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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2013. 11. 22) 2강자유게시판에스겔

광주 강의(2013. 11. 22) 2강

이름 : 서경수(IP:218.159.161.6)

광주 강의(2013. 11. 22) 48-2

[교회를 넘어서] 245페이지를 보면, 그 앞의 내용이 뭐냐 하면, 솔로몬 성전과 새 성전의 차이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글의 전체적인 윤곽은 이렇습니다. 솔로몬 성전과 새 성전이 별 차이가 없어요. 바깥뜰이 있다는 차이 뿐인데, 여기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의 율법을 집어넣고 새 성전이 이것을 포위해요. 이 성전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이것이 잘 못 되었다고.

너희들이 전에 있던 말씀을 어겼다는 거죠. 그래서 솔로몬 성전은 마땅히 무너져야 된다는 겁니다. 무너진 그 자리가 새 성전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됩니다. 기존의 것이 무너지지 않으면 새롭게 새우는 것도 없어요. 인간의 죄가 드러나는 그 자리에 새로운 성전 십자가가 피어납니다.

죄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현장이 곧 주님이 구원하는 자리가 돼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초점을 맞춘 것은 옛날 솔로몬 성전이 있을 때의 주안점이 뭔가 하면, 7월에 집중해서 제물이 많이 투입돼요. 그런데 새로운 성전은 7월이 중심이 되는 제사 제도는 날아가 버리고 1월로 바뀌어요.

이스라엘에서 1월의 의미는 새롭게 국가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4월인데 나온 후에는 달력을 새로 만들어서 그 달을 1월로 했어요. 1월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는 잊고 이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새롭다는 것은 새롭게 구원 받아서 새로운 것이 아니고 ‘기존의 것은 죄야!’ 하는 식으로 새로움이 와요.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선악과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에요. 선악과를 계속 우려먹어야 해요. 그래야 선악과가 있는 동네와 생명나무가 있는 곳이 완전히 갈라졌다는 경계선을 부각시킬 수가 있어요. 선악과의 영향력이 있어서 절대로 생명나무로 갈 수 없다는 것이 부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성전이 새워질 때는 왕이 개입합니다. 245페이지에 (1)상번제가 나오지요. 상번제는 매일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246페이지에 2, 3, 4 내용이 나오지요. 그 내용을 보면 앞의 것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이야기를 해놓고 끝에 보면 에스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떻게 변천되었는가를 보라는 거지요.

출애굽기에 있는 상번제와 에스겔 새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번제가 달라진 것을 보면서, 옛 성전은 왜 망해야 되며, 새 성전은 왜 옛 성전 위에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떻게 새 성전을 완성했는가, 이 세 가지를 다 발견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구절에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도출되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도출되면 이것은 유대교가 됩니다.

출애굽기에 상번제는 매일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는데 아침, 저녁으로 한 마리씩 드립니다. 이것은 동네 의원으로 생각하세요. 그랬던 것이 민수기는 수컷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되 아침, 저녁으로 드립니다. 이것은 종합병원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암수의 차이가 없었는데, 민수기에서는 수컷으로 명시되었어요. 에스겔에서는 아침마다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습니다. 이것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에스겔보다 더 큰 병원은 어디입니까? 에스겔 선지자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신약의 어린아이들입니다. 천국에 있는 작은 소자라도 구약의 선지자보다 더 많이 알아요. 모세, 엘리아보다 성령 받은 12제자가 더 많이 압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안다는 말은 그만큼 인간의 죄가 더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의 경우 아침, 저녁에 어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는데 그 때는 그 제사로 말미암아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제사를 드렸기에 가인의 제사가 아닌 아벨의 제사를 드렸다고 생각했겠지요. 요즘 교인들도 주일 11시에 예배를 드리면 뿌듯해 하지요. 거기에 추가해서 오후예배까지 드리면 더 뿌듯하고, 새벽기도까지 했으면 충만합니다.

보통 교회는 매일 새벽기도가 있지요. 그러면 그 교회 신자가 되었으면 매일 가야 하는데,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매일 가요.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까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많이 빠지는 거예요. 주일 낮에는 200명 모이는데 새벽기도는 겨우 10명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 교인들은 다 어디 간 겁니까?

그래서 자기도 매일 새벽기도 가는 것은 그만두고 주일 새벽에만 갑니다. 그러다가 주일 새벽도 빠지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주일 새벽에 빠지니까 자기도 빠지게 돼요. 이러다가 어디까지 가겠어요?

민수기에는 수컷을 드리라고 했는데 암컷을 드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죄입니다. 왜? 수컷을 잡으라는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그 전의 것을 드리면 제사가 안 됩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죄가 더욱 깊어집니다. 우물을 팠는데 물이 안 나오면 더 깊이 팝니다. 그러면 두레박줄도 같이 길어져야겠지요. 그래야 물을 뜰 수 있으니까.

이렇게 두레박줄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직접 건져 주셔야만 구원된다는, 우리가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마지막까지 다 온 거예요. “십자가 외에는 구원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때까지 가면 더 이상은 없고 다 온 거예요. 십자가까지 왔다는 것은 이제 바닥을 친 거예요.

그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 거예요. 만약 우리가 그 바닥까지 안 내려가면, 사람이 죄를 지었잖아요. 자신이 죄인인줄 알잖아요. 이게 내가 지을 마지막 죄인 것을 알잖아요. 내가 지을 마지막 죄라는 말은, 진짜 마지막 죄를 지었으면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죄다.’ 이렇게 되어야 마지막 죄지, ‘지금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사회 봉사하게 되면 다시 개과천선할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아직 바닥을 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귀하지 않다고 여겨 내다버린 분을 하나님은 귀하게 받아 주셨잖아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가 예수님보다 귀하게 여긴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어떻게 실망으로 바꾸는지 우리가 목격해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귀한 것이 뭡니까? 자식이죠.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다고 하면 “누가 예수님을 죽인단 말이야!” 하면서 절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식이 죽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난리가 날 겁니다. 주께서 내 자식을 통해서 얼마나 우리의 애간장을 녹게 하시는지 충분히 경험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님은 전혀 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내가 귀히 여겼던 것을 주께서 헛되게 하고 실망케 하시면서 그리스도에게로 눈을 돌리는 방식으로 인도하십니다. “처나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는데, 이 소리를 듣고 제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여,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제가 [예수는 괴물이다]라는 지젝의 책을 서평했어요. 그 내용에 ‘지젝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보다 무엇을 더 귀히 여기는지를 몰라요. 아직 인생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정답은 나와 있습니다. 귀한 것은 자식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내가 귀해요.

내가 귀하다는 조건 하에 예수도 귀하고 십자가도 귀하고 하나님도 귀한 거예요. 이런 나를 완전히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 못 버립니다. 그래서 주께서 처리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장례식입니다. 나의 장례식이 치러지기 전에는 계속 나는 내가 귀합니다.

에스겔 뒤에 십자가가 오는데, 이 십자가의 제사가 우리에게 덮치면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돌아서면 또 잊게 되지만.

우리가 제사를 드려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십자가 사건이 벌어졌고 그 십자가의 능력이 덮쳐서 그 효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나만 귀히 여기는 쓰레기 같은 우리를 주님의 제사에 활용하십니다.

이제 (2)안식일을 봅시다.

민수기 28장 9절에는 ‘안식일에는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둘을 바친다.’고 나오지요. 그런데 에스겔 46장 4절에는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신약의 안식일은 뭐가 나옵니까? 마태복음 12장 8절에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하셨어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시비를 겁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것입니다.

문방구에서 점원을 뽑는데 후보자가 20명 정도 왔어요. 후보자가 자기 소견을 발표합니다. A는 “나는 밤새 문방구를 지키겠다.” B는 “내 돈을 들여서 경비업체를 통해 철통같이 지키겠다.” 등등 좋은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C는 전혀 다른 소리를 했어요. “나는 문방구 주인입니다.”

포도원이 있는데 농부들이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포도원 주인이 왔어요. 농부들이 어떻게 합니까? 포도원 주인을 죽이면 자신이 포도원 주인이 된다는 환상을 품고 죽이지요.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의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방구에 점원으로 취직해서 밥 먹고 살겠다는 그 시스템을 ‘내가 문방구 주인인데’라고 나서는 분에 의해 인간의 시스템은 모독을 받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일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내가 안식일 주인이니까 너희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너는 필통 지키고, 너는 지우개 잘 간수하고--’ 이렇게 했습니까? 아니죠.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주인이 필통이고 지우개고 그냥 줘요. “나는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자비를 원한다.”

주인이 자비를 베풀어요.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고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지지 않겠느냐?”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주인의 몫이지 종들의 일이 아닙니다. 주인이 지키는 것을 받아 챙기면 됩니다. 안식일의 완성이 십자가고, 십자가에 피가 있고, 그 피를 우리가 받아 누리기만 하면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이런 내용이 [십자가를 아십니까]라는 책에 나와요.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고 노회에서 목사 제명 되었어요. “웨스터민스터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데 당신은 왜 안 지켜도 된다고 했는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보면 ‘성경이 최종적인 권위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웨스터민스터 조차도 잘 몰라요.

유대인, 바리새인이 아마추어였습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그 당시에만 안식일의 주인을 안 믿은 것이 아니고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을 안 믿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자신들이 만든 교회라는 환상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3)월삭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월삭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되(민28:11)” 성경에 이런 내용이 나오면 짜증이 나지요? 이걸 외우란 말인지, 이렇게 시행하라는 말인지. 왜 이것을 하는가 하면, 민수기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일곱을 드리라고 했고, 에스겔(46:6)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되”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에스겔의 이 말씀 이전에 민수기처럼 드리는 그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그것이 바로 솔로몬 성전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솔로몬 성전을 없애려고 하는 거예요. 이 말이 뭔가 하면, 월삭 때(매월 첫날입니다) 수송아지 수양을 드려봤자 솔로몬 성전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면 그 성전 안 망합니까? 물론 망해요. 수송아지 둘 드리나, 수송아지 하나 드리나 다 망합니다만 이런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그 태도를 가지면서 망해야 돼요. 그냥 망하지 말고 에스겔의 계시를 받은 입장에서 망해야 돼요.

구약 율법은 안 지키고 신약의 사도 바울의 권면을 받아야 된다고 했잖아요. 그것 받아들이면서 지옥가야 돼요. 그리고 그 다음 신약에 있다면(신약에는 없지만) 무엇이 적당하겠습니까? 아까 상번제 할 때 뭐가 적당했습니까? 십자가 이야기했지요. 두 번째 안식일 할 때는 뭐가 적당하다고 했습니까?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했지요.

월삭 때는 뭐가 적당한가? 히브리서에 나오는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다. 예수님이 단번에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신약이 얼마나 복된 마지막 말씀인지 감사한 생각이 들지요? 더구나 우리는 이방인으로 율법에 따라 양을 드린 적도 없는데 다 지킨 셈이 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1월 1일은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한 날입니다. 출애굽기 12장 2절. “이스라엘에 있어 시간이란 국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이름의 일을 보좌해 주고 지시해 주는 기능이 된다.”

시간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움을 지시하는 표식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1월 1일을 지킴으로 무엇을 느끼는가 하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는 위상, 자기 위치를 반복적으로 깨닫게 하는 거예요.

제사는 한계를 만들어요. 제사는 한계를 반복적으로 되풀이 해주는 거예요. 반복적으로 되풀이 한다는 것은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고, 솔로몬 제사는 그 시대에 하나님과 죄인의 경계선을 솔로몬 성전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지요. 드렸더니 하나님이 나타났지요. 그래서 솔로몬에서 지혜도 주시고 그가 원치 않았던 부귀영화도 주셨어요.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복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전도서에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지요. 그리고 이 모든 복은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 자손에게 주어질 마지막 복을 맛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자신에게 온 거예요.

솔로몬은 받은 복으로 이방 신을 섬겼어요. 자기는 안 섬겼지만 부인들이 각자 자기의 종교를 섬겼잖아요. 그러니 솔로몬 성전은 그 때부터 더럽혀졌지요. 결국 나라가 둘로 나눠졌고. 그런데 그 쪼개짐을 버리지 않고 증거물로 삼는 것이 새 성전의 모습입니다. 쪼개졌다고 버리면 안 되고.

시계가 깨졌다고 새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고 깨진 시계를 안에 품고 바깥에 새로운 시계가 돌아가는 것, 그 첫 번째 돌아가는 것이 1월 1일. 그 날의 의미는 ‘과거는 우리가 잘 못 한 것이 맞다.’ 짹깍 짹깍. 다시 돌아온 1월 1일. 또 잘못한 것이 맞다. 짹깍 짹깍. 1월 1일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징벌이 내려지고 새롭게 만들어진 성전이 바로 이 성전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이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부활과 십자가의 차이점이 뭔가 하면, 해운대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다면 발자국이 생기겠지요. 이 발자국이 십자가라면, 이 발자국 모양의 모래까지 그대로 떠내는 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한계를 주고 우리를 구원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작업에 이미 합류된 사람입니다. 합류되었기 때문에 그 한계를 압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 해도 십자가 앞에서는 그것마저 죄가 된다는 사실. 우리는 무능한 나에서 유능한 나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죠. 통일되면 뭣합니까? 통일되면 우리 집 밥상이 더 풍성해집니까?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거예요? 그냥 통일 되었다는 추상적인 기분에 불과해요. 세상의 인기라는 것도 잠시 뿐입니다. 탁재훈, 이수근 등등 인기 연예인들이 도박해서 문제가 생겼지요. 그들이 남이니까 조롱하고 비웃지 만약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실망했다는 말은 우리의 진짜 한계성을 못 보고 있었던 거예요. 반복적으로 예배 참석해도 못 보고 있었던 거예요. 예배도 우리가 만든 예배에 참석하지 말고 십자가가 만들어준 예배를 드려야 해요. 이것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주께서 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이죠.

그 다음에 (5)1월 7일.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뭐냐? 여기에 상번제, 안식일, 월삭, 1월 1일, 1월 7일, 유월절, 칠칠절 계속 나오는데,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영적 예배, 십자가가 나타난 예배, 우리의 한계를 반복하는 예배 속에 이런 절기들이 전부 농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게 바로 새 성전의 특징이에요.

246페이지에 “새로운 성전을 기약하는 에스겔에서 이 날을 절기로 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송아지 하나를 바치는데 성소를 정결케 하고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 뜰 문설주에 바른다. 즉 성소를 새롭게 정결케 하는 속죄제의 의미가 강하다(겔45:18-19).”

이 말은, 옛날에는 7월 1일 대 속죄일에 했던 것을 새 성전에서는 1월 1일에 한다는 말입니다. “1월 7일은 에스겔에만 나오는 절기다.” 역시 1월이지요. "유월절" 유월절이 있는데 차이점이 뭔가 하면, 이 유월절은 제사장이 드려요. 그런데 에스겔에서는 유월절을 왕이 직접 드려요.

이 왕은 어떤 왕입니까? 다윗 언약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면서 현장에 튀어나오는 왕. 로마서 1장 3절에 보면 다윗의 혈통에서 오신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는 거예요.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절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유월절이죠. 새 언약이 여기에서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칠칠절, 7월 1일, 7월 10일, 7월 15일 이 모든 절기는 유월절과 동일해요. 칠칠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제물은 유월절 절기와 같다(겔46:11-12).” 이렇게 되어 있지요.

1월 1일부터 시작했던 것이 유월절로 가버려요. 새로운 성전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유월절이 되면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성전과 왕이 만남으로 모든 제사는 완료가 된다는 사실을 에스겔 성전이 보여주는 겁니다.

249페이지 봅시다. “레위기나 민수기 시절에 있어 제사 제물의 양이 1월보다는 7월에 보다 급증되고 집약된다. 그것은 7월에 민족 전체를 위한 대 속죄일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레위기, 민수기 시절(솔로몬 성전 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에스겔 때에 와서 죄의 개념 속에는 인간이 만든 솔로몬 성전조차도 죄에 오염되어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모세 시절 때는 백성들의 죄 씻음과 정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초점이 모아져 있지만 에스겔 새 성전에서는 솔로몬 성전 자체에 대한 정결이 우선된다. 그래서 초창기 제사법에 나오지 않는 절기인 1월 1일과 1월 7일 절기가 있다. 1월 1일은 원래 성막이 최초로 세워지던 날이었다(출40:1). --- 이와 같이 에스겔의 새 성전은 이미 무너져버린 그 솔로몬 성전을 다시 세워놓고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가를 회상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보여준 성전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부활되면 십자가가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고 본격화 됩니다. 부활은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워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피로 뒤덮습니다. 그러면 그 피는 구원의 피인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심판의 피가 돼요. 계시록에서 천사들이 심판할 때 어린양의 보좌에서 나와요. 구체적 인물이에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왜 구체적 인물이 나오는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그래요.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왜 모든 사람인가? 이스라엘은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 이스라엘이 했다면 다른 민족들도 같이 한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겼잖아요. 처음에 이스라엘은 우상을 안 섬겼어요. 왜냐? 우상을 몰라서 안 섬겼어요.

나중에 이스라엘도 이방인처럼 우상을 섬겼어요. 그리니까 우상 섬긴 이스라엘한테 예수님이 죽었다는 말은 결국 모든 민족은 우상 섬긴 죄로 예수님을 죽였고 그 예수님에 의해서 이제는 심판 받아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달이 떠 있기에 그 달을 보고 빌었을 뿐이지 그것이 우상숭배인줄 몰랐습니다.

주님의 심판은 달을 보고 빈 것에 대한 심판이 아니고 이미 우리 자신에게 심판을 내렸어요. 그게 요한계시록입니다.

250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에스겔 새 성전은 정월달의 제사가 한 해의 제사 성격을 규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월에 떠는 달은 님 그리워 떠는 달’이라고 생각하세요. 김부자의 노래. 에스겔의 성전은 정월에 뜬다고 보면 돼요. 기존 솔로몬 성전은 7월에 떴고. 7월에는 백성들의 죄를 씻는 것이고, 정월에 하는 제사는 성전 자체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성전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왕이 등장해야 하고, 왕에 의해서 백성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됩니다.

에스겔의 순서는 복잡해요. 그러나 예수님은 간단하게 언급했어요. 십자가로. 예수님은 먼저 왕으로 오셨고, 처음부터 인간과 상대하지 않고 인간 배후에 숨어 있는 세력과 상대를 해요. 인간 하나하나를 개체(개별자)라고 하는데, 이 개체를 하나의 별이라고 본다면, 별은 공중에 떠 있지요. 공중에 떠 있다고 본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운동의 법칙은 달 아래 있는 것만 통하고 달 밖에 있는 천체는 지상에 있는 법칙은 안 통하고 그냥 그대로 박혀 있다고 본 거예요.

이것을 깨트린 사람이 뉴턴입니다. 그 전에 갈릴레오도 알았지만. 망원경으로 보니까 달이 움직여요. 박혀 있는 것이 아니고 움직여요. 케플러에 의하면 타원 운동이에요. 제일 완전한 운동이 원 운동인데 타원 운동이 되면 초점이 두 개가 돼요. 그래서 그 때부터 우리가 뭔가 잘 못 알았다고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뉴턴은 거리에 반비례하고 질량에 비례하는 만류인력의 공식을 내놓았습니다. 해, 달, 별 모두 같은 물리적 법칙이 통한다고. 이것은 과학이고

주님은 그렇게 보지 않고 하나하나가 별이라면 이 인간을 묶는 것이 어둠입니다. 별에 직접 가보면 허공에 떠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어둠에 박혀 있지요. 막상 가보면 어둠에 박힌 것이 아니고 공중에 떠 있지요. 우리가 보기에 인간은 개별자 스스로 움직이잖아요. 그런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두운 세력에 박혀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일 먼저 어두운 세력과 만납니다. 악마입니다. 악마는 돈, 인기, 권력 이것에 매여 있어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악마 손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순서는 성전, 왕, 백성인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성전, 왕, 백성을 한 몸에 다 지셨는데, 아까 설명한 것처럼 접혀진 것을 펼치면 거기에서 뭐가 나오는가 하면, 예수님이 해야 될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때가 되면 하나씩 이뤄 가시지요.

처음에는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고, 때가 되매 예수님의 피가 포도주가 되는, 때가 되어 죽으시고, 때가 되어 부활하시고, 때가 되어 승천하시고, 때가 되어 성령이 오시고, 때가 되면 재림하시고. 접혀진 것이 펴지면서 하나하나 성취가 됩니다. 펴지는 그 때를 카이로스, 특이점이라고 하지요. 에스겔에서 늘어났던 것이 예수님 때에는 한꺼번에 집약되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오늘 강의는 어렵지 않지요? 이것만 기억하세요.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간 세계와 천국 사이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이 지상에서 죽음을 매개로 해서 계속 제사를 통해서 반복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 한계를 알았다고 했더니만 그것마저 아직 한계에 미치지 못한 우리가 만든 한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마지막 한계가 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한계는 바닥을 친 거예요. 누구도 십자가를 자기 뜻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성령이 와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십자가를 알 수 없는데 여러분들이 알았으니까 여러분은 땡 잡은 거예요. 로또 복권 살 필요 없어요. 그것 아니어도 우리는 횡재했고, 주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횡재한 것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계속 주께서 드러내실 거예요.

사위를 맞이하게 되면 “내 딸이 아깝다.”고 하지 마시고 “이것이 웬 횡재지.” 하고 생각하세요.

250페이지 봅시다. “언약궤는 원래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피를 뿌리는 장소이다.” 새 성전에는 언약궤가 없어요. 그러면 어디에 피를 뿌리는가? 문지방에 뿌립니다. 왜? 거기로 왕이 넘어오거든요. ‘어린양의 피가 뿌리진 문지방을 밟고 메시아여 오시옵소서.’ 그 피를 성전에 바르니까 성전은 피투성이가 됩니다. 피로 지은 성전. 사도행전 20장 28절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합니다.

[피]라는 책이 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초콜릿으로 만든 집이 있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불이 났는데 보니까 전부 초콜릿이라. 그것을 보고 ‘야, 피가 저렇겠다.’ 피로 만든 성전. 그것이 지상에서는 피인데, 예수님의 피죠.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러움에 있지요. 그러니까 성전은 보석같이 빛난다고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겁니다. 이 지상에서는 피로 된 것이고, 하늘나라에 가면 피를 흘린 그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기껏 표현하는 것이 보석들로 표현하지만.

그 피 흘린 분이 영광스럽게 되니까 마치 신랑이 신부를 장식하는 것같이 자기에 걸맞게, 모나코 왕비처럼 왕족에 맞는 모양으로 신부를 꾸미잖아요.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신부 드레스가 16억이라는데 --- 신랑이 그만큼 신부를 귀하게 본다는 말이지요. 귀하다는 표시가 뭔가? 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세상보다 주님이 흘린 피가 귀하다는 사실을, 피가 천국인 것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3. 12. 19. 13:38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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