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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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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강-롬 9장 6-13(약속의 자녀)13092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로마서

53강-롬 9장 6-13(약속의 자녀)130928-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211.223.103.85)

53강-롬 9장 6-13(약속의 자녀)13092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9장 6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251페이지입니다.

로마서 9:6-13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성경만 안보면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인데 성경만 보면 어떤 글이 나오는가 하면, ‘아니다, 아니요’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니 사람들은 환장할 지경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질색이에요. 뭘 해도 “그래, 그래.” 해야 좋으신 하나님 같은데 “그것은 아니거든? 그것은 틀렸어. 그러면 그것은 지옥 간다.” 이렇게 자꾸 토를 다시니 이것 피하고 저것 피하려니 나중에 신앙자체가 피곤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야기하지 않는 교회가 굉장히 좋은 교회고 말씀대로 전하지 않는 목사가 아주 훌륭하고 인자하신 목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한다면 그 목사 본인이 죽어나가니까 할 수 없는 것이고 이 ‘아니오.’라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이것은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닙니다.’라는 것,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라는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은 아니요’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니까 그 말은 그만하고 ‘딱 이겁니다.’라는 말을 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오.’라고 결정하는 그 기준,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요. 이것은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추적해서 찾아갈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밑에 있는 결과를 조사해보면 원인으로 뚫리는 길이 나올 것이다, 라고들 많이들 이야기해 왔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천주교 대부에요. 모든 천주교 신학은 그것을 기초로 하고 있고 그 위에 성당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의 주장이 뭐냐 하면, 현재 우리가 있는 이 생명을 추적해 보면 신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 아닙니다. 아니거든요!

내가 현재 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그래서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찾아낸 그 하나님은 아닙니다. 만약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맞다면, 천주교의 주장이 맞다면 성경에서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리가 없어요. “아이고, 귀여운 이스라엘, 내 새끼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다 이스라엘이고 다 구원받는다.” 이렇게 했으면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서 저항하지 않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야. 교회는 세우면 다 교회고 다 구원받아.” 이렇게 되는데 교회라고 다 교회는 아니야, 라고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궁금한 게 뭐냐, ‘교회다, 교회 아니다.’를 구분시키는 그 기준이 굉장히 궁금한 겁니다.

그게 왜 궁금한가 하면, 그 기준을 알아채면 내가 구원될 수 있고 내가 참 교회가 되고 참 이스라엘 된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기준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모릅니다. 그 기준을 몰라요. 왜 결과물을 가지고 원인을 추적할 수 없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창세기 3장에 생명나무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차단했기에 그 취지가 계속 살아나야 되는 겁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에 대해서 여러분이 들은 기억이 있을 거예요. 오늘 본문 이것을 세자로 줄이면 ‘예정론’이라는 겁니다.

11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그 다음에 보면 “택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미리 선택해서 한 사람은 사랑받고 한 사람은 저주받아 지옥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예정론이라고 장로교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다른 데는 아예 이것을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이 예정론이 놀랍게도 우리 장로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해서 핍박했던 바리새인과 유대인과 서기관에게도 예정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택하심을 따라’니까 우리는 태어나기도전에,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이스라엘로 택함을 받았기에 우리민족만 구원받고 선택되지 않은 다른 민족은 저주받게 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정론 붙들고 있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가 행하기도 전에 선택해서 구원받았다,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입니까? 인간으로서는 나올 수 있는데 그 인간에게서 나온 아이디어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를 못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그들이 예정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저주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나를 위한 예정이 아니고 약속을 위한 예정입니다. 이 세상에 약속은 두 가지가 있어요. 모든 말씀과 약속이 나를 위한 약속, 나 잘되기 위한 약속이 있는 반면에 숨어 있는 그 분을 드러내기 위한 약속이 있어요.

창세기가 있다면 사람들은 창세기를 볼 때 나를 위한 창세기로 이해하잖아요.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아니오.’입니다. 약속을 위한 창세기입니다. 약속을 위해서 창세기가 쓰였는데 이것을 우리가 성질 급하고 건방지게 나를 위해서, 내 구원을 위해서 창세기를 읽다보니 어떤 사람을 창세기를 천 독 했니, 만 독 했니, 하는데 천 독이면 뭐하고 만 독이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런 뜻이 아닌데요. 그런 사람은 ‘아니오.’에 해당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오.’에 해당되는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를 ‘그러면 날 위한 창세기, 날 위한 말씀에서 약속을 위한 말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서 노선 변경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하는데 그 입구가 없어요.

그리고 입구가 찾을 길도 없습니다. 자기 첩을 한 백 명을 두고 자식을 계속해서 낳았다 할지라도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육신에서 나온 자녀기에 그것은 ‘아니오.’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래도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은 천국에 갔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를 잉태했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이르리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것은 일체 아브라함의 육신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찾아와서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만이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약속의 씨,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 쪽에서 입구를 찾을 수 없고 그 입구를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허락한 적이 없어요. 그것은 생명나무에 오지 못하게 하는 취지가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그 취지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구원받은 사람이 있잖아. 그리고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 분명히 생겼잖아. 생겼으면 그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약속의 자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하나님이 찾아왔다면, 찾아와서 약속의 자녀를 만들어냈다면 그 만들어내는 모습과 과정 혹은 절차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신다면 그것을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이스마엘을 낳아도 그것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 천사가 찾아와서 ‘내년에 이삭이 있을 것이다.’ 해서 임신하지 못한 여인이 임신을 했고 그래서 낳은 자식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것을 오늘날로 한다면 우리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과 결혼을 해야 돼요. 임신 못한다고 해서 시험관아기 이런 것은 하면 절대로 안돼요. 그렇게 임신 못하고 있다가 12시쯤에 천사가 꿈에 오든지 해서 “내년 2014년도 10월에, 그것도 한글날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아니면 국군의 날로 하든지 해서 임신되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되지요. 성경대로 한다면, 전혀 임신 안 되는 여인을. 그러려면 임신 안 되는 여인을 찾아야 돼요. 결혼정보회사에 가서 혹시 임신이 안 되는 여자가 있는지를.

어느 코미디에 보니 이런 것이 있어요. 추석날 왔다고 꿀 송편을 먹이겠다는 거예요. 문제는 이게 꿀 송편인지 콩 송편인지는 뜯어봐야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안에 할 일 없는 할아버지가 그것을 입으로 깨물어 보는데 이미 깨 물은 것을 먹을 수가 있나요? 지금 교회에서 천국 가는 꿀 송편인지 지옥 가는 콩 송편인지를 뭘 로 알아보는가, 그 방법이 옛날에 있었는데 세 가지가 있었어요. 세례와 성만찬과 견진성사로 했습니다. 성만찬 참석해서 한 일주일 내에 배탈도 안 나고 건강하게 잘 살면 성만찬 제대로 했다고 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되고 성만찬 먹었는데 아프다든지 뭔 일이 생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살과 피를 먹기에 부합되지 않기에 회개하든지 아니면 구원 받은 사람 아니라는 식의 방법을 취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참 웃기지요.

웃기지만 달리 꿀 송편과 콩 송편을 가려낼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방법을 하나님이 허락을 안 해줬습니다. 누가 천국 갈 야곱족속인지 누가 지옥 갈 에서족속인지, 누가 창세전부터 사랑받을 사람인지 누가 저주받을 사람인지를 교회에서도 판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판정을 내리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남들이 궁금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궁금해서 그래요. 진짜 내가 꿀 송편인지 콩 송편인지, 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본인이 궁금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본인이 믿음 없는 것 본인이 아는데 그러면 누가 압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방법을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정말 잘 오셨습니다. 송편 일일이 안 깨물어 봐도 되는 그 방법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대전에 가는데 가다 보니까 양말에 구멍이 났어요. 안 들키게 하려고 발가락으로 어떻게 해 봤지만 대전 교인들은 벌써 다 알아요.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고 다 보니까 구멍 난 것 다 알거든요. 집에 와서 한쪽 양말 구멍 났으면 양쪽을 다 버립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무조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고 난 뒤에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정하고 그것을 변명하기 위해서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을 지옥 가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음으로 말미암아 자동적으로 나는 천국 가는 사람으로 스스로 확신을 주고자 애를 쓰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게 문제에요. 누가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의 기준에 인간 각자가 개입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방법은 뭐냐? 선과 악, 양쪽 양말짝을 다 버리는 거예요. 나는 선하다, 나는 구원받았다, 너는 지옥 간다, 양쪽을 다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생각하기를 ‘하나님, 저는 창세전부터 예정되었으니까 구원 받았지요? 그리고 형 에서는 지옥 갈 사람으로 저주 받지요?’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도 버리고 에서도 버리고 몽땅 다 버리는 거예요.

로마서 9장 오늘 본문에서 그 기준이 있잖아요. 누가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는지, 누가 저주받기로 예정되었는지의 기준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12절에 보면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12절을 여러분이 저와 같이 지금 보고 있으면서 이 구절이 왜 여기에 꼭 들어가야 하는지 납득이 안돼요. 전혀 관계없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차라리 그 앞에 있는 11절이 와 닿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이것은 이해되거든요. 그래서 이해되는 11절을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9장 1절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어요. “예수님, 저 소경이 소경된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물었어요. 그 당시 예정론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들도 예정론을 믿고 있으면서 굉장히 골치 아팠던 문제에요. 소경의 죄를 정하는데 자기 죄 때문인가, 부모 죄 때문인가, 이렇게 묻는 것은 죄가 있으면 소경된다는 자기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거든요.

요즘 말로 쉽게 하면, 못생긴 여고생이 가는데 “얘야, 잠간 나 좀 보자.” “아저씨, 왜요?” “네가 그렇게 못생긴 것은 네 죄 때문인가, 네 부모 죄 때문인가?” 이렇게 묻는 것과 똑같은 질문이에요. “와, 이 못생긴 것 좀 봐라. 너는 왜 그리 저주받았냐?” 그럴 때 그것 듣고 기분이 안 나빠야 하는데 그런 소리 듣고 기분 안 나쁠 여고생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것 듣고 기분 나쁘다는 것이 문제가 돼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우리가 분노할 자격이 있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내가 지금 분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는 형이 있어요. 나보다 나이 많은 형이 있는데 내가 태어나기 5년 전에 형이 사고를 쳤다 칩시다. 그럴 때 5년 후에 태어난 내가 그 형이 하는 짓에 대해서 내가 분노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거든요. 내가 없었던 시절의 일에 대해서 내가 뒤늦게 분노한다는 말은, 사람이 분노한다는 말은 내가 있었으면 그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분노하거든요.

사람이 분노한다는 것은 뭐냐, 지금 돌아가는 모든 상황은 내 마음에 딱 맞아야 되는데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내가 두 번 다시 어떻게 할 기회가 없다는 그 점이 나로 하여금 스멀스멀 화가 나게 만드는 거예요. 보세요, 인간이 얼마나 모든 상황과 말씀조차도 자기중심입니까? 지금 이 상황이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만일 내가 그 때 좀 일찍 태어났으면, 미리 태어나서 거기 있었으면 내가 손 봐서 지금보다 더 좋은 상황으로 바뀔 것인데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손 쓸 수는 없는데 하지만 지금의 이 난처한 상황은 웬 말인가, 나는 너무 억울하다, 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엄마! 나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산부인과에서 엄마가 바뀐 것 같아. 혹시 쌍둥이 언니가 있는 것 아냐?” 이렇게 막장 드라마처럼 화내면서 그럴 때가 있거든요. 사람이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는 이것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내가 신이라면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내가 신이 아닌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 라는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네가 뭔데? “저 소경이 소경된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묻는 거예요.

주님께서 “제자들아! 네가 뭔데 죄와 소경된 것을 연관시키는가? 저것은 죄 때문에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저렇게 된 것이다. 너는 거기서 죄 언급을 할 입장이 못 된다.” 제자들은 이런 생각이죠. ‘내가 소경될 만큼의 죄는 짓지 않았다.’ 그걸 자꾸 제자들이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한복음 6장 6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이 말에 대해서 우리는 죄악 된 본성을 이렇게 발휘합니다.

‘창세전에 내가 그 회의할 때 있었으면 나는 무조건 천국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무조건 지옥 보내기로 의견을 집어넣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우리 인간이 안 가질 라야 안 가질 수가 없어요. ‘너 같은 인간이 천국 간다면 나는 천국가기 싫을 텐데. 너 같은 인간 지옥가면 난 속이 다 시원하겠다.’라는 생각을 우리가 안가질수가 없는 거예요. 왜,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내 마음에 맞지 안다는 것 때문에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라고 했으면 예정론이 되었든 삼위일체가 되었든 그런 것은 다 갖다 버려야 돼요.

왜, 아버지께서 내게 이끌지 아니하면 예정론 공부하고 삼위일체 공부하고 십자가 연구해도 예수님한테 갈수가 없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미련을 갖습니까? 왜 자꾸 미련을 갖지요? “그러면 목사님, 미련을 안 가지면 구원을 받습니까?” 미련을 안 가져도 구원 못 받아요.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있는 대로 털어놓으면 돼요. 제가 역사를 공부해보니 동양이 서양보다 과학의 발전이 늦어요. 늦는 이유가 동양철학의 특징은 뭐든지 숨기는 철학이에요. 저 사람에게 제사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죄는 숨기고 형제에게 우애 있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죄는 숨기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십자가가 등장하고 복음이 등장해서 모든 죄를 까발리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까발려요. 살아가면서 성경과 십자가와 비교해보니까 도대체 내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솔직하게 자기의 속내를 까발리고 위선을 아주 싫어했는데 동양은 맨 날 입만 열면 “어험, 이리 오너라.”이런 소리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은 교회가 동양철학 다 되었지만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착해지세요, 가 아니라 애초부터 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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