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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아버지와 아들 130731우리교회에스겔

아버지와 아들 130731

이름 : 이근호(IP:119.18.93.55)

아버지와 아들(에스겔 18:1-4)

이근호

13-07-31 21:22

아버지와 아들

2013년 7월 31일 본문 말씀: 에스겔 18:1-4

(겔 18: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8:2, 개역)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겔 18: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겔 18:4, 개역)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속담이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진리적 내용이 담겨 있는 글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속담에 시비를 거시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지 속담 하나만에 대해서 시비거시는 것이 아니라 속담 하나를 통해서 알려진 인간들의 본편적 정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시비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정리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도 같이 시다’라는 속담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관된 뜻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갖 지혜들을 짜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정리되어 나온 것이 ‘아버지의 이와 아들의 이가 같이 시게 된다’는 속담입니다. 그렇다면 모세 율법에 어디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이구동성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까? 출애굽기 20:5-6에 보면, “그것들(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을 누가 보고 누가 읽어도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도 시다”의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되게 됩니다. 즉 자식대에 있어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가사가 기우어지는 것은 아버지 대에 저지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그 벌을 ‘3-4대’까지 끌고 가신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해석을 내려주어야 비로소 출애굽기 20:5-6 말씀이 하나님의 빈-약속(거짓 약속)이 아님을 서로 동의하는 공동체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결론에 이르렀기에 서로가 “과연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있는게 맞구나”하고 신뢰성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출애굽기 20장에 대해서 달리 해석한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보내어서 “그 해석은 틀렸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틀린 이유를 제시하시면서 인간의 견해와 차이나는 주장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근원적으로 해석 인간 자체가 비-정상적인 존재인 것을 들추어내는 식으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즉 속담 해석의 반대라면 이렇게 되어야 마땅합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어도 자식 대까지는 내려가지 아니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이렇게 언급하십니다. “모든 영혼은 내게 속했다. 따라서 누가 핑계 누구 탓할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은 항상 벌로서 죽을 준비되어야 한다”는 식입니다.

이 말은 곧 사람들이 ‘내가 착하게 살기만하면 벌 안 받게 된다’는 의식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킨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곧 ‘모든 영혼’은 각자의 영혼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숨겨진 하나님의 진정한 비밀스런 뜻을 위하여 다루어질 대상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누가복음 13:32-33에 이렇게 나온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즉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자식 관계는 출애굽기 20:5의 말씀인 죄와 벌의 엮어짐이 어떤 식으로 성취되는지를 보여주는 재료가 되는 겁니다.

부모없는 자식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 존재이든 아버지와 어떻게든 관련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출애굽기 20:5의 원칙도 끼어들어 작동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완성은 인간들이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판정내려집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의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 자체가 ‘아들’이 되심으로서 ‘아버지’는 영원히 인간들에 의해서 숨겨져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보통 지상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아버지가 시간상으로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서는, 예수님께서 아들다움이 드러날 때만 아버지도 같이 계심이 알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목수 요셉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보는 그 자신이 따지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내린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들로 오셨고 또 아들답게 움직이므로서 모든 인간 세계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비-정상임이 밝혀집니다. 곧 모든 영혼은 죄인이라는 점을 알려집니다. 고린도후서 5:14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 곧 아들의 죽음으로 모든 영혼은 이미 그 죄로 애초부터 죽은 영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세계에서의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라는 것은 그 원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를 지상에 있는 죄악된 구조 안에서 부자 관관계를 통해서 드러내시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죽이시고 사흘이라는 기간 동안를 제시하므로서 인류의 긴긴 역사는 모두 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라는 이 사흘 안에 응축되어 담기게 됩니다. 죄악된 역사라는 성질을 품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아무리 인류사가 오래 지속되어도 그 의미와 목적은 이미 십자가 사건으로 확정 났음을 말해주는 겁니다.

어떤 영혼이든 범죄하면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은 곧 부모를 잘못만난 그 어떤 자식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용서받으면 그 영혼은 산다는 의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제자가 아버지와 작별 인사하는 것조차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08-04 15:36

51강-에스겔18장 1-4(아버지와 아들)130731-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18장 1절에서 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75페이지입니다.

에스겔 18:1-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속담을 주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속담이 뭐냐 하면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도 이가 시다.’ 하는 속담이 사람들 가운데, 유다나라 가운데 유행을 했다는 겁니다. 유다 사람들이 이런 속담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하시는 것에 대해서 속담이라는 이러한 단출한 문장으로 충분히 정리했다. 그들이 그렇게 자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짧은 속담 하나로 아마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일하시는 걸 우리는 옳다고 장담한다. 그게 대유행이 됐던 모양이죠.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거기에 대한 평가를 내리시는데 그 평가 내리시는 그 단어 하나가 4절 끝에 나옵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죽인다 이 말 이예요. ‘누구야? 그런 소리 하는 게 누구야? 내가 죽인다.’ 이 말입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야기할 때, 그쪽도 살아있고 이쪽도 살아있을 때 이야기라는 게 성사가 되잖아요. 그런데 ‘아저씨 이야기 좀 합시다.’ 하자마자 그쪽 아저씨가 ‘니 죽인다.’ 하면 그건 대화가 안 되죠. 이야기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는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십니다.‘고 하는데 하나님 우리한테 하는 말이 ’니 죽일 거야, 나 너 죽일 거야.‘ 라고 나온다면 설마 하나님 쪽에서 문제 있다고 생각 못하겠죠.

그럼 문제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언질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문제가 있는 인간들끼리 문제가 있는 인간이 모여서 정리하기를 하나님? 하나님 일은 이렇게 하는 거야. 뭐냐,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도 자연적으로 이가 시게 돼 있어. 이게 하나님의 뜻이야. 구약 성경 전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정리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니 죽일 거야.’ 이렇게 나오신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늘 잊고 삽니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늘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이 억지를 부려요. 뭐냐 하면 ‘하나님이여, 이 정도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챘으니까 하나님 저에게 복 줄만 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 주님 보시기는 그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상이 아니에요. 비-정상 이예요.

인간은 처음부터 비-정상입니다. 그래서 제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인간은 무슨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삶을 살든지 자기 속에 정상적이지 않은 비-정상적인 요소가 발휘되는 그런 양상으로 내가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본인이 수용을 해주셔야 되는 겁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그 속에 뭐가 섞여 있느냐 하면 비-정상적인 요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내 자신이 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야,’ 라고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요소가 발휘되어서 그런 행동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을 해주셔야 되는 겁니다.

흔히 주변에 이웃되는 사람을 볼 때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자기가 인생 고생 많이 하고 한평생 실패와 실패의 연속, 한 번도 성공했다는 건 없고 벌리면 실패하고 벌리면 실패하고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만약에 그가 이야기할 때 우리가 위로한답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잘 해결해주십니다.’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 뜻 이예요. 그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왜, 인간은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이 아닌데 정상이 아닌 것이 평생을 살면서 정상이 아닌 그 모양새를 보여주는 것, 그게 정상이죠.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피면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 하는 도대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유대나라를 지배한다, 다스린다. 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어떤 대목에서 어떻게 해석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됐는가를 우리가 충실히 봐야 됩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그것(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우상)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돼 있어요.

여기에 보면 나를 미워하는 죄를 갚아주는데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 아버지로부터 그 손자, 아버지로부터 그 증손자, 사대, 요까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일 나중에 태어난 손자는 이거는 지가 죄 짓지도 않았는데 그 윗대 4대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증조부 죄 때문에 지가 억울하게 벌을 당한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장 5절에 나오는 그 말씀 그대로다.‘ 라고 그 당시 유대 사람들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들어보니까 출애굽기 20장 5절 해석하면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죠? 그들이 정리한 게 맞다는 생각이 다시 공감되지 않습니까? 아비의 죄를 삼 사대까지 갚는다. 그야 뻔한 이야기죠. 삼 사대니까 사대까지 증손자까지. 그래서 죄는 아버지가 짓고 벌은 계속 아들도 벌 받고 손자도 벌 받고 증손자도 벌 받고, 그렇게 벌 내릴 때 이거는 ‘아!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출애굽기 20장이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실시하는구나. 뭐 그게 무슨 문제가 있겠어?’라고 누구든지 생각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정상으로 보이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에스겔 18장에 선지자를 보내서 그런 해석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지금 이런 소리 듣는 우리도 의아해할 판입니다.

하나님이여, 그게 왜 잘못되었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잘못이라면 그럼 하나님은 일을 어떻게 하시는데요? 라고 묻게 되면 그것이 3절에 나오죠.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속담으로 쓴 것은 폐기처분 시키겠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게 폐기처분 되고 나면, 그게 잘못됐다면 옳은 건 뭐냐, 옳은 것은 뭐냐, 바로 4절에 나오죠.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이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이렇게 에스겔 선지자가 우리한테 이런 이야기할 때 우리는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의 차이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 이야기나 그 이야기나 우리는 똑같이 들립니다.

좀 어렵더라고 심사숙고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죄를 졌는데 죄를 삼 사대까지 갚는다. 라고 누가 주장을 할 때에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이렇게 돼야 돼.’라고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때는 요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해야 우리가 납득이 됩니다. 아버지 죄는 삼 사대까지 있는 게 아니고 아버지의 죄는 아버지 죄로 끝나버려.‘ 그렇게 되면 ’아~ 나는 삼 사대까지 이른다고 돼 있는데 아버지 본인이 지은 죄는 본인으로 끝나는구나, 아, 그러니까 서로 다르구나. 아, 그러니까 둘 중에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는구나.‘ 우리가 충분히 납득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삼 사대까지 이런 식으로 아비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이 이가 시다. 라고 하는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라고 해놓고 모든 영혼은 내게 속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 이야기가 납득이 안 되네요. 제가 너무 말을 어렵게 했습니까?

“삼 사대까지 이른다.” 하니까 ‘아니야,’ ‘그럼 뭔데?‘ ’그 지가 지은 죄는 지 죄로 끝나는 거야.‘ ’그래?‘ 그럼 아버지 죄 져도 그 벌은 우리는 벌 안 받겠네.’ ‘안 받지.’ 그럼 연좌제가 폐지되는 거죠. 연좌제 아세요? 북한 공산주의 편들면 그 아들까지 취직 못하는 것. 옛날에 그런 제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죄 져도 니는 죄 안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본문에서 모든 영혼은 다 죄인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죄가 없는데 아버지 죄 때문에 내가 죽으니까 나는 좀 억울합니다.’ 그런 소리를 하나님 앞에 하지 말라 이 말이죠. “아버지가 지은 죄는 니가 똑같이 짓게 돼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에이그, 내가 벌 받는 것은 아버지 죄 때문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아버지나 그 나물에 그 밥, 아버지나 손자나 전부 다 똑같이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벌 받아서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영혼으로 하나님은 해석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 에스겔의 이 주장에 대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수용했겠습니까? 수용 안 하죠. 턱도 없습니다. 수용 안 합니다.

자, 이제부터 왜 에스겔의 이 이야기가 왜 그 당시 사람들이 수용을 할 수 없느냐 하면 제가 설교 처음에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은 정상이 아니고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 자체가 비-정상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몰라요. 지는 잘났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보시기에 다 못난 사람입니다.

자, 이제부터 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수용할 수도 없고 그것은 차라리 아버지가 죄 지어서 우리는 죄도 없는 우리가 벌 받는다는 쪽으로 왜 오히려 그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를 찬찬히 말씀드릴게요. 쉽게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7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이 삽십 륙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라고 돼 있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이 성을 치는데 좀 교만했었어요. ‘이런 것은 뭐 우리가 알아서 치겠습니다.‘ 하다가 하나님 언약궤를 앞장세우지 않고 인간들이 자기의 능력으로 저 능력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오히려 삼십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몇 만 명 죽고 삽 십만 명 죽고 여기서는 삼십 여섯 명 죽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약에 그 당시에 죽은 사람의 부모라면, 가족이라면 얼마나 아프겠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는 숫자 수만 명 죽고 십팔만 명 죽고 하니까 그건 자기 일 아니라고 이건 개미 밟는 식으로 ’잘 죽었다.‘ 넘어가는데 얼마 전에 일본 알프스 산에 70대 할아버지가 등산을 갔어요. 5명이 얼어 죽었습니다. 그게 방송에 여러 번 나오고, 신문에도 났습니다. 다섯 명의 70대 노인네가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니고 일본에 가서 산 위에 3천 미터 올라가서 얼어 죽었을 때 사람들은 다 아까워했어요. 또 일주일 전인가 변산반도에서 고등학생들이 캠핑 훈련받다가 물에 들어가라는 교관 말 듣고 다섯 명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우리는 그거 듣고 ’헤헤, 아이고.‘ 하죠.

성경에 보면 삼십 여섯 명 나와도 우리는 눈 꿈쩍도 안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거는 남의 이야기로 들어요. 자기 근처의 우리 시대에 노인 다섯 명 죽은 것은 ‘아이고, 쯧쯧, 아이고 안타깝다.’ 하죠. 여기 삼십 여섯 명 죽었던 부모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이 서른여섯 명 죽은 이 죽음을 하나님은 기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에 나오는 죽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 일가친척 자기와 같은 한국사람, 일본 알프스 산, 또는 변산반도에 갔던 고등학생들, 그런 것은 되게 가슴 아파하면서 여기 삼십 여섯 명 죽은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슴 아파하지 않아요. 십팔 만 오천 명 죽는 거. 7만 명 죽는 거. 우리는 거기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나와 관련된 사람이 한 사람만 죽어도 성경에 수십만 죽은 것보다 가슴 더 아파합니다. 비-정상 이예요. 우리는 진짜 비-정상입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이런 우리가 나밖에 모르는, 나밖에 모르는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감히 에스겔 18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성경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자, 우리가 어떤 점에서 이게 잘못됐느냐 이 말입니다. 제가 방금 해답의 힌트를 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유념하게 보는 죽음이 따로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 세상에서는 어느 자식도 아버지 없는 자식 없거든요. 다 모든 자식은 아버지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의 아버지를 공경하는데 그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 있음에 나를 낳았기에 아버지를 공경하는 거예요. 나를 공경하는 차원에서 아버지를 공경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나를 낳아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나를 이 땅에 낳아 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아버지를 보더라도 내가 갑이고 아버지가 을이 되는 거예요. 이거 비-정상 이예요.

주님께서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비-정상 속에 아버지와 아들 관계 속에 비-정상 속에 진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지고 뛰어드립니다. 뛰어들어서 너희들이 생각한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그 자체가 하나님한테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 아들 아버지 관계 속에 풍덩 뛰어듭니다. 풍덩 뛰어드는 그 표현을 여기 18장 4절에서는 “모든 영혼은 내게 속했다.” 이렇게 돼 있어요.

“모든 영혼은 내게 속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영혼들은 너희들 영혼과 영혼들까지는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본 알프스 산에 가서 얼어 죽었습니다. 참 안 됐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모든 영혼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하고자 하는 뜻을 담기 위해서 재료로 끌어 모은 하나님의 그 작업 속에 있는 작업장 속에 있는 재료에요. 환경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 관계 알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 또는 나는 그분의 아들, 그거밖에 모르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관계인지 사람들은 몰라요. 그 모르는 것 가지고 하나님이 뭐냐, 그러니까 너는 비-정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는 지옥 가야 된다는 겁니다. 천국에 합류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육신의 아버지와 지 가족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쪽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 속에 집어넣는 거예요. 집어넣게 되면 어떤 차이가 되느냐 하면 세상 사람들한테는 아버지가 먼저 있고 아버지가 나를 낳았기에 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물론 자기가 사랑하는 건 자기가 문제지만, 시간적인 순서상 아버지가 먼저고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있다.

그런데 성경 출애굽기에 보니까 아버지가 죄 지어서 사대까지 벌이 온다 하니까 ‘아이고, 참 우리는 아버지 잘못 만나서 아버지가 똑바로 살았으면 우리가 고생 안 할 텐데 아버지가 잘못돼서 우리가 고생한다. 성경 말씀 딱 맞네.’ 라고 성경 말씀을 출애굽기 20장 5절 말씀을 오해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는 몰라요. 숨겨져 있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아들이 지상에 꽃봉오리처럼 피어나올 때만 그 자리에 그 아들이 없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 내실 때 비로소 그 자리가 아버지가 함께 있는 장소가 되는 겁니다. 아! 참 어렵죠.

지금 이 땅에는 사람의 아들밖에 없어요. 육체의 아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을 여기서 태어나게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아기 예수로! 별까지 동원하면서. 그런데 그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사람들은 뭐냐, 저 아기의 아버지가 목수의 아들이라는 거예요. 아버지가 목수 질을 하고 있는 요셉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인간들이 정상이 아닌 거예요. 비-정상적인 존재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냐, 그 요셉이 아버지가 아니고 숨어있는 하늘의 하나님이 바로 그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이러나저러나, 저러나 이러나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들 많은데 구태여 인구 하나 보태겠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만들어 낸 이유가 뭐냐, 이유가 있어야 될 게 아니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요. ‘좋아요.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간주할게요. 간주하면 되죠. 그럼 끝났죠?’ 우리는 이렇게 쉽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모든 범죄 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모든 범죄 하는 영혼은 죽인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 했습니까? 아버지는 숨어있거든요. 숨어있으니까 모든 범죄 한 것은 내가 죽여 버린다, 하는 그 뜻을 아들을 통해서 이 땅에 심겨놓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심겨놓는가? 오늘 설교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에 도달했는데 참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3장 33절에 보면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고 난 뒤에 사흘 뒤에 아버지와 합류된다는 그 내용, 부활로서 합류된다는 그 내용이거든요. 그 죽는 장소가 예루살렘이고. 그래서 예루살렘 밖에서는 하나님 아들은 죽지 않는다는 그런 뜻인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 역사가 있는 수천, 수만 년 역사라 하더라도 그것은 뭐냐 하면 전부 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보여주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진짜 하나님과 진짜 아들 사이의 관계에 거기에 모두가 몽땅 다 응축이 되게 돼 있어요. 이 세상 인류 역사가 수천 년 역사라면 그 수천 년 역사가 펼쳐진 그 역사를 이렇게 꽁꽁 묶어서 돌돌 말아서 이걸 압축시키고 더 압축시키면 결국 그 모든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님이 십자가 죽었다가 하루, 이틀, 사흘, 끝! 하고 부활되는 고 사이에 삼일 안에 몽땅 담겨서 응축되고 압축되어서 담겨져 있는 역사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 모든 역사는 범죄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죽어 마땅한 범죄자란 것을 폭로시킵니다. 그리고 예수님마저 하루, 이틀, 사흘, 원, 투, 쓰리, 하루, 이틀, 사흘 동안에 예수님도 죽음의 세계, 음부의 세계에 저주받은 채로 계셔야 됐어요. 무덤에서 죽어야 했어요.

그 다음에 살려주고 안 살려주고는 누구 조치냐 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조치가 되는 겁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왜냐 하면 인간들의 모든 생각은 아버지 있고 내가 있고 그럼 내가 결혼해서 애 낳으면 그건 하나의 역사가 되고 이 역사는 하나님 역사, 복주는 역사니까 ‘우리 역사야 영원 하라.’ 이렇게 끝나거든요. 그리고 자기 인생을 살면서 사람은 살면서도 내가 사는 이유와 목적과 의미를 전혀 모르고 그저 자기한테 해악이나 안 끼쳤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아버지가 죄 지으니까 사대까지 갚는다 하니까 ‘에이, 하여튼 아버지를 잘 만나야 돼. 아버지가 깨끗했으면 우리는 복 받을 건데 아버지가 범죄 해서 내가 범죄 했잖아. 아휴, 재수 없어. 하지만 나라도 착해야 내 후손이 복 받지.’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들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잘하면 내가 복 받고 아버지가 못하면 벌 받는다는 이런 생각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고 지상에 있는 아들을 먼저 보라. 아버지는 감춰져 있고 아들을 먼저 봐라. 아들은 하루, 이틀, 사흘, 예수님이 십자가 죽고 난 뒤에 하루, 이틀 사흘 동안에 모든 시간이란 시간은 거기에 다 응축돼서 담기게 되면 모든 인간은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저주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이 들통 납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그 말씀 나오죠. 14절에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 진짜 하나님 아들, 우리는 그 아버지 아들이지만 그거 말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우리와 같이 섞여서 죽으심으로서 일거에 모든 인간은 사실상 이미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이 다 펼쳐 보이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늘 보니까 살아있다고 여기는데 하나님 아버지 안목으로 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거든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니까 우리는 사실은 산 것이 아니고 이미 죽어있는 식이 돼요. 그러면 아버지도 죽어있으니까 죽은 아버지에서 죽은 내가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영혼은 예수님이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깔아놓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하나의 재료들이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제가 조금 전에 글을 썼는데 글이 ‘불가능성’이라는 글을 십자가마을에다 써서 올려놓았습니다. 불가능함이 뭐냐 하면 사람이 어떤 일을 성공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럴 때 ‘아, 나는 왜 인생 실패만 할까?’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글 내용에 이런 게 있어요. 손톱이 내가 지시해서 손톱이 자라나는가? 우리가 ‘손톱아 자라나라. 손톱아 자라나라.’ 하면 그러면 손톱이 자라나고 ‘손톱아 자라나지 마.’ 이러면 손톱이 안 자라납니까? 손톱은 내가 지시 안 해도 저절로 손톱이 자라나죠. 그러니까 이게 뭐냐, 불가능성 이예요.

그러면 손톱만 불가능성이고, 그럼 다리털은? 그것도 불가능성, 키가 자라는 것도 불가능성, 우리 몸 전체가 애초부터 불가능성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럼 불가능성이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기적이거든요. 내가 여기 살아가는 것도 기적인데 우리는 기적 덩어리를 품고 있으면서도 뭐라고 평가하느냐 하면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 이런 소리를 하더란 말이죠.

그러면 당신은 평소에 뭐를 생각했어요? 내 가능성이 나와야 성공이지, 나는 내 가능성대로 안 되면 나는 싫어.‘라는 그러한 죄악 된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겁니다. 인간은. 인간은 손톱부터 발톱부터 지금 머리는 빠졌지만, 머리부터 모든 게 전부 다 기적의 조립 이예요. 기적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만 할 따름 이예요. 감사할 밖에 없는 그런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는 맨날 하는 말이 ’나는 내 인생 평생에 성공이 없고 실패밖에 없어. 나는 되는 일이 없어.‘ 이렇게 불평들을 늘어놓을 때에 평소에 그 사람의 기본 심성이 뭐를 노리느냐 이 말 이예요. 결국 하나님의 기적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심성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범죄가 특정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봐야 마치 인생 성공한 것처럼 그렇게 우쭐대는데 그것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것이 바로 모든 영혼은 죽어 마땅한 범죄형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시간이 끝나는 날, 다시 합시다. 하루, 이틀, 사흘 뒤에 여기 누가복음 13장 33절에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말씀을 주께서 하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의 길을 가리라” 13장 33절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내 갈 길을 가야 하리니, 그 길이 뭐냐 하면 바로 인간의 역사가 아무리 길더라도 그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닫혀 있는 역사인데, 주님께서 하루, 이틀, 사흘 지나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고난 가운데, 죽음 가운데 부활시킵니다. 그것이 뭐냐 예수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십자가 죽고 난 뒤에 또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생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영생의 세계에 누가 가느냐?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같이 따라가는 사람에게만 예수님이 가는 그 길, 나의 갈 길, 예수님이 갈 길에 동행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나의 시간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돼요. ’내가 여기던 내 인생도 십자가 앞에서는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아요. 십자가 앞에서는.‘ 범죄자가 범죄인 것을 들통 내는 그 짧은 순간이 십자가 사건으로 몽땅 그 긴긴 시간을 표현 다 해줬어요.

문제는 그 죽고 난 뒤에 하루, 이틀, 사흘 만에 드디어 부활의 아버지와 합류하는 주님의 그 갈 길에 우리가 동참하느냐? 이게 중요한 문제죠. 그 동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동참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서 ‘니는 이미 범죄한 영혼이야.’라고 한 말에 대해서 수긍을 하고 동의하고 범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이거는 하나님의 놀라운 우리 보기에는 불가능한 기적, 기적, 기적의 연속입니다. 행복과 축복의 연속입니다.‘라고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영의 힘에 의해서 동행하는 그러한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84년 살든 또는 60년을 살든 백날 살아봐야 우리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에,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에 붙잡히면 우리의 인생, 슬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제는 남아있는 것은 영생의 인생만 우리에게 남아있다고 그렇게 주님 앞에 감사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시간 계산하다가 우리가 정상이 아닌 것이 그만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인생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거, 그것이 얼마나 이게 믿음이 아니고 악마의 속임수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모든 영혼이 범죄 한 영혼인 것을 이미 전제로 하여 십자가, 우리 대신 죽으러 오신 주님만 찬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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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3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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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