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를 읽고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 를 읽고 1990년 1월 12일 이근호 (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1 p20 ) 저자 :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출판사 : I.V.F 한국기독학생회 (서울. 1989) 번역 : 정옥배 저자는 구약의 정신에 입각한 윤리전개에 관한 책들이 거의 없다고 전제하면서 본 주제의 중요성을 부각 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은 또한 오늘날 현대인에게 구약이 보다 친근할 수 있는 책임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왜 구약신학자들이 윤리라는 주제에 대하여 관심을 쏟지 않는가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총신대의 김의원, 연세대의 김준서의 분에 넘친 추천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봉인으로서는 대단히 많은 점에 아쉬움을 주는 책으로 남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약윤리라고 하는 제목 자체가 신선함을 독자에게 줄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구약의 정신을 희석 시킬 수도 있는 주제임을 저자는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윤리라고 하는 신약에 나타난 정신을 (신약에서 이런 주제를 꺼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위하여 구약을 희생 시키고 있습니다. 틀에 끼어 맞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윤리라고 했을 때 언뜻 떠오르는 느낌은 헬레니즘적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히브리 사상으로 일관된 책입니다. 이 둘이 어떤 이유에서 맞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무리 유사점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구약자체는 윤리를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차용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상에서 그런 불가능한 구상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마는 어쨋던 구약에서 윤리라는 주제를 다루어낸다는 시도가 거의 없는 이유를 다시한번 숙고해야 됩니다. 저자는 글을 시작하면서 윤리의 정의조차 내리지 않고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글의 내용에 따라 무엇이든지 윤리 또는 윤리의 한부분으로 취급할 여지를 마련한 것이라서 구약 그 자체를 윤리라고 해도 할말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자가 본서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했던가가 모호해집니다. 예상대로 이러한 우려가 실제로 나타났는데 서론에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놓고 구약윤리의 틀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