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구강의 11] - [피 97] - 기도
[13 대구강의 11] - [피 97] - 기도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11] - [피 97] - 기도
13,06,1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89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기도란 무능의 표현이다. 늘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은 늘 무능 속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 기도에도, 두 가지가 있어 !!
여기에 '기도' 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에서는 이 기도가 어떻게 풀리고 있는지, 그것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기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물론 인간은 한 가지 방식밖에 모르지만 말이다. 즉 자기가 입을 벌려서 어떤 목소리를 내게 되면, 그게 하나님에게 응답이 되던 안 되던 간에 자기가 속에 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기도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 이야기하는데, 그러니 기도는 먼저 첫 번째로 인간 쪽에서 하는 기도가 있고, 그리고 두 번째는 특정 자리에서 하시는 주의 이름의 기도가 있다는 말이다. 이 특정 자리가 곧 구약에서는 약속의 땅인데, 즉 제단에서 드리는 주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특정 자리, 가나안 땅에서의 제단인데, 나중에는 이게 예루살렘 성전이 되는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성전, 즉 특정 자리에 계시는 주의 이름에 합류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출애굽을 하는 이유라는 말이다.
◈ 기도하는 '분'과, 그 '장소'를 봐야 !!
그러므로 그들이 출애굽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도대체 누가 우리 대신에 기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가?" 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기도하는 '분'과 기도하는 '장소'를 보라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다는 것이다.
요즘 교회에서 새벽기도, 수요기도, 금요기도 등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내가 인간이 되어서, 내가 엎드려서 기도한다" 라는 것만 이야기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있었던 모든 기도가 무엇인고 하니, 신을 향해서 자기가 입을 벌려서, 물론 입을 벌리든 마음속으로 하든 간에, 아무튼 뭔가를 중얼거린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의 기도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이방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라는 것을 위해서 말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정작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그런 것밖에 기도할 줄 모르는데 말이다.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우리는, 인간의 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 !!
그러니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이고 종교적인 기도가 성경에서는 거부를 당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인정하는 기도는 무엇인고 하니, 특정 자리에서 주의 이름이 하시는 기도만 부각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기도를 중심으로 해서 일을 하실 때, 인간 쪽에서 나오는 기도가 배제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인간 쪽에서 나오는 기도를 쉬지 말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은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게 맞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인간 쪽에서 하는 기도를 해야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주님의 기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쪽 인간들의 기도를 밀친다는 사실이 합쳐져야만, 비로소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인간은, 감추어진 기도의 자리를 몰라 !!
그러면 이런 인간 기도의 문제점은 조금 있다가 하고, 두 번째인 특정 자리에서 하시는 주의 이름의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항상 이것은 애굽에 있던 애굽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사실은 이들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즉 하나는 언약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비언약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언약이니 약속인데, 즉 이스라엘은 약속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나라이고, 반면에 이쪽 애굽은 약속이 없이 육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굽에 있는 이런 둘 다의 자리는 감추어져 있고 모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뜻인고 하니, '없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가 모르는 것이 설령 있다고 해도 자기가 모르는 이상 그것은 없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 다시 정리해보면 !!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없다고 여기는 분의 기도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즉 세상은 우리의 기도 때문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러한 기도는 있을 리가 없어!" 라고 하는 쪽에서 나오는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서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우리 자신의 기도솜씨를 인정해달라고 있는 게 아니라, "너의 구원됨은 너의 기도와 무관하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다른 출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내용이 된다는 말이다.
◈ 가장 종교적인 모습이 가장 육다운 모습 !!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인간이 육으로 신앙생활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육에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반드시 종교를 거치는데, 즉 육을 추상적인 신의 속성으로 포장을 한다는 말이다. 사실은 그렇게 포장한 한 종교가 육의 극단적인 모습인데, 가장 육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자들이 누구인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인데, 그러니 이들이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악마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악마의 일그러진 모습을 드러낸다고, 어제 오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말이다. 거울이 깨지면 얼굴 윤곽이 다 없어지고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 인간은, 누구의 명령과 지시를 듣기 싫어해 !!
그것이 바로 빠져 나오지도 못하면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인데, 왜 빠져 나오려고 하는고 하니, 누구의 명령과 지시가 듣기 싫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제는 잔소리를 좀 그만하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이죠" 라고 하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깨서 뚫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 어디를 가도 감시를 받는데, 그래서 뭔가 이유도 없이 이렇게 살아야 하고, 남들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아 보이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즉 "왜 나는 누군가를 의식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정 그러면 의식하지마!" 라고 하도, 그런 소리를 듣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의식이 안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매사가 다 그러한데, "빨간불인데 건너갈까? 아니야, 파란불일 때 건너야지" 라고 하면서, 항상 법을 요청하게 되어있고,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남들이 없이 혼자 있어도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병든 남편을 버릴까? 그래, 버리자.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아내로서 안 되는 거야" 라고 하는데, 시댁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욕하는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나이가 이렇게 되도록 왜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의 경우에는, 병원에 가서도 의사가 진찰을 한다고 자기 옷을 만지려고 하면 그만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는데, 왠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나' 라는 것은 법으로 둘둘 말아야, 마치 멍석으로 말 듯이 말이다. 그렇게 자기 몸을 법으로 두 겹, 세 겹으로, 즉 율법에다가, 양심에다가, 도덕법에다가 그렇게 둘둘 말아야, 그것이 이상하게도 자기다운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 바로 왕이 정신병자인가?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게 되면 거기에 바로 왕이 나오는데, 그 바로 왕이 정신병자인가? 아니면 미친 사람인가? 정상이라도 너무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상적' 이라는 것이 문제인데, 바로 왕은 그 행동과 태도가 너무나도 정상적이고, 오히려 모세가 또라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것은 모세 본인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아무도 모르는 감추어진 특정 기도의 장소와, 그것이 곧 제단이고, 나중에 성전이 되는데 말이다.
◈ 진격, 또 진격 !!
그렇게 특정 자리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 아니라 우리 대신 희생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만이 하나님께 응답이 되어서 그 원래의 모든 뜻대로 이 세상에 펼쳐진다고 하는 것을,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알려주고자 하시는데,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격, 또 진격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라는 것이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진격 또 진격인데, 즉 전쟁 또 전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상상이라도 했느냐는 말이다. 기도는 그냥 꿇어앉아서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전쟁을 치루어야만이 기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그게 이미 그 과정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기독교 모임을 하면서 "자, 우리 이제 손을 잡고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라고 하면서, 촛불을 켜든지 아니면 자기 죄를 적어서 장작불 속에 던지고 하는데 말이다. 즉 "주여, 형제를 미워한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그리고 지금도 복음과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서 열심히 뛰시는 당회장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라고 말이다.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데, 이런 것이 전부 1번 기도라는 것이다.
◈ 난데없는 치르는 전쟁 !!
하지만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원한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미쳤지? 내가 이런 전쟁을 왜 해야하는가?" 라고 하면서, 알지 못하는 미지의 특정한 기도처소를,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고 발각된 적이 없는, 그런 기도응답의 처소를 찾아가는 과정은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난데없는 전쟁을 치르는 과정 속에 우리가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이다.
◈ 제단을 모방해서 산당을 쌓는 인간들 !!
그러니 '중보기도' 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나중 시편에 보면 "제단을 쌓아라" 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기도처소가 예루살렘으로 확정이 되고 난 다음에는 제단을 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을 모방해서 뾰족뾰복한 봉우리마다 전부 다 제단을 쌓아놓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인가요? 물론 제가 거기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TV와도 같은 것을 통해서 보면 뾰족뾰복한 봉우리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 그런 곳마다 다 제단을 모두 쌓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산당'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제단을 쌓고 기도한다" 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1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그렇게 뾰족뾰복한 봉우리마다 제단을 쌓으려면 힘이 드니 시간을 새벽으로 해서 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게 되면, 그것을 '새벽제단'이 된다는 것이다.
◈ 새벽제단 쌓기 !!
하지만 이런 새벽제단을 쌓게 되면 거기에는 누가 기도의 주체가 되는고 하니, 자기가 새벽마다 기도를 하게 되니, 당연히 자기가 새벽제단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면, 도대체 새벽제단을 쌓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새벽제단을 쌓겠다는 것은 나름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것인데, 잠도 자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하늘나라 말고, 자기가 납득이 되는 자기의 천국을, 즉 자기 하나님의 일을 따로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회사를 따로 하나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누구에게 지시를 받기보다 자기가 새벽제단을 쌓게 되면, 그래서 그 새벽제단에 자기가 교주로서 참여하게 되면, 그 시간과 그 영토만큼은 자기가 직접 하나님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상대자가 된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육에서 나오는 종교의 극치인데, 그러니 가장 악마적인 모습이 곧 새벽제단을 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흥비결은 바로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소위 '새벽제단 쌓기' 라는 말이다. 과연 천국에 이런 새벽기도회가 있겠는가? 이러한 새벽기도를 통해서 전부 종교인으로 다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 왕이시여, 제발 산당을 좀 없애버리세요 !!
하지만 제단은 무엇인고 하니, 구약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 이 예루살렘을 비켜서 각각 지역들마다 산당을 세워서 섬겼는데, 그때부터 선지자들이 주장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왕이시여, 제발 산당을 좀 없애버리세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왕들은 이 산당을 없앨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백성들이 와서 그렇게 빌고 싶어하는데 왕이 나서서 그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왕이 제대로 채워준다면 빌 이유가 없는데, 왕이 그렇게 백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니, 이게 중요한데, 백성들이 직접 하나님을 상대하는데, 정성을 다해서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이런 본성을 누가 말리겠느냐는 말이다. 말릴 수가 없는데, 천주교의 경우에는 각 자기 안방에다 마리아 제단을 쌓아놓았다는 것이다. 왜 세워놓았는가? 자기가 직접 빌겠다는 것이다. 특히 수능시험과 같은 것이 다가오면 더욱 더 빌겠다는 것인데, 그것을 누가 말리겠느냐는 말이다. 천주교가 아직도 기가 죽지 않고 저렇게 150만의 세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그 가정제단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종교는, 곧 하나님과 사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공간 !!
바로 그러한 가정제단을 치우게 새벽제단을 치우고, 그러면 무엇만 남는가?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 개인적이고 사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교류인데, 그렇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것이다. 그게 곧 종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나를 위해서' 라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데, 즉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만족스럽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나'를 빼놓고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 나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 "나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해도, 하지만 인간이 늘 자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상, 우리 인간은 기도형식은 아니라도 항상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쉬지 않고 말이다. "주님, 이것은 덜 중요하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것이 붙이든 말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특정기도의 장소를 어떻게 찾고 만나는지, 그것이 어떻게 성취가 되는지,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기도의 응답부터 살펴보자는 것이다. 일단 로마서 8장 26절과 27절을 보자.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여기 26절에 보면, '우리 연약함'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제가 두 번째 기도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주의 이름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그렇게 보이지도 않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난데없이, 물론 기도의 자리는 어디인 줄 모르겠지만 그 자리가 미지의 'X' 라고 한다면, 그 'X'에게서 무엇이 날아오는고 하니, 전쟁통보사실이 날아온다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무엇을 찾는다고 한다면, 어느 지점에 가서 "어이, 여기에 있네" 라고, 그렇게 우리가 평소에 하던 대로 직접 찾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찾아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보여주기 때문에, 즉 "안 돼, 너는 그 기도의 장소에 오지 못해" 라고 하시면서 밀어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전쟁을 통해서, 즉 우리로 하여금 첫 번째 벽을 넘고, 두 번째 벽을 넘고, 세 번째 벽을 넘도록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즉 모압을 넘고, 암몬을 넘고, 블레셋을 넘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쟁을 결코 우리가 원했던 전쟁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골리앗의 등장 !!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난 뒤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누가 나오는가? 골리앗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군대는 모두가 다 기가 죽어있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나님의 숨겨놓은 기도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무엇이 전제가 되어야하는고 하니, 우리 인간 쪽에서 보게 되면 전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우리가 방금 읽은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연약함'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는데, 그들이 누구를 내세우는가? 골리앗인데, 그리고 그 맞은 편에는 사울군대, 즉 이스라엘 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전쟁도 하기 전에 누가 연약한지가 이미 다 드러나고 말았는데, 이미 이스라엘은 연약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골리앗을 이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기도의 핵심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기도해서 이길 것 같으면 아예 골리앗과 같은 인간을 보내지를 않는데, 만만한 인간을 보내서 사울 왕이 요압 장군을 통해서 쳐부수면 끝날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될까? 왜 이스라엘은 복을 받을까?" 라는 그 내막은 숨겨진 기도제단에서 나오는데, 그 기도제단을 찾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고 하니,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골리앗 부대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도대체 지금 그 골리앗을 이길만한 게 있느냐는 것이다. 골리앗의 키가 3미터 30이라고 하는데, 무슨 DNA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그런 인간이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것을 이기려고 하면 키가 적어도 4미터는 되어야 하는데, 사람 위에 사람을 본드로 붙이면 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쟁을 치게 하시면서, 그 전쟁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우리 능력밖에 있는 인물을 가지고 우리에게 싸움을 붙이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겨라, 이겨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무엇으로 이기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그동안 인간이 열심히 기도해도 그 기도는 영생을 얻는데 아무런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도와 열심이고, 그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는 백 날을 해도 골리앗 하나를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 현실은 분명한 패배 !!
그렇게 되면 현실은 분명한 패배인데,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정장소에 합류되지 못한다는 것인데, 즉 "니가 기도의 출처도 모르고, 저리가!" 라는, 그런 추방되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일이 해결되려고 하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기도의 출처에서 누군가가 파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소년 다윗 !!
그래서 이스라엘이 '응응' 울고 있을 때, 마치 사도요한이 두루마리의 봉을 떼지 못해서 울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그때 누가 오시는가? 주님이 나타나시는데, 그렇게 사울 왕이 울고 있을 때 등장한 분이 있는데, 즉 전쟁의 승리터널을 뚫어주기 위해서 하나님 쪽에서 마중을 나온 분이 계시는데, 여러분도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가 바로 '소년 다윗' 이라는 것이다.
그 내막이 바로 다음과 같은데, 이새의 가정이 있는데 난데없이 선지자 사무엘이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데없이 선지가가 나타나니 이새가 뭐라고 하는가?
* 이 새 : 아니, 선지자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 사무엘 : 이 가정에 장차 왕이 될 자가 하나님께서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 이 새 : 예?
* 사무엘 : 그래서 제가 기름부음을 통해서 왕을 택정하기 위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 이 새 : 도대체 그가 누구입니까?
* 사무엘 : 아직은 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 이 새 : 그래요?
* 사무엘 : 그러니 일단 자식들을 모두 다 나오게 하세요.
* 이 새 : 애들아, 다 나오너라.
* 사무엘 : 전부다 나왔지요?
* 이 새 : 예, 일곱 명이 다 나왔습니다.
* 사무엘 : 알겠습니다.
사무엘은 도사가 아니니까 그들이 전부인 줄로 알고 기름을 붓기 시작하는데, 사무엘 본인도 땡기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인물도 좋고 믿음도 좋은 왕이 될만한 재목으로 보이는 놈이 말이다. 그렇게 해서 붓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번은 탈락하면 나머지 여섯 명은 좋아서 입이 째지는데, 즉 자기들 가운데 왕이 있다는 것이다. 확률이 15프로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2번도 탈락인데, 그러면 다섯 명이 남는다는 것이다. 점점 당첨확률이 높아지는데, 하지만 3번, 4번, 5번, 6번, 7번도 모두 탈락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 저입니까? 아니다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을 주목해야 하는데, 그냥 "바로 너다!" 라고 지목하면 되는데, 그런데 왕이 되지 못할 엉터리를 모두 불러모으시는데, 즉 인간적인 것을 모두 다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바로 저입니까?" 라고 하면, "아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도를 시키고 가정에 기도제단을 만들도록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나름대로 우리 인간들이 기도시간과 기도자리를 정해서 엉터리 기도를 하도록 하시는 이유가 말이다. 중보기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기도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즉 우리 인간이 잠도 제대로 자기 않고 열심히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신다는 말이다. 그렇게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면서 3번, 4번, 5번, 6번으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7번째 아이는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이제는 100프로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기름을 부을 때, 그 아이의 심정은 그야말로 표정관리가 안 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도 아니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없다!" 라는 것이다.
◈ '지식의 범위 안'에서, '권력의 범위 안'에서 !!
인간들의 '지식의 범위 안'에서, 이것은 인간의 '권력의 범위 안'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인데, 이것을 좀 설명하고 지나가겠는데 말이다. 악마의 권력이 아니라고 하면 인간의 지식은 확보될 수가 없는데, 창세기 2장에 의하면 말이다.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쉽게 줄이면, 이것이 그냥 지식인데, 즉 인간의 모든 지식은 반드시 선과 악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옳은 지식인가? 나쁜 지식인가?" 라고 따지게 되어있는데, 이렇게 따지는 것은 외부의 권력, 즉 악마의 권력이 침투하지 않으면 그런 지식이 생겨나지 않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안다는 것이 문제인데, 인간이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새가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게 우리 아들 전부입니다. 우리 아들은 모두 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이들 중에 있을 겁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사무엘도 이들 중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없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무엘도 참 이상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지시는 있는데, 아이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새에게 다시 묻는데, "이들이 전부 다 입니까?" 라고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지식이 나오는데, 이게 지식인 동시에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내아들인 다윗을 보고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너는 오늘 저기에 가서 양이나 치라.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한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권력행위라는 것이다. 양을 치라고 명령을 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아는 지식이 발휘되어서 권력으로 작용해서, 아예 채택이 되는 현장에서 배제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기름부음을 하고 있는데, 정작 다윗은 다른 곳에서 양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이 정도가 되면 집에 가야하는데"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본인도 그냥 양만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윗의 지식도 주님의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남들보다 지식이 뛰어난 게 아닌데,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악마의 권력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인간의 그 어떤 지식도 하나님 앞에서는 배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안 된다는 말이다. 선택이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즉 선택은 일방적 선택이지, 우리가 선택을 받을 만한 짓을 해서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
아무튼 그렇게 해서 사무엘이 일곱 아들을 모두 살펴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아이들이 이게 전부 다 입니까?" 라고 하니, 이새가 뭐라고 하는가? "아이들이 이게 전부 다입니다. 물론 막내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오죽 했으면 제가 제외를 시켜놓았겠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뭐라고 하는가? "그래도 일단 막내를 데리고 와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식사고 뭐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데려와서 보니,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바로 그 아이이니 일어나서 가름을 부어라"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즉시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데, 즉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라는 것이다.
(삼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삼상 16: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삼상 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삼상 16: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삼상 16:5)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삼상 16: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삼상 16: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삼상 16: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과 우리 인간이 보는 중심이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심이 보신다고 하니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다윗을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의 현장에 !!
아무튼 그렇게 해서 다윗이 졸지에 중심이 있는 자가 되고 말았는데, 하지만 이것은 다윗이 좋아할 문제가 아닌데, 다윗은 어디로 뽑혀가게 되는고 하니,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이 조성하신 주님의 기도의 제단을 찾아가는 역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도저히 건널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그런 난관의 현장에 다윗을 집어넣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부름을 명목으로 도시락을 갖다 주게 된다는 말이다.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홍해는 앞에도 죽음이고 뒤에도 죽음인데, 즉 난관이라는 것이다. 물론 요단강도 그러하고 말이다. 홍해와 요단강만 우리에게 천국에 가는 난관이겠는가?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우리 인간이 손톱과 발톱으로 후벼판다고 해서 뚫릴 장벽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번 장벽을 뚫었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다가온다는 말이다.
◈ 혹시 '아라우나' 라고 아세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 라고, 그게 어디에 나오는고 하니, 지금 찾지를 못하겠는데, 아무튼 그 사람의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제단을 쌓게 되는데, 왜 그런가? 그것은 인구조사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되었는데, 사실 그 인구조사를 요압 장군이 말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인구조사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분명히 하고 말았는데, 왜 그런가?
사람이 죄를 안다고 해서 짓지 않는 것이 아닌데, 즉 죄는 하나의 힘이고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용광로와 같기 때문에, 일단 저질러야 속이 시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 '속 편한 병원'이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병원에 가야 속이 편하고 시원한 것이 아니고, 일단 자기가 사고를 쳐야 편해진다는 말이다.
아무튼 '아라우나' 라고, 나중에 녹취하는 목사님이 알아서 성경구절을 찾아서 적어놓겠지만, 그래도 영 찜찜해서 찾아보겠는데, 그게 사무엘하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지 싶은데, 이름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24장 18절 이하에 나오는데 말이다.
(삼하 24: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삼하 24:19)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삼하 24: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삼하 24:21)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아무튼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게되었는데, 그런데 다윗은 이미 자기는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이 있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가?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했는데,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 저의 중심은 괜찮지요?" 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인간이 되면 죄를 짓지 않느냐는 것이다.
◈ 기도의 특정자리를 찾아가는, 주님의 준비된 절차 !!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고 하니, 오히려 다윗의 신하들이 말렸는데, 인구조사를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다윗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즉 진짜로 응답을 받는 기도의 특정 자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그런 주님의 준비된 절차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정도 믿었으면 죄를 짓지 않겠지. 의인이 되겠지. 이제는 나도 나의 능력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지" 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 자체가 마귀의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고 하는 것은 전혀 빈말이 아닌데, 그것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무엇이 모자라는 사람인가? 자기는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까지 했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장벽을 쌓아야 되니, 주님께서는 사도바울로 하여금 줘놓고 빼앗아버린다는 말이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여기 교재 290페이지에 보면, '사. 빼앗음과 거저 주심' 이라고 되어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삼층천에 불러놓고는, 그렇게 계시를 줘놓고는 거기에 대해서 입을 다물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줘놓고 말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삼층천에 관한 이야기를 해놓고 무엇도 함께 말씀하시는가? 사탄의 가시도 함께 주셨다는 것이다.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고후 12: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인간에게는, 독자적인 신앙생활 자체가 허락된 적이 없어 !!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서, 우리 인간에게는 독자적인 신앙생활 자체가 그 어떤 시점에서도 허락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데,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우리가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 전쟁은 반드시 치러야할 전쟁이라는 점에서 좋고, 그리고 이 전쟁을 유발하시는 분이, 즉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 능력과 자기 신앙심에 호소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처 몰랐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죄성이라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는데, 즉 바로 그 시험을 주시는 분이 스스로 창문을 열어놓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험을 당하면서 창문을 뚫으려고 노력하는 그 모든 것은, 우리의 허점을 다시 한번 폭로시키는 모습들이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간에 이제 다윗이 골리앗에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즉 골리앗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섰을 때 사울 왕이 다윗에게 제공한 것이 있는데, 긴 칼과 방패와 투구를 주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 다윗이 그것을 감당하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나는 이런 것이 필요 없어요" 라고 하면서 홀라당 벗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다윗이 사울 왕이 준 방패와 칼과 갑옷을 가지고 골리앗을 이겼다고 하면, 그 전쟁은 누구의 전쟁이 되고 마는가? 사울 왕에게 그 승리가 돌아가고 마는데, 그런데 다윗이 그것을 거부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패배자가 골라앗만이 아니고 누구도 패배자라는 것인가? 골리앗을 이기지 못한 사울 왕도 역시 패배자이고, 결국 사울 왕이나 골리앗이나 주님의 개입이 없이는 둘 다 똑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 연약함을 아는 것이 곧 구원받은 것 !!
바로 예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까, 아까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되지 않는 존재인데, 그러니 절에 가는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점이 뭔고 하니까, 우리는 연약하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뭔고 하니, "연약함을 아는 것이 구원받은 것이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연약함이라고 노골적으로 폭로시키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 곧 성령님이고, 그 성령님의 기도하심과 그 응답으로 인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또한 영화롭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바로 그러한 작업을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증거되게 하시는데,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인생이지만 말이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마치 복날을 준비하는 개처럼 !!
저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이제 복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싶은데 말이다. 어릴 적에 제가 어떤 광경을 보았는고 하니, 옆집에서 무슨 패는 소리가 나서 보니, 처음에는 빨래를 때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개를 잡을 위해서 마구 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를 질질 끌고 가는데, 물론 요즘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이 마치 그와 같은데, 질질 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은데, 그것이 이사야서 53장에도 나오지만 말이다. 주님이 그런 모양으로 오셨는데,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야 하는데, 얻어맞아도 끽 소리도 못하도록 말이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야 주님이 사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나면 주님은 죽는데, 이것을 누가 알겠는가? 매일 통성기도를 하면서 설치고 하니까, 정작 본인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펄펄 살아있는데, 그래서 기도에 매진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약을 올리는데, "기도 응답으로 부자가 되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서로 경쟁이 되어서 죽기살기로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기도는 너무나 구속사적이고 언약적인데, 즉 진짜 기도는 이스라엘 역사가 총동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어야 기도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요즘 교인들이 하는 기도는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실컷 자기 마음대로 말해놓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것만 부치면 다 기도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구약에서 산당을 세울 때 그런 짓들을 다 해왔다는 것이다.
이제 기도의 윤곽이 잡히지 싶은데, 그렇다고 치고 이제 신명기 20장을 보자.
(신 20:1)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 기도의 출처가, 모압 평지가 아닌 건너편 예루살렘 !!
여기 1절에 보면 "그들을 두려워 말라" 라고 되어있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가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아직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에 여기에 모압 평지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다. 요단강 건너편에는 가나안 열 민족이 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기도의 출처가 여기 모압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건너편인 가나안 땅의 예루살렘에 있는데, 거기에는 열 족속이 아주 강력하게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마귀의 새끼들이 기도의 출처를 감싸고 있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주변에는 이미 !!
이것을 신약시대의 그림으로 그려보면, 예수님이 여기 출처에 계시고 그 주변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즉 마귀의 자식들이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모압 평지에는 12제자가 있다고 하면, 그들이 이 마귀새끼들을 뚫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마귀의 자식들의 사고방식과 12제자의 사고방식과 똑같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뭐라고 했는가? 예수님이 죽는다고 하니,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있는데, 주님이 죽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기도는 사탄에게 숨겨져 있었고, 사탄은 이미 인간들의 모든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니, 그러니 그렇게 안다는 것 자체를 인간들은 스스로 포기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알만큼 아는데, 그런데 그것을 왜 포기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못하면 그것은 악마의 권력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즉 누군가가 우리 자신을 살리고 구원을 한다고 하는, 그것이 아무리 궁금해도, 그 출처에는 우리가 전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 통 이 세상이 전부가 다 선악의 세계이고, 그리고 생명나무가 되신 예수님은 그 안에 숨어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 세례요한이 천국을 외칠 때 !!
세례요한이 천국을 외칠 때, 그 천국을 누가 공격하고 차지하는고 하니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세례요한의 모든 하늘나라를 부수고 침략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을 조각 조각을 내어서 전리품으로 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가버린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세례요한이 "자, 여기에 천국이 왔습니다" 라고 하니, 그들이 와락 달려들어서 그 천국을 찢어서는, 그것을 자기들이 승리했다는 기념품으로 만들어서 세례요한의 천국을 그만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헤롯왕은 세례요한의 모가지를 자기 딸의 생일에 생일기념으로 주게 된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생일선물인데, 모가지가 쟁반에 담긴 선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무엇을 외쳤는가? 하늘나라를 외쳤는데, 즉 쟁반에 진짜 하늘나라가 담겨왔는데,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서는 목잘린 하늘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세례요한부터 지금까지 침노를 당하는데,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당겨서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가짜 천국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진짜 천국이 숨어있으니, 즉 그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거기에 접근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들어가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뭐라고 하는가? 예수님과 함께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예수님을 아느냐고 하니,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여자아이도 하니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천국은, 지옥 속에서 피어나 !!
그래서 천국은 지옥 속에서 피어나고 사탄 속에서 피어난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없다고 하면 천국에도 역시 접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슨 일이 생기는가? 놀랍게도 천국에서 마중을 나온다는 말이다.
다윗으로 말하자면, 준비된 차기 왕인 소년 다윗이, 미처 왕이 되기도 전에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만나서 골리앗을 쳐부수는데, 아까 칼이 없다고 했지만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을 죽이고 그 칼은 기념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될 때, 사울의 시대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준비된 전쟁을 통해서 사울의 시대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좋아하는데, 그러한 세상을 좋아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세상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건을 유발시켜서, 이제는 세상이 그야말로 지긋지긋하게 여겨지도록,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휴, 이 따위 세상을 내가 좋아했다는 말인가? 이런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다는 말인가?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어. 여기서 내가 무슨 명예를 얻고 낙을 누리겠다고, 여기에 나의 온 정신과 혼을 모두 팔았다는 말인가?" 라고 하는, 그러한 사건을 하나님께서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 이제 '기도' 마무리를 !!
이제 기도에 대해서 마무리를 하겠는데, 성령이 찾아오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신명기 20장 1절에 나오는, 즉 "대적들이, 말과 병거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가?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하나님은 전부다 가짜임이 들통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시는, 경기가 나게 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좀 안심이 되고 쉴만해서 "주여, 행복합니다" 라고 하면, 벌써 행복이고 뭐고 다 날아가고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사태가 또 다시 벌어진다는 말이다. 인생이 이상하게도 꼬이기 시작하면서, 자기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윗에게처럼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감당을 하지 못하는데, 그러면 그 틈에서 생겨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성령에 의한 기도가, 그래서 성도의 입에서 드디어 성령에 의한 기도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성도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 기도의 주체가 이동을 !!
그렇다면 성도를 통해서 나오는 성령의 기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주여, 주님의 뜻대로만 하옵소서. 이것은 제가 기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미 기도의 주체가 '나' 라는 것에서 어디로 이동했는가? 성령을 보내신, 즉 주의 이름이 있는 성전에서의 기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언약을 완성하신 분 쪽으로 기도의 모든 주체가 모두 넘어가게 되면,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무엇인고 하니, "나는 기도의 주체가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에게 넘기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성령님이 오셔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듣고 또 자기가 흉내를 내어서 "주님이야, 제 인생을 모두 맡깁니다" 라고 하면,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시겠는가? "그래? 진짜 그렇게 한번 볼래? 정말이야?" 라고 하면, 당장에 "저는 어디 농담도 못합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ㅋㅋ).
아무튼 "모든 것을 맡깁니다" 라고 할 때, 그때 우리 모습이 무엇인고 하니, 연약함의 수준을 넘어서서 천하에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제가 그동안 주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가 붙잡힌 여인이 되는데, 그 여인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은 죄가 있으니, 그리고 돌을 던지려고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용서를 해주시는데, 그러면 그 여인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게 곧 출애굽이고 자유인데,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가 오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건질 수 있는 것이 전혀 남지 않게 되는, 그러한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내 명예, 내 자존심이다" 라고 하는 것을 내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명예가 없고 자존심이 없어도, 천국에 가고 구원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런 것을 또 다시 챙겨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래서 교재 289페이지에 보면 "기도는 무능의 표현이다" 라고 했는데 말이다. 즉 "저는 무능합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라는 것이다.
다시 교재 289페이지를 보자.
** 기도란 무능의 표현이다. 늘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은 늘 무능 속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마치 저수지에서 물이 모두 빠지듯이, 기도하는 순간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탈취를 당하는 순간이다. 두 번 다시 내 것으로 돌아오지 않게 자신을 처분하는 행위이면,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여기에 "마치 저수지에서 물이 다 빠지듯이"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저수지에서 물이 빠지기 위해서 댐이 붕괴되는 지점, 그것이 곧 기도하는 순간이란 말이다. 그러니 기도하는 순간, 자기 속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와르르 다 쏟아져서, 그렇게 해서 자기 것과 "굿바이, 내 사랑!" 라고 하면서 이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마치 저수지에서 물이 다 빠지듯이 !!
그렇게 자기 속에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가는데, 어떻게 이것이 우리가 마음을 잡고 기도한다고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냥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쳐들어올 때는, 기도를 한다는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이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인데, 그러니 성령이 함께 있으면 그런 기도를 수시로 우리에게 유발시키게 되는데, 그리고 우리 자신이 마음을 먹고 하는 기도와 비교를 시켜서, 우리 기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기도인지를, 그렇게 해서 우리가 기도가 진짜 기도를 훼방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 이 바보들아 !!
기도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겠는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바리새인들의 기도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는가? "저들의 기도를 봐라. 기도를 잘 하는 척을 하고 있지. 그리고 이방인들의 기도는 매일 같이 무엇을 입고 먹을지를 염려하는, 즉 '다오, 다오' 라고 중언부언하는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아신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위한 용도로서 있는 게 아닌데, 그런데 왜 자기를 위해 있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가? 이 바보들아!"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마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시 말해서, 기도의 출처가 되시는 아버지가 계시는데, 그 아버지와 관련된 자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아버지가 보이지 않고 그 관계가 끊어져버리면, 기도를 해도 자기를 위한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과 연결이 되어있는 사람은 성령이 오셔서 기도하기 때문에, 마치 설사를 하듯이(ㅋㅋ), 후다닥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긴다는 것이다. "여기 저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가세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던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즉 어린양이 죽음으로서, "어린양인 내가 할 테니까, 이곳에 와서 기도하라" 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산당에는 어린양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이 어린양을 잡아도 장소가 다른데, 그들은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식으로 잡는데, 진짜 어린양은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의하면 그 기도장소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땅에 있는가? 하늘에 있는가? 하늘에 있는데, 그런데 하늘과 땅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응답하리라" 라는 것이다. 즉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이름은 없다. 오직 주의 이름으로만 살라"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이제 교재 290페이지를 보자.
** 생명의 출현은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고, 그 발꿈치를 깨무는 악마의 도발이 있어야 한다.
◈ 여자의 후손은, 악마의 도발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