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강-YouTube강의(인간해체)1307018-이 근호 목사
42강-YouTube강의(인간해체)1307018-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42강-YouTube강의(인간해체)1307018-이 근호 목사
제목은 “인간해체”입니다. 기독교와 복음의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독교는 종교에 속했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고, 따라서 거기는 역사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시 되는 겁니다. 기독교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소속 되어 있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의 역사 속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천국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이 될 수가 없죠. 그래서 복음이라 하는 것은 종교, 기독교의 손에 잡히지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특히 종교, 기독교는 그 자체를 우상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합니다.
그러니까 뭘 걸치고 있다는 것이 그게 아까운거죠. 걸치고 있으니까 그걸 포기 못하고 내버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걸친다든지, 사람들이 운영한다든지 경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예요. 복음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복음을 쥐고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은 우리 주님께서 친히 관리하시기 때문에, 사람 손에 그 경영과 운영을 맡기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십니다. 활동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주님의 활동을 느끼지 못하고, 활발한 교회의 활동을 마치 주님의 활동인 것처럼 대체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복음의 차이가 명확하게 이제부터 뭔지를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편 90편 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티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복음으로 일하시는 분이 우리보고 이야기하기를 너는 티끌로 돌아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터 잡고 있는 이 터가 우리 인간 들은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잘못 생각한거고, 티끌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세상은 존재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 주되심을 점점 드러내게 되면, ‘아 인간이라 하는 것은 티끌로 마땅히 돌아가야 되는 구나’ 하는 사실만 점점 더 부각될 뿐이예요. 제목이 인간해체인데, 인간을 해체시키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등장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도 살고, 하나님도 살고 이런건 없습니다.
주님사시면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되고, 내가 산다면 주님은 사라지고, 주님은 현장에 계시지를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만큼 주님을 외면해 버리는거죠.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께서 활동하시는데 인간해체, 인간들로 하여금 인생들아 티끌로 돌아가라 하는 그 명령을 시도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인간들이 나름대로의 하나님에 대한 추적을 시도하고, 추적해서 접촉을 시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경건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해서 이런걸 가지고 신의 세계와 접촉, 또는 하나님과 접촉을 시도해서 뭔가 성과를 얻었다면 그건 100% 우상입니다. 바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가장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죄의 궁극적인 모습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원인이 뭐냐하면, 인간본인이 티끌로 안돌아 갈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물이 바로 우상숭배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자기도 좋으면서, 하나님도 좋게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일단 자기를 절대로 뭉개지지 않고, 해체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그런 든든한 존재로서 일단 전제로 깔고 들어갑니다. ‘이 세상은 나를 살리는 세상이다.’ 그런 인식부터 시작하거든요. 나를 살리기 위해서 내 능력보다 더 센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어떤 손을 내밀고 어떤 조치를 취하면, 하나님은 나에게 도와줄 것인가? 그러한 시도가 사실은 모든 인간들이 다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구약에 그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나라를 만들면서 수백 번 주의를 줬어요.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마라. 우상숭배하지 마라.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중에 여호와 자체가 우상이 되고 말았고, 주의 이름이 그들에게는 우상으로 작용한 이유가 근본적으로 본인자신이 티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아주 단호한 뭔가 주님의 하신 일에 대드는, 반항하는 식의 그런 쪽으로 자기 자신의 인식을 가져갔던 것입니다.
시편 90편 9절에 보면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10절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11절 “누가 주의 노(분노)의 능력을 알리요.” 주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상 숭배하는 나 자신을 그냥 무작정 사는 것 쪽에 온 하루 24시간을 종일 매달리는 이 행동에 대해서 분노하시면서 티끌로 돌아가는 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주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느낄 때, 바로 우상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즐감 하면서, 시편 90편에 나오는 이 내용이 자신의 인생의 핵심으로 장착돼 있는 자로 살아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살리는 인생이 아니고, 나한테 장착된 말씀을 살려내는 인생. 그것은 주님께서 티끌로 돌아가게 하면서 동시에 주님이 관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작업 중에 있는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인간을 구원하죠.
그래서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 하도록 보존하리라.” 그렇게 단정하신 이유가 예수님 본인이 이 땅에서 오늘 시편 90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본인 자신이 이 땅에 자기를 죽이는 이 세상으로 접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알의 밀알이 죽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이 준비한 열매가 맺힌다. 바로 그 코스대로, 그 경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는데,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는 것이 뭘까? 그것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언약과, 약속위주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거든요.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언약의 완성자,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 속에 우리로 하여금 티끌로 돌아가는 역할, 재료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고, 매일 같이 죽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 인생을 자랑하기에 급급하죠. 그래서 시편 90편 4절에 보면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절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절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어떤 인생이 백살을 살아도 죽게 되면 그냥 하루아침에 하루만 살다 사라지는 풀같은 존재라는 안목으로 주님이 보기 때문에 너도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봐야 주와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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