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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상과 말씀 131030우리교회에스겔

일상과 말씀 131030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일상과 말씀(에스겔 21:28-32)

이근호

13-10-30 21:30

일상과 말씀

2013년 10월 30일 본문 말씀: 에스겔 21:28-32

(21:28) 인자야 너는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의 능욕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죽이며 멸절하며 번개 같이 되기 위하여 빛났도다

(21:29)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마지막 때가 이름이로다

(21:30) 그러나 칼을 그 칼집에 꽂을지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21:31)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내뿜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넘기리로다

(21:32)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라 하라

하나님과의 마주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우리들에게 보내십니다. 눈으로 봤을 때 하나님의 등장이 아니라 그냥 일개 사람의 등장으로만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기적을 받은 사람 같으면 하나님께 직접 바로 코 앞에서 그 말씀을 외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소박하게 기대하고 있는 꿈과 희망과 목표와 목적이 하나님 앞에서 다 깨어지고 와해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경우, 하나님께서 진노의 불을 보낸다고 하실 때, 진노의 불 앞에서 집안의 대소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돌직구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가 전하느냐는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하는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당시 암몬자손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는 비켜 가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암몬 자손들은 독자적으로 창조된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연관성에서 나타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통의 나라들은 자기 말고 그 어떤 나라의 취지를 위하여 자기 나라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리라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라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그대로 암몬 족속에도 있었기에 그들은 남의 나라 신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분노와 징벌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 이방나라는 이스라엘과 애초부터 엮인 운명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엮여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창조의 원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원리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피조물들이 알아채거나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피조물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입장만 챙기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말로 해서 자기 일상에 푹 젖어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우선적인 것은 자기를 위한 자기 일상성입니다. 자신이 시간들의 주인공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남 우선이 아니라 나 우선으로 일상을 보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신은 이들에게 있어 뭡니까? 신이라는 존재와 그 말씀은 인간 자기네들의 일상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해줄 의무를 지닌 전능자로 알고 있습니다.

즉 일상이 먼저이고 말씀은 나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상 속에서는 원래 창조하실 때의 원리와 원칙과 비밀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이왕 만들어졌으니 계속 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은 창조 원리상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민족 암몬에게 저주를 예언하시는 겁니다.

피조세계에서 일상이 우선되도록 하나님께서 방치하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겁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졌는가를 항상 바닥에 깔고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이 말씀 우선이 되지 아니하면 어느 민족 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분노의 저주를 내리십니다. 말씀이 우선된다는 것은 창조의 원리와 원칙과 목적을 위해 피조물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의 원리와 원칙과 목적인 인간들에게 철저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자기 일상을 기점으로 해서 아무리 탐구해도 이 창조원리는 밝혀지지 아니합니다. 이는 곧 피조물들의 모든 일상이 각자 자신의 자질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원리에 의해서 유지되고 생존하고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이 외부 원리를 인간들이 밝혀낼 수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그 어떤 탐색에 나서도 꼭 ‘자기 유리함’을 염두에 두고 따지기 때문입니다. 즉 생존 이전의 원리를 파헤쳐야 하는데 필히 ‘생존의 당연함’을 기조로해서 따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더 이상 안 살아도 돼”라는 정신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살지?”라는 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창조일을 하실 분은, 창조를 무(無)로 돌릴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는 그 분뿐입니다. 곧 창조주이십니다. 무(無)로 돌린다는 말은 심판작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창조주께서 자신을 무로 돌린다고 해서 할 말이 없이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고 반길 수 있는 자만이 ‘창조 원리’ 위에 살아온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원리를 알려면, 기준의 인간이 애써 노력하고 땀을 흘려 가꾸고 저장해놓은 그 모든 것도 다 무(無)로 돌아가는 그 현장에서 드러내게 됩니다. 무의 자리에서만 창조 상황이 제대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 만들겠다는 이스라엘은 필히 망해야 하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지 아니하시면 그분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 아니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망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웃 나라 암몬이 보여줍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에 암몬나라에서는 기뻐했습니다. 바벨론왕이 안 쳐들어 온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 갈림길에서 바벨론 군대로 자기 나라 암몬 쪽이 아니라 이스라엘 쪽으로 공격하는 점궤룰 알고 기뻐했습니다. 이 사실을 암몬나라 점쟁이들도 알아낸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내의 선지자나 제사장처럼 그 나라에게 종교적 과업을 수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점궤의 승리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암몬 자손들의 고소해함이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받아야 될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상→말씀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일상으로 가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이스라엘 내부를 폭파시킵니다. 그 폭파의 자리는 곧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질 자리입니다. 인간 위주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창조 원리인 예수님 고난 위주의 말씀이었던 것이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이 원리를 장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신앙인 같으면 자기 멸망 속에서 비로소 구원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옴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복음이 찾아와서 ‘일상’ 위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을 폭파하고 지나온 모든 일들이 다 십자가 희생에서 나온 배려인 것을 알게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망하면서 구원된다는 점이, 같이 망해도 구원되지 못하는 비-언약민과 비교가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일상을 따로 갖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시를 직접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10-31 22:01

63강-에스겔21장 28-32(일상과 말씀)131030-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21장 28절에서 32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82페이지입니다.

에스겔 21:28-32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 능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너는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살륙하며 멸절하며 번개 같이 되기 위하여 마광되었도다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을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끝 때가 이름이로다 그러나 칼을 그 집에 꽂을찌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너의 생장한 땅에서 내가 너를 국문하리로다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불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붙이리로다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이 꼭 깡패 같아요. 인간이 애써서 가꾸고 경작하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이룬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찾아와서 다 멸하는 조치를 인간세계를 향하여 하신다는 겁니다. 인간이 한 모든 것을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그러면서도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야무지게 기어이 기억해내고자 하는 인간,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원수지간에 만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좋게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난 하나님이 좋습니다.’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우리 자신만 생각하고 하나님한테 된 통으로 당하면 억울하다고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는……, 평행선이라는 말이 있지요.

만날 수 없는 것, 인간은 인간의 자기 일에 대해서 고집하고 자기 뜻을 고수하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노와 진노로 대처하시고, 그렇게 하신다고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행동을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을 때에 정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에 분노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 우리가 정말 잘못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나올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행운아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이 이야기를 선지자가 이야기하잖아요.

선지자는 자기와 동일한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님 잘못됐습니다.” 하고 이 이야기를 사람의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당장 눈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조치를 하신다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것은 정말 세상 최고의 기적과 세상 최고의 행운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또 1등 당첨되어서 당첨금을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가 결정한 로또에 운 좋게 걸린 것이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자기 행동에 대해서 ‘그때 복권사기 참 잘했어.’라고 자화자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요. 이것은 자기 행동 외에 다른 어떤 외부인이 개입되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 수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아무것도 걸친 것이 없이 직격탄으로 바로 하나님과 만나고 있다는 상황이거든요. 이게 얼마나 로또보다 더 큰 행운입니까? “선지자야, 난 이것을 당신 이야기로 안 듣고 하나님이 직접 나보고 내일 이런 일이 터진다고 나서서 이야기한 것으로 알아듣겠어.”라고 수용한다는 것, 그 사람한테는 그 어떤 마귀의 시험 같은 것도 다 떨어져 나가요.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그것도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 앞에 설 때에는 뭐가 깨지는가 하면, 자기의 계획 깨지지요 자기의 목적 깨지지요, 자기의 의도 깨지지요, 자기의 일 년 스케줄 다 깨지고 소용없지요. 목표가 없고 목적이 없고 자기 계획이 없다는 말은 그야말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다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떤 목적과 목표를 야무지게 뭔가 쥐고 있으면 그것은 마귀가 다가와 버려요. 힘들어요. 사람이 인생이 힘든 이유가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기 때문에 힘들어요. 왜 목표가 있는가? 하나님하고 직접 대하지를 않고 그냥 눈에 자기하고 똑같은 인간들만 눈에 띄니까 저쪽에서 갖고 있는 것을 나도 같이 갖고 싶어서 목표를 정하다 보니까 사람들에게 자꾸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 힘든 거예요. 그런데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지금 두 시간 뒤에 죽는데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30분 뒤에 벌 받는데 ‘5년 후에 잘 될 것이다.’라는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무 소용이 없어요. 늘 하나님 만나야지 사람 만나면 안 됩니다. 사람 만나면 피곤해요. 그런데 하나님 만나면 속 시원해요. “때리세요. 저는 맞는 것도 영광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얻어맞는 것도 영광입니다. 얻어맞아도 좋으니까 진짜 하나님이 때린다면 저로서는 일생일대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우리는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입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즐거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시간에 바벨론 왕이 점을 쳤는데 ……,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청량리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하다가 갈림길에서 “그래, 명동을 쳐야 되겠다.” 여기서 명동은 예루살렘이고 청량리는 암몬이에요. 그래서 강대국이 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었지요. 그러니까 지금 바벨론 왕이 두 갈래 길에서 점을 치고 있는데 조마조마한 겁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예루살렘이 불바다 되고 암몬으로 빠진다면 암몬이 초토화되는데 그 때 암몬족속도 그 나라 점쟁이들이 있는 거예요.

암몬 점쟁이들이 점을 치는데 “임금님, 우리나라는 평안하고 저 예루살렘은 멸망당합니다. 우리 점괘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임금님은 안심하소서.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치러 왔지 우리를 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점은 왜 치는 것인가?” “우리도 한 점 칩니다. 우리가 점을 쳐 보니 우리나라는 끄떡없고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라고 점을 쳤는데 그게 그대로 맞았거든요. 이게 에스겔 21장 21절 이야기입니다. 그게 맞아서 갈림길에서 바벨론 왕이 점을 쳐서 예루살렘 쪽으로 빠지니 그 예루살렘이 불바다 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암몬나라는 박수를 치는 거예요. 그 나라 위치는 예루살렘이 대구라면 바벨론은 북한이나 만주 쪽에서 내려왔다 치면 암몬은 포항 쪽에 있어요. 포항 위가 영덕이죠. 거기가 모압이에요. 모압과 암몬은 조상이 같은 조상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와서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딸 둘과 관계해서 낳은 자식이 하나는 모압이고 하나는 암몬이거든요. 그래서 그 후손들이 어디를 차지하고 살았느냐 하면, 대구가 예루살렘이라면 포항과 영덕근처쯤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그겁니다. 암몬이 점치는 이야기가 오늘본문 29절에 있어요.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을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체적으로 각 나라마다 점쟁이들이 있어요. 자기들 점괘대로 자기들은 멸망안하고 유다나라가 멸망했다고 좋아들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암몬에게 찾아오기를 “너희들이 왜 웃었느냐? 유다가 망하는 것이 그렇게도 좋더냐? 그렇게 고소하더냐? 이젠 너희들이 당해봐라. 너희들이 점을 치는데 그 점괘가 맞다고? 너희들이 점쟁이나 좋아하면서 점이나 치고 진짜 하나님의 뜻은 모르는데 이참에 너희도 한 번 당해봐라.” 해서 그 참에 암몬도 예루살렘 이상으로 심판받아 멸망당한다는 예언이 본문에 나와 있는 겁니다.

제가 방금 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우리하고 상관없는 이야기지요. 성경을 보면서 제일 우리가 건성으로 읽게 되는 이유가 나는 암몬 자손도 아니고 유다자손도 아니고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치고 망하든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거예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왜 이 성경을 우리가 봐야 되느냐 하는 이 문제, 우리 일상하고 상관없는데. 여기서 유다나라가 멸망한 것이 우리하고 관계가 없다, 라는 생각을 누가 갖고 있었느냐 하면 바로 오늘 본문의 멸망하기로 되어 있는 암몬족속들이 갖고 있었던 겁니다.

암몬족속은 신이 따로 있어요. 유다나라가 망할 때 고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집안이 파탄 날 때 우리는 왠지 고소한 느낌이 들어요.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 일상과 관계가 없으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일상이 있고 그 다음에 말씀을 동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예요. 우리에게 일상이 있고 그 일상이 어려울 때 하나님 말씀을 보고 도움을 얻자는 식은 하나님이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겁니다.

유다가 망하고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도 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여기 있는 이상은 자기가 이는 작은 범위, 기껏 눈앞이나 코앞에 있는 일상적인 이것이 자기에게 전부에요. 인간이 무한대로 상상하고 무한대로 열심히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라는 그 한계 지워진 안목과 시선 안에서 무한대에요. 전에도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지만 80넘은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시집와서 나같이 고생한 할멈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거든요. 내가 시집와서 고생 많이 했다는 그 평가를 그 사람은 어디서 내리는가 하면 자기가 생각하기에 정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처럼 고생 많이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러시아나 알라스카까지 간적이 없습니다. 그 할머니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내뱉는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에요. “나같이 고생 많이 한 사람은 없다.”고 하다가 좀 잘되면 “나같이 기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자기욕망을 키워나가는데 그 일상이 잘 안 풀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도움을 얻고 그리고 잘 될 때는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생색내면서 자기 것을 붙들려고 하고.

그런 것을 갖고 있고 그런 것이 암몬 자손이니까 유다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헤헤거리면서 나와 상관없다고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저주받는 암몬자손은 곧 우리 모습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제가 설교처음에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이 불쑥 나타나서 “나는 너를 죽일 것이고 심판하고 저주할 것이다.” 할 때 우리가 그 저주받는 이유를 따질 수가 있습니까? 따질 수가 없어요. 우리가 죄, 죄, 하지만 다른 죄는 없고 내 일이기에 그 일만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생각해도 출발점이 내일부터 출발하기에 항상 문제가 있어요. ‘저게 이익인가, 손해인가.’ 항상 나부터 시작하니까 나한테 이익이면 이익이고 나한테 손해나면 손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일상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말씀이 있다. 이것이 일상적인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합니다. “네 일상 속에는 창조의 원리가 들어 있지 않다.” 하는 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유다나라는 처음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창조의 원리원칙이 포함이 되어 있어요.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포함이 되어 있는데 다른 나라에는 언약이 없기에 일상적인 생활, 밥 먹고 자고 고생하고 낙을 즐기고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죽어서 어디 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남 잘못되면 헤헤거릴 줄이나 알지 나는 무엇이며 나는 왜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거든요. 대구 대명동이 가스충전소가 폭발했습니다. 그 가스충전소가 폭발하기 이전에 그 집에서 누가 아들 장가보낸다고 해도 흥, 하고 남의 이야기에요. 누가 시집을 보낸다 해도 흥, 그건 남의 이야기에요. 그 집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것도 남의 이야기죠. 그렇게 하다가 그 대명동의 가스 충전소가 폭발했습니다. 반경 30여 미터 안의 유리창은 다 날아갔어요. 만약 가스충전소가 유다나라라면? 그래도 남의 일일까요?

말씀이 먼저입니다. 일상이 먼저고 일상을 보태기 위해서 말씀 보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먼저고 말씀에 의해 가스충전소가 폭파가 되어버리면 이 땅에 나같이 고생하는 사람 없다, 나 같이 이 땅에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나같이 착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우겨도 그것은 진노와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심을 바꿔야 돼요, 중심을. 우리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중심 자리를 바꿔야 되는 겁니다. 성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그냥 창조된 것이거든요. 그러면 ‘어디서, 어떤 식으로, 무엇 때문에 창조했지?’ 그런 것을 물으려면 하나님이 나타난 그 자리에서 물어야 될 것인데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잘 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다급할 때나 성경보고 매일 일상만 생각한다니까요?

제가 어떤 분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교인들이 교회 간들, 목사가 설교한들, 설교를 알아먹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는 설교해도 구색에 불과하고 진짜 알아먹는 이야기는 광고시간에 합니다. “주차요원들 30분 일찍 오시기 바랍니다.” 이건 무슨 소리인지 다 알아먹습니다. 주차봉사 할 사람들은 예배시간 30분 일찍 와서 주차하라는 이 말은 누구나 알아먹습니다. 그런데 “암몬자손을 향하여 저주했다.”는 이것은 나의 일상이 아니잖아요. 이 설교 백날 해봐야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주차봉사 할 사람은 30분 일찍 오라고? 다음 주부터 내가 봉사요원이니까 30분 일찍 나와야겠다.’ 이것은 다 알아먹는다니까요? 그러나 성경말씀 하면 하나도 못 알아먹어요. 왜, 내 일상이 아니기에, 건재한 내 일상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주차봉사 하는데 만약에 빠져버리면 하나님이 벌 내리고, 그래서 내 일상이 깨지면 안 되지.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렇게 된다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 일상이에요. 그러나 문제는 내 일상 속에는 창조의 원리원칙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남한테 증거 할 건더기가 없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어려운 것을 합니다. 지금 모압과 암몬, 오늘 암몬인데 이 암몬이라는 나라와 유다나라가 나오는데 암몬 입장에서는 유다나라가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유다나라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암몬이 관계가 있어요. 이것을 저는 창조의 자투리라 하는데 창조의 원리원칙은 ‘어떤 특정지점(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십계명, 약속을 가지고 찾아오심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다른 나라에는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계시는구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속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사람들이 자기하나님을 몰라요. 소는 임자는 알아도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고 했어요. 분명히 말씀을 주고 홍해를 가르고 다 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제가 이 이야기가 어렵다고 먼저 언질을 하느냐 하면, 창조의 원리를 소개할 때 사람들 모아놓고 칠판 하나 걸고 “이제부터 강의할 테니 필기해놓았다가 이런 식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알거든 아멘, 하시고 동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면 “예, 하나님은 강의하세요. 우리는 잘 노트할 테니.”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 구멍을 내버려요.

이스라엘 내에 뻥, 하고 폭파사건을 일으켜버립니다. 폭파사건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창조의 바탕에 있는 창조의 기본원리원칙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어려운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뭐할까요? 십계명 지키겠습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인줄 알지요? 하나님 잘 믿고 하나님 말씀 잘 지키고 다 했는데 욥처럼 자식 열 명 다 죽여 버리고, 재산 다 날라 가버리고, 온 몸에는 악창이 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고,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프고, 아내도 배반해 버리고, 친구들도 나를 배신하고, 정말 외롭고 몸은 아프게 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여, 왜 저를 자꾸 갈구십니까? 힘들어죽겠습니다.”할 때 그게 바로 원래 창조의 원리원칙을 보여줄 때 아프게 콕 쑤시도록 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장차 올 예수님께서 그런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오셔야 되기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속에 심어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원칙에 합류가 되고 거기에 동조가 되려면 같이 아파야 돼요.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칠판 걸고 강의하고 노트필기해서 알아먹는 것이 아니고 에스더가 한 것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소리가 나오게끔 그러한 상황과 사태를 주님께서 주실 때 창조세계 속에, 아예 처음부터 창조가 안 되었을 때의 무의 상황을 거기에 집어넣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일상이요? 사람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일상생활이 있는 거예요. 사람이 아예 처음부터 없다면 일상생활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폭파할 때 이스라엘은 알아야 돼요. 우린 애초부터 이 땅에 없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내 놓으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면회시킨 거예요. 우린 멸망당하기 전에, 죽기 전에, 자꾸 아득바득 ‘나는 살아야 돼, 나는 살아야 돼.’ 살아야 될 이유도 모르면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너를 누가 만들었지?”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사는 목적은 뭐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이유는 뭐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보람은 뭐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사는데?” “무조건 살고 싶습니다.” 이것은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알려면 어떤 때로 되돌아가야 된다고요. 제가 대전에서 강의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하나를 창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분은 어떤 분인가? 뭐든지 창조할 권한을 가진 분은 그 창조를 없애버릴 권한이 있는 분에게만 창조할 권한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 이거 하나 창조해주세요.”라고 요청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는 이유가 우리는 저를 없애달라고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 권리를 발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창조 안했으면 없으니까 지금 당장 하나님이 저를 죽이더라도 저는 오케이,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창조의 원리, 존재의 이유, 사는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이제 본문에 담겨 있는 숨겨진 비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유다나라가 멸망할 때 하나님께서 “유다나라야, 너는 죄를 지었다. 멸망한다.” “예” 이러면 깨끗하게 아무 문제 없어요.

“아, 유다나라가 우상숭배해서 멸망 받았구나. 하나님이 참 무섭네.” 이러면 끝나는데 그게 아니고 이 성경의 배치, 배열이 뭐냐 하면, 유다나라 멸망하는데 우리는 살았다고 좋아하는 암몬민족을 옆에다 딱 배치를 한다니까요? 그쪽에 누가 있는가? 점쟁이가 있어요. 그 점쟁이가 용해서 진짜 점괘가 맞았어요.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치되 우리나라는 치지 않습니다. 좋아들 합시다.”라는 점괘가 맞았다는 말이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갈림길에서 유다나라는 멸망당하고 암몬은 멀쩡하게 했거든요.

왜 암몬으로 하여금 그렇게 유다를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기능과 자리를 왜 해놓았느냐는 말이지요. 창조의 원리와 원칙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암몬이라는 나라가 왜 필요한가 말이지요. 유다만 상대하면 되는데 암몬이라는 나라, 바벨론이라는 나라, 모압, 블레셋, 왜 이런 창조의 자투리, 창조의 자투리들이 왜 이렇게 옆에 걸쳐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유다나라, 하나님의 진짜 백성들이 멸망하는데 있어서 진짜 유다나라와 다른 나라의 차이점은 다른 나라는 소모품입니다. 다른 나라는 그냥 멸망하고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멸망 중에 비로소 그들이 원했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차이점이 뭐냐, 유다는 멸망해도 거기서 구원의 메시지가 여전해요. 구원의 소식은 멸망가운데서도 계속 유효하고 살아 있어요. 멸망함으로써 구원받는 나라는 유다나라고 이스라엘이고 멸망함으로써 멸망 받는 나라는 창조의 자투리가 되는 그쪽 나라에요. 그래서 다 같이 멸망해도 암몬 자손들이 유다나라를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그런 안목, 그것은 영원히 멸망되어야 하는 안목이고요, 그 다음에 유다나라와 자기들이 멸망할 때 좋아했던 암몬 나라가 우리 유다를 멸망시킨 하나님에 의해서 같이 동반해서 멸망시킬 때 그 다 같은 멸망의 심판의 자리에서 ‘나는 뭐냐?’를 다시 한 번, 멸망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무엇이고 구원은 무엇이며 언약의 성실성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일관된 뜻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거예요.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간의 차이점이 뭔가를 같이 멸망하면서 바라보게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진짜 구원받는 사람은 내 일상 잘되고 남의 일상 못될 때 “아이고, 고소하다. 그래, 잘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니 감사합니다.” 이런 조로 일상생활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남이 교통사고 남이 이혼하고 남이 못되었을 때에 “주여, 나도 그래야 되는데 왜 나는 아직까지 교통사고가 안 나고……, 나도 그래야 되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요. 운전할 때 참 옆에서 잔소리 많이 하거든요.

보통 남편이 옆에서 운전할 때 아내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서 보통 인내성이 아니면 못 참습니다. 그런데 잔소리를 늘 듣다가 안 들으면 섭섭해요. 그랬는데 자리를 바꿔서 아내가 운전을 했거든요. 내가 운전할 때 아내가 “속도 줄이세요, 신호 지키세요, 경찰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 여기서 걸리면 오늘 하루 일한 거 여기서 다 날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십년동안 한 번도 안 걸렸단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운전을 하다가 경산에서 대구로 내려오다가 6만 원짜리에 벌점 15점 딱 걸려버렸네요. 그럴 때 내가 유다나라라면 “잘됐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그동안 나는 신호위반……, 새벽에 가니까 그대로 신호무시하고 가고 바쁠 때는 과속도 했는데 왜 안 걸렸느냐는 말입니다. 왜 안 걸렸어요, 왜? 심판받아야 될 것은 내가 받아야 될 것을 아내가 대신해서 받아 버린 거예요. 그래서 빌어서 6만원인데 3만원으로 낮춰서 벌금 냈습니다. 남이 못될 때 고소해 할 때 우리는 하나님 믿는다고 해놓고 내 일상이 우선이었고 말씀은 뒷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와 버리면 이젠 내 인생은 없고 하나님의 없는데서 새로 은혜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가스충전소가 폭발하는 일들을 목격하면서 “나도 당해야 되는데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고 용서고 자비지 지금 당장 죽어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되돌아 봐도 하루하루 살아온 일용할 양식도 다 주님이 살려줘서 살아왔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우리는 이 창조의 주인공이 십자가지신 예수님이라는 사실, 예수님의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주님 증거 하라고 이 본문 주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상이 우선이고 말씀은 뒷전이었습니다. 이제는 순서 바뀌게 하여주옵소서. 지금도 말씀으로, 십자가희생덕분으로 살아가는데 자기 열심으로 살아가는 양 착각하는 우리, 우리가 바로 암몬이고 진즉에 멸망당해도 싼 우리입니다. 주께서 심판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언약 바라보게 하셔서 구원해 주신 이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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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2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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