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14:13-14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2004년 7월 4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4:13-14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가만히 있으면 뭐가 됩니까? 가만히 있으면 자기 세계가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고 여지없이, 사정없이 다 깨어지겠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망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있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은 나름대로 딴 전쟁을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벌리시는 전쟁에서의 적과 인간이 생각하는 적이 전혀 다릅니다.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참 하나님께서 전쟁을 벌리시는 그 와중에서도 인간들은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설쳐됩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적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인해 도리어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일이 생겨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구원에 관해서 인간들은 큰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까? 그것은 자신의 뜻을 이 땅에 펼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인간들은 이 점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나름대로 펼치고 싶은 자기 뜻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들의 철없음은 악마에 의해서 이용당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적은 뱀의 후손, 곧 악마인데, 이 악마는 인간들의 자기 포부를 배후에서 부추겨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가로막는 식으로 일이 전개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 애굽 군대가 오면 당연히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은 벌벌 떠는 것이 정상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공포 안에서 인간들은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실시하는 일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적으로 등장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하나님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도대체 '가만히 있기'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 역대하 20:14-19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니, 전쟁을 하면 칼이나 창이나 활을 들고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제사장은 말립니다. 그러지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은 사람 대 사람으로 벌리는 전쟁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이나 활이 필요치 않지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고 성신을 받은 제사장은 단언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찬양대를 조직하여 마치 전쟁이 모두 끝나서 이미 승리자가 된 것처럼 기쁨을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가 브라가 골짜기 즉 '송축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벌리시는 전쟁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그 한 예를 들겠습니다. 마태복음 10:27-32에 보면,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자체의 효험에 대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 데리고 가서 증명하시는 전쟁을 벌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를 죽이려고 할 때, 그 사람을 향하여 무조건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싸움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싸움은 아닙니다.
즉 인간은 육을 죽이는 자를 당연히 무서워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을 데리고 말씀의 능력을 보이시려는 하나님의 일은 방해받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처럼 그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전쟁을 고려하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만히 있기'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살기 위한 뜻을 하나님 말씀 성취를 위하여 포기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용하여 그저 하나님의 자기 뜻만 이 땅에 펼치시는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 한 예가 역대하 12:5에도 나옵니다.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기 때문에 순전히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전쟁을 발생시키시고 이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 보면 그게 아닙니다.
유대 나라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어기니 이번에서 하나님께서 적들을 보내어 유다 나라에 붙이셔서 유다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그 대신 평소의 유다 나라의 적이 승리하도록 조치해 버렸다는 겁니다.
이것을 놓고 볼 때에 하나님의 벌리시는 전쟁은 그저 하나님의 백성 편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자신만을 위한 전쟁입니다. 적이든 아군이든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이 구약에 있어 '가만히 있음'의 전략은 과연 신약 때에서 적용이 될까? 에베소서 6:10-17에 보면,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뭔가 큰 전투라도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완전무장 한 채 벌려야 될 이 전쟁의 양상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만히 있으라'하고 같은 뜻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완전 무장을 하는 기구 가운데 인간적인 것은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계속해서 '가만히 있어야 되, 가만히 있어야 되'를 되풀이하는 바로 그것이 악한 영들에 대해 승리하는 무기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다'는 의미는 인간의 개인적인 포부나 감정이나 느낌이나 체험을 얻고자가 아니라 성경 말씀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 어떤 경우에서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차분히 수용하겠다는 신앙심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는 반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지 만 이 전쟁이 인간의 사적인 전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뜻이 아니라 흉배로 사용된 하나님의 의를 위한 전쟁이요, 사적인 전쟁이 아니라, 머리에 쓴 구원을 위한 전쟁이요, 개인적인 전쟁이 아니라, 신발로 신은 복음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성도는 뽑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의 실상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적이 사적인 우리들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적임을 먼저 염두에 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