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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20130829-마13장(진주)43강- 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20130829-마13장(진주)43강- 이 근호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179)

대전20130829-마13장(진주)43강- 이 근호목사

마태복음13장 45절 할 차례입니다. 이 말씀 보게 되면 굉장히 쉬워 보이지요. 얼마나 쉬운지를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얼마나 간단합니까? 방금 읽었던 이 복음을 쉽게 해석한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천국은 좋은 것이다. 어느 정도로 좋냐, 이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돈 될 수 있는 좋은 진주 없을까 하다가 어? 우연히 어떤 사람이 값진 진주를 가지고 있다. 야, 저것만 사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팔면 몇 배나 장사가 되겠는데 그래서 그 사람한테 “얼마나 합니까?” 하니까 “아, 비쌉니다.” “아이고, 까짓 거 돈이 문제야. 전 재산을 팔아서 그 진주하나만 사면 나는 드디어, 그래도 나는 이익이다.” 할 정도로 샀다. 천국은 그 만큼 좋은 곳이니까 여러분들도 좋아들 하세요. 이런 해석이 나오잖아요. 그 해석이 틀린 해석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방금 그 해석이 엉터리 해석이라면.

좋다, 라고 했을 때 여기서 사람이 좋은 거하고 예수님이 좋은 거하고 천국이 좋은 거하고 사람이 좋은 거하고 달라요. 다른 정도면 괜찮은데 다른 정도가 아니고 서로 반대가 돼요. 그래서 그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된 분. “아이고, 가까이 오지 마!”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된 것, 또는 베드로전서에 보면 사람에게 버려진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모퉁이 돌이라는 것은 성전의 기초인데 그냥 기초가 아니고 사람에게 버림 바, 된 누구나 줍지 않는 “그래, 그래,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저 사람 싫다고 결정했어.” 모든 사람이 외면한 그 분이 오히려 하나님의 천국을 주는 귀한 진주 같은 분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게 되면 방금 해석한 것은 하나 더 집어넣어야 되겠지요. 천국은 좋은 진주긴 진주인데, 이것은 좋은 진주라고 알아 모시는 그런 노련한 장사꾼에게만 눈에 뜨이는 좋은 진주, 그걸 하나 첨가하면 천국은 다른 사람에게는 비실비실하고 시시하게 보이지만 진짜 천국을 아는 사람한테는 눈에 확 뜨이는 그런 진주를 하나 사고 그 진주로 해서 다 팔아 샀느니라. 그 정도로 천국은 좋다. 라고 의미가 약간 더 내용이 채워지겠지요. 요것도 틀린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인간이 끄집어 낼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엎어치기로 내동댕이 쳐버립니다. “이 정도 했으면 해석됐지요?” 라고 하다가는 시험지 쫙 쫙 다 찢겨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해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여기에 천국은 이렇게 나오지요. 천국이 나오지요. 천국은 인간에게는 이것이 ( ) 빈 칸으로 남겨둬야 돼요. “천국은 ( )하다.”라고 할 때, 예수님이 천국은 하니까 제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 천국,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아! 평소에 내가 가려고 그렇게 애쓰던 곳. 아! 알지.” 이렇게 되거든요. 사람들은 천국 할 때 여기에(괄호 안에) 들어가 버려요. 천국을 일단 자기가 확보했다고 치고 자기는 누가 뭐래도 천국백성이라고 간주하고 천국은 이러 이러하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 식으로 해석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제가 방금 천국은 비워 놓으라고 했지요. 천국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까 처소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당시에는. 엘리야하고 모세하고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천국에 살았잖아요. 모세, 엘리야, 예수님하고 세분이 등장했는데 이쪽에는 야고보, 베드로, 요한 세 명이 등장했잖아요. 등장했을 때 베드로가 천국에 대해서 얼마나 오해를 했으면 이런 소리를 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제가 맨션3채를 지어드리겠습니다. 엘리야가 맨션 못 살아서 환장한 사람입니까? 이 땅에 휴가 올 일이 있습니까? 이 땅 펜션에 초막에 살려 합니까? 그 빈대 나오는데서 왜 사는데. 베드로가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자기 딴에는 극상의 예우를 한 거예요. 자기 딴에는 이 정도하면 예수님, 엘리야, 모세 모시는데 아마 행복하실 겁니다. 지 일방적인 생각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상당히 궁금하지요.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습니다. 할 때 하나님의 반응이 ①초막 짓지 말라. ②기특하구나! ③다음에 대우받을게. ④너는 아들말만 들어라. 몇 번입니까? ④번이지요. 니 발언 하지 마! 니 생각 끄집어내지 마! 니는 그냥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만들어져야 될 인생이지 니가 꾸려갈 인생이 아닌 거예요. 제가 어제 수요일 날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인생이라 하는 것은 씨줄과 날줄을 천을 짜듯이 우리 인생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조금씩, 조금씩 짜 나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했지요. 그게 바로 세상 쪽에서 말하는 인생이란 말이죠. 오늘의 최선이 결국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지금은 눈물의 빵을 먹으나 나중에는 기쁨의 꽃다발을 얻을 것이라 하는데, 꽃다발 못 받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데. 10년이 넘어도 눈물 더 흘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괜히 시나리오 짤 생각하지 마세요. 드라마에 나올 이야기지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거든요.

천국을 모르면서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러면 방법은 뭐냐 하면, 인간 쪽에서 이러 이러하다는 이쪽을 밟아 들어가야 되는데 이러 이러한 이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이미 천국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천국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이 단어사용법에 대해서 지금 제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이런 게 있어요. 49절에 보면, 또 하나의 비유를 이야기하면서 세상 끝에는 이러하니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지요. 이것도 천국입니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액션인데, 이런 말이 제가 표현하면서도 어렵다 싶은데, 천국은 무엇입니까? 물을 때는 어떤 사물 체일 때 무엇입니까? 가 돼요. 사람보고는 누구십니까? 가 되는데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입니까? 누구십니까? 묻는 것은 이것은 문법 자체가 성립이 안 되지요. 말이 안 되지요.

예를 들어서 선풍기가 바람을 내잖아요. 그러면 “선풍기가 무엇입니까?” “바람을 내는 것.” 이것은 되는데 “선풍기에서 나오고 있는 저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냥 바람이다. 해야 되지요. 그런데 바람이라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거든요. 손에 쥘 수가 없지요. 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묻고 싶은데 하나님은 니가 묻는 천국은 무엇입니까? 대상이 아니고 이러 이러한 일을 발생시킨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발생시키는 가운데 누가 포함돼 있는가 하면 천국이 무엇입니까? 궁금해요, 라고 여기는 우리도 주께서 다루는 그 다룸 속에 우리가 포함이 돼 있다 이 말이죠. 포함이 되어 있는 거예요.

로또복권 뽑을 때, 볼이 마구 튀잖아요. 우리는 바깥에서 처다 보기만 한다고요. 만약에 내가 공이라면 내가 만약에 로또를 사서 공으로 들어갔다 하면, 내 번호가 만약에 5번인데 지금 입구에 4번이 기어 들어가려하면 막고 내가 나가려고 싸울 거 아니냐 말이지요. 내 번호 공5번이 나와야 1등이 되니까 4번이 기어 나오려하면 4번하고 싸우고 멱 잡고 들어가려하잖아요. 그걸 바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아귀다툼이라 하겠지요. “잘 놀고 있네. 뭘 얻겠다고 저렇게 하느냐.” 인간들은 천국가고 싶어서 다투고 있어요. 어떻든 간에 예수님한테 힌트 하나, 아이디어 하나 뽑아내서 그것 쥐고 죽어서 천국가려고 싸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악인에 속하는 거예요. 골라내어서 바깥으로 던져버려야 될 대상이 된다 이 말입니다.

천국은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골라낸다. 그러면 나는 좋은 고기 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좋은 고기로 되는 것이 아니고 천국 못가는 나쁜 고기로 전환시키면서 천국은 나쁜 고기와 좋은 고기를 나눈다. 라고 이렇게 실시하는 겁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천국이라 하는 것은 어떤 보석장수가 귀한 보석을 사가지고 기뻐했다. 이게 천국이라 할 때 “나도 기뻐하겠습니다.” 하고 끼어들어서 천국에 골인하고 싶은 우리를 뭐로 취급하는가 하면, “그러니까 너는 니 힘으로 천국 가서는 안 되지.” 하고 그걸 골라내는 고 작업이 곧 천국이다, 이 말이죠.

천국이 놀고 있는 게 아니고 천국이 지금 안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의인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슨 역할? 항상 요런 인간들은 천국에 못 간다 하는 그걸 보여주는 기능으로서 하나님의 천국 작업에 포함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요번에 책이 나오거든요. 전도서 속의 그리스도라는 책이 나오는데, 그 책을 지금 서 경수 목사님이 교정을 하고 있어요. 교정을 보고 있으면서 제가 쓴 글이 흐름이나 논리가 안 맞을 때는 메일로 수정을 부탁하면서 와요. 그 온 중에서 하나가 뭐냐 하면, 다윗과 밧세바가 우연히 만난 이유가 뭡니까? 그 질문이에요.

다윗, 밧세바 알지요. 남의 여자 아닙니까? 다윗은 지 여자 따로 있어요. 우연히 위층에 살았던 모양이라. 위층에 살다 보니까 뒤태를 보아라, 목욕하는 뒤태를 보고 아름다웠어요. 뒤태만 아름답겠지 했는데 몸 씻다가 우연히 앞을 보여주는데 이건 뒤태 못지않게 앞태가 더 광채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신하한테 “저 거 누구 부인인지 알아봐라.” “지금은 여자 혼자 있고 남편은 전쟁 통에 가 있습니다.” “됐다.” 해가지고 그 여자를 데려다가 관계를 맺어서 임신까지 시켰잖아요. 여기서 다윗이라는 성군, 골리앗을 때려잡은 사람, 그리고 악령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함께 있는 사람, 요새 말하면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인데 왜 남의 부인을 만나게 했느냐 말이지요.

그리고 문제가 뭐냐 하면, 밧세바가 예뻤다는 게 문제에요. 또 뒤태가 아데미처럼 멍게 같으면 괜찮은데 너무 예뻐. 예뻐도 너무 예뻐. 여기서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거예요.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은 자꾸 감정의 뒤치다꺼리만 할 뿐이에요. 나는 저 사람이 좋아, 해놓고는 좋다는 것은 이성과 관계없거든요. 그냥 무조건 좋은데 이유를 다네. 저 사람은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서 좋고 그 이유는 쓸데없는 이유입니다. 무조건 좋아요. 반대로 저 사람이 미워. 미운 이유가 뭐죠? 그 때부터 찾기 시작해요. 미운 것은 감정이지 이성에 관한 문제가 아닌데, 내가 미워하는 행동이 정당화 될까 싶어서 미운 이유를 찾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말은 인간은 지 감정도 제대로 관리 못하고 도리어 반대로 감정에 놀아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다윗은 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감히 천국가려 했어요.

다시 정리합시다. 천국은 그냥 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니가 이런 존재라고 알려주는 그 작업 있잖아요. 그 작업개시가 이미 천국 개시에요. 우리는 천국이 여기, 저기 있기를 원해요. 행해서 홀딱 넘어가고 합류 화되면 골인되기를 원해요. 그런데 천국은 저 쪽에서 보이지 않는 능력이 와가지고 내가 천국가고 싶은 나를 ‘니 같은 인간은 지옥가야 마땅해!“ 라고 새롭게 작업을 해요.

팥빙수를 사 먹잖아요. 팥빙수 줄 때 참 아름답잖아요. 떡도 있고 예쁜 과자도 있고 먹을 때 어떻게 합니까? 사정없이 쑤시잖아요. 다 부셔버리지요. 우리는 천국 갈 때 이 모습 이 대로 곱게 해서 그것도 한 30대 얼굴로. 90살 얼굴이 아니고 치매도 안 걸리고 곱게 가고 싶어.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합니까? 팥빙수 비비는 것처럼 완전히 우리의 꿈을 사정없이 다 진 이겨 버리고 다 깨드려 놓고 재조립해서 천국 갑니다.

그래야 천국 가서 지 자랑 안 해요. 만약에 천국 가서 우리의 개인의 개성이 살아있으면 천국에서는 못 삽니다. 우선 심심해서 못 살고 자기의 재미있는 거 없어서 못 살고 지 자랑 못해서 못 살고 찬양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1절은 불러도 2절 부르기 싫은 게 인간인데 찬양 부르려 하니 힘들어서 못 살고 그리고 천국에 가면 친한 술친구가 없어요. 친구가 없어서 노닥거릴 수가 없고 노래방이 없는 기라. 축구도 없고 프로야구도 없어. 사는 재미 하나도 없고 자식도 없고 시집 장가도 안가고 남자, 여자가 시집가고 장가 안 가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남자 사는 재미가 뭤 때문에 사는데요. 사랑하는 재미인데요. 남자 사랑 못하면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지. 우리 개성이 살아있고 우리 인식이 살아있는 한 천국은 사실은 우리한테 지옥으로 보일 거예요. 주께서 다 빠개 버립니다. 오직 그리스도 앞에 면류관 바치는 그걸로 너무나 감사하다고 다 박살내고 부수는 거예요.

정리해 봅시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내 쪽에서 저기 있다고 가는 게 아니에요. 이거는 천로역정에나 나오는 이야기고. 옛날부터 교회에서 그런 걸 얼마나 가르쳤습니까? 저 고개만 넘으면 천국이 있으니까 지금 신앙생활하면서 힘들어도 참으세요. 참으면 낙이 있을 겁니다. 이것은 영웅담이에요. 고대신화에나 나오는 영웅담이에요. 춘향전, 심청전 전부 다 뭐예요? 영웅담이에요. 지금은 설움 받고 억울하게 당하지만 하늘은 너의 결벽을 인정하고 니가 지금 고난 받으면 나중에 고난만큼 보상이 따라온다. 따라서 누가 인내하느냐, 누가 참느냐에 한해서 그 사람은 나중에 영웅이 된다. 이런 것은 모든 교과서에 인구 인류의 드라마나 소설의 테마잖아요.

힘들지만 나는 나중에 뭐가 될 수 있다? 히로인. 나는 결국 영웅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가 있지요. 마법의 성. 그 가사 내용이 산 넘고 물 건너서 기어이 공주를 찾아가는 거예요. 사람이 사는 게 바로 이런 희망이 박혔기 때문에 그 턱으로 힘들지만 오늘도 눈물 흩치면서 살아가는 보람이 바로 이런 희망 때문에 살아요. 언젠가는 이 억울하고 이 서러움을 보상 받을 날이 올 것이다. 누가 보장해 주는데? 본인이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예요. 누가 보장해 주지도 않아요. 지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천국은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적어도 자기 재산을 다 바쳤다 하거든요. 사람이 어느 정도 좋아야 지 재산 바칩니까?

잠시 철학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철학에서 존재라는 개념은 나중에 내용이 뭐로 바뀌는가 하면, 소유개념으로 바뀌어요. 소유된 현장에서만 존재가 나와요. 소유된 게 없으면 존재감도 없습니다. 소유된 게 없으면 존재를 지우려고 하지요. 이걸 가지고 자살이라고 합니다. 자식도 있고 이 자식은 남의 자식이 아니고 내 자식이잖아요. 그게 자식이 있으니까 자식 때문에 죽어도 못 죽는 거예요. 왜? 내 소유가 남아 있으니까. 내가 왕년에 잘나갔는데 왕년의 내가 명예가 있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남들이 뒷 담화할까봐. 남들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억울해서 못 죽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내 모든 위신 체면이 다 날아가고 자식도 날 버리고 남편도 날 버리고 모든 걸 버렸을 때는 재산도 날아가고 모든 소유가 없어질 때는 뭐도 없어진다? 내가 살면 뭐 하노? 이 껍데기만 남은걸 뭐 하노? 차라리 죽는 게 속 편하지요. 그래서 사람이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고 그냥 편한 데로 사는 거예요. 사람은 왜 살지요? 그냥 편하게 사는 거예요. 죽는 게 편하면 죽는 거예요. 편한 데로 살게 돼 있어요. 물은 왜 아래로 내려갑니까? 사람들은 생각해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물이 편하다고 생각하니까 내려가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인간은 지가 생각한 대로 외부에 있는 자연물도 그런 식으로 보는 거예요.

물아, 물아 니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편하지. 물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네. 물아, 니가 편 하려고 내려가지, 나도 잠잘 때는 눕는다. 편하지. 인간들은 지 생각한대로 따라 줄 때 동질감, 친밀성을 느끼는 모양이라, 그러니 인간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구라입니다. 전부 다 일방적이에요. 전혀 전부 다 지 생각이지 현실감이 뚝뚝 떨어져요. 그저 인간은 감정이 우선이에요. 소유가 존재니까 자기 존재를 포기할 정도로 좋은 게 있을까요? 없습니다. 왜냐 하면, 더 가장 중요한 것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기 때문에. 그래서 이 자기 소유를 다 팔 그 장사치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천국은 인간하고 아무 상관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 존재만큼은 고상해보이고 싶어서 자살할지언정 내 기억 속에 있는 나의 나됨은 절대로 포기정도가 아니죠. 포기도 안할뿐더러 끝까지 자기가 책임지고 사랑해 줍니다. 심지어 지옥 가면서도 외롭지? 내가 끝까지 지옥에서도 내가 너를 위로해 줄게. 이렇게 해요. 그래서 노래 있잖아요. 누가 날 위로해 주지. 가사 내용이 상당히 건방지잖아요.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니가 뭔데 너를 위로해 주나? 요즘 노래 씨스터하는 노래 있잖아요.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책을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전부 다 지 혼자 놀아요. 나 혼자 길을 걷고 울고 불고, 자기 말고 숭배할 종교가 없어요. 마지막 종교는 자기입니다. 나는 나를 숭배하는 유일한 신자요,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신자요, 그리고 나는 내가 섬기는 유일한 신이에요. 내가 신입니다. 선악과 따먹었기 때문에 당연한 거예요.

그 선에서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그건 팥빙수에 붙어있는 연유정도에요. 소스 정도 밖에 안돼요. 그거 떼어 내면 예수님이고 하나님이고 다 떼어내면 겨우 남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 신을 그동안 코팅한 미화한 장식한 거예요. 종교로서 자기가 스스로 꽃을 꽂고 무스 뿌리고 자기가 자기를 이뻐하는 것.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예수 믿음으로서 자기가 얼마나 더 고상해졌다는 그걸 보고 지가 지 모습보고 지가 대견해가지고 지 모습보고 “니가 예수님을 믿다니? 착해라.” 지가 지한테 감격하고 웃기지도 않아요.

교회가보세요. 다 그래요. 다 그래. 자기 자아도취에 빠져서 전부 다 기도해 놓고 내가 기도를 10분 동안 하다니 놀라운 기도의 솜씨, 또 찬송하면서 나 왜 자꾸 소프라노가 잘 되노? 주님은 들러리고 완전히 놀고 있어요. 그런데 감사할 것은 뭐냐 하면, 이 모든 소유를 팔지 아니하면 뭐가 생기지 않는다? 절대로 귀한 진주는 생기지 않지요. 그러면 모든 소유를 팔 위인은 없잖아요. 여기서 나온 게 뭐냐 하면, 대신 죽으심의 의미가 예수님의 모든 말씀 속에 다 포함이 된 거예요. “너, 되겠어?” “안됩니다.” “되겠어?” “안됩니다. 미쳤습니까? 내가 내 자신을 위해서 내 자신을 포기하게? 나는 내 자신을 위해서 포기된다할지라도 내 자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안되지? 대신해줄게.” 이게 바로 사도바울이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예수님의 성령의 역사 하에 우리에게 전한 복음입니다. 딱 한 거예요. 대신했다.

그 말은 우리보고 뭡니까? 너는 뭐다? 쪼다다! 이 쪼다야! 쪼다 대신 내가 해줬잖아. 그래서 복음은 뭐냐 하면, 대신 하심을 수용하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대신하심이 나를 치맛자락으로 덮어버려요. 그걸 가지고 사도바울은 어려운 용어로 ‘예수 안’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예수 안에 대해서 설명이 돼야 그 다음 비유가 성립되니까 예수 안의 원래 취지가 어떤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봅시다. 출애굽기13장1,2절 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 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내게 돌리라, 지난주일 낮에 설교했잖아요. 하나님의 일의 초점이 뭐냐 하면, 다시 내게로 회수할게. 남기지 않는다고 했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의 일이 우리에게 오게 되면 다시 내 자리로 내가 안 돌아오게 돼 있어요.

처음에 출발할 때는 내 자리로 돌아와요. 어떻게? 내가 이제는 교회 나간다. 예수를 믿게 되면 나는 전에는 천국 못가는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게 되면 나는 천국 가는 사람으로 내가 변한다. 야!! 이리 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 집에서 나갈 때는 좀 허전한 나인데 다시 집에 돌아올 때는 괜찮은 나로 돌아오잖아요. 그 집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합니까? 용납하지 않습니까? 그걸 지워버립니다. 그게 바로 종교에요. 항상 뭔가 신을 찾지만 결국 마지막 노림수는 뭐냐 하면, 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멋있어진 나, 결국 나는 끝까지 누굴 포기하지 못한다? 나를 포기 못하고 나를 향상하는 방법으로서 신을 도용한 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나는 교회 가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 라고 왔는데 집에 올 때는 ‘이 놈은 지옥가야 하는 놈으로 판명 났음.‘ 으로 돌아오잖아요. 그러니까 지옥 가는 사람으로 판명되게 하게 하신 그 능력이 그 사람을 천국으로 되려가지요. 천국 갈 때는 뭐한다? 팥빙수를 다 부숴요. 출애굽기 13장 1절에 뭐가 됐다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 가지고 백성들을 살려 놓고, 살려 놨다고 남의 집의 자식은 죽었지만 우리 집 자식은 살았다고 잔치 벌릴 만한쯤에 “내 놔!” “그 죽었다 살아난 자식 있잖아.” “예” “그거 내놔, 니 집 자식 아니야.” 누구 자식이라 했습니까? 하나님, 내 것이라 했어요. 이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리에요. 어차피 내 것 안 되기는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일생은 누구의 일생입니까? 내 일생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일생으로서 달라지 게 되는 겁니다. 계속해서 보톡스 주사 맞지요. 계속해서 외부에서 주사가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팅팅 붓지요. 퉁퉁 부어가면서 보톡스 주사 안 맞을 때는 이것도 짜증내고 저것도 짜증내다가 성령이란 주사가 계속 들어가게 되면 차에 박혀도 감사해야 되고, 사고 나도 감사해야 되고, 아버지 집나가도 감사해야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보톡스 주사를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내 인생은 내가 내 식대로 뭔가 예쁘장하게 꾸며보겠다는 모든 시도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누구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바뀌게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태복음 13장 45절의 말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드디어 해석합니다. 여기서 천국은 누굽니까? 예수님의 나라, 아들의 나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러니 해석이 어떻게 됩니까? 지금까지 해석은 좋은 장수를 누구로 여겼습니까? 우리 자신으로 여기고 싶어 했지요. 그렇지요? 내가 장사해서 내가 천국을 알아 모셔가지고 그래서 내가 괜찮은 존재돼가지고 그래서 당당하게 천국가고 싶어 했잖아요.

그런데 아까 출애굽기13장을 거쳐 오면서 우리의 존재는 압수당한 거예요. 다시 우리 존재로 회수할 가능성 없어요. 그렇다면 여기 귀한 장수는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이 장수가 되고, 귀한 보석은 누굽니까? 바로 우리가 귀한 보석되는 거예요. 평생 동안 죄만 짓는 평생 동안 지만 생각하고 평생 동안 돈만 사랑하고 출세만 그리워하는 우리. 우리 보기에는 천하에 죄인이고 주님 보시기에는 진주가 되고. 그래서 딸 이름을 진주라고. 이거보고 진짜 진주가 되어라.

제발 훌륭한 장수되지 말고 그냥 진주가 되어라 말이죠. 이 진주의 값어치는 다른 사람은 몰라요. 아까 했잖아요.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뜨이지만 누구 눈에는 뜨인다? 예수님의 눈에 뜨이게 되면 이것은 천하의 창녀라도 천하의 강도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니가 오늘밤에 낙원에 가리라는 귀한 진주가 되는 겁니다. 해석 풀어보니까 쉽지요.

누가복음2장 한 번 봅시다. 이 대목을 보면 정말 울컥하는 감격을 느껴요.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땅에서는 그 다음에 뭡니까? 분명히 성경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로 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이걸 얼마나 성질 급하게 해석하는지 땅에서 기뻐하는 사람들, 이렇게 해석하고 싶어 하잖아요. 땅에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고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그러니까 누가 기뻐해요? 우리가 기뻐하는 게 아니고 어설픈 우리를 구원해 놓고 기뻐하긴 누가 기뻐합니까? 주님이 기뻐하는 거예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은 땡잡았다 이 말이에요. 내가 나를 얼마나 흐뭇하게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흐뭇하게 보느냐가 이게 관건입니다. 구원의 관건이에요.

우리는 머리에 새치만 해도 스스로 자포하잖아요. 뽑으나 마나 하는데. 우리의 기쁨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되어야만 기뻐요. 그런데 주님은 이게 퍼런 머리인지 벌건 머리인지 물들였는지 관계없어요.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기뻐하심을 입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태어났다가 강도질 12번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모든 코스가 강도입장에서는 지저분한 인생이지만 전과자지만 주님보시기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 비밀을 누가 알랴. 이 비밀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게 정신 홱가닥 바뀔 정도가 아니면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성령을 받아야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내 스스로 기쁨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학대했습니까? 채찍질하고 못살게 굴었어요. 행동 똑바로 해 이 놈아! 그렇게 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너를. 이러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벌세우고 끓어 앉히고 성경 보게 만들고 기도해도 모자라. 2시간 해놓고 1시간 더 해야 돼. 뭔가 늘 미흡했어요. 스스로 귀신들린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매일. 아무리 교회에 퍼줘도 돈 가지고 퍼주고 봉사해도 영, 성에 안 차요. 그것은 방향이 잘못돼서 그래요. 방향이. 주께서 기뻐하심을 입으면 되는데 지가 자기 스스로 자기한테 자족하는 인간되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까 이것은 결국은 교회 가서 도 닦는 식 밖에 안돼요. 참, 도 닦는 사람 많이 왔다 갔지요. 교회는 도 닦는 곳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기껏 하는 게 도 닦는 것밖에 배운 게 없는 모양이라. 평생 교회 다니면서. 자기 관리하는 것 밖에 몰라요. 자기 관리 하지 마세요. 해도 괜히 자기에게 영광 돌아오기 때문에 하지 마세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면서 이 찬송을 누구보고 했느냐 하면, 일당 받고 밤샘 근무하는 그 당시의 양치는 목동한테 이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기에 이것은 비정규직 아닙니까? 비정규직이거든요. 세상에서는 아무 희망 없는 낙이 없는 인간인데 기뻐하심은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빨리 가서 누굴 보라? 구유에 있는 어린양을 보라 했지요. 자, 그럼 여러분에게 문제 하나 내보겠습니다. 본인이 기뻐하심을 입은 스스로 자기를 기뻐하는 자가 아니고 예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뭐냐 이 본문에 의하면 진짜 하나님에게서 기뻐하심으로 구원받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누구를 만나게 해주십니까? 바로 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 그 아기 예수가 자라서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지요. 예수님의 일상과 만나게 하고 매치시켜 주는 그런 기회로 그 사람에게 허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목동은 자기 본 걸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자기가 그 때 천사를 본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일단 보여준 거예요. 미리 보여준 예고편에 지나지 않은 거예요. 예고편보고 영화다 봤다고 우기면 그건 안 되지요. 제가 십자가마을에다가 설국열차라는 평을 올렸지요. 그런데 광주 김 을수 집사님은 그 평을 보고 안 볼란다고 하는 거예요. 왜 안 보느냐 하니 그거 별 재미없겠네. 하는 거예요. 재미없기도 하고 평에다가 줄거리를 써놨으니까 봐도 뻔하다는 거예요. 그래도 보게 되면 또 달라요.

성경보고 예수 이렇다 하는 거하고 실제로 기뻐하심을 입고 실제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그 대신 죽으심이 확 들어올 때는 이것은 그야말로 죄 용서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지 다른 세상 희망 같은 것은 그런 것은 줘도 그만이고 안 줘도 그만이죠. 소용없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하는 모든 것은 이처럼 전체가 하나로 정립되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가 하나로 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복음으로 연결되게 돼 있습니다.

그 다음의 비유, 13장 비유는 장수는 예수님이고 보석은 누구라 했지요? 죄인 우리이고, 그 다음에 47절 봅시다. 아까 해설했지만 다시 한 번 설명하면, 앞에 천국은 이라고 했을 때, 천국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사물, 어떤 실체 이런 걸 기대하는데 예수님이 하는 천국이라 하는 것은 이건 하나의 기능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작업이에요. 아파트를 지어 놓으면 그게 아파트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보기에 아파트는 뭐냐, 지어 놓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 작업 과정, 그게 바로 아파트에요. 약간 억지스런 예지만, 그렇게 예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예도 억지스러우니까.

천국은 기능이다. 액션이다. 그냥 어떤 행위다. 어떤 행위?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는 행위, 그 행위는 제가 합니까? 누가 합니까? 집사님이 할 수 있어요? 누가 해요? 오직 예수님이 하시지요. 그래서 ‘천국은 예수님의 행위다.‘ 이리 보면 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천국이 여기서 몇 킬로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반칙이에요. 그렇게 묻는 게 아니에요. 행위인데 천국이 하늘나라 몇 층에 있습니까? 물으면 안돼요. 왜? 예수님의 행위니까.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고 주님의 행동이 나타나면 고게 천국이에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죠. 사실은 그것도 약간 잘못됐지요. 모신 곳이 아니고 지금 예수님이 믿어지는 그 현상, 상황 자체가 천국이라니까요. 왜냐, 그 안에서 그 사람은 자기 면류관도 반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니까. 그리고 내 인생은 결코 내가 꾸려 놓은 인생이 아니고 내가 짜놓은 그런 천이 아니고 주께서 한 올 한 올 한 땀 한 땀 주께서 하루, 하루 매일같이 꿰맸습니다. 하는 그걸 인정하는 거예요.

차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박아서 좌석이 45도로 뒤틀어지는 그런 식으로 주께서 작업을 하시고 본인은 깜짝 놀랐겠지만. 그것이 주님의 작업이라면 우리의 면류관도 반납해야죠. 만약에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그런 일을 당한 부흥사 같으면 자랑합니다. “내가 말이야, 죽을 뻔 했는데 그 순간에 기도를 했더니만 주께서 주의 종이 되어라.” 이런 음성이 들려와서 그 때부터 여러분한테 부흥회 하니까 돈 내라 이 말이죠. 그런 것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도 자기를 섬기는 거예요.

물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그것을 뭐로 본다? 그걸 죄로 간주하도록 조치하십니다. 내가 그 때 참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데 기적적으로 온 가족이 다치지 않아서 그걸 자랑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자랑하는 것도 어쩌면 나를 더 사랑했던 나의 욕심의 일환이었어. 라고 성령이 오게 되면 그걸 고백하는 겁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어떻게 한다? 대신 죽으심. 출애굽기13장 1절, 어린양의 죽음으로서 살아난 그 인간은 더 이상 그 집안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내 놔! 내 놔! 내 꺼야. 데려간다는 것처럼 주님께서 피 묻는 손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대신 우리의 인생을 몽땅 자기 소유로서 전환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도 만만치 않지요. 그 괜찮은 것도 내 인생인데, 또 우리는 우리 소유로 전환시킬 때, 때치! 하고 매일 우리 뜻대로 안되도록 손을 때리는 그 작업을 하면서 다시 주의 것으로 날마다 전환시키는 작업, 그 작업 그 행위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액션 지금도 일어나는 액션이에요. 거기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대라고 하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를 들 수 있는데, 간단히 하면 예수님께서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줬잖아요. 그러니까 그 천국 갈 사람이 뭐라 합니까? 제가 언제 주님께 마실 물을 줬지요? 천국 가는 본인이 이야기해요. 저는 주님한테 마실 것을 준 적이 없는데요. 인생자체가 이미 주님의 인생이 됐기 때문에 니가 꼭 알 필요는 없는 거예요. 내 인생 내가 다 몰라요.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지, 기억 안하고 싶은 것은 다 잊어버려요. 시시한 거 다 잊어버린다고요. 아까 차타고 오시면서 가로수의 잎이 몇 개지요? 모르지요. 분명히 오면서 가로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나뭇잎이 있는데 몇 개 인지는 모르잖아요. 왜?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냥 주님께서는 오시는 그 가운데 가로수의 잎을 지금도 파릇하게 여름비를 맞게 하잖아요. 욥이 잘못한 것은 그거였습니다. 모든 의미를 자기주의로 의미를 부여한 거예요. 왜 자꾸 저한테 고난을 주십니까? 따졌거든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답변이 황무지에 비가 내리는 것을 니가 이를 아느냐, 이리 나온다고요. 저 쪽 농가에서 염소새끼 키울 때, 니 있었나? 이리 하는 거예요. 답변 자체가 나와 무관한 답변을 해버려요. 그러니 욥이 할 말이 없지요. 그것처럼 니한테 고난이 간 것은 너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의사가 나의 뜻이었다. 와, 내 뜻이 니한테 간 것이 아니꼽나? 싫어? 천국 안 갈래? 이리하는 거예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입이 백 개 있으면요, 백 개 있어도 소용없어요. 지 할 말은 다해요. 자기는 차라리 죄를 뒤집어쓰고 요새 같으면 담요 뒤집어쓰고 피해요. 주여, 잘못했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그 잘못됐다는 욥이 바로 친구를 위해서 친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도록 뭐한다? 대신 고난 받은 인생으로 주께서는 그걸 작업하시는 거예요. 사용하시는 겁니다.

아까 사도바울이 고생 많이 했지요. 사도바울이 고생함으로서 덕은 누가 봅니까? 우리가 덕을 보잖아요. 그게 주님께서 활용하신 방법이에요. 지금 더운데 성경공부 하지만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을 수가 있어요. 이익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이걸 또 노리면 안돼요. 노리면 또 전도 하나 했다고 자랑 해 싸서 꼴 보기 싫어요. 우리도 모르게 언제 물을 드렸습니까? 언제 배고플 때 밥을 드렸습니까? 할 정도로 우리 인생 전체를 통째로 뭐로 바꾸느냐 하면, 주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으로 바뀌어져야 하겠지요.

자, 49절에 한 번 봅시다.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제일 앞에 세상 끝이지요. 세상 끝이라 했다 말이죠. 어떤 여자 경찰관이 있어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데요. 여자 경찰관이 결혼해서 아기가 있었는데 남편이 자살했어요. 남편도 경찰이었는데 음주운전에 걸려가지고 옷을 벗고 강제로 퇴직당하고 다른 직업을 하다가 돈을 못 벌어오니까 여자 경찰이 나가라 해서 나가서 죽었어요. 자, 이 여자의 끝이 뭐겠습니까? 이 여자 경찰의 끝은 아직 끝이 아니에요. 뭐가 있기 때문에. 아까 했잖아요. 존재라는 것은 뭐가 있어야 된다? 아직도 쥘 만한, 내가 아직까지 살아야 될 이유가 있을 만한, 그게 아직까지 있을 때는 이 여자 경찰은 끝은 아니에요. 그런데 만약에 아기마저 없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끝이라 하겠지요.

제가 이 예를 든 것은 이 끝이라는 것은 지금 끝이 아니고 우리가 끝이라고 예상한 그 끝만 우리는 끝이라고 오해할 뿐이라는 말을 제가 드리고 싶어요. 인간의 끝이라는 것은 내가 지금 예상한 끝이에요. 이거 없으면 나는 죽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끝은 인간의 끝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과 연결된 끝이에요.

마태복음 13장 49절에 나오는 끝이라 하는 것은 우리 쪽에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개입시키고 주입시킨 끝이에요. 그 끝은 뭐냐 하면, 내 사랑 끝날 때 끝이에요. 내 목숨이 끝나는 게 끝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나 있잖아요. 이 나가 죄인임을 드러낼 때, 끝입니다. 끝은 뭐냐, 곧 십자가 대신 죽으심입니다. “봐라, 이 피 흘림이 사실은 하나님한테 내가 받을 게 아니고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십자가다.” 따라서 끝은 따로 있다는 거예요.

끝은 우리가 상상하는 꼬이는 모든 끝이 아니고 끝은 의외로 담담하고 아주 냉철해요. 그냥 예수님 십자가 죽으심이 끝이에요. 그래서 제자들도 끝을 몰랐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데 성령이 오니까 제자들이 그 끝을 알게 된 거예요. “아, 우리는 탱탱하고 기분 좋게 살아있어도 이게 끝이라는 사실, 왜? 십자가의 피를 알게 되면 우리는 기분 좋게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리고 맛있는 음식 먹어도 우리는 항상 어디에 속했다? 이미 내가 죽어버린 내가 끝에서 우리는 천국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바로 인간이 상상도 못한 행복이잖아요. 끝을 미리 알게 된 행복을 주께서 십자가로서 이미 우리에게 주려고 준비해 주셨다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 끝에 우리가 의인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의인되려고 노력한 것도 다 소용없었는데 대신 죽으심으로 의인으로 삼아 주셨사오니 이 은혜를 이 축복을 세상 어떤 것과 바꾸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20130829-마13장(진주)43강- 이 근호목사.hwp (38.0K),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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