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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46강, 47강) 하나님의 개입, 종교적 환경 130912강의[신학]

유튜브(46강, 47강) 하나님의 개입, 종교적 환경 130912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46강

47강

유일자(IP:116.♡.234.248)

13-09-16 08:12

46강-YouTube강의(하나님의 개입)1309012-이 근호 목사

제목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신과 인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상당히 따져보면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들은 당연히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시니까 내려다 볼 것이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니까 관찰하실 것이고, 관찰하면 연결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바로 그러한 생각자체가 실제 하나님이 제시하는 연결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른다는 그 원칙에 위배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은 어떻게 되느냐,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어떻게 끊어졌는가를 먼저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만들어 놓은 것은 따로고, 그 만들어 진 것과 만드신 분의 연결은 끊어져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지시를 어겼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끊어진 겁니다. 여기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네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한 인간이 어디 안에 포함되어 있느냐, “정녕 죽으리라” 하는 벌칙 조항 안에 인간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벌칙을 받아야 되고, 저주를 받아야 되고,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그 원칙, 그 말씀, 그 규칙으로 인하여 인간과 하나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결은 곧 지옥을 의미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릴 때, 심심풀이로 벌을 내리는게 아닙니다. 벌 내릴만한 뜻이 있고 이유가 있어서 벌을 내리고, 지옥 가는 것도 그냥 보내시는게 아니예요. 고생하라고 지옥 보내는 것이 아니고, 지옥 만들어서 사람을 꽉꽉 채워야 이게 원래 하나님의 품으신 뜻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불교에 유명한 지장보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지옥이 텅텅 빌 때까지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본인이 부처가 되어서, 성불 되어 극락에 가서 편안한 영생의 삶을 누린들 지옥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때 너무 가슴 아파서 천국 살아도 맘 편치 않다, 이말 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내하나 편한거 보다도 다른 사람이 지옥에서 고생하는것, 그걸 우선적으로 여겨서 지옥에 가는 사람 다 데려 오기 까지는 나는 극락가지 않겠다, 하는 대범한 얘기를 했습니다. 상당히 고귀한 성품을 가졌다고 사람들은 생각되겠죠? 바로 지장보살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왜 그런 사람이 지옥 갈까요? 그것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오늘 강의 제목처럼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의 개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고, 내안에 착한 성품이 있고, 양심이 있다면 이걸로 어떻게 어떻게 잘 다스리고 성화시켜서 진리의 나라 천국을 이루어 볼까?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지장보살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지장보살 개인만의 생각이겠습니까?

어느 날 교회 다니고, 또는 안 다니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밑바닥에 감추어 놓은 본성의 일부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그런 주장 속에는 “선악과를 따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 쪽에서의 개입, 하나님 쪽에서 제시한 말씀은 전혀 들어있질 않습니다. 그만큼 말씀을 외면했다는 거예요. 말씀을 외면하면서도 따로 천국을 생각하고 지옥을 생각하는거,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생각하는거, 이거 백날 살아도 지옥행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하나님과 인간의 그 천국을 가기 위한 연결은 어떻게 되는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알기는 다 압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 행함으로 천국에 못가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늘에서 사시던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천국에 보내 주시게 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거 틀린 이야기입니다. 어느 대목에서 틀렸냐하면, ‘우리가 천국을 못가니까 하나님께서 천국가라고 예수를 보내줬다’ 요 대목에서 잘못됐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가고, 못가고 이전에 우리는 천국에 가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가고 싶은데 못가고 있으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 보내시니까 그 하나님이야말로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은, 실은 우리의 아쉬운 것을 채워주는 우리의 이익과 관련된 사랑 개념이기 때문에, 이거는 참된 사랑 개념과 정반대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잘되 볼까 싶은데, 안되니까 하나님의, 신의 도움을 받는다. 이것은 바로 모든 우상 숭배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낸 취지가 뭐냐, 그 대목에 대해서 내용을 정리하면서 성경 구절 하나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3장 32~33절 보면,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여기 여우라 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나라의 실권자 헤롯왕을 두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3절이 상당히 난해 하니까 다시 한번 읽어 보면,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여주시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세관, 천국관 이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천국관이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하리니“ 라고 해서 그 길은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본적 없는 예수님만이 알고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외에, 다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천국 가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 아쉬웠는데, 기다리는데 주께서 채워 줄라고 길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우리는 천국 갈수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길도 없는 거예요. 천국을 넘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선 주제 넘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선악과 따먹은 후손이기 때문에 마땅히 저주 받고, 지옥가야 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나의 갈 길을 가야하리라. 오늘과 내일 모레는, 아주 결정적인 사건 하나를 일으켜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천국을 가지고 우리에게 개입하신 거예요.

그러면 그 길은 어떻게 들어서면 되느냐. 33절에 보면,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여기 죽음이 거론 됩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 내 갈길 하면, 그냥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시면 될 텐데, 예수님은 그 뒤에 덧붙여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그리고 죽을 때도 저 필리핀이나, 알래스카 거기서 죽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데 그 죽는 절차가 오늘과 내일과 사흘이라고 정해 놓은 죽음, 이게 바로 언약 안에서의 죽음, 이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 영적 세례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개입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갔던 오늘과 내일 모레 그 길을 주님께서 성취하셨고, 성취하신 것을 드러내는 예수님이 이런 길을 만들었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개입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과 내일 모레 죽은게 되고, 그 죽음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생각도 못한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

참으로 어렵고,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의 난해한 이야기를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살고 싶으냐? 그것도 소용없다. 죽고 싶으냐? 죽어도 지옥 간다. 그러면 어떠냐? 내가 죽었던 그 죽음에 합류되는 능력을 받게 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기 때문에 너는 영생을 얻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우리를 만나게 하는 개입의 현장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9-16 08:13

47강-YouTube강의(종교적 환경)1309012-이 근호 목사

종교적 환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베이컨이라는 영국의 근대시대의 철학자가 말하기를 인간에는 네 가지 우상이 있다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종족의 우상, 종족의 우상이라 이것은 뭐냐 하면, 본인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자기는 진리라고 우기지만, 태어난 가정환경이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기독교가 진리라고 간주할 것이고,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불교가 진리라고 여겼을 것이고, 이슬람교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슬람교도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나중 커서 보면, 내가 어릴 때 배웠고 교육받은 것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너무 남의 의견을 모르고 그저 부모가 시키는대로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라고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넓히면서 기독교 예수 믿는 자만이 천국가고, 기독교는 안 믿는데, 굉장히 착한 사람 같고, 기독교 안 믿고 예수 안 믿는 것 때문에 지옥 간다면, 그게 과연 진리와 정의로운 하나님의 조치에 합당할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걸 베이컨은, 이름을 종족의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우상 말고, 시장의 우상, 동굴의 우상, 연극의 우상해서 네 가지 우상을 언급을 했습니다. 시장의 우상이라 하는 것은, 시중에서 듣고 푸는 여론을 통해서 푸는 그것이 우리에게 우상으로 좌우하고, 동굴의 우상이라 하는 것은, 제한된 우상이고, 자기 사는 삶의 터전에서 우상이고, 연극의 우상이라 하는 것은 어떤 쇼를 한다든지 그런 것을 통해서 쇠뇌 받고, 교육받는 우상도 여기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종족의 우상이라든지, 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일종의 연극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일종의 연출된 것이니까요. 그런 우상이 과연 우상이다. 라고 단정 할 때는 본인만큼은 우상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만 언급할 수 있는 생각이겠죠?

이스라엘나라 같은 경우에 이스라엘이 멸망 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나라인데 멸망 했습니다. 그 멸망한 이유가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그들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긴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본인들, 유대인들에게 물어 보게 되면, 결코 그들은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신이라고 간주 한 적이 없고, 그러한 확실한 진리에 대해서 그들은 사투까지 하면서 지켜냈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니까 종족의 우상, 연극의 우상 이런 우상을 주변에서 추방한다는 자체가 실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기는 추방했다고 하는 교리나 논리 자체가 다른 사람보기에 이미 폭넓게 공부한 사람보기에 그 자체가 그 사람을 가둬놓는 우상적인 핵심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죠?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신학을 언급합니다만 신학이라 하는 것은 교회를 만듭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복음은 성도를 만들어요. 신학이 성도 만들어 내지를 못합니다. 신학자체도 개혁주의 신학이든지, 정통 신학이든지, 천주교 신학이든지, 삼위일체 신학이든지, 신앙고백 어떤 것이라도 우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세상 환경입니다.

따라서 성도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와야 되는데, 이 복음은 지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옵니다. 그럼 무슨 능력이냐? 바로 우상을 뜯어내는 능력입니다. 선입관적으로 갖고 있는 이 선입관을 우리 자체적인 노력으로 ‘나는 이게 문제야.’ 하고 반성해봤자 ‘이만큼 뜯어냈으니까 더 이상 나는 반성할게 없어.’ 라고, 하는 남아있는 그것조차도 시간 지나면, 반성거리가 된다는 것이 나중에 들통나게 돼있어요.

반성해봤자 나중에는 반성했다는 그 자랑거리가 자꾸 누적이 되기 때문에, 회개해봐야 회개했다는 그 자체가 자기 의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를 뜯어내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라든지, 유대교의 자기학대, 자기겸손, 자기비움, 자기낮춤이 다 소용없는 짖입니다.

괜히 그런 식으로 해서 스스로 자기가 기존 교회와는 다른 어떤 초월적인, 신비주의적인 그런 영적사람이라고 자부하게 만드는 새로운 교만을 유발시키죠. 옛날에는 기존교회 목사 시키는대로 했지만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서 진짜 복음대로 살아간다, 라고 주장할 때, 그것마저 뜯어내야 될 우상이라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다 이말이죠.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종교라는 우상을 어떻게 뜯어내는가, 그 능력은 바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가장 고상했던 순간, 가장 내가 스스로 자천할만한 거룩한 순간, 그리고 가장 의로웠던 순간, 그 순간들을 깊숙한 곳에 보관을 하게 돼있어요. 일종의 나만이 아는 지성소를 내 속에 만든 겁니다.

그 지성소를 주님께서 폭파 하십니다. 왜 그러냐하면, 성경에 있는 지성소는 거룩한 천사가 언약궤를 덮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자기가 스스로 만든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상해 보였던 순간을 담아놓은 나만의 지성소에는 거긴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은 나의 거룩한 심적인 모습을 되비춰주는 거울이 거기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날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죠. 그리고 자기 자신한테 하소연하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자기 자신이 신이 되는데, 무슨 수로 이것을 뜯어냅니까? 여기에 성령께서는 십자가 가지고 폭파시킵니다. 왜 십자가냐? 십자가는 모든 언약의 완성입니다.

아브라함언약, 이삭의 언약 모든 언약의 완성이기 때문에, 모든 언약의 완성이 십자가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구약에서 하나의 언약이 주어졌을 때는, 그 언약 때문에 우리가 뜯어내지 못한 죄들이 뜯겨져 나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언약에 의해서 육신의 자식을 의존하는 아브라함 자신의 죄뿐만 아니고, 아브라함은 모든 인간의 대표자가 되는 겁니다.

뭐니뭐니해도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 최고야. 역시 내 자식이 있으니 나는 복 받았어. 하는 잘못된 생각을 아브라함이 갖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바쳐라는 식으로 새로운 언약을 거기다가 개입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언약을 줌으로서 아브라함을 비롯해 나머지기 모든 사람의 죄를 아브라함언약이 도출해내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브라함언약에게만 해당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이삭 야곱이 되게 되면, 점점 더 거기에 해당되는 죄들이 새롭게 발굴이 돼요. 나중에 모세언약, 그 다음에 다윗언약 모든 것이 그때그때마다 발굴이 되는데, 다윗언약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있어야 되고, 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겁니다.

오늘날 현실 세계에 국가 없이, 왕 없이, 지도자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거든요. 그런거 조차도 전부다 우리는 언약을 모르게 되면, 죄 아닌줄 알고 있어요. 근데 그게 죄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분은 그럼 우리가 도대체 죄 아닌게 없고,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으란 말인가?

이게 바로 새언약, 십자가가 오게 되면, 뜯어내는 거예요. 가장 인간들이 스스로 종교적인 환경을 뜯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자기가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이게 뜯기지 않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 고상한 것, 깨끗한 것, 거룩한 것, 좋은 것, 하나님도 감동할만한 것, 하늘나라 들어갈 만한 요소 이런 것들을 다 쥐고 자기만의 창고를 만들어서 거기다가 지성소를 담아 놓으니까 이건 바리새인하고 똑같은 거예요. 딴건 손대도, 뜯겨나가도 이거는 뜯겨나가면, 나는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뭐냐 하면은, 같이 죽자는 이야기예요. 너는 살 자격도 없을 정도로 죄인이라는 겁니다. 죄인이 살고자 하는 자체가 근본적으로 마귀가 심어준 심성이고 그게 너를 망치게 한다는 거예요. 살고자 하는 것이 우리를 망치는 겁니다. 차라리 하루하루 주님앞에 끌려가면서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어떤 의도 우리한테 남아 있질 않는데, 살고자 하니까 자꾸 종교적인 환경으로 자기를 치장해야 되는 겁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능력은 그냥 지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몽땅 우리의 모든 것을 매일같이 삭제하고, 죽여 버리고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채워주고, 채워주고 용서를 발판으로해서 용서의 댓가로 우리에게 무상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없는데서 있게 하는 주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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