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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독수리 비유 130710우리교회에스겔

독수리 비유 130710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독수리 비유(에스겔 17:1-6)

이근호

13-07-10 21:08

독수리 비유

2013년 7월 10월 본문 말씀: 에스겔 17:1-6

(겔 17: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7:2, 개역)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겔 17: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겔 17:4, 개역)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겔 17:5, 개역)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겔 17:6, 개역)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좋은 신앙을 가진 왕으로 알려진 요시야와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엘리야김(=여호야김)이요 둘째는 여호아하스요 셋째는 시드기야입니다. 둘째인 여호와하스부터 먼저 왕이 되었고 그 다음으로 맏이인 엘리야김(여호야김)이 왕이 되었고 막내 아들인 시드기야 때에 드디어 유다 나라는 최종적으로 멸망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 이전에 잠시 왕이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비유 가운데서 독수리와 레바논의 백향목, 연한가지 끝, 종자가 나오는데 독수리는 침략자 바벨론을 뜻하고 레바논의 백향목은 여호야김 왕을 의미하고 여한가지의 끝은 여호야긴을 뜻하고 종자는 시드기야 왕을 뜻합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계시책마저 불태워버리고 노골적으로 바벨론에 반대하는 정책을 폈고 애굽에게 국운을 맡긴 나쁜 왕인 반면에, 그 아들 여호야긴은 비록 짧은 3개월 10일이라는 재위기간을 끝내고 바벨론 왕에 의해서 포로 잡혀 갔지만 나중에 여생이 폈고 자유로웠습니다. 그의 삼촌인 시드기야왕 같은 사람은 눈알이 빼인채 혹독한 대우를 받으면서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유다 멸망이 이스라엘 구원에 있어 필수 코스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를 아십니다. 마치 큰 산을 볼 때에 산의 뿌리부터 끝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인간이란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보며 삽니다. 더욱 나쁜 점은 이 부분을 전체라고 착각하고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멸망이 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의 계획 속에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이는 구원이란 멸망이나 혹독한 심판 안에 담겨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점을 헤아리지 못하기에 극렬하게 하나님의 세워놓으신 전체에 반대하고 나서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수수께끼, 비유’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수수께끼나 비유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그 내막을 풀어서 미리 대처하고 대비하라는 그런 취지가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들이 아무리 알려고 애쓰고 그 수수께끼에 담긴 내막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부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인생이란 아무리 분주하게 세상을 누비고 다녀도 실은 한 자리에 계속 제자리 뛰기 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하나님께서 손에 시간을 재는 시계를 누려면 그 자리에서 인간은 매초 늙어가고 있고 허물어지고 있는 겁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안 허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망가지게 하십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수수께끼와 비유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독수리 비유’입니다. ‘독수리’라는 표현 자체가 그만큼 인간들이 하나님의 전체 계획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독수리가 먹잇감을 하늘에서 노려보다가 주저없이 덮쳐서 쪼아먹는 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면서 좋은 사이를 맺을 하늘의 짐승으로 보지않고 도리어 공격하는 짐승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처럼 행동에 나서는 것이 곧 구원에 임하는 감정이라는 겁니다. 멸망을 품지 않고서는 구원은 성사될 수 없습니다. ‘독수리’라는 표현을 통해 애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적군에게 사정없이 쪼아먹히는 식으로 구원작업을 수행하시겠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셔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전체 뜻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을 보여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49-50에 보면,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잔인한 민족에게 언약 나라인 이스라엘이 잡아 먹히도록 이미 사전에 조치해 두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안목에서 나온 이해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 이방민족에서 애초부터 잡아 먹히고 당하도록 이끄시는 걸까요? 그 내막은 신명기 28:54-57에 나옵니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 한없이 어질고 착하고 배려하는 성품의 소유자로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조치하신 멸망이나 심판의 순간이 오게 되면 자기 자식마저 아낌없이 몰래 잡아먹는 그런 자기 밖에 모르는 잔인한 아버지로 돌변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작업이 진행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남자 뿐만 아니라 여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랍니다. 하나님의 숨겨놓은 독수리 수수께끼 상황이 유다 나라에 닥치게 되면 착하디착하다고 소문난 그 어느 여인이라도 궁극적으로 자기 살고보자는 식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는 겁니다. 이 독수리 비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그 확정이 됩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지는 죄성에 대해서 인간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들인 자신들이 이해할 수준에서 느껴지는 징벌을 통해서 그 분량에 부합되는 식으로 자기 죄를 규정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버림받으심의 징벌은 인간들이 아무리 깨내도 모자라는 깊은 죄성 때문입니다.

성도란 바로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겁니다. 자신이 예수님이 주어진 그 징벌을 못다 체험한다 할지라도 그 피가 하나님만이 아시는 죄까지로도 해결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손을 놓고 이미 우리가 심판과 멸망 속에 놓였음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그 속에서 피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07-12 08:58

48강-에스겔17장 1-6(독수리비유)130710-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17장 1절에서 6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73페이지입니다.

에스겔 17: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독수리라는 새 이야기가 나오고 포도나무 나오고 종자가 나오는데 2절에 보니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생들 보고 수수께끼 내면 재미있어 하지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재미있으라고 내는 수수께끼는 맞추면 기분 좋고 못 맞추면 약간 기분 안 좋은 정도, 맞추나 안 맞추나 운명이 별로 달라질 것이 없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는 수수께끼, 다른 말로는 비유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스라엘보고 풀어보라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이 수수께끼와 비유에 담긴 상황 속으로 너는 끌려들어가고 있음을 미리 예고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수수께끼에 대해서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이 수수께끼를 아느냐하면 그들이 멸망했을 때 알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것은 전체를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큰 산이 있다면 그 산 이쪽에서 저쪽까지 그 높이까지 전부가 다 사람들의 눈길 속에 다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산이 너무 커서 다 다 들어오지를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언이란 너무나도 큰 산 같아서 우리가 눈길을 줘도 우리 시선 안에 다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거나 해석하거나 해서 대처할 수 있는 수수께끼이거나 비유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는 이 내막을 잘 알아서 위험에 미리 대처하자.’ 이런 식으로 대처하라고 하나님께서 수수께끼를 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알아봐야 기껏 부분밖에 모르고 전체에 대해서는 하나님 소관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전체에 대해서 하나님의 소관이라 했을 때 전체를 알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은 일찍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간은 부분밖에 모른다는 것은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일을 겪든지 간에 그것조차 부분이라는 거지요. 전체에 대해서 너무 욕심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시계를 손에 쥐고 있다면 인간은 태어나서 그 자리에 가만히 평생 있는 거예요. 인간은 평생 가만있고 하나님 손에는 초시계가 째깍 거리면서 계속 가고 있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자리에서 늙어가기 시작하면서 결국 죽을 때 스톱, 하면 죽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운명이기에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한국에서 살다 미국 가서 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자기 딴엔 한 번 살아보려고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어떤 사람은 이사를 40번 넘게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열 대번 이사하는 사람들은 흔하지요. 그저 한 번 살아보려고, 살다가 먹을 것 없으면 다른 데로 가고, 그냥 장소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애 낳고 말썽부려서 교도소 갔는데 다시 빼내고, 이런 우여곡절이 그렇게도 많아요. 우린 딴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보려고, 살아보려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꼬리부분에 탔다가 죽기도 하고 또 약간 다쳐서 도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면서 온갖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네, 하면서 호들갑 떨어도 주님 보시기에는 제자리 뛰기였어요. 네가 미국 가나 한국에 그냥 사나 째깍째깍, 시간은 우리가 설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냥 그 자리에서 제자리 뛰기 한 것뿐이에요. 어떤 사람은 일평생 고향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90까지 산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날 때부터 평생 돌아다녀도 주님 보시기에는 맨 제자리 뛰기 한 겁니다.

주님의 손에 있는 초시계가 가는데 1초 지나면 1초 늙었고 인간들은 고목이 스스로 무너지듯이 인간도 스스로 주저앉아서 그대로 흙이 되는 겁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여러 가지 기쁜 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설치나 안 설치나 동일한 인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멸망입니다. 이 멸망을 겪게 된 것은 우리의 팔자입니다. 우리의 팔자이기에 우리가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해서 멸망에서 빠지고 면제되거나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씀하는 것은 우리가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지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상황은 꿈쩍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대로 현실로, 실제로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수수께끼와 비유는 우리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수수께끼와 비유 속에 전체라는 것이 들어 있고 우리 인간은 이 전체를 모르기에 항상 인간이 대처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대처하려고 몸부림을 치지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가? 극렬한 저항입니다.

왜 극렬하게 저항하는가? 인간은 전체를 모르고 부분만 알면서 자기가 아는 그 부분을 전체로 확대하면서 행동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나름대로 전체라고 간주하고 조치하는 그 조치거든요. 그게 하나님의 전체하고 맞을 리가 없고 하나님은 그것조차 그 전체 속에 일부의 시나리오로 집어넣었습니다. 본문에 독수리가 나오고 종자가 나오고 옥토가 나오고 수양버들이 나오는 이 이야기가 뭐냐, 독수리는 바벨론을 이야기합니다.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이 말은 그 백향목 높은 가지, 소위 유다나라의 제일 높은 왕이 있는 요시아왕 때부터 유다말기 왕들의 계보가 이렇게 됩니다. 요시아 – 여호아하스(요시아의 둘째) – 엘리야김(여호야김, 요시아의 맏이)- 여호야긴(여호야김의 아들) – 시드기야(요시아의 셋째)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에 포로잡혀 가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 다음 왕이 시드기야인데 오늘 본문에서 “종자”라고 비유되어 있습니다.

* (설교요약에서 발췌) [좋은 신앙을 가진 왕으로 알려진 요시야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엘리야김(=여호야김)이요 둘째는 여호아하스요 셋째는 시드기야입니다. 둘째인 여호와하스부터 먼저 왕이 되었고 그 다음으로 맏이인 엘리야김(여호야김)이 왕이 되었고 막내 아들인 시드기야 때에 드디어 유다 나라는 최종적으로 멸망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 이전에 잠시 왕이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입니다.]

시드기야는 나쁜 사람중에서도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여호야긴의 아버지 여호야김은 바벨론 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바벨론을 생각하지 않고 애굽나라를 의지해서 바벨론을 쳐부숴달라고 협조를 구했던 왕인데 아주 처참하게 죽지요. 반면에 여호야긴은 아주 곱게 바벨론 땅으로 가게 됩니다. 바벨론이 이 유다나라를 불쌍히 여겨서 ‘앞으로는 애굽나라 쳐다보지 말고 우리 쳐다보고 살라.’ 이런 의미로 시드기야라는 사람을 왕으로 삼았거든요. 그런데 그 왕으로 삼은 시드기야가 오히려 더욱 반발해서 BC 586년에 최종적으로 유다나라는 불타버립니다.

여호야긴이 포로 잡혀 가는 것은 BC 579년이니까 유다가 최종적으로 불타기 11년 전에 잡혀 갔고 그 잡혀간 지 11년 후에야 유다는 최종 멸망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단순히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에는 반드시 멸망이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라는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야기한 거예요. 하나님의 전체란 수수께끼와 비유입니다. 그 전체는 구원에 관한 비밀인데 거기서 어떤 요소가 필수적인 절차로 들어가느냐 하면, 하나님이 하는 계획을 인간들이 모르기에, 인간은 전체를 모르고 부분만 알기에 극렬한 저항을 한다는 거지요.

그 극렬한 저항이 결국은 하나님 뜻에 대한 극렬한 반대로 이어져서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한 이상으로 큰 벌을 받는 과정과 절차가 주어지면서 유다나라는 멸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유다나라의 멸망은 단순히 한 나라의 멸망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이 스스로 깨어지는 멸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한다, 멸망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체 구원계획에서 필수적으로 너희들이 예상 못할 심판과 멸망을 받지 아니하면 너희는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 택한 백성에게 반드시 구원이 어떤 것인지, 심판이 어떤 것인지, 멸망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실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구원이고 멸망이고 심판이다.’ 이라고 곱게 앉혀놓고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서 나름대로 어떻게 상황을 호전시켜보려는 온갖 아이디어와 노력을 다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극렬한 저항으로서 나중에 비춰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라는 그 반대의 성격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예상 밖의 큰 벌을 받게 해놓고 구원을 거기서 해 주는 거예요.

구원이란 반드시 멸망과 심판 그 안에만 구원이 담겨서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멸망이 없고 심판이 없는 데는 구원도 없어요. 멸망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평소에 내가 잘되는 것만 생각하고 나 편한 것만 생각했다는 것을 혹독하게 체험을 다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비유가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제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7장 3절에 보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여기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큰 독수리라고 했지요.

이미 하나님께서 독수리라는 큰 새를 지목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그 계획에서 자기백성이 곱게 수용하지 않고 극렬하게 저항한다는 그 내용이 독수리라는 표현 속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독수리가 올 때 어린애들 달래러 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곱게 품어주는 암탉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암탉이 온다고 할 때는 우리를 품어주러 오나보다, 할 텐데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은 우리를 강제로 공격하고 낚아채고 쪼아서 해코지 하고 우리가 저항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우리 마음에 전혀 동감도 안 되고 기쁨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어떤 짐승, 외부에서 날아온 짐승이 독수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수수께끼와 비유로 말씀하기 이 전에 미리 독수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대상인 유다나라가 심하게 반발할 것이고 반발한다고 해서 봐주는 것이 아니고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그들을 심판하게 하셔서 구원케 해주는 그 작업이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무조건 공격하는 양상임을 미리 하나님께서 아시고 독수리라는 용어를 집어넣었다는 말입니다. 독수리가 온다는 것은 순탄하고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독수리라는 용어를 하나님께서 수수께끼에 담았다는 말은 결국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스라엘은 처절하게 망해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 독수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거예요.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멸망, 종말을 모르면 우리는 구원이라는 것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잠시 성경을 덮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멸망되어야 되고 우리가 심판되어야 된다, 우리가 반드시 멸망된다는 그 소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기쁜 소식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심판받고 멸망 받는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오히려 우리의 마음은 가벼워지고 우리의 정신은 맑아집니다.

왜냐, 그동안 내 것을 내가 기어이 사수하기 위해서 얼마나 부질없는 정력을 낭비했던고,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내 인생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독수리입장에서 보기에 아무짝도 소용없고 쓸데없는 허송세월을 했으니 “차리라 너희들은 멸망과 심판을 받아버려라.” 하는 그것이 너희에 대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수용하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 지잖아요. 내가 여기 있다가 미국 갔다가 영국에 갔다가, 이렇게 설쳐 봤자 주님의 손에 들려진 초시계에 비하면 제자리 뛰기 하는 사람하고 아무 차이가 나지 않아요.

어차피 인생이란 다 늙어서 죽게 되어있는데 미국 간다고 안 늙고 영국에 간다고 해서 안 늙고 비행기사고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안 늙는 겁니까? 그것은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너무 집착했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너무 고민에 빠졌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머리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예요. 심판하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심판 받으면 되는데 왜 심판 안 받으려고 하고 왜 멸망 안 받으려고 했느냐는 말이지요. 그것은 굴러들어오는 구원을 발로 차버리는 짓밖에 안돼요.

왜 제가 그렇게 장담하느냐하면, 옛날 구원받고자 하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절차로서 그들에게 심판과 멸망을 혹독하게 줬다면 그 법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도 그런 혹독한 절차를 겪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겪어야 된다면 미리 마음가짐을 ‘겪지 뭐. 지금 살아가는 이것이 심판이고 이 살아가는 이것이 주께서 나를 멸망시키는 일이다.’ 라고 받아들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합니까? 신명기 28장 48절에 보면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뭐냐, BC 1200년경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쳐들어 온 것은 BC 586년경입니다. 그러니까 무려 650년 전에 이스라엘은 반드시 바벨론 나라에게 멸망되게 되어 있다고 예언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650년 동안 이스라엘이 뭐 했는가? 이스라엘은 백날 설쳐봐야 650년 후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독수리처럼 강성하게 키워서 그것으로 유다를 쪼아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멸망 받을 때 어떻게 멸망 받았는가? 신명기 28장 50절부터 나옵니다.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서 필경은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필경은 너를 멸절시키리라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신 28:50-57)

기니까 짧게 요약해 드릴게요. 그들은 용모도 흉악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육축의 새끼와 토지소산, 포도를 비롯해서 소 새끼 양 새끼 전부 다 삼키는 민족으로 쳐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뒤 52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 있는데 주께서 예언하신 거예요. 모세를 통한 예언이죠. 사람이 굉장히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고 54절에 나옵니다. 여자 같은 남자, 굉장히 순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남에게 얼굴 찡그리지 아니하고 용모도 아주 고운사람, 여기 있는 분들은 다 그렇지요. 굉장히 어질고 순한 사람이 막상 바벨론 나라가 유다 예루살렘을 포위하니까 자기 몸에서 나오는 자기 자식을 삶아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이 이야기가 나와요.

굉장히 착한 사람인데, 너무 어질어서 자기는 죽을지라도 자식새끼한테는 미련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인데 막상 바벨론이 포위해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몰래 자기새끼를 먹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신명기 28장 54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55절부터 57절은 무슨 이야기냐, “너희 중에 착하고 아주 연약해서 남에게 해코지 못하는 부녀, 그 여인이 너무 고상해서 살아서 발바닥으로 땅도 밟아보지 않은 천사 같은 여인이 있느냐, 그 여인이 자기 다리 사이로 난 태와 자기 어린 자식을 몰래 먹게 된다.”

자,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적이 왔으면 장렬하게 죽어버리지, 라고 했을 때는 비록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독수리가 온다 해도 여전히 자기자존심만큼은 아직 안 깨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예언에 의하면 외부에서 생존의 위협이 쳐들어 왔을 때 ‘굶어죽게 되면 굶어죽지. 아니면 나가서 장렬하게 싸우지.’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자기가 몰랐던, ‘내가 이렇게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완전히 까발리고 노출시키는 형식으로 독수리가 예루살렘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구원의 과정이고 절차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더라도 내 인간성 하나는 지키리라, 라고 생각하고 싶지요?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아직도 구원의 노선에 안 들어왔다.” 그 말입니다. 구원의 노선, 필수적인 절차에 의하면 “당신의 생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밥 못 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직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더라도 궁극적인 진짜 나의 모습, 진짜 진솔한 나의 진면목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마다 않는, 이것은 너무 잔인하고 너무 참혹스러워서 평소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그 일을 내 손으로 내 입으로 내 발로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사태를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수수께끼고 이것이 비유에요. 그러니 어느 인간이 수수께끼를 풉니까? 어느 인간이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합니까? 전부 다 자기를 점잖고 유순하고 착하고 믿음에 대해서는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평소에 그런 마음가지고 이 성경말씀 전체가 비유인데 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어느 대목을 해석하겠습니까? 그래가지고는 해석 못합니다. 해석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 십자가, 천국, 이것 몰라요. 진짜 구원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 자기밖에 모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기만 살고 남 다 죽이는 못 돼먹은 이런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그것이 제대로 구원에 대해서 아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선배격인 이스라엘에게 그런 상황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일어난 상황을 두고 “그래, 너희들에게만 국한 되는 이야기야.” 이렇게 하지 않고 이들에게 일어난 그 상황을 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렇게 만든 계시를 우리에게 성령이 오실 때 집어넣어 버렸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조치했던 그 위급상황에서 그 극단적이고 악마적인 모습과 행위가 우리 안에도 장착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을 어떤 상황에서 써먹을지, 어떤 상황에서 이것이 유감없이 발휘될지 그것은 아무도 결정지을 수가 없지요.

수수께끼와 비유가 되려면 우리가 미리 예측하면 안 됩니다. 수수께끼와 비유가 되려면 예측하면 대비한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아무리 예측해도 영원한 수수께끼는 영원한 수수께끼고 영원한 비유는 영원한 비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수께끼와 비유가 우리가 알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그쪽에서 알아서 그것을 모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의미로서 수수께끼와 비유니까 우리는 그것이 십자가로 통합되어 있고 그 피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뭐냐, 예수님의 체험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그 체험이에요. 그 체험에 우리 쪽에서는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믿어지는 것은 우리가 그 체험을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그 능력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 이것이 믿어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 이스라엘이 당했던 인간성이라는 것 자체가 악마성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혹독하게 느끼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십자가를 고마워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겁니다.

끝으로 “목사님, 그렇다면 우리 집을 인민군이 와서 포위해서 그야말로 부부가 서로 살점을 뜯어먹는 짓을 해야 됩니까?” 물으신다면 그렇게 하는 그것도 이기적이지만 자기 집에서 음악소리 크게 틀어놓는 그것도 자기애를 잡아먹었던 그 옛날 유다가 멸망당할 때의 그 행동이나 평소에 안방에서 하는 행동이나 동일한 행동으로 우리가 수용해야 됩니다. 왜, 항상 주님 보시기에 우리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의해서 일어나는 행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남을 사랑하고 남을 구제한다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 보세요. 남이 한 것이 아니고 바로 제가 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이것이나 적에게 포위당해서 자기 애 먹는 것이나 사실은 같은 성품에서 나온 똑같은 체험이라고 보면 돼요.

그러니 우리의 이런 이기주의를 미리 아시고 주께서 수수께끼의 비유 속에 십자가를 담아서 십자가를 믿으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너는 저주받아 마땅하고 너는 지옥가야 되는 인간을 주께서는 피로만 구원했다.”하는 것을 오늘도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느끼게 하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감추어졌고 주님만 홀로 아셔서 그 근거에 의해서 일이 진행되는데 부분적으로 알면서도 뭔가 안다고 행세하는 저희들 부끄럽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다 하는 가운데서도 이기주의가 싹트고 남을 섬긴다고, 남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기주의는 살아 있고 또 섞여 있고, 이 모든 죄를 주께서 십자가로 용서한 것을 믿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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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3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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