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강-YouTube강의(생존과 하나님)130905-이 근호 목사
44강-YouTube강의(생존과 하나님)130905-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44강-YouTube강의(생존과 하나님)130905-이 근호 목사
성경에서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냥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상대로 해서 ‘건져 줄게’ 가 아니라 어떤 틀을, 환경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히십니다. 덮어 씌우죠. 그 환경을 구원에 적합한, 구원을 설명할 수 있는, 좀 더 깊이 이야기 하면, 구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환경의 틀을 하나님이 따로 제작해서 우리에게 덮어 씌우는 겁니다.
‘너 거기 있어 내 건지러 갈게.’ 가 아니라, 너 거기 있어라. 내가 하늘나라에서 만들어진 그 틀을 가지고 우리에게 덮어 씌우면, 그 덮어 씌어진 환경을 통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따로 생각해놓은 구원이 우리에게 덮치게 되는 겁니다.
그걸 구약에선 광야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바로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라는 생활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 좋은 땅에 바로 넣어 주지 않고, 왜 광야라는 그런 환경을 거치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생각했던 하나님, 또는 구원에 대해서 이걸 교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이기에 그들은 구원과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교정이 되어야 되는가. 그들은 애굽에서 그들이 습득한 몸에 익힌 것은 생존이었습니다. 생존을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고 그렇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오해들을 하면서 애굽에서 그냥 무작정 나왔던 겁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따로 준비해온 생존과 관계없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 되기 위해서는 광야라는 틀 속에서 그들은 생존이 생명이라는 그런 생각이 삭제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싸우십니다. 백성들은 요구합니다. 우리에게 생존을 책임져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존하고자 하는 의식을 버리지 아니하면, 생명은 아예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그들 중 애굽에서 나왔던 사람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단지 두 사람 빼놓고는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나머지기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존의식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인간인 이상 살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생존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광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하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양식을 달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익숙했던 음식을 제공한 것이 아니고, 만나를 제공했습니다. 그 만나를 제공할 때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40년 동안 만약에 만나가 먹기 싫다고 안 먹어 버리면 달리 먹을게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구차 없이 만나를 주워 먹었는데 이 만나가 없는 날이 있어요. 광야에서.
없는 날이 무슨 날이냐.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날은 만나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만나가 없는 날을 통해서 그냥 기존의 보통날에 만나 주어 먹을 때 ‘그래 양식이야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 그 사고방식 자체를 이걸 완전히 교정해야 되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 만나를 먹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만나 주시는 그 하나님 자체를 위해서, 우리는 애굽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나왔다는 생각을 그들은 가져야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도와준다는 의식을 가지고 나왔지만, 광야 40년을 통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갖고 있던 그 새로운 뜻을 위하여 우리는 부름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 위주로 살던, 애굽에서 살던 사고방식을 버려야 되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욥기 1장 21절에 보면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자식도 빼앗고, 그리고 가진 재산도 다 빼앗았습니다. 그럴때 우리 같으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 자식 없이, 가진 것 없이 저보고 어떻게 생존하란 말입니까?’ 라고 생존문제를 거론하면서 하나님께 원망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걸 빼앗긴 욥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탄이었습니다. 사단은 분명히 빼앗아 가면 하나님께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고 욥도 그런 종류의 인간일 뿐입니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하나님 앞에 내기를 한 겁니다.
그런데 욥이 뭐라고 고백하느냐하면, 어이구 내 재산, 어이구 내 자식 10명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다가 주목하느냐하면,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라고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나됨의 주체라는 겁니다. 우리는 평소에 내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이 주체를 내가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내 가족과 내 가정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여전히 내가 쥐어야 되고, 사수해야 될 주인공과 주체는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모습을 사탄이 똑똑히 지켜보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요. 내가 어떻게 이 땅에서 밥 먹고 사느냐 그게 관심사가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가지고 어떻게 액션, 행동에 나서느냐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흥분할 것도 없어요.
지금 미국에 야구 메이저리그에 류현진 선수가 유명한 투수로서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청, 장년들은 류현진 선수가 1승 1승 보낼 때마다 어떤 희망을 느낍니다. 삶의 의욕을 느낍니다. 근데 이러한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류현진 선수가 한국을 대표해서 공을 잘 던지는 그것을 지금 13승 했는데, 14승, 15승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싶어 해요.
그리고 한번 1차 할 때마다 우리는 흥분합니다. 그것은 ‘나는 살아야 되겠다.’ 뭘 하기 위해서. 류현진 선수가 저렇게 공을 잘 던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살아야겠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1승 할 때마다 흥분하고, 만약에 1승을 못하면 실망과 좌절을 느낍니다. 우리는 세상을 볼 때에, 내가 더 살아야 될 것은, 내가 흥분할만한, 내가 기뻐 외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계속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세요. 욥은 자신이 (?)하고 싶은게 아니라, 욥에게 궁금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가지고 어떻게 주체자로서 이 세상을, 현실을 만들어가고 이끄시는가, 그게 욥의 믿음이었고 그것을 보고 사탄은 깜짝 놀라는 겁니다. 사탄이 오히려 좌절하고 실망하고 있는 거예요.
욥이 하는 이런 고백을 보고, 아니 보통 사람들은 다 자기 생존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야? 그게 사는 목적 아니야? 자기가 그리워하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는 더 살아야 돼. 나는 더 살아야 돼. 하는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평상적인 일상인데 욥은 말하기를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우리 같으면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그리고 주신 것을 빼앗아 가지 않는 하나님이라서 나는 믿고 싶어. 이것이 보통 인간인데 욥은 말하기를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신 자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를 주신 것은, 바로 우리가 생존해야 된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방해하는 거밖에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실 때, 만나를 주신 자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애굽에서 익숙한 그것을 가져버리면 우리는 생존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이용할 밖에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은 나의 세계, 나의 현실만 믿게 돼요. 그거는 사탄이, 마귀가 원하는 바입니다. 광야를 통해서 우리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보고자 하는 흥분에 휩싸이지 마시고 주께서 살아 있으면, 우리도 덩달아 사는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관계 속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죽어도 사는 영생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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