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겨자씨 믿음
68 산을 옮기는 겨자씨 믿음지난 주에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것이 유대인에게서 배운 믿음(기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유대인의 목적이 달성 되는 순간입니다.(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그러나 그런 믿음(기적, 표적)은 물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믿을 만한 것만 믿고 가능성이 있는 것만 믿을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믿음을 제시 합니까? 빠뜨리는 믿음을 제시합니다. 즉 거리끼는 믿음이요, 싫어하는 믿음, 미련한 믿음을 제시합니다.우리는 베드로처럼 같은 생각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물 위에서 같이 동등하게 믿음을 출발하고 싶어 합니다. 둘 다 같이 물 위에서 기적을 믿음을 시작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망상적인 믿음은 마치 광명한 천사(마귀)가 제시한 3가지 선물이랑 같은 사고방식이기에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데 그것이 물 속에 빠뜨리시는 믿음으로 출발하는 겁니다. 즉 우리의 기존의 모든 믿음(기적)을 무효화 시키고 물에 빠뜨리고, 예수님이 직접 손을 내미시므로 건지시는 그 믿음으로 시작하는 겁니다.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인간의 믿음을 예수님만이 가짜라고 지적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순수하기 짝이 없는 믿음을 말이죠. 예수님은 인간의 믿음을 욕망으로 보십니다. 탐욕의 최절정이요 그 믿음이 예수님을 죽이는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라는 말하고픈 겁니다.실상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이 예수님을 물 속(죽음)에 빠뜨리는 겁니다. 인간들의 믿음이 벌리는 짓들은 늘 죽음 속으로 몰고가는 짓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배운겁니다. 하나님의 흉내를 내는 겁니다. 노아의 때와 같은 것처럼, 노아의 홍수로 인해 하나님의 아픔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심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의 행위를 자신들이 흉내내며 떠벌리고 다니면서 신에 대한 복수로 신의 자리를 늘 탐내고 있는 겁니다.그래서 진짜 믿음을 제시합니다. 인간으로써 거의 불가능한 믿음, 기적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자기부인입니다. 나 죽어도 상관없다. 창조주로만 족한 피조물 일 뿐이다. 라는 자기부인 자기 부정은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예수님이 출발하십니다. 어떻게요? 물 위에 있는 베드로를 빠뜨리므로 시작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물 속에 죽음 속에 빠뜨릴 때 인간은 피조물인 자신을 보게 됩니다. 물 위에 있으면 신이 된 줄 착각합니다. 즉 믿음이란 신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반대로 피조물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이 이야기가 얼마나 무시당하냐 하면 우리는 당연히 피조물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신의 수준에 이르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신 따라잡기 하는 것으로 보는 겁니다.이렇게 인간이 피조물 되는 것이 불가능 하기에 예수님이 직접 오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믿음 만이 인간을 제대로 피조물 되게 합니다. 새창조입니다.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예수님 때문에 선물로 주어지는 겁니다.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공부할까 합니다. 마 17장 막 9장 눅 9장오늘 내용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죽을 것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음을 보고 같이 따라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 중에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지을 것을 요청합니다. 베드로는 잠 결에 유대인의 가장 최고 고수 믿음인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서는 자신이 여기에 함께 있음을 너무 좋게 여겨서 그렇게 요청하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은 안 끼어드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에는 모두 믿음을 겁니다.(눅 9:28-36)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그러자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는 빠져 버리고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몰려와 외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만 들으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들 두려워 엎드리게 됩니다.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 까지는 본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산에 내려오니 무리들이 귀신들린자를 제자들에게 쫏아내어달라고 구했는데 못쫏아냄으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예수님은 귀신을 쫏아내시고 귀신들린자를 고치심으로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묻기를 우리는 왜 귀신을 못 쫏아내냐고 묻습니다.(마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악하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기에 악하고 패역한 세대이다는 겁니다. 믿음 좀 없다고 악하고 패역하다고 하는 것은 좀 심하지않을까요? 그렇다면 믿음을 보충하거나, 충전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면 괜찮다는 말입니까? 보충을 해도 우리 기준의믿음이요, 업그레이드 해도 나의 가능성만을 고려한 믿음들 뿐입니다. 한마디로 쓰레기 같은 믿음들로만 우리 속에 가득차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불가능한 것을 제시합니다. 산을 옮겨라. 귀신을 쫏아내라.이 말은 진짜 믿음은 다 이룬다는 겁니다.좀처럼 믿음이 와도 믿을려고 하지않고 자신의 가능성에 (가짜)믿음을 걸더라 라는 겁니다. 자기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자기 부인을 못하기에 믿음이 와도 소용없는 겁니다.즉 제자들이나 오늘날 교회인 우리들이나 믿음을 자기 쪽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로 여전히 인식한다는 겁니다. 믿음이 왔기에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믿음 때문인데, 비로소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져도 상관 없는 믿음인데, 우리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신이 되었기에 절대로 자기 믿음을 포기 못하는, 이 말씀(산 옮기는) 마저도 자기의 가능성으로 여기고 믿을려고 달려든다는 겁니다.이 본문 내용의 앞 뒤 내용이 예수님은 자신은 인간의 죄 죽음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죽으러 왔음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의 어떤 믿음도 이런 믿음은 나올 수 없습니다.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기에 모두 다 죽음 아래에서만, 물 속에서만 펼쳐지는 꼬르륵 잠기는 사라질 믿음 뿐이요 거짓 믿음 뿐인 겁니다.그런 실체를 죽어도 인정하기 싫기에 늘 물 위의 믿음을 흉내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물 속에 다 빠뜨립니다. 먼저 예수님 본인이 물 속에 뛰어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물 속에 죽음 속에 뛰어 들어서 물 위의 세계를 바라보라고 먼저 본을 보이시고,(십자가의 믿음을 바라보라고, 믿음을 줄려고 죽음에 풍덩 빠진, 요나의 표적은 구원은 인간의 믿음(믿어줌)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 행위에만 있음을)반대로 가짜 믿음인 인간의 믿음들은 물 속에 빠질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어도 물 위를, 죽음 위에서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믿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볼 수가 없어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덮어씌우는 산보다 큰 믿음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럴수 럴수 이럴수가 우리의믿음은 에수님을 죽였건만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허물을 감당하시려고 대신 지실려고 화목제물이 되신 겁니다. 우리의 산처럼 높고 큰 죄악의 산을 예수님의 겨자씨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겁니다.이런 주님의 지혜 주님의 자기 지식을 우리는 싫은 겁니다. 우리의 믿음은 거부합니다.(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런 지식은 싫다는 겁니다. 이런 기도는 싫은 겁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의 행함이 다 이룬다는 것이기에 무조건 싫은 겁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을 누리기만, 받기만 하면 됩니다.(성화론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그 예수님의 일하심을 제대로 못믿기에 우리의믿음을 걸고 직접 달려드는 겁니다.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하는 분 때문에 다시 건짐을 받으면서도 그 분의 믿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내 믿음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에수님 자신의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인간의 믿음을 손 놓게 하십니다. 물에 빠뜨리십니다. 그리고 원초적인 자리에 낮추심으로 피조물 자리에서 창조주를 대면케 합니다.(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자신의 어떤 믿음도, 예수님의 다 빠뜨리는 믿음 앞에선, 낮추시는 믿음 앞에선, 십자가 지시는 믿음 앞에선 다 거짓일 뿐입니다. 십자가의 믿음 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깁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은 예수님 뿐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 하나님의 미련함, 하나님의 어리석음,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물 위를 걷는 큰 믿음, 인간의 지혜, 인간의 총명함, 인간의 강함 보다(고전 1:25) 훨씬 믿을 만 합니다.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우리의 실체인 죽음의 바윗덩어리인 헛된 믿음을 지적해주시는 예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약하고 천한 믿음이 늘 바위에 달걀 치듯이 날라와 깨어지고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자기 사랑을 확증 시키십니다. 이 믿음이 꽂힌 자는 자기 믿음을 믿지 않고 주님의 믿음으로 살겁니다.(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예수님. 주님의 믿음만이 참이요 인간의 태산 같은 믿음은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런 믿음 자랑 하고 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배설물로 가득하다고 고백한 바울은 큰 자(사울)에게서 작은 자(바울)로 바꾸신 예수님의 믿음으로 옮김을 당해(낮추심)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믿음으로 마음껏 예수님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믿음 자랑치 말고 예수님의 믿음 자랑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십자가의 미련함을 만방에 외칠수 있게 예수님의 믿음 선물로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