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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물에 빠지지 않을려는 믿음과 빠뜨리는 믿음묻고답하기-

물에 빠지지 않을려는 믿음과 빠뜨리는 믿음넉넉히 누리는 선물 주시는 분의 믿음지난주에 학생회 공부에 참관하시던 김두일 집사님(할아버지)께서 마친 후에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큰 수술을 치르고 난 뒤에 여전히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염려와 걱정 그리고 인생의 많은 경험자로써 충고와 권면으로 인생후배들을 지도하는 그런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이제 몇 번 수술을 하셔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지금 오늘 죽어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니 오히려 마음이 푸근하고 기쁨이 넘쳐서 이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변하여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러워서 집사님 복 받으신 겁니다. 그저 그렇게만 말 할 뿐이지 다른 말이 필요 없더군요.분명 김두일 할아버지의 따님 김영기 교수의 성공 소식으로 거기에 대한 뿌듯함이나 자식자랑(부모의 최고의 낙이죠)을 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저에게 하시지 않고 예수님 자랑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아니 힘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건강이 아주 좋아진 것도 아닌데 ! 반대로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이마에 한가득 주름만 있는 초라한 노년의 막다른 골목인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가는데 뭐가 기쁘고 뭐가 즐거워서 예수님의 자랑을 하시는지 그 자랑은 죽음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자신(김두일 집사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너무 너무 황송할 따름이 다고 하시니 그 나이 드신 고령자의 머리 숙임을 보니 예수님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피조물을 봤습니다. 생전 볼까말까 한 피조물. 모두가 신(神) 됨을 누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에게 잡혀버린 자는 초라한 피조물이 되어 그의 창조주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소박한 기쁨만이 있을 뿐임을, 이런 피조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느꼈습니다.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임금 삼을려는 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임금 예수님 이야기와 한 장 넘겨 이방 여인의 주인의 밥상에서 부스러기라도 먹는 개는 주인의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내용 사이에 있는(만화 책 기준) 베드로의 물 위를 걷게 되는 내용을 공부할까 합니다.진희 학생(남 고3 우리교회 학생회 딱 한명)이 아버님(김휘동 집사님)을 따라 순복음에서 우리교회에 오다보니 기적이나 신기한 현상들에 관한 질문이 많고, 그로 인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갈등과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들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어김없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는 치유, 등등 신비현상에 대해 질문하였는데 저는 그 궁금증 해소보다 얼마나 강요를 당했으면, 또 굳이 강요 안해도 그런 분위기 속에 있다면 안따라하면 안될 그래서 친구들(교회친구는 순복음에 다 있음)과의 다름 속에 갈등이 있지 않나 예상 해봅니다.저는 답하길 귀신들린 자 이야기를 다시 반복적으로 함으로 인해 정작 귀신의 정체는 눈에 가시적인 현상을 통해 우리의 기적에 대한 탐욕을 불러일으키기에 눈으로 나타나는 것에 의해 모든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우리의 한계요 거기에 믿음의 승부를 거는 것이 종교성(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에 목숨 건 자들이 유대인이요 정작 예수님이 베푸는 기적 앞에선 그들은 기적에 모든 것을 거는 믿음은 엉터리임이 밝혀집니다.자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인지 의미를 잡았다 해도 또 다시 평생 의문이 드는 이 믿음에 대해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전혀 다른 믿음을 알려주십니다. 베드로는 반석입니다.(마 16:18) 이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교회가 세워질 반석이라면 뭔가가 다를껍니다. 그렇다면 한번 살펴볼까요? 뭐가 다를지?마 14:13-21(막 6:30-44) 의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마 14:22-33(막 6:45-52/요 6:16-21) 내용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건을 다룬 내용입니다. (마 14:22-27) 『예수님은 군중들을 돌려보내시는 동안 제자들이 서둘러 배를 타고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예수님은 기도하시려고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 곳에 홀로 계셨다.』『그러나 배는 이미 육지를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는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새벽 4시쯤 되어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며 `유령이다!' 하고 소리쳤다.』『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나다. 무서워하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28)『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였다.』(29)『예수님이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을 향해 갔다.』(30)『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소리쳤다.』(마 14:31)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 하시고』(마 14:32-33) 『배에 함께 오르시자 바람이 멎었다.』『그때 배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였다.』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인 후에 바로 제자들을 먼저 배로 보내고 기도하시러 산에 가셨는데 배에 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맬 때에 새벽 4시쯤에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심으로 제자들이 놀라서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임을 밝히자 베드로가 바다 위에 있는 예수님에게 요청을 합니다.P :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명하여 주십시오. J : 그래 그래라 베드로는 그 "허락하심"을 의지하여서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을 도박하듯 겁니다. 그래 이제 예수님이 후원자가 되어주었으니 이제 될 꺼야. 나도 할 수 있어어! 어! 아찔아찔 야! 야! 신기하당. 된다 돼 내가 바다 위를 걷고 있네 이야 기적이야 기적 베드로는 홍해를 건너는 그 이스라엘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인 냥 물 속(죽음)을 가로질러 가는 이스라엘처럼 짜릿한 경험을 합니다. 물 위(죽음)를 죽음 위에서 죽음을 밟고 당당히 서 있습니다. 베드로가 경험하는 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은 죽음을 뛰어 넘어, 음부(지옥)을 건너서 예수님과 하나 됨, 하나님과 하나 됨을 누리는 믿음의 최고의 경지요 모든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바로 그런 믿음이요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도 잠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 자기에게 닥쳐옴을 보자마자 그는 그만 물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꼬르륵 잠겨 버려 죽음을 가르기는커녕 살려달라고 죽게 되었다고 외칩니다. 살려 달라고 했으니 예수님 뭐 할 수 없죠 살려 줘야죠.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 하냐고 책망을 하십니다.그래서 우리는 또 자기 신앙관리에 인생의 파도가 일어날 때 베드로가 허락을 받아 물 위를 걸은 것처럼 믿음이 적어서 물에 바보같이 빠졌기에 그 순간에 큰 믿음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때를 쓰면 안 빠질 꺼다 라고 한가지 방법을 이 본문을 통해 터득하게 됩니다. 믿음의 반대말 의심 그래 의심하지 말자 믿음 주소서 믿음. 오로지 믿음. 이것이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이요 오늘날 모든 교회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교회를 물에 빠뜨리십니다.물 속을 가르고, 불기둥 구름 기둥. 땅에서 난 음식만 먹는 인간이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다 먹고, 썩은 물이 마실 물로 변하는 등 가는 곳마다 기적의 연속뿐인 광야라는 교회 속에서 온통 기적들만이 광야교회를 감싸고돌던 오로지 믿음뿐인(안믿고파도 눈에 뻔히 보이니 어쩔 수 없이 안 믿고는 못 베기는 그런 기적의 혜택을 불가불 누릴 수밖에 없는 환경) 그 이스라엘을 물에 빠뜨리십니다. 그런 유대인인 베드로를 빠뜨립니다. 방금 까지 죽음을 가르고 죽음을 딛고 짓밟고 죽음 위에 당당하던 베드로는 이제 죽음 속에 빠져서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빠뜨릴려면 차라리 애초부터 물 위를 못 걷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해하기 쉽게 말이죠 ! 줬다 빼앗았다 이게 뭡니까?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철저한 믿음이 아니었기에 빠진 겁니다. 맞지요?마찬가지로 어차피 광야에서 다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홍해를 건너지 말던가?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그런 거 애초부터 허락하지 말던가 실컷 다 맛보도록 해놓고 다 죽여버리면 뭐합니까? 처음부터 구원될 자만 몇 명만 약속의 땅, 요단강을 건너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안 그런가요? 줄 때는 언제고 또 빼앗아 가는 것은 뭡니까? 무엇을 원하시고 어떤 믿음을 원하시는 걸까요? 큰 믿음이면 질과 양 적으로 수준이 다른 최고급 럭셔리 믿음인가요? 고수의 믿음만 원하는 것입니까? 너무너무 이해 안되지 않습니까?그래서 이런 알 수 없는 애매한 믿음보단 차라리 우리가 확신에 거할 수 있는 믿음을 우리 스스로가 가지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그런데 이것도 소용없어 보입니다. 주님은 뭐든지 다 빠뜨리십니다. 다 빠뜨리시고 또 알 수 없는 상황이 또 벌어집니다. 또 건지십니다. 줬다가(허락했다가) 빠뜨렸다 다시 또 건집니다. 우아 이거 이거 예수님이 내미시는 손을 거부 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달아날 수도 없고, 꽁꽁 묵인 채로 거의 시체 되어야 건지시니, 칼날 같이 빳빳이 선 붉은 모자를 쓴 지옥의 사자 조교 앞의 올빼미 훈련병입니다. 죽었다 복창 유격 유격 유격 으 그 지긋지긋한 유격 훈련을 지금 베드로는 받습니다. 물 속에 집어넣었다 뺏다 집어넣었다 뺏다. 이것이 광야교회입니다.교회란 인간의믿음으로 결집된 단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빠뜨린 자로 모여진 모임입니다. 즉 둘 다 물 위에서의 기적으로 출발하는 믿음이 아니라 베드로를 빠뜨리시므로 출발하는 예수님의 믿음으로 건지시는 믿음이다는 겁니다.이런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지옥 훈련을 받는데 우리는 엉뚱한 믿음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생존(살기 위한)을 위한 믿음을 빠뜨리고, 죽음을 음부의 권세와 맞서서 이기는 믿음을 위해 예수님은 조교가 되어 우리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 가십니다. 늘 일관적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그럼 그 훈련 마치면 큰 믿음 즉 물 위를 걸어서 빠지지 않는 의심치 않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대부분 교리는 이것을 극복케 하는 믿음을 가지자고 합니다.그러나 그런 믿음 또 빠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거 답 없는 것 아닙니까?네 바로 그겁니다 딩동댕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어야 합니다. 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우리는 거기에 모든 믿음을 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을 또 빠뜨릴 것입니다.제자들의 역할이 뭡니까? 늘 잔소리 듣고 믿음 없다는 소리로 늘 책망의 소리만 듣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데리고 다니며 늘 잔소리하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배운 이방인 늘 개처럼 믿음 없는 자들로 통하던 자에게는 지금 예수님 자신 때문에 믿음을 선물로 줘버려서 그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참 재미있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하고픈 겁니다. 성경을 잘 알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치기 박치기.(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예수님은 약속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이방인을 통해 성벽을 쌓고 이스라엘은 책망을 받을 것을 성취하십니다. 그럼 무조건 이스라엘은 나쁜 놈이요? 이방인은 좋은 놈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말하고자한 모형입니다. 도구입니다.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의 믿음을 돌출(원하셔서) 시키고자 이방인에게 믿음을 선물로 이스라엘에게는 책망을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방인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그릇으로 이스라엘인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그릇으로 모두 예수님의 믿음 외에는 어떤 인간의 믿음도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릇은 깨뜨리기 위해 있는 겁니다. 그 그릇에 담겨질 내용인 보석만이 존귀할 뿐입니다. 그릇은 자기 믿음에 기대 걸지 않습니다. 그 그릇에 담겨진 보석의 믿음에 모든 것을 겁니다.(고후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그럼 말라꼬 베드로를 건지십니까? 자기 믿음의 한계를 못 넘으면 죽도록 내버려두지? 아뇨 반드시 건지십니다. 자신을 끝까지 증거하기 위해 베드로는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을 부인하든 말든 저주를 하며 살려고 도망치던 말던 예수님은 약속한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도 다 구약의 약속에 예언된 바입니다. 철저하게 예수님의 믿음만이 그 예언을 성취합니다. 베드로는 약속한 성령을 받아 사도가 되어 예수님을 위하여(자기 믿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넘기 우는 순간까지 주님 손에 예수님의 믿음에 꽉 잡혀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 죽어서 다시 예수님의 부활이 베드로의 죽을 육체에 나타내게 할려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누구의 믿음이요? 베드로의 큰 믿음?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큰 믿음? 아뇨 예수님의 믿음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인간의 믿음을 무효화 시켰다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모든 인간의 믿음을 물에 빠뜨리는 것이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너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권세로 잠시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믿음으로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으로 물 위에 자기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믿음을 물에 빠뜨리는 예수님의 믿음만 물 위에 남기고 다 빠뜨리는 반석이 됩니다. 그 터는 베드로 자신의 믿음으로 완성되지 않고 예수님으로 완성됩니다.(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고전 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저는 이 위의 구절을 찾아 읽고서는 너무 기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태우시는 불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자랑하고 다닐까요? 지긋 지긋할 정도로 믿음을 자랑할 겁니다. 나 물 위를 걸었소. 인기짱 믿음짱 신앙짱 교회짱 일겁니다.그런데 물에 확 빠뜨립니다. 왜냐고요?(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선물이란 가지고 있는데 또 받았을 때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것이 선물입니다. 주는 자의 고유권한입니다. 전혀 있을 수 없는데, 가지고 있지 못하는데, 받을 길이 없는데 주어졌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랑합니다. 나 선물 받았지롱. 내가 선물 받았으니 내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 줄 아냐? 이렇게 자랑할까요? 아니죠. 반대입니다.내가 선물 받았는데 누구한테 받았는 줄 아니? 세상에 예수님 한테 받았단다! 선물 주신 분이 누구인가를 자랑하고 다닙니다. 이런 개같은 강도같은 놈에게도 글쎄 선물을 다 주시는 분이 있네, 그분이 예수님이요. 마치 구원받은 강도처럼. 당신이야 말로 나의 이웃입니다. 라고 말이죠.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으로 물 위에 선 반석 교회를 휙 불어서 빠뜨립니다. 그리고 다시 건지십니다. 이제 주님이 주는 선물은 죽음의 공포마저 이기지 못하는 예수님의 믿음으로 물 위에 선 교회를 예수님의 피로 세우십니다.그래서 전 김두일 할아버지가 너무 부럽습니다. 자신의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믿음을 손놓았기에 예수님의 믿음이 선물로 받으셨기에 그 선물(예수님의 믿음)을 받은 자는 이제 죽음도 죽음의 권세도 음부의 권세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넉넉히 누리는 선물 받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할 정도로 너무 평안해 보였습니다. 믿음이라는 찌끄래기로 가득찬 기름끼를 쫙 빼고, 기름끼 없이 굳더더기 없는 깔끔한 예수님의 믿음으로 이어진 사랑의 끈은 죽음도 마귀도 못 끊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죽음도 안먹힙니다. 요거 요거 안먹히네.(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눈에 포착 되는 믿음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되는 믿음 기적은 다 가짜입니다. 그런 믿음을 다 무효화 시켰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믿음 외에는 실상이 없는 겁니다. 불에 안타고 남는 것은 예수님 뿐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가 곧 예수님입니다.(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낮추기 위함이 목적입니다(신 8장 만나는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짐). 그 낮춤은 어린양의 희생 앞에 머리를 숙여 절하게 합니다.(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시 116:6)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시 116: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시 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예수님 ! 에수님의 믿음이 참믿음이요 우리의 믿음은 빠질 수 밖에 없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 목숨걸지 말고 에수님의 믿음을 물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물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저 긍휼만을 바랬던 이방여인이 개라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주인의 자비만을 주인의 믿음만을 갈구 했던 이방여인처럼 그 이방여인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님의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고 예수님의 터 위에 어떤 것도 세우지 못하도록 주님의 불로써 다 태워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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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3,735건 중 12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535 묻고답하기 Re..정확한 차이가 무엇입니까?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22
534 묻고답하기 정확한 차이가 무엇입니까? - 최고관리자 04-07-22
533 묻고답하기 Re..그럼 이런 생각도 틀린건가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20
532 묻고답하기 Re..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생긴 질문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9
531 묻고답하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생긴 질문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7-19
530 묻고답하기 젖먹이의 믿음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7-19
529 묻고답하기 Re..승리~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6
528 묻고답하기 승리~ - 최고관리자 04-07-16
527 묻고답하기 이성녀 성도님 - 최고관리자 04-07-15
526 묻고답하기 Re..달란트 비유에 대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5
525 묻고답하기 달란트 비유에 대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4-07-15
524 묻고답하기 Re..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4
523 묻고답하기 달란트 비유에 대한 두번째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4-07-14
522 묻고답하기 Re..달란트 비유에 대해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3
521 묻고답하기 아주 작은 겨자씨 믿음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7-04
520 묻고답하기 '회원 등록제'에 대하여 - 최고관리자 0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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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묻고답하기 도망치는 천국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6-20
517 묻고답하기 구원은 없다 로마서 최고관리자 04-06-20
516 묻고답하기 Re..이윤자 집사님 어디 편챦으신지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6-17
515 묻고답하기 강도야 ! 꼭 꼭 숨어라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6-13
514 묻고답하기 극락이 찾아낸 이웃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04-06-06
513 묻고답하기 비웃음과 울음 - 최고관리자 04-05-30
512 묻고답하기 Re..창세기 19장 1-11절에 관하여...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5-29
511 묻고답하기 창세기 19장 1-11절에 관하여...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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