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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14] - [피 100] - 기준과 피강의[피]

[13 대구강의 14] - [피 100] - 기준과 피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14] - [피 100] - 기준과 피

13,09,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94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레위기 14장에 보면 두 마리의 살아있는 새가 나온다. 서로가 보기에도 서로가 아직은 살아있다. 그런데 제사장이 그 중의 한 마리를 흐르는 물에서 잡아죽인다. 그리고 피를 낸다. 다른 한 마리가 보니 자신은 아직 살아있고 동료 새는 이미 죽었다.

(레 1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14:2)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레 14:3)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레 14:4)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명하여 정한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레 14:5) 제사장은 또 명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레 14:6) 다른 새는 산 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 피를 찍어
(레 14:7)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산 새는 들에 놓을지며
(레 14: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칠 일을 거할 것이요
(레 14:9) 칠 일만에 그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 레위기 14장 !!

레위기 14장이 무슨 내용인고 하니, 제사장이 문둥병 환자를 진찰했는데 그 문둥병 환자가 깨끗하게 나았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신은 이제 건강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하면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저주에서 풀려나게 해주셨습니다"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그 티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옆에 계시면, "하나님 덕분에 이 사람이 나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덕분에 나았다는 그 티를 좀 내주세요"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승리의 'V'를 그리면서 "짜잔!" 하든지, 아니면 박수를 "짝, 짝!" 쳐주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모세언약' 이라는 것이다.

언약이 그렇게 중요한데, 즉 언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이 아닌 자기 택한 백성에게만 보여줄 때, 즉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런 언약 중의 하나가 레위기 14장에 나오는 것인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두 마리의 새를 잡아서, 물론 그때 새 두 마리는 모두 다 "이젠 다 죽었다" 라고 여겼을 텐데 말이다.

물론 한 마리는 죽는데, 흐르는 물 위에서 말이다. 그런데 다른 한 마리는 자기도 죽었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 죽었던 동료 새의 피를 다른 새의 날갯죽지에 발라서 들판에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그 피를 문둥병자에게 일곱 번을 발라서 "당신은 이제 정결해졌습니다" 라고 선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룩한 것까지는 아니고 말이다.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

이 대목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면, 일단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계시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인간 역사 속에 등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두 사람인데 말이다. 먼저 제사장이 등장하고, 그리고 불쌍한 문둥병 환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볼 때 문둥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 둘 사이에 하나님을 개입시키려고 하면, 인간의 아이디어로는 하나님을 끌어와야만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끌어오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할 때 방금 언약으로 한다고 했는데, 언약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약의 하나님이기에 말이다.

◈ 언약의 하나님 특징은?

그러면 언약의 하나님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택한 백성이 아니면 믿지 말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도 자리가 다 있기에 말이다. 요한복음 14장에 의하면 처소가 있는데, 그런데 만약에 처소도 없는데도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그냥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너는 지옥이야. 처소도 없는데 여기에 왜 왔어? 너의 자리가 없어"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반드시 처소가 마련되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의 하나님은 택한 사람만, 즉 처소가 있는 자만이, 다른 말로 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경우에만 해당이 되는데, 그 명단을 보고 언약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레위기 14장에서는 이 언약이 무슨 언약인고 하니, 앞에 두 글자가 붙어서 '모세언약'이 된다는 것이다. 즉 모세에게 준 언약이란 말이다. 다윗에게 준 언약은 다윗언약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준 언약은 뭔가요? 아브라함 언약이고, 이삭에게 준 언약은 이삭언약이라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내용을 여러분도 잘 아시는데(ㅋㅋ), 그리고 예수님에게 준 언약은 새언약인데, 즉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라는 것이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렇게 언약을 줄 때, 다음 한 가지는 덤으로 우리가 알아놓으면 좋은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언약을 주었을 때 모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았는가? 이익을 보았는가? 이렇게 언약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에게 주어지게 되면, 개인적인 육신의 삶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성령을 받은 자는, 개인적인 삶이 허용되지 않아 !!

그러니 성령이 사도바울에게 오게 되면, 또한 사도 베드로에게 오게 되면, 그들은 자기들이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성령이 왔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것이지만, 하지만 실제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이 저에게 질문하기를 "성령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라고 했는데, 그러면 저의 대답은 항상 한결 같은데, 즉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요소가 나에게 와서 나의 인생을 끌고 갈 때, 그게 곧 성령을 받은 것이고 은혜입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넓은 길로 가고 싶은데 그런데 좁은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물론 좁은 길로 가야만 영생이 있으니, 물론 따지고 보면 우리에겐 이익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이익이 무엇인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는 그 삶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 나는 넓은 길로 가고 싶어요 !!

20대에서 40대, 그리고 그 이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게 되면, 딱 한 마디로 말해서 '넓은 길' 이라는 것이다. 특히 20대의 경우에, 드라마나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되면, 남들이 갔던 그 길이 부러워서 다 따라가 버린다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자녀들을 보게 되면, 좁은 길을 찾아가는 자녀들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도 그렇고 말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좁은 길의 끝에 영생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자꾸만 넓은 길을 간다는 것이다. 남들이 가는 그 길을 말이다.

아무튼 이 언약이라는 것은, 그 언약을 받은 인간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세언약의 경우에, 모세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받은 모든 이스라엘이 누구에게 예속이 되는고 하니, 바로 모세에게 예속이 된다는 것이다. 모세 자체가 주의 이름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각 개인의 개성은 모두 다 있겠지만, 그렇게 모세를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그냥 말로만 따라갈 수는 없고, 지금 자기 개성을 저쪽 모세의 개성으로 가야하는 것인데, 그렇게 각자 자기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뜻과 자기의 뜻 사이에서 자기의 뜻이 포기되도록 강요를 당한다고, 그렇게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항상 주의 말씀에 의해서 자기의 것이 포기되는 쪽으로, 그렇게 자신의 매일 매일의 삶이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편집이 된다는 말이다.

◈ 모세언약과 제사법 !!

아무튼 이렇게 언약이 주어졌을 때, 모세언약의 중심이 무엇인고 하니까, 여기 레위기 14장에서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문둥병자가 나았다" 라는 것을 통고할 때, 진짜로 하나님에 의해서 나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말이다. 여기서 언약의 중심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그것은 '제사법'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제사법의 중심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곧 죽음인데, 그 죽음은 개죽음이 아니고 무슨 죽음인고 하니, 희생적인 죽음이라는 것이다. 즉 죽을 쑤어서 남을 주는, 그러한 죽음이라는 말이다. 고생은 자기가 실컷 해놓고 그 덕은 남이 보는 것 말이다.

◈ 대신죽음과 대리죽음 !!

신학에서 대신죽음과 대리죽음을 억지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굳이 구분할 필요까지는 없지 싶다는 것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대신죽음은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의 것을 몽땅 다 바치는 것이고, 그리고 대리죽음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남이 하는 일을 대신하기에 말이다.

예를 들어서, 대리운전을 하는데 있어서 자동차 주인이 그 대리기사와 같이 운전을 하는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는 뒤에서 편히 쉰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신죽음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나는 죽고, 너는 살아라" 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죽자" 라고 하는, 즉 "나의 죽음에 니가 동참하지 않으면 니는 국물도 없어" 라고 하는, 그것이 곧 대신죽음이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는 대리죽음이 아니라 대신죽음인데, 그런데 교회사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대신죽음이 아닌 대리죽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형님은 좀 고생하소. 덕분에 우리는 좀 쉽니다" 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에 과연 그러한 것이 있는가?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하셨는데 말이다. "주님 혼자 고생하고 우리는 덕이나 봅시다" 라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사도바울이 성령을 받고 그런 생각을 했는가? "주님 덕분에 나는 호강이나 좀 합시다" 라고 말이다.

◈ 사도바울의 경우에 !!

오히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라고 했고,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매일같이 나를 죽이는 식으로 이끄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가 무엇인고 하니, 빌립보서 4장에 나오듯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면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모든 일에, 즉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생을 실컷 하고도, 그게 기쁨과 감사의 열매가 된다는 말이다. 그게 곧 성령의 열매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모세언약이 여기에 비쳐서(구체적으로?) 나타나면 그게 곧 죽음인데, 어떤 죽음인고 하니, 희생죽음이라는 것이다. 그건 곧 대신 죽으심이고 말이다.

◈ 자유의 새 !!

그러니 레위기 14장에 나오는 이 문둥병 환자의 경우에 있어서 죽었던 새 한 마리는 무엇인고 하니까, 원래 새가 두 마리였다는 것이다. 동료 새는 죽었고,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그 새의 피를 자기 날개에 발라서 창공을 날아가게 되는데, "나는 살았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을 '자유' 라고 하는데, 창공을 향해서 마음껏 날아가는 그 자유로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자유의 새', 혹은 '새의 자유' 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그 새가 자유롭게 된 것은 바로 죽은 자기 동료 새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은 새의 피를 새에게만 바르는 것이 아니라 문둥병 환자에게도 일곱 번을 뿌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곱 번 뿌림을 받은 그 문둥병 환자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하는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의 영혼, 즉 자유로운 새의 정신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몸도 그러해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새가 A와 B, 그렇게 두 마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A에서 B로의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세언약이고, 그 모세언약 배후에는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리고 그 언약을 주신 주신 분이 곧 주님이고, 그 주님이 모세로부터 1400년 이후에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모든 과정을 새 두 마리로 미리 !!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의 모든 과정을 새 두 마리로 표현할 수 있는데, 즉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훨훨 창공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의 그 모습을, 여기 이 모세언약 안에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표' 라고 하는데, 즉 그렇게 미리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렇게 문둥병 환자에게 뿌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이 문둥병 환자가 새처럼 자유롭다" 라고 하는 말도 되겠지만, 이 모세언약이 새언약을 거쳐서 오게 되면, "예수님처럼 자유롭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말인가?

여기까지는 쉬운데,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실 때, 여기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 문둥병 환자가 예수님을 거쳐서 용서를 받게 되었다고 하면, 이 문둥병 환자는 역사적으로 보면 문둥병이라는 병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껍데기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실제 본질은 어디에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새언약을 거쳐서 보게 되면, 그동안 인류를 지배하고 있던 죄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죄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죄에서 지배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네" 라고 하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어? 옆집 아저씨가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런데 한 달 뒤에 깨끗하게 나았어" 라고 하게 되면, "정말 그래?" 라고 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러면 왜 우리 이웃 가운데 저주를 받은 사람이 생기고, 또한 거기서 나음을 받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과정을, 즉 우리가 죄에 갇혔다고 하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리고 두 번째로 그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개입으로 인해서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바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로서 이스라엘이 언약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말을 하고 보니 참으로 긴데, 그것이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즉 교회는 개인의 구원이 문제가 아니라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인가? 우리는 죄에 갇혀있고, 제 아무리 멀쩡하게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죄에 갇혀있고, 그리고 그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인간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을 해주고, 그렇게 희생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이 언약능력으로 우리가 깨끗하게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는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즉 "너는 죄에서 해방되었다" 라고 하는 말이다. 물론 죽을 때까지 돈에서 해방되는 인간은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돈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웃음이 피어나지,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난관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대구역에서 무궁화호와 KTX가 박았는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단순히 열차가 두 대 박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대체수단을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데, 고속버스를 타든지, 가까운 곳이면 택시를 타든지 해서 말이다. 그리고 돈은 나중에 청구해서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바리바리 사들고 온 할머니들은 어떠한가? 수중에 당장 돈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도착역에 아들이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중간에서 그만 오도가도 못하는데,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시골에서 바리바리 사들고 온 떡 보따리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어디를 가도 고생이란 것이다. 동창생이 열 명이 모여도 꼭 돈이 없는 인간이 먼저 말썽을 일으키는데, 그래서 이 세상 원리는 무엇인고 하니, 모여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이다.

◈ 다시 한번 핵심만 정리하면 !!

방금 한 것을 다시 한번 핵심만 정리하게 되면,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일하고 있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고 하니까,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달라. 그러면 하나님을 믿을 게" 라고 하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일을 할 때 어떻게 일을 하시는고 하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일을 했습니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희생제사' 라는 것이다. 즉 '십자가' 라는 말이다. 그러면 문둥병 환자가 불쌍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불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 즉시로 !!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무슨 내용이 나오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허다한 무리가 좇는 가운데 한 문둥병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께 뭐라고 하는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뭐라고 하시는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라고 하니,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 어려운데, 그 문둥병자가 사흘 뒤에 나았는가? 아니면 한 달 뒤에 나았는가? 약사들처럼 "이것을 식후 30분 뒤에 잡수시면 두 달만에 낫습니다" 라고 하면서 약을 조제해서 주었는가? 즉시로 나았다는 것이다.

(마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마 8: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 미리, 미리, 미리 !!

이게 어제 설교시간에 나왔는데,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말이다. 어떻게 말인가? 즉시로,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이렇게 정리를 해놓았는데, 여기에 '미리'를 집어넣어서, 즉 "미리 정하시고, 미리 부르시고, 미리 의롭다 하시고, 미리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하면 정답이라는 것이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미리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이 가능한고 하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시간성을 배제하시고, 성령이 알고 있는 시간성에다가 우리를 집어넣었기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일시에 다 받는다는 것이다. 즉시에 말이다.

쉽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되는데, 예를 들어서, 새우튀김을 하는데 그 소식을 새우가 듣고 미리 새우튀김을 하는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처음에는 살살 해주세요. 그리고 순서도 꼬리부터, 몸통, 그 다음에 머리 순서로 해주세요" 라고 하더라도, 주인이 그냥 새우를 튀김 솥에 넣게 되면 한꺼번에 다 튀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정하면서 튀기고, 또한 부르면서 튀기고, 또한 의롭게 하면서 튀기고, 그리고 나서 영화롭게 하면서 튀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한꺼번에 모두 다 튀겨버리신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통 채로 말이다.

◈ 이스라엘이 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오해는?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고 하니, 언약을 놓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오해가 있는데, 물론 인간들이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 단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들의 시간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순서대로, 즉 자기들이 인식하는 시간의 순서대로 점차 점차 이루어질 것이라고 오해한 것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그만 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하지만 목사님, 시간성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를 않습니까?" 라고 나오는데, 물론 그 말이 맞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시간성을 가지고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성령이 아니면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성령이 아니면 누구나 계속해서 자기 노선을 주장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것을 자꾸만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교재제목이 '피' 인데, 그 피를 더 이야기해보면, 교재 294페이지를 보자.

** 오직 피만 증거한다. 그를 대신해 죽은 피만이 자신을 자유케 했다고! 이 레위기의 원리가 성도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피의 위력만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것을 제거하신다.

◈ 문둥병 환자는 피를 증거해야 !!

그러므로 문둥병 환자의 경우에 "나는 나았다" 라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의해서 흘려진 피에 의해서 내가 나았기 때문에, 언약은 나에게 생명이다" 라고, 그렇게 언약의 중요성을 증거하라고 주님께서는 문둥병 환자로 하여금 문둥병 환자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피를 증거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교재로 쓰고 있는 책제목이 '피' 인데, 그런데 어떤 분은 피가 아닌 '피 복음'이 어떠냐고 하는데 말이다. 물론 그것도 나름 일리가 있는데, 단순하게 한 글자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런 책제목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 '피'가 역사 속에 들어가면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이 피라는 것이 역사 속에 들어갈 때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 지금부터 그것을 설명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이 '피 중심' 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데, 물론 하나님은 언약 중심인데, 그 알맹이는 피로서, 즉 피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에게는 피 중심인데, 그런데 그것이 땅에 내려오면 변질이 되고 만다는 말이다. 피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구원중심이 여전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피다" 라고,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분명히 피 중심인데,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자기 중심이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피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개념상 자기가 하나 더 체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도 그런 개념들 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 여러분을 잠시 대전시민대학으로 초대하면 !!

이번 토요일에 대전시민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하게 되었는데, 물론 강의제목은 '80인의 신학자' 라고 되어있지만, 사실 제가 강의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고 하니, "신학은 철학에 불과하고, 철학은 인간세계의 인간들의 모든 정신을 집대성한 것이다" 라는 것을 밝혀서, 그것이 복음과 어떤 차이점을 나타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믿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돈만 내고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제가 그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게 신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서서 신학이 나오게 된 철학까지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철학 이전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다신교(多神敎)가 있었는데, 즉 신이 여러 개인 종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신교 이전에는 '신들림'이 있었는데, 구약에서는 그것을 두고 악신이 들렸다고 하는데 말이다.

◈ 신들림 → 다신교 → 철학 !!

그러니 이러한 신들림이 다신교로, 또한 그것이 철학으로 점차 점차 구축이 된 것은 곧 인간 이성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성의 힘이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쉽게 말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따로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개가 짖으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들리는 소리로 자기 집 근처에 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맛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달고 쓴 것을 구별할 수 있는데, 그렇게 사람의 감각에는 각각 담당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코로 냄새로 맡는 것, 혀로 맛으로 느끼는 것, 그렇게 다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혼'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인데, 이제 슬슬 종교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지금 이게 철학자들의 주장인데, 인간이 영혼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형상, 즉 이데아의 세계라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 그것을 관념의 세계라고 하는데 말이다. 형상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성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 그것을 관념의 세계,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라고 하는데, 즉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말이다. 우리 생각에는 아주 똑똑한 사람은 종교를 버릴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를 아주 예쁘게 합리적으로, 즉 들으면 제대로 납득이 되도록 그들은 지혜를 총동원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십자가가 아니라면 !!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유대인들은 표적, 즉 기적이 일어나야 신이 있다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 헬라인들은 무엇인고 하니, 신과 인간 사이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지혜인데, 하지만 그런 기적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전혀 똑똑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도바울이 기적과 지혜를 두고 어리석다고 감히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의 피 흘리심, 즉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말이다. 죽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죽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든지, 그게 아니면 인간의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접하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 지식도 나중에 보니 그게 무엇인가? 그 원천은 신들림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것을 두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방언을 하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목사가 다독거려서 점차 이성적으로 만드는데, 그 이성 배후에는 '루사(?)' 라고 정신이 있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지시(?)' 라고 번역을 하는데 말이다. 이 정신이 바로 신의 발출(發出), 즉 신의 속성이 튀어나온 것이란 말이다.

◈ 인간은, 신과 떨어질 수가 없어 !!

오늘은 철학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니니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겠는데, 이렇게만 해도 어떠한가? 신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과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왜냐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다 혼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혼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 속에는 신의 형상이 들어있다는 말이고, 그렇게 신의 형상이 박혀있는 이상 여기에 마치 추적장치가 달린 것처럼 신께서 그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헬라인들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을 알되 !!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너희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의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영화롭게 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데 말이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래서 기껏 한다는 방법이 무엇인가?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간 다음에 그 밑에 남아있는 백성들이 무엇을 하는가? 축제를 벌이는데, 뭔가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즉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애굽에서 자기들을 이끌어낸 신이라고 해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 이름은 '여호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금반지 금이빨을 다 모아서 만들었는데 말이다.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출 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출 32: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 장면을 보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을 우리교회에 주면 참 요긴하게 사용하지 싶은데 말이다(ㅋㅋ). 요즘 금 한 돈이 도대체 돈이 얼마인데,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서 그만 땅 속에 몽땅 다 들어가고 말았으니 얼마나 아까우냐는 것이다.

◈ 지속, 변화, 회수 !!

백성들이 그렇게 금가락지를 내놓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로 귀한 것을 바쳤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어제 설교시간에 말한 것처럼 '나의 지속', 즉 "나는 계속해서 일관되게 지속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비록 이것이 변화가 되더라도 다시 나에게로 회수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지속, 변화, 회수' 라는 말이다. 여기서 변화는 발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발출이란 용어가 어렵기 때문에 변화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속적인 신이 내뿜는 것, 즉 발출을 하게 되면 다시 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란 말이다. 로마서 11장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즉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신으로부터 해서 변화가 되어도 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이것을 이미 헬라 사람들은 지혜라고 했다는 것이다. 헬라나 그리스나 같은 의미인데, 영어로 헬라를 그리스라고 하는데 말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그런데, 기독교 신학자들이 나타나서 !!

물론 이것을 가지고 "그들이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라고 해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그 뒤에 소위 기독교 신학자들이 나타나서 이것을 그대로 인수인계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어떻게 되는가? 틀은 여전히 철학적인 틀인데,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그만 성경으로 채워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신학인데, 그러니 신학은 복음은 아니라는 말이다. 신학은 그냥 어리석은 인간들의 지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을 아무리 해도 거기서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도가 죽기 전에 신학공부를 해서 예수님을 알았는가? 무식한 강도라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무식하든 유식하든 간에 천국에 가면 다 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지혜가 모든 지혜라는 말이다.

그런데 "무식한 강도도 천국에 갔으니, 똑똑한 우리는 천국에 가면 높은 자리에 앉겠지"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제자들이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예수님에게 "하늘나라에서 누가 높습니까?" 라고 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철학공부도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믿음이고 신앙이라고 하면서도 철학공부를 하게 되면, 우리는 사실 철학의 범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불신자가 아니냐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즉 철학을 몰라도 된다는 것이 아니고, 철학을 알면서도 이게 복음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피가 곧 기준(캐논) !!

그 차이의 기준을 이야기하면, 피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피를 흘리셨는데, 결국은 '차이 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도로의 중앙선이라고 하는데, 녹색(?) 중앙선 말이다. 바로 그 피로 말미암아서 오른 쪽과 왼쪽의 양쪽 세계가, 즉 양과 염소,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가 곧 기준이 되는데, 라틴말로는 이것을 '캐논' 이라고 하고 말이다. 즉 표준이라는 것이다. 이 표준을 교회사에서는 성경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성경을 캐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무슨 내용으로 되어있는가? 성경은 언약으로 쓰여있고, 언약은 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성경문자 배후에는 주님의 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이 있어라"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전제되어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곧 빛이시니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실, 즉 피로 만들어진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피로 쓴 편지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 피타고라스를 아세요?

그런데 이 헬라 사람들의 지혜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는데, 그들 중에서 '피타고라스' 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는 이 세상을 질서가 있는 것으로 처음 주장했다는 것이다. '코스모스' 라고 말이다. 여자 화장품 중에서 '코스메틱' 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여기서 나왔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질서가 있는고 하니, 막대기가 있다면 여기에 이렇게 현을 만들어놓고 손가락으로 집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과 끝 그 사이 4번째와 5번째 마디에서 고정된 음이 나온다는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모든 것이 숫자로 질서가 있게 되어있음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처음으로 "우주는 숫자로 만들어졌다" 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수학 교과서마다 모두 나오는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의 그 피타고라스인데, 즉 "삼각형에 있어서 짧은 두 변의 제곱은 긴 쪽의 제곱과도 동일하다" 라고 하는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그 집단에서 우두머리, 즉 교주이고 말이다.

바로 그런 질서로 인해서 수학이 등장함으로서 오늘날 우주선이 발사되고 하는데,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수학의 발달로 인해서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주선을 발사할 때는 컴퓨터로 그런 수학공식을 미리 다 만들어서 한다는 것이다.

◈ 그게 지혜가 아니냐 !!

그런데 성경말씀은 그게 지혜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마귀가 만든 것인데, 그러니 우리는 결국 마귀가 만든 지혜 속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방금 저기 뒤에서 쥐도 같이 놀았는데, 쥐약을 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쥐를 잡는 놀라운 지혜가 있으면 몰라도 말이다(ㅋㅋ).

이런 이야기를, 물론 우리교회 교인들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그냥 앉아있지만, 만약 카이스트 같은 곳에 가서 하게 되면 모두 다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번에 하는 소리가 무엇인고 하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나 당신이 한번 만들어봐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옷은 과학의 힘으로 만든 것인데, 석유에서 연구해서 말이다.

그러니 이 옷은 결국 마귀가 만든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을 때 이것을 홀라당 벗겨버린다는 것이다. 흙에 속한 형상이 아닌,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대충 교회에 다니면서 구원을 받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이 세상이 피를 유발시킨 곳이라는 것은, 물론 구원을 받은 쪽은 피 때문에, 즉 자기 죄로 인해서 유발된 그 피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외치는 사람은 오른 쪽인 양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다 염소라는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피 중심인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은 피를 찍어 바르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화장품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피가 기준이다" 라는 것이 우리 인간 역사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예수님마저 이 세계에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스스로 피 흘릴 제물이 되기 위해서 뛰어드셨다. 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 중심이 되셨다.

(히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 제사장과 성막이 있어도, 피가 없으면 'NO' !!

제사장이라는 인간 몸체가 있는데,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리고 성막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 있는데,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가? 전혀 아닌데, 아무리 그렇게 건축 구조물이 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무엇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피가 없이는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피가 없이는 말이다.

제 아무리 웅장한 예배당이 있고 목사가 열 명이고 선교사가 다섯 명이고 장로가 백 명이라고 해도, 피가 없이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를 단지에 담아서 교회 한 구석에 놓을 수도 없고 말이다.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라고, 이렇게 히브리서 9장 7절에 분명히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하면 교인들이 오지 않는다고 목사들이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구원은 목사 소관이 아니고 주님의 소관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목사가 시비를 걸고 빼앗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알아서 다 하시는데, 그런데 목사가 거기에 왜 끼어 들어서 인원수 관리를 하고 난리를 치느냐는 것이다. 목사는 목사의 할 일만 하면 되는데, 물론 때가 되면 죽으면 되고 말이다.

이제 교재 295페이지를 보자.

** 성령께서는 '빼앗음'에서 '거저주심'의 차이를 드러내 주신다. '빼앗음'에서 '거저주심'으로 옮겨놓기 위해서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빼앗김'을 당하는 경우를 만나게 하신다.

◈ 빼앗음과 거저주심 !!

여기에 상당히 어려운 말이 나오는데, 이 본문의 작은 제목도 '빼앗음과 거저주심'이지 싶은데 말이다. 이 빼앗음과 거저주심은 사실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인간을 성도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있는데, 하지만 성도는 누구 소관인가? 인간이 예수님의 성도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 할머니, 잡채가 너무 달아요 !!

예를 들어서, 전혀 잡채를 만들 줄 모르는 꼬마 아이에게 엄마가 잔뜩 잡채 재료를 사다가 주었다는 것이다. 시금치, 당근, 오뎅, 돼지고기, 그리고 당면까지 말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또 설탕 약간인데, 많이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도 조금은 아는데(ㅋㅋ), 그런데 그렇게 다 사주고 나서 두 시간을 기다려도 어떠한가? 전혀 잡채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배드리기, 성경읽기, 헌금하기, 전도하기 등등, 그렇게 잔뜩 재료는 모아놓았는데, 구역예배도 참석하고 다 했는데, 하지만 성도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세월에 말이다. 40년을 다니면 되는가? 아니면 49년을 다니면 50년 째 성도가 되는가? 아홉 수인가? 전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이 교회를 49년을 다니다가 50년 째 성령을 받아서 성도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가 49년을 다닌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목사안수를 받고 한 모든 것이 성도가 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성도답게 유지하는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음을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저 주셔야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저 주신 것은 보탤 필요가 없는데, 보태면 오히려 주님이 화를 내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오랜만에 자기가 한 턱 낸다고 하면서 지갑을 들고 있는데, 그러면서 동전 오백원 짜리 달랑 두 개를 내놓으면서 "음식값에 이것을 보태서 내라" 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는가? "에이 씨, 가지고 가라. 내가 다 낸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하면 화를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

◈ 제자들은, 도망치기 위해서 !!

그래서 거저 주시기 전에 어떻게 하는가? 모두 다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곧 12제자들인데, 이 12제자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목자를 치니 양들이 흩어진다" 라고 하는 말씀 앞에서 구겨지고 마는데, 그러니 12제자들은 도망치기 위한 사람들이라는 티를 팍팍 내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도망치기 위해서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마 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야곱의 경우에,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하는 그 야곱이, 그가 결국 마지막 이스라엘이 되는 순간에는 야곱적인 요소의 티를 다 내고, 그래서 야곱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죽었어. 죽은 너를 내가 살려주는 거야" 라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 다 빼앗김이 거저 주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즉 진작에 모두 다 빼앗겼음을 고백하는 자들만이 그저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 빼앗기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주님 !!

그러니 많이 용서를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그런데 되지도 않은 것을 사랑하려고 하니까 있는 것을 가지고 설친다는 것이다. 즉 빼앗기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두고 로마서 12장에서 '산 제사' 라고 하는데, 그게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제사'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제물로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사람은 자기 것을 빼앗기면 운다. 울음이란, 자신의 절망을 인정하고 오직 긍휼만 사모할 때 나타나는 얼굴의 표현이다. 그래서 늘 울지 않으면 이제부터 긍휼이 자기에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의사표시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우는 자를 원하신다.

(눅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 인간은 왜 우는가?

여기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라고 하는 성경말씀을 제가 이 책에다가 왜 집어넣었는고 하니, 지금 '빼앗음과 거저 주심'에 있어서 사람이 우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내 것인데 하나님이 빼앗아갔어" 라고 하면서 울 듯이, 그렇게 해서 엉엉 운다는 것이다.

분명히 부모가 아이에게 분유와 기저귀부터 해서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그런데 일단 주고 나니까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마치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그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었던 것을 부모가 다시 가지고 가니 그만 엉엉 운다는 말이다. "내 것을 돌려주세요"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욥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라고 했는데, 그 순서가 맞지요? 맞다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주시고, 그 주신 것을 가지고 갈 권한도 역시 주님에게 있음을 알고 받으라는 것이다. 좋다고 그냥 덜렁 받지 말고 말이다. 즉 "주님이 다시 가지고 가도 저는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자아' 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하나 있는데, 즉 "자아란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지난 지난 시간에 '육'과 '혼'과 '영' 이라는 것은 철학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물론 이런 용어는 성경에도 분명히 나와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기 인간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서 성경말씀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육과 혼과 영 뒤에는 인간들의 철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도 마찬가지인데, 양심이나 계시 등도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이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니 어디 빈틈이 없는데, "빛이 있어라" 라고 했을 때, 그 빛 뒤에도 인간들의 지혜가 가득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끊어내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해버리면 교인들도 같이 끊어지기 때문에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없으면 돈도 없으니 안 된다는 말이다.

◈ 잠시 '육'과 '혼'과 '영'에 대해서 !!

그러면 육과 혼과 영이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인간들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 이런 육과 혼과 영 뒤에는 인간의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자아는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있다" 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가 고프다" 라고 하면, "아하, 이것은 몸이 먹지 못해서 그렇구나. 그러니 이것은 육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들도 보니 배가 고프면 멍멍 짖어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나 개나 똑같네" 라고 하는데, 그럴 때 인간은 육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혼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돌맹이와 코스모스의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혹은 돌맹이와 강아지의 차이점이라고 해도 괜찮고 말이다. 돌맹이는 때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그런데 강아지는 어떠한가? "깨갱깽"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하, 돌맹이는 없지만 이 놈은 안에 뭔가가 들어있구나" 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돌맹이라는 물체 말고, 그것을 질료라고, 그냥 쉽게 말해서 재료나 재질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물리적인 재질이 아닌, 즉 껍데기 말고 강아지 안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두고 '혼'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감정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의지라는 말이다.

◈ 나는 모차르트가 좋아 !!

그래서 화초나 유실수를 키우는 사람들은 비닐 하우스 안에다가 무엇을 틀어주는가? 클래식을 틀어주는데, 그렇게 클래식을 들으면서 자란 놈들과 태진아의 트롯트를 들으면서 잘난 놈들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비트가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은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하, 말을 못하는 식물도 그 안에 뭔가가 있구나. 그것이 바로 혼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예쁘다. 예쁘다" 라고 하면 예쁘게 자라고, 반면에 "못생겼다. 못생겼다" 라고 하면 그만 못생기게 자란다는 말이다. 빨리 시들어버리고 말이다. 식물도 그러한데, 하물며 자기 아이에게 매일 스트레스를 주고 하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교육 심리학에 보면 그런 것이 다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은 무엇인고 하니, 물론 영과 혼을 합쳐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은 감각이 아닌 이데아의 세계, 즉 천국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철학에선 '관상(觀想)'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tM는 사람을 얼굴을 보는 그 관상은 아니고 말이다.

쉽게 말해서 '명상(瞑想)'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조계종에서 하듯이 말이다. 조계종은 선(禪)불교인데, 즉 참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들은 벽에다가 점을 하나 찍어놓고는, 그 벽에 찍힌 점을 쳐다보면서 기나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것을 '동안거(冬安居)' 라고 하는데, 즉 겨울 내내 앉아서 벽만 쳐다보면서 명상에 잠긴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졸게 되면 돌아다니는 사람이 뒤에서 대나무를 가지고서 '탁' 치는데, 그 길다란 대나무를 '장군죽비' 라고 하는데, 짧은 것을 그냥 '죽비' 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면 졸다가 깨어나서 다시 벽을 쳐다보면서 수행을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고 하니까, 그것을 바로 결국 인간은 자아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신이고 우주이고 간에, 그 모든 것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즉 "내 마음이 우주보다 넓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어떠한고 하니, 마음이란 것은 우주에서 영겁의 세월을 거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집약되어서, 그게 우연히 어울려져서 자기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 교주 '피타고라스' !!

'피타고라스' 라는 종교집단에 의하면, 그가 유명한 수학자이기도 하지만 먼저 종교집단의 교주라는 말이다. 그들은 윤회설인데, 즉 영은 새로운 재료를 찾아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쥐나 고양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소에 들어가고 말이다. 그 다음에는 다시 돼지에 들어가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명상에 의해서 깨끗하게 정화가 되면 윤회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게 곧 '피타고라스' 라는 종교집단이 주장했던 내용이라는 말이다.

들어보니 불교의 윤회설과 똑같은데, 그것이 이미 고대 서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도 일종의 윤회인데, 즉 이 땅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가니 말이다. 왜 이런 윤회설을 주장하는고 하니, 그 이유는 다 하나인데, 그것이 바로 '영혼 불멸설' 때문인데, 즉 "육체는 썩어서 없어지지만 영혼은 영원하리라" 라는 것이다.

바로 그 영혼을 현대의 철학을 이용하면 자아인데, 즉 "자아는 영원하리라" 라는 것이다. 즉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영원하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영원하지 말라고 생명나무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인간은 생명나무를 따먹지 않아도 "나는 영원하다" 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이고 신학이고 간에 모두 다 말이다. 생명나무를 주실 분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선수를 치고 있다는 말이다.

◈ 영원한가? 아니면 소멸되는가?

그러면 영원하지 않으면 소멸되는가? 소멸된다는 것은 여호와 증인들의 주장인데, 즉 죽으면 영혼이고 뭐고 다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한 것도 아니고 소멸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답은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 제가 이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데(ㅋㅋ),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 전부터 이미 모든 일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또한 비가 내리고 하는 모든 것이, 그리고 욥기에 나오는 모든 동식물들, 그리고 별자리의 움직임 등은 누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언서 8장을 보겠는데, 이렇게 같이 찾아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누군가가 여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머뭇거리지 말고 이 잠언서 8장을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22절부터 봅니다.

(잠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잠 8:23)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 8: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잠 8: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잠 8: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잠 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잠 8: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잠 8: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 8: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

여기 22절을 보면,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께서 태초에 '나', 즉 자아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자아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이고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첫 번째 아담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는가?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영원한가? 소멸하는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바로 그 다루는 노선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곧 '영' 이라는 것이다. 영이고, 혼이고, 육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영과 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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