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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70이레 논문(인자의 나라)130912-26강a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다니엘

가락-70이레 논문(인자의 나라)130912-26강a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70이레 논문(인자의 나라)130912-26강a -이 근호 목사

233페이지 하고 234페이지 보면 아! 중요한 개념이 연달아 죽죽 나와요. 영혼 나오죠. 하나님의 형상 나오죠. 죽은 자의 부활 나오죠. 인자의 나라 나오죠. 234페이지에 4개나 나오는데 그전에 233페이지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233페이지 내용은 사람이 심판 받게 되면 둘 중에 ①죽음입니까? ②짐승입니까? 사람이 심판받게 되면 죽는 거예요? 짐승 되는 거예요?

창세기에는 선악과 따먹으면 죽는다 했죠. 그런데 죽으면 그냥 하나님께서 ‘아담아, 선악과 따먹었지? 둘 다 이리와, 콱 죽어.’ 이러면 그 다음부터 역사가 없어져 버립니다. 끊어져요.

그런데 다니엘에서 느부갓네살은 그냥 죽는 게 아니고 뭐로 죽습니까? 짐승으로 죽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듯이 ‘콱 죽어라.’ ‘예, 억, 죽는다.’ 이것이 죽음의 다가 아니라는 거죠. 죽음의 내용이 다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죽일 때도 그냥 죽이면 자살하는 거와 똑같이 되니까 ‘에이, 죽어라. 없어져라.’ 이게 아니고 충분히 이용해요.

하나님은 자기 심판을 우리를 죽이면서도 충분히 이용하는데 뭐로 이용하느냐 하면 ‘죽어라.’ 해놓고 뭐로 드러내느냐 하면 짐승으로 드러나게끔 아담을 쪼개서 죽입니다. 어떻게 쪼개느냐 하면 아담이 그냥 죽으면 안 되고 아담이 자식을 낳고 죽게 만들고 낳은 자식은 아담의 바통, 그걸 릴레이, 바통을 이어 받아서 아담의 그 다음 자식이 아담의 죄를 이어 받아서 그냥 죽으면 안 돼요. 자식새끼 까고 죽고, 잠시 새끼 까고 가실게요. 새끼 까고 죽고 그 다음에 그 자식이 새끼 까고 죽고.

그러면 이 역사에 조명 시설이 있어서 스트라이트에 비추면 무대에 창세기 5장처럼 사람들이 죽고 하면 조명 기사가 조명을 비출 때 이미 죽은 사람한테 조명을 안 비춰요. 왜냐 하면 ‘새끼 까고 가실게요.‘ 해서 새끼를 깠으니까 거기서 톡 튀어나온 것, 러시아 인형 알죠? 인형 까면 또 인형 나오고 또 까면 또 인형 나오듯이 그만큼 속을 향하여 깊숙이 인간 속에 진짜 인간 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분명히 이거는 뭐가 있다. 선악과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 대들었다 이 말은 분명히 근본적인 하나님의 원수가 분명히 들어있다. ’빨리 나와. 정체. 숨어도 소용없어. 내가 찾아낼 거야.‘

서해안의 갯벌 있죠? 그 갯벌에 보면 길쭉한 맛 조개 있잖아요. ‘있네.’ 하고 손으로 파고 들어가면 이것들이 내미는 게 아니고 쑥 들어가 버려요.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소금을 가지고 구멍에 소금을 뿌리면 지가 짜서 답답한지는 모르지만 고개 내밀 때 그때 쏙 끄집어내는 겁니다.

인간의 내부에 뭐가 들어있는지 소금치는 그 소금의 기름이 뭐냐 하면 언약 이예요. 언약이 없으면 다 좋은 이웃 이예요. 이사 왔다고 떡 돌리고 다 절에 가고 교회 가도 그런 건 다 무시되고 전부 다 같은 동네에 일한다 하면 전부 다 팔 걷어붙이고 협조가 잘 돼요. 다 같이 서로서로 상부상조해야 좋은 관계라 하는 것은 이건 상식적으로 알잖아요.

그런데 그럴 때 종교 이야기, 이거 반칙 이예요. 이거 넣어버리면 서해안 갯벌에 소금 뿌리는 거와 똑같기 때문에 이건 안 되거든요. 특히 추석이라든지 명절 때 고스톱도 좋고 다 좋고 자기 애 공부 잘하는 거 자랑하는 건 좋은데 슬슬 이야기 나오다 보면 두 가지가 문제가 되는데, 하나는 정치 이야기, 국정원 이야기하고 또 하나는 종교 이야기해보면 나갈 때 동서하고 싸워서 안 좋게 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정치 이야기하고 종교 이야기 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그때는 그걸 위하여 연예 인들이 있는 거예요. 누가 이혼했더라. 누가 갈라섰더라. 오로라 공주가 왔다 갔다 했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예요.

종교 이야기, 언약 이야기를 해버리면 이게 자기의 본색을 드러나요. 숨겨진 것들, 자기 본색이 슬그머니 표면에 올라옵니다. 그렇다면 조명시설이 어디를 비추겠어요? 죽은 자가 아니고 지금 살아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다 좋은 사람 이예요. 이 길거리 있는 사람들 안 건드리면 다 좋은 사람 이예요.

제가 만약 신학교 신학 교수라면 신학 시험문제에 이런 걸 내겠어요. 신학이 무엇이냐? 그런 거 말고 실제적인 것을 내겠어요. 어떤 거냐 하면 내가 자동차 펑크가 났을 때 침례교인도 그냥 지나가고 장로교인도 그냥 지나가는데 여호와 증인이 고쳐줬다면 그건 하나님의 일일까요? 아닐까요. 그런 문제를 내는 거예요. 답변하기 참 곤란해요.

여호와 증인이 고쳐줬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게 되고, 그럼 여호와 증인도 하나님이 쓰신바 종이 된다는 말이 되고, 거기에 비해서 이렇게 어려울 때 안 도와준 침례교인과 장로교인 그 사람들은 날라리 엉터리가 되느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려울 때 너무나 감동스럽게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모든 도와줄 때 나왔던 그 사고방식에 대해서 내가 동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동의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호와 증인이 하는 김밥천국 있잖아요. 그런데 마침 돈이 떨어졌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그런데 가서 ‘내가 배고픈데 그냥 줄 수 있습니까?’ 식당 여러 군데 다녔는데 전부 다 신고한다 해서 다 쫓아내 버리고 김밥천국 가니까 진짜 김밥을 주더라. ‘아유, 돈 없어도 나중에 생기면 주시오.‘ 하고 그냥 주더라. 할 때 그들이 행동을 그렇게 할 때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양심에서 나온 건 아니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거든요.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그 하나님에 대해서 동감할 수 있느냐 이 말이죠. ①동감한다? ②동감하지 않는다. 묻습니다. 동감 못하죠.

그러면 동감 못한다고 동의를 하십니다. 그 다음 문제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교인들한테 착한 일을 해서 일단 사람을 전도를 해야 그 다음에 복음을 듣습니다. 했을 때 그게 주의 일입니까? 주의 일이 아닙니까? 방금 동의 안 한다 했는데. 그게 하나님 시킨 일이예요? 아니에요? 착한 일 해서 일단 ‘야, 예수 믿는 사람 착해. 저쪽에 있는 다른 데보다 훨씬 더 착해. 철야 가는 사람보다 착해. 이 착한 사람이니까 나도 착한 사람 돼 봐야지.’ 이렇게 교회 왔을 때 그게 주의 일이냐, 아니냐 이 말이죠. 이것도 아니어야 하잖아요. 앞의 그것이 아니면 이것도 아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교단이 하게 되면 주의 일이 아니고 자기 교회서 하면 주의 일이라고 우기는 그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떨어진 결과입니까? 어디서 온 거예요? 그게 뭐냐, 일관성입니다. 일관성이 없이 자기가 속해 있는 것을 그걸 정당화하는 쪽으로 그렇게 성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참 곤란한 거죠.

그래서 계속 보게 되면 다시 이야기할게요. 아담이 자식 낳고 죽고 자식 낳고 죽습니다. 그러면 조명시설은 어디로 간다고요? 아담은 사라지고 현재 아담이 낳은 자식에게 조명시설이 갈 때 그 조명이 한결같지 않고 그 조명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서해안 갯벌의 소금 투여해서 숨어있는 조개를 찾아내듯이 잡아내듯이 여기에 언약이 투입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런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 있잖아요. 5장 옆에 6장 나오잖아요. 6장 끝에 보면 노아에게 노아언약이 주어지잖아요.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7장, 8장에 주로 노아언약 나오죠. 노아언약이 뭐냐, 방주 만들라, 그 이야기에요.

방주 만들라 했을 때 앞에 있는 창세기 5장, 4장, 3장, 이건 결국은 그냥 이걸 단독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 질문 던집니다. 이걸 단독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이건 뭐냐, 다음 차기에 언약이 나올 수 있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이죠.

아브라함이 누굴 보기를 원했다? 예수님 보기를 원했는데 봤다고 했잖아요. 아브라함의 존재 의미가 뭐냐? ‘나는 나다.’ 이러면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는 거죠.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어떤 걸 내다보면서 믿음 언약을 받은 거예요. 아브라함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준비과장이라 말이죠.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게 뭐냐 하면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던져줬고, 중간에 있는 모세언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아무리 해도 인간들의 속성상 ‘에이그, 그건 너무 염치없지. 아무것도 행한 게 없는데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뭔가 내가 내 구원하는데 뭔가 실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한 게 있어야 그걸 근거로 구원받지, 아무 근거도 없이 내가 덜렁 구원? 이건 말도 안 돼, 터무니없어.’라는 자들이 분명히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중간에 430년 후에 모세 언약을 통해서 율법을 준 겁니다. 율법을 줬을 때 아니나 다를까 자기가 감추고 있던 실상이 나왔어요. ‘역시 하나님, 쟤보다 내가 율법을 더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구원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라는 이런 되도 않은 소리가 드디어 슬슬 나오기 시작하다가 이스라엘 멸망하고 만 거예요.

갈라디아서에서 아브라함은 뭐라 했습니까? 율법 없을 때도 구원받았다. 왜, 그냥 믿음으로, 장차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이 말이죠. 우리는 이미 오실 분이라는 그분이 이미 왔다는 사실을 십자가를 통해서 믿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브라함과 같이 그 나라에 합류가 되는 겁니다.

구원받은 근거가 뭔지 알아요? ‘저요? 저 안 믿습니다.’ 이게 구원받은 근거에요. 모든 사람은 누굴 믿습니까? 따지고, 따지고 보면 자기를 믿잖아요.

이번에 교정이 출판사에서 들어갔을 건데 이번에 수련회에서 한 ‘전도서 속의 그리스도’라는 책을 내요. 거기에 서론을 쓰는데 제일 먼저 나온 말이 뭐냐 하면 무의 핵심을 찾는다고 무를 깎아보면 나중에 남는 게 있어요? 없어요? 없죠. 깎다 보면 다 날라 가 버려요. 이게 뭐냐, 전도서 특징이 뭐냐 허무한 거예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이 말은 나? 나를 하나님의 언약의 칼로 한번 깎아보죠. 뭐, 우리가 착하다고요? 우리가 뭔가 고상한 게 있다고요? 자, 한번 깎아 볼까요? 뭐가 남는지. 뭐가 남아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이 이걸 안 거예요. 그 많은 재산, 그 많은 처와 그 많은 자식들, 그 화려한 생활, 주의 언약이 다윗 언약에서 깎아보니까 결국 예루살렘 왕의 자리는 뭐냐 하면 허무를 믿는 자리가 예루살렘 왕 이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이 세상은 전부 다 허무하다는 사실, 전도서는 율법이거든요. 전도서에서 이야기한 것이 이게 농담이 아니고 실제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걸 안 믿는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아까 시작하기 전에 집사님이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했더니만 직원들이 무서워하면서 ‘사장님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한다는 거예요. 지금 직원들이 오해한 것이 뭐냐 이건 내가 하고 안 하고 관계없이 세상 자체는 없다는 거예요. ‘지금은 9월 달이야.’ 이야기 하나 안 하나 9월 달이잖아요.

우리는 새삼스럽게 누굴 납득을 시키고 꼬시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속해 있는 세상을 그냥 나발 부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냥 나발 부는데 저쪽에서 자꾸 꼬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잖아요. 누가 오니까 타조가 자기 얼굴을 모래에 파묻으면 되는 줄 알고 있어요. 자기만 안 보이면 아무 일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어려울 때 술 한 잔 먹으면 해결됩니까? 술 먹어도 부도났을 때 부도나고 술 안 먹어도 부도나고 그런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진짜 알려는 것은 현실이 뭐냐지, 내가 여기서 어떤 실적을 남기고 어떤 업적을 남기느냐, 남한테 뒤지지 않는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건 정말 아니에요.

이미 구원받았기에 십자가의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다시 한 번 낱낱이 훑어보는 겁니다. ‘아,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딴 거로 안 되고 예수님 자기 피로만 우리가 용서가 되는구나. 우리 힘으로서는 용서도 안 되고 구원이 안 되는구나.’ 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성령이 오실 때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에요. 그걸 뭐라 했습니까? 인치심이라 했죠. 얼마 전에 설교할 때 했거든요. 도장을 찍을 때 내 도장 가지고 서류가 백장이면 다 찍잖아요. 찍으면 모양새가 어떻습니까? 똑같죠. 왜, 똑같습니까? 도장이 하나니까. 성령의 인 치심, 집사님을 인치시나 그것 가지고 ‘역시 내 것이 더 좋은데?’ 이게 말이 안 돼요. ‘내 성령이 좋은 성령이고 네 것은 성령이 아닌 것 같아.’ 이게 아니고 성령 받게 되면 공통점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니가 구원받지, 절대로 니 행함이 아니다.‘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말한 게 너무 세게 이야기한 겁니까? 이게 아주 지독하게 센 겁니까? 너무 강해요? 그보다 더 강한 이야기 해볼까요?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뭐 받는다? 저주를 받는다. 사도바울은 어디 가도 강사 할 수 없죠. 그렇게 세게 이야기해서 사도바울 전도 몇 명 했습니까? 사도바울 전도 한 명도 못했어요. 전도는 주님이 하시지 사도바울이 한 게 아니에요. 그럼 우리가 안 하면 돼요. 우리는 전도 하지 말고 ‘전도 하시는 분이 내가 아닙니다.‘를 증거 하면 돼요. 그게 전도에요.

다시 언약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언약을 줬다는 것은 앞 쪽에서 이 역사를 ‘에이 선악과 따먹었으니 에이, 죽어라.’ 라고 그냥 죽이는 게 아닙니다. 활용을 해요. 죽는 거는 맨날 죽는 거고, 죽을 때 죽을지라도 활용을 하는데 무슨 활용이냐 하면 느부갓네살에 대해서 아까 죽음에서 뭐로 간다? 짐승이 뒤에 박혀있던 거예요. 요 짐승을 뽑아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하고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싸울 쨉도 안 됩니다. 무슨 싸움이 되겠어요? 인간이 피조물인데. 고 인간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하는 요물이 그게 자꾸 인간 가면을 쓰고 자기는 뒤에 숨는 거예요. 그 짐승의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표정은 국가입니다. 최종 집단은 국가에요. 헤겔의 철학에서 보니까 절대 정신의 실현은 국가로서 나타난다.

그 말은 뭔 뜻이냐 하면 개인주의는 용납 못한다. 개인주의는 놔두면 무질서해진다. 국가가 모든 걸 잡아야 된다. 이게 헤겔의 최고 절대 이성이 지상에 등장하는 마지막 모양새는 그게 국가적 모양새로 등장한다. 그 이론입니다. 그래서 나찌, 파쇼, 공산당, 그것이 그들의 정당성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거기에 비해서 자유민주주의는 뭡니까? 국가보다 뭐가 우선돼야 된다? 개인이 우선돼야 된다. 이걸 겁내면 사회주의, 개인을 꽉 잡아야 된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되면 무질서 할 게 아니냐? 그 무질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담스미스는 말하기를 간단하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참 재미있는 게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에서 아담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은 시장과 연관되는데 시장에서 왜 국가가 강제로 집어넣으면 인간이 꼼짝 못하지, 이 보이지 않는 손, 안 보이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게 무슨 뭐 하느냐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국가한테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배고픔에 굴복한다는 거예요. 자기 배고픔과 그리고 자기 인기와 그리고 항상 인간은 세상 권력을 탐하는 거예요. 누가? 내가. 이게 어디 나오는 이야깁니까?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지금 짐승 이야기하는 겁니다. 짐승은 앞에 안 나타나요. 뒤에 숨어있어요. 숨어있으면서 우리에게 무슨 본성을 자꾸 유발시키느냐 하면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돼, 돈이 품위야. 돈 없으면 인간 말 종이야.’ 돈 있어야 돼요. 두 번째 사람은 돈 없어도 인기 있으면 견딜 만합니다. 존경을 받으면. 나는 무식한 돼지보다 가난한 철학자가 되겠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돈 없어도 소위 인품 가지고 하는 거, 옛날에 시골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그 지역에서 존경 받으면 퇴직금이 적더라도 그걸로 나는 잘살았다. 한평생 나는 멋있게 살았다.‘ 스스로 자기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근거로 삼는 거예요. 그거 마귀입니다.

세 번째 모든 아름다움은 모든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있는 걸로. 그래서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현세주의라 해요. 대표적인 사람은 볼테르란 사람 이예요. 프랑스의 수필가인데 볼테르에서 종교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딱 깨놓고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게 전부야.’라고 딱 깨놓고 이야기한 사람 이예요. 그 사람이 그렇게 할 때 그 당시 프랑스에서 전부 다 신앙인체 했지만 그 사람이 한번 먼저 입을 여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몰라요. 저 이야기를 누가 진작 이야기해야지. 아, 속이 다 시원하네. 안 보이는 세계, 교회 가서 껌뻑 기죽을 필요 없이 딱 깨놓고 말해서 보이는 게 전부고 믿을 만한 것은 오직 보이는 게 믿을 만하고 현찰이지 어음보다도 역시 손에 보이는 게 최고죠.

학교 수능 고3이나 국정원, 회사 직원 모든 것은 오직 보이는 것 가지고 승부를 내겠다는 거죠. 니가 잘났나, 내가 잘났나. 보이는 것으로 하자. 요걸 배후에서 짐승이, 악마가 그걸 작용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짐승이 다루는 사람 중에 최고의 사람은 국가의 지도자입니다. 왕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는 왕이 없다. 내 나라의 왕은 이 땅에 있다? 없다?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 없으면 왕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장에서 이리, 야시, 늑대, 우~~저 이리 사흘 만에 죽는다. 나도 사흘 만에 죽는다. 나는 선지자로 죽고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 예루살렘에서 선지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죽음은 언약에 의한 죽음이고 너의 죽음은 그냥 죄 져서 죽는 죽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죽인다 해놓고 죽음의 질을 더 깊이 있게 파헤쳐나감으로 말미암아 단순히 죽는다는 것이 헉! 하고 목숨 끊어지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짐승의 앞잡이로서 살아온 것, 그러니까 이 죽음의 벌은 단순히 목숨 끊어지는 게 아니고 유황불에 들어가야 돼요. 유황불에 같이 동참을 해줘야 돼요. 그렇게 좋아서 붙어 다니더니만 내가 한통속으로 영원토록 붙어 다니게 해줄게. 해서 지옥 보내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아담이 죄졌잖아요. 그러니까 아담 후손들은 전부 다 어디가야 됩니까? 당연히 지옥 가야 되기 때문에, 생명나무를 못 따먹게 했기 때문에, 생명나무 못 따먹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만든 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생명나무 못 주겠다는 거예요. 생명나무 안 따먹은 사람은 더 이상 아무리 예쁘게 화장해도 사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이 복 주고 싶은 존재가 아니에요. 그냥 저주받아야 될 존재입니다. 이미 그걸로 굳혀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두 번 다시 ‘용서해 주시고 천국 보내 주시고’ 그런 소리는 해서는 안 되죠. 계약 끝났으니까.

그 다음에 그러면 예수님하고 천국 간 엘리아 하고 모세하고 좋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좋겠다. 그들은 천국 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무슨 빽으로 갔느냐? 그 사람들은 언약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언약의 멤버기 때문에 간 거예요. 아브라함은 오실 예수님을 보고자 했죠. 예수님과 새 언약 완성과 관련된 분이 완전하기 때문에 이쪽이 덩달아서 완전해지는 거예요. 하나님도 의롭고 누구도 의롭고? 하나님은 의로운데 우리는 조금 의롭고, 이러면 안 돼요. 하나님이 의롭고 누구도 의롭고? 우리도 의롭고. 그 관계를 이렇게 도킹! 엮어놓으면 이건 예수 그리스도 외 다른 사람은 여기에 적절치 않습니다.

주님이 왜 왔느냐? 하나님이 의롭고 또 누가 의롭고? 우리도 의롭고, 성도도 의롭고, 이 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우리 식으로 해서는 의롭지 않은가가 충분히 밝혀져야 되겠죠.

그렇게 해서 234 페이지 봅시다. 느부갓네살이 짐승인 이유를 이제 알았죠. 짐승은 한 국가의 왕이라는 것. 한 국가의 왕입니다. 그리고 왕이 뭐 어떤 자기 나라 왕이겠죠. 아니에요. 나중이 되면 바벨론에 통합이 됩니다. 장차 모든 나라는 하나의 바벨론이라는 단수로 통합이 되거든요. 그럼 그걸 다니엘에 보면 바벨론 왕이 느부갓네살이잖아요. 그러면 느부갓네살은 전체 국가를 통합시키는 짐승의 인간적인 이름이라고 보면 되죠. 바벨론 왕도 하나다. 온 세상을 통합한 왕도 하나인데 그 왕 이름은 느부갓네살이 아니고 바로 이름 없는 존재, 악마죠. 악마는 이름이 없습니다. 바알세불이란 것은 인간이 지어낸 이름이고, 악마는 이름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름을 지으려면 같은 인간 존재여야 되는데 영적이기 때문에.

질문: 계명성은요?
계명성은 마귀 아니에요. 이사야에 나오죠. 계명성이라 하는 것은 바벨론과 두로 지방에 있는 교만한 나라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계명성이라 하는 그것은 멋도 모르는 게 돛대 같이 노는 것, 계명성을 주석에서 보면 마귀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건 오버입니다. 잘못된 거예요. 이름이 없다는 말은 사실은 어려운 말인데 존재가 있으면 다 이름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없어요. 주의 이름이라는 것은 뭐냐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에다 붙이는 게 아니고 그분이 하는 일에다 붙이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누구 이름입니까? 야곱의 이름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누구이름이냐? 장차 오실 주의 이름 이예요. 이스라엘이 주의 이름 됐다가,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이름인데 아브라함은 본인의 이름인 동시에 장차 오실 예수님의 이름 이예요. 왜, 천사가 인자의 머리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죠. 그러면 이스라엘이 예수님이잖아요. 요한복음 1장에 천사들이 인자의 머리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잖아요. 나다나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건 뭐냐 하면 기능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적인 기능, 아브라함 적인 기능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거든요.

일하시는 노인네 이름이 뭡니까? 알 필요 없어. 그럼 뭐예요? 그럼 뭘 압니까? 내가 하는 일로 인하여 이름이 뭐냐고 묻는 니가 이제는 그 물음을 하지 않는 존재로 달라질 것이다.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거예요. 이름이 필요 없어요. 내가 이웃집 아는 사람이 누구십니까? 분석해 가는 것처럼 그렇게 분석의 대상이 안 돼요. 하나님은.

그냥 들이닥치면 말하지 않아도 알고 부르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 돼요. 주의 기능, 십자가 기능만으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알 필요 없어요.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노래 부를 필요 없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체가 내 기능이 아닙니다. 누구 기능이냐 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주님의 기능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만약 이름이 예수라고 한다면 이게 문제가 돼요. 예수를 불러야 구원을 받는지, 지저스를 불러야 구원을 받는지, 골치 아픈 이야깁니다. 그리고 예수를 약하게 불러야 될지, 넉넉하게 불러야 될지 이런 문제도 있고, 이름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이 땅에 피조물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지, 하나님한테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이름이 뭡니까? 물으니까 뭐라 합니까? ‘니가 뭔데 내 이름을 알고자 하느냐? 삼손 아버지 마노아가 물었잖아요. 제물을 드리니까 불에 확 타버리니까 ’잠간만요. 사인해주고 가실래요?‘ 하니까 ’이름이 뭐예요?‘ 하니까 ’이름? 난 기묘자야.‘ 기묘자가 이름입니까? 기묘하게 기능한다는 뜻 이예요. 임마누엘이 주님의 이름입니까? 기능이죠. 임마누엘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는 거죠. 기능이지 임마누엘, 골치 아프다. 임마누엘을 불러야 구원받을지? 예수를 불러야 구원받을지. 뭘 불러도 구원 못 받습니다. 왜냐 하면 내가 같은 인간 부르듯이 그런 식으로 관계를 설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 내 의 되는 것이 성립이 안 돼요.

예를 들어 봅시다. 내가 여기서 손가락에서 피가 났습니다. 그러면 지금 서울역 앞에 누워있는 노숙자의 얼굴이 지금 깨끗하게 됐습니까? 안 되죠. 왜 안 됩니까? 이 피와 서울역의 노숙자하고 연결고리 케이블이 지금 설치가 안 됐잖아요. 그런데 우리보고 설치해도 문제에요. 설치해도 피 흘린 거하고 노숙자가 깨끗한 거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케이블이 연결돼도 질적인 변화가 안 되죠. 양적인 변화는 돼요. 피 흘려서 케이블로 피를 보내면 노숙자가 ‘왜 피가 흐르지?’ 이건 되지만 용서 받는 건 안 돼. 피를 찍어 바른다고 용서가 됩니까? 예수님 피는 복용 약이 아니에요. 식후 30분 후에 잡수는 약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구원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약 한번 입에 털어 넣으면 끝날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구원되기를 아주 간절히 고대하고 있어요.

그게 234페이지 영혼과 관련돼 있습니다. 제가 234페이지 중요한 거 4가지 나온다 했죠. 첫 번째는 영혼, 두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 세 번째는 죽은 자의 부활, 네 번째는 인자의 나라. 아! 이거 참 제가 보기에 엄청납니다. 이거 설명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쉬운 것이 영혼, 그보다 약간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과 인자의 나라는 어렵다 할 정도가 아니고 어렵다가 추월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게 왜 어려우냐 하면 죽은 자의 부활을 우리가 알고 있으면 알고 있는 사람은 죽은 자에요? 산 자에요? 산 자라면, 그러니까 그 사람은 부활이 필요 없잖아요. 그런 문제 생긴다니까요. 죽은 자의 부활이 필요할 것 같으면 죽은 사람이겠죠. 그렇잖아요. ‘주여, 저 죽어있습니다.’ ‘죽어있어. 내가 부활해줄게.’ 이래야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을 알아버렸으니까 살았다고 생각하면 ‘니 살았나?’ ‘살았습니다.’ ‘살았으면 부활이 필요 없겠네.’ 그냥 지나가면 살려달라고 하겠죠. 이런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그래서 죽은 자의 부활이 어려워요.

또 인자의 나라, 이것도 어려워요. 왜 어려우냐 하면 인자의 나라가 없는 나라거든요. 인자의 나라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라가 있지. 인간들의 나라가 있잖아요. 인간들이 나라에 모여 있으면 나라가 돼요. 신라, 백제, 그거 인간 나라 아닙니까? 인간의 나라인데 인간들이 인자의 나라 돼 버리면 인자는 인간에 속하냐. 안 속하냐. 그 문제 생겨요. 인자의 나라가 인간에 속해 버리면 그건 인자의 나라가 아니고 뭐냐 인간의 나라가 돼 버리고, 이게 인자가 인간에게 속하지 아니하면 인자의 나라라는 말 자체를 인간들이 못 알아먹고 이런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왜, 인간의 나라라는 것은 구성원소가 인간들이 모여야 그게 나라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에 그 욕구를 충족시켜야 되기 때문에 충족이 안 되면 ‘그게 나라야?’ 이런다고요.

강도가 십자가 달릴 때 주님께서 뭐라 했느냐 하면 “니가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했죠. 그러면 물어봅시다. 둘이 어디 갔습니까? 낙원이 십자가에서 반경 택시 타고 몇 분 걸립니까? 두 분이 이야기하거든요. 주께서 ”니가 오늘 밤에 낙원에 들어간다“ 할 때 그걸 옆에서 들었다 칩시다. 두 분이 오늘 밤에 어디 가는데? 기껏 간 곳이 무덤 속이었어요.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이 가서 무덤 마련했고 기껏 간 곳이 무덤이었습니다. 무덤이 낙원이냐 이 말입니다.

무덤이 낙원이 아니죠. 그럼 무덤 열고 들어가면 그 속에 낙원 보입니까? 안 보인다니까요. ‘니가 오늘 밤에 낙원에 가리라’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해요?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들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요. 그런데 강도가 그걸 믿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과거에 한번 경험해 봤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데 강도는 그 전에 낙원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낙원 가 본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먹었어요? ‘아저씨 어디가십니까? ’부전동에 갑니다.‘ ’아, 부전동, 조금 있다 만납시다. 그런데 부전동이 어디있죠?‘ 서울에는 부전동 없잖아요. 없다니까요. 진짜 구원받지 못한 강도 같으면 불러도 못 갔을 거예요. 택시 타고 ’여기 낙원 갑시다. 얼마 나와요?‘ ’기본요금 나와요.‘ 이래야 되는데 거기가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못 가는 거예요.

사람들이 모르면 못 갈 거고, 알기 위해서 과거에 한 번쯤은 경험을 해봐야 되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애초부터 없는 데고, 애초부터 경험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께서 이야기할 때 그걸 믿을 사람이 있다? 없다? 없는데 강도는 경험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걸 진실이라고 믿었어요. 그 믿는 마음 어디서 생겼습니까? 간단히 하면 이미 갖추어진 인자의 나라에서 쏟아진 거죠. 인자의 나라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설명할 때에 이 땅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해야 돼요. 이 땅에 없습니다.

‘당신 교회 가는데 어디 가는데?’ ‘이 땅에 없는 곳에 갑니다. ’그럼 못 가겠네.‘ ’따라 와도 따라올 수 없이 소용없는 곳. 처소가 마련되지 않으면 절대로 갈 수 없는 곳 그곳에 갑니다.‘ 교회 공동묘지 가는 게 아닙니다. 공원묘지 부활의 동산 거기 가는 게 아니에요.

그럼 영혼부터 해봅시다. 영혼은 쉽다고 이야기했어요. 234 페이지 중간에 설명이 돼 있어요. 『자기 ‘영혼’을 불멸의 존재로 상정하고, 자아는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거기에다 실어보자는 것이다. 영혼이 살아있다면 거기에 몸을 덧붙여서 자아를 산 채로(자율적 행위 결정권을 보장받은 채로) 미래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다. 그렇게 되면 불가역성마저 수정 가능한 것이 되고 현재를 바꾸어서 미래마저 바뀌게 하는 시도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그 다음에 『이런 아이디어는 자아 속에서 ‘영혼’이라는 계정을 따로 장만하는』이렇게 돼 있는데 이 영혼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불가역성마저 수정 가능한 것』

이걸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불가역성이라는 것은 한번 지나면 되돌아 갈 수 없는 걸 불가역성이라 하는 겁니다. 계란을 깨뜨렸잖아요. 깨뜨린 걸 가지고 ‘오, 계란 깨뜨렸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거라. 다시 필름 반대로 돌리면 다시 계란 생깁니까? 다시 안 돼요. 깨진 계란을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이게 볼츠만인가 이야기했던 엔트로피라는 거예요.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엔트로피, 모든 것은 복잡다단한 것으로 변해간다. 모든 시스템은 더욱 더 복잡하고 복잡하게 되어 간다. 그래서 루소라는 사람은 인간은 가면 갈수록 더러워지고 차라리 좋았을 때는 처음 인간이 인류가 있을 때 그때가 좋았다. 그때로 돌아가자. 그것이 바로 국가는 필요 없다. 자연 상태로 돌아가자. 그것이 바로 보편적인 우리 인민들의 의사라는 거죠. 일반의식.

그렇게 그것을 보장해 줄 때 월급 받고 보장해 준 주가 바로 정부요, 국가지, 국가를 위해서 우리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전에 나왔던 존로크란 사람 볼테르 몽테스키 이런 사람들은 국가가 인민들에게 잘해줄 때 좋은 국가라 했거든요. 그런데 루소는 뭐라고요? 국가가 필요 없다. 우리 잘하는데 시다바리만, 월급 줘서 관료한테 공무원 월급 줘서 우리 시다바리만 하면 되지, 국가 못 섬겨서 환장했나? 국가 섬기려고 태어났나? 이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루소에요. 그런 차이가 좀 있습니다. 헤겔은 다른 이야기 하죠.

가역성이라 하는 것은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어요. 그렇다면 지난번에 우리가 아담이 죄를 졌다. 이걸 되돌릴 수 없잖아요. 하지만 영혼이 있다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면 영혼이 말씀을 가지고 아담이 실천 못한 걸 아담 후손인 내가 ‘조상님 실패하셨습니까? 저는 잠시 지키고 갈게요.’ 해서 자기는 말씀 지켜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영혼이 죽으리라‘ 한 그것이 내 선에서 나는 지켜버리니까 나는 어떻게 됩니까? 다시 내 미래는 죽음이 아니고 영생이 되는 거예요. 어때요? 이 영혼, 영혼 관리 잘해야 되겠죠? 아무리 조상이 나빠도 내 선에서 와서 이것을 제대로 지켜버리면 내 미래는 피는 거예요.

아니 그보다 더 나가요. 불가역이 아니고 더 가역적으로 나갑니다. 내 공로로 말미암아 죽은 조상도 연옥에서 빼낼 수 있다면 일단은 내 몸이 구원받은 만큼은 착한 일하고 거기다가 더 여분의 착한 일을 하는 거예요. 이건 누굴 주려고 하느냐 하면 예수 안 믿고 죽은 내 남편이나 내 자식, 요거 조상들한테 내 여분을 주는 겁니다.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했던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는 일종의 중계 사에요. 일단 기도를 하게 되면 누가 받느냐? 성모 마리아가 받아요. 성모 마리아 옆에는 보좌가 들어있습니다. 보좌가 들어있어서 그 사람들은 성인들 이예요. 성인들이 우리의 기도를 받아서 성인들이니까 그들에게도 여분의 착함이 있어요. 여분의 착함이 있어서 못 된 인간들이라고 하지만 그 죄를 몰라서 죄 지었잖아요. 거기다가 내 착함이 가서 대신 용서해주는 거예요. 요게 초창기 천주교에서 먼저 나왔던 중보기도입니다. 지금의 교회가 중보기도가 얼마나 무서운 논리인 줄 아시겠습니까? 이게 중보기도에요. 그냥 기도가 아니고 중보기도에요. 중보기도 하고 안 하고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중보기도의 기본 원리는 중보기도를 한 것과 중보기도 안 한 것과 차이가 나는데 이건 실제로 해봐라, 해보고 중보기도가 얼마나 큰 효과가 나는지를 효과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한 둘이 아니죠. 왜, 마귀가 그렇게 한 둘이 아니게 그렇게 만들어 줍니다. 왜, 그래야 누구를 안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눈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마귀는 눈만 돌리면 돼요. 이거만 성공하면 돼요.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것을 따로 내 지성소에다 모셔 놓으면 더 이상 나는 예수 믿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내 고상한 것과 마지막 내 성실함과 순수함, 그 순수함이 그럴 때마다 탈랑탈랑 소리 나는데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냐. 나의 순수함. 어떻게 내가 나를 부정할 수 없어. 왜, 착해도 내가 너~~무 착하니까. 자식도 남편도 예수 안 믿는 거 내가 기도했더니만 한 달 뒤에 교회 나오고, 전부 다 중보기도 덕분이니까. 완전히 마귀한테 흠뻑 빠졌어요. 지금 언약의 조명발이 그쪽을 향하여 확 비춥니다. 짐승! 짐승 이예요.

내가 중보기도 했는데 갑자기 애가 죽었다. 중보기도 할 마음 납니까? 안 납니까? 안 나죠. 왜, 자기 기도가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 지성소, 자기가 잘난 존재라고 믿어왔는데 하나님이 내가 잘난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죠. 그게 바로 가인의 제사에요. 왜 내 기도, 내 중보기도를 안 들어주느냐 이 말이죠. 기도가 그걸로 많이 모자라는 모양이라. 꼭 중보기도를 넣어야 기도한 것 같고 그냥 기도하면 이건 영 시시한 기도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중보기도는 명품기도처럼 느껴지고, 중보기도 해야 뭔가 응답 되는 것 같고 그냥 기도하면 되나 안 되나 뭐 뒷전이고.

영혼이라 하는 것은 내 신세를 바꾸는 겁니다. 바꾸는데 그걸 작용하는 중심 공장, 작업장이라 보면 돼요. 여기서는 작업장을 저는 234페이지 중간에 『이런 아이디어는 자아 속에서 ‘영혼’이라는 계정을 따로 장만하는』계정이란 말을 썼어요. 계정이 뭐죠? 장부 속에 있는 계정이죠. 식당 할 때 보면 단무지 계정, 전기세 계정, 이건 물수건 계정, 해서 오늘 몇 개 들어오고 몇 개 나가고 세탁 보내고 하잖아요. 모든 계정을 종합하는 계정을 따로 만들어요. 따로 만들면 거기서 무슨 일을 합니까? 회계장부가 일어나겠죠. 해서 나쁜 일 한 건 모으고 체크하고 가계부를 쓰는 겁니다. 착한 일 한 것 모으고, 나쁜 짓해도 착한 일 몇 개 하게 되면 사흘 동안 나쁜 짓해도 괜찮아요. 느긋해. 왜 착해도 너~무 착하니까. 그런데 착한 일이 약발 떨어졌다 싶으면 바짝 착한 일 하죠. 갑자기 수요예배 참석한다든지 갑자기 전도한다든지 갑자기 이쪽의 계지를 높여 놓으면 나쁜 일 어지간히 해도 괜찮은 거예요.

만약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제가 얼마나 주를 사랑하는지 아시죠? 제발 요번에 류 현진이가 14승을 하게 해주시옵소서.’ 했는데 아니 1회 3점 줘버리고 2회 3점 줘버려서 달성 못하면 ‘주여 다음에는 더욱 더 착한 일해서 내 기도발로 류 현진이가 드디어 14승해서 코리아특급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매사가 다 자기가 원하는 걸 지어내서 삼성 기아, 지어내서 간절히 기도해요. 내 편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 들어 달라. 그거 다 뭐가 있기 때문에?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 영혼 뭐하려고? 내 팔자 고치는 중심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가락-70이레 논문(인자의 나라)130912-26강a -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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