되거든 주의하세요. 이거 마귀의 시험이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안 돼. 뜻대로 안되어야 돼. 분명히 이건 안 되는 거야. 아들이 합격했다. 이건 말이 안 돼. 우리 집안에 행운이라 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왜? 우리는 내 뜻대로 안 돼야 뭐가 보입니까?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이 우리는 빈말로 들렸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줄 알았는데 행하지 않더라도 주께서 직접 일을 실행시키시니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십자가만 날로 크게 보이는 저희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양20131213b-히6장9절(구원의 요건)- 이 근호 목사.hwp (33.0K),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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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