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강-YouTube강의(이단의 원조)13012019-이 근호 목사
58강-YouTube강의(이단의 원조)13012019-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58강-YouTube강의(이단의 원조)13012019-이 근호 목사
제목은 이단의 원조입니다. 이단하면 겁나죠. 실컷 신앙생활하고 마지막에 끝이 안 좋으니까 그동안 헛수고 한 거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래서 특히 성경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인 아마추어적인 일반 교인들은 주로 목사님을 붙들고 묻는 것이 혹시 내가 정상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길로 가는지, 아니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지 전문가 집단인 목사들에게 자꾸 묻죠. 이단이 뭡니까? 다른 말로 하면 정통은 무엇입니까? 하고 이런 식으로 묻는 거예요.
이단과 정통을 만약에 목사님들이 알려주면 그걸 기초로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이단은 안 갈라하고 정통 쪽으로 가서 기어이, 무사히 신앙생활에 성공을 해서 죽어서 천국갈 수 있도록, 살아서는 복을 받고 그런 기대를 잔뜩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이단은 뭡니까? 정통은 뭡니까? 그렇게 물어놓고 정작 본인은 성경을 안 봐요.
구약 창세기부터 보면 재미없고, 신약 마태복음 족보 읽다보면 흥미 떨어지고 성경을 안보니까 보기 전에 미리 생각해요. ‘내가 봐도 뭐 아나? 전문가들이 알겠지. 목사님들이 알지 우리가 알겠나. 그들에게 훈수만 들으면 되겠지.’ 라고 하는데, 목사님들이 우리를 구원하는게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거든요? 막상 성경을 보게 되면 보통 목사님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제대로 믿어야 이단 안 되고 정통됩니다. 라고 얘기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작 예수님이 그 시대에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오늘 제목을 이단의 원조라고 했는데, 이단의 원조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단의 원조예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이 시대에 이단소리 듣겠다는 각오와 마음가짐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보고 이단이라고 이야기한, 마귀의 대장이라고 이야기했던 그들은, 그들 시대의 정통이었습니다. 그들 시대의 정통이라면, 이 시대에도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예수님보고 이단이라고 이야기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정통적으로.
정통적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가장 오류가 적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오류 될 요소는 될 수 있는 대로 제거하고, 이건 올바르다. 이건 누가 봐도 흠집 낼 수 없다. 이건 누가 봐도 동의 할 수밖에 없다는, 성경에 일치된다는 그것만 골라 골라서 믿어왔던 그 역사적 전통에 입각한 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49절에 보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 보고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오늘날 이 시대에 똑같은 평을 들어야 됩니다.
율법도 모르는 사람, 다른 말로 하면, 성경도 모르는 이 무리는 저주 받은 자로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돼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취지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당했던 그 이단의 자리에 우리가 합류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가짜 예수를 믿고 가짜 예수를 이미지로 상상하면서 유사 예수를 믿고 있는 중이라고 보시면 된다 이 말입니다.
신약성경에 특히 많은 대목에서 나로 인하여 고난 받고, 핍박받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표현할 때 이렇게 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그걸 경험하고 체득할 수 있을까요?
아침에 눈뜨고 나가서 회사가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서 집에 와서는 TV뉴스보고, 자고 하게 되면, 그런 반복적인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그것이 핍박의 요소가 되고 복음으로 학대받는 이유들이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건전한 한 시민으로서 착실하게 살아가고, 가정을 부양하고 나라에 봉사하고,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대외 간에 소통 잘되고 이웃 간에 친밀하게 지내고 여기에 무슨 핍박이나 억압을 받고 비난받을, 이단소리들을 어떤 여지가 전혀 생겨 날 수가 없죠?
예수님이 이단의 원조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반발한 자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막상 나라가 직접 나서서 예수님을 처형할 때 다들 예수님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혼자 남았습니다. 제자들이 구원받는 것은 그들이 악착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납득하고 이해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과오를 인정한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편한 데로 이용하려 했었다는 그 고백과 더불어서 내가 구원받는데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나한테 유용할까를 항상 먼저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가까이 하려고 했다는 그 자체가 결국 예수님 체포되고 사형 당하는데 말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었다는 요간단한 십자가 이야기가 하나의 어떤 인간이 사형 당하는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고 평소에 우리가 될 수 있는 데로 안 되어야 된다는 그러한 우리의 기본 의식마저도 이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전형적인 이단의 모습인 것을 밝혀주는 사건입니다.
십자가사건 앞에서 우리가 이단 아니고자 하는 요 발상자체가 가장 이단적이다 하는 사실을 폭로시킵니다. 이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이단소리 들읍시다. 듣고 구원 받읍시다. 이 땅에서 이단소리 안 듣고 복 받다가 나중에 지옥 갈 일이 생겨납니다. 따라서 이단이냐 아니냐 하는 그 기준은, 대세가 전체 다수결이 무엇을 언급하느냐. 뭐라고 규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많은 전통주의 교단에서, 신흥종교에 대해 이단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교세확장 하는 것을 억누르려고 합니다. 신흥종교? 그들도 이단이예요. 또한 신흥종교보고 이단이라고 하는 그들도 이단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성령의 돌보심이 없으면, 그것도 매일같이 성령이 돌봐주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같이 이단으로 빠져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육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에 속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서 육신이 아니라, 늘 십자가를 반대하고 복음에 대해서 기피하는 죄악된 본성의 억압을 받는, 본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단의 속성을 발휘합니다. 이단의 특징은, 구약에서 반드시 앞에 붙는 단어가 있어요.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그 뒤에 붙는 것이 여호와든, 어떤 신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곧 하나님 보시기에 이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단이냐, 아니냐의 명확한 기준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이단 되는 거죠. 예수님 오셔서 예수님만이 이단 아니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단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만이 이단인 것처럼 오셔서 모든 인간이 이단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다 폭로 시켰습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 회개하고 인정한 사람만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자기에 대해서 새롭게 자기를 인식하게 된 겁니다.
이 시대에 십자가복음, 열두 사도는 이 시대나, 그 당시 시대나 오직 십자가 복음 때문에 그들은 어디가도 이단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 때문에 자진해서 이단 되겠다하는 사람들만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는 사람입니다.
첨부파일 : 58강-YouTube강의(이단의 원조)13012019-이 근호 목사.hwp (15.5K), Down: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