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강-YouTube강의(우리의 육체)13010024-이 근호 목사
51강-YouTube강의(우리의 육체)13010024-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51강-YouTube강의(우리의 육체)13010024-이 근호 목사
강의 제목은 “우리의 육체” 라는 겁니다. 사람은 육체를 갖고 있으니까, 자기 몸을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자기 육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 자신도 자기를 잘 몰라요. 왜냐하면, 5년 전에 주장이 5년 후에는 바뀌고, 또 5년 후에 바뀐 지금의 주장이 10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있을 때에 상사에 대해서 그렇게 욕을 하다가도 막상 현장에 가서 상사 앞에 서게 되면, 꼬리를 내리게 되고 아부성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나라는 이 육신을 가지고 평생을 같이 살지만, 이 육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누가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죠.
바로 성경 말씀은 인간의 육신에 대해서 단호하게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의 결론에 어떻게 내려져 있는지를 이 시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사야 40장에 보면, 모든 육체는 특정 육체가 아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육체가 아니고, 소위 에어로빅하고, 운동해서 복근 나오고, 아주 관리 잘된 육체도 포함 합니다. 이사야 40장 6~7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문장에서 무엇과 무엇이 대조 되는가를 살펴봐야 돼죠. 우리의 육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창조, 만들어 놓고 방치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 놓고 ‘그래 니가 열심히 가꾸어 봐라, 그러면 아름다움의 티를 낼 것이다.’ 라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심판 할 때 보자, 이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힘이, 여호와의 기운이, 여호와의 세력이 어디에 작렬하느냐, 육신에 작렬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만들 때 그냥 홀로 방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운과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육신이 만날 때, 이 육신이 어떻게 쇠퇴하고, 후패하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너 자신이 변화되면서, 같이 썩어가면서 똑똑하게 체득하고, 체험하라는 겁니다.
뭔가 하나님 앞에 우리 육신이 놀아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들어 놓고... 보통 우리 부모 자식 간에는 그렇지 않거든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방치합니까? 밥도 안 줍니까? 아플 때 그냥 놔둬버립니까? 애지중지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으로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또 아끼고, 애처롭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모델로 생각해놓고, 그 모델에 맞추기 위해서 고생고생해서 벌은 돈을 쏟아 붓고, 자식들이 그 예상한 목표치에 일치되는지, 미흡한지를 늘 살펴보고 혹시 육신의 머리 아플 때도 열은 오르지 않았는지 늘 살펴보고 나가는 것이 부모 된 도리고 자식은 그 혜택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 부모가 잘해 주듯이 하나님도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렇지 않아요. 8절에 보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7절, 8절 가운데서 세가지 중요한 대상을 끄집어내면, 하나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두 번째는 기운을 불어 넣는 하나님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7절, 8절 말씀을 지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에다가 어떤 기운을 불어 넣게 되면 생생하고, 팽팽하고 청춘이라서 푸릇푸릇해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육신인데, 계절 바뀌면 시드는 단풍잎처럼 극도로 찬란하고 아름답다가 그 색감이 확 줄어 버려서 발에 밟혀도 아깝지도 않은 쓰레기처럼 달라지도록 하나님의 기운이 매일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그 기운을 불어 넣는 거예요.
나이 많은 사람 머리카락 빠지죠. 온 몸이 안 아픈 사람 없죠. 갱년기 증세 나타나죠. 스트레스 받으면 식욕 떨어지죠. 뭔가 매일같이 육체는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가 행동을 제대로 못해서 어떤 죄를 져서 벌 받는 것이 아니고, 원래 육체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 이유가 우리는 궁금했는데 여기 본문 말씀 보니까 그 이유가 나와 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육신과 대비하기 위해서 육신은 날로 쇠퇴하고, 말씀은 쇠퇴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말씀답게, 또렷하게 현실 속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내 육신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빌고, 예수님께 비는 것은 이것은 엉터리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성경 이사야 40장 7~8절과 완전히 정반대로 노는 겁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해서 대드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해야 됩니다.
늙어야 되고, 아파야 되고, 울어야 되고, 고통 속에 있어야 되고 그러면서도, 그렇게 시달리고, 당하고 평생을 저주 가운데 힘들게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이러해야 된다는 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마땅한 우리에 대한 창조하신 본래의 취지인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면, 비록 우리의 육체는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새롭게 등장 한다는 것이 뭐냐 하면,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게 되는 겁니다.
나 위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 위주, 약속위주, 말씀위주입니다. 그렇게 말씀위주가 될 때 결국은 우리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됩니까? 방금 제가 이야기 한 것이 이사야 40장 이야기입니다. 이거 구약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으로 끝나느냐. 신약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 고린도 전서 15장에 보면 “흙에 속한 육체가 있는 반면에 하늘에 속한 육체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육체라 하는 것을 추상적으로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 뜻을 온전히 다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육신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룬 육신이었습니다. 그 육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의 성취의 경로를 통과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죽고 다시 사는 육체로 변신 시켰습니다. 부활의 몸이죠.
이사야 40장에 나오는 이 말씀은 우리의 몸은 이 땅에 태어나자, 마자 그 때부터 모래시계처럼 재깍 재깍 후패해야 되는데, 후패하면 할수록 우리 속에서 말씀은 살아납니다. 이 말씀이 구체화되고, 구체화 된 것은 예수님 십자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그 부활의 몸입니다. 부활의 몸을 해산하기 위해서 임신된 말씀이 이것이 해산에 이르면 부활에 새로운 천사 같은 형상으로 변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껍데기에 지나면 이것은 지옥 갈 껍데기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몸은 점점 더 늙어가고, 후패하고 나중에 흙이 되고 모래가 될지언정, 그 육체를 통해서 우리 몸의 성령의 새로운 몸으로 잉태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작용은, 후패한 몸을 가지고 주께서 재료를 사용하여 영원한 영생, 하늘에 속한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그 작업이 지금 십자가의 용서라는 실제 본질이 우리 속에 용서가 주어지게 되면, 사랑이 주어지게 되면 사랑의 대상으로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으면서 죽어가는 육체는 사랑으로, 영광스런 육체로 천사같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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