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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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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민대학 강의(80여명의 신학자들)성경[신학]

대전시민대학 강의(80여명의 신학자들)

이름 : 관리자(IP:203.90.4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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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민대학 강의안(80여명의 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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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203.♡.42.222)

13-12-22 10:34

80여명의 신학자들 교재

Ⅰ. 고대인들의 신

고고학자에 의하면 기원전 약 3만 5000년, 크로마뇽인(현생인류)들은 동굴 예술품을 남겼는데 (에스파냐의 알타미라 암벽화) 그 취지는 사냥을 나서기 전, 부족 전체의 사냥의 성공을 위하여 신에게 제사 드린 흔적이라고 한다.

기원전 약 4000년 경, 유럽에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고 거석 기념물들이 등장하는데 고인도, 선돌, 원형돌기둥군, 거석묘 같은 것들이 유럽 대서양 연안에 즐비했다. 이 기념물은 농업 생산을 지배한다고 여겨지는 초월적 힘(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증거다.

기원 전 2000년 경, 청동기 시대의 물결이 유럽에 들이닥친다.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에서부터 기원전 1600년 경, 미케네 문명이 지금의 그리스 남부에 번창한다. 기원전 1100년 멸망하고 난 뒤 이때로부터 도시국가가 생겨난다. 기원 전 8세기 중엽)

신화가 발생하는데 헬라인들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올림포스의 12 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는 각각의 나라(도시국가)는 저마다 그들 중에서도 특정한 신을 제 나라의 수호신으로 각별히 모셨다. 아테네인들에게는 아테나 여신이 수호신이다. 이런 일률적인 폴리스 종교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종교가 등장한다. 최초의 그런 종교가 디오니소스(박카스) 신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기원전 8세기)

이 종교의 특징은 도시국가의 굴레에서 정신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사회적 신분, 성의 차별, 도덕적, 인습적 전통에서부터의 탈피, 아폴론 종교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기 같은 것이다. 벗어나는 방법은 ‘신들림’이다. 탈아상태를 맛보는 것이다. 포도재배를 도와주는 박카스 신이 인간 몸 안에 들어감으로써 신이 지피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래를 예언할 수 있게도 한단다. 신이 인간의 탈을 쓰고 나타났으니 그 인간은 아무 것도 거리낄 없다.

그 뒤 오르페우스 비교가 등장한다.(기원전 7세기-6세기) 디오니소스와는 달리 신이 아니다. 예언자인데 그는 혼(인간)의 불사(不死)를 선언한다. 이는 그전까지의 신의 불사를 뒤엎는 파격적인 교리다. 몸은 혼의 무덤이다. 혼이 보상을 마쳐야 감옥에서 풀려나온다. 육식을 삼가고 금욕생활을 한다. 정화된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더구나 혼의 불멸성과 함께 혼의 윤회를 주장한다. 모든 생물의 동족성을 믿었고 구원받지 못한 혼이 몸을 바꾸어 가면서 윤회하는데 혼은 완전한 정화를 이룬다면 비로소 윤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종교적 계율은 궁극적으로 우주적 질서에 동화되는 상태다. 이 동화를 위하여 앎이 우선이다.

Ⅱ. ‘신들림’에서 이성 및 지성의 ‘들림’으로
신 대신에 이성을 자신 안에 들어앉히는 작업이다. 철학적 인식을 위한 인식 주관의 순수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곧 이성으로 신과 자연을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성 중심의 신관념이 기원전 6세기부터 일어난다.

고대의 자연 개념은 사실 ‘정신을 지닌 물질’, 또는 ‘물질을 입은 정신’이었다.
먼저 ‘물질파’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은 자연적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양한 현상이 서로 마구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원소에서 비롯된 것임을 전제하고 그 본질을 캐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들은 삼라만상이 그렇게 드러나도록 한 근원이 종래의 신화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초자연적인 위력이 아니라 바로 자연적 우주 자체 안에 산재되어 있는 자연물이라고 주장했다. 삼라만상의 근원을 추구함에 있어 신화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초자연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자연계 자체 안에서 이를 규명하려는 이성적 접근으로의 전환이 최초로 개진되는 사상사적 사건이 드디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물질파에 속하는 여러 사람들이 비록 각양각색의 주장을 제기했지만 다양한 삼라만상이 단일한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지녔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 구체적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철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1) 탈레스Thales(B.C 600 경)

탈레스Thales는 다양한 삼라만상의 근원을 물이라는 대표적 자연물로 대담하게 제시했다.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영양분이나 사물의 씨앗이 축축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물을 지목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측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생물학적으로도 인간의 75%가 물이라 하니 그 당시 수준으로는 경이로운 제안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물이란 자연적 산재성을 가리키는 물리적 의미뿐 아니라 물이 가진 융합성과 용해성이라는 상반된 성질이 우주의 자연적 본성을 가리키는 탁월한 은유적 특성을 나타낸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B.C 611-547년 경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 근원으로 지정한 물은 삼라만상의 다양성과 변화를 이루는 대립적 성질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근원의 특정한 자연물로 한정되기보다 모든 한정적인 것들의 대립 이전에 이를 원초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무한정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생성과 변화에 의한 부정적인 무한성을 간파한 새로운 전개는 철학사적으로 볼 때 최초의 추상적 개념화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런 ‘무한정자’가 어디까지나 물질적 원인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3) 아낙시메네스Anaximanes(B.C 550년 경)

이어 나타난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는 특정 자연물을 다시 상정함으로써 물보다 한정적이지 않는 성질의 제시했다. 더욱이 탈레스의 물과 달리 아낙시메네스의 공기는 농축되면 물이 되고 희박해지만 불도 될 수 있는 밀도의 변화가능성을 지닌 것으로서 그야말로 삼라만상의 대립적 변화를 포괄하는 단일한 자연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원한 선택처럼 보인다.

결국 이렇게 해서 세 사람으로 대표되는 밀레토스 학파는 물질의 영원성을 견지하면서도 그 배후의 절대적 시원을 달리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과 정신을 확연히 분리하는 자연관을 토대로 하는 근세 이후의 시작에서 말하는 그런 유물론자들은 아니다. 다만 만물의 기원을 물질성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물질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밀레토스 학파의 작업은 자연현상들의 근원을 자연계 안에서 찾으려는 시도에 충실한 가운데 근원의 물질성을 공유함으로써 후대 유물론의 선조로 모셔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영혼불멸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오르페우스교의 철학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런 물질론적 전개를 그냥 두고 보고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중요한 부분이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수(數)라는 근원적 단위개념을 설정하여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밀레토스 학파의 물질론에 대립되는 정신론을 전개했다.

이들은 수라는 형이상학적 은유를 통해 의도한 바는 우선 삼라만상의 다양성이 밀레토스 학파의 그것처럼 물질적 자연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삼라만상의 다양성과 변화는 수의 무한한 가감으로 표현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수라는 추상적 단일성으로 그려지는 조화의 정신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외형적으로는 혼돈스러울 만큼 다양성을 지닌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우주가 지고의 지성을 원형으로 하는 영혼의 제작물이어서 당연하게도 체계를 지니고 잇는 질서적인 것이라는 신념이 깔려 있었다.

(4) 피타고라스Pythagoras(580-500 B.C)

밀레토스 학파가 우주의 자연적 대립과 갈등을 주목했던 것과 달리 피타고라스학파는 우주의 질서적 조화를 강조함으로써 형이상학은 이미 그 태동기에 우주론 안에서 물질론의 갈등과 조화에 비중을 둔 정신론의 대결로 그 서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수와 수학적 질서로 파악되지 않는 자연현상은 없었다.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수의 세계로 구성된다. 1년은 4 계절로 이루어진 단계를 거친다. 중요한 것은 수를 사물의 표현 형식만이 아니라 사물의 실체적 힘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수는 사물과 세계의 변화 원리였다. 1이라는 수는 보편적인 근본원리다. 2는 1에 대한 대립원리다. 3은 보편적 근본원리로서 1과 이에 대한 대립원리며 2를 종합하고 통일하는 원리다. 5는 남성을 가리키는 수인 3과 여성을 가리키는 2의 결합을 의미한다. 8은 음악의 한 옥타브에 해당되는 수로서 하모니 곧 조화의 근원이다.

이렇게 울려 퍼진 형이상학의 서막은 그 우주론적 대립을 해소하고 보완하기 위해 근원의 정체적 본성의 물-심 여부를 넘어서 이의 형상적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론으로 이어졌다.

즉 근원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그것을 이루고 있는 본질이 고정․영원․불변․부동․불가분․무차별하여 필연․무한하고 따라서 절대적인 , 아니면 유동․시간․가변․역동․차별적이어서 우연․유한하고 상대적인가라는, 또 하나의 대립이 이른바 '존재-생성'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다.

(5) 파르메니데스Parmenides(B.C 500년 경)-제논(B.C 490-430)과 더불어 엘리야 학파에 속한 인물

먼저 '존재를 모시려는 엘리아 학파의 수장인 파르메니데스는 피타고라스의 학파의 일원으로 출발했지만 이 학파가 변화와 운동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이와 결별하게 된다. 이 결별은 그의 ‘일자(一者)’개념으로 이어지는데, 일자란 ‘없음이 전혀 없이 참으로 있는 것’을 뜻한다.

그에 의하면 그 무엇인가 생성된다면 이는 존재에서 비롯된 것이나 사실상 생성이 아니라 이미 존재일 뿐이고 만일 비존재에서 생성된다는 그것은 무(無)일뿐이어서 역시 생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생성 및 이에 의한 변화의 실재성을 철저히 부정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토록 소중히 모시는 일자가 피타고라스학파의 관념론의 분위기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만큼 감성적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 주목을 요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후대 플라톤Plato(B.C 427-347년 경)은 바로 파르메니데스의 이런 일자 개념에서 관념론의 싹을 발견했다는 것이 철학사적 평가이고 보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를 유물론이나 유심론 중 어느 일방으로 흡수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힘들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이 복합적 지론은 바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온다. 이 오묘한 격언은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실재의 차원에서 없음을 부정함으로써 없음에 의해 가능케 되는 변화와 운동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오로지 있음만을 확증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파르메니데스의 이 말이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는 단순한 동어반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변화하는 현상들이란 ‘참으로 있는 것’으로부터 여전히 거리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언하고자 했을 뿐이다.

참이란 이처럼 고정적으로 영원하며 불변하다는 신념이 이들에게는 이렇게 존재론적으로 정착된 후 서구사상사는 실로 거대하고도 유구한 존재 예찬의 역사를 펼치게 된다.

우리가 관심 갖게 될 신 개념이 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이로부터 온갖 종교적․신학적 힌트들이 연출된다. 그런데 영원성과 불변성의 견지에서 그려진 ‘참’의 완전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오히려 그 ‘참’에서 멀어지게 하는 왜곡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6) 헤라클레이토스Heraclius(B.C 540년 경)

이런 문제의 가능성을 간파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도 대응한다. 즉 ‘있는 것이라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없고, 없다는 것이 있을 뿐이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안정되어 있지 않으며 아무 것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묘사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은유로서 그는 ‘불’이라는 자연물을 지정했다. 여기서 불이란 우주론자들의 선택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변덕이라기보다는 대립자들 사이의 긴장과 투쟁을 회화적으로 포착해 낼 수 있는 탁월한 이미지라는데 더 깊은 뜻이 있다. 말하자면 불은 불 아닌 것을 태워 자신으로 만듦으로서 사는 생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물의 대립과 투쟁에 의한 생성소멸의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표본이라는 것이다.

그가 불의 변화과정을 ‘상향의 길’과 ‘하향의 길’로 나누어 묘사하면서 결국 양자는 하나라는 데까지 이른 것은 이런 동기와 배경의 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헤라클레이토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묘사하면서도 그런 변화를 변화로 겪어내고 읽어낼 기준으로서 ‘일자(一者)’를 설정했다.

보편이성 또는 만물에 내재하는 보편법칙을 뜻하는 ‘로고스’라는 일자는 이전 단계의 우주론에서 근원 탐구가 삼라만상의 다양성을 포괄하기에는 다소 한계를 지녔던 데 비해 변화의 상극적임 다양성과 안정을 아우르는 풍부한 단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한정자(無限定者)’를 논한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있어 만물 안의 대립자들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였으나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는 대립자들의 긴장이 일자의 단일성을 위해 오히려 필수적인 것으로 보일 만큼 만물의 대립성을 긍정적으로 읽어내는 혜안을 지녔다.

바로 여기서, 즉 로고스가 내포하는 ‘대립의 일치’라는 일자 개념이 후에 신학적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발견된다.

더욱이 보편이성이라는 개념과 이에 대한 인간이성의 참여적 연관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후대 스토아 학파의 형이상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학의 사상적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우주론과 존재론의 작업이 근원의 본성과 본질을 탐구하면서 모색한 결과 상충될 수밖에 없는 결론들에 당도하게 되었으되 그중 어느 것도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 또 다른 차원의 기준에 설정하지 않는 한 모두 묶어 볼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래서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결론들의 상충성을 극복하고 이를 종합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근원의 총체적 단일성을 여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이 종합은 다원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구체적 결실이 원자론의 형태로 드러냈다.

(7) 엠페도클레스Empedocles(B.C 490-435년)

엠페도클레스는 문자 그대로 다원론적 종합의 전형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소멸을 결합시키는 데서 출발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근원적으로 독립적인 물․불․공기․흙이라는 네 개의 뿌리가 존재의 불변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그 뿌리의 복수성과 다양성이 변화의 단초가 된다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의 종합이란 여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우주론과 존재론의 각 대립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활용하는 지혜를 지녔기에 가위 종합의 선구자가 되었다. 밀레토스 학파가 근원이라는 이름으로 설정된 특정한 자연물로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던 반면에 엠페도클레스는 그런 근원의 단일성과 만물의 다양성을 이어주는 자연의 과정을 운행하는 동인 또는 활성적 힘에 착안했다.

그에 의하면 바로 이런 힘에 의해 네 개의 뿌리가 서로 엉겨 붙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얽힘의 정도에 따라 삼라만상의 다양함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엉겨 붙게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흩어내는 힘이 ‘미움’이라고 할 것인바 그의 지론은 물리적이면서도 여전히 초자연적인 힘을 상정하는 신화에 의존함으로써 온전한 종합이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거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8)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B.C 500-428년)

아낙사고라스는 이런 선배의 이야기를 세련되게 다듬고자 했다. 우선 엠페도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아낙사고라스도 존재의 불변성에 대한 신념에 입각하여 물질불멸론을 주장하면서 파괴 불가한 ‘씨앗’에서 비롯된 생성소멸의 변화를 이에 조화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의 철학적 기여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불변적 물질입자에 대해 운동적 힘이 별로 주어진다는 엠페도클레스와 달리, ‘원초적 덩어리’에서 사물들을 형성시키는 힘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뿌리’를 거슬러 아예 ‘씨앗’을 추적하고 이 씨앗이 심겨 발아하고 성장하는 생리구조를 ‘이성적 정신’이라 하니 한결 멋있는 설명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진전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던져진 존재와 생성의 양립불가라는 문제를 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잠재태와 현실태의 대비를 통해서 해결 할 수 있는 중요한 징검다리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에게서의 이런 진전은 자연철학을 특징으로 하는 고대 형이상에서 ‘정신’, 또는 ‘마음’의 형이상학적 위상을 본격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적으로 지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정신’이란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정신은, ‘무한하고 자율적이며,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은 채, 홀로 그 자체로 있으며,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가장 미세하며 가장 순수하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있는 곳에, 주변의 물체 더미 속에 있다’라고 하였다.

즉 말하자면 그에게는 정신은 물질들의 변화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설정되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위의 마지막 구절이 가리키는바 정신의 ‘공간성’으로 인해 아낙사고라스가 말하는 정신은 여전히 물질적 원리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에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의 독자적 자의식을 설명할 틀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정신의 공간성으로 인해 그런 정신적 원리와 이에 의한 운동하는 사물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졌다고 하더라도 아낙사고라스의 정신도 이보다 앞선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와 함께 형이상학적 추상화 과정의 주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신학적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9). 데모크리토스Democritus(B.C 460-360)

어쨌든 이런 다원론적 진전은 급기야, ‘씨앗’과 ‘정신’의 종합적 단일체인 ‘원자’라는 개념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이에 레우키포스나 데모크리토스같은 원자론자들이 등장했다. 이런 원자론은 사실상 아낙사고라스보다 엠페도클레스의 사상을 다소 정교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엠페도클레스가 도입했던, ‘사랑’과 ‘미움’이라는 신화적이고도 은유적인 힘들이 당대의 엄격한 기계론적 자연관에 비추어 난점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제 원자는 더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기본단위로서 물질과 정신, 존재와 생성을 한데 아우를듯한 야심 찬 형이상학적인 뜻을 품은 근원 개념으로 모셔졌다.

그런데 여기서 원자에 대한 그들의 상세한 설명보다도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이미 당대의 원자라는 개념이 적어도 근세 물리학이 상정하는 원자 개념에 상당히 근접할 만큼 탁월한 과학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이라는 것이 마냥 구름 잡는 헛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탁월한 증거에 해당하기도 하거니와 형이하학에 대해서 지니는 지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자라는 개념도 근원의 순수단일성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도 복합적이어서 말 그대로 종합이라는 구도의 산물일 뿐이었다. 비록 여기서 엠페도클레스의 신화적 ‘힘들’이나 아낙사고라스의 ‘정신’에 상응하는 개념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된 바 원자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애매한 종합은 형이상학적 근원탐구에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보였다.

후에 ‘부동의 원동자’를 내세운 아리스토텔레스Arstotles(B.C 384-322)가 원자론에 대해 가한 비판도 이와 같은 맥락임은 물론이다. 결국 형이상학적 근원탐구가 이런 종합을 기틀로 하는 기계적 원자론에 머물러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런 방식으로 긁어모을 근원이라면 거슬러 추구될 이유도 없거나와 굳이 근원이라고 할 것도 없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형이상학의 가능성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는데 근원 탐구의 불가능성과 무의미성이 주장되기에 이르렀다.

삼라만상의 다양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단일성에 대한 신념으로 출발한 고대철학은 우주론의 태동 이후 존재론의 보완을 거치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이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세계를 법칙이 지배하는 전체적 체계로서 보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이 단계까지의 철학은 자연으로 일컬어지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직관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비록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에서 관념론의 씨앗을 볼 수 있고 아낙사고라스의 ‘정신’에서 형이상학적 일신론의 서주(序奏)를 들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당대의 자연철학이 질을 양으로 설명하려는 후대 유물론적 기계론의 원자가 된 원자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엮여져 왔던 근원탐구로서의 형이상학이 종합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근원의 단일성에 대한 직관적 신념이 이와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종합이라는 어정쩡한 타협을 요구받게 되면서 근원탐구라는 과제의 궁색함이 드러나는 듯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어떤 것도 절대적 근원으로 상정될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상대주의가 위세를 떨치게 되었고 이는 더 나아가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회의주의로 이어졌다.

(10). 프로타고라스Protagoras(B.C 480-410)

우선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갈파하면서 인간 밖에서는 어떤 기준도 설정될 수 없다는 급진적 상대주의를 선언했다. 이런 상대주의는 자연철학이 설정한 물질적 불변성이 가리키는 ‘절대성’에 대한 비판에서 연유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저마다의 진리관이 마구 정당화될 수도 있으며 무정부주의를 용인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전의 자연철학이 물질적 불변성에 대한 직관적 신념에서부터 연역적으로 삼라만상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다면 이와는 달리 이런 상대주의는 인간의 생활에 대한 경험적 관심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철학에서의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11) 소크라테스Socrates(B.C 470-399)

상대주의는 당대 관심의 초점인 자연에 대한 우주론․존재론적 접근의 한계를 드러내고 인간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인간학적 전환의 계기를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2) 고르기아스는Gorgias(B.C 450년 경)

어떤 것도 ‘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3의 포괄적 범주가 요청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완전성’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완전성은 절대성과 확실성 사이의 간격을 메움으로써 함께 엮는 개념으로 설정되었는데, 한마디로 ‘절대적이면서 확실하고 동시에 확실하면서 절대적인 것’을 가리켰다. 이것이 과연 인간이 그려내는 그림 안에서 떠올려질 수 있기나 하려마는 하여튼 이런 목표를 근거로 ‘지고의 완전자’를 설정했는데, 이를 일상적으로 이름하면 곧 ‘신(神)’이었다.

(13). 플라톤 (BC 428/427~ BC 348/347)

상대주의 공격과 회의주의의 비판을 넘어 절대적인 동시에 확실한 ‘참’을 향하려는 형이상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새롭게 일구려는 노력은 이제 ‘신’으로 그려지는 ‘하나’를 모시면서 시작된다.

그는 선배들의 우주론과 존재론의 종합을 바탕으로 그 위에 신론이라는 우산을 덮어씌웠다. 이제 그에 의해 절대적 하나인 신 아래 삼라만상의 본질들은 우주론-존재론적 위계질서를 부여받는다.

말하자면 우주론에서의 정신과 존재론에서의 존재 사이에 평행적 정비례관계를 전제한다. 이런 양축의 관계에서 살펴보면 물질적 극점은 전혀 존재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와 반대로 정신적 극점은 존재성의 완전함에 이르는 것으로 곧 ‘존재 자체’라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절대적이면서도 확실한 하나로서의 신이다.

이로써 우주론과 존재론 및 신론 사이의 입체적 얽힘을 위한 기본구도가 설정되었다. 물질극과 정신극을 잇는 우주론의 축은 하나로 귀결될 같음의 형상계와 여럿일 수밖에 없는 다름의 현상계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고, 형상계의 같음이 존재의 영역에 해당한다면 현상계의 다름이 생성의 영역에 속한다.

우주론의 축은 현상과 형상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요단 강’을 상징한다면 그 선의 형상계는 참으로 있는 것에 해당되고, 반면에 형상계는 있기는 있으되 없음에 의해 둘러싸인 있음이어서 참으로 있기만 한 있음을 상기하여 모방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플라톤은 우주-존재-신-론적 근원학을 구성하기 위해 먼저 형상의 불멸성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참된 있음’으로서의 실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감관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이성으로만 도달될 수 있는 불멸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곧 사물의 형상이라고 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영혼이 본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제 육체를 입고 태어난 인간은 이를 회상함으로써 학습하게 된다고 했다.

영혼은 육체와 완전히 다른 것이며, 한 사람은 진정한 뜻으로 그 사람이게 해 주는 것이 생명에 있어서는 영혼이며 그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뒤에 죽은 사람의 육체가 부질없는 것이라고 불리는 것이 옳은 것과 마찬가지로 육체는 우리들 각자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바로 영혼이라는 불리는 것으로 죽지 않는 존재로서 참된 인간이다 고 했다.

(14) 아리스토텔레스Arstotles(B.C 384-322)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을 비판한 준거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물음은 플라톤 자신에게서도 사실상 난제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보편적 형상과 개별적 현상은 후자가 전자에 참여하고 이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양자의 관계가 엮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여전히 개별적 현상들이 형상의 전체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부분에만 참여하는가라는 세밀한 문제에 부딪치면서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수성을 파멸시키지는 않을 원리를 요구받게 되었다.

영원한 실재인 형상을 설계모형으로 하는 제작자로서의 영혼이-플라톤에게는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우주를 가능한 한 이 모형에 닮게 만든다. 그러나 제작자가 설계도만 가지고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물적 재료가 필요한데 이는 지극히 비물질적인 형상이나 영혼에서 나올 수 없으니 자체적으로는 아무런 형태가 없지만 분명히 이들과는 별도로 독립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의 창조론에 해당할 만한 플라톤의 교리인 우주기원설에서 원형적 형상, 제작자로서의 영혼(데미우르고스), 그리고 물적 재료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진 삼신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삼신론으로 나타나는 플라톤의 신론은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물려받은 유심론․ 일신론적 위계질서를 뼈대로 한다. 말하자면 더욱 정신적일수록 더욱 고정되고 더욱 영원불변하며 따라서 더욱 참되며, 또한 더욱 선하다는 일련의 정비례 관계가 설정된다.

여기서 당연히 그런 위계질서의 최고봉으로서 순수형상은 그보다 아래 단계의 모든 형상들로 하여금 그렇게 있게 하는 ‘있음 자체’라는 일차적 규정을 받으면서 ‘신’이라는 종교적 은유를 덧입게 된다. 여기서 ‘있음 자체’가 회의주의의 문제인 확실성을 만족시킨다면, ‘신’은 상대주의가 공격한 절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즉 참된 있음이란 플라톤이 말한 보편적 형상이 개별적 질료를 취하여 존재하게 되는 구체적 개체물로서의 실체라고 함으로써 시공간 한계 안의 다름이 같음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이를 요약한다. “운동과 변화를 낳는 내재적 힘이 없다면, 영원한 실체를 가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플라톤이 그렇게도 모신 보편적 본질이라는 것이 경험적 사물의 원인이요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참된 있음’이라 할 수는 없으며 개별적 사물에 내재함으로써 있을 따름이다.

(15)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선배 형이상학적 토대 위에 그들은 인생과 윤리학으로 포장된 처세술을 전개했다.

먼저 스토아 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한 보편적 본질이라는 위상을 거부하고 삼라만상의 개별성을 파고들었다. 이들에 의하면 세계는 개별자들의 군상일 뿐이다. 이런 지론을 위해 이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와 아낙사고라스의 종자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이를 결합하여 ‘종자(種子)적 로고스’라는 개별성의 원리를 설정했다.

삼라만상은 철저히 개별적인데 그렇게 개별적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종자적 로고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삼라만상이 원동자에 의해 위계적으로 존재하거나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로고스에 의해 개개의 사물들이 서로 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학파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된 것이라 하여 이를 ‘원인의 무한한 연쇄’라 했는데 이는 이 세계 안에는 앞선 원인에 의해 결과되도록 결정적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의 이런 운명주의적 형이상학은 자기원인이기도 한 최초의 원동자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하는 유심론의 전통에 항거하는 유물론적 차원을 지닌다. 이것은 곧 범신론적 차원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말하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유하는 일신론 전통의 ‘있음 자체’가 삼라만상으로 분산된다는 것으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이런 유물론적 범신론에 의하면 삼라만상은 이미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로 관계로 얽혀져 있고, 따라서 그런 인관적 이성질서라는 형태의 우주적 구조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미 주어진 물질체계의 형성질서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며 이미 결정된 이성적 궤도를 이탈하거나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는 무감정주의가 난세를 통과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조용히 살고, 마음을 낮추며 살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이 최고의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의 요체가 욕망이라면 이런 무감정주의는 당연히 금욕주의에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 에피쿠르스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외견상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있다. 우선 형이상학에서도 스토아 학파의 인과적 결정주의와 달리 에피쿠르스 학파는 삼라만상의 임의성과 우연성에 주목했다.

그들이 설파한 근원의 우연성은 애써 ‘있음 자체’를 설정해야 할 이유를 부정하므로서 스스로 무신론의 입장에 놓여 있다.

스토아 학파의 결정론적 운명주의를 벗어나려는 에피쿠르스 학파의 이런 자유주의적 시도는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혼란으로부터 해방을 향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인간의 삶에서 이루어내는 성취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이 학파가 표방하는 처세술로서의 쾌락주의는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다.

기독교 사상가들

초기 신학 논쟁의 취지

동방은 모든 죄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여겼고, 서방은 죄를 윤리적으로 심화시켰다. 아다나시우스(296-373)에 의하면 많은 성인들이 모든 죄에서 깨끗하고, 키릴(375-444)에 의하면 인간이 죄없이 출생했다고 하는 반면, 터툴리안은 원죄의 개념을 만들어 죄가 유전된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죄에는 인격적 책임성 외에 비극적 보편성이 존재한다. 원죄는 죄가 인간에게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너머에서 온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 교부들 중에는 성부도 성자와 함께 고통을 받았다는 성부수난설과 신의 수난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에 이들은 신의 완전-부동성에 위배된다는 이유도 여지없이 이단으로 찍히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실상 신이 완전- 부동성은 헬라적 개념 결합일 뿐이며, 유대교에서도 고백되어 온 민족신으로의 여호와는 부동적이고 초월적이기만 하지 않고 지극히 내재적이고 역사개입적이어서 이 구도에서 신의 완전성은 고난 받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역동성과 결합되어야 하는 개념이었다.

즉 인간과 함께 고난 받을 수도 없는 부동성은 있음의 성질을 충족시키시는 주장이지만 참된 뜻에서의 완전성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오히려 미흡한 것이었다.

고난 받을 가능성을 거부하는 부동성보다 고난 받을 가능성까지 내포하는 역동성이 완전성을 더욱 폭 넓히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재와 육화(肉化)라는 표상들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기상천외의 새로운 관념들이 아니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기의 운명에 관심을 둔 영지주의적 해석은 신약성경에 말씀하시는 뜻과는 다르다. 영지주의적 관심은 구속주의 육화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자기 본질의 기원을 깨달음(인식)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구속주가 되어 구원받는다는 데 있었다.

구속주 신화는 인간이 자기의 참된 본질을 자신에게 확보하기 위한, 말하자면 하나의 실물예시(實物例示)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영지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이 필요로 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운명에 대한 해석이다.

여기에 비해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하고 특수한 운명에 대한 해석과 소개이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원형이 아니다. 그노시스(영지 靈知)에 있어서 와는 달리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구세주도 아니요 구원이 필요한 구세주도 아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신약성경의 기원을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테두리에서 찾아야 한다. 영지주의와는 달리 이 테두리 안에는 하나의 역사적 사고(思考)가 확립되어 있다.

(16)로마의 클레멘트(90-100)
모든 분열을 버리고 교회의 질서와 통일 강조-직분 계승을 강조함

(17)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70-107)

감독 없으면 교회 없다. 감독이 없으면 세례도 없고 애찬도 성찬도 없다.

그는 신과 기독론의 정립에 힘을 쏟았는데 당시 이교도들과의 관계에서 신의 유일성 개념 확립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고 그 유일성 안에 절대성, 창조성, 그리고 전능성이 개념들을 포함시켰다.

특히 기독론에서는 영적 존재로서의 그리스도가 그의 구원활동을 위해서 역사의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했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피력했다. “그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 가운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다”

이로써 일찍이 초대 교부시대부터 한 존재가 신(神)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이중성의 선포를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18) 폴리갑(70-165)

소아시아 사람. 신앙의 주체는 그리스도. 실천적 신앙 강조

(19)유스티누스(100-165)
팔레스타인 출신. 알렉산드리아파. 로고스설 주장(처음에 하나님에게 있었으나 하나님에세서 먼저 나왔다). 모든 인간 존재 속에 이성이 보편적 로고스에 참여한다.

(20)리옹의 이레네우스Irenaus of Lyons (130-202)

인간이 하나님이 모상이다. 인간의 신화(神化) 개념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는 명제를 동방교회 구원론의 기본 관념으로 보게 된다.

서방신학은 동방의 관점인 전체 구원역사의 과정을 은총이라는 것과는 달리 개별자가 자신의 인격적 자유로서 어떻게 구원을 찾는가 하는 것이다. 서방신학의 은총 사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각개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매개되는 하나님이 특별한 힘으로서의 은총에 의하여 구원에 인도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악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본연의 목표에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은총이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은총은 자신이 자립하는 데서 볼 수 있게 되는 자유로운 독자적인 개인, 개별자에게 주어져서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어떤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방의 은총사상은 동방과 달리 은총 문제가 인간학적 관점에서 대두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구체적인 개별 인간에 중점을 두고 은총이 그 인간 안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유에 의해 구원을 찾게 되는가에 관심을 둔다.

이레네우스에 의하면, 타락 이전의 아담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며, 긴 발전 과정의 처음 단계에 서 있는 존재라고 한다. 구원은 이러한 창조과정의 완성으로 이해된다. 타락 또는 인간의 상황을 전적으로 전도시킨 것(하나님의 형상의 상실)이 아니라, 단지 완전에로의 발전 과정을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다.

타락에 의해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상실된 것이 아니다 굳이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타락 및 악에 대한 책임은 안간뿐 아니라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한 하나님에게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1)터툴리안(Tertullian, ?-225)
북아프리카(지금의 튀니지) 카르타고 출신. 영지주의 반대.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 아내 빼놓고 다 공유하라. 신은 하나의 본질에 세 위격으로 계심. 그리스도에게 있어 신성과 인성은 연합되었음. 헬라철학에 반대함

(22)알렉산드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ia, 150-215)
아테네 출신. 철학의 그리스도로 이끄는 진리가 될 수 있다. 진리의 길은 어려 강물이 모여 생겨난다. 성경에는 문자적 의미 이상의 뜻이 있음. 신앙 위에 이성을 사용하므로서 어린애 신앙이 되지 않음.

(23)단일신론자들(단원설)
단원설이란 예수님의 신성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하려던 신학적 노력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단원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되,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힘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 힘은 비위격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가 하면 (여기에 속하는 것이 테오도투스Theodotus of Byzantium(190년 경 사람)의 이른바 동력적 단원설이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이 특별한 출현양식으로 이해하려 했다.(여기에 속하는 것이 노에투스 Noetus,(성부고난설) 사벨리우스Sabellius(삼위가면설), 프락세아스Praxeas(일체의 삼현설)의 이른바 의태적 단원설이다.)

(24) 오리겐(오리게네스 (Origen 185 - 254)

알렉산드리아 사람. 오리겐의 신론은 호교론자들이 채택한 로고스론을 수용하여 로고스의 영원을 근거로 성부 신과 성자 신이 영원성을 본질로 하는 신성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성자 신을 성부 신에게 났으니 이보다 낮은 단계이며 성령 신도 그렇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질적 실체에서는 동일하지만 기능적 실체에서는 위계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성에 의한 위계적 구조가 삼위일체론에서 일체성보다는 삼위성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점이 그의 기독론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신의 로고스와 인간의 육체가 혼에 의해 매개되는데, 예수님 안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두 본성이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일체성보다 삼위성에 주목하는 위계론적 관점에서는 로고스가 엄연한 상위의 자체로서 하위의 육체를 취한 것으로 모사됨으로써 양자성로 기울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알렉산드리아의 종교적 정서가, ‘인간이 된’이라는 신비성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리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예수님보다 로고스의 더 큰 범주이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오리겐은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과 일체성 사이의 긴장을 삼위성에 무게를 둠으로써 해소하려 했다.

삼위일체 논쟁

(20)아리우스Arius(260-336)

그의 신학은 노골적인 부정신학(否定神學)에 있었다. 신은 말로 형용할 수 없고, 출산되지 않으며, 생성하지도 않고, 기원도 없으며, 불변적이다. 그러므로 아리우스에 기본적 문제는 생성하지도 않고 분여(分與)될 수도 없는 이 존재, 곧 신을 생성과 다양이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매개하느냐에 있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아리우스에게 도움을 준 것은 ‘로고스’개념이었다. 여기서 로고스는 일종의 제2급 신으로서 피조물 중에 첫째요, 가장 탁월한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사업의 중개자로 파악되어 있다.

따라서 로고스는 시간에서 무(無)로부터 지음을 받았으며 가변적으로 그르칠 수 있는 존재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진 것은 순전히 시련을 극복한 그의 도덕적 자질과 그 실적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20)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6-373)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났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실체(homoousios)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1)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
가이사랴의 바질(Basil the Great, 329-379),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0-395),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30-389)

신성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는 신의 본질에 입각한 보편적 유일성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이차적으로는 삼위성이 논의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이라고 비판하는 반대의 움직임에 대한 변론을 제시한다.

신적 위격들의 내적 단일성과 지속적인 협력에 관심을 기우린다. 만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단일한 활동이 어느 경우에는 어떤 점에서든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관찰한다면, 활동의 동일성으로부터 본성의 단일성을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성들의 차이는 그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활동들의 차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활동이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지각하게 된다. 결코 차이나 변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 활동의 동일성(identity)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본성의 단일성(unity)를 추론해 낸다. 이러한 일체성은 우선 먼저 신적 계시의 행위에서 발견된다. 계시는 성부에게서 기원하며, 성자를 통하여 진전되며, 성령 안에서 완결된다.

그것은 세 행위들이 아니라, 삼위가 모두 관련되어 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행해서지는 그 어떤 사역으로부터도 분리되지 않으신다. 이런 식으로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과 일치한다. 그리고 활동의 동일성은 불가피하게 본성의 동일성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활동들은 성령이 본성에서 아들과 동일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불가피하게 본성에 있어 성 삼위일체의 단일성에 대한 증거가 된다.

세 위격들의 ‘페리코레시스(περιχωρησισ, co-inherence 상호상통설)에 대한 진술이다. 신격의 활동들이 시간의 표지나 분리된 행위의 구분 없이 함께 행하면서 셋 모두 다에 의해 행해진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격’을 본성이라는 측면에서보다 오히려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신격이라는 용어는 활동에서 의미가 있지 본성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호 상통’에 초점이 부여되어 있으며, 또 그만큼 활동의 단일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고찰되는 측면이다. 인간들의 활동은 심지어 동일한 작업영역에 종사하는 자들의 활동이라도 분리적이고 개별적인데 반해, 신격의 활동은 항상 셋에 의해 함께 영향 받게 된다.

물론 셋 중 각각의 구분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위격의 구분은 다른 위격들로부터 별개로 생각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신격이 항상 세 존재양식들 안에서, 또는 행위 영역 안에서, 또는 상호관계들 안에서 한 실체적 실재로(as one substantial entity) 존재하시기(exists)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상호 관련되신다. 아버지께서는 아들로부터 떨어져서 생각되실 수 없고, 아들께서도 성령으로부터 떨어져서 파악되실 수 없다. 아들께서는 항상 아버지 안에 계시고, 성령께서도 항상 아들과 함께 계신다.

삼위일체 문제의 논의에서 이 ‘페리코레시스’ 이론, 또 ‘co-inherence' 이론은 ’실체‘(ουσια, essence)의 참된 의미를 회복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세 완전한 위격(υποστασεισ) 안에서 한 단일한 실체( a single, ousia), 신격, 능력, 의지, 에너지 등으로 말한다.

세 위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로 혼동없이 연합되며, 또 분리없이 구분된다. 그 위력들은 한 동일한 초월적 존재의 완전한 현시로 규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세 객관적인 (objective) 위격들 안에 계신다. 그러나 그는 명확히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페리코레시스 이론은 전체 신격의 존재(being)가 세 위격들의 각각의 실재 안에 포함되고 있다는 관념에 대한 설득력 있는 공식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 실제적 동일성과 단일성이라는 결정적인 교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확증시켜 주었다.

(22)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310-390)

완전한 신과 완전한 인간의 결합이란 괴물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그리스도는 인간 본성을 흡수한 신적 본성의 존재라고 못 박았다.

(22) 키릴 Kyrill(375-444)

로고스의 우위성 주장. 그리스도가 예배 받을 수 있는 신성과 그렇지 못한 인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더 나아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을 위해 당한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인간적 고통일 뿐이며 주의 만찬에서 인간의 살을 먹게 될 뿐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된 신-로고스라는 한 본성을 지닌다는 단성론을 옹립하였다. 초자연주의적․신비주의적 경향을 지닌 이 학파는 그리스도에서 오리겐의 전통에 속하면서 아리우스주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데 결국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에 집중하여 위계성을 주장하고 기독론에서 변화설-단성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도를 예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삼위의 위계성을 토대로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위에서 신으로 격상되어 결국 신성의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는 일관성을 읽을 수가 있다.

(23). 네스토리우스 Netorius(386-451)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떼어서 생각해야 한다는 설을 주장함

안디옥 학파 출신인 그는,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의 단일성 주장은 어디까지나 두 본성의 상호 융합의 결과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리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24) 데오도레 Thedore(428년 사망)

데오도레 Thedore로 대표되는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이 학파의 후계자인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인성은 결코 신격화될 수 없으며 신성과 인성을 혼합되는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 있다고 맞장구쳤다.

역사적․인격적․윤리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이 학파는 로고스가 살로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취했다고 본다.

이로써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성보다 일체성에 주목하는 이 전통이 기독론에서 양자론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결국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양성론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이론적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5)유티케스(Eutyches 375-454)
그리스도가 성육신 이전에는 두 본성이 있었으나 성육신 이후에는 하나의 본성인데 그것이
바로 인성을 신성이 흡수 시켜서 하나의 본성만 있음
(26)레온티오스 Leontius of Neapolis:약 650년경 사망)

비잔틴의 레온티오스는 나아가 위격존재를 ‘자립존재’, ‘자립 실존’으로 보았다. 이로서 개체성은 위격에 외부로부터 우유적(偶有的)으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위격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격은 ,인간 본성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그와 지극히 내밀한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인간 본성의 고유 존재를 고스란히 살려줄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본성에[ 대한 대립과 긴장과 분열과 통일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단성론 내부 전통에서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신성과 별개의 실체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체가 아닌 것이 아니며 신적 로고스 안에 포함되는 실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레온티오스에 의해 개발된 ‘기체적 내재설(基體的 內在設)’ 혹은 ‘기체화설’(基體化깇設)이다. 그러기에 인간 본성이 하나님으로서의 위격 안에 내재한다는 이 이론은 언제나 그 변증법적 성격과 함께 보아야 한다. 즉 일치와 구별은 정비례하지 반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필리오케(혹은 필로쿠베)Filoque논쟁( ‘그리고 아들로부터’ 논쟁)-867년경
서방신학은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한다”
동방신학은 “성령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발출한다”

동방신학은 삼위일체의 단수적인 기원을 출발점으로 삼기에 단 하나의 출처인 성부를 고집하게 되고, 서방신학은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을 묶어주는 사랑으로 보았기에 성령이 ‘아들로부터’(필리오케)도 나오신다고 했다.

이로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갈라서게 된다.

* 삼위일체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

라틴 교회는 전통적으로 존재론은 인격적으로, 그리고 인격은 존재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과 실재를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의 양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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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2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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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