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130809a-히3장1절(아들과 사환) - 이 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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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공은주(IP:218.147.193.65)
안양130809a-히3장1절(아들과 사환) - 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히브리서3장 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성경이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 하늘과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땅만 있으면 살잖아요. 땅만 있으면 사는 게 정상입니다. 왜냐 하면, 아담부터 하늘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렸는데 다시 하늘을 생각한다는 자체가 좀 우리 입장과 차이나지요. 이미 우리는 하늘로서 추방된 존재이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땅에서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24시간 종일 땅만 생각하는 거 당연하지요. 오히려 가끔 하늘을 생각한다는 거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 오히려 좀 더 이상해요. 왜 이상하냐 하면, 인간은 하늘이 있다면,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땅으로 내려놓고 하늘을 생각할 때는 땅의 요소를 가지고 하늘을 생각해요. 그러면 이 하늘이 뭐가 되느냐 하면, 허상이 되는 겁니다. 허상인데, 우리가 이걸 아는 이야기로 하면 ‘종교’라고 이야기하죠.
이미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이 땅에 보낼 때, 도로 하늘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끝났어요. 도로 하늘로 가는 길은 끝났습니다. 에덴동산이 아니고 땅에 살 때는 우리 자신도 문제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에덴동산이 아니에요. 에덴동산이 아니기 때문에, 에덴동산이 아닌 곳은 그냥 땅이 아니고 죄가 다스리는 땅이에요. 또는 마귀가 다스리는 땅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우잖아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가운데서 사람은 누굽니까? 여자의 후손밖에 없지요. 사람은 다 여자의 후손은 아니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건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나와요.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예수님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든 것은 짐승취급을 당하는 거예요. 인간은. 그래서 요번에 수련회에서 했지만, 전도서에 보면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 한 곳으로 돌아간다. 인간으로 살아도, 짐승으로 살아도 가는 곳은 똑같네. 그냥 한 곳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요. 우리로 하여금. 땅만 쳐다보다가 땅만 생각하다가 땅으로 끓어 박는 식으로 그냥 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육체도 땅과 일치되기 위해서 흙으로 환원됩니다. 눈이 안 좋아도 흙이 되고, 귀가 안 좋아도 흙이 되고, 흰 머리카락이 되도 흙이 되고, 모든 것이 다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러니까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우리 몸만 달랑 에덴동산에서 떠났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에덴동산에 있던 혜택이 이 땅에서는 전혀 없을뿐더러 이 땅에는 하나님의 저주도 함께 우리를 덮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거예요. 아까 집사님 덥다고 했잖아요. 에덴동산이 덮겠습니까? 안 덮겠지요. 에덴동산은 덮지를 않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없을 거고. 그만큼 우리가 지금 우리 자리가 제자리가 아닌 곳에 왔다고 이리 생각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두 종류로서 인생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데, 머물고자 하는 인생과 떠나고자 하는 인생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머물고자 하는 인생은 이 땅이 천국이라고 여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이 땅을 떠나는 게 아쉽고, “아휴, 그 사람이 그렇게 죽었단다. 아유 아까워 죽겠네. 진짜 잘 나갔는데 왜 죽었느냐.” 할 때 잘 나갈 때 죽으면 참 애통하지요. 그런데 나이 98되어서 살 것 다 살고 똥오줌 다 싸고 애먹이고 어느 날 죽으면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여! 감사합니다. 그 자식들이 얼마나 찬양하겠습니까? 아마 감사헌금 낼 거예요. 드디어 보냈다. 애 먹이는 남편 죽게 되면 얼마나 할렐루야 되는지.
이 땅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이 땅 이외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자기의 인생 목표도 어디서 찾아야 되는가 하면, 이 땅에서 찾는 것이,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돼요. 한 예를 들면, 보험 사기범들, 차가 가는데 비틀비틀 거리면서 본네트에 엎드려서 다쳤다고 보험금 뜯어내는 그 사기꾼들 말이지요. 그 사람들은 차가 없는 곳에 가면 미칠 거예요. 차가 있어서 박아줘야 되는데. 그것처럼 세상의 희망과 모든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보람이 여기 이 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계속 머물고자 하는 인생이에요. 이런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왜냐 하면, 인간은 이미 범죄 했기 때문에 땅과 운명을 같이 하기 때문에 땅 이외에는 다른데 희망을 가질 아이디어가 머리가 그렇게 돌아가질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땅에서 떠나고자 하는 인생,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요번 수련회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사건을 맞닥트린 사람이에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언약이 사건화 되어서 제 말 잘 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언약이 사건화 되어서 우리에게 덮쳐버리면 우리 자신도 인생도 주의 응축이 되면서 하나의 사건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인생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언약이 요런 내 인생이라는 이름의 사건을 유발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놓여 있는 겁니다. 더운 안양에서 사는 이것도 하나의 사건이에요. 또 겨울 되면 되게 춥지요. 그것도 하나의 사건이고. 그걸 응축시키면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 사건들을 일부러 토막 낼 필요는 없어요. 하나로 응축합시다. 욥처럼 태어나서 죽는 것까지 하나님의 사건이라고. 그걸 흔히 우리 아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이리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리라, 이 말을 간단히 말하면, 성령이 오게 되면 너는 인생자체가 언약사건이 되리라, 같은 말로 보시면 됩니다. 사건 때문에. 사건이 되게 되면, 사건이 됐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 하면, 나의 역사 있잖아요. 나의 역사가 용납이 안 됩니다. 나한테 따로 역사가 있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뭐를 생각하게 되느냐 하면, 자기 역사가 항상 가치 있고 의미 있게 항상 요걸 다듬어야 돼요. 산에서 목동들이 나무를 해가지고 그냥 덜렁 의자 만들지 않잖아요. 이걸 대패로 다듬어야 되잖아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가지고 자꾸 다듬어요. 다듬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름대로의 예쁘게 되겠지요. 예쁘게 되는 걸 요번 수련회에서는 뭐라고 했느냐 하면, ‘규격화’라 했습니다. 곽을 짜듯이 딱 딱 짜줘야 잘라낼 것 잘라내고 짜줘야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상품’이 돼요.
상품이 되어서 인간시장에 하나의 상품으로 행세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시장 통에 감자, 옥수수 파는 아주머니들 있잖아요. 그걸 파는 것처럼 나는 오만원짜리 라고 붙이고 길바닥에 앉아 있는 셈이 된다, 이리 보면 됩니다. 인생 자체가. 여자들은 가정주부 같으면 살림하기 때문에 잘 못 느끼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남자들은 항상 하루, 하루 스펙 쌓는 거 이것이 자기 가슴팍에 나는 오십만원짜리요, 나는 이백만원짜리입니다. 항상 상품을 해야 됩니다. 하기 위해서는 허점과 약점, 전과 이런 것을 잘라내야 돼요. 나쁜 친구는 안 만나야 되고. 규격화되어야 돼요. 그래야 상품화되니까.
이게 뭐냐, 머물고자 하는 인생이에요. 내가 나를 챙겨주지 않으면 챙길 분이 없어요. 왜? 땅의 사람이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땅의 사람의 이것이 정상이라는 것.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주 극극극 소수의 사람들이 떠나고자 하는 인생을 살아요. 이것은 뭐냐 하면,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는지라, 다른 말로 하면 우리를 불러주시는 분은 하늘에서 불러주나니, 같은 이야기거든요. 나의 생명은 내 안에 없고 하늘에 있으니, 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쪽을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새끼가 어미 찾아가듯이.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잊지 못하듯이. 양이 한 마리 울고 있으면 목자가 찾아가듯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에덴동산 잊으세요. 에덴동산 없습니다. 에덴동산의 원형이 있어요. 에덴동산 원형에는 생명나무 있고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습니다. 선악과 생명나무가 있다는 것은 천국의 모형이라 이리 생각하시면 돼요.
모형이니까 그야말로 모형이에요. 모형의 가치는 모형이 깨어지면서 비로소 모형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수련회 할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진리라 하는 것은 위반하면서 진가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 했지요. 그냥 진리 있을 때는 몰라요. 위반하면서 아는 거예요. 우리가 건강이라는 것을 언제 느끼는가 하면, 병원에 가봐야 알아요. 애가 다리가 아프다. 평소 다리가 안 아플 때는 애는 다라 안 아프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프고 보니까 아, 그 전에 건강했었구나! 아는 거죠.
그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있다는 것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 종결 났다는 말입니까? 하나의 개시가 됐다는 이 말입니까? 개시지요. 왜냐 하면, 선악과나무는 잠깐 있다가 없어져야 될 나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건 인간들도 몰랐지요. 천국에는 선악과나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없어요. 요번에 수련회 때 뭐라 했느냐 하면, 인간은 실험실의 쥐라 했지요. 35도까지 올려봤다가 가시로 찔러 봤다가 주님께서 살았니? 죽었니? 하는 것처럼 쑤셔보는 거예요. 쑤셔보면 우리는 발작을 일으키지요. 주께서 바늘로 콕콕 쑤실 때, 우리가 아픔을 느끼거든요. 아픔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지금 자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보면 돼요. 아픔을 느낀다면.
“나 이런 인간 아닙니다. 하나님 이리 나오시면 참 곤란하지요. 내 평생 내 역사가운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정말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대우하십니까?” 이게 뭐냐 하면, 역사거든요. 그런데 사건은 역사가 깨질 때, 그 때 사건이 되는 거예요. 역사를 깨뜨린 그것이 사건이 되는 거예요. 노아가 태어날 때부터 노아 홍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을까요? 몰랐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방주 만들라 할 때부터 그 때 알았지요. 그러면 노아는 이 땅에 왜 태어난 거예요? 뚝딱! 뚝딱! 뭐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겁니까? 방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오늘 본문 봅시다. 히브리서 3장 5절,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온 집에서 그 다음에 뭐죠? 사환 종이지요. 종은 그 집의 주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에요. 그냥 일군이지요. 오늘 지금 본문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원형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원형이 따로 있는데, 그러면 이 세상은 왜 만들어 놨습니까? 그 다음 질문이 성급해서 빨리 질문하려고 하는 게 천국이 있으면 빨리 보내주지, 이 땅은 왜 있습니까? 라고 이야기하고 싶잖아요.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 있어야 될 이유는 주님께서 이 땅을 거치지 아니하면 천국이 안 만들어지니까 그렇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 천국은 아들의 나라입니다. 아들의 나라가 아닌 이상 천국은 아닙니다. 부채표가 아닌 것은 활명수가 아니에요. 아들의 나라가 아니면 천국이 아니에요. 아까 말한 땅에서 생각하는 허상은 내가 편하게 살면 그것이 천국이고 에덴동산인 줄 아는 거예요. 그럼 뭐가 빠진 거예요? 인간들은 내 편하면 최고다! 그래서 천국이라고 하고, 주님께서는 천국을 무슨 나라? 아들의 나라. 그러면 차이가 뭐예요? 둘 사이의 차이가 뭐가 없고 뭐가 있습니까? 아들이 있고 없고 차이지요. 에덴동산은 선악과 빠지면서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에덴동산 자체가 모형이에요. 이제 이해되시겠습니까?
에덴동산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임시적인 나라에요. 거기에 있는 아담과 하와도 임시적인 존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건이 되어야 돼요. 아담과 하와는 역사를 만들면 안 됩니다. 그게 창세기 5장에 나와요. 아담은 얼마까지 살다가 셋을 낳고 죽었더라, 아담이 태어났는데 뭐하다가 죽었더라, 그걸 가지고 오늘 본문 3장 5절에 보면, 모세는 장차, 장차입니다.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잠시, 잠시 일군이 되었더라, 그거나 아브라함은 이렇더라, 아담은 이렇더라, 노아는 이렇더라, 모세는 이렇더라, 다 같은 이야기에요.
노아가 방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방주 만들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역사가 있기는 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역사를 뭐에 집어넣느냐, 노아언약 사건 속에 사건의 일부로서 노아를 거기다가 응축을 해버려요. 우리는 지금 새 언약 안에 녹아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우리는 거기에 붙어있는 땅콩부스러기입니다. 어쨌든 아이스크림 되면 되잖아요.
큰 암벽 타는데 암벽 타는 사람이 기어 올라가면 멀리서 보게 되면 안 보입니다. 그냥 암벽덩어리에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까 개미하나 올라가는 것처럼, 사람하나 올라가는구나, 시커먼 사람이 머리 묶고 올라가더라, 오! 붙어있구나. 그런데 멀리서 보면 암벽만 남고 붙어있는 인간은 안 보이잖아요. 그것처럼 우리가 어디에 붙어있는가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는 거예요. 어디에 붙어있는가?
십자가 옆에 십자가 두 개가 있잖아요. 양 날개처럼. 인류 모든 인간들을 수백억이 태어났다, 죽었다 해도 그걸 딱 종합 정리해 보면, 십자가 옆에 있는 양쪽의 십자가 셋의 3명으로 다 그림은 끝납니다. 오늘밤에 낙원에 갈 사람과 그리고 예수님이 뭔데? 하는 사람과 딱 두 사람밖에 없어요. 그러면 뭐냐, 온 인류 역사는 십자가 사건 안에 응축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십자가로만 그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결론에 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이 다 불러내지, 왜 이렇게 하느냐? 바로 십자가사건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모형에 합류될 사람을 오늘 본문 3장 5절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환이라, 종이라 그렇게 언급하시는 겁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제가 지금까지 길게 이야기한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하고 주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사환인데,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한 종에 불과한데 자꾸 성경에서 눈 돌려버리면 누가 주인공입니까? 내 인생에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그런 입장이 되어서 주인공이 되면 그 다음에 뭘 하는가 하면, 나만의 역사를 행세하거든요. 수련회 때, 역사를 뭐라고 했느냐 하면, ‘동일화’라고 했지요. X=Y 그래프에서 죽 동일하게 간다는 것. 지금 내가 이 지점에 있는데, 내가 5년 뒤에는 B지점이라고 여길 때 그 사이가 바로 나의 자아가 된다는 겁니다. 나의 자아.
그러니까 “너, 누구야?” 하면 지금은 요 정도인데 5년 뒤에는 이렇게 될 겁니다, 라고 소개하는 거 이게 하나의 자아다 이 말입니다. 딸이 있는데, 사위감이 왔다 말이지요. 그 때, 장인, 장모 될 사람이 제일 먼저 묻는 게 뭐예요? 사랑하느냐 그걸 묻는 게 아니지요. 지가 데리고 살 사람이 아니니까. 지그 둘이 좋아서 붙어 다니는데. 묻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처음이요, 중간, 끝도 뭐예요? “자네 지금 무슨 일하고 있지? 앞으로 자네 포부가 뭐지?” 그거 물어요. 왜? 묻는 본인이 X=Y이기 때문에. 자기가 평소에 그렇게 그런 식으로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위감 될 사람에게도 그렇게 묻는 거예요. “사위감 앞으로 뭐할 거야? 세무사할거야? 앞으로 진급할거야? 5급으로. 이렇게 묻는 거예요. 본인이 그걸 기대하니까. 그러면 사위가 5급공무원 승진하게 되면 나는 뭐가 되냐, 5급 공무원의 장모가 되는 거예요. A부터 시작해서 B까지 쫙 나가잖아요. 이게 내 모습이에요. 무시하지 마! 앞으로 5급 공무원 장모야! 하고 친구만나면 자랑 질 해된다 말이지요.
이게 선악과도 모르고 생명나무도 모르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실도 모르고 모든 주변의 사건, 노아 방주, 십자가 강도이야기, 전부 다 날아가 버리고 달랑 남는 것은 지 역사만 현실이라고 여기는 이 거, 이런 사람들은 뭐가 아닙니까? 주님의 사환이 아니지요. 주님의 사환이 아니면 뭘 공격하게 돼 있느냐 하면, 주님의 아들 됨을 공격하는 그런 역할도 하게 돼 있어요. 사람은 그냥 늘 중립지대에 있는 게 아니고 지 거 챙기면 주님 모독하게 돼 있어요. 지 거 챙기면.
점 점 이야기가 어려워지지요. 이왕 어려운 거 어렵게 해봅시다. 6절,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의도적으로 모세를 사환이라고 한 이유가 뭐냐 하면, 여기 아들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환노릇 오래했다고 아들인체는 하라, 하지 마라? 하지 말라는 이야기에요. 히브리서 1장 첫 째는 뭐냐 하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아들로 이야기했지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노아, 모세, 아브라함 이 사람들은 결국은 하나님을 위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들은 하나님을 위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을 위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고 아들과의 차이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운 거예요. 노아와 모세 이런 사람들. 많이 차별대우해서 섭섭하십니까? 우리는 백날 해야 사환이고 아들은 예수님만 영원한 하나님이 세우신 아들이에요. 영원한 아들이에요.
그리고 세상만사는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느냐 하면, 내 중심이 아니고 아들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게 된 이유는 아드님을 아드님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따먹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어요. 이제 실상이 그 비밀이 툭툭 털리듯이 알게 되지요. 예수님을 위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거예요. 선악과 없애버리려고. 이 사실을 누가 알까. 듣는다고 알까.
아담이 하는 모든 저지른 짓은 아들을 보여주기 위한 사환의 짓을 한 거예요. 아들은 너희들이 못 따먹은 생명나무라는 거예요. 에덴동산에서 놓쳐버린 그 생명나무가 아들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들을 위하여 아들 때문에 너희들이 연관돼 있다면 그것은 너희들이 생명나무를 따먹어서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 집이 이 세상 천국 집이 아들을 위한 집이잖아요.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 전에 모세가 그 집에 종으로 일했다면 시다로 일했다면 집이 아들 집에서 일했다면 그 사람도 아들의 영생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 히브리서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의 논리입니다. 아!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 받고 예수님과 관련된 자는 예수님으로부터 혜택을 입는 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구나! 라고 하면 되지요.
이 말은 내가 일한다고 구원된다? 안 된다? 일한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일과 우리일과의 차이를 둠으로서 주님의 일하심 때문에 구원 받는데, 주님의 일한다는 것은 뭐냐, 우리가 지금 어슬프게 일하는 이 모든 일을 어설프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제대로 일하신 분입니다.
어렵게 됐는데 하나의 예를 들면, 1절에 봅시다. 우리를 믿는 도리의 사도며 그 다음에 뭐지요? 대제사장이신 예수지요.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 전에 대제사장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있었지만, 그들은 어설펐다 이 말입니다. 그들의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근거가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을 해도 아들이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아들을 높이는 나라가 천국이고 그래서 천국은 누구의 나라다? 아들의 나라라는 말이지요. 그 아들의 나라라는 것을 자기의 어설픔을 통해서 믿는 사람은 그 아들의 나라에 합류해서 아들만 높이니까 구원받는 거예요.
그 중에 예가 바로 아담이라 했지요.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것이 어설프잖아요. 선악과 따먹고 생명나무 따먹으려하니까 아서라 말아라, 생명은 그래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하고 못 따먹게 만들고 추방시켜서 아담은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돌아가는 그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줘버리니까 하나의 사건 되잖아요. 사건, 누굴 낳고 누굴 낳고 죽잖아요. 그 아담의 후손가운데 언약이 나왔지요. 노아 언약. 노아가 아담후손 아닙니까? 아담계통이잖아요. 그 노아언약을 통해서 그 다음에 그리스도가 나오니까 아담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소급해서 구원을 받는 겁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 일에 니가 참여된 거예요. 이 사실을 아담이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왜냐 하면, 창세기 3장에서 자기가 둘 다 늙어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아내 이름을 뭐라 지었습니까?
여자의 후손 이야기 나오고부터 자기 아내 이름을 여자가 아니라 하와를 지었어요. 여자여~ 여자여~ 한 것이 아니고 하와여~ 하와여~ 하와로 생명은 생명 앞으로 온 거예요. 생명아~ 생명아~ 부르면서 이것은 아담이 있던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아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건을 유발시키는데 맏이를 낳았잖아요. 그 때는 맏이는 몰랐지요. 아들이 나왔지요. 이름이 가인,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을 위해서 창세기3장15절을 위해서 우리에게 기적적으로 자식을 주셨구나, 하고 주셨다. 얻었다. 좋아들 했는데 그 동생이 등장하면서 거기에 반전이 일어나는 거예요. 역전되지요. 동생이름이 아벨, 아벨이 무슨 뜻이라 했습니까? 허무지요. 허무.
허무란 애가 태어나요. 애를 허무라 지었어요. 그러면 생명은 가인에서 얻었다 에서 주어지는 겁니까? 헛되고 헛되니 헛된 것에서 나온 겁니까? 생명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아벨, 헛됨에 있지요. 이 땅에서 헛되게 사시면 생명을 얻는다 이 말입니다.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가장 헛되게 사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에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다른 말로 하면, 니 십자가 지고 헛된 인생, 헛되게 살다보면 생명을 얻는다 이 말이에요.
소위 이 땅에서 머물고자 하는 인간은 오늘도 안 헛되려고 어찌하면 안 헛된 방법으로 사는 방면에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아이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헛되니 훌쩍 뛰는 거예요. 헛됨이니까 마음의 무게가 나가지를 않아요. 35Kg나가니까. 마음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어요. 떠나고자 하니까. 히브리서 읽을 때, 답답하게 읽지 마세요. 속 시원 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괴로워서 이거 모르면 지옥 갈까 싶어서 긴장되게 읽지 마시고 홀가분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일은 누가했다? 예수님이 다 했다. 우리는 뭐냐? 우리 하는 일은 어설프다. 어설프지만 왜 어설프냐, 어설프지 않는 분을 믿으라고 우리 하는 일에 하나같이 어설퍼요. 안 어설픈 게 없어요. 금요일날 하는데 목요일날 미리와 버리고.
1절 다시 봅시다.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 이야기 듣고 우리에게 제사장이 있는데 제사장이 또 오지? 이렇게 할 때, 모세가 이야기하면서 하나는 사환이고 한 쪽은 아들이니까 천사가 사환을 받드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누굴 받드러요? 아들을 받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이 천사들을 전부 다 굴복시키지요. 왜? 마지막 때는 사환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아들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에. 그 아들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바로 그 분이 아들이에요. 그 아들 때문에 세상은 모든 것은 게임오버, 게임 끝났어요. 도박하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끝난 것을 모르고 계속 도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인생 자체가 도박인데. 인생자체가 도박인데 새삼스레 왜 도박을 또 합니까? 그게 얼마나 무지몽매한 자들이에요. 지 인생도 도박인데 큰 도박이 있는데 왜 작은 도박에 빠져 있어요?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은 인생자체가 취미인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주부도 취미입니다.
3절에 봅시다.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 지은 사람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집 지은 사람입니다. 거기에 몰래 들어와 가지고 쥐새끼처럼 몰래 사는 그 사람은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면 안 되지요. 이 육신은 집입니다. 이 집은 예수님 살려고 온 집이에요. 그런데 이 집을 우리가 나 살려고 덜렁 등기를 일방적으로 해서 내 몸이라 하니까 주님보기에는 가찬지도 않지요.
이번 수련회하면서 이런 이야기했잖아요. 손톱이 자란다는 이야기했지요. 자라나라, 자라나라, 하면 손톱이 자랍니까? 손톱아 제발 자라지 마라, 귀찮다. 이러면 안자랍니까? 육신은 내 말 안 들어요. 내 몸이 육신이 내게 아니기 때문에 내 말 안 들어요. 육신은 우리 주님 말 듣습니다. 잠자라, 잠자라, 해서 잠 오는 게 아니에요. 피곤하면 잠이 오게 돼 있고, 진짜 아침 12시까지 자고 싶어도 잠자는 것조차 싫어요. 아침 되면 길거리에서 소리 나고 바깥에서 소리 나면 자기 싫어요. 눈 뜨고 싶어요. 그러니 발걸음을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시고 니가 걱정한다고 키가 한 자 자라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이 모든 거, 투수가 홈런 맞고 팔 비틀어지는 거, 전부 다 모든 것이 다 누가 하신 거예요? 주님이 하신 거예요.
그런지 한 번 봅시다. 시편104편 29절,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그들이(저희가) 뭐냐 하면, 25절에 보세요.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세상 모든 만물이 주님께서 호흡을 주니까 팔딱거리고 주께서 거두어가니까 그들은 뭐가 된다? 흙이 되었다 말이지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자기 집이라고 여기시고 만드시는 거예요. 아담이 죄짓고 난 뒤에 모든 피조물이 썩어가거든요. 썩어가니까 이건 고물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건지고 나머지는 그냥 불태워버리고 폐기처분하겠다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 명백한 뜻입니다. 더 이상 골치 아플 스토리가 없어요. 간단해요.
이 세상 멸망할 때, 유황불에 마귀와 이 세상 지배자 악마와 이세상과 죄와 전부다 몽땅 다 귀신들과 전부 다 이 세상 유황불로 보내버리고 천국 새 하늘과 새 땅 만들어서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은 거기다가 따로 한데 모아놓고 그 모아놓은 하나님의 성과, 우리가 하나님의 전리품이거든요. 전리품가운데서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영원히 살겠다. 이게 천국이고 그를 위하여 미리 에덴동산에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일부러 심어놓은 거예요.
따먹지 말라하는 나무 심어 놓고 결국은 마귀로 하여금 따먹도록 유혹하도록 허락해 놓고 따먹게 해놓고 왜 따먹느냐, 또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찾아와서 결국은 선악과 따먹은 그대로 우리는 죽어가면서 살리고. 그 작업을 꾸준히 지금 해 오신 거예요. 그렇다면 이거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성경의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어떤 하나님이냐, 자,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여기 땅입니다. 땅에서 신으로 가는 방법이 세 가지 있어요.
첫 째는 신탁입니다. 그리스의 여신, 성화할 때 여신들 있지요. 긴 롱 드레스입고 페인 거 입고, 그리스 로마에 보면 이방종교에는 그런 여자들이 있어가지고 신탁을 받아요. 신탁이 뭔 줄 아시지요. 신으로부터 즉석 신탁을 받는데, 신탁이 잘 안 오기 때문에 마약을 많이 해요. 구약에 있는 바알종교에 있는 남자무당과 여자 무당들이 마약을 많이 해요. 그래서 헤롱, 헤롱 헛소리 하는 겁니다. 신자들이 와가지고 아우! 신이시여, 하고 약 먹고 지금 헛소리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지가 성전 찾아 나올 때 기대했던 내용이 나오면 그래, 저거야, 하고 지가 알아서 골라 가면 되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 있는 갑바에는 신탁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지가 신탁자라, 지가 올라와서 절하다가 108절하다가 뭔가 한 번 떴다 하면 그게 신탁이에요. 이 땅에서 신탁으로 가는 게 있습니다. 지금도 기존 교회에서는 소위 이상한 권사들, 기도 많이 하는 권사들, 기도원에서 살듯이 와서 하는 권사들 예언하는 권사들 많아요. 성령의 은사라 해서. 성령의 은사를 소멸치 말라는 말씀대로 지가 신탁을 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문서로 하는 게 있어요. 문서라 하는 것은 법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책으로 신의 계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코란, 또는 몰몬경 그런 것들. 성경도 해당되겠지요. 이거는 문서 또는 법이라 할 수 있어요. 십계명도 법으로 되어 있잖아요. 지켜라, 하라, 하지 말라.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하면, 제사가 있어요. 이 세 가지 중에서 제일 먼저 한 게 뭘까요? 인간이 신을 통하여 올라간 것이 제일 먼저 한 게 뭘까요? 제사지요. 창세기 4장에 가인이 신에게 제사했잖아요. 사실은 제사가 먼저 나왔지만, 사실은 세 개 다 같이 갑니다. 함무라비법전해서 신이 만든 법이 있어요. 함무라비법전은 BC2300년경에 현재 이라크지방에 있는 수메르왕국 그 다음에 구바벨론나라에서 만든 법전입니다. 함무라비법전이 있어요. 이 법으로 신의 계명을 만든 거예요.
우파니샤드라는 게 있어요. 인도 종교에 보면 우파니샤드가 있어가지고 그 브라만신으로부터 신탁 받은 걸 적어놓은 게 있어요. 큰 종교는 전부 다 계시 책이 있어야 돼요. 신탁은 우후죽순처럼 개나 쥐나 신탁을 다 받으면 혼란스러워요. 표준 찾기가 곤란해요. 요거는 정경화 표준으로 되어 있어요. 신탁, 제사를 통해서 올라가는 겁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올라가는 겁니다. 올라 갈 때, 이런 종교행사로 해서 주로 나오는 조형물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바로 ‘탑’입니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대표적인 탑이 무슨 탑이지요? 바벨탑이지요. 직결되어 있으니까. 바벨탑이 되려면 공간적으로 바벨탑 크기의 대지가 있어야 돼요. 그게 옴파로스, 우주의 중심입니다. 대지의 중심. 그러니까 인간이 대지로 쫓겨난 뒤에는 이 대지에는 우리가 신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은 우리하고 뭔가 이렇게 ET처럼 손가락가지고 연결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 영화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할 때, 손가락가지고 찌지직하는 게 있지요. 뭔가 그 공간지점이 옴파로스, 거기에 제단을 쌓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세상의 각 민족마다 각자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 여기고 중심에다가 제단을 쌓아요.
공간적으로 중심만 있는 게 아니고 시간대로 원초적인 시간이 있어요. 원초적인 시간은 신기한 기적이 일어났던 그 시각을 처음 창조시간이 반복한다고 생각해서 고 시간대를 특별히 비워놓고 그 시간대에는 제사를 드리는 그런 원초적인 시간이 있어요. 얼른 보니까 창세기 2장 2절에 나오는 안식일하고 비슷하지요. 그런 것처럼 모든 민족에게 다 이게 있어요. 공간적으로 특수한 지점이 있는 거예요. 벧엘이 뭡니까?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그 지점에 뭐가 일어났지요? 야곱이 하나님과 말씀하시던 곳, 돌기둥을 쌓지요. 돌기둥이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세상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하늘로 가려면 여기에 문턱이 있다는 거예요. 문턱에 사다리가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문턱을 넘으면 천국이고 넘지 못하면 지옥이라는 겁니다. 이게 인간들의 아이디어에요.
그렇다면 성경은 뭡니까? 문턱이고 뭐고 없어요. 여러분들이 여호수아5장에 보면, 블레셋의 신, 다곤 신이 문지방에서 어떻게 돼요? 바짝 엎어져서 목이란 목은 다 부서지지요. 그 문턱이 무슨 문턱이냐, 문지방 문턱이 뭐냐 하면, 요기서 요기까지는 세속적인 공간이고, 여기서 여기까지는 거룩한 공간이고, 거룩한 공간에 가게 되어 있으면 그 정해진 시간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하고 접선을 시도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나러 나온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 여러분, 들어보니까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듣고 오해할만하지요? 기존의 인간들의 종교심에다가 율법이 딱 주어지니까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상황은 문제될 게 없고, 정상적이고 거기다가 추가해서 하나님의 계시만 추가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된다.”라고 오해할 만하지요. 오해입니다. 그거 아니거든요.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건 뭐냐, 인간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용한 모형입니다. 모형이지롱!! 율법은 모형이지롱! 십계명도 모형이지롱! 주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오셨거든요. 율법이 모형이지롱! 율법 지켜서 구원 못 받지롱! 그럼 뭐로 구원받습니까? 예수님으로 구원받지, 진짜 살아계신 분으로 구원받지, 모형 지켜서 구원받는 건 아닙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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