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강의 (50강, 51강) 권력, 우리의 육체 131024강의[신학]

유튜브강의 (50강, 51강) 권력, 우리의 육체 131024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50강

51강

유일자(IP:116.♡.234.248)

13-10-28 17:37

50강-YouTube강의(권력)13010024-이 근호 목사

“권력”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권력에 꼼짝도 못하는 그런 모양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사실은 권력이 있다는, 힘이 있다는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것을 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가정에서부터 부모의 힘을 체험하게 되고, 나중에 청소년이 되어서 학교가면 학교의 지배와 그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힘과 학교의 힘이 이어져서 청소년들은 현실사회라는 것은 이런 힘으로 유지된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들이 생각되는 것은 ‘아~ 힘이 없이는 이 현실 사회에서 살 수 없다.‘ 라는 것을 분명히 느끼게 되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모병제, 전부다 징병제죠.

모든 젊은 정상적인 청년들은 군대 갈 때 비로소 국가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나 가기 싫어. 나 훈련 받기 싫어.‘ 하고 거부하게 되면 구속당해서 교도소 가야 되죠? 교도소 가면 자기 스케줄이 없습니다. 자유라는 것이 없죠. 그동안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았는데 국가의 힘이 나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사실 그것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시위할 때도 경찰이 와서 시위를 해제 시켜 버리면 아,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죠. 어릴 때는, ‘왜 나한테 자유 할 수 있는 의지가 있고, 힘이 있는데 왜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순진하게 생각하다가 어른이 돼보면 아하, 그게 바로 현실이구나.

즉 현실이라 하는 것은, 나보다 더 센 힘을 가진 자에 의해서 굴복 당하는 그런 현상자체가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현실이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교회 나와서 하나님 믿고, 예수 믿고, 안 믿고 하는 그것도 우리는 내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여기가 만약에 공산주의 사회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교회 가서 예수님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형편이 되겠습니까? 안되죠. 신앙이라는 것이 나의 자유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죽어서 천국 간다는 그 신앙마저 아~ 이게 내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 뭔가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항상 작동하는 그 속에 우리가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 나와서 찬송하는 이것도 뭔가 아직까지 어느 쪽에서 허락이 된 조건하에서 신앙생활이라는, 예배라는 것이 되지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또 그런 현실이 찾아온다면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전도도 못하고, 교회생활도 못하는 겁니다.

심지어 이 동영상 찍는 것도 누군가의 힘의 배려와 허락이 있어서 동영상이 촬영되고, 올리는 것이지 만약에 그쪽 회사의 취지에 어긋난다면, 사정없이 삭제되는 겁니다. 바로 이 동영상도 그런 운명에 놓여 있는데, 자, 그럴 때 성경에서 이렇게 얘기 합니까?

‘그러니까 현실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거기에 굴복해야돼. 하나님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고 네가 하나님, 하나님하고, 예수님해도 힘없이는 못사는 거야. 그러니까 항상 힘이 있거든 어떤 종류인가를 파악해서 그 힘에 굴복하면, 너는 니가 하고 싶은 것, 니가 살고 싶은 너의 인생을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거야.’ 하고 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시편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52편에 보면,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제물에 풍부함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망하는 사람이다.” 라는 취지의 글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60편 11절에 보면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취지에 의해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이 있습니다.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 그 당시 애굽 같으면 지금은 미국쯤 되겠죠. 자장 잘 사는 나라죠. 또 바벨론 힘, 그런 힘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힘에 죽고, 못산다는 것을 뻔히 잘 아십니다. 그리고 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같이 있을 때, 베드로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었냐 하면, 내가 지금 스승으로 모시는 이 예수님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힘을 제공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이 세상 어떤 힘보다 더 센 힘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고로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 힘센 분이고, 우리는 그 힘센 분을 의지하게 된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 그 증거를 항상 찾아 다녔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가 나을 때, ‘그렇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우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저 예수님은 우리에게 실시한다.’ 이렇게 생각해서 아주 마음이 들떴습니다.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이제는 걱정 없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힘은 저 예수님이 제공한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쉽게 예를 들면, 어떤 목사가 개척 교회할 때 ‘예수님이 함께 한다면 이 개척교회가 부흥돼서 어느 누구도 부러운 큰 교회가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생각이고 베드로 생각이예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는 애초부터 힘이 없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체포할 때 베드로는 마지막 남은 자기 힘을 사용했습니다. 칼을 들고 체포하는 그 사람의 귀를 베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칼을 쓴 자는 칼로 망한다.” 다른 말로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에 의해서 망하도록 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힘이란, 사람의 힘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의 힘이 이만큼이라면, 하나님의 힘은 이것보다 더 큰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 힘과 관계가 끊어진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힘입니다.

죽을 때 죽을 수 있는 것, 스데반 집사처럼 죽을 때 죽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의해서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No가 아니고, 전부다 Yes 이기 때문에 모든 일어나는 상황은 하나님의 힘이 그동안 인간의 힘을 기대하는 힘에 의해서 가리어 졌으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힘 가지고 하나님의 힘도 계속해서 나가려는 이 모든 것을 끊어 버리는 조치를 지금 한평생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니가 힘이 없나.” ‘예,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있는 힘마져 놔 버려라.” 이게 하나님의 힘입니다. 인간들의 힘을 의지하다 보니까 정작 주의 힘은 전혀 우리한테 먹히지를 않아요. 연결고리가 되질 않습니다. 왜, 우리가 조그마한 힘이라도 있으면 아둥바둥 쥐고 있기 때문에 그것마져 주님께서는 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 의지하고 있는 모든 힘을 완전히 놔 버리는 사태와, 상황들을 하나님께서는 일으키십니다. 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갖고 있는 힘 가지고는 저 강력한 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하게 깨닫게 합니다.

그러면 그 뒤에 나오는 것은 뭐냐, 시편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힘을 의지한다. 곧 언약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옵니다. 세상에는 공장에서, 사업체에서 모든 힘들을 생산할 수 있어요. 상품의 힘, 돈의 힘, 어음의 힘, 신용의 힘 우리는 그것을 모아서 현실이라고 어릴 때부터 익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만들지 못하는 힘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나온 용서의 힘입니다.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세상 힘을 이기는 것은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성령의 힘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약속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지 내 힘으로 버텨왔다는 자기의식은 날라가 버리는 겁니다.

이러한 교체작업은 오직 주의 의로운 힘, 주의용서의 힘, 사랑의 힘을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10-28 17:38

51강-YouTube강의(우리의 육체)13010024-이 근호 목사

강의 제목은 “우리의 육체” 라는 겁니다. 사람은 육체를 갖고 있으니까, 자기 몸을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자기 육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 자신도 자기를 잘 몰라요. 왜냐하면, 5년 전에 주장이 5년 후에는 바뀌고, 또 5년 후에 바뀐 지금의 주장이 10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있을 때에 상사에 대해서 그렇게 욕을 하다가도 막상 현장에 가서 상사 앞에 서게 되면, 꼬리를 내리게 되고 아부성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나라는 이 육신을 가지고 평생을 같이 살지만, 이 육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누가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죠.

바로 성경 말씀은 인간의 육신에 대해서 단호하게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의 결론에 어떻게 내려져 있는지를 이 시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사야 40장에 보면, 모든 육체는 특정 육체가 아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육체가 아니고, 소위 에어로빅하고, 운동해서 복근 나오고, 아주 관리 잘된 육체도 포함 합니다. 이사야 40장 6~7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문장에서 무엇과 무엇이 대조 되는가를 살펴봐야 돼죠. 우리의 육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창조, 만들어 놓고 방치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유념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 놓고 ‘그래 니가 열심히 가꾸어 봐라, 그러면 아름다움의 티를 낼 것이다.’ 라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심판 할 때 보자, 이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힘이, 여호와의 기운이, 여호와의 세력이 어디에 작렬하느냐, 육신에 작렬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만들 때 그냥 홀로 방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운과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육신이 만날 때, 이 육신이 어떻게 쇠퇴하고, 후패하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너 자신이 변화되면서, 같이 썩어가면서 똑똑하게 체득하고, 체험하라는 겁니다.

뭔가 하나님 앞에 우리 육신이 놀아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들어 놓고... 보통 우리 부모 자식 간에는 그렇지 않거든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방치합니까? 밥도 안 줍니까? 아플 때 그냥 놔둬버립니까? 애지중지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으로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또 아끼고, 애처롭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모델로 생각해놓고, 그 모델에 맞추기 위해서 고생고생해서 벌은 돈을 쏟아 붓고, 자식들이 그 예상한 목표치에 일치되는지, 미흡한지를 늘 살펴보고 혹시 육신의 머리 아플 때도 열은 오르지 않았는지 늘 살펴보고 나가는 것이 부모 된 도리고 자식은 그 혜택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 부모가 잘해 주듯이 하나님도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렇지 않아요. 8절에 보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7절, 8절 가운데서 세가지 중요한 대상을 끄집어내면, 하나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두 번째는 기운을 불어 넣는 하나님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7절, 8절 말씀을 지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에다가 어떤 기운을 불어 넣게 되면 생생하고, 팽팽하고 청춘이라서 푸릇푸릇해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육신인데, 계절 바뀌면 시드는 단풍잎처럼 극도로 찬란하고 아름답다가 그 색감이 확 줄어 버려서 발에 밟혀도 아깝지도 않은 쓰레기처럼 달라지도록 하나님의 기운이 매일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그 기운을 불어 넣는 거예요.

나이 많은 사람 머리카락 빠지죠. 온 몸이 안 아픈 사람 없죠. 갱년기 증세 나타나죠. 스트레스 받으면 식욕 떨어지죠. 뭔가 매일같이 육체는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가 행동을 제대로 못해서 어떤 죄를 져서 벌 받는 것이 아니고, 원래 육체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 이유가 우리는 궁금했는데 여기 본문 말씀 보니까 그 이유가 나와 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육신과 대비하기 위해서 육신은 날로 쇠퇴하고, 말씀은 쇠퇴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말씀답게, 또렷하게 현실 속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내 육신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빌고, 예수님께 비는 것은 이것은 엉터리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성경 이사야 40장 7~8절과 완전히 정반대로 노는 겁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해서 대드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해야 됩니다.

늙어야 되고, 아파야 되고, 울어야 되고, 고통 속에 있어야 되고 그러면서도, 그렇게 시달리고, 당하고 평생을 저주 가운데 힘들게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이러해야 된다는 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마땅한 우리에 대한 창조하신 본래의 취지인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면, 비록 우리의 육체는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새롭게 등장 한다는 것이 뭐냐 하면,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게 되는 겁니다.

나 위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 위주, 약속위주, 말씀위주입니다. 그렇게 말씀위주가 될 때 결국은 우리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됩니까? 방금 제가 이야기 한 것이 이사야 40장 이야기입니다. 이거 구약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으로 끝나느냐. 신약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 고린도 전서 15장에 보면 “흙에 속한 육체가 있는 반면에 하늘에 속한 육체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육체라 하는 것을 추상적으로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 뜻을 온전히 다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육신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룬 육신이었습니다. 그 육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의 성취의 경로를 통과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죽고 다시 사는 육체로 변신 시켰습니다. 부활의 몸이죠.

이사야 40장에 나오는 이 말씀은 우리의 몸은 이 땅에 태어나자, 마자 그 때부터 모래시계처럼 재깍 재깍 후패해야 되는데, 후패하면 할수록 우리 속에서 말씀은 살아납니다. 이 말씀이 구체화되고, 구체화 된 것은 예수님 십자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그 부활의 몸입니다. 부활의 몸을 해산하기 위해서 임신된 말씀이 이것이 해산에 이르면 부활에 새로운 천사 같은 형상으로 변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냥 껍데기에 지나면 이것은 지옥 갈 껍데기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몸은 점점 더 늙어가고, 후패하고 나중에 흙이 되고 모래가 될지언정, 그 육체를 통해서 우리 몸의 성령의 새로운 몸으로 잉태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작용은, 후패한 몸을 가지고 주께서 재료를 사용하여 영원한 영생, 하늘에 속한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그 작업이 지금 십자가의 용서라는 실제 본질이 우리 속에 용서가 주어지게 되면, 사랑이 주어지게 되면 사랑의 대상으로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으면서 죽어가는 육체는 사랑으로, 영광스런 육체로 천사같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2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992 묻고답하기 추모예배는 비성서적 아닌지요? 로마서 최고관리자 13-10-30
12,991 자유게시판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b -이 근호 목사 레위기 최고관리자 13-10-29
12,990 자유게시판 57강-롬 9장 29-33(부딪힐 돌)131027-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10-29
12,989 자유게시판 10강-슥5장1-4(날아가는 두루마리)131027-이 근호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3-10-28
12,988 자유게시판 51강-YouTube강의(우리의 육체)13010024-이 근호 목사 이사야 최고관리자 13-10-28
12,987 자유게시판 50강-YouTube강의(권력)13010024-이 근호 목사 시편 최고관리자 13-10-28
12,986 자유게시판 서울 의존교회131011a,b (평강)―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3-10-27
12,985 우리교회 날아가는 두루마리 131027 아가 최고관리자 13-10-27
12,984 묻고답하기 율법의 마침 로마서 최고관리자 13-10-27
12,983 우리교회 요셉의 수난 131027 - 최고관리자 13-10-27
12,982 설교 부딪힐 돌(로마서 9:29-33) 로마서 최고관리자 13-10-27
12,981 우리교회 부딪힐 돌 131027 로마서 최고관리자 13-10-27
12,980 자유게시판 안양131011b-히4장12절(측정의 오류)-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10-26
12,979 자유게시판 안양131011a-히4장12절(측정의 오류)-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10-26
12,978 강의 왕의 제사 131025 이사야 최고관리자 13-10-26
12,977 강의 마귀의 소리 131024 [신학] 최고관리자 13-10-25
열람 ➜ 강의 유튜브강의 (50강, 51강) 권력, 우리의 육체 131024 [신학] 최고관리자 13-10-25
12,975 자유게시판 이근호 목사님, 침멀리 강의를 다시 정리하다가 이상해서, 좀 확인해주세요 !!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3-10-24
12,974 자유게시판 62강-에스겔21장 24-27(벗겨진 면류관)131024-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10-24
12,973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0. 9. 27) 2강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10-24
12,972 자유게시판 20091110a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1 - 머리말 [신학] 최고관리자 13-10-23
12,971 우리교회 벗겨진 면류관 131023 에스겔 최고관리자 13-10-23
12,970 자유게시판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a -이 근호 목사 레위기 최고관리자 13-10-23
12,969 우리교회 [일반] 영화 [그래비티] 평 [일반] 최고관리자 13-10-23
12,968 묻고답하기 영화 [그래비티] 평 [신학] 최고관리자 13-10-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