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52강, 53강) 무죄한 자의 피, 대체종교 131107
유튜브(52강, 53강) 무죄한 자의 피, 대체종교 131107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52강
53강
유일자(IP:116.♡.234.248)
13-11-11 11:06
52강-YouTube강의(무죄한 자의 피)1301107-이 근호 목사
기독교에 대해서,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또는, 주위에 안 믿는 사람이 ‘기독교가 뭐야?’ 라고 물으면 짧은 문장으로 단촐하게 그 보배의 내용을 담아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기독교가 뭐냐 하면, 오늘 52강 제목처럼 “무죄한 자의 피” 로 말미암아 천국을 만드는 하나님의 방식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방금 제가 무죄한 자의 피라고 했습니다. 그 무죄한 자의 피 속에 인간은 개입될 수가 없죠. 왜냐하면, 인간은 아담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무죄한 것이 아니고 유죄한 것이죠. 무죄한 자가 피를 흘려서 유죄, 죄가 있는 자가 감히 죄가 없는 사람만 갈 수 있다는, 의인만 갈 수 있다는 그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놀랍게 우리에게 제시한 낯선 현실.
정말 이것이 현실이냐. ‘실제로 그렇습니까.’ 하고 의구심을 갖을 정도로 너무나 감사하고 충격적인 하나님의 제안이 되겠습니다. 이걸 현실로 받아들이면 믿는 자가 되어서 구원받고, 이건 하나의 소설이고, 농담이고,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역사의 산물이고, 인간의 토대를 깔고 인간이 만들어낸 일반적인 현실중 하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신자가 되어서 천국에 입성하지 못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면, 무죄한 자의 피가, 여기서 무죄한 자가 죄 있는 자를 그냥 건져주시는 것, 고것만 생각하시면 안되고요, 무죄한 자의 피가 유죄한 자를 죄 없다 하셔서 넣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피를 빼버리면 안됩니다. 피를 빼버리면 이렇게 돼요. ‘훌륭하신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우리를 구원했다.’ 이렇게 돼버립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성자가 돼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훌륭한 분이고 우리 인간보다 훌륭한 분이 인간에게 훌륭하게 대접받아서,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맺어서 예수님의 나라에 간다.’ 그렇게 돼버립니다. 그건 도를 닦는 거고요, 그건 좋은 사람을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는 인식이 있다는 뜻인데 그건 기독교가 아니고, 일반 종교이고요, 성경에 나와 있는 진짜 복음, 진짜 기독교의 진수는 복음인데 이 복음의 내용은, 무죄한 자 뒤에 뭐가 붙느냐, “피“가 붙습니다.
피를 그냥 무죄한 자의 죽음이라고 하지 않고, 왜 피라고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 피라는 그 피 속에는 뭐가 들어 있냐 하면, 모든 인간들이 가해자, 피해를 입히는 예수님한테 피해를 입히는 가해자고, 예수님은 하나님 편에 서서 인간으로 부터 당했던 피해자 입장에 선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보면, 인간은 가해자가 되고, 예수님은 하나님 쪽에서 오신 피해자가 되는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면, 그 피해자는 가해자 중에서 일부를 사랑으로 용서함으로서 가해자마저도 자기세계, 그 중에 일부를 천국에 영원히 살게 하는 방식, 이 방식이 바로 기독교 핵심입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말로해서 건져 갈수도 있는데, ‘내가 이런 분이니 알아 모셔라.’ ‘알아 모시겠습니다.’ 이래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죽음의 사건을 강조해야 되느냐하면, 어떤 인간도 구원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날 구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체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소개할 때, 포도원 비유가 있었는데 그 포도원 비유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한 자가 제일 먼저 온 사람이예요. 아침 열시부터 온 사람, 제일 뒤에 온 사람은 아무 소리 안하는데, 제일 아침에 온 사람이 불평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처럼 왜 인간들은 자기가 한 노동의 댓가를 천국에서 얻으려고 하느냐, 그렇다면 그건 진짜 천국이 오기 전에 이미 인간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천국을 맘속에 형성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진짜 천국이 나타나기 전에 인간들은 이미 천국을 예상하고 그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자기 나름대로의 준비를 다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방식을 피해 버리는 겁니다. 이런, 이런 식으로 하면, 구원받을 것이라는 그 자체를 하나님 쪽에서 문제 삼으시는 이유가, 너는 원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인데, 구원에 대해서 기대했다는 자체가 죄가 된다는 겁니다.
구원받을 자격도 없고, 용서받을 자격도 없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그저 지옥 갈 운명으로만 살아야 되는 우리다. 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천국 가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마귀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바로 그 발상 자체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도 되고, 사람들이 죽인 것도 되고, 그래서 구약성경을 한군데 찾아 볼 건데요, 이 구약성경은 그냥 구약으로 보지 마시고요,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그것을 앞당겨서 미리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신명기 21장에 보면 어떤 내용이 나오느냐하면, 어떤 마을 가까운 곳에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시하기를 이렇게, 이렇게 처리하라고 미리 율법을 주셨죠. 그 주신 율법에 의하면, 어떤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든,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 명확하지 않거든, 제일 가까운 동네 마을의 장로들을 불러다가 암송아지를 데리고 와서 잡고, 우리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안수해서 제사 드리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거기 누가 참여 하느냐하면, 바로 21장 5절에 보면 레위자손 제사장들도 참여하게 됩니다. 참여하면서 어떤 단서를 하나님께서 고정적으로 두느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송사하고, 투쟁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파견한 것은, 남들 보기에 제사장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처럼 생각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판정을 내릴 건데, 그 판정은 곧 하나님의 판정으로 수용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하면, 막상 신명기 그 당시 판정을 보면, ‘아 제사장이, 요새 같으면 판사 역할을 해서 판결을 하는 구나. 그래서 암송아지 제사 드리면, 깨끗하게 죄 안 지은 걸로 쳐주는구나. 야, 우리는 살았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고, 비록 피살된 사람이 있고, 살인자는 누군지 모르지만 그 살인자의 죄까지 무죄한 자의 피를 대신 재판 받은 걸로 간주해서 용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죄한 자가 억울하게 피를 흘리는 경우는 일체 약속의 땅에서 있어서는 안 되고, 또는 무죄한 자들만 결국은 이 거룩한 약속의 땅에 참여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앞당겨 보여준 겁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죄 지은 자가 있는데, 그 암송아지로 말미암아 그 근처 가장 가까운 성읍들은 일단 죄가 없는 것이 돼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 안에 들어있는 십자가의 연관성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무수한 죄를 짖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죄 아닌 자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죄한 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대신 피 흘려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용서한 것이 아니고, 사람한테 얻어맞아 죽었던 그 피를 근거로 해서 우리 죄를 용서했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할 말을 잃는 겁니다. ‘역시 나는 사랑받을만해. 나는 천국 갈 권리가 있어.’ 라는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본질의 복음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11-11 11:06
53강-YouTube강의(대체 종교)1301107-이 근호 목사
“대체 종교”라는 제목으로 강의 하겠습니다. 대체 종교라 할 때, 요거는 약간 어려운데요. 이 세상 자체가 개성이 없어요. 개성이 없고, 항상 어떤 회사에서 뽑을 때 보통 사람들은 절 뽑아 달라 하는데 사장님 같은 경우엔 절 뽑아 달라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 업무에 합당한 사람을 뽑죠. 제가 어릴 때부터 조실부모하고 고생했으니까 무조건 저를 뽑아주세요. 한다고 해서 업무와 상관없이 ‘아이고 불쌍하구나.’ 하고 뽑아 주는 일은 없습니다.
너 아니라도 대체 인간이 있다, 라는 것이 현대생활의 패턴입니다. 너 아니라도 누굴 뽑을 수 있다. 자리가 중요하지, 너 개, 개인은 너한테 중요한 거 같지만 뽑는 사람입장에서는 자리가 중요한 거죠. 이 복음은 놀랍게도 모든 인간이 똑같습니다. 그걸 어려운 용어로 평균인(人), 평균적인 사람 다 같은 아담이고, 똑같은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자리를 마련하시고, 이 자리에 부합되는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강의에서나, 지금 강의에서도 천국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왜냐하면 이 땅에서 아무리 참 믿음 좋다, 신앙 좋다, 하고 아무리 칭찬 받아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천국 가서 살아야 될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면 이 땅에서 칭찬받는다고 해서 천국 가서 칭찬받느냐 하는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봐야 됩니다.
누가복음16장에 보면 사람에게 높은 것은 하나님께 미움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슨 의도로 예수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사람한테 칭찬받으면 하나님께 칭찬받는다 하면 우리에게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 그런데 주께서 그냥 가만 계시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이야기 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개성, 또는 자기만의 가치, 권리 이런 것을 이미 기정사실화 시켜서 날 좀 알아달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습성화 돼있고, 습관화 돼있습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구약적으로 보면 애굽이라 하는데 애굽에 있어서는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산게 아닙니다. 애굽 사람들은 분명히 신을 섬겼는데, 그들이 신을 섬기는 것은 자기 잘되기 위해서 신을 섬기는 것이지, 신을 잘 되기 위해서 신을 섬긴게 아닙니다.
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고, 자기에게 행운이 찾아오고 자기 자리가 잘되기 위해서 한거예요. 그런데 천국은 일체 그런 사람을 넣어 주질 않습니다. 우리로서는 인간의 입장으로 스스로 이 마음을 바꿔야 되는데 바꿀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바꾸지 말고 하나님의 사고방식이 바꿔지길 원해요. 왜, 나는 절대적이니까. 이 땅에서 누구도 나는 손대면 안 되니까. 조금 전에 대체 종교라는 제목이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리가 중요합니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고만고만하니까. 다 같은 죄인이고 다 같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누굴 넣어주고 빼고 하는 것은 우리한테 의견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뭐냐. 그러면 뽑을 때 무슨 기준으로 뽑습니까? 하는게 중요하겠죠. 오늘 수능치는데 수능시험문제 교육부에서 내지, 학생들보고 물어보고 문제내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도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 교육부가 갖고 있는 거죠. 시험을 학생들보고 물어서 시험치지 않거든요. 그러면 시험이 되겠습니까?
일방적으로 시험문제 해놓고 너희들 보고 풀라고 하는 거죠. 그처럼 기준도 하나님이 제시한 기준입니다. 교회 교인들끼리 모여서 목사, 장로, 모여가지고 하나님이 아마 이런 문제 냈을 겁니다. 하고 백날 의논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인간들끼리 낸 문제 가지고 인간들끼리 잘 풀었다고 서로를 칭찬하는 이것은 그냥 교회라는 이름의 친목 단체나 통할 일이지 정작 성경에서, 진짜 현실 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인간들이 서로 통하는 문제 서로 풀고, 서로 백점주고 그런 식으로 휘말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신 문제 기준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마태복음 23장 37절을 제시하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방금 읽었던 마지막 대목을 보세요.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모여서 모든 신학자들과, 모든 목사들이 모여서 다 머리를 짜내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면, 아마 이 문제를 내실 것이라고 아무리 짜내봐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모여서 의논하고, 협의해서 한 그것은 그들이 원했던 기준이라고 주님께서는 판정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정작 구원시켜주는 기준은 조건이 붙어요. 너희가 뭘 원했던 간에 너희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이 말은 내가 원하는 바를 주께서는 기피하신다, 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에서 시도해서 접근해서 천국 갈 수 있는 모든 통로는 이미 다 끊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입시다.
내가 생각하고 잘할 수 있는 것, 헌금, 기도, 전도, 예배참석, 성경공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끊어졌다고 생각하세요. 전혀 천국 가는데 소용없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 하나님 이야기가 뭡니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두 번했습니다. 힌트 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로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기준이고 제출된 수능 문제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니가 예루살렘을 아느냐, 그게 주께서 출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기껏 아는 것이 내가 사는 동네밖에 모릅니다. 이 동네, 또는 내 고향 이건 잘 아는데, 예루살렘 같은 것은 한 때 옛날 다윗의 고향, 이미 한 때 다윗이 살았던 융성했던 다윗왕국의 수도였다. 그 정도 알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에 주목하라는 겁니다. 그 예루살렘은 모든 인류의 배꼽이고 중심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아이디어와 지혜가 결집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이 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죽는, 그래서 하나님이 피를 흘리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마태복음23장 37절을 미리 말씀 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원치 않은 도성을 대표해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서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분명히 보여주는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이 사람을 건져내는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그 예루살렘은 신랑을 위하여 신부가 곱게 단장한 것 같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는 백성을 호칭을 뭐라고 부르냐 하면, 예루살렘아, 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세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거기서 사건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건은 십자가 사건을 만나게 되고, 십자가 사건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방식을 기피하면서 주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사건을 일으킨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정말 황공스럽게도 예루살렘에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분에 의해서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돼요. 왜,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치 않는 그런 아이디어만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속성을 발산시키는 존재로서 십자가 용서를 받는 식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이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아이디어들은 하나님이 원치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통보받고 또 통보받는 그런 일들을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가운데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영광과 감사를 돌릴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절대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죠. 이처럼 자기공로, 자기를 절대 자랑하지 않는 사람만 천국에 합당한 사람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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