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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2010. 9. 27) 2강자유게시판히브리서

광주 강의(2010. 9. 27) 2강

이름 : 서경수(IP:218.159.161.113)

광주 강의(2013. 9. 27) 46-2

지난 시간에 한 것을 잠시 정리해 보면, ‘숨어 있는 것이 나타날 때는 피로 나타난다.’고 했고,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피가 인격화 되죠.’ 그러면 당시에는 제사장이 됩니다. 하나님은 왕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하나님은 없지요. “‘없다고 하지 말고 안 보인다.’라고 하지?” 라고 할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민족에게나 신은 안 보이지요.

불교 신자들이 부처를 믿는 줄 아세요? 아닙니다. 부처는 상징물입니다. 무신론자는 있어도 무신자는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이고, 신을 찾아가는 방식에서 신을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제사장 형식으로 오니까 사람들은 제사장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이 관계가 틀려먹었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을 주셨다.’라는 인간이 돌에 맞아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데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면 누가 구원 받겠습니까?’ 라고 한다면, 사람이 구원 받겠다는 자체가 이미 신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없어요. 인간들이 ‘신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신적 영혼에 불과하고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워도 여호와와 다른 신이 싸워야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가면 그것이 정답인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다른 신도 신이 아닐뿐더러 지금 자기들이 믿는 여호와도 진짜 여호와가 아니었어요.

그러면 처음부터 여호와는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가 어디 있는가?’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생각은 뭡니까?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이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자’는 자체가 이미 생명나무 가는 길이 차단된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며칠 전에 소설가 최인호씨가 죽었어요. 초반에는 잘 팔리는 책을 썼어요. 그런데 후반에는 점점 ‘진리가 무엇인가’를 파고드는 책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잘 팔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어요. 이 사람의 후반기 책들을 제가 보니까 ‘인간의 모든 종교가 더 썩었다’는 거예요. 천주교, 기독교, 불교 전부 다 썩었는데 썩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다가 죽었어요.

나쁜 것을 지적하는 것은 좋은데, 그럼 나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에스겔이나 레위기의 정답은 뭡니까? 그런 것을 염두에 둔다는 자체가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전혀 하나님 말씀을 이해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걸레 꿰매봐야 넝마지요. 걸레 깨끗하게 삼는다고 행주로 바뀌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백성들의 어른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착합니까? 제사장은 거룩합니까?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싸해 보이는 것을 세우는 거예요. 세트장처럼.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제사 지내면서 그 제사가 효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했으니까 영적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드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영적 예배를 드리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 땅에서도 말고 저곳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목사들이 이 말씀을 보고 ‘예배가 성도의 목적이구나.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자.’라고 주장해요.

그런 마음 가진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예배입니까? 그것은 숨어있는 진짜를 드러내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입니다. 진짜는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뭔가를 깨뜨리면서 나타나요. 그 깨뜨려야 될 것들을 주께서는 마구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하도록 유지하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의와 신과 인으로 드리라고 했어요. 그리고 바울 서신에는 일체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지요. 오히려 십일조를 드리는 그것이 십자가 복음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히브리서에 보면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십일조를 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뜻을 안다고 십일조를 안 해요. 어쨌든 둘 중 하나를 하기 마련인데, 어떤 쪽을 택하든지 그것은 ‘진짜 숨어있는 십자가 피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임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라는 그런 모습이나, ‘했으니까 나에게 벌주지 마세요.’ 라는 모습 둘 다 구멍이 나야 돼요.

지난 수련회에서 변곡점 이야기를 했는데, “내 인생은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갔다가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하면, 하나님은 볼펜으로 그 그림에 구멍을 뚫어버리겠지요. 이것 자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없어지지만 우리는 매일 이것을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눈만 뜨면 밥 먹고 살려고 설쳐야 돼요. 왜? 우리를 위해 만든 세트장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세트장이거든요. 이 세트장의 특징은 자신이 주인공입니다.

이제 레위기 21장을 보겠습니다. 5절에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제사장들이 머리카락을 기르면 어떻겠어요? 길러도 안 돼요. 대머리로 깎는 것은 애굽의 풍습이라 안 되고, 길게 땋는 것도 안 됩니다.

민수기 6장 5절에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고 했지요. 삼손의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머리카락이 길었어요.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머리카락에서 나온 거예요.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알고, 삼손도 알고, 나중에는 블레셋 사람도 그 비밀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비밀, 머리카락이 세트장이었습니다. 그 머리카락 잘리고 난 뒤에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나는 이래서 안 돼.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천국에 못가.”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가장 성도다운 순간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천국 간다면 천국 못가는 사람 아무도 없겠다.”고 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주님 앞에 모든 무기를 다 내려놓은 거예요. 이런 사람은 자기 구원을 포기한 사람이고, “나는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합니다.”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네가 바로 의인이다.”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지요.

옆에 사람은 바쁩니다. 이레에 두 번 십일조하고, 하루 세 번 기도하고, 구제하고. 그 당시에는 이런 것이었는데 요즘은 더 많은 항목이 있어요. 그러나 주님은 이딴 것 보지도 않습니다. “나는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살려고 수녀원에서 주님만 찬양하며 살았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건강식을 만들어 제공했습니다.”이런 소리해도 주님은 듣지도 않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세리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면서 가슴을 치는 세리를 향해 주님은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눅18:14).”고 하셨지요. 여하간 주님이 구원하실 때는 아슬아슬하게 구원해요. “나는 지옥 갈 뻔했다.”고 한숨을 내 쉴 정도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의아해서 오히려 주님께 묻습니다. “내가 언제 주님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습니까?” 그 때 주님은 “어린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이런 답변이 돌아오지요. 이것은 우리가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졌기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구원받아야 될 자이기에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모든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것은 안 보입니다. 안 보이면 이것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신은 안 보인다.’고 하지만 그대로 그 신은 가짜입니다. ‘안 보이지만 계신다.’는 것도 가짜입니다. 왜냐? 주께서 나타나실 때는 ‘내가 여기 있다.’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피가 있고 언약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때 거기에만 아버지가 계신 거예요.

아버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신(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사람은 저주 받고 지옥 갑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 안 믿는 사람도 지옥 갑니다. 관심사가 하나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나타내셨는가? 나타내는 방법은 십자가 피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피는 나를 찌릅니다. 나로 하여금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면 나는 뭡니까? 임시직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척하고, 노력하는 척하게 만들어놓고 ‘나는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깨닫게 하는 식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나실인이 나오는데 나실인은 사라지는 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있어도 없는 자’입니다.

5절에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머리카락을 기르지요. 시간이 중지된 겁니다. 새로운 시간에 돌입함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주기성에서 열외 된 거예요. 나실인이 뭐냐 하면, 서원한 자인데, 서원은 바친다는 뜻입니다. 바치기 때문에 나실인은 뽑혀 나온 사람이에요. 보통 사람과는 달라요.

나실인은 인격체인데, 그 나실인이 길렀던 머리카락이 서원이 끝날 때 번제물에 포함되어 드려집니다. 7절에 보면 “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혈육으로부터의 격리입니다.

에스겔 44장 25절을 봅시다. “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라고 했어요.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제사장들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부모나 자식, 또는 형제가 죽으면 시체를 가까이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민수기 6장 7절에는 “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라고 했어요. 장례식 참석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네가 있어도 결석처리 된다.’는 것이지요.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존재 속에 포함이 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이 사람의 머리카락이 제물에 포함된다는 말은, 장차(신약 시대에) 제물이 인격체(메시야)로 나타났을 때에 그는 우리와 함께 있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같은 죽음, 죄 속에 있는 사람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죄 바깥에 있는 사람이 죄 속에 있는 사람을 건질 수 있는데 바깥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죄 속에 들어와서 죄인을 건져 냅니다. 우리는 죄인이어서 꼼짝도 못하는데 메시야가 찾아와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건지는 것이나 강도를 구원하는 것이나 세리와 창기를 구원하는 것, 남들은 금식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이유는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 속에 있으면서도 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거예요. 이것의 그림자로 나실인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사장보다 더 기가 센 사람이 나실인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하지 말고 ‘나실인 나라’라고 하면 좋겠는데 왜 ‘제사장 나라’입니까? 제사장은 바로 이런 현상에 대한 해석자요 목격자로 백성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백성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이 몸을 바칠 수는 없거든요. 그러나 나실인은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민수기 6장 7절에서 부모 형제로부터 끊어졌다는 것은 애초부터 나실인 되겠다는 그 약속은 부모에서 허락을 받는다든지 누구하고 의논할 사항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에게 지시한 사항입니다.

그때부터 머리카락에 손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머리카락은 세상에서 떠난 조치이기에 세상에서 말하는 시간은 여기에 적용이 안 되니까 머리카락은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 거예요. 시간의 중지를 선언하는 것이지요. 나실인이 서원한 그 기간만큼은 시간이 중지됩니다. 시간이 중지된다는 말은, 나를 위한 세월은 다 삭제해 버립니다.

군대 가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어요. ‘너는 속세를 떠났기에 바깥세상에서 아버지가 환갑하건 누나가 결혼을 하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쳐라.’ 그런 뜻에서 머리를 자릅니다.

제사장이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아야 될 이유는, 머리카락 길러야 할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44장 20절에 보면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이렇게 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사독 계열은 다윗의 친척입니다. 그러니까 숨어 있는 왕과 한 집안이 제사장이 되는 거죠. 이것은 다윗 언약이 주어지기 전과 달라요. 다윗 언약이 주어지고 난 뒤에는 모든 제사장은 사독 제사장으로 규정이 되고, 그 전에는 사독 계열이 아닌 모세 계열을 통해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다윗 언약 이후에는 제사장이 왕 수하에 있게 됩니다. 정확히는 왕의 언약 안에 있어요. 따라서 이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 하는 모든 것은 ‘제사 잘 드리면 구원 받습니다.’라는 차원이 아니고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기에 제사를 드립니다.’라는 차원이 되는 겁니다. 완성차원에서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삼스럽게 ‘이렇게 하시면 구원 받습니다.’가 아니라 ‘이미 구원 받았기에 너에게 그런 현실이 일어나게 될 거야.’라고 통보해 주는 차원이에요. 이미 면역체계가 깨어진 사람은 “이번 가을에는 알레르기 비염에 한 번 걸려볼까.”라고 해서 비염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 환절기가 되면 벌써 코가 간질간질하고 눈이 따갑고 기침이 나고 콧물이 흐릅니다. 제 경우에는 8월 초부터 그런 증상이 시작됩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라는 징후가 내가 원치도 않는데 8월 초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럴 때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코에 뿌리면 그 증상이 사라집니다. 그 약을 사용하기 전에는 설교할 때 애를 먹었어요.

이미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 되면 사독 계열이 다윗 언약의 일부로 포함이 되기 때문에, 지금 여호와가 왕이기에 구원 받은 징후로 성전이 있고, 제사가 있고, 토지가 있고, 제사장이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미 구원 받았다는 것이 에스겔 시대인가? 그건 아니고, 이 이야기는 장차 메시야가 오면 이 성전, 이 제사, 이 땅 전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해를 해서 자신들이 사독 제사장만 골라서 세웠습니다. 그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 속으로]라는 책에 보면 나와요.

사독 계열만 세우고, 다윗 혈통만 왕으로 삼아야 한다고 일으킨 혁명이 ‘마카비 혁명’입니다. 이게 진짜입니까, 세트장입니까? 세트장입니다. 기껏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그 정도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에요. 에스라, 느헤미야에 사독 계통이 나오니까 자기들도 그 혈통을 찾아서 하겠다는 거예요. 그 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혈통과 상관없는 백부장에게 “아브라함 본 자손은 다 쫓겨나고 네가 바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마태복음 8장에서 말씀하시지요.

그러니까 다윗 언약의 에스겔 이 내용에 대해서, 이 언약을 받고 난 뒤에 인간 자체가 엉터리 세트장이니까 자기가 이 에스겔을 보고 엉터리 해석을 해서 엉터리 망상을 만들어놓고 이것을 현실화 시킨 것이 유대 나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오셨을 때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소경을 보면서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이 질문이 뭔가 하면, 질문하는 제자들은 아무리 나빠도 저 정도 죄는 안 지었기에 아직 눈이 멀쩡하다고 여긴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내 눈이 멀쩡하다고 하는 자가 소경이고 오히려 안 보인다는 자가 본다.”고 했어요.

이것만 따져도 예수님이 하신 모든 해석은 우리 인간을 뭉개는 식입니다. 우리가 한 것은 일단 다 밟아요. 우리가 열심히 인생의 밭을 갈았잖아요. 그러면 주님은 그 밭을 밟고 지나갑니다. 자근자근 밟아서 부수고, 그것을 보고 우리는 화를 내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어 놓고 그 때 성경 말씀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껏 밟힙시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 밟히면서 살아가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에스겔 44장 28절을 봅시다.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했는데, 여기에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제사장인데, 어떤 제사장입니까? 포도주 안 마시고,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않고, 안식일을 거룩히 여기고, 시체를 가까이 아니한 이런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이 기업이 된다고 했어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29절을 봅시다.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라고 했어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내가 곧 그 기업’이라는 말은, ‘내가 너희를 먹여 살려 줄게.’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을 당시 사람들이 이해했을까요? 이해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행할 때 그 떡은 그냥 떡이 아니고 예수님의 축복을 경유했습니다.

축복받은 떡은 어떤 떡입니까? 먹으면 우리가 곧장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축복하신 떡을 먹었음에도 그들이 주님을 떠났어요. 그러면 주님이 축복한 의의가 없어지잖아요?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말은, 옛날에 기업이라는 것은 재산 상속권입니다. 상속권은 토지를 물려받는 겁니다.

봉건주의가 있는데, 이것은 8세기 프랑스 칼로링 왕조시대에 처음 시작이 되었는데, 토지를 놓고 주군과 신하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신하는 사무라이와 같습니다. 사무라이는 농사를 안 짓습니다. 평소에 낮에는 칼 연습하고 밤이면 기생집에 가서 술 마시고 --- 일종의 조폭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언제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하면, 나이트클럽 뺏길 때 그동안 연습할 칼 솜씨를 발휘합니다.

이들 사무라이를 먹여 살리는 것이 주군입니다. 주군이 된다는 말은 내가 조폭생활 하는 거예요. 옛날 모든 농부는 주군 밑에 있는 하인들이었고, 그 하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기사들이 했습니다. 이것이 봉건사회입니다.

왕이 토지를 영주에게 하사하면, 영주는 왕에게 세금을 내고 그 토지를 기사들에게 분배해서 관리합니다. 기사는 그 토지를 남에게 줄 권한은 없습니다. 즉 기사는 하급 귀족이 되고, 이것이 영국에서는 나중에는 하원이 되고, 영주는 상원이 됩니다. 이것이 의회 제도입니다.

어쨌든 봉건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토지를 분배받아야 합니다. 토지에서 양식이 나오기에. 그런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토지를 주는 것이 아니고 토지 가진 자로 하여금 십일조를 받고 제물을 받아서 그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받아서 “우리는 하나님 없으면 못 삽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런 제사장이 요즘 있습니까? 지금은 없습니다. 없는데 있어요. 모든 교인들이 다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겁니다. 여러분의 직업을 주군이 주신 겁니다. 교사는 사무라이입니다. 학생들 앞에서 사무라이로 있습니다. “그런 짓하면 매 맞는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사람이 오늘날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뭔가? 기사들이죠. 사무라이입니다. 백성들이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오면 그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 몫이 되고,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이 방식을 가지고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행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떡으로 생각했어요. 그들은 예수님이 양식을 주신다고 여기고 찾아오니까, 예수님은 “너희들이 나를 왜 따르느냐?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나를 찾은 것이냐? 그러니까 너희들이 영생을 모르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이 주는 떡이 떡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떡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지요. “주님, 좋은 직장 주세요. 사업 잘 되게 해 주세요.” 왜? 그 돈으로 먹고 살겠다는 거지요. 그러면 그 예수는 자기 살기 위해 이용하는 이용물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줄 것은 내 살과 내 피다.”

우리는 주님 살과 피를 먹기 위해 주님을 찾지는 않지요?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주님을 안 믿어요. 진짜 우리가 성도라면 주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습니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는 겁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명령하셨잖아요. 그러나 이 명령의 실행자는 우리가 아니고 주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살과 피를 먹게 함으로 내 대신 주가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아는 그것이 오늘도 우리를 영생 속에 있게 만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놓고 사 먹을 때, 비로소 내가 부자인 것을 깨달았다.’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 하면, 번데기를 먹고 싶어요. 대구 칠성시장에서 4,000원 주면 중국산 한 바가지를 줘요. 다슬기도 중국산은 굉장히 커요. 값도 싸고.

이것이 옛날 음식인데 이런 것이 먹고 싶을 때 그것 살 돈은 있단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부자입니다. 얼마나 그 사람은 마음을 낮췄습니까? 소말리아 같은 나라 이야기를 들으면 기차 찹니다. 돈 주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부자인지 좀 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군 밑에서 사는 사무라이들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해요.

45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주었고, 그 다음에 제사장 줬고, 다음에 땅을 줘요. 땅의 중심에 성소가 있고, 제사장 땅이 있고, 레위인 땅이 있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뭡니까? 성소 유지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옛날 신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지상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천상에도 그런 계급이 있다는 이야기다.” 순 엉터리 주장입니다.

분명한 것은 천국에 가도 바로 이 모습(에스겔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진행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소 중앙에서 면류관 반납하면서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만큼 이 모든 것이 완성상태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완성되면 거기에는 생명나무가 있기 때문에 다시는 우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고, 죄도 없고, 에덴동산은 비교도 안 되고, 영원한 축복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을 살면서 이런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그 혜택이 이스라엘에게도 주어지는 거예요. 에스겔 당시에. “조금만 기다려. 메시아가 오게 되면 성소가 되고, 제사장이 되고 그 때에는 그 땅에서 잘 사는 거야.”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인 줄 오해를 한 거예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이 땅도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더불어(십자가 안에서 말씀이 완성되었으니까, 에스겔 45장이 완성되었으니까) 올라간 거예요. 올라가서 처소가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처소가 있잖아요. 그 처소가 에스겔 45장이에요. 성령이 와서 “너, 너, 너 올라와!” 하면, 이미 처소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통보해 주고, 성령이 온 사람은 ‘웬 떡이냐.’하고 성령을 따라 가는 노정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한꺼번에 성령을 통해서 “네 자리는 저쪽이야.” 하고 좁은 길,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그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이라는 것은 제사장과 레위인 덕분에 다른 사람이 덤으로 살아요. 이 구조를 천국 가서 보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이 말씀이 여러분 속에 그대로 작용해서 짧은 순간이지만 ‘예수님 자체가 성전이기에 그 혜택을 입었기에 내가 지금도 주님을 믿게 되었구나. 그러니까 성도 맞구나.’라는 것을, 이미 다 용서받고 구원 되었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주신 사랑을 말로 다 어찌 표현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인간을 일방적으로 창세전에 택하시고, 주님 아는 식으로 이끌어주시니 이 은혜를 한 순간도 잊지 말고 늘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3. 10. 24. 08:51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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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2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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