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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15] - [피 101] - 영생의 근거강의[피]

[13 대구강의 15] - [피 101] - 영생의 근거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15] - [피 101] - 영생의 근거

13,09,2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왜 기뻐해야 하는가?

사도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뻐하는 것도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서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영생이라는 것이 어떤 물체처럼, 마치 농구공처럼, 또한 집에 있는 가구처럼, 그렇게 영생이 어떤 덩어리로 온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왜 그런 생각을 하는고 하니, 성경에 보면,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으면 그게 곧 영생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감이나 대추와 같은 것은 아니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말이다. 한가위가 되면 과실이 풍성하게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어야만 "야, 제대로 먹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나 배를 먹고, 감을 좀 많이 먹었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즉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 라는 것, 그러한 사실로 인해서 인간은 "외부의 양식이 내부에 들어오면, 그게 나에게 생명이 된다" 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그렇게 뭔가 먹었으니 그들이 양식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남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을 경유한 떡을 먹은 그들 !!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는 무엇인고 하니까, 예수님이 축복하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그들에게 주셨을 때, 과연 그것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느냐는 것이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물론 그것이 맞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엇을 경유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축복을 경유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거친 것과 예수님을 거치지 않은 것은, 비록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하라도 보통 평범한 양식에 준해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생명나무라고 하면, "생명나무에는 과실이 있고, 그 과실을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 라고 했는데, 분명히 5000명은 예수님을 경유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과연 그들이 영생을 얻었는가?" 라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들은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고 배는 불렀지만, 영생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요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 6: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더라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으로 떡이라고 하셨으니, 즉 생명의 떡이 축복을 해서 무한대로 늘어난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었을 때, 그게 생명나무의 과실처럼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양식이 될 수 있느냐고 했을 때,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말이다.

◈ 영생도, 그 근거가 있어야 !!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영생을 받는데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된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의 이미지는 무엇인고 하니, 영생은 근거고 무엇이고 간에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고 그게 소화만 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우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했으니 생명나무라고 보면 되는데, 그런 예수님이 축복을 하셔서, 그 축복이 부분 부분이 되어서 예수님의 떡으로 주어졌을 때, 그들이 비록 예수님이 주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었지만 영생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러면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녹차가 있는데, 이 차를 예수님이 축복하고 주시면 그것을 먹는 자들이 영생을 얻어야하는데, 하지만 이 차를 먹는다고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에 그럴 것 같으면, 그런 이단들이 많은데, "내가 축복하면 영생을 얻는다" 라고 해서 지하수를 고가로 팔아먹고 말이다. 사람들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그냥 홀딱 속아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서 문제가 되는고 하니, 예수님의 축사가 사람에게 왔을 때, 인간은 이것을 점령하는데, 즉 "먹었다, 소유했다, 만들었다" 라고 하면 영생을 얻는 줄 아는데, 하지만 영생은 어느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는데0, 우리는 여기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일종의 폭탄으로 보자는 것이다.

◈ 살을 찌우기는커녕, '쾅' !!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신 영생의 양식을 먹었을 때, 진정 영생을 얻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그 양식이 자기를 살찌운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먹고 나니 살을 찌우기는커녕 그야말로 '빵!' 하고 터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자기를 죽게 만들고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 뒤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내 피와 살을 마시고 먹은 자는 영생을 얻는다" 라고 해서, 분명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고 주셨는데, "그것은 너희들이 영생을 얻는 게 아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러니 사람들이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는 정당하다고 여기고 질문을 이어나가니, 기껏 예수님마저도 소유해야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그것을 소유해야한다고 여겼듯이, 생명나무 과실도 소유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여기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빵!' 하고 터져서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 나는 이단이다 !!

어제도 그러한 설교를 했지만, "나는 이단이다" 라는 생각을 왜 못하느냐는 것이다. 자기가 이단이고 걸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게 되면 되는데, 그런데 자기가 이단이 아니라고 여기니, 사도바울이 "내 자신이 형제를 위해서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 사도바울이 그렇게 구원을 받아놓고, 자기 형제를 건지기 위해서 자기 구원도 포기하고 지옥에 가는구나. 희생정신은 기특하지만, 참으로 안 됐다" 라고 하는데, 그러한 인식이 바로 아직까지도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발상들이라는 것이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지만 분명히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그러니 저주를 받던 무엇을 받던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를 마음대로 사용하시는데, 저주를 받던,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마음놓고 큰소리를 쳤고, 그런 위치에 있는데, 즉 "이것이 곧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땅에서 하늘로의 구원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이제 수평선은 없어 !!

그래서 제가 "이제는 수평선이 없다" 라고 했는데, 즉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끊어짐도 없고 저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즉 영생에 대해서 너무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쪽에서 다가가는 것은 영생을 소유하려는 것인데, 마치 어떤 물체가 자기 안에 들어있듯이 말이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생은 먹는다든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영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영생은 우리가 폭파된 현장에서, 폭파시킨 그 취지가 곧 영생이란 말이다. 즉 우리가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위해서 우리가 쓰여진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니 속에서 영생하도록 하는 물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정작 자기는 물을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다는 소유개념이 아닌 자기를 활용하는, 즉 "하나님이 여전히 나에게는 주인이기에, 나를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렇게 '나'를 통해서 영생을 마음껏 발산시키는 장(場)이 된다는 것이다.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래서 오병이어의 해석이 어떠해야하는고 하니까, "너희는 오병이어를 먹었지?" 라고 하면, 우리는 "예, 맛이 있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기가 오병이라는 양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무엇인가? "내가 축사한 오병이어를 너희들 속에 있음으로서, 너희들이 어떻게 달라져야하는가?" 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즉 "만약에 너희들이 오병이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먹었다고 하면, 너희들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을 때까지 전진해야한다" 라는 것이다.

◈ 이런, 아무도 없네 !!

그러므로 우리가 오병이어를 행하신 다음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는데, 그들이 오병이어를 먹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내 피와 살과 마시고 먹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 라고 하니, 모두 다 가버리고 없다는 것이다(??).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물론 주님께서 축사한 떡이 자기들의 몸 속에 들어왔지만, 그 떡은 그들을 폭파하기 위한 용도이지, 결코 우리 인간들이 영생을 누리고 싶은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런 용도로서 주님이 떡을 주신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도 교회에서는 "병이 나면 기도하세요.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기도하세요"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소유개념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남들보다 더 훌륭하려면 주님이 주신 것을 간직하면 됩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간직은 무엇을 간직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우리를 폭파시키는데 말이다.

◈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 !!

그것은 십자가도 마찬가지인데, 사도바울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즉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후사로서 고난도 다함께 받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믿을 때 주님을 소유하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마치 기념품을 간직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주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시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제는 자기 인생은 없고 주님의 인생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주님이 당했던 고난을 같이 당할 수밖에 없음을, 그것을 영원한 축복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게 진짜 제대로 된 축복이고 말이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무엇을 믿습니까?

제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기존 교인들에게 묻고 싶고 있는 게 있는데, "무엇을 믿습니까?" 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이 세례를 받을 때만 묻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50년을 해서 나이가 80이 되었다고 하면, 그때도 역시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도대체 믿는다고 하는데, 자기가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을 믿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믿었는지, 그것을 끄집어내어서 보면 자기의 찬란한 역사가 거기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잘난 체를 하는 것인데, 그리고 자기가 만나고 스치면서 지나갔던 교인들에게 대한 추억과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지난 주일설교시간에 '세트장' 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고 하니, 세트장은 철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전혀 영생이 아닌데, 영생은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근거가 교재 132페이지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가 300페이지를 넘어가고 있는데, 그러면서 저에게 큰 근심이 생겼는데, 사도의 큰 근심이 아니고 말이다(ㅋㅋ). 앞에 했던 것을 그만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ㅋㅋ). 132페이지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298페이지도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진도를 좀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도 교재 132페이지를 보자.

** 자아의 완전함을 자아가 새삼 확인하고 해석해낼 수 있다고 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주로서의 활동이 여전함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성도가 기뻐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자기가 무엇을 소유함으로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즉 자기로 인해서 자기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주님이 지금도 주님으로서 여전히 활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기쁨의 근거이고 영생의 근거라는 것이다.

◈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매일같이 거울을 보면서 자기가 살아있고 활동하는 것을 두고 기뻐하는데,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상대방의 예상되는 질문이 있는데,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라는 것이다. 즉 지금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면 "요즘은 놀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 상대방이 더 이상 묻지 않는데, 논다고 하는데 무슨 질문을 더 하겠느냐는 것이다. 더 묻게 되면 노는 가슴에 상처만 남기지 말이다(ㅋㅋ).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자기가 활동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듣고 있다가 "참으로 부럽네요. 그 연세에도 일을 하세요? 저는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데요"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에 벌써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즉 "음매, 기살어! 음매, 기죽어!"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것인데, 그것이 마치 스펀지처럼 우리의 온 몸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며드는 방식을 어제 오후시간에 설명했는데, 자기가 그동안 했던 것을 한번 제쳐보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자기가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즉 주님이 하셔서 이루어진 것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 어머니, 복음이 뭐예요? - 어머나 !!

예를 들어서, 추석 때에 며느리가 와서 한다는 말이 "어머님, 요즘 제가 성경말씀을 보는데,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전혀 자기는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ㅋㅋ). 물론 거기에 대해서 평소에 기도는 가끔 했었지만, 그것은 주님의 일이기에 자기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보고 복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지, 어디 시엄마가 매일 전화를 한다고 해서 그게 되겠는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성경을 볼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돈도 전혀 안 되는데 왜 보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며느리가 그렇게 나왔을 때는, "아하, 역시 주님께서 일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키우던 개가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갈까? 아니면 된장을 바를까?" 라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 개가 꼬리를 치면서 좋다고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당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는 말이다. 그러면 "내가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나았구나. 개를 낫게 하시는 것도 역시 주님의 일하심이구나. 주신 분도 주님이고,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말씀대로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서 느낌이 올 때, 그렇다면 개 한 마리도 주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자기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깰 뻔한 것도 주님이 하셨다는 것을, 아무리 세세한 것이라도 주님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 표현될 수 없는 기쁨 !!

코미디 프로를 보고 웃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데, 그래서 성령이 주시는 열매가 곧 희락이라는 것이다. 즉 표현될 수 없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야고보서에는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까 제가 "무엇을 믿는가?" 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것은 저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이지 싶은데 말이다.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돈으로 살 수 없고, 돈으로 환원이 되지 않은 기쁨이 바로 성령의 열매라는 것인데, 너무나 이 세상이 돈밖에 모르니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줄 테니, 그 기쁨을 나에게 다오" 라고 했을 때, 하지만 돈으로도 바꿀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단 하나밖에 없는데, 자기가 움직여야 일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움직이고 행동하지 않더라도 그저 누리고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고 하니, 물론 영생이나 기쁨도 역시 그러한데, 이 사랑이 대표적인 것으로서, 이 사랑은 무엇인고 하니, 주는 자가 있고 받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랑을 설명할 때는 "주는 자가 누구이고, 받는 자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혼자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데, 실제로 주께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즉 희락을 주신다는 것이다.

◈ 어머님, 아버님, 이번에는 월남쌈입니다 ??

그런데 이것이 언제 깨지는고 하니, 자기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 때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추석 때 자식들이 오면, 부모는 바리바리 있는 것 없는 것을 모두 싸주는데, 자기가 받은 선물까지도 말이다. 물론 요즘은 거의 이런 일이 없는데, 과거에는 그러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시부모도 먹고 살아야하니, 그렇게 챙겨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면, 시부모는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자기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식들도 분명히 뭔가를 할 것이라고 하는, 즉 한 달 뒤에 돌아오는 자기 생일에 며느리가 한 턱을 쏠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행하게 되면,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 다음부터는 욕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자기가 행한 것만큼, 아니 두 배나 더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리얼리? (ㅋㅋ) 그러니 주님이 공짜로 주신 기쁨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괜히 자식들을 챙기려고 하다가보니, 즉 "내가 이만큼 챙겨주었는데, 다음에 한번 보자"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지 싶은데, 부산에 계신 부모님의 생신을 맞이해서 며느리가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집에 모셔서 제대로 해드리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서 첫 날은 오므라이스를 해드리고, 이튿날은 월남쌈을 해드렸는데, 이 월남쌈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만, 그게 양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노부부가 둘이 며느리 몰래 식당에 나가서 실컷 사먹었다고 하는데, 하도 배가 고파서 말이다(ㅋㅋ). 처음에는 열흘 정도 있다가 가려고 했지만, 이틀만에 당장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제가 드는 예화가 다 그러한데 말이다.

◈ 하지만 이것도 주님의 일하심이 아닌가?

그러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그리고 그 순간에 하늘에 주는 은사인 희락이 그만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는 내가 가는가 봐라!" 라고 나오는데, 그러니 혼자서 상상하고 격분하고 열을 받는데, 하지만 자기가 혼자서 일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며느리에게 그런 전화가 온 것도 주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화를 일으키는 일을 유발시켜서, 우리가 주님의 은사를 받을 자격이 못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이 주시는 희락은 우리의 행함이나 잘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공짜로 은혜로 베푸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나무의 근거인데, 즉 그냥 주신다는 말이다. 어떻게 말인가? 주님이 활동하셔서 말이다. 주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화가 날 때는 언제인고 하니, 자기가 애를 쓴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부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희락과 기쁨인가? 주께서 자기를 일방적으로 부리고 있음을 느낄 때, 그렇게 다루고 있음을 느낄 때, 주어진 모든 것이 대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늘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건을 일으켜서, 우리가 화를 내었다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주님께서 조성하셨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 영생의 근거를, 더 깊숙이 !!

지금 우리가 영생의 근거를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나가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쉬웠는데, 이런 개인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인 것을 해보자는 말이다. 영생의 근거를 더 깊숙이 제대로 보여주는 경우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게 성경에 나오니 말이다.

그 모든 근거를 한 마디로 말해서 '언약'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 언약을 우리가 그동안 많이 공부했지만, 하면 할수록 새롭다는 것이다. 언약의 반대말은 비언약인데, 즉 노아가 방주를 만들기 전에 사람들은 비언약 속에 있었다는 말이다. 언약이 등장하니, 이 세상이 비언약 속에 있었다는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언약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자기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러니 신에 관한 것인 구원과 영생도 자기 노동에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인간이 자기의 노동을 의식하게 되면 무엇을 기대하는가? 반드시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 지옥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대가를 원하게 되면, 설령 그 대가가 주어져도 그것을 얻기까지의 그 짧은 기간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힘이 드는데, 그 하루하루의 삶이 마치 그야말로 찢어지고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다는 말이다. 품위가 있고 고상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죽지 못해서 사는데 말이다. 젊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언약과 비언약 !!

다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희망이 자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그게 곧 비언약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언약은 신을 찾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신의 걸레 됨을 감추기 위해서, 그런 용도로서 교회에 다니고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지저분함을 남에게 들키기 않기 위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신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게 비언약이란 말이다.

그러면 언약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활동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활동하신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비언약으로 하지 마시고 처음부터 언약으로 하면 되게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나'가 아닌 언약 위주이기 때문에,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세트장으로 이용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 나를 위한 언약을 주세요 ??

이렇게 하나님은 '나' 위주가 아닌 언약 위주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언약을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비언약에 속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만 드러내시면 되는데, '나'는 가두어두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런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언약의 주체인 '나', 즉 '나' 중심으로부터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당연히 여기서 충돌과 마찰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제가 어려운 말을 계속해서 하는 것보다 성경을 찾아보는 것이 더 낫지 싶은데, 여기서 역대하 21장 6절과 7절을 보자.

(대하 21:6)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대하 21: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 다윗의 등불 !!

성경에 어려운 구절이 많이 있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다. 여기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노선이 하나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손자를 낳는, 그런 혈육의 노선밖에 없다는 말이다.

◈ 우리는 '혈육의 노선' 밖에 없어 !!

왜 중화 요리집에 가면 코스가 몇 개 붙어있는데, 'A코스', 'B코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식당에서처럼 그게 따로 있으면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데,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게 아니고 코스가 달랑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정해져있는데, "아버지가 나를 낳고, 또 내가 아들을 낳고"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 코스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화와 문명인데, 그렇게 부풀어진 것이란 말이다. 그게 곧 국가이고 사회이고 가족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자식을 낳아서 살게 되면, 땅을 개간하고 일을 하면 거기에 잉여가치가 생기게 되고, 그것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교역하면 상업이 발달하고, 그러면 국가가 생긴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 인구가 2,800만이 있는데, 그들이 노력해서 단군신전도 만들고 핵무기도 만들고 김정일이 동상도 세우고 했는데, 그게 전부라는 말이다. 거기는 교회도 없고 절도 없다는 것이다. 혈육이 만든 사회주의이니, 오직 노동만 인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꼬라지가 교회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북한은 신을 키우지 않는데, 물론 동물원에 가면 낙타는 키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남쪽에는 예배당이 있음으로 해서 현실 국가가 아닌, 신을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도 역시 혈육의 나라 !!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 그 나라는 혈육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다 그러한데, 그러니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곧 다윗의 혈통인데 말이다. 즉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등등",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혈육의 계통밖에 없는데,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는 "다했나? 한다고 애를 많이 썼네. 그런데 그게 이스라엘이 아니거든!" 이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윗의 등불'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이 하나밖에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방금 읽은 이 본문말씀이 엄청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어렵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다윗의 등불'이 무엇인지를 풀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이 꼬이는고 하니까, 이렇게 숨어있는 이스라엘이 따로 있다고 하면, 애초부터 숨어있는 이스라엘을 전면에 내세우면 되는데, 왜 '다윗의 등불'을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꼭꼭 숨겨놓느냐는 것이다.

앞에서 혈육적인 이스라엘이 마구 설치게 했다가, 이제 그들이 망했다고 여겨질 때 그때 마치 배트맨처럼 나타나시는데,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망하기 이전에 말이다. 그런 점이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제는 삼촌이 아닌 아버지라고 불러라 !!

드라마를 보게 되면, 물론 이런 강의를 위해서 가끔 보는데 말이다(ㅋㅋ). 양친이 모두 딸을 굉장히 구박하는데,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삼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딸에 부모에게 너무 구박을 받아서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서 삼촌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그때 삼촌이 뭐라고 하는가? "그래, 내가 너의 마음을 다 안다" 라고 하면서, 좋은 직장도 구해주고 결혼도 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삼촌의 집에서 살면 되는데, 그런데 항상 뒤에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삼촌이 진짜 아버지이고 구박하던 그 아버지는 가짜였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그렇게 되어야 시청률이 오르고 드라마가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가 진짜 아버지다. 이제는 삼촌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고 해라. - 예, 아버지!" 라고, 그렇게 해서 끝이 난다는 것이다(ㅋㅋ).

알다시피 우리 인간이 이미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무엇인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가짜만 골라서 하나님이고 메시야인지, 그렇게 모두가 다 가짜만 진짜로 여기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가 아닌 가짜만 말이다.

◈ 오직 노동을 통해서 살아가는 인간들 !!

어제오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무화과나무가 잘되고 포도나무가 잘되고 하면, 그게 축복이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저주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저주를 받은 땅에서 자기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보고, 그렇게 잘사는 방법은 오직 노동을 통해서, 즉 이마에 땀을 흘리고 아내는 자기 자식을 낳고 키우는, 그 코스 말고 다른 코스는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생명나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신다는 말이다. 마치 드라마의 삼촌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다른 민족들은 지옥에 가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주신 이스라엘에게만큼은 "그래, 너희들이 할대로 한번 해봐라. 그러다가 망하면 나에게 부르짖어라" 라고 하시는데, 그런 식이라는 말이다.

◈ 왜 출애굽을 해야만 하는가?

'애굽' 이란 나라에서 이스라엘이 탈출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시죠? 제가 여러분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ㅋㅋ), 아무튼 안다고 하니 제가 질문을 하겠는데, "그러면 애굽에서 계속해서 살면 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애굽에서 살면서, 시민권을 얻어서 풍족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왜 그 나라를 나와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무엇인고 하니, 이게 중요한데 말이다. 자유라는 것은, 먼저 '나를 위한 자유'가 있고, 그리고 '자유를 위한 나'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한 자유', 즉 우리 자신을 위한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아닌 '자유를 위한 나'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자유' 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로 저주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주를 받게 하려고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생을 주시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그 '나'의 자리를 뒤로 옮기고, 그 뒤에 있는 '자유'의 자리를 앞으로 당겨야 하는데, 그렇게 당기면서 출애굽 사건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애굽에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하는 인간들아, 이리 나와!" 라고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애굽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행복이 아니고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가 아닌,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자기 야심과 자기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우리는 불타는 금요일이 좋아요 !!

요즘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것을 많이 느끼는데, "너는 무슨 재미로 사노?" 라고 하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약을 드세요" 라고 해도, "내가 약을 먹어서 뭐하겠노? 나는 내 마음대로 하련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약을 드셔야 합니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젊은 아이들에게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내가 돈을 벌어서 으시대면서 이 땅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는 겁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래서 너는 병들고 저주 속에 있는 거야. 너는 너밖에 모르고, 은혜를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면서 키우시는 주님을, 십자가에서 너의 죄까지 용서하신 그 주님을 모르고, 그저 '나, 나, 나' 라고 하니 말이야" 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어른들을 빼다 박은 아이들 !!

이번 추석특집에 연예인과 그 가족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들까지 말이다. 그렇게 온 식구가 다 동원되어서 돈을 버는 프로가 있는데, 특히 그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 부모를 그래도 빼다 박았다는 것이다. 더 추가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른들이 평소에 살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말이다.

남자는 목사고 여자는 아나운서인데, 그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기독교 집안이라서 제사를 안 드려요"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누구의 자유인가?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자유라는 것이다. 자기 정당화를 위한, 즉 "나는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자기를 뽐내고 있는데, 전혀 출애굽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장자를 챙겨라 !!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나'를 위한 것이 아닌데,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하면서 전리품을 챙기게 하시는데,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이스라엘의 장자를 말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장자의 나라인데, 여기서 장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었다" 라고 하는 흔적을, 증거를 품고 있을 때, 그것을 장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인간을 장자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 장자가 들어있다는 말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출 13: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출 13:12)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출 13:13)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 제사를 드리는 언약의 사람 !!

노아 방주의 경우에도, 방주는 그 자체가 아니고 그 안에 노아가 들어있을 때, 그게 언약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가 방주 바깥으로 나아와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무엇인가? "와, 드디어 육지다. 이제는 밭을 갈자" 라고 했는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즉 제사를 드리는 언약의 사람, 그럴 때 그게 언약의 실체에 가까이 접근했다는 것이다. 요즘 방주가 어떻고 하는데, 그런 깨어진 배의 나무 조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창 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불이 떨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 곧 언약이란 말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점인데, 불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지금 유황불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즉 저주가 없는 분이 우리와 함께 있기에, 우리도 저주가 없고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나오는데 말이다.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껍데기를 조져라 !!

하나님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시는데, 그 보이지 않는 현실이 우리 속에, 즉 우리가 현실이라고 우기는 것 안에 이미 찐빵의 앙코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껍데기에 불과한데, 즉 얇은 만두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갑자기 김치만두가 생각나는데 말이다(ㅋㅋ).

그 만두 안에 들어있는 만두 속처럼 주님이 알아서 주관하시는데, 즉 바깥에 일어나는 것은 우리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과 의논해서 "이 껍데기를 조져라. 자기 밖에 모르고, 너무 교만해"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바깥에서 또 울고불고 하는데, "왜 이러십니까?" 라고 말이다.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시나리오를 그렇게 짜놓았다는 것이다.

주님이 사도들을 인도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 라고 디모데후서 2장에 나오는데, 그렇게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되고, 그것을 모세는 사환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도 지분은 없는데, 주도권은 없다는 말이다.

(딤후 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장자'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언약의 흔적으로서 다루어지는 것인데, 그 장자가 커지면 장자의 나라, 즉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가지고 있던 흔적은 무엇으로 변하는고 하니, 육신으로 인해서 그 흔적이 시들해지고 마는데, 그만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

사사기 2장에 보면 뭐라고 되어있는고 하니, 여호수아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홍해도 잊어버리고, 요단강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주께서 구원하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만다고 하는 것이다. 주님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었다는 것을 말이다.

(삿 2: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십 세에 죽으매
(삿 2: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삿 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러니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그 장자의 덕분으로서 산다고 하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장자가 하나님의 소유인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도 장자가 되고,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자체가 아들도 되고,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의 장자가 계셔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영원한 언약대로 부여받을 때 이스라엘이 되는데 말이다.

어서 오세요. 아무튼 애굽에서 건너온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는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육신만 남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의 언약이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말이다.

◈ 하나님은 왜 숨어 계시는가?

오늘 강의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영생의 근거, 혹은 기쁨의 근거인데, 물론 사랑의 근거라고 해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그 근거는 보이지 않는데, 물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따라 붙인다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숨어있지 말고 전면에 나오시면 좋은데, 왜 숨어 계십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자유'에서, '자유를 위한 나'로 바꾸는데, 바로 이 바뀜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뀌지 않고 그냥 공짜로 먹으려고 하지만, 하지만 공짜로 받으려고 하는 그 거지심보 자체가 바꿔져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일군이고, 그것을 출애굽에서는 '군대' 라고 하는데, 이것을 설명하기가 참 미안한데 말이다. 어제오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군대라는 것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저의 입에서 내뱉기가 참 곤란한데, 왜냐하면 15세기 데카르트 이후의 주체사상으로 인해서, 즉 근대주체사상은 무엇인고 하니, "나 위에도, 나 밑에도 아무도 없다" 라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이고 동등하다는 말이다.

1776년의 미국의 독립전쟁의 영향을 받아서 1789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는데, 다들 프랑스만 기억하는데, 미국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프랑스라는 것이다. 그 프랑스 대혁명이 온 유럽에 퍼지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왕도 없고 귀족도 없다는 것인데, 즉 우리 위에도 없고 우리 밑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천부인권설' 이라고, 즉 "인간의 권리는 하늘이 주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것을 '존엄성'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존엄성 때문에 이산가족상봉이 깨어지고 말았는데, 또 금강산 관광도 물 건너가고 말이다. 김일성의 존엄성을 지킨다고, 50년 이산가족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 누구도 터치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게 곧 존 로크의 천부인권설이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다' 라고 하면?

아무튼 성경은 군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리고 또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다" 라고 하는데, 여기에 '왕'이 나온다는 것이다. 왕이라는 것은, 고대국가에서 '전쟁하는 자' 라는 것이다. 즉 전쟁을 하는 총사령관을 왕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주인과 노예밖에 없는데, 고대사회에서는 말이다. 물론 플라톤은 지배하는 자, 싸우는 자, 노동하는 자, 그렇게 3가지로 나누었지만 말이다. 이런 플라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1세기인데, 즉 그가 죽은 지 1000년 이후에 중세유럽에서 플라톤의 책이 번역되면서 그렇게 3가지로 나우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주인과 노예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즉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노예로 삼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것을 천부인권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 같은 용어인데, 즉 "하늘에 주신 인권을 보장받는다" 라고 하는 이 용어가 옛날에는 "나는 노예를 가질 권리가 있다" 라고 보았고, 현대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누구의 노예가 될 수 없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것으로 존엄성을 챙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존엄성도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계속해서 말 바꾸기가 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이제 조졌다 !!

아무튼 '군대', 혹은 '왕', 이런 것이 도대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가? "이제 조졌다" 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 군대인데, 물론 왕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왕이 있으면, 우리는 노예가 된다는 말이다.

현대에 이런 천부인권설을 이야기하는 입장에서,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주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나이다. 주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왕이 시키시면 아무리 힘들어서 감사히 여기고 가겠습니다. 몸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라고 하는 관계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말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그런 관계에 있다고 해도 우리는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그리고 매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그리고 건강을 주셔서 이렇게 심장이 쿵쿵 뛰도록 해주시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같이 감사해야 하는데, 하지만 우리는 육신적인 자기 오기와도 같은 것이 있어서, 늘 주님을 원망하고, 또한 왜 자기 뜻대로 안 되게 하느냐고 반항하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 계속해서 진도를 !!

어려워도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겠는데, 괜찮지요? 아무튼 이렇게 "나를 위한 자유에서, 자유를 위한 나로 바뀐다" 라고 했을 때, 이 '자유를 위한 나' 라고 하는 것은 애굽전체를 무엇으로 본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죄에 억압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애굽에 있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야, 똑바로 하지 못해. 니가 행동을 잘못했지?" 라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슥아, 이건 어쩔 수가 없어. 너보다 더 센 놈이 너를 지배하고 있으니, 너도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는 없는거야" 라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야, 정신을 처리고 똑바로 하란 말이야" 라고 하시는 게 아니고 말이다.

◈ 수갑을 채워서 !!

이게 로마서 7장에 나오는데, 즉 "내 마음의 법은 하나님의 법을 원하지만, 내 마음에는 또 다른 법이 있어서, 그게 나를 사로잡아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수갑을 채워서 "당신은 묵비권이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라고 하면서 사로잡아 버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반항을 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저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가인은 평소에 동생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안 인간이 아니고, 죄가 가인에게 "동생을 때려잡아라" 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왜 동생을 그렇게 죽여야 하는가? 동생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숨어있는 것이 있는데, 그러면 육신을 자극하는 악마의 힘이 숨어있는 것을 계속해서 제거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역대하 24장 20절에서 22절을 보겠는데, 제가 읽겠습니다.

(대하 24:20)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대하 24: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대하 24: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여기 20절에 죽은 선지자의 이름이 '스가랴' 라고 되어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사가랴와 같은 인물로, 마태복은 23장 35절에 나오는 바가랴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22절에 나오는 스가랴는 다른 사람인데, 즉 여로보암 2세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이다. 좀 복잡하지요?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드러나기만 하면 죽고, 또 죽어 !!

그리고 '여호야다' 라는 인물은 제사장인데, 그가 아달랴 여왕을 척결하고서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왕이 잘 했는데, 여호야다가 나이가 무려 130세가 되어서, 참 오래 살았는데 말이다. 그가 죽고 난 다음에는 왕이 맛이 가서 자기 마음대로 했는데, 그래서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에게 하지 말라고 하다가 자기도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의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말이다.

다시 창세기 4장으로 돌아와서, 아벨이 제사를 드려서 응답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그만 맞아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맞아죽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는데, 12제자가 다 순교를 당했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 세상이 위험한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숨어있다' 라고 하는 것은, 몰래 숨어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숨어있는 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숨어있는 힘이, 그 숨어있는 힘이 하나님의 언약을 제거하는 쪽으로 이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하 21장에서, 그들이 악을 행해도 하나님께서 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 숨어있는 선지자 계열, 즉 A코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B코스가 숨어있으면서, 언약은 언약대로 있으면서 기존의 것과 교체하는 작업을 충실히 해나간다는 것이다.

(대하 21:6)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대하 21: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제가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따로 떨어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붙어있으면서 하나는 이쪽에서 저쪽을 핍박하게 되고, 그리고 핍박을 당하는 쪽은 그 핍박을 이기기 위해서 이쪽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몽땅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고, 자기 택한 백성만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 어휴, 두드러기 !!

어떤 사람은 열이 많아서 두드러기가 난다고 하는데, 이 두드러기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좀 징그럽지만 말이다. 우리 아버지가 두드러기가 많이 났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뭔가 음식을 잘못 먹게 되면 피부 지표면에 뭔가가 돋아난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말이다.

그러면 그 돋아난 것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밑에서 열이 올라왔다는 것인데, 그러니 평소에는 멀쩡해 보여도 거기에 뭔가가 잠재되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잠재되어있는 것이 진짜 언약인데, 즉 다윗의 등불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 다윗의 등불 때문에, 그 피부를 하나의 세트장으로서 철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해석이 어려운데, 이 껍데기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목사가 "야곱이 아버지에게 별미를 바쳤으니 복을 받았는데, 그런데 여러분은 성경말씀을 보면서도 목사에게 대접하기를 소홀히 한다면 되겠습니까? 바치세요. 복을 받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피부표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피부 속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교인들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데, 그냥 성경에 문자 그대로 있으면, 그게 진리인줄 안다는 것이다.

◈ 믿지 말라고 주신 말씀 !!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를 먹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데,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말라고, 즉 믿지 말라고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믿게 된다면, 그것은 숨어있는 힘이 있기 때문인데, 아벨처럼 숨어있는 힘이 와서, 즉 성령의 힘이 와서 때려 치니 우리가 이 말씀을 믿게 된 것이지, 그것이 아니고 그냥 문자적으로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자기를 위한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구원을 위한 성경해석,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가 행복하고, 자기가 뭔가 믿는 사람처럼 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단인데, 이단을 더욱 더 이단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파악해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죄송하지만, 이단이 무엇입니까?

참으로 서글픈 것은 무엇인고 하니, 복음을 안다는 목사의 말을 들어보면, 근본적으로 이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십자가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경우에, 물론 본인들은 복음을 안다고 하겠지만, 막상 "죄송하지만 이단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쪽에서 하는 말이 "우리는 모든 것이 개방되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개방이 되었기 때문에, 당신처럼 빡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주께서 주신 것은 양들로 여기고, 그들을 재교육을 시키면 성도 만들기에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단이란 개념은 없는데, 일단 주신 것을 다 받아서 말씀대로 교육을 잘 시키면, 자기는 양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좋은 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단이 뭡니까?" 라고 하면, 물론 "이단은 없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데, 그러면 예수님과는 다르니 말이다. 그래서 구역을 정해야 하는데, 즉 "여기서 여기까지는 이단이고, 또 여기는 아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규격을 정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이단이라고 하는 그쪽에서 그만 자기를 옹호해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양무리 마을도 좋아요 !!

굳이 말을 돌려가면서 할 필요가 없이 직접적으로 하면, 자기가 과거에는 양무리 마을을 이단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 양무리 마을이 이제 자기를 옹호해주니 자기가 그쪽에서 같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목회를 하면서 그만 이단으로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돈만 들고 오너라. 그러면 다 받아줄게" 라는 사고방식이 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목사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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