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정죄없음(로마서 8:31-34)설교로마서

정죄없음 130908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정죄없음(로마서 8:31-34)

이근호

13-09-08 13:33

정죄 없는 자들

2013년 9월 8일 본문 말씀: 로마서 8:31-34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심에 집착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죄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인간 있음’ 그 자체로 결코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의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에 있어 뭔가 가미하거나 변화되는게 따로 생겨야 합니다. 처음 인간은 존재 자체가 에덴동산을 가동하는지 지장없을 정도로 죄가 없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죄가 발생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켰습니다. 그리고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인간은 생명나무 쪽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영입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방침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인간은 에덴 동산 바깥에 나가 있는 처지입니다.

사는 자리가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향하여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라도 의인 아니라면 하나님과 합류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가가신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고서 사람들은 ‘나도 의인이다’고 외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의인인가를 점검하는 몫은 하나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주변에 고소하는 자들의 활동을 허락하셔서 성도의 모든 면에 대해서 고발과 고소가 계속 이어지도록 조치하십니다. 평생을 걸쳐서 CCTV를 통해서 추적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 끊임없는 고소 앞에서도 성도는 여전히 의인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사단은 말씀을 가지고 고소합니다. “재 강도입니다, 재 창녀입니다, 재 죄인입니다, 재 전과있습니다”고 고소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고 판정을 내려버리십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를 놓고서는 의인이냐 죄인이냐고 판정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어주신 분과 관련을 놓고서 의인과 죄인을 규정하십니다.

본문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끼지 아니하시고 자기 아들을 내어놓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아들’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들이 되려면 아버지와의 연관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미 에덴동산에 추방된 신세입니다. 아들로 사는 연결선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진정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들 나름대로 내놓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도 모르고 따라서 아들도 아니면서 마치 사람으로 얼마든지 행세할 수 있기 위해 자신이 사람됨을 인정해 줄 것을 찾게 됩니다. 에덴 바깥에서도 사람구실하고 사는데 지장없도록 신에게 원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쪽에서만 자기 본색을 내어놓게 됩니다.

축복받을 자격도 없으면서 마치 축복을 받아서 사람구실해 보겠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단에 의해 여지없이 고소당합니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내놓은 그 어떤 변명도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한 예를 들면 누가복음 18:10-14에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아버지와 연결된 것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본성이 꽉 차 있는 것을 내어놓는데 그 결과가 바로 죄인으로 규정받았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죄성을 그래로 고백하면서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최종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리를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간추려보면 이러합니다. 죄인이라고 하기에 의인입니다. 자칭 의인이라고 여기기에 저주받을 자로 취급받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 가게 된 오른편 양에게 예수님께서 통보하시기를 “너는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고 배고파할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천국간 자들이 말하기를 “제가 언제 예수님께 해드렸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죄인이다면 의인이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고 알고 있으면 평생에 예수님에게 헌신하다시피한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 두 요소로 가득차야 이게 교회입니다.

이런 의인이 되는 혜택은 인간의 범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아들을 믿을 수 있는 은사를 주십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주어진 그 은사 없이는 예수님과 연결된 아들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은사를 과연 받았는지 아니받았는지 하는 것은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 주어져야 합니다. 은사란 마치 방바닥에 깔린 보일러 호스와 같습니다.

분면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지는 것은 우리의 생활 자리에 뭔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뭘해도 우리는 죄뿐이요 뭘해도 우리가 예수님에게ㅐ 한게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의 자리 위에 존재해서 계속해서 십자가에서 능력이 올라와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환란과 핍박 때문에 넘어지는 자는 평소에 예수 믿는 것이 자기가 인간답게 당당하게 행세하고 싶은 본심이 작용했다는 것이 폭로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연결되어있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의한 환란과 핍박이 오게 되면 도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헤어질 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나게 되어 있는 자들이기에 모든 면에서 있어 고소당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정당성으로 변호하지 마세요. 우리는 진작에 저주받아 죽을 그런 존재 밖에 안되는 사람입니다. 더는 기대하지 마세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일이 우리에게 들이닫칠 때, 이미 우리의 것은 날아가 버린 것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09-10 18:03

50강-롬8장 31-34(정죄 없음)13090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8장 31절에서 34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250페이지입니다.

로마서 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의롭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고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없다, 판정을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내렸습니다. 의롭지 아니하면 천국은 들어오지 못한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천국이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도 늘 자신이 의인이 되지 아니하면 그 좋은 곳도 소용없는 겁니다. 처음에 에덴동산 만들 때는 사람보고 선택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에요. 에덴동산 만드시고 그것이 인간의 처음 주거지가 되었습니다. 에덴동산 만들고 그 안에 인간을 그냥 만들어놓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바깥에 나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이 그리워지고.

에덴동산이 그리워지는 것은 살기가 팍팍하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지리산 속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살라치면 폭우가 쏟아지고 그것뿐이 아니라 멧돼지까지 출몰하니까, 지리산 아니라도 살만한 곳, 좀 적당한 곳이 없어요. 이 사업하다 말아먹고 저 사업 하다가 말아먹고, 적당한 사업이 없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 왜 이렇게 조져놓습니까?”라고 할 때 하나님을 우리가 탓할 수가 없는 것이 처음에는 에덴동산이 우리 주거지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월세 내라든지 전세 값 올려달라는 소리 안하거든요. 그냥 에덴동산이 내 집이고 내 집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쫓겨났습니다. 그 다음에 언젠가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팻말 붙여놓았어요. “들어오기만 해 봐라!” 이런 식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도 서러운데 못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까지 봐줘가면서 너와 살기는 싫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하나님은 죄를 참을 수가 없거든요. 하나님께서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죄까지 용납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죄 없이 해서 다시 들어오너라, 그렇게 된 거예요. 무슨 수로 들어옵니까? 못 들어오지요. 그런데 여기에 로마서가 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복음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복음인지 읽어보면 차차 나오는데 33절에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그 다음에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상당히 오묘하지요? 자기 혼자 의롭다, 의롭다, “난 의로운 사람입니다.” 해 봐야 남도 안 알아주고 하나님도 안 알아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식은 뭐냐, 이게 의로운지 안 의로운지를 검사하는 방법, 그것은 송사하는자와 붙이는 겁니다. 송사하는 자는 스갸라 3장에 보면 나옵니다.

악마의 주특기는 송사하는 자입니다. 욥기에 보면 사탄은 욥을 보고도 고소를 한 존재가 악마에요. 진짜 내가 의로운지 아닌지는 내가 스스로 우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누구를 깔아 놓느냐 하면, 우리를 고소하는 자로 포위케 해서 깔아놓습니다. 나의 약점을 철저히 찾아내서 마구 송사합니다. 꼭 신원 조회하는 것 같아요. 장관이나 정부고위직에 갈라치면 국회에서 조사하는데 꼭 그거 같아요. 송사할 때 사탄이 송사하는 방식은 율법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어려우니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말씀을 가지고 “얼레리꼴레리! 쟤는 지난번에 저 짓을 했대요, 5년 전에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했대요, 얼레리꼴레리! 저 사람은 몇 살 때 그런 전과가 있대요, 저 사람은 강도래요, 저 사람은 창기래요, 저 사람은 간통하다 잡힌 사람이래요, 저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랍니다.” 전부 다 마귀가 배후에 작용해서 우리 자신을 향하여 고소하고 송사하도록 하는 겁니다. 변명도 어느 정도지요. “그때 그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총 만들자고 하고 한 그것) 농담이었다니까요.”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해도 “농담 아닌 것 지적해 준다.” 해서 찾아내서 고소해버리면 우리는 울컥 화가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나를 고소하는데 화가 난다? 그 말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본색이 드러난 거예요. ‘나는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화가 난다.’ 그런 뜻입니다. 나는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고 했는데 마귀에게 그만 옴팍 들켜버린 거예요. CCTV에 걸린 겁니다. 몰래 카메라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네가 성경말씀은 안 믿고 네가 스스로 의롭게 되기 위한 분투노력을 하면 그것은 백발백중 CCTV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따라붙습니다. 파파라치 같아요. 진드기같이 따라붙어서 기어이 우리가 죄지은 것 들춰냅니다.

그 점을 로마서 3장 10절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 점을 아시기에 아예 이렇게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는 것을 네가 짐작하고 있어라.” 네가 앞으로 몇 년 더 살지 너는 모르지만 몇 년을 더 사느냐, 수명을 더 얼마나 연장하느냐는 의미 없어요. 오늘 밤에 죽어도 의인만 간다는 천국에 합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땅에서 연봉이 얼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몇 년을 놀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생명……, 에덴동산도 못 들어가는 입장에서 천국을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런데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그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기 위해서는 먼저 조건이 의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의인의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복음은, 로마서 3장 10절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이미 단정을 했어요.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믿으라는 거예요. 믿는 거야 쉽지요. 말로 ‘믿습니다.’ 하면 끝나는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믿으라는 말은 “네 주변에서 누가 너의 약점을 철저하게 끝까지 규명하고 규정해서 너를 따라다니면서 돌을 던지더라도 원래 내가 그런 인간밖에 안 되는 것을 본인이 믿으라.”는 말이지요.

교회 나오셔야 됩니다. 교회 나와서 지적당해야 되고 지적받을 어설픈 일을 해 봐야 돼요. 교회당 왔다갔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쓸 일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가 있다는 그 찝찝함을 느껴야 돼요. 이것은 복음은 아닌데 팁으로 기쁜 소식 하나 전하겠습니다. 저 뒤에 살던 쥐 두 마리 오늘 죽었습니다. 우리 집 쥐는 일 년째 안 나가고 있지만 저 뒤에 있던 쥐는 잡았습니다. 기쁜 소식이죠.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바로 “네가 고소할 자가 없다는 것을 믿어라.” 고소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믿지 말고 고소하는 자는 더욱더 설치지만 하나님이 너를 변호하기에 실컷 고소당하고 의인되어서 천국 가라, 이것을 로마서 8장 33절에서 이야기하과 있습니다. ‘누가 너를 송사하리요. 누가 너를 고소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 34) 우리를 위해서 “죄 없는 것 맞지요?” 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합니다. 내 인생 나 홀로 살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내 인생 내가 가꾼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방금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이 땅에서 누가 잘났나, 그걸 충족하기 위해서 드린 말씀이 아니고 죄인들만 이 세상을 빠져나와서 의인들만 간다는 그 천국입장에서 볼 때 그게 기쁜 소식이라는 거예요.

천국에 가냐 못가냐, 의 입장에서 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에 가냐 못가냐, 할 때 우리는 성령 받아서 주님이 우리 편에 있기에 더 이상 아무도 우리가 의인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저 지옥 갈 사람들은 왜 방치하는가, 왜 그들은 변호해주지 않는가? 지옥 갈 사람을 변호해 줄 주님은 없습니다. 왜 주님은 변호해주지 않으며 지옥 갈 그들은 누군가? 그 점을 여기 32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리면 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가 그들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에요.

복음이 없는 교회에 왜 그리 가십니까, 라고 물으면 그들은 “나도 사람이니까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 내가 어느 교회에 가든 당신이 터치하지 마세요.”라고 할 거예요. 복음이 아닌 교회 가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 쪽에서 사람으로 취급 안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뭘 선택했다는 그것도 의미 없는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뭘 근거해서 내가 자식 키우고 다 하는데 왜 나보고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가?” 32절에 해답이 나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람이냐 아니냐의 기준을 아들인가 아닌가로 바꾸는 작업을 하나님 쪽에서 먼저 실시를 했습니다. 아들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고 아들이면 사람이라고 규정을 하나님 쪽에서 내린 겁니다. 아들이 아니면 왜 사람이 아니냐 하면, 아들이 아니면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들어보니 간단한 문제지요. 아버지가 없는데도 사람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있다면 아버지는 아들만 원하시고 그래서 아들만 모집해서 천국을 만드십니다. 그 이름을 아들의 나라라고 하는 거예요. 아들의 나라.

울산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출애굽 할 때 50만정도 나왔거든요. 광야를 지나는데 그 사람들 중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이 달랑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밖에 없어요. 바로 저기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데. 그 땅 싫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정작 들어간 사람은 두 사람밖에 안돼요. 약속의 땅인데 달랑 두 사람 들어갔습니다. 지리적으로 멀다든지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고 “들어갈 만한 사람이 못 되놓고 어딜 넘봐?” 그렇게 되는 거예요. 들어갈 만한 사람으로 바뀌어야 들어가는데 사람이 안 바뀌고 애굽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딜 넘봅니까? 말이 안 되지요.

사람이 혼자 삽니까?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아버지의 마음, 심성, 아버지의 생각을 모르는 사람이 아들로서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에요. 오히려 냉정하게 생각합시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에요. 하나님 나라기에 하나님 마음에 부합되지 않으면 같이 살수가 없어요. 고부간도 마찬가지잖아요. 마음 안 맞는 시어미와 며느리가 함께 못 사는데 하물며 하늘나라 아버지 마음도 모르면서 거기서 영원히 산다는 말입니까? 영원히 사는 것이 저주스럽지요. 말이 안 되죠.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내어줌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나는 사람이다, 나는 인간이다.’라고 우겼던 것을 찢어버려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 맞지요? 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서 썩어빠진 흙덩어리가. 자, 내가 사람 보여줄게.” 하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거예요. 우리 생각은 이렇습니다. 나 여기 있고 하나님이 저기 있으면 “올라와” 해서 올라가면 아주 깔끔하게 구원받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방식은 복잡해요.

자기 아들을 내어주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그 아들과 더불어서 천국에 못갑니다. 아들 내어주는 것이 있으면 이게 복음인데 불교에는 아들 내어주는 것이 없어요. 불교에 그런 것이 있던가요? 복음 말고 다른 종교에 자기 아들을 내어주는 것이 있던가요? 이슬람에 그런 것이 있던가요, 유대교에 있던가요? 중국 동남쪽, 베트남의 북쪽에 가면 해변가의 어부들이 믿는 여신이 있어요. 이름이 마조입니다.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들이 나가기 전에 마조라는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지금은 마조하고 관세음보살과 합쳐져서 퓨전종교가 되었어요.

종교가 섞여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절을 지어놓고 마조여신과 관세음보살을 같이 섬기는 겁니다. 마조신당에 있던 여신 깃발을 가져다가 배에 달아요. 그러고 바다에 나가면 고기 잡으로 갈 때 자기만 가는 것이 아니고 풍랑과 파도를 잠재워주는 마조여신과 함께, 그러니까 임마누엘이지요, 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함께 함으로써 고기도 많이 잡히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마조여신이 내어주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고기를 원하기에 마조여신을 섬기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마조여신이 제물 받아 처먹고 내 놓는 거예요.

“그래, 주마. 이걸 너희가 원하지?”라고 내놓는 겁니다. 그 말이 뭔 뜻이냐 하면, “신이시여, 나도 인간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사람인데 사는 것이 팍팍하기에 신이 사랑의 신이라면 내가 살 수 있도록,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돈과 재물과 고기와 풍요로운 곡식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면 계속해서 자비로운 하나님으로 섬길 용의가 되어 있습니다. 예배당도 지어드리겠습니다.” 간증집회 보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돈을 내려주시더라.” 이런 식으로 하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신은 우리가 원했던 것을 내어주는 신을 믿는 거예요. 그런데 로마서 8장 32절에는 그것이 복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복음은 뭘 내어주는가, 자기 아들을 내어주는데 그 뒤편에 누가 연결되어 있는가 하면, 아버지가 연결되어 있어요. 아버지의 뜻을 듬뿍 안고 아들을 내어주니까 그 아들 내어준다는 말은 “너는 지금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아닌 인간이 이걸 원하고 저걸 원하고, 전부 이것은 네가 고소를 당해도 확실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겁니다.

복음이 들리지 않는 그 교회에 왜 가는지 모르겠어요. 무엇 때문에? 결국 그겁니다.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자는 거예요. 돈 축복 받아서. 아들 내어줌이 없는 종교, 없는 교회, 거기 왜 갑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 내어줌으로 말미암아 의인만 모인다는 천국에 들여보내줍니다. 그런데 인간 쪽에서는 따로 그 아들 내어줌에 대해서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 쪽에서 따로 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경주에 최 부자 집이라고 있었답니다. 이 부자가 돈도 많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가뭄이 들고 사람들 배곯겠다 싶으면 곡간을 열어서 곡식을 내어준답니다.

가난한 농부들에게 풀어주니 자자손손 칭찬을 많이 받지요. 베풀어주니까 하나님이 복을 줘서 잘 되었다는 겁니다. 그 곡식 먹어봐야 똥 되는데 그게 뭐라고. 사람들이 좀 가졌다 싶으면 내놓는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지난 여름수련회 때 든 예를 다시 들어볼게요. 어떤 처자가 결혼할 남자친구를 데려온다니까 부모가 걱정하는 투로 “네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냐?” 물으니 아가씨 하는 말이 “내 남자친구 신발 사이즈가 260입니다.” 그 부모가 듣고는 “신발 사이즈를 물은 것이 아니고 네 남자친구가 어떤 인간이냐는 말이다.”

직업이 무엇이며 연봉이 얼마인지, 집안은 어떻고 장남인지 차남인지, 양친이 살아 계신지, 아파트는 한 채 마련해놓고 있는지, 그런 것을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가씨가 하는 말이 ……,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난 겁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어요. 아가씨 하는 말이 “왜 어머니는 나에게 ‘네 남자친구가 누구냐?’ 할 때 나는 분명히 ‘내 남자친구 신발 사이즈가 260’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이니 연봉이니 그런 것을 묻습니까?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엄마가 일방적으로 엄마가 카펫 깔 듯 내어주고픈 엄마의 찬란한 역사 속에, 괜찮은 사윗감을 얻어다는 평소에 내놓고 싶은 것에 부합되는가를 측정하기 위해서 물은 거잖아.”라고 이야기 하겠지요.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낸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의 대화라는 것은 자기 속에 움키고 있는 것을 펼치게 되어 있어요. 애들 장난감 중에 입으로 훅 불면 앞으로 쑥 나왔다가 다시 말려들어가는 것 있잖아요. 그것처럼 대화할 때는 평소에 나는 이런 것을 원하고 있으니 이런 것을 채워주기를 원합니다, 하고 쑥 내밀었다고 쑥 거두는 거예요. 모든 대화가 다 그래요. 딸이 듣고 있다가 “엄마, 그러면 내 남자친구가 변호사고 연봉은 한 7, 8천 된다고 하면 만족해?” 그러면 엄마가 듣고 있다가. “만족하지. 그럼 만족하고말고.” “엄마가 권사 맞아?”

엄마가 권사라고 단정을 지어봅시다. 엄마는 권사고 그 남편은 장로, 보통 장로와 권사부부가 한 짝이니까. 그렇게 하고 누가복음 18장을 봅시다. 18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성전에 바리새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그러니까 아니한 것은 토색, 블의, 간음이고 한 것은 뭐냐, 이레에 두 번씩 금식했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하지요. “이게 내 속에 있는 것이고 이런 것을 남에게 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쑥 내밀었다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세리가 기도하기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이로소이다.’ 한 거예요. 그걸 보고 계신 심판 주가 되시는 주님이 ‘너는 의롭다’고 했어요. 세리는 ‘나는 죄인’이라고 하니 주님이 ‘그러니까 너는 의인’이라고 한 거예요. 세리가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그러니까 너는 의인이야.” “나 죄인입니다.” 빨대 훅 불면 나오는 것이 변호사니 연봉이니 그런 것이 아니고 “훅 불면 나는 죄밖에 안 나옵니다.” 주님께서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러니까 너는 의인이고 그러니까 너는 천국에 들어가고 그러니까 너는 ‘누가 너를 송사하리요’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게 성경의 누가복음 18장에 나와요. 다른 곁가지들 다 끊어버리면 남는 것은 이거예요. “주여, 저 죄인입니다.” 주님이 하는 말이 “의인이 왔네? 가자 천국으로.” 복음이라는 것이 그겁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그거예요. 이 요소를 여러분이 기억하시고 또 한 가지의 요소를 끄집어 내 보겠습니다. 이것은 근래에 너무 많이 해서 밑천이 떨어졌나, 소리를 할 수도 있겠는데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심판할 때 양과 염소로 구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할 때에 천국 가는 양에 해당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이게 겸손 떠는 것이 아니고 진짜에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꼭 치매 걸린 것 같아요. “너는 모르지?” “모릅니다.” “네가 그렇게 했어. 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줬어.”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이게 두 번째 요소에요. 하여튼 두 번째 요소 할 때면 첫 번째 요소는 다 잊었어요. 첫 번째 요소가 뭐냐,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니 “그러니까 네가 의인이지.” “참, 진짜 주님 말귀 못 알아듣네요.” “저 죄인입니다. 주님! 마귀도 알고 세상도 알고 내가 죄인 맞아요.” 주님이 듣고 있다가 “그러니까 네가 의인이지.”

자, 이것이 하나의 요소입니다. “제가 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다 했지. 그러니까 네가 한 거야.” 이 두 가지 요소만 가지고 교회를 만듭시다. 이 두 가지 요소만 집어넣어서. 주님은 우리의 협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일종의 캔버스로 여깁니다. 주님이 호작 질 하는 대로,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시는 거예요. 그럴 때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게 캔버스고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 캔버스인데 죄인이라고 할 때 주님의 의로움만 그림으로 남겨질 것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할 때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은혜덩어리로만 거기에 나타날 거예요. 딱 천국 사람입니다. 딱 이에요, 딱, 딱, 천국 사람 맞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겁니다. “네가 바로 아들이다.” 그러면 그 다음문제 나가봅시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제가 한 번 믿어 보렵니다.” 하거든요. 믿을 능력이 없어요. 왜 믿을 능력이 없느냐, 사람이 자기가 그것을 믿게 되면 그 믿은 것은 죄가 아닌 것으로 알게 되기에, 그 믿은 것은 자기가 행한 것이 되기에, 분명히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나는 죄인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내가 예수를 믿어 줘버림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믿는다는 구석에 대해서는 착한 일을 한 것이 되어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어떤 대책이 있겠습니까? 기가 막히지요. 꿈적거리면 당장 문제가 생기니까 참 대책 없지요. 그런데 그 대책이 어디에 나오는가? 32절에 보면 그게 풀립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뭐냐 하면,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은사입니다. 은사가 왜 따라 오는 거지요? 옛날 TV 설치할 때 TV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옛날 금성사에서 나오는 TV 살 때 안테나가 따라 나옵니다. 백날 TV사 봐야 안테나 없으면 TV 안 나오지요.

하나님께서 아들 되게 하실 때 아들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은 우리한테는 없는 거예요. 우리한테는 안테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 되고 의인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도 같이 세트로 오느냐 하면, 은사가 같이 오는 겁니다. 은사가 와야 될 이유는 어느 인간도 은사 없이 믿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은사를 주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은사 중에 유명한 것이 나오거든요. 사랑의 은사가 나오고 거기 보면 견딘다는 말이 있어요. ‘사랑은 견딘다.’ 그런데 사랑이 견딘다 하니까 남편이 패는데도 견딘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무엇을 위해서 견디나, 진리를 위해서 견딘다는 겁니다. 스데반집사처럼 이요.

은사 없이 우리 능력으로서는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고백되지 않거든요. 그러면 은사가 뭐냐, 은사라는 것은 설명하면 어려워져요. 왜 어려워지는가, 은사를 이야기하면 그것을 행하려고 덤벼들기에 그것을 피해가려면 그것이 어려워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온돌 방 밑에 보일러 선을 까는 거예요. 깔고 난 뒤에 시멘트로 바르고 위에 장판 깔잖아요. 그러면 방 밑에 깔린 보일러 선은 안 보이지요. 그런데 보일러 켰는데도 방이 춥다든지 해서 보면 방 밑에 깔린 선에 이상이 생겼든지 하잖아요.

이렇게 은사는 보이지 않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데 뜨듯해요. 참 이상해요. 보일러 시설을 전혀 모르는 옛날 고려 때나 삼국시대의 사람 같으면 방이 따뜻하면 거기에 귀신이 있는지 알거예요. 사실은 보일러가 깔려 있는 거지요. 은사는 보일러 시설처럼 우리를 깔고 있습니다. 그 보일러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들의 목표를 두고 아들을 위해서 살도록, 아들의 공로와 영광과 은혜만 알도록 하는 조치가 거기서 뿜어져 나와요. 내가 예수를 믿는다 할 때 ‘역시 나는 잘났어. 예수 믿으니까.’ 이렇게 되면 그것은 보일러 없이 자기가 지식으로 믿는 사람 흉내 내는 가짜 고백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알아야 돼요. 복잡해지지요? 하나는 뭐냐, 내가 예수님을 알 때 나는 어떤 한계에 빠지게 되느냐? 그것 하나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해야 됩니다. 그것을 성경에 나오는 것으로 소개할게요. 35절, 36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지경이 된 이 자체도 은혜고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나오면 그 밑에 깔린 보일러에서 따뜻한 기운이 나온 겁니다.

그리고 환난, 곤고, 핍박, 기근이 왔는데 ‘에라, 때려치우자. 예수 믿어도 소용이 없네. 종교 바꿔야 돼. 교회라도 바꿔야 된다니까?’ 이렇게 나와 버리면 그것은 보일러 안 깔린 상태, 성령의 은사가 안 깔린 상태에서 흉내 내기로 감히 천국을 넘본 사람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환난, 핍박을 주시는 이유가 검사 나온 겁니다. 추석전날 농산물 검사하잖아요. 이게 중국산이나 베트남 산인데 국산이라고 속여 팔지 않나, 검사하지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그렇다면 은사가 아들과 연관되었다면 은사는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출애굽기 29장에 보면 울산강의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울산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제사장 위임식을 할 때 양을 두 마리 잡아요. 이 두 마리가 용도가 달라요. 한 마리 잡아서 제사장 되고 난 뒤에 제사장이 활동할 구역 온 천지사방에 피를 뿌립니다. 기구나 바닥이나 곳곳에 피를 뿌립니다. 그 다음에 또 한 마리의 양을 잡아서 이번에는 제사장의 몸에 직접 피를 뿌려요. 그러면 온 천지가 피 범벅이 되겠지요?

위임식이 다른 것이 아니고 피 범벅이 되는 위임식이에요. 피 바름으로서, 피가 있음으로서 그 지역은 거룩한 지역, 의로운 지역이 되는 겁니다. 피가 있음으로서 그 때부터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저 성막 바깥과 차별화 됩니다. 예수님의 피는 차이를 두는 거예요. 은사란 이 세상 사람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밑에 보일러 선을 깔아버리는 거예요. 거기서 나오는 것은 뭐냐, “너는 뭘 해도 죄인이고 무슨 봉사를 해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뭘 해도 피의 능력에 근거해서 했음을, 곧 뭘 해도 은사 곧 보일러에서 나온 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말이 “제가 뭘 했다고 자꾸 주께서 저에게 이렇게 영생 주십니까? 저는 뭘 해도 죄인입니다. 구제를 해도 봉사를 해도 십일조를 해도, 뭘 해도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이 “그러니까 의인이지.” “제가 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주님 위해서 다 했지.” 그런 고백이 보일러 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에서 나오는 능력(은사)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게 언약의 힘이고 약속의 힘이에요. 그게 밑에 깔려 있는 거예요. 거기에 비해서 세상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그것을 아셔야 되겠지요?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삽니다.

42세인 남자하고 61세의 남자하고 우연히 술집에서 만났어요. 하여튼 술집에서 만나 친구 된 사람은 다 문제 있습니다. 그들의 직업이 뭐냐, 심마니, 산삼 캐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젊은 사람은 심마니 한지 3년 되었고 나이 많은 사람은 15년 되었으니까 노하우를 다 익혔어요. 그런데 신참이 횡재한다고 고스톱도 처음 배운 사람이 처음에는 많이 딴다는 소리가 있어요. 그것처럼 이 젊은 심마니가 강원도 평창의 어느 계곡에 들어갔는데 수십 년부터 해서 백년씩 묵은 산삼의 군락지, 시가 수억 원어치의 산삼군락지를 발견했어요. 물론 본인 혼자서.

그래서 솔솔 빼먹는 거예요. 가만 보니 그 젊은 사람이 이상하게 돈을 잘 쓰는 거예요. “형님, 이 술값, (혹은 차비나 점심값은)은 제가 낼게요.” 이런 식으로 돈을 잘 쓰는 거예요. “자네 돈이 어디서 그렇게 나나?” 하면 “산신령이 도와주니 몇 뿌리 캤습니다.” ‘이상하다. 나는 10년이 훨씬 넘어도 자주 찾는 게 아닌데, 뭔가 진짜 이상해.’ 그래서 캐묻고 또 캐묻고 하던 중에 이 술이 문제라. 술김에 그만 나팔 불었어요. “제가 어느 계곡에 갔다가 산삼 군락지를 찾았는데 한꺼번에 캐면 달려들까 싶어서 솔솔 빼내는 식으로 했 오고 있습니다.” “어딘데?” “제가 가르쳐 드리기는 곤란하죠.” 계속 물으니까 술김에 어디라고 이야기해 줬거든요.

그러고 난 뒤에 또 몇 뿌리 캘까 하고 가보니까 하나도 없어요. 산삼으로 맺은 인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형님이 다 가져갔지요?” “나는 아니다.” “가져갔잖아요.” “아니라니까.” 칼 가지고 그 형님을 죽이고 그 젊은 심마니는 지금 교도소에 있습니다. 산삼 발견한 것이 복인 줄 알았지요. 산삼이 자기 남은 인생을 조져버린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세상 살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에요. 횡재, 횡재가 잘 안 온다? 교회 가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돈 없이는 품위가 떨어지니까 돈 있는 인간으로 한 번 살아보려고 교회 찾고 절에 가고 온갖 몸부림을 치는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래가지고는 에덴동산이고 뭐고 천국에는 못 간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산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죄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산삼 발견해서 횡재했다고 좋아하다가 교도소나 가는 그 인간이나 나나 똑같은 인간, 교회 문만 나가면 산삼군락지 같은 횡재가 없나, 하고 찾는 똑같은 인간인데 혹독하게 느끼는 거예요. 환난과 곤고와 핍박 가운데서 “주여, 내가 한 것은 나만 사랑했고 나밖에 챙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 죄인입니다.” 주께서 “그러니까 참말 의인이지.” “제가 정말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위해서 산거야.”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공통점입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딴 사람 만들어서 천국 넣어주는 이 비법, 저희들이 놓치지 않고 믿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원하는 식으로 잘난 내가 잘나서 천국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반대의 길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시고 그 반대의 길을 가지 않고 성령을 통해서 생명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께 늘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3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867 설교 끊어지지 않는 사랑(로마서 8:35-39)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15
12,866 우리교회 끊어지지 않는 사랑 130915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15
12,865 강의 일상의 말씀화 130913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3-09-14
12,864 강의 완성된 안식 130913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09-14
12,863 강의 인자의 나라 130912 다니엘 최고관리자 13-09-14
12,862 강의 유튜브(46강, 47강) 하나님의 개입, 종교적 환경 130912 [신학] 최고관리자 13-09-14
12,861 자유게시판 56강-에스겔20장 30-32(열조의 풍습)130911-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9-12
12,860 우리교회 열조의 풍습 130911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9-11
12,859 자유게시판 20130906b 울산강의-출애굽기 29장 : 제사장언약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3-09-11
12,858 자유게시판 20130906a 울산강의-출애굽기 29장 : 제사장언약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3-09-11
12,857 자유게시판 대전20130829-행19장23절(신화와 복음)52강 - 이 근호 목사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3-09-11
12,856 강의 삼위일체와 어거스틴 130910 [신학] 최고관리자 13-09-10
12,855 자유게시판 3강-슥1장18-21(네 뿔)130908-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13-09-10
12,854 자유게시판 50강-롬8장 31-34(정죄 없음)130908-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10
12,853 묻고답하기 가인이 아벨을 죽인이유 - 최고관리자 13-09-10
12,852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3. 8. 23) 1강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09-09
12,851 자유게시판 45강-YouTube강의(정답)130905-이 근호 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3-09-09
12,850 자유게시판 44강-YouTube강의(생존과 하나님)130905-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3-09-09
12,849 강의 [13 대구강의 14] - [피 100] - 기준과 피 [피] 최고관리자 13-09-08
12,848 우리교회 네 뿔 130908 스가랴 최고관리자 13-09-08
12,847 묻고답하기 끊어지지 않는 사랑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08
12,846 우리교회 이삭가짐 130908 - 최고관리자 13-09-08
열람 ➜ 설교 정죄없음(로마서 8:31-34)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08
12,844 우리교회 정죄없음 130908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9-08
12,843 묻고답하기 시편 58편-악인을 멸해달라는 기도 시편 최고관리자 13-09-0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