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6-삼위일체와 어거스틴
201309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6-삼위일체와 어거스틴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30910a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6-삼위일체와 어거스틴
(강의:이근호 목사)
어거스틴의 신학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어거스틴은 354년에서 430년까지 살았다고 교재에 나와 있는데 어거스틴이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은 천재적이라고 하거든요. 천재적이라 하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그전에 여러 사람들의 책을 보고 공부를 많이 했겠지요. 그래서 자기 생각을 거기다 정리했거나 덧붙였거나 했으니까 그 정도만 해도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전에 어떤 신학이 있었는가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거스틴 이전에 삼위일체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삼위일체 할 때는 회의부터 니케아회의(325년),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 에베소회의(432년), 칼케돈회의(451년), 이 네 가지 회의 안에서 삼위일체는 정립이 됩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은 비슷한 동네인데 지금의 이스탄불이지요. 에베소는 터키 지역이고, 칼케돈도 터키 근처 지방인데
삼위일체 형성과정에서 흘러가면서 삼위일체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억할 때는 청군, 백군으로 나누는 게 이해하기 쉬워요. 니케아회에서 우리 편에 아타나시우스가 좋은 편이고, 나쁜 편은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겠지만 아리우스.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좋은 편은 그레고리우스. 대표자는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고 그 다음에 형님이 있어요. 형님의 친구가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우스, 갑바도기아 세 신학자. 나쁜 편은 아폴리나리우스. 에베소회의에서 좋은 편은 키릴, 나쁜 편은 네스토리우스. 칼케돈에서 나쁜 쪽은 유티케스, 좋은 쪽은 레온티오스.
우리의 관심사가 뭐냐 하면, 왜 이 사람들은 나쁜 편이 되었을까를 이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는 건 아니에요. 아리우스가 어떤 이야기하면 그건 아니지 하고 나오는 거예요. 정통되기 쉽지요. 그럼 네 의견은? 내 의견은 이야기 안 해. 하여튼 너는 아니야. 네스토리우스가 이야기하면 그건 아니지. 그래서 시작을 아타나시우스가 뭘 이야기했는지 보다도 아리우스가 뭐라고 이야기했는가를 생각하면 돼요.
이러한 신학의 경향을 밟아서 나중에 어거스틴이란 사람이 왜 기독교에 중요하게 되었느냐 하면, 루터가 좋아해서 그래요. 개신교에서 중요한 사람은 사도 바울의 정신을 어거스틴 이어받았고, 어거스틴에서 점프를 심하게 해서 루터, 루터 다음에 캘빈. 캘빈 다음에 신학은 없어요. 루터, 캘빈 다음에 세월이 600년 지났거든요. 신학, 없습니다. 그걸 도그마라고 해요. 이미 개신교 신학은 확정되었기 때문에 뒤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 그것은 캘빈에 의해서 이단이야. 이렇게 규정짓는, 캐논, 도그마, 교리라 하는데 정통교리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학은 발달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신학이라 하는 것은 그 시대의 맞춤이거든요. 어제 뉴스에 보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패션쇼를 하는데 한복 입고 런웨이를 걸었어요. 그러면 우리나라의 한복의 정통은 박근혜 한복입니다. 왜? 그게 도그마기 때문에. 설마 박근혜 대통령 한복이 그렇겠습니까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그 당시에 입었던 신학은 세월 달라져도 바뀌면 안 돼요. 캘빈의 교리는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미 모든 것이 종결되었어요. 개혁주의신학이라 하는 것은 말로는 날마다 개혁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캘빈주의신학을 그 시대에 맞추어서 적용하는 거기서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타나시우스가 뭘 했는지 우리가 모릅니다. 다만 이쪽 아닌 것을 하면 돼요. 아리우스가 뭘 했는가? 아리우스가 성경의 맏아들을 거론했어요. 예수님은 맏아들이라는 겁니다. 보통 집안에 맏아들, 장손이 있잖아요. 맏아들은 분명히 맏아들이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전에 니케아 325년에 뭐가 유행했느냐 하면, 프락시아스, 그 앞에 노에티우스, 사벨리우스, 이런 사람들이 등장했거든요. 이 세 사람의 특징이 있는데 [유주론]이라 합니다. 유주론은 유일하게 주님만 계시는 이론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유일한 하나님만 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노에티우스, 프락시아스, 사벨리우스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는가? 예수라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이 아들도 되었다가 성령도 되었다가 하는 겁니다. 아버지는 뭐 되었다고 안 하는가? 원래 처음부터 아버지니까. 유주론은 유대교 계통에서 온 거예요. 그럼 그전에 유대교 계통에서 이 사람들이 그냥 지어냈는가? 그전에는 알렉산드리아학파라는 게 있어요.
이탈리아 있고, 아드리아 반도 있고,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해서 아래쪽과 위쪽이 나눠지거든요. 위쪽은 마케도니아, 아래쪽은 아가야. 여기에 터키 있고, 지중해, 이집트 있는데 이집트 위에 알렉산드리아가 있어요.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 있고. 로마가 이 동네 전체를 다 먹었으니까. 지중해는 로마에 있는 내 집에 있는 호수 같은 겁니다. 지금은 이집트니까 남의 나라지만 그때에는 다 로마에요.
알렉산드리아에 유명한 신학자 투톱이 있어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란 사람과 오리겐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클레멘스와 오리겐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연결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유대교의 특징은 뭡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 이스라엘이 망했잖아요. 신은 몇 분입니까?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이라 하면 안 돼. 만약에 거기다 다른 신을 끌어당기면 그것은 이스라엘처럼 멸망당하는 거예요. 구약을 똑바로 보란 말이죠. 아무리 봐도 거기는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란 말이죠.
그럼 예수님은 뭐냐? 그 한 분 밑에 맏아들이죠. 종속론이라 하는데. 성부, 성자, 성령에서 성자, 성령은 절대로 아버지의 높은 자리를 넘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주론은 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노에티우스는 양태론이고, 프락시아스는 성부고난설, 십자가 죽었던 분이 바로 그분이다. 사벨리우스도 양태론과 성부고난설을 같이 이야기하는데 이 사람이 제일 유명한 사람이에요. 물론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 세 사람은 이단으로 분류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이단이라고 누가 이야기해요? 이단이라고 기존에 세력 잡은 자가 이야기해요. 정치적이지요. 결국 진리란 승자의 몫이 아닙니까. 이긴 자가 진리를 정하게 돼있어요. 여기서 만약에 기존교회 오면 튕겨나가겠지요. 이단 취급해서. 항상 세상이 그렇게 되는데.
하나님이 한 분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맏아들이다. 난 그걸 믿는다. 예수님은 맏아들이고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믿으면 되잖아요. 믿으면 이단인지 삼단인지 누가 압니까? 혼자 그렇게 속으로 간직하면 되는데 이걸 발설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왜 발설하느냐 하면, 발설을 해야 자기 권력을 쥘 수 있기 때문에.
강도의 신학이 어떤 신학입니까? 모르지요. “강도 아저씨. 오늘밤에 낙원 간다는데 당신의 신학이 뭡니까?” “몰라도 돼.” 그러면 그만이에요. 오늘밤에 낙원 가면 되지 신학 알아서 뭐 하려고요? 내 신학 베끼면 너도 나처럼 낙원 갈 줄 아느냐. 웃기지 마. 구원은 누구 몫입니까? 구원은 신학을 잘 갖추었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은 누구의 능력입니까? 예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오직 구원은 누가 했다? 그냥 예수님이 하신 거예요. 강도가 되던, 아리우스가 되던, 사벨리우스가 되던 관계없어요. 무조건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해서 그냥 나온 거예요.
사도 바울이 심지어 나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 했거든요. 사도 바울은 저주받는 자와 지옥 가는 자와 저주 안 받는 자의 차이는 오직 십자가뿐이었습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십자가로 끝나버렸는데 어떻게 십자가를 신학화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지요. 십자가를 신학화 하는 이유는 권력을 쥐겠다는 말이고 그 권력이 모이면 교회가 되고, 교회가 커지면 교단되는 거예요.
아리우스가 맏아들 이야기하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고 맏아들이니까 성경에서 아버지가 낳았으니까 자기가 태어나지 않는 그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아리우스 이 사람도 내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데 그냥 십자가 피 믿으면 될 건데 왜 따지느냐 이 말이죠. 아버지, 아들 왜 따져. 아버지가 제일 높고, 그 다음에 아들, 성령으로 줄을 세운 거예요.
그러니까 아타나시우스는 지 의견은 없어요. 무조건 이것 아니면 되잖아요. 수직적으로 성부가 제일 높고 그 다음에 성자, 성령으로 세우지 않고 나란히 세운 것이 니케아신조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같은 자리로 배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극장에서 J열에 1. 2, 3번이 되는데 아리우스는 뭡니까? J에 성부 앉히고, K에 성자 앉히고, 저 앞에 A에 성령 앉혔단 말이죠.
니케아신조에서 그걸 아타나시우스신조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게 영광 받고 찬양받아야 할 동일한 하나님이다. 이걸 정립한 겁니다. 그런데 아리우스는 말하기를 그렇게 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유대인 말씀을 완성하라 했는데 완성하려면 구약과 연결이 돼야 된다. 구약은 하나님은 분명히 숫자 ‘1’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3’으로 바꾸느냐 말이죠. 무슨 권리로 인간들이 뭔데 3으로 바꾸느냐 말이죠.
앞에 초창기, AD 100년경에 복음을 전하면 좋겠는데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고 하도 핍박을 받다보니까 나름대로 세력화시켰어요. 세력화시키려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하나의 줄로 묶어서 우리끼리라는 폐쇄적인 집단을 이룰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 집단에만 통용되는 어떤 원리와 원칙을 성경구절로 합리화시켰는데 그게 바로 신학이라는 겁니다. 우리끼리.
예수님께서 ‘우리끼리’를 인정하시겠습니까? 너희가 뭔데 계모임 하느냐 말이야. 어차피 하게 돼있지만 주께서 모였다하면 되는데 거기서 규칙과 법칙을 세우니까 규칙과 법칙에는 반드시 언어가 들어가잖아요. 삼위일체가 뭐냐 하면 언어싸움이에요. 하나님을 표현할 때 하나님은 실체, 본질, 인격. 이걸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이 이야기했어요. 터툴리안은 카르타고 이쪽 사람이에요. 터툴리안이란 사람이 투톱이에요. 옛날에 투톱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가 한 패고, 알렉산드리아에는 오리겐과 클레멘스.
이렇게 영지주의를 양쪽에서 공격한 거예요. 공격하면서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어요. 일단 교리 만들어야 되겠다.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전부 다 영에 취해서 성령 받았다고 휘둘려서 미치고 돌아다니고 방언하고 있으니까 도저히 안 되더라. 언어로 규정하자. 하나님의 실체와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인격을 적당한 용어로 통일시키자. 그전에는 헬라어로 했거든요. 히포스타시스, 우시아. 나중에는 라틴어로 바뀝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경향이 있는데 하나는 교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과 교리 만드는 주체가 누가 해야 해요? 노숙자가 합니까? 이게 교리입니다. 교리 정해졌습니다. 교리를 누가 정합니까? 역시 교인수가 제일 많은 교회에서 정해야 되겠지요. 그 교회가 로마교회에요. 로마교회에서 키프리안부터 교리 정할 때 로마교회가 먼저 법을 만든 겁니다. 법을 만들려면 주교 있어야 되지요. 주교 밑에 부제 있어야 되지요. 요새로 말하면 집사. 그 다음에 평신도. 주교 위에는 하나님. 이미 하나에 계급이 발생되지요.
계급은 법이 만들어질 때 나와요. 법은 관습, 관행에서 나옵니다. 우리 모임을 12시에 모여서 점심 먹고 합시다. 목사님, 헌법 몇 조에 있습니까? 그건 우리끼리 편리해서 관행입니다. 그럴 리 없지만 여기서 한 이천 명 모였다 하면 우리끼리 하는 게 안 되지요. 법으로 정하세요. 12시입니다. 정해졌잖아요. 관행이 관습이 되고 그 다음에 법이 되지요. 법으로 해놓고 그 다음부터 왜 12시 반에 오십니까? 당신은 분위기 흐리니까 나가세요. 이것은 관습이 법이 되면서 처벌기준이 되지요. 처벌하기 위해서는 경찰기능을 또 해야 돼요. 여기서 계급이 생기는 겁니다.
다시 물을게요. 주님께서 강도 구원할 때 “너, 집사야?” 물었습니까? 안 물었지요. 그러면 그 당시 강도, 창기, 간통하다 잡혀 구원받은 사람들은 아직 교회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면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디모데전후서에 나오는 것처럼. 너, 목사 말 안 들었으니까 지옥 간다. 그게 될까요, 안 될까요?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대로 집사 된 자는 술에 인박히지 않고 하고 나오지요. 그럴 때 집사, 장로 된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이 목사, 집사, 장로 말 안 들으면 지옥 간다고 그것 하라고 사도 바울이 직분 정했습니까? 성경에 보면 복음을 위하여 네가 달려갈 길을 달려가라. 복음이죠. 사도 없어도 그 사람들 다 계급 만들었어요.
그럼 사도가 가서 “고린도교회, 계급 있나? 조직돼있나? 그러면 교회야.” 이랬어요? “너희들 사도 있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갈 필요 없네.” 이랬습니까? 편지를 왜 보낸 거예요? 그들은 다른 예수를 전하고,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그들은 다른 영을 전하지요. 아직까지 성경이 완료되지 않았으니까, 사도가 있으니까. 그러면 그들을 향하여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을 전한다고 할 때 그렇게 외치는 권위는 누굽니까? 사도잖아요. 에베소에 보면 사도는 주님께서 교회 세울 때 예수님이 돌이 되고 그 위에 뭐가 세워지고? 선지자와 사도.
특징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본 사람이거든요. 부활을 봤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능우 집사님이 그런 사람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보고 있는데, 뭐. 그분은 며칠 전에 돌아갔어. 아니 해운대에서 내가 봤어. 부활했나? 부활을 봤다는 게 뭔 뜻입니까? 이제는 사람이 겁난다, 겁 안 난다? 사람이야 원래 돌아다니고 눈에 보이는 거,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에요. 테레사 수녀 착한 일 한 것 중요한 거 아니에요.
뭐가 중요합니까? 예수님이 지금 살아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살아있기만 합니까? 어디 박물관에 계시는 거예요? 투명유리 안에. 살아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활동하겠지요.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 사도거든요. 이 사람들이 그들이 활동하는 게 아니고 자기 활동은 죄밖에 안 되고 누가 활동한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셔서 내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주께서 활동한 것의 목격자로 살아계신 주님을 믿읍시다. 이게 사도란 말이죠. 사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쓰여지잖아요.
말씀을 누가 전해야 됩니까? 말씀 스스로 전하는 겁니까? 어느 쪽이에요? 말씀을 전하는 담당자가 있어요. 예수님의 영, 성령이 말씀을 전하는데 목사가 지가 전했다고 하면 안 되지요. 목사나 사도가 해야 될 것은, 내가 말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성령께서 나에게 작용한 것처럼 성령께서 당신들에게 믿게 하실 때만 믿어지니까 모든 영광과 찬양을 성부, 성자, 성령에게 돌려라 이 말이거든요. 그게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게 삼위일체입니까?
삼위일체란 언어의 문제에요. 숫자로 ‘3’이잖아요. 3과 1, 둘이 들어오는 거예요. 이건 성경에는 없어요. 고린도전서 마지막에 사도가 인사할 때 어떻고 저떻고. 삼위일체를 만들 이유가 없다니까요. 그래서 기존의 학자들은 또는 교회에서 이렇게 해요. 우리가 삼위일체를 만든 게 아니고 이단들이 나오니까 이단 대비하다보니까 결과물로 삼위일체로 정립이 되었으니까 이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틀린 말은 아닌데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결과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를 사용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이단이고, 어떤 사람이 이단이 아닌지 가려낼 수 있습니다.”라고 우리가 사용하는 순간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아니에요. 왜? 결과라 했는데 그 결과를 우리가 원인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논리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쉽게 하겠습니다. 남편 죽고 엄마가 딸을 예쁘게 잘 키웠습니다. 그럴 때 엄마가 하는 말이, “제가 키웠습니까? 지가 알아서 크다보니까 그렇게 됐지.” 결과로서 예쁘다는 거예요. 결과로서 예쁘면 엄마로 챙길 건 하나밖에 없어요. 쟤가 미스코리아 진 되는데 나는 그동안 헌신하고 봉사했는데 이것도 엄마로서 해야 될 결과입니다. 이것만 하면 돼요. 그런 의미에서 삼위일체가 맞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게 틀렸느냐 하면, 내 딸이 예쁘게 됐잖아요. 됐으니까 그 딸로 앵벌이 한다든지 이 딸은 내가 키웠다고 나오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가 그 딸의 원인자로서 등장한 게 돼요.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결과론적으로 세운 결론이라 했지요. 교회가 사람이 그걸 사용하는 순간 누구를 배제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배제하는 거예요. 저걸 써먹으면 우리 교회는 정통적인 이단 안 되는 교회 되겠다고 써먹는 순간 그 사람은 그리스도 하는 일을 훼방하는 이단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차이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잘 아셨겠지요. 삼위일체를 거론해서 우리 교회는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사람은 남고, 나머지는 가세요. 그런 주장할 때는 이미 그 사람이 이단이에요.
삼위일체는 언어적인 조합입니다. 3이 곧 1이고, 1이 3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말이 안 돼요. 처음에 3이 1 되었어요. 나중에는 1이 3 되었습니다. 처음 초대교회 때 유스티누스 같은 사람, 최초의 신학자라고 하는데,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을 한데 묶고, 남쪽에는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와 오리겐과 묶자 했지요.
그전에 제일 먼저 유스티누스가 로고스를 주장했다고. 문제 시작됐습니다. 삼위일체에 내내 흐르는 것이 로고스에요. 로고스를 제일 먼저 언급한 사람이 유스티누스에요. 나이도 초창기 사람이지요. 로고스를 언급함으로 말미암아 보통 사람은 교회 와서 누굴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지요. 그럼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은 몇 분이에요? 하나님은 분명히 한 분이지요. 만약에 로고스를 언급해버리면 어떻게 돼요? “목사님, 로고스가 하나님이에요?” 만약에 눈치 없는 얘가 묻는다면, 목사는 뭐라고 합니까? 로고스 하나님이지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로고스가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니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러면 얘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분명히 성경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 했는데 갑자기 한 분이 두 분 됩니까?” 그러면 목사가 어떻게 해야 돼요? 설명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초반에 교회가 유대교와 차별화되었어요. 유대교는 먼저 퍼졌거든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누구와 싸웠습니까? 사도 바울이 1차, 2차, 3차 돌아다닐 때 누구한데 핍박받고, 누구한데 돌 맞고, 누구한데 죽임 당하고, 누구한데 욕 얻어먹습니까? 유대교지요. 유대교 다른 건 다 맞는데 이것이 약간 틀리고. 이래서 되겠어요? 안 되지요. 전체 다를 바꿔야 되겠지요. 유대교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단이라 합니다. 그 유대교가 분명히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잖아요. 그들이 이단 된 이유는 단 로고스를 안 믿기 때문에 그래요. 구약의 모든 말씀이 육신이 된 걸 안 믿잖아요.
지금도 통영이고 가보면, “할머니 누구 믿습니까?” “하나님 믿지. 그것도 모를까.” “그럼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하나님 믿고 구원받지.” 지금 이 촌이나 초창기 교회나 인간 똑같아요. 하나님 믿고 구원받아요? 세상 모든 종족이 하나님 믿는데. 그래서 초기 신학자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안 보이고 보이는 형식으로 나타난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이 로고스다. 그런데 그걸 보이게 하기 위해서 로고스가 살, 육신이 된 거예요. 이게 또 문제에요. 로고스가 사람 된 거예요, 육신 된 겁니까? 이게 또 문제가 돼요. 이게 초기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삼위일체에서 큰 문제가 돼요.
여기에 나오는 아폴리나리우스가 로고스가 육신이 됐다고 주장했고, 뒤에 나오는 네스토리우스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아폴리나리우스란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이 사람이 돼버리면 로고스가 사람 돼버리면 결국 예수님은 괴물이 되거든요. 사람이면 사람이고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무슨 하나님이 사람과 합해서 그게 괴물이지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뭐야. 언제 사람이고, 언제 하나님이야. 자시나 축시에는 인간이다가 아침 되면 하나님 되고 그런가? 여기에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대번에 나와서 이게 어디서 이단적인 발언이야. 그걸 정리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이단 규정했는데
이 아폴리나리우스가 하는 이야기가, “너는 한 위격 속에 두 본성이 있다는 걸 왜 모르는가?” 한 인격은 하나의 본성만 갖는다고 생각하니까 결국은 로고스가 육신이 된 거예요. 이제 감이 오십니까? 육신된 것과 인간된 것이 차이 나지요. 아폴리나리우스는 생각하기를 성경대로 말씀이 육신이 돼야지 어떻게 로고스가 사람이 돼버리면 이건 하나님도 인격이고 인간도 인격이고 그러면 예수님은 두 본성에 두 인격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우스가 그것은 본성 내부적으로 교류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단 규정했습니다.
지금 교인들 가운데서 요새 교인들이 워낙 말씀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꼬치꼬치 목사한데 묻는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만약에 그걸 물으면 목사는 원리는 설명 못하고 바로 그게 이단이라고 신학교에서 배웠다고 끝나버려요. 그런데 그 교인이 묻는 것은 목사인 당신은 어떤 논리로 정리했느냐고 그걸 묻는데 우리 교단에서 그걸 이단으로 취급합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면 이단으로 취급합니다. 이러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 아는 목사는 참 편리해요. 이런 것 몰라도 예수님의 피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얼마나 수월합니까. 그것 안다고 구원받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지. 아멘. 모든 문제 해결되는 것 가지고. 괜히 큰 숲에 들어가서 괜히 목사가 구역 예배한다고 이런 것 가르치니까 이런 소리 안 했으면 질문이 안 나올 건데 이런 소리하니까 질문을 퍼대니까 그만 강의 종료. 그냥 넘어갑시다. 왜 이런 걸 하느냐 하면 요새 신천지가 설쳐대니까 방지한다고 어설프게 해보는 거예요.
아리우스는 맏아들이니까 서열이 있다고 본 거예요. 아리우스는 말하기를 하나님도 하나님이고, 아들도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 게 아니고 그 아버지 하나님과는 유사본질이라. 우리 쪽에서는 두 분 하나님 맞아요. 하나님, 하나님 이러면 듣는 하나님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내가 분명히 성경을 통해서 맏아들이라고 성자는 내가 낳았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족보도 몰라보고 이쪽도 하나님, 저쪽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 이러면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섭섭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그 섭섭함을 지우기 위해서 우리가 아예 서열을 정해드립시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그 아들 되시는 분은 좀 미안하지만 그분만큼은 아니라고 격을 낮추자는 게 아리우스 생각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우리는 신학교에서 그렇게 안 배웠거든요. 성부, 성자, 성령 모두 다 동일하게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한 하나님으로 같은 본질을 가졌다. 한쪽이 약해지거나 더 많아지는 법이 없고 동일하게 받는 겁니다.
왜 니케아에서 그렇게 했느냐 하면, 그전에 나왔던 노에티우스, 프락시아스, 사벨리우스가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잠시 아들로 된 거예요.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러면 예수님께서 참 바빴겠다. 왜? 십자가에 달리고 얼른 아버지 자리에 가야 돼요. 1인 3역을 한다고 배우는 한 사람밖에 없고 역할은 셋이니까 결국 한 역할 할 때는 다른 역할은 못하는 셈이지요. 그것은 어떻게 되느냐 하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거예요. 하여튼 말만 막히면 무조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에 속한다는 이런 말로 때우는 거예요.
아타나시우스는 바로 이걸 수직으로 한 게 아니고 동등으로 같은 자리에 그러니까 영화관에 갔을 때 A열에 9번, 10번, 11번 나란히 앉혀서 영광 돌리자. 참 삼위일체에 대해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네가 제대로 아는구나. 하고 기뻐하셔요? 나 같으면 의자 들고~. 그 말싸움을 왜 하느냐 하실 거예요.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하나님 영광에 있는 게 아니고 권력에 있어요. 교회가 어떻게 비전 가지고 커지느냐, 교회가 얼마나 권력으로 사회에서 큰소리치느냐? 여기에 있는 겁니다. 힘이에요.
광야에서 예수님 시험받을 때 마귀가 제시한 것은 이거에요. 예수란 양반. 나 힘 있다. 당신도 당신 가진 힘으로 해봐라. 이 세상에는 힘과 힘으로만 대화하는 곳이니까 돌이 떡 되는 힘,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힘 그리고 세상 모든 권력을 쥐는 힘. 이 동네에 일단 왔으면 힘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진리고 이 동네의 법칙이다. 그렇게 사탄은 예수님한테 이야기한 겁니다. 사탄이 그렇게 한 것은 이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빙자해서 종교를 빙자해서 뭘 노리고 있었습니까? 그 시대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이죠.
어제 주일 오후예배 전에 교인들이 궁금한 걸 물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안 물어도 관계없는데 물어주니까 고마워요. 어떤 학생이 묻기를 성경에서 약자를 돌보라하는데 약자가 뭡니까? 그래서 대답했어요. 자기가 대학생이니까 단체에서 예수 믿는 걸로 끝나는 게 약자를 돌보고 어려운 사람 돌보자는데 약자가 뭘 말합니까? 약자 없습니다. 왜? 강자 되고 싶은 사람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에요. 강자 다 소용없는 기라. 이런 사람이 약자라. 이 세상은 힘이 묻혀져야 언어가 돼요. 모든 말은 이 말로서 얼마나 힘을 뽑아낼 것인가, 아니면 남한테 꿀릴 것인가? 힘을 얻어내고 힘을 지키고자 하는 그 싸움에 언어들이 동원되는 겁니다. 언어가 나쁜 게 아니고 그 배경이 힘이 배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삼위일체가 그렇다고요. 오늘 강의하려는 게 어거스틴이거든요. 이 어거스틴이 힘을 뺐을까요, 안 뺐을까요? 어거스틴신학에 힘이 들어갔을까요, 안 들어갔을까요? 힘이 들어갔어요. 어거스틴은 순교하지 아니한 자의 주교의 세례는 무효라고 주장했던 그 사람을 그러니까 주교가 배도, 학대가 심할 때 “예수 안 믿을게요.”라고 한 그 주교가 다른 사람에게 세례줄 때 그 세례가 유효한가 할 때 그것이 유효하지 않다고 등장한 이단이 있었어요. 그럴 때 어거스틴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세례의 유효성은 개인의 도덕적 자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권위에 있다고 한 거예요. 이 말은 아무리 교회가 썩어도 직분만큼은 교회가 스스로 부여한 자리가 아니고 예수님이 부여한 자리기 때문에 그 세례는 유효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가 유효하다는 말은 뭔 뜻일까요? 참 어거스틴을 보게 되면 이 사람이 교회사에서 제일 존경받는 사람이거든요. 천주교, 기독교에서 다 존경받아요. 그런데 세례가 유효하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유효하다는 말은 세례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장에 나는 너희들에게 세례 주려온 게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 내가 가이오 집 외에는 세례 아무도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사도 바울은 뭐가 돼요? 그렇게 세례가 유효하다면 사도 바울은 뭐만 하면 돼요? 성만찬하고 세례식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가 전한 것은 뭐였습니까? 세례였습니까, 성만찬이였습니까? 십자가 복음 전했다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전하는 그 자체가 유효합니까? 그것도 유효하지 않아요. 복음 전한다고 믿는 게 아니거든요. 사도행전 마지막에 보세요. 사도 바울이 성령 받아서 복음 전하니까 사람들이 회개했습니까? “에이. 재주 없어.” 하고 가버렸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고린도후서 2장에서 내가 전한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향기고 안 믿는 자에게 악취라 했잖아요.
결국 사도가 움직인 것은 사도가 누구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고 구원을 이미 해놓은 것을 확인하고 점검하고 파악하는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 맞습니다.” 하고 확인해주는 기능만 했을 뿐이에요. 구원은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하신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에 오늘날 우리가 목사로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진리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누구 소관이에요? 주님 소관입니다. 그러니 자꾸 교회를 하려는 것은 삼위일체를 욕하면서도 사실은 힘으로 내 소유의 권력을 탐하고 싶은 우리의 본성이 거기에 개입되지 않았는가 생각해봐야 됩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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