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강-YouTube강의(스승)1306020-이 근호 목사
39강-YouTube강의(스승)1306020-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39강-YouTube강의(스승)1306020-이 근호 목사
39강 “스승” 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혼자 살면 외로워서 못삽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참 서글프고 자칮하면 우울증까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욕을 하고, 세상을 비난해도 그저 자기가 들어붙을 수 있는 어떤 구심점, 중심점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많은 철학자들은 그걸 이렇게 이야기 했죠.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얘기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찾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찾아, 그것을 대상화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자기하고 일치감을 느껴서, 내가 저런 사람 부류에 속한다. 이렇게 확정 짖고 싶은 그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혼자서는 사는게 힘들죠. 힘들기 때문에 자기가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는데 그걸 멘토라고도 하고, 스승이라 하는 겁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뭔가 불안하고 쫓기게 마련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희망을 얻기 위해서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 더 훌륭한 사람,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스승이란 이름으로 매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천국 간다는 것, 죽어서 좋은 나라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목사라는 이름의, 또는 성직이라는 이름의 영적인 지도자를 찾게 마련인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뿐 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그 유대 나라에도 바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같이 영적 지도자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남들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경건한 존재로서 살아야 그것이 자기의 존재 의미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도해도 남들 보란 듯이 기도했고, 금식하고, 구제해도 남들한테 시범 보이듯이 했습니다. 일종의 자신이 견본인냥, 쉽게 말해서 하나님 믿을려면 나처럼 믿으라. 그런 표준적인 모델로서 행세를 한 겁니다.
그들의 하는 모습들을 분명히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보고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위선자라, 거짖된자라, 속과 겉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더 심하게 말해서 독사의 새끼들이다, 너희 아비는 마귀다 아주 과격한 말씀도 서슴치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도 똑같습니다. 자기 자신이 선지자인가를 평가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임박한 진노에 대해서 너희들이 아느냐.“ 그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그 당시 시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 열두 사도들도 거의 모두다 순교자들이었고, 오늘날 성령이 임한 모든 사람들도 이 시대의 영적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밉상 받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잘난 척 하는 사람보고 시기 질투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보고 자기는 인기 없으니까, 질투심 발휘해 가지고 흥~ 이단들! 이렇게 함부로 내막도 모르고 평하는 것, 일종의 그것도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고 오류죠. 뭔가 근거가 있어야 되죠. 저 스승은 문제가 있다, 저 스승은 잘못됐다 할 때도 그냥 막무가내로 할게 아니고,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남들은 전부다 나보다 악한 사람이라고, 폄허하고 낮춰 볼 수는 없는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스승과, 진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스승과의 차이점이 뭐냐, 그걸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낸 스승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사태에 대해서 심각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에 보면,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모세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지정해준 스승의 표본입니다. 신명기 13장 12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찌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너무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생각은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게 관심이 있는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죽어서 천국 가느냐, 이것만 챙기면 우리는 내얻을건 얻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스승을 과격하게 죽이라, 이런식으로 너무 터무니없는, 우리가 납득이 안되는, 이 세상에서 너무 부정적인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런 이런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구원받습니다. 라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을 스승으로 원하고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현금 출납하는 기계 앞에서 현금을 빼낼때, 기계 앞에서 절하고 그러지 안잖아요.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그 사용법을 따라가게 되면 기계에서 저절로 돈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그런 스승을 원합니다. 우리한테 이렇게 이렇게 요령과 뭔가 지시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영생이 나오고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그런 스승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3장에 나오는 모세의 말은 너무 과격합니다. 동의 할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게 되면 마치 우리한테 뭘 요구하느냐하면, 모세가 하나님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아주 과격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나와 그런 과격한 생각을 똑같은 과격한 생각을 갖을때만 너는 내 한편이고, 같은 영생 얻는 사람이라고 간주하겠다. 라는 멘트를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생각은 나만 구원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모세가 우리에게 신명기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그런 동일한 아주 과격한 관점을 갖을때만, 너는 나를 스승이라고 인정하는 걸로 내가 간주하겠다. 이래 나오는 거예요. 상당히 사태가 심각합니다. 그냥 기능적으로 챙길건 챙긴다는 식으로 쉽게 쉽게 영생을 얻을 그런 분위기가 아니예요.
따라서 이런 멘트를 날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모세인줄 모르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줄 모르고 그냥 말만 들었다고 합시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두둔하고 누가 변호에 나셨냐하면 바로 우리 자신이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상당히 기분이 상합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니까 우리한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모세라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대듭니다. “소위 스승이라는 자야, 하나님 말씀을 빙자해서 너무 과격하게 나오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해서 칼날로 죽인다고 하고, 성읍을 불사른다고 나오는데 사람이라 하는 것은, 당신이나 나나 전부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살다보면, 다른 신을 섬기고 살다보면 완전하지도 않고, 자식 놓고 밥 먹고 살라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 생각 안 할 때도 있고, 예수 안 믿을 때도 있고, 그리고 살다보면, 나쁜 짖 지을 수도 있고 사람인고로 그렇게 한다면, 정말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선이지 그걸 칼로 진멸하고, 진노하고 어떻게 그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랑의 하나님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 하고는 전혀 딴판의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당신을 영적 스승이라고 간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라고 백이면 백 다 그래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핍박 받습니다.
그런데 모세보다 더 과격한 분이 누구냐. 예수님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고,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취지와 그 의미를 오늘날 성령께서 앞장 세워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니가 스승을 원해? 누구 좋으라고 스승을 원해? 영적 스승? 누구 좋으라고?
결국은 이 세상의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지 아니하면 소위 교회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사람들, 두둔하는 목적으로 자기의 패거리 만드는 식의 스승, 이제는 십자가 앞에서 그것이 바로 영적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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