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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30709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5-교리 만들기자유게시판마태복음

20130709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5-교리 만들기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30709b 부산강의 : [80여명의 신학자들]05-교리 만들기

(강의:이근호 목사)

이레니우스, 아타나시우스, 터툴리안, 이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터툴리안은, 인간이 원죄가 있잖아요. 만약에 오리겐의 알렉산드리아신학처럼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고 그러니까 로고스 되는, 오리겐은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어요. 예수님은 사실은 하나님은 아니에요. 두 번째 질이 떨어지는 하나님으로 본 거예요. 그럴 때 터툴리안이나 로마 쪽의 사람들이 볼 때 그렇게 되면 인간의 구원이 성사가 안 된다는 거예요.

로고스가 인간 속에 들어가서 인성을 신성으로 바꿔야 되는데 어설픈 하나님이 들어가 버리면 결국 도착지점이 진짜 참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를 다 받는 것이 아니고 어설픈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때문에 제대로 된 원죄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를 졌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해결도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가 돼야 되는데 죄를 묻는 분 말고 다른 분이, 죄에 묻는다는 그분이 용서를 해야 되는데 그래야 자기가 정죄한다를 취소한다가 되는데 그렇지 않고 정죄를 어떤 하나님이 하고 질 떨어진 다른 하나님이 용서해줄게 한다면 온전한 구원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예수님이 하나님이 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유사본질이 아니고 동일본질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렇게 따지면 너무 교리적이고 너무 법률적이라는 거예요. 그런 것은 일반 대중들은 모르고 어디서 배워야 돼요? 교회 와서 진짜 많이 배운 신부들에게 직접 교육을 받아야 돼요. 교육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 못 받지요. 그 사람들은 그런 것만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곤란하지요.

지금도 그래요. 성부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변해요. 만약에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라면 이게 단일신이 아니고 다신론이 되죠. 다신론이 돼버리면 각 하나님마다 구원의 법칙, 삶의 원리가 동일하지 않는 겁니다.

어쨌든 간에 여기 교부들의 이야기가 단편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것은 교부들이 기독교 내부의 싸움뿐만 아니고 기존의 다신론과도 싸워야 되잖아요. 유대교와도 싸워야 되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로고스가 됐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로마 쪽이고, 동방신학 쪽은 예수님은 로고스와 그리스도와 연관시켜야 되고, 이 로고스는 하나님보다 한 수 낮은 신이라고 보는 거죠. 로고스가 하나님보다 낮다는 것은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나왔던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칙과 원리가 로고스기 때문에.

이렇게 할 때 교리가 어떻게 발전되는가? 점점 골치 아프게 됐는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할 뿐 아니고 경륜, 세상의 창조부터 모든 것이 지상의 역사에도 하나님이 개입해왔기 때문에 역사가 이렇게 됐다는 경륜적이 되면서 하나의 체계적인 조직신학, 성경신학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경륜적으로 보게 되면 점점 교리가 폭이 넓혀지겠지요. 그걸 신학의 발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신학이 자체적으로 발전되면서 완성되지는 못하고 자체 내에서 논쟁이 일어나게 되거든요. 논쟁이 발생하면서 이단들이 여기서 튀어나오는 겁니다. 군에서 참호 전투처럼 사람들을 들어내는 게 있잖아요. 이단은 저리 가라고 내치고 이단은 이단끼리 모이고 또 자기들끼리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중에 아리우스란 사람의 주장을 보세요. 여기서 새로운 신학이 나왔는데 부정신학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란 신학자도 부정신학인데 하나님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데 예수그리스도가 성경에 보니까 아버지에 대해서 다는 모른다고 돼있어요. 그 때와 그 시는 나도 모른다고 돼있고, 또 마태복음 19장에 부자청년이 와서 “선하신 선생님이여” 하니까 “왜 나에게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아버지밖에 없는데” 따라서 그 때와 그 시를 모른다고 했으니까 예수님도 아버지에 대해서 온전히 다 아시는 분은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낳았다는 거예요. 엄마가 아기 낳듯이. 낳았다는 말은 예수님도 이 땅에 없었던 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행기에서 미사일이 장착되었다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없었는데 튀어나온 거예요. 그때 인간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리한 하나님으로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진짜 신을 만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아리우스가 이렇게 언급한 이유가 뭐냐 하면, 바로 유일신을 지키기 위해서. 유일신을 왜 지켜야 되느냐 하면, 성경에 보니까 나는 오직 하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교재 계속 나갑니다만 하나님이 한분밖에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이 성령의 역사냐? 그야말로 아니면 철학이냐?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은 철학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이 그래요. 인간은 하나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은 곧 신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 궁극적으로 다양성이 하나로 모아지는 식으로 방향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개념에 신이라는 것을 갖다 붙이는 거예요.

그런데 클레멘트가 두 사람 있어요. 로마에 클레멘트가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있어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오리겐과 같이 부정신학입니다. 부정신학이 신비주의라고 했는데 부정신학은, 하나님은 모든 언어에 대해서 초월해있다. 언어에 대해서 초월해있기 때문에 신학 자체로서 신을 표현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갑바도기아 세 신학자들도 같은 이야기했어요. 그 사람들이 중요한 걸 했어요. 삼위일체가 3이잖아요. 삼신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느냐 할 때 위격내재라는 말을 했어요. 레온티우스도 그런 이야기했는데 위격내재가 뭐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하나님이 삼신이면 저녁도 한 사람은 라면 먹고 한 사람은 밥 먹고 따로 먹는 거예요. 모든 찬양과 모든 사역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세 분이 다 같이 한다고 한 것이 바로 갑바도기아 세 천재적인 신학자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칼케돈공의회(451년)에서 삼위일체교리가 완전히 교리가 정립이 돼요. 성부, 성자, 성령도 동일본질을 같이 누린다고 봅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예수그리스도는 비록 육과 혼은 인간을 갖고 있지만 영 만큼은 로고스로 갖고 있다고 주장해요. 그러다가 이단으로 참호 전투에서 튕겨나갔지만. 성령도 같이 하나님이다. 그렇게 완전히 교리가 구축이 됩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이 다 하나님이라는 것을 물었잖아요. 그러면 동방신학이 잘못됐다는 것이 뭡니까? 할 때 사실은 한국기독교신학교전통이 로마의 삼위일체교리에서 나온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 우리가 신앙 고백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어떤 교리를 표현할 때 이미 언어적으로 가미했다는 자체가 하나님은 그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해서 부정신학인데 그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뭐로 바뀌느냐 하면, 모든 것이 긍정신학이 돼요. 하여튼 옛날에도 그런 것만 연구한 사람이 있던 모양이라. 신이 어떤 분이냐? 알아서 뭐 할 건데. 신이 어떤 분인지 계속 연구하는 거예요.

그래도 만족하지 못해요. 왜? 원래 삼위일체에 나오는 ‘우시아’라는 용어도 처음 초대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쳤어요. 우시아라는 게 뭐냐? 이게 물질이라는 뜻이거든요. 물질로 어떻게 신을 표현하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사용 안 했다가 교리정립과정에서 이단들이(그들이 말하는 이단이죠) 등장하니까 교회가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사실은 로마제국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신학자들 모아놓고 가둬놓고 이것은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고 나라가 깨지면 안 되니까 나라가 하나의 교리로 뭉쳐야 되니까 결정한 것이 우시아란 용어를 집어넣은 거예요. 실체란 용어를 집어넣은 거예요.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삼위일체 교육을 언제 받았지요? 빨리 받아 적어. 안 그랬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밤에 낙원에 간다 했지요. 부정신학이든 긍정신학이든 신비주의든 모든 신학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리자를 자처한다는 거예요. 교회가.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여러분을 구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구원받고 싶지요? 여러분의 요구를 우리 교회가 충분히 수용해서 우리가 가르치는 이 교육과 교리공부, 신학을 하시면 이 신학은 훌륭한 선배들의 전통과 아주 정화되고 순수하게 구원받기 적합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같이 가담하시면 구원받는다고 제시하는 용도에요.

사도신경을 예수님이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이 이야기한 게 주기도문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주기도문 외우면 구원받는다고 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사도신경을 예수님이 안 만들었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경말씀밖에 없고, 성경말씀에 대해서 성령이 역사를 해야 성령이 말씀으로 말씀이 스스로 우리 안에 역사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교리논쟁들이 계속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을 몰라서는 안 되지요. 왜냐 하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구원하기 위해서 아주 정교하고 세밀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을 놓치면 안 되거든요.

유일신을 유지하면서 유일신을 성부라고 잡고서 그 다음에 여기에 성자와 성령을 거느리게 되는 겁니다. 전에 수련회할 때는 성령도 처음에 등장하지 않았지요. 삼위일체는 나중에 생겼고, 제일 먼저 논쟁된 것이 성자의 논쟁이었고, 성자의 논쟁에 성부를 합쳐서 나중에 삼위일체가 생기거든요.

성자의 논쟁에서 로고스와 인간의 육을 할 때 로고스가 신성이라면 신성이 인간의 육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 로고스가 인간의 신성을 대신한다고 주장했어요. 키릴이란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여 네스토리우스란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신성이 하나님의 신성을 대신한 게 아니고 예수님 자체 내에서 신성 따로 있고 인성 따로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통합돼있다고 했어요. 이걸 이성론이라 해요.

그런데 유티쿠스란 사람이 등장해서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이걸 단성론이라 합니다. 그런데 전통으로 정해진 신성은 뭔 줄 알아요? 이성론은 2 아닙니까. 단성론은 1이거든요. 유티투스의 단성론은 루터도 이야기했어요. 그러면 정답은 뭐예요? 정답은 이렇습니다. 양성론. 그래서 나중에 아타나시우스 신조 등에 보면, 예수님은 인간이면서 신이시고 서로 섞이거나 통합되지도 아니하고, 뭐 이렇게 돼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통합된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지옥 가는 거예요.

그러면 봅시다. 시장에서 물건 파는 무식하고 순박한 아줌마가 천국 가려면 물건 팔고 집에 와서 삼위일체를 연구해야 돼요. 그리고 자기 생각을 비춰봐야 되겠죠. 내가 예수님 인성을 통합되는 것으로 볼까? 나중에는 신성뿐만 아니고 의지가 있어요. 예수님의 의지는 하나다, 아니다 둘이다. 이렇게 나와요. 668년인가 그렇게 나와요. 그래서 예수님의 의지 두 개라고 정립이 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주변에 있는 유대교나 불신자나 다신교와 대결하기 위해서 더욱더 세밀해지면서 뭘 보여주느냐 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표현할 때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까발려진 계기가 된 거예요. 삼위일체이론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한다고 할 때 그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각양각색 뷔페음식처럼 다 나오는 거예요.

아까 제가 부정신학 했죠. 이런 것도 나중에 신비주의자들 신학이잖아요.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걸 초월한다. 도대체 그야말로 삼위일체이론을 통해서 빠진 게 없을 정도에요. 예수님이 인간이라면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돼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영은 로고스냐? 아니면 로고스는 따로 있고 예수님의 영은 따로 있느냐? 그리고 이 영이 곧 신성이냐? 아니면 합해서 신성이냐?

지금 여러분이 보시게 되면 문제점이 어디 있다고 봅니까? 혼, 육, 영, 신성, 성육신. 하나님이 인간이 됐느냐? 아니면 인간이냐? is냐? become이냐? 그런 개념. 모든 이야기가 뭔가 발설할 때 인간이 자기 뜻을 남한테 전달할 때 뭘 사용하지요? 문자나 언어를 사용하잖아요. 사람들이 모르는 게 뭐냐 하면, 그 언어와 문자라는 것은 본인이 지어낸 게 아니고 이미 상주해있는 그 공동체, 그 집단이 서로 활용하고 통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그 중에서 몇 개를 끄집어내어서 문장으로 연결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상과 신학과 체계를 표현한다는 거예요. 너는 내 표현에 무조건 따라야 돼. 안 그러면 너는 이단이라고 했을 때 과연 그 판정에 하나님께서 동의하시겠어요? 동의 안 하지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래서 헤겔은, 사람이 누구한테 말을 한다는 것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겠다는 겁니다. 아까 무궁화 타고 오면서 뒤에 장로님과 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탔어요. 내용이 뭐냐 하면, 자연식하면 건강하다는 그 이야기에요. 장로님은 그것도 철학이라고 반박하고. 어떻게 하면 복음 전해볼까 싶어서 했는데 그 사람은 그 말 완전히 듣지도 않고 계속해서 생식하면 건강하다는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헤겔은, 인간은 상호인정.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소용없어요. 남이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이 사회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러니까 서로가 상호인정, 다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성경으로 보게 되면 이러한 논리들이 바벨탑처럼 인간의 언어가 같이 통용되어 나오는 바벨탑처럼 그 자체가 우상이에요. 본인이 우상인데 그 우상의 티를 내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표현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어야 되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에서 전도, 도를 전하는 것은 뭘 전하는 겁니까? 십자가를 전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사도들은 십자가복음을 어떻게 전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유명하죠. 나는 죄인의 괴수다. 그리고 사도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진짜 빠뜨리기 쉬운 건데 내가 죄 지은 게 아니고 나는 이미 죄 속에서 그동안 계속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나오지요. 공중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아서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이라고 있지요. 이게 교부들에게서는 나오지를 않는다는 거예요. 여기 나오는 어거스틴부터 해서 유명한 80여명의 신학자들 중에서. 도대체 이게 나오지 않아요. 나는 세상 자체의 일부인데 세상이 곧 지옥이라는 것 따라서 나는 지옥의 일부라는 걸 본인이 고백하지 않는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이 언급을 할 때 나는 이렇다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 잠겨있다는 겁니다. 푹 젖어있다는 겁니다. 너, 나 있지만 합치면 하나의 아담이고 아담 자체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거예요. 로마서 5장에 의해서. 고린도전서 1장에 있는 말씀처럼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내가 십자가 져서 당신들 구원했습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하잖아요. 나는 십자가 안 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신성이 어떻고, 인성이 어떻고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십자가 진 적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게 정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이라는 개념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인간의 집단,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개념이 바로 신 개념이에요.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쓴 용어도 인간 용어를 썼다는 점이에요. 물어봅시다. 예수님의 발음이 좋습니까? 아니면 우리나라 아나운서의 발음이 좋습니까? 어느 발음이 더 낫겠어요? 교부들 신학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가장 뛰어난 발음을 해야 됩니까? 예수님 빼놓고 사도 바울의 발음은 최고입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장동건이 미남이라 하는데 사도 바울은 장동건보다 더 미남이어야 합니까? 답변해보세요.

지금 그리스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미 철학이 있지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진리는 다 신의 것이에요. 신에서부터 떨어지면 점점 더 타락한 거예요. 그렇다면 아까 발음이 좋은 것도 굉장히 듣는 사람 기분 좋게 하거든요. 행복하잖아요. 최고의 발음은 역시 신이 갖고 있어요. 그리고 아름답다, 예쁘다 해도 신이 예쁜 거예요. 이게 그 당시 공동체고 오늘날 공동체도 마찬가지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볼트와 예수님과 100미터 달리기 하면 누가 이깁니까? 인간의 사고방식은 예수님이 이겨야 돼요. 오히려 볼트의 발을 움직일 정도가 되니까. 빨리 가, 빨리 가.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 몸을 입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빠르기가 육상선수가 아니면 예수님도 빠르다고 볼 순 없어요. DNA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죄가 뭔지를 평생을 살아도 몰라요. 그 죄는 성령이 와야 압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죄라고 딱히 따질 필요조차 우린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예수님이 오신 것은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육신의 죄를 정하러 왔거든요. 육신 자체가 죄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드러나는 게 그거라는 겁니다. 이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받은 사람만 아는 게 뭐냐? 예수님은 육신의 죄를 정하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붓 하나 들고 우리 얼굴에다 통째로 먹칠하러 온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대야에 발 씻겨준 것 기억나시죠. 요한복음에서. 그게 발 씻겨준 게 아니고 베드로에게 먹칠했다고 생각하시면 정답이에요. 씻어준 게 아니고 오히려 물 찍어 바른 때마다 베드로는 점점 더 죄인이 되는 거죠. 예수님이 씻어줄 때마다 죄인이 되는 겁니다. 왜? 씻겨줌으로 비로소 내가 씻길 게 있는 존재라는 것이 파악되기 때문에 그래요. 베드로는 그것도 모르고, “에이 발만 씻겨주고. 다 씻어주이소.” 예수님이, “발만 씻어도 전체를 씻은 것이 된다.” 발만 먹칠해도 전체를 다 먹칠한 거예요. 이 말은 네 인생은 네가 관리하거다 네가 구원하거나 할 수 없는 것에 갇혀있고 그 갇혀있는 그것을 내가 옴으로써 거기서 빼내주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것을 교부들은 이렇게 보지 않고 인간 속에 로고스가 있다. 이성이 있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본 겁니다. 오늘날 루터주의나 칼빈주의나 개혁주의도 다 이런 사고방식이에요. 인간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그 형상은 성경말씀을 받아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지키고 순종하면 날이 갈수록 우리 속에 있는 신의 로고스, 신의 형상이 더 높아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결국 형상이 높아진 사람만 구원이 된다는 그런 논리가 개혁주의 성화론이잖아요.

그 성화론의 원본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바로 제가 지금까지 나온 교부들의 신학에 이미 깔려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그 신학의 뿌리를 건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학교에서 배웠어요.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배웠고, 사도신경을 압니다. 우리는 그것을 정답으로 본 거예요. 특정이 언어가 정답이 돼버리면 우리는 그 언어를 반복해서 외우고 그걸 숙지하게 되면 구원을 받게 돼요. 그러면 성경의 어느 구절을 외우면 구원을 받습니까? 성경 어느 구절 외워도 구원 못 받지요. 성경을 다 외워도 구원 못 받지요.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 몇 독했습니까?

언약에 의하면 성령이 주어지면 성경 전체가 다 들어있을 뿐만 아니고 성경 전체가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주어지게 돼요. 성령 안에서는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는 다 이루었다가 되죠. 그래서 교부들의 이런 철학이나 신학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럼 그 당시에 신자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은 우리가 할 상황이 아니죠. 왜? 재림하지 않는 이상은 신자가 계속해서 꾸준히 있었다고 봐야 돼요. 몇 년 만에 있느냐, 몇 명이냐? 그건 우리가 알 필요 없어요. 베드로가 저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게 네가 알바 아니요. 서기 2000년 되든, 서기 200년 되든 간에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죄에 갇혀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 사상 자체가 이미 죄에 갇혀있다는 것을 까발리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그런데 교부들은 인간론을 신론에 비해서 신은 있음, 인간도 있음, 신에 있는 요소가 인간에게 있음, 따라서 신에게 가려면 우리 속에 있는 신성을 계발해서 신과 합체하면 돼. 그러면 이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저도 신과 합체할래요.” 하고 분명히 많이들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신부되게 했고, 수녀 되게 했고, 집사 되게 했고, 그들이 돈을 내서 예배당 세웠고, 예배당 있음에 구원의 매개체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그것이 너무 섞으니까 섞었다고 외치면서 루터는 면죄부 하지 말라고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붙였고, 루터 말이 옳다고 따라왔고 칼빈도 거기에 따라다녔고 그래서 개신교가 생겼고, 개신교가 천주교와 똑같이 전통과 역사를 주장하고, 그 학습된 전통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감리교는 웨슬레교리를 또 가르치고, 성결교는 성결교대로 가르치고, 장로교는 장로교대로 가르치고, 가르침 받은 사람은 장로교신자라고 안수 받고 물 붓고 똑같은 일을 옛날처럼 하고 있는 거예요.

정리하게 되면 이렇습니다. 합리주의는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야 되고, 동방교회에서는 인간 있음 자체가 이미 하나님 있음을 인정하는 거니까 인간 속에 이미 하나님 들어있으니까 우리는 그것을 계발해서 가르쳐주면 될 문제다. 따라서 구태여 신이 세분이 될 필요가 신은 한분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은 불신자든, 신자든 기본적인 로고스적인 이성적인 안목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주고 본받으면 구원될 수 있습니다. 인간 속에 로고스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 들으면 성경말씀 듣고 순종하면 구원받는다고 그런 체제로 합리주의든, 신비주의든 양쪽 다 간 거예요.

그러한 삼위일체 토대 위에 어거스틴이 나옵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이야기하고 강의 마치겠습니다. 왜 삼위일체를 언급하느냐 하면, 어거스틴이 평소에 성경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그 비법은 모든 것은 3. 어거스틴은 인간의 구조도 영과 육과 혼, 3.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손에 손잡고, 위격내재. 내부적으로 서로 교류가 돼요. 이것은 성부가 한 것이고, 성자가 한 것이라고 할 게 없다는 겁니다. 전부 다 어떤 일을 벌여도 성부가 가담돼있고 성자가 가담돼있고 성령이 가담돼있으니까 목사가 설교할 때 1대지 성부가 하신 것, 2대지 성자가 하신 것, 3대지 성령이 하신 것만 끄집어내면 그 설교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 받으시는 분명한 거지요. 어거스틴이 보기에. 모든 것은 삼위일체가 가담돼있으니까.

이 꽃, 나무? 이것은 뿌리는 성부고, 줄기는 성자고, 가지는 성령. 아주 멋들어진 은혜로운 설교가 되는 겁니다. 남방? 원단은 성부요, 디자인은 성자요, 제품으로 나온 것은 성령이고. 교인들이 은혜롭습니까. 교인들로 하여금 모든 일에 삼위일체가 개입한 것을 믿고 알기만 하면 천국에 가기 때문에. 왜? 전통적인 신학에서 삼위일체를 벗어나면 이단이고, 삼위일체 안에 있으면 무조건 오늘밤 죽어도 구원받기 때문에. 이게 어거스틴이 했던 모든 설교입니다. 그걸 우리는 알레고리라고 하죠.

이런 설교를 어거스틴한테 구태여 배울 필요 없어요.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 부흥사들 설교들을 보면 그 설교가 소주 한 병 먹고 이불만 뒤집어쓰면 나올 수 있는 설교들이에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목적은 하나밖에 없어요. 은혜만 된다면 다 용서가 되는 설교. 심지어 물 떨어지는 홈통. 물은 은혜요, 홈통은 성자요, 물 내리시는 건 성부요, 물 떨어져서 축축한 것은 성령이로다. 이렇게 설교해도 교인들은 아멘, 아멘이에요.

제가 경북 봉화에 갔는데 연세가 87 먹은 노인과 식사를 했어요. 46만 톤 배 몰던 선장까지 하면서 잘 나갔던 분인데 아내 따라 듬성듬성 서울에 소망교회 다니다 했는데 아내 죽고 난 뒤에 소망이 뭐냐? 아내 죽은 곳에 합류하기 위해서 교회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저와 식사하면서 저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목사를 만난 것이 하나님 만난 것 같습니다.” 정말 이것은 제가 수십 년 전에 처음 교회 다닐 때 처음 초신자들이 목사를 대할 때 하나님 대하는 그 이야기를 수십 년 만에 처음 들었어요. 저게 뭘까? 저 심령이 바로 초대교회 로마 사람들이 교부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하게 그들은 신에 대해서 언급을 했고, 성령에 대해서 언급을 했고,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됨을 언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낌없이 세례를 받았고 성만찬 함으로 말미암아 신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했어요.

마리아는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고 신의 어머니라고 키릴이란 사람이 이야기했다고요. 네스토리우스는 그걸 반대하다 이단 됐고. 반대해서 이단 된 거예요.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에요. 그게 왜 먹혀드느냐 하면, 그 당시 동방교회든 서방교회든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 같은 신을 원했기 때문에 그래요. 투표하면 표가 많이 나와요. 인간의 심성이 그쪽으로 흘러가요.

교리라는 것이 결국은 교회가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분투노력해 오면서 사람들이 심리 속에 인간 마음속에 있던 기본적인 신 관념과 얼마나 결탁해 왔는가가 교리의 역사입니다. 가장 인간답게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그게 신비지만 신비에서 합리를 위장한 신비, 결국 인간은 신을 신비로운 존재로서 부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노리는 것은 나도 역시 신의 일부라고 자부하고 싶고, 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그대로 표현된 겁니다.

그런데 성경의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를 외치는 사도들은 뭐라고 합니까?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교부들이 성경을 봤기 때문에 분명히 했겠지요. 했음에도 왜 자꾸 교리를 외치느냐 하면, 이걸 신비주의로 보는 거예요. 지금도 총신이나 장신 교수들도 다 이렇게 합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라고 하면 신비로 보는 거예요. 신비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 인정받으려는 것이고, 십자가는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지옥 가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신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결론 내립시다. 이레니우스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처음부터 교회 교부들이 하는 것은 저 사람을 어떻게 구원할 것이냐는 그 문제였고, 사람들은 교회 가서 내가 구원받을 것이냐 그 문제에요. 그러면 처음에 뭐부터 시작합니까? 예수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처음부터 내가 중요하고 내가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구원이 우선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교회가 잘 장단을 맞추어온 거예요.

그렇다면 복음 전하는 성도나 목사는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복음을 들어야 될 대상으로서만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을 꼬셔서 구원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고 당신은 지옥을 가도 지옥 가야 된다는 소리를 들어야 되고 천국 가도 당신은 천국 가야 된다는 소리를 들어야 돼요. 그 결정은 언약에 의해서 해요. 여기서 언약이 나오네.

언약이 이미 새 언약으로 바뀌어버리면 세상은 새 언약으로 정리정돈이 끝난 상태에요. 그럼 중요한 것은 새 언약,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고, 교리는 존재거든요. 예수님이 인성이냐, 신성이냐? 예수님의 의지가 두 개냐? 인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이 하신 일, 십자가와 부활이 사도 바울은 복음이라 했거든요. 베드로와 요한도 그걸 외쳤단 말이죠. 예수님은 죽고 부활했다. 왜 죽었느냐? 세상 전체가 악마 속에 죄 안에 있으니까 죽었고, 왜 살았는가? 천국이 있으니까 천국의 위력이 발현되어서 말씀을 통해서 살아난 거예요.

이것은 일부러 예수 믿으라고 할 필요 없지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준 사람에게는 그들이 지옥에 가든 천국에 가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거든요. 성령께서 보내실 때는 그게 천국 가든, 지옥 가든 우리 소관이 아니고 성령께서 만나게 하셨다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가지라고 만나게 해줬기 때문에 그냥 외칠 뿐이에요.

아직 내가 살아있고 아직 우리가 살아있고 아직 저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은 주님께서 주선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복음만 외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내용은 우리는 죄인이고 의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만 정죄함이 없나니, 되겠지요. 개나 소나 정죄함이 없는 게 아니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만, 육신의 죄를 아는 사람만, 우리가 죄인인 것을 성령을 통해서 아는 사람들만 복음을 통해서 아는 겁니다.

이렇게 강의를 했기 때문에 대충 근거는 댔기 때문에 집에 가서 26페이지부터 이게 엄청납니다. 다음에 40번, 암브로시우스 이후 어거스틴부터 할 테니까 그전까지는 죽 읽어보시면 사람 구원하려고 교리 만들었다는 그 내막이 다 나올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몰라도 되지만 우리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를 같이 나눠봤습니다. 우리 본성이 갖고 있던 선악과 따먹고 생긴 하나님 신론과 메시아론, 구원론, 성화론 이미 그것을 바깥으로 고백했던 자들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평소의 심성을 노출시킨 것을 보면서 오직 십자가만으로 구원된다는 것을 다신 한 번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30709b 부산강의.hwp (49.0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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