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강-YouTube강의(두개의 질서)130704-이 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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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40강-YouTube강의(두개의 질서)130704-이 근호 목사
제목은 “두개의 질서”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나중에 죽어서는 천국을 간다. 말은 굉장히 쉬운 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 해서 하나님나라에 갔던 사람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구약성도들이 천국 간다는 것을, 쉽게 간다는 인식을 그들은 도저히 갖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크게 두 가지 장벽을 느꼈는데 하나는 공간적인 장벽, 지리적인 장벽을 그들은 겪어야 했습니다.
천국을 가는데 우리가 알아서 길 찾아 갈 수는 없는 거고, 하나님이 동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행하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간적인 장벽을 겪어야 했는데 예를 들면, 홍해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죠? 다리도 없고 건너갈 수 있는 보트도 없는데,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됩니까. 헤엄칠 수 있는 입장도 못되고, 이렇게 딜레마에 빠지는 그런 경우를 소위 하나님 백성들은 겪어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 천국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면 쉽게 천국에 들어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선배들은 난처한 입장을 한 두번 겪은 것이 아닙니다. 공간적인 장벽은 홍해를 건너가고 난 뒤에 요단강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요단강에 강물이 불어나서 홍수가 났거든요?
우리 생각 같으면 비 그치고, 물줄기 줄어들 때 바지가랭이 걷고서 저쪽으로 건너가는데 성공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조건을 겁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보고 먼저 건너가서 강 한복판에 언약궤를 들고 서라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지시를 오해해서 그걸 같이 경험하지 아니하고 딴 길로 새 나가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법은 없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고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공간적인 장벽과 또 장벽이 있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기억적인 장벽이죠? 그 장벽하나를 소개해 드리면 민수기 11장 5절에 보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라고 이 만나 외에는 먹을게 없다고 불평들을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천국 가게 된 사람들이 중간 중간에 하나님 앞에 불평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제가 제목을 두 개의 질서라 했는데 하나는 천상의 질서고, 또 하나는 지상의 질서입니다. 지상의 질서를 아래층으로 보고 천상의 질서를 윗층으로 본다면 에레베타가 있든지 안그러면 계단이 있어서 우리가 알아서 올라가면 될 수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이 두 개의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는 어떤 연결되는 계단이나 연결되는 인간적인 어떤 방식이 전혀 끊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없습니다. 상당히 억지 같죠?
그리고 민수기 11장 1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소리를 합니다. “그들이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라는 겁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지금 약속의 땅 요즘 말로 하면 천국이죠? 이 천국 가는 이 경로가 왜 그리 재미없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재미없는 일 하겠습니까? 사람이 재밌게 해야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을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 동행해서 약속의 땅에 갔던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 한다는게 재미가 없다는 겨예요.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지상의 질서에 푹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앞으로 살게 될 천상의 질서는 재미없는 그러한 질서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몸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협조를 하지 않게 되죠.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서 이 지상에 살다가 죽으면 천국 간다고 아주 쉽게들 생각하는데 구약의 백성들은 하루하루 삶이 광야에서 만나먹고, 그 다음날도 만나먹고, 그 다음날도 만나먹고 그리고 텐트 철거하고, 또 이동하고, 또 만나먹고 광야에서 사십일 생활하는 그 하루하루가 애굽에서 재밌던 삶과 떼어놓고 그걸 격리시키는 아~주 아픈 장벽, 괴로움 고생 이런 것을 겪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주 심하게 겪었어요. 그렇게 겪는 가운데서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이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의 차이점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천상의 질서라 하는 것은 은혜로 채워지는 질서입니다. “모든 발걸음과 모든 행동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 개입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능력으로 저희들은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라고 이렇게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이 은혜의 질서입니다.
반면에 지상의 질서, 애굽에 살았던 질서는 뭐냐 하면, 모자란 힘을 어떻게든 보충해서 그 힘을 내가 소유함으로서 생존에 안정을 누리는 그런 질서, 그것이 바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살았던 방식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상의 질서라 하는 것은, 힘을 많이 끌어 모아서 그걸 소유화 시키는 겁니다. 뭐든지 내 소유화 되지 못하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까 내가 뭔가 소유한게 있을 때는 행복하고, 많이 소유하면 많이 행복하고 흔히 그것을 교회에서는 축복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야될 천국의 질서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도리어 천국의 질서를 위하여 지상의 질서는 전부 다 삭제 돼야 되고, 빼먹어야 되고 빠져야 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천국이야기를 복잡하게 이야기 하는 이유가 이미 우리가 신약시대에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구약 역사 속에서 이렇게 복잡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복잡하게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끄집어내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가는 그 경로가 있거든요.
우리가 이걸 무시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걸 무시해 버리면 우리는 우리의 상상 속에 내가 일방적으로 지어낸 상상속의 천국인데 그 천국은 있지도 않는 천국이죠. 그건 거짓말이죠. 실제로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고 싶다면, 구약 성도들이 경험했던 그 지상의 질서와 천상의 질서와 연결고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강제로 천상의 질서에 집어넣은 그러한 체험과 사건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지상의 질서라 하는 것은, 힘을 소유함으로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만끽하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면, 그것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부셔져야 된다 이 말입니다. 천상의 질서라 하는 것은, 바로 거저주시는 매일같이 거지처럼 얻어먹는 매일같이 거저 주었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서 화낼 이유가 없는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 공급받는 식으로 살아가는 그 질서 아래 놓여 있을 때 그것이 천상의 질서고 천국의 질서입니다.
따라서 구약에 나오는 이런 공간적인 장벽, 에덴동산이나 홍해나 요단강 건너가는 공간의 장애, 그리고 관습적인 장애,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 과거에 이렇게 살았다. 몸에 익혀버린 그러한 질서를 신약에서는 그 두 개를 어떻게 합치는가 하면, 바로 십자가 사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결합이 됩니다.
그렇게 되게 된다면 우리는 신약에서는 십자가란 장애를 우리에게 매일같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상의 질서에 대한 우리의 몸이 거기에 밀착돼있고 그 지상의 질서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 결합시키려고 애쓰는 자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든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그 십자가 피로써 용서도 함께 주어진다는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상의 질서를 통해서 죄를 알고, 그 죄가 천상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 구심점이 되는 예수님의 용서와 결합하면서 우리는 천국으로, 천국으로 지금도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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