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 의존교회130712a,b(사단의 일)―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데살로니가후서

서울 의존교회130712a,b(사단의 일)―이 근호 목사

이름 : 김창길(IP:210.2.60.212)

서울 의존교회130712a (사단의 일)―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절부터 해야 되는데 16절을 하기 위해서는 앞의 이야기를 다시 연결시켜 해야 됨으로 9절을 보면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이렇게 나오는데 성경에서는 사단이 나와요. ‘사단의 역사’역사가 히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한다.’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면 성경에서 사단이 나온다면 지금 이 시대도 사단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되겠지요? 아 저게 사단의 일이구나! 하고 짐작이 가고 수긍이 갈만한 그런 일들을 우리가 요새 체험하십니까? 일상 동네에서 직장에서 저게 사단의 일이구나! 아, 사단이 있긴 있구나! 라고 생각나는 경우가 어떤 경우에 오죠? 성경에 사단이 일한다고 되어 있으니까…….

제가 말씀드릴 것은 사단, 다른 말로 하면 악마죠. 악마를 사단이라 합니다. 악마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얼마든지 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그 처신, 그러한 세상에 대한 태도, 만약에 그것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역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하나님이 잘못이죠.

‘얘들아! 너희들이 이 세상을 사나?’ ‘예,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 사단의 역사를 언급해 줬는데 그것을 평소에 너희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느끼느냐?’하면 ‘그것, 뭐 별로 안 느껴도 충분히 살겠던데요.’그 사단의 역사를 생각 안 해도 사는데 뭐 지장이 없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 말 괜히 했어! 이렇게 하나님이 나오겠어요? 아니지요.

아하, 너희들이 성경에서 조성하는 현실 말고 엉뚱한 현실 속에서 뭐 이만하면 됐습니다. 하고 그걸로 내 인생 이런 쪽으로 쭉 갈랍니다. 하고 성경과 다른 현실을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겁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찾아오면 성경어서 이야기한 현실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성경이 말하는 현실 속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어요. 사단의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입장과 사도바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입장은 분명히,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단의 일을 항상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내가 살아가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고 공중권세 잡은 사단을 뭐라 이야기 하지요? 공중권세 잡은 이죠. 에베소서 6장입니다. 학교에서 시험문제에 공중권세 잡은 () 해 놓고 다음에 공중권세 잡은 뒤에 들어갈 단어는? 1.박근혜 2.오바바 3.김정은 4.히틀러, 공중권세 잡은 해놓고 뒤에 ()에 들어갈 내용들이 뭔가? 성경을 모른다면 공중권세 잡은 해 놓고 뒤에는 우리가 아는 인물들, 우리가 이 세상에 현실 속에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인물을 집어넣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공중권세 잡은 이라고 해 놓고 뒤에 악마라고 했을 때 격자 구조로 우리가 현실을 봅시다. 우리가 여기에 앉아있고 우리는 격자구조 현실관을 만들거든요. 가까이는 내 남편, 내 자식들, 멀리는 내 직장 사람들, 또 멀리는 교회 교우들, 그렇게 해서 이것을 현실이라 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사단은 이 현실 속에 어느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사단을 집어넣고 우리가 현실을 이렇게 구조를 짜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단이라는 것은 아예 없다고 없는 존재로 그게 문제에요 사단이 없다고 간주하고 아무 변화 없이 아무 느낌 없이 그냥 살아갈 때 혹시 그것이 사단이 의도한 바는 아닐까요?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기를 내가 싸움은 혈과 육의 관한 싸움이 아니고 공중권세 잡은 악마와 싸운다고 했지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현실관 속에는 필히 뭐가 들어있습니까? 하나님의 원수로 들어 있습니까? 사단의 활동역사가 그 안에 필히 들어 있겠죠.

그런데 우리현실속의 사단은 어디 들어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사단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은 사단과 싸우는 인생이다. 라고 분명하게 정립을 했어요. 내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고 공중권세 잡은 사단과의 싸움이라고 정립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내 이야기, 생각에 대해서 너희가 동의하느냐? 우리에게 다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는 악마와 싸우는데 너희들도 그래? 그렇다면 우리는 다 같은 형제네? 안 그렇다면 사도 바울 나는 그럼 너희들과 다른 현실을 믿고 있구먼! 그 말은 너희들이 내가 생각하는 현실과 다른 현실을 생각하고 있구먼! 하고 같은 말이 되는 겁니다.

회사에서 입사한 말단 사원에게 1일 사장을 하라고 하다면 아마 그 신입사원은 자기 초등학교, 고등학교 동창생 불러서 자기가 사장이라고 사무실 소개하는 것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될 거예요. 봐라, 나 사장됐어! 무시하지 마! 이게 내 사장실이고 이 건물이 우리 회사다 어때? 괜찮지? 이것으로 하루일과를 다 보낼 수 있어요. 끝나고 회사이름으로 내가 너희한테 술 사줄게 이렇게 하겠지요. 그런데 진짜 사장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진짜 사장같으면 자기 친구 불러서 사장실 소개해 주고 하는 쓸데없는 짓 하겠어요? 아침부터 그 회사운영에 매진하겠지요.

사도 바울이 세상을 볼 때에 제대로 사도 노릇을 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하면서 무엇을 겨냥하느냐 하면 나의 싸움은 사단과의 싸움이 다고 언지를 우리한테 줬습니다. 그렇다면 회사사장은 회사사장이 하는 그 방침이 있잖아요. 그 방침대로 말단직원도 왜 이렇게 하지? 뜻은 모르지만 사장님 명령이니까 하긴 하는데 모르면서도 따라하는 수밖에 없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그 사도 바울이 말한 그 현실관을 우리도 수긍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데살로니가후서 가운데 사단이 역사가 있다는 말에 대해서 우리가 선뜻 수용 못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이 사단의 역사와 뭐가 관련이 되어 있냐 하면 사단의 역사와 예수님의 강림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강림이 하시면 제일 먼저 사단을 망하게 합니다.

그러면 사단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무슨 때가 오기를 간곡히 고대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것이 고대하고 그 소식이 반갑겠지요? 그러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단하고 피곤하고 어려운 삶이 있더라도 무엇이 있기에, 힘들고 어렵고 고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직도 사단이 일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내가 기쁘고 고대하고 반갑게 기대하는 것은 뭐냐?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는 그날이 있기에 우리는 그 날을 생각하면 늘 즐겁고 감사하고 기쁘다. 이렇게 되거든요. 예수님의 강림이 기뻐서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마다 않고 우리는 그것을 견뎌 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편지에 담아서 우리에게 소개를 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살아가는 것 맞지요? 라고 그것 다그치고 있어요. 그런 대목이 데살로니가뿐만 아니고 로마서도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7절에 보면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다’ 이 말은 뭔뜻인가 하면 사도 바울이 여러분!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 여기에 없지요? 라고 우리한테 확인 질문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사람도 우리끼리는 아무도 없죠?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면 앉아 있는 사람이 ‘아멘!’기쁘게 화답하겠지요. 아멘 듣고 싶었던 그 말이었습니다.

사도님이니까 우리 마음을 이렇게 잘 꿰뚫어보시네! 아이고 누가 내 마음을 괘 뚫어보고 계시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도 바울이 내 대신 다 해 버렸습니다. 라고 호감과 동감을 유발했다 이 말이죠.

그 다음에 8절도 같은 말이에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누구의 것이로다? 주의 것이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무엇을 낚아채는 겁니까? 무엇을 쏙 빼버리는 겁니까? 우리가 만든 현실에서 나라는 것은 쏙아 내서 다 뽑아 버리고 남아 있는 자리에 무엇을 집어넣느냐 하면 예수님을 다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을’이 되고 주님은 ‘갑’이 되는 거예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이 나보다 먼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먼저 존재하는 주님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차후에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라는 거예요.

주님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차후에 태어난 내가 태어날 이유도 목적도 의미도 없는 겁니다. 바로 그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니까 우리는 그냥 반갑고 그냥 좋지요. 라고 이렇게 사도 바울은 여기에 대한 우리의 동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리가 반갑지 않다는 것은 정신을 엉뚱한데 팔고 있다는 겁니다. 정신을 엉뚱한데 팔고 있다는 것은 지금 현실이 아닌 다른 현실을 사주를 받아서 뒤에서 내부 조정을 받아서 자꾸만 엉뚱한 현실관을 우리가 지어내고 창작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어요.

주님이 오신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은 인생이라는 겁니다. 불만스러운 겁니다. 그 불만스런 현실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이걸 만드는 재주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단은 우리를 거기에 살게 만들고 사단은 뒤로 빠지는 겁니다. 뒤로 빠지니까 우리는 사단의 역사나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할 수가 없지요. 항상 뒤편에서 조정하고 있으니까 없잖아, 없잖아 두리번거리는데 그 뒤쪽에 있으니까 그 두리번거리면서 매사가 불만스러운 거예요. 하루하루가 불만안스러운 날이 없어요.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불만스럽고 안 오면 덥다고 불만스럽고 하여튼 감사라 하는 것은 입을 닫았어요.

아침 눈뜨면서부터 감사는 없어요. 오직 매사가 불만스러워서 꼭 이런 현실에 내가 더 이상 살아야 되는가! 내가 자살하고 말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지 하는 그런 푸념만 쏟아내니까 그 쏟아내는 푸념을 하지고 성경에서는 사단의 역사라고 하는 거예요. 사단이 어디 있냐고 찾고 있는데 그렇게 찾고 있으면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단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물이 쏟아지고 있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사단의 역사를 우리가 안다고 해서 우리가 사단을 읽을 수가 없어요. 사단의 역사를 알았으니까 이제 사단을 생각안할 정도로 여유가다는 것도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단의 역사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현실 속에 항상 사단의 역사는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았어요. 항상 내가 싸움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과의 싸움 이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고요 성령 받은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현실 속에는 사단은 항상 생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단이 살아있는 이유는 바로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는 현실 속에 섞이다 보니까 자기도 사단의 역사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아까 사단의 역사를 이야기 했었죠. 불만스럽고 불평스럽고 모든 게 만족스럽지 않고 할 수가 있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따로 혼자서 행복해 지고 싶은 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싶은 도피하듯이 그렇게 하고서 그게 나의 소박한 나만의 캡슐 같은 아무도 관섭 없고 나만의 생활공간, 그것으로 자족한다고 할 때 사단의 역사가 물론 느껴지지 않는 동시에 사단의 역사가 느껴지지않는다면 뭐도 사라지느냐 하면 예수님의 강림도 그 현장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강림이 없어요.

제가 여기 와서 여러 번 강의를 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전에 했던 것을 예를 들면 공터에 가면 큰 하수도관이 있지요. 옛날에는 놀이터가 없어 애들이 이 안에 가서 놀았어요. 그것을 남자애들은 그것을 우리끼리 본부라고 합니다. 애들이 들어가고도 남지요. 지름이 2-3미터 되니까 자, 이 큰 배관 끝에 예수님의 강림이 있다면 이 사람이 여기 들어가야 뭐가 보이겠어요? 예수님의 강림이 보이겠지요? 처음에 강의 할 때 이 전체가 바로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이 점을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는데 알아듣지 설명 못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아 듣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너무 어려워서요.

십자가라는 사건은 단 회적이라 하는데 이것은 한번으로 끝내버렸어요. 한번으로 끝내버릴 경우 에는 쉽게 이야기해서 하나님은 창조를 몇 번했습니까? 한 번에 끝냈죠.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하는 것은 한 번에 끝낸 창조를 우리가 아는 시간대에다가 두고두고 우리가 느끼면서 살고 있죠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3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817 강의 왕과 제사장의 나라 130823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24
12,816 자유게시판 53강-에스겔19장 1-7(사자가족의 슬픔)130821 - 이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22
12,815 자유게시판 안양130809b-히3장1절(아들과 사환)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08-22
12,814 우리교회 사자 가족의 슬픔 130821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21
12,813 자유게시판 7강-학2장20-23(스룹바벨의 위치)130818-이 근호 목사 학개 최고관리자 13-08-20
12,812 자유게시판 47강-롬8장 23-25(보이지 않는 소망)130818-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9
열람 ➜ 자유게시판 서울 의존교회130712a,b(사단의 일)―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3-08-18
12,810 자유게시판 안양130809a-히3장1절(아들과 사환)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08-18
12,809 우리교회 스룹바벨의 위치 130818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3-08-18
12,808 우리교회 제자 뽑기 130818 - 최고관리자 13-08-18
12,807 묻고답하기 성령님의 기도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8
12,806 설교 보이지 않는 소망(로마서 8:23-25)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8
12,805 우리교회 보이지 않는 소망 130818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8
12,804 자유게시판 대전130725b-마13장41절(미래에서 오신 주님)42강- 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3-08-17
12,803 자유게시판 52강-에스겔18장 21-24(선인과 악인)130814-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15
12,802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3. 7. 26) 2강 - 최고관리자 13-08-15
12,801 우리교회 선인과 악인 130814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14
12,800 자유게시판 대전20130725a-행19장1절(육과 영의 경계선) - 이 근호목사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3-08-14
12,799 자유게시판 6강-학2장15-19(성전다운 생활)130811-이 근호 목사 학개 최고관리자 13-08-13
12,798 묻고답하기 성지 순례 - 최고관리자 13-08-13
12,797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2013. 7. 26) 1강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8-12
12,796 자유게시판 46강-롬8장 18-19(고난과 영광)130811-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2
12,795 우리교회 성전다운 생활 130811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13-08-11
12,794 우리교회 예수님 출생 130811 - 최고관리자 13-08-11
12,793 설교 고난과 영광(로마서 8:18-19)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8-1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