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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a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레위기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a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a -이 근호 목사

어제 수요일 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이 태어날 때는 자기가 태어났다는 게 시작이잖아요. 내가 여기 몇 년 몇 월에 태어났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네가 세대 안에서 태어났다.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어느 시, 어느 때에 태어난 게 아니라 어느 시에 태어난 것에 상관없이 너를 지배하고 너를 덮고 있는 세대, 그 세대 안에서 네가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서 네가 어떻게 살던 간에 그 세대로부터, 물론 어두운 세대죠.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 된 세대에 저촉 받습니다. 그래서 빠져나가지를 못하죠.

그렇다면 인자의 나라는 뭐냐, 인자의 나라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여튼 지나 버리면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제가 다시 설명을 해드려야 되겠습니다. 인자와 우리가 보는 인간의 차이점은 인자는 언약과 연관돼 있습니다. 등 쪽에 언약과 연결되어서 나타난 진짜 인간을 인자라 하고, 언약과 상관없이 마귀와 관련된 것은 그냥 흙이죠. 그냥 육신이라 하는데 우리는 그걸 보통사람들은 뭐냐
나? 인간입니다.‘ 이렇게 하거든요. 자꾸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고 사람이라고 해요.

그러나 성경은 언약과 관련 없으면 그거 사람 아닙니다. 사람 아니거든요. 그러면 사람에서 인간으로 바뀌려면 아브라함의 언약에 의하면 죽었다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되살아났음을 그런 정보가 그런 내용이 포함이 될 때 진짜 하나님 보시기에도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삭을 죽이잖아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건 아주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죠. 그것도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잡아 죽이니까.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경로를 밟아야 돼요. 그런 경로 안 밟으면 언약 쪽에 속할 수 없습니다. ‘나 하나님 안다. 나 교회 나오고 하나님 안다. 나 인간이다.’ 아니에요. 그건 우상이고 자기가 상상한 거고, 경로를 밟아 줘야 돼요. 우리가 지정된 거 말고 주께서 네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로를 반드시 중간에 이미 틀이 있어요. 틀은 언약이라는 틀인데 그건 하나님이 집어준 틀이 있어요. 그 틀에서 찍어내야 돼요. 그래야 인자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요.

그냥 있으면 우리는 그냥 죽어서 태어나서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4장 24절에 보면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오죠. 아브라함에게 두 자식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이삭이고 이스마엘이지만 여기서 갈라디아서 4장 24절 여기에서 이삭이다. 이스마엘이다. 이렇게 자식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식들을 누가 낳았느냐 가지고 언급해요. 한쪽은 사라의 자식이고 하나는 하갈의 자식이라는 거예요. 자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식의 출처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건 어머니가 누구냐를 가지고 인자의 나라를 하나님의 언약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누구냐?

남자는 하나에요. 여자가 둘 있어요. 그것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브라함은 여자가 두 명 돼야 됩니다. 같은 아브라함에서 여자 두 명이고, 여자 둘 다 자식을 낳게 되는데 누가 봐도 두 자식 다 아브라함이 아버지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틀렸습니다. 아브람이 낳은 자식은 이스마엘이고 아브라함이 낳은 자식은 이삭이 되는 겁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 옆에 여자가 주관하는 거예요. 여자의 후손!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자식의 질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참,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데 그냥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착착 법칙에 맞도록 세밀하게 창조합니다. 약속의 자식 만들어 내는데 자기 여자를 개입시킬 줄이야 상상도 못했죠.

여러분,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 본 적 있습니까? 유명한 영화인데, 수녀가 어떤 폰 트라프 대령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그 대령하고 결혼해서 애들 다 잘 키워 내잖아요. 남자 부인이 중간에 와서 돈 가지고 밀잖아요. ’나 돈 있으니까 당신 나하고 같이 살자.‘ 할 때 대령은 에델바이스 노래 부르면서 마리아하고 결혼하죠. 그 영화 스무 번도 넘게 봤는데 그거 보면서 하여튼 남자들은 젊은 여자 좋아하는데 돈보다도 역시 젊음이 좋긴 좋은 모양 이예요.

여자 하나 들어와서 가정을 살려냅니다. 여자의 후손이 될 때 그것이 바로 구원받는 거죠. 여자의 후손이란 말은 ‘그러면 목사님 우리를 낳게 한 여자가 누굽니까? 마리아입니까?’ 이렇게 하는데 교회사적으로 교회 신학적으로 마리아가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성경 복음적으로는 여자가 없어요. 없음을 여자로 표현한 겁니다. 이 땅에는 여자가 있더라도 남자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그 어머니를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다른 말로 이 땅에 없다는 거예요.

없다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건 뭘 하려고 하느냐 하면 오늘 강의 이것만 하면 돼요. 강의 제목이 이겁니다. 층! 층을 유지하라. 층은 1층, 2층이거든요. 층을 유지하려면 여기에 유리판을 까는 거예요. 유리판을 깔면 아래는 1층이 되겠고, 위는 2층 되겠죠. 밑에는 유리판을 깔았기 때문에 1층서 보면 2층이 보이죠. 보이면서 두꺼운 유리판이기 때문에 이게 돌파가 될까요? 안 될까요? 절대로 돌파가 안 되는 거예요. 그 돌파 안 됨을 유지해야 돼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유지를 해줘야 돼요. 육을 뚫어서 영으로 가는 세계를 허용하면 안 돼요. 사도바울이 내가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기를 “너희들이 십자가 죽은 것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돼 있거든요.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그리스도 십자가 죽은 거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 말인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었다는 이 말을 제가 임의로 줄여보겠습니다. 이겁니다. 처음에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2층에 있는 사람들아, 1층에 있던 너희들이 2층에 어떻게 왔느냐 하면 그리스도 십자가 죽으신 것 때문에 2층에 와 있다는 거죠. 이걸 내가 줄여버리면 죽음입니다. 죽음이 유리 층으로 돼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산 채로 통과가 안 돼요.

오늘 235 페이지에 무슨 용어가 나오느냐 하면 인자의 나라도 나오고, 그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짐승도 나오거든요. 짐승이라 하는 것은 2층에서 아래층을 볼 때 이 동네가 무슨 동네냐 하면 2층은 인자의 나라인 동시에 이쪽은 무슨 나라냐, 짐승의 나라입니다. 이거는 전혀 어렵지 않아요. 물론 믿는 자한테는. 성령을 믿는 자나 성령 받은 사람은 이게 정말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이게 어려운 이유가 이게 짐승의 나라가 돼 버리면 ‘나?’ 내가 짐승이 돼 버려요. ‘우~’ 흑흑 우는 게 아니고 ‘우~’ 늑대처럼. 밥을 백날 먹고 수능 며칠 안 남았잖아요. 열심히 공부하는 거, 독서실에 공부하는 거 짐승이고, 11월 달에 결혼하는데 짐승 둘이 만나서 결혼하는데 짐승의 결혼식이 돼요. 주례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짐승이 주례하고 그 자체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게 1층이란 이유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층을 나눌 때 욕을 얼마나 얻어먹었겠습니까? 본인은 귀가 간질간질 할 거예요. 뭐냐 하면 이 세상에는 육에 속한 사람과 그리고 약속에 속한 사람과 계류가 따로 있다. 약속의 사람, 그 뒤에서는 성령에 따라 난 사람, 앞에서는 약속을 따라 난 사람. 이렇게 봅니다. 약속과 육체로 분류하고 뒤에서는 성령과 육체로 분류하고, 그리고 그 육체는 뭐냐 하면 율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저주 아래 있다 하고, 성령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십자가마을에 누가 질문했잖아요. 자물쇠로 잠궈 놓고 질문했잖아요. 그 질문 내용은 이겁니다. 앞의 사마리아 여인 나온 그 질문의 되풀이에요. 요셉이 착한 일 했는데 그 내용인데 어디까지가 죄가 됩니까? 그 질문 이예요. 그런데 이게 어디까지가 죄가 됩니다. 하는 것은 1층에서 보는 죄와 2층에서 보는 죄와 달라요. 2층에서는 죄가 없어요. 이미 죄에서 벗어났는데 왜 죄가 없느냐 하면 죄가 되려면 율법의 지배하에 있어야 죄가 되는데 2층에서는 그리스도 그냥 죽음이 아니고 약속된 죽음을 통과했기 때문에 2층 사람들은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율법이 있으면 죄를 지적하는데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죄가 없어요.

그런데 아래층은 착해도 죄에요. 착해도 죄고 착해지려고 하는 것도 죄고 회개하는 것도 죄고 반성하는 것도 죄고 반성 안 해도 죄고 십일조 해도 죄고 십일조 안 해도 죄고, 교회 나가도 죄고 안 나가도 죄고 심지어 1층에서는 예수 믿어도 죄고 안 믿어도 죄고, 1층에서 예수 믿어봐야 지옥 갑니다. 왜, 자기가 주체가 돼서 믿기 때문에 그거는 예수라는 우상 숭배하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2층에서는 자기가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들어있어서 예수님이 매일같이 믿게 하시는 사람 이예요. 2층에서는 본인은 껍데기라. 주님의 열매를 보여주는 열매로서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 믿음이 아니고 주님의 믿음인 거예요.

그 주님의 믿음을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성령의 은사로서의 믿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령의 은사로서 믿음 소망 사랑이 주어진다는 거예요. 이건 영원하다는 거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믿음 소망 사랑은 함께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뭔 뜻이냐 하면 믿음 소망 그 전부 다 십자가 사랑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13장 이야기지만 2장 이야기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을 때 이미 거기서 믿음 소망 사랑은 덤으로 다 우리한테 주게 돼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주님이 십자가 죽으시고 가만히 계신 게 아니고 거기서 뭐가 오느냐 하면 ‘저 인간을 자기가 십자가를 증거 하기 위해서 주께서 빨대가 나와서 콱 찍어서 작살로 감아버리면 질질 끌려오게 돼 있잖아요. 그 질질 끄는 그것을 은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믿음으로 질질 끌고 다니고 소망으로 끌어당기고 사랑으로 끌어당겨서 결국은 뭐냐 ’누구야? 믿음 소망 사랑으로 끄는 자가 누구야?‘ 해서 보니까 십자가! ’아! 주님이 나한테 뭘 던졌구나.‘ 빨대가 등에 턱 붙이니까 빨대가 아무리 떼어 내려 해도 이게 안 떨어지네요. 이걸 칼빈이 불가항력 능력 은혜라고 했는데 사실은 어거스틴이 먼저 이야기했지만, 이 불가항력, 이게 떨어지려 해도 안 떨어져요.

여러분, 김일성처럼 뒤에 혹 난 사람 있잖아요. 혹을 자기가 가위가지고 자르면 혹 자르는 순간 자기가 죽어요. 툭 튀어나왔는데 이걸 자를 수도 없고 떼려하니까 자기가 죽고, 살은 채로 혹 붙이고 있어야 되죠. 완전히 혹부리 영감 돼야죠. 피부암이죠. 주님이 피부암 같아. 정상 세포가 아니야. 이거는 허락도 없이 이건 온 몸에 암이 퍼지네. 참 주님이 온 몸에 퍼져버려요. 참 암 발병 됐으면 좋겠어요. 좀 주님의 세포가 전이 됐으면 좋겠어요. 내 피에 주님 피가 흐르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면 나는 그냥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거. 그냥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거. 고스톱에서 마치 똥 피 같은 존재, 들은풍월에 의하면 그렇답니다. 쓸데없는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존재, 왜냐 하면 광을 빛내기 위해서 보조로 들어가는 것, 꽃을 빛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풀잎으로, 같은 유니폼 입고 누구 자랑할 수 없는 꽃을 보위하고 꽃 주위에서 받쳐주는 역할, 결국은 우리가 저지할 수 없는 우리가 어떻게 치료해도 안 되는 주님의 암 세포가 퍼져서 날로 주님으로 온통 점령당하는, 참 그런 세월이기를 참 원합니다.

그래서 여기 갈라디아서 4장 보면 둘 사이를 우리가 어떻게 구분하는가? 거기 보니까 핍박이란 말을 하죠. 수요일 날 제가 언급했거든요. 핍박, 어느 쪽이 어느 쪽을 핍박한다? 육체로 난 자식들이 누굴 핍박해요? 성령으로 난 자를 핍박하는데 그 핍박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 십자가 복음 때문에! 죄 용서 이미 받았다는 그게 듣기 싫어서.

그러니까 가만히 보면 남이 우리를 핍박한다고 하지만 하루 일과를 아침에 눈뜨고 생각해 보면 남이 핍박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내가 나를 핍박 많이 해요. ‘예수 믿고 사는 꼬라지하고는’ 자기 사는 게 너무나 허접스러워 가지고 ‘아휴, 예수 믿어도 도와주지도 않고 이게 사는 건가? 이게, 예수 안 믿고 잘 사는 게 낫지. 이것도 사는 거라고.’ 가만히 보니까 내가, 내 육신이 내 성령을 핍박을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아요. 핍박보다 구박을 해요.

그러니까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탄식하는 거 같아요. ‘고만 나 좀 때려.’ 이런 식으로. ‘어이 인간아, 나 예수인데 고만 구박해라.’ 맨날 우리는 우리를,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그렇게 구박하고 미워하고 침해 걸린 노인 취급하고 예수 믿어도 아무것도 무능력하고 기도해도 응답도 안 되고, 아이쿠, 내 쫓아도 나가지도 않고 귀신처럼.‘ 이런 식으로 우리가 구박을 많이 하는데 죽을 때 돼 보세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구박한다고 안 떠나신 그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택한 백성 아니면 벌써 떠났어요.

한번 정리하게 되면 짐승이란 개념은 2층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인자의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짐승으로 보이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암 세포가 있으면 우리도 세상 볼 때 어떻게 봐야 됩니까? 다니엘 같이 봐야 되죠. ‘이 짐승아, 아이쿠, 이 짐승 같은’ 그리고 이 짐승은 팽창합니다. 날이 갈수록 짐승이 세요. 더 강력해져요. 어지간하면 십자가에 의해 꼬시키는 법인데 갈수록 사람들이 완악해져서 어떻게 십자가로 꼬시킨다는 말은 어패가 있지만 어쨌든 아무리 설득해도 이제는 먹히지도 않아요. 갈수록 강퍅하고 완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봉투에 5만원 넣고 하면 교회 한 번, 두 번 양심껏 나오는데 5만원 넣어도 안 나올 정도가 돼 버렸으니까. 거지가 ‘5만원 받고는 예수 안 믿는다.‘ 이럴 정도로 갈수록 완악해졌고 완악의 도를 키운 것이 바로 교회 장사가 사람들을 그렇게 키운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순수함도 없고 어린애 같은 순박함도 없고 전부 다 얍삽해져 버렸어요. 전부 다 요령꾼, 복음을 안다는 요령꾼만 남아있는 어린애 같이 순박한 맛이 없어요. 복음 믿고 어떤 이익이나 빼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게 순박입니까? 주님 등쳐먹는 거죠. 그만큼 복음을 가로막는 짐승의 전략이 갈수록 날로 진화한다 할까요? 발달했어요.

딱 깨놓고 이야기해서 ‘목사님 십자가 복음 아는 게 뭡니까?’ 라고 하면 이겁니다. ‘주여 나는 뭘 해도 죄인이기 때문에 이 죄인을 주께서 늘 사랑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더 이상 뭘 바란다는 자체가 나쁜 놈 이예요. 더 이상 뭘 바래요? 나쁜 짓 했으면 천벌 받아야지, 천벌 받고 있지만, 나쁜 짓 했으면 이 땅에서 천벌 받아야지, 뭘 더 원해요? 그런 순박함이 좀 이렇게 약간 장시간 유지됐으면 좋겠는데. 우리 육신적인 짐승적인 본성이 그걸 참 굉장히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235페이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짐승이라고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짐승을 보면서 ‘야, 이게 내 모습이네. 요거 짐승이라고 우리가 욕하지만 사실 욕할 입장도 안 되고 딱 매일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짐승이 느부갓네살이 대표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그 보여주는 게 뭐냐 하면 이왕 이 세상에 눈 뜨고 1층에서 사는 거, 이왕이면 단결해서 힘 모아서 사세. 이게 짐승의 전략입니다. 목표고 계획입니다. 모든 목표요, 목적 이예요. 목표와 목적이 다른 점은 목표라 하는 것은 뚝 떨어져 저쪽에 있는 산등성이에 있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하죠. 그때 깃발 같은 걸 목표라 한다면 목적은 그 깃발을 그냥 쳐다보면 됩니까? 안 되잖아요. 그 목적을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향을 목적이라 하는 겁니다. 목적으로 이끄는 삶이라 하잖아요. 목적과 목표가 있다는 자체가 곧 짐승이란 뜻 이예요. 이 땅에서.

자, 우리가 눈을 뜨면 오늘 할 과제가 뭔지, 특히 회사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람들 모아놓고 하거든요. 현장 노가다 감독이 뭐라 합니까? ‘여기 일꾼들 와 보세요. 오늘은 3층 콘크리트까지 반드시 해 지더라도 하고 가셔야 됩니다. 오늘 안 하면 일당 없습니다.’ 반드시 그날 과제를 주잖아요. 매일 회사에서 하는 일이 아침에 일일 보고가 전부 다 그거거든요. 그게 바로 짐승입니다.

예수님 하루 일과 있었습니까? 주님의 목적과 목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주의 뜻대로 죽느냐? 제자들은 목적이 따로 있었어요. 예수님을 이용해서 어떻게 이 땅에서 새롭게 세력화 시키느냐, 새로운 종교로 새롭게 세력화 시키느냐. 이미 하늘나라 간다 하니까. 이 땅에서 자기들 힘을 모을 수 있느냐.

스승이란 말은 뭐냐 하면 우리의 힘의 구심점이란 뜻이거든요. 랍비, 우리는 그의 똘마니라도 좋다는 거예요. 이건 짐승 행세의 되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 있는 한 우리는 목적과 목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거기에 우리는 하루 온통 거기다 정신 씁니다. 우리는 그걸 아주 정상적인 삶이라고 간주하죠.

암세포는 우리에게 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2층에서 내려온 예수님이라는 암세포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게 되면 우리는 이미 암 환자가 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라는 암에 안 걸렸으면 진짜 우리는 죽어요. 지옥 가면. 그런데 이 암세포가 있음으로서 우리가 목적과 목표를 이루면서도 ‘그래, 이것은 내 뜻이고 사실은 주의 뜻은 따로 있어.’ 이 땅에서 죄인으로 사는데 십자가 아니면 구원 못 받는다는 죄인의 괴수인 것을 증거 하는 그것이 이 땅에서 주님의 목표거든요. 그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육신적인 속성을 매일같이 우리는 속 시원하게 켕기지 말고 마음껏 발휘돼야 되죠.

어제 수요일 날 제가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점 했죠. 동양문명은 그저 죄를 숨기는 게 목적 이예요. 점잖은 체 하고 굉장히 도덕적으로 전부 다 인자, 선비, 그걸로 인해서 아주 도덕적인 체제를 이루는 나라인 반면에, 서양에서는 성경 말씀을 그래도 보니까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자기 죄를 까발리는 그런 식의 문화에요. 자기 자신이 솔직하죠. 그런데 동양은 ‘이리 오너라.’ 하고 이렇게 점잖 빼는 거. 한국은 어떻습니까? 동양에 속하죠. 동양에 속하기 때문에 교회도 선비 되면 성화 받은 줄 알고 있어요. 전부 다 점잖다 하는 그것. 사실은 위선자인데, 거기서 성령 안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점잖은 체 하는 거예요. 아, 정말 난치병 이예요. 술 먹으면 개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술 깨면 자기가 선비입네. 교양인인양 행세하는 꼴 보면 가관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제가 지하철타고 오다 보니까 65쯤 되는 아주 애매한 나이, 할머니도 아닌 것이 아줌마도 아닌 것이, 그 사람이 계속해서 화장을 막 해요. 아! 저렇게 화장발해도 화장하는 순간에도 찰칵찰칵 죽어가고 있는데, 수분이 빠지고 있는데, 결국 게 껍데기에다 화장을 하는. 그 모습이 우리 모습 같아요. 이미 망해가면서도 살려고 계속 화장하는.

다니엘이 반란을 일으켰습니까? ‘이 짐승의 나라 물렀거라.’ 이렇게 했습니까? 왜 다니엘이 혁명이나 반란을 안 일으키느냐 하면 대안이 없습니다. 그게 정답 이예요. 다니엘이 ‘야, 우리끼리 돈 모아서 새로운 나라 만드세.’ ‘웃기고 있네.’ 다니엘 자기도 마찬가지거든요. 허락된 것은 짐승의 나라고, 나도 마찬가지고 다만 주께서 언약을 줄 때만 주께서 활용할 뿐이지, 언약 아는 내가 나선다고 해서 그 나라 언약 나라 되는 거 결코 아닙니다.

인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보고 이 짐승의 나라에 짐승과 함께 더불어 죽으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니엘 12장에 나오는 부활이 있어요. 우리는 죽어 마땅하기 때문에 그냥 죽어버리세요. 사는 것은 주님의 몫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 믿고 살려고 하지 마세요. 이거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자기 주제파악도 안 된 인간 이예요. 교회 잘 다녀서 살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교회 잘 다니는 이유는 내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진즉에 죽어야 돼요. 그걸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짐승의 나라를 2층에서 보면 뭐가 정지됐냐 하면 흐름이 사실은 정지된 흐름 이예요. 정지된 흐름이라는 게 상당히 말 자체가 모순되잖아요. 하얀 그림자,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무슨 그림자가 시커멓지 하얀 그림자가 어디 있어요? 노래 가사에 이런 게 있어요. 아름다운 죄, 죄가 뭐가 아름답습니까? 이건 누가 썼느냐 하면 양인자씨가 쓴 가사에 나오거든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하는데 그 겨울의 찻집이라는 노래에 나오는데.

정지된 흐름이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자기 딴아 세월 흘러간다 하지만 2층에서 보면 도토리 키 재기에요. 물이 흘러도 맨 흘러가도 물이잖아요. H₂O 아닙니까? 이걸 파라메니데스가 그걸 이야기한다고요. 흘러봤자 변화돼 봐야 변화만 변화되지, 존재는 변화된 적이 없다는 것이 파라메르데스 철학가 주장입니다. BC 5세기경에. 달라 봐야 맨 그 인간인데요 뭐. 웃고 울고 해봐야 웃을 때 그 인간 다르고 울 때 그 인간 다르고 한 게 아니고 똑같은 인간이거든요. 존재만 영원할 뿐이지 변화는 그냥 변화일 뿐이다.

그런데 헤라크레토스는 반대로 이야기하죠. 존재는 없고 변화된 것뿐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마치 불과 같아서. 불이 바람이 불면 이거는 까불이라. 요래 불면 요래 흔들리고 저래 불면 저래 흔들리고. 이 세상은 불 같이 변화 자체뿐이지 존재라는 건 없다. 그 존재가 다 어디 딱 잡아서 도전할 게 없다. 왜 그 순간에 된 변화가 존재라고 착각할 뿐이다. 하는 그러한 이성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뭐밖에 없냐 하면 죄밖에 없어요. 존재도 아니고 흐름도 아니고 그냥 죄의 증거물들이 죄의 근원 죄에 따라서 촛불처럼 그때, 그때 부는 죄에 따라서 흔들릴 뿐이죠. 그럼 주님은 뭐만 파악하면 되느냐 하면 죄만 파악하면 되는 겁니다.

욥기 1장에 보면 욥을 2층에서 아래층의 욥을 쳐다봅니다. 2층에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 계시고 또 옆에 사단이 있죠. 사단이 시간이 없는 동네에서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하니까 하나님이 ‘다를 걸’ 자, 욥이 다르다는 것은 욥 본인이 오해했어요. ‘그래, 난 달라.’ 이거는 아니에요. 하나님이 다르다 해야지. ‘그래 난 괜찮은 인간이야.’ 이 소리 했다가 혼나죠. 똑 같아요. 원망하기는 똑같아요.

진짜 다른 것은 욥 스스로 ‘난 달라’ 한다고 해서 다른 게 아니고 주께서 다르게 사용했죠. 친구를 위하여 대속한 삶은 주님의 솜씨지 욥 본인의 노력이나 성과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이지, 내가 다르게 행동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주님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다르게 사용할 뿐이지, 내가 다르게 살아간다고 해서 ‘이제 너는 특이한 존재야.’ 라고 할 게 없습니다. 그게 236 페이지까지 결론입니다.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은 언젠가는 정지된 의미가 있을 뿐이고, 그 정지된 의미가 그때그때마다 다른 시간들을 내놓습니다. 정지된 흐름을 시간으로 표현하게 되면 바로 7이라는 숫자, 또는 70, 또는 1.

다니엘은 이 숫자 외는 없어요. 1이레, 그 다음에 70이레, 70이레를 본다면 7과 1, 그 중간에 있는 62이레. 느부갓네살이 7년 동안 뭐 됐다? 짐승 됐다. 이 7. 그래서 부가된 게 하나 나온다면 네 가지 짐승, 4라 하는 것은 동서남북을 의미한다 했죠. 4라는 숫자를 쓰는 겁니다. 236페이지까지 한 거예요.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층이 있다. 1층이 있고 2층이 있다. 2층은 인자의 나라, 아래층은 그냥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짐승의 나라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짐승에 속했다는 것을 생각을 전혀 못하고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지금도 이 앞에 담배 피고 술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2층에서 내려다보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의 존재가 그냥 변화될 뿐이지 짐승 속성은 아무리 달라져도 동일하게 움직이는 거죠. 짐승의 속성은 갈라디아서 4장과 비교해 보니까 그건 육체에 속한 것이고 육체에 속한 것은 아무리 뚫어도 성령으로 2층으로 올라올 수가 없습니다. 율법으로 났기 때문에.

그러면 너는 어떻게 남들은 못 온다면서 너는 어떻게 통과 했는가?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과 더불어서, 홀로 뚫을 수는 없고 그리스도한테 죽음에 휩쓸리다 보니까 그리스도가 사흘 만에 뚫었으니까 같이 뚫려서 성령이란 세계 속에 속하니까 우리는 진작 죽은 자 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가 되는 거예요. 죄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가 없고 오히려 의인이 되는 그러한 신분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묻죠. 그렇다면 빨리 우리를 데려가 주세요. 고만 힘들어 못살겠습니다. 남의 동네에 왜 삽니까? 하는데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라고 하면서 내가 너희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진리의 열매가 있다는 것을 남겨두기 위해서. 너희의 열매가 아니고 진리, 예수님이 진리니까 진리의 열매. 거룩의 씨앗이 아직 이 땅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조금 고생해라.‘ 우리 고생 좀 합시다. 제대하면 좋겠는데 주님의 계획이 있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종자가 이 세상과 더불어 사는 고생. 예수님처럼 하늘에 속했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아니했지만 같이 어울려서 살아야 되는 팔자, 고거 감수해야 됩니다. 여자가 아기 낳을 때 고통 하지만 아기 낳고 난 뒤에는 속 시원하죠. 애가 안 낳아 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 보면 나오데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임신했으면 고통스럽지만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그때는 시원하게 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도 이 땅에서 하늘에 속했지만 인자에 속했지만 다니엘 고생 많이 했어요. 혁명 일으킨 건 아닙니다. 자기가 반란 일으킬 하등 이유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무기가 뭡니까? 일체 무기가 없었어요. 있다면 죽어도 사는 것, 자기가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다니엘 세 친구도 마찬가지로 죽어도 사는 것. 죽어도 영생을 얻고 사는 그 팔자가 다니엘 팔자고 세 친구 팔자고 오늘날 우리의 팔자가 됩니다.

제가 이정도 한다고 믿어지는 건 아니고요. 주께서 여러분한테 수시로 여러분의 일상을 통해서 그걸 경험케 하실 거예요. 아! 이 경험이 그때 이 목사가 이야기한 거로구나. 아휴, 죄 지어서 어떡하지? 하다가 성령이 오게 되면 ‘원래부터 죄지은 건데. 내가 죄 지었다고 고민한다는 것은 뭔가 아직도 나의 의와 나의 자존심과 나의 그 가치를 지탱하려고. 주님의 십자가를 사수할 증인이 내 자존심, 내 잘남을 사수하려는 또 이런 짓을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될 때 그게 바로 승리입니다. 그 승리는 성령 받은 사람에게 주신 혜택이기 때문에 아무나 그런 게 오는 게 아니고 ’바보야, 바보야, 내가 이런 자존심을 지킬 이유도 없는데 쓸데없이 왜 사수하려고 했었지? 그래,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의 모든 번민이, 부처가 그렇게 굶어가면서 했던 그 번민이 순식간에 날라 가 버렸어요. ’아니, 죄인이 의인되려고, 죄인 안 되려고 하는 자체가 마귀의 시험인 것을, 아휴, 내가 한 순간 속았네. 그래요. 주님 죄인입니다.‘ 하면 주님이 옆에 있다가 ’네가 바로 의인이야.‘라고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판정을 또 다시 우리가 받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5번, 『70이레의 의미』 봅시다. 주석가들은 70이레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236 페이지 보면 최 만수, 237 페이지 칼빈, 그 밑에 카일, 류폴드, 우리 신학생들은 알아요. 대단한 신학자들 이예요. 몽고메리, 포르튀우스, 헹스텐베르그, 유명한 독일의 구수 학 해설 첨가한 사람입니다. 하젤, 유명한 주석가죠. 에드워드 영, 야! 이건 총신 합신, 장신 엎어집니다. 이건 보수 중에서 최고의 신학자인데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자인가 그럴 거예요. 최 영헌, 이건 장신의 주석가인가 그렇고.

그 다음에 238 페이지 여기는 유명한 간하배, 이 사람은 미국 사람인데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어요. 그러니까 한 뚝배기 하실래요? 그 사람같이 한국에 기여한 외국 사람 이예요.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연예인 있어요. 국제 변호사 있는데 같이 간하베 이 사람이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국적을 바꾼 사람인데 간씨에요. 총신의 대표적인 신학자 박 형동, 박 윤선과 그 정도 견준다고 보면 돼요. 또 이 희락도 있는데 다 엉터리에요.

이런 사람들을 숭배하는 차원에서 개혁신학교 학회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서 이런 사람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화를 안 낼 수가 없어요. 이 논문 발표에 화를 안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사람들을 만약에 친다면 곧 자기 자신을 치는 거예요. 그럼 저는 왜 이런 사람들을 거론했느냐, 자, 이 사람들을 치겠다. 할 때 당신들이 진짜 말씀에, 진짜 복음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람들을 치는 그 기준에 대해서 하자 있고 문제 있거든 저한테 이야기해보세요. 라고 저는 그러한 취지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그래서 그걸 치는 기준을 치려고 하니까 그들이 알아야 치지, 그들은 여기에 푹 빠져있는데,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자체를 칠 때 그들은 답변할 수가 없죠.

여러분도 여기서 교재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처음에 209 페이지 읽어볼게요. 『전통적인 신학과 해석 방법은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류 없는 해석력이 당연히 갖추어져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성경에 접근을 시도한 것이었다. 설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오류를 유발하는 의도로 주실 리가 없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요게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주신단다. 그래 우리가 해석 잘하면 오류가 없는 해석을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것이 오류라고 내가 지금 초반에 깔아놨다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주시기만 하시면 우리가 바르게 해석하겠습니다.’라는 그것이 죄라고 지적하기 위해서 말씀을 줬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학자들은 말씀 주신 것 가지고 우리는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잘 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제대로 진리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신학자라고 자처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236~238 페이지에서 그런 주장들을 쫙 깔은 거예요. 한번 당신들 이렇게 신봉하는 이 사람들 내가 전부 다 치겠습니다. 라고 나온 거예요. 그들은 여기에 대해서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그 다음 말이 나에게서 어떤 소리가 나오는가. 이제는 잘못하게 되면 나를 공격하겠다고 준비하겠죠. 그러면 그 논문 발표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 거예요.

꾸벅꾸벅 졸면서 하든지 말든지 ‘난 박사니까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다 안다.’ 하다가 ‘치겠다.’ 나오니까 그들은 바짝 긴장해서 조는 사람도 없이 깨어 있었던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이겁니다. 238 페이지 『이 땅의 역사적 조건을 계시 이해의 바탕으로 삼는 것은 신의 개입을 일종의 ‘초기 조건’으로 생각한 이신론적 전통에서 세계는 정확히 시계태엽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파악하는 것과 같다. 지속을 시차적 안목으로 잘라내는 것은 사실상 평균치를 일방적으로 추정하여 포괄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시도일 뿐이다.』

여러분들이 박사님들입니다. 이 이야기할 때 이게 무슨 뜻인지를 그들이 방금 읽은 문제의 뜻을 알아내겠어요? 요것을 제가 그림으로 그리면 ‘아! 그 이야기구나.’ 하고 여러분들이 단박에 알아봅니다. 역사가 흐름이잖아요. 2층에서 보면 정지된 흐름이고 아래층에서 보면 점점 흘러가잖아요. 흘러가는데 우리 인간들이 오류가 있는데 있으면서 없는 척 하는 거예요. 자 흐름을 잘랐습니다. 흐름을 딱 잘라버리면 여기 A라는 시작점이 있고 여기 B를 자르면 요 흐름을 없애버리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이 흐름을 평균으로 만들어 놓고 이 안에는 과자 속의 아이스크림처럼 요 안에는 이게 동결돼 버리죠. 동결돼 버리면 요기서 요기까지의 의미가 차이가 나서 변화했는데 이렇게 잘라버리면 일괄적으로 동일한 의미라고 누가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시작점이 있기 때문에 시작점 따라서 그대로 간다는 것은 이게 인식론적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시작하게 되면 이게 자동적으로 시계태엽 감아 놓으면 이건 앞에 번개 치던 천둥 치던 집에 있는 안방에 있는 그 시계는 끄떡도 없이 번개가 치든 국정원 누가 뭐라 하던지 관계없이 시계태엽은 돌아가잖아요. 삼성 라이온스 우승해도 집에 있는 시계는 우승했다고 아이 좋아라 해서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 싫어라 해서 더 늦게 가는 것도 아니죠.

인간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딱 틀을 만들어 놓고 인간 본인이 세상을 보는 신이니까 자기가 태엽을 감아놓고 반드시 어쨌든 간에 ‘무조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면 무조건 그렇게 돼 간다고 일방적으로 그 해석을 자기가 수납해 버려요. 이거 반칙입니다.

자, 236 페이지 보면 최 만수가 나오고 최 만수가 하는 말이 『70이레가 시작하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씀을 말한다.』그 다음에 237페이지『칼빈은 처음 7이레를 49(7X7)년으로 여겨서 고레스의 칙령에서부터 다리오 6년까지로 보았다.』이렇게 (A->B) 이렇게 본 거예요. 그러면 이쪽의 흐름들이 있는데 칼빈은 이것을 무시하고 동결시켜 놓은 거예요. 이게 바로 역사적 해석의 문제점이라는 거예요. 평균치를 만들어서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238 페이지 다시 봅시다.『이 중에 어떤 견해가 ‘역사적’으로 딱 떨어지는가 하는 것을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 땅의 역사적 조건을 계시 이해의 바탕으로 삼는 것은, 신의 개입을 일종의 ‘초기 조건’으로 생각한 이신론(이성으로 따져서 신론을 계산하는)적 전통에서 세계는 정확히 시계태엽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파악하는 것과 같다. 지속을 시차적 안목으로 잘라내는 것은 사실상 평균치를 일방적으로 추정하여 포괄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시도일 뿐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딸이 늦게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너는 9시부터 10시까지 뭐했느냐?’ 하는 거예요. 9시부터 10시까지 누가 잘랐어요?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잘랐죠. 하지만 그 딸은 9시부터 10시까지 온갖 일을 다 했는데 아버지는 다 무시하고 ‘딴 소리 하지 마. 9시부터 10시까지 평균해서 뭐했어?’ 이렇게 묻는 거예요. 그렇게 묻는 것은 손수 9시부터 10시까지 경험했던 그 경험자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그걸 쳐다보는 일방적인 아버지 생각이죠.

하나님께서 이 사이에 있던 사건을 하나님의 생각은 따로 있는데 인간들은 이걸 잘라서 인간 세상을 막무가내로 거기 무조건 하나님보고 ‘내 생각, 내 해석 맞죠?’ 하고 닦달 내는 것밖에 안 된다 말이죠. 그게 어떻게 올바른 해석입니까? 잘못된 거죠. 자기 생각이죠.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가락-70이레 논문(층)131003-27강a -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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